'우베공'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1.04.18 간만에 자전거 11
  2. 2010.05.08 일주일 전 19
  3. 2009.06.11 자전거 바람이 불었다 21
  4. 2008.07.01 느루는 달리고 싶다 10
  5. 2008.04.20 야간 자전거 타기 6
  6. 2008.03.24 첫날의 사건 20
  7. 2008.03.23 내 자전거 18

간만에 자전거

놀잇감 2011. 4. 18. 15:09

하얀색이라 먼지가 뽀얗게 쌓인 게 더 잘 보이는 느루의 먼지를 털어내고 완전 내려앉은 바퀴에 바람도 빵빵하게 넣고 정말 오랜만에 어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요가 관둔지도 두달이 돼가고 운동이라고는 숨쉬기랑 씹기 밖에 안한 체력은 처음부터 티가 났다. 빠르면 20분, 늦어도 25분이면 도착하던 한강변까지 결국 다 못가고 중간에 쉬어야 했다. 핑계를 대려면 운동효과를 내려고 열심히 페달을 밟은 데다 맞바람 탓이었다고 둘러댈 순 있겠으나 그래도 창피한 건 창피한 거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또 깨달았다.

자전거는 한번 익히면 절대 잊지 않는 종류의 기술이라는데 사람마다 좀 다른지 나는 이렇게 간만에 자전거를 탈 때마다 서툴게 헤맨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 밀려드는 공포 때문일까? 페달질 하다 페달을 놓치질 않나, 안경이 흘러내리는데 핸들 한 손으로 잡기가 무서워서 안경도 못 올리질 않나, 스스로도 좀 난감하다 싶었다. 결국은 꾸준한 연습만이 살길이라는 건데 이렇게 몇달만에 한번씩 타가지고 언제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을지 원.

화창한 날씨에 풀풀 날려 떨어지는 벚꽃이 유혹적이라 나갔던 건데 한강바람은 아직도 쌀쌀하고 차가워 손이 시렸다. 장갑 안끼고 나간 걸 후회하며 예쁘고 새끈한 장갑을 사야겠군, 하고......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몇번이나 타려고! 다음에 느루 타러 나오기 전에 손시렵지 않은 날씨가 될 확률이 더 높다. ㅋㅋ

아 맞다. 자전거 살 때 받았던 검정색 벨을 조카에게 빼앗기고 계속 벨 없이 다녔는데, 안되겠다. 주말이라 그랬겠지만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비롯해 굳이 보행로 놔두고 자전거길로 와글와글 걸어다니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벨을 달아야지. 갑자기 요란한 전자벨 울려서 사람들 놀라게 하는 인간들이 유독 싫어서 난 아예 벨을 잘 안울리는 편이라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었으나, 그냥 띠링띠링 울리는 벨 정도는 필수품임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느루에 어울리는 벨을 그간 계속 검색하고 있었지만 마음에 꼭 차는 게 없어서 머뭇거렸는데 좀 눈에 덜 차더라도 담번에 타러 나가기 전엔 사야할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엉덩이가 심히 아프다. 흑. 허벅지의 뻐근함이야 어쩐지 지방이 근육화 된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며 흐뭇한 효과를 남긴 반면 멍이라도 들은 것처럼 아픈 엉덩이는 좀 민망하다. 간만에 자전거를 타면 왜 꼭 엉덩이가 아픈지 원! 초보자의 비애일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암튼 앉을 때마다 엉거주춤 자세가 웃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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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놀잇감 2010. 5. 8. 16:05

지난주 토요일이니까 딱 일주일 전이다.
입원예정일 바로 전날까지도 입원과 수술 여부를 놓고 마음을 정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는 왕비마마를 지켜보다 폭발하기 직전의 울화를 느낀 순간 느루가 눈에 띄었다. 솔직한 마음으론 완전히 가출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가출은 개뿔...
집나간다고 딱히 갈 데나 있겠나 어디.

물 한통 받아들고 나서서 올해 처음으로 밟아보는 느루의 페달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요가 몇달로 몸에 좀 근력이 붙었겠지 싶었던 생각은 어디까지나 나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는 뜻이었다. 한강쪽에서 지천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오는지 20분 남짓한 거리에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스스로도 민망했는데, 나 말고도 한강을 코앞에 둔 야트막한 언덕에서 낑낑거리는 자전거 초보자들을 보며 괜히 위안을 얻었다.

집에서 나섰을 땐 행주대교까지도 문제없을 것 같았는데 맞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것도, 강바람을 옆으로 맞으며 달리는 것도 그리 수월하진 않아 난지 한강공원 근처에서 배회하다 그냥 돌아서야 했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바람이 꽤 부는데도 그놈의 한강 르네상스인지 뭔지 때문에 새로 단장한 둔치엔 사람들이 꽤 많이 버글거렸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잘난 척 전화 받겠다고 애쓰다가 잔디밭으로 벌러덩 나가 떨어졌다. 콘크리트 바닥이었으면 느루도 나도 어딘가 까지거나 된통 아팠을 텐데 등판에 지푸라기가 좀 묻었을 뿐 잔디밭이 푹신한 덕분에 멀쩡하더라. ㅋ

꽃보다 아름다운 느루


온통 시멘트로 처바르고 군데군데 요트 정박장을 만들어 놓고 사이사이 꽃밭을 가꿔놓은 새로운 한강 둔치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무로 들꽃을 만들어 놓은 이 조형물은 꽤나 인상적이라 느루를 세워놓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을 땐 작품 이름도 알아두었는데 일주일 새 까맣게 잊혀져 통 떠오르질 않는다. 자연? 세월? 두 글자였던 건 확실한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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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년에 느루를 장만하고 나서, 그때 직접 매장을 추천하고 조언을 해주었던 막내동생네도 곧 미니벨로를 장만했다. 애팔렌치아라고 하던가, 검정색으로 아주 늘씬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그러고선 올해부터 아직 네발자전거를 벗어나지 못했던 준우왕자의 강훈련에 돌입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지만 겉보기론 3학년이라 해도 믿을만큼 키가 훤칠한 녀석이라 머지 않아 제 엄마와 함께 미니벨로를 탈 수 있게 하기 위해, 네발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뗀 거다. 겁이 많아서 통 진도가 안난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았는데 어느 틈엔가 녀석은 순식간에 두발 자전거를 마스터 하고야 말았단다. 이렇게...

그러고 나서 좀 있다 준우왕자의 동생인 지우의 생일이 돌아왔다. 겨우 만 세돌이 되는 녀석은 똑 소리나게도 우리에게 선물을 콕 찝어 요구했다. 자전거를 사달라고. +_+ 그것도 하얀색이랑 검정색으로.
"고모, 지우 자전거 사주세요. 하양색이랑 검정색 있는 거..."라는 지우의 말을 직접 전화로 들으며 나는 내심 걱정이 앞섰다. 애들 자전거가 죄다 파랑 아니면 분홍, 아니면 노랑, 초록 같은 원색이던데, 하얀색이랑 검정색이라니...
그런데 그건 나의 기우였다. 지우 기호에 딱 맞는 어린이용 자전거가 있더라!
어린 녀석 취향이 세련됐기도 하여라. @.@
문제의 자전거는 삼천리자전거에서 나오는 <하이킥>이란다. 지우도 또래들보다 키가 커서 12인치를 사줘야 하나 16인치를 사야하나 고민했는데 딱 맞춤처럼 14인치짜리가 매장에 있더라나. 당연히 지우왕자는 저 자전거에 올라타곤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ㅎㅎㅎ
제가 원하는 선물을 생일선물로 받은 지우는 연일 자전거 타기에 힘쓰는 모양이고, 겁이 많아 속도 내는 건 엄두도 못냈던 제 형과 달리 방향전환이며 속도내기에 거침이 없어 오히려 걱정이다. *_*

무릎 보호대를 하고 제 형의 뒤꽁무니를 거의 바짝 뒤쫓는 지우의 모습을 보면 난폭운전의 기질마저 느껴진다. ^^; 귀여운 녀석...

준우마저도 두발 자전거로 씽씽 달리는 모습을 본 데다 고모와 작은엄마의 미니벨로 맛을 본 정민공주는 자기도 기어 달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이미 온 집안에 불어닥친 자전거 바람에 물든 큰동생네도 전격 미니벨로를 장만하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내 자전거랑 똑같은 다혼 우베공 흰색으로...
다만 사이즈는 내것보다 큰 걸로. ㅠ.ㅠ

이 자전거를 타다가 공주는 오른쪽 무릎을 왕창 갈아 진물이 날 정도였는데도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러 나가는 눈치다. 사진은 5월 31일에 소풍 갔던 월드컵 공원에서 타는 모습이고, 공주의 아빠가 찍은 사진이다. 자전거를 타고 느껴지는 바람이 보이는 것 같은 이런 사진.. 좋다. @.@



자존심이 심히 상하기는 하지만, 조카랑 고모랑 나란히 똑같은 미니벨로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아주 그럴듯하다. 왼쪽이 내 느루, 오른쪽이 공주의 우베공.
이땐 하필 내 자전거를 올케가 타느라 안장을 제일 낮게 했고, 정민이 자전거는 동생이 안장을 높여 탄 직후라 더더욱 형님과 동생 같이 보인다. ㅎㅎㅎ

이번엔 여기저기서 동생들 사진을 퍼왔지만, 담번엔 정말로 온가족이 떼로 모여 자전거를 탄 뒤 단체사진을 찍어와야겠다. 암튼 온 집안에 부는 자전거 바람, 참으로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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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거실 한 구석에 놓여있기만 한지 한달이 넘은 느루.
엄마가 병원에 계실 땐 당연히 탈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 이후에도 간병무수리 모드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으니 느루를 사랑해주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동안 외면당했던 느루가 외롭긴 외로웠나보다.
조금 전 냉장고를 열러 가는데 핸들로 내 옆구리를 세게 쳤다.
아야~!
자주 하는 건 아니지만 청소할 때마다 먼지는 닦아주었는데, 느루가 원하는 건 그 정도 관심이 아니다.
달리고 싶은 것이겠지.
며칠 전 처음 싫다는 엄마를 억지로 이끌고 계단을 내려가 홍제천으로 산책을 나가며 느루를 데려갈까 생각했었지만 걷는 것도 겁내는 엄마의 손을 잡아주려면 느루까지 건사할 여력이 없을 터라 포기하고 말았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의 어머니는 밤샘 작업에 힘쓸수록, 원고마감에 쫓길수록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7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체중과 온갖 지병을 갖고 계신 울 왕비마마와 달리 그분은 젊기도 하시려니와 나보다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계신 터라, 몹시 찔렸는데 그런 고언을 들을 때마다 운동해야지 마음먹은 결심은 늘 그 순간 뿐, 휘리릭 뇌리에서 사라지고 만다.

오늘도 느루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자기의 존재 이유가 거실 인테리어가 아니라 달리는 것임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난 또 원고마감을 핑계로 한동안 나몰라라 했을 것이다.
흠... 마의 6월도 지나갔겠다, 7월도 열렸겠다 한번 달려볼까나 하는 마음이 들긴 하는데 과연 이따가 저녁땐 또 어떤 변덕이 마음을 차지할지 모르겠다.
느루는 달리고 싶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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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자전거 타기

놀잇감 2008. 4. 20. 21:25
자전거 장만 후 처음 타러 나갔던 날 단단히 혼이 났기 때문에 그동안엔 선뜻 느루를 끌고 홍체천엘 나가지 못했다. 그간 원고마감 폭풍을 지나며 잠자는 시간이 이랬다저랬다 불규칙해지면서 계속 맥이 떨어져 운동을 나서기는커녕 밥만 먹고도 소화시키는 게 힘들어 드러누워 지내는 한심한 시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어차피 운동은 일부러 시간 내서 하지 않으면 안하겠다는 뜻이라는 걸 알기에 이번 주말엔 기필코 느루를 끌고 나가리라 마음먹고도 어제는 엄마 핑계로, 볕 좋은 일요일 오후엔 내내 병든 짐승마냥 꾸벅꾸벅 졸거나 소파에 늘어진 감자자루 꼬락서니로 지내다 급기야 불끈 주먹을 쥐고서 야간 자전거 타기에 나섰던 것.

첫날에도 홍제천 산책로에서만 탈 때는 수월하더니 역시 평이한 자전거 전용도로를 살살 달리는 건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물론 딱딱한 안장에 닿은 엉덩이가 좀 아프긴 했지만^^; 별로 땀도 나지 않았고, 얼음까지 띄워 담아간 물통이 민망할 정도로 목이 마를 일도 없었는데,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하도 많아 아이들과 부딪칠까봐 걱정스러웠던 몇 번의 순간을 제외하면 두번째 느루 타기는 대단히 흡족한 편이었다.
우리집 앞에서 모래내 다리앞까지 약 3킬로미터 거리인데 거길 왕복했으니 6km를 달렸다는 얘기! ^^*
사실 마라톤화를 장만해 알량한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에도 집앞에서 1.5킬로미터 정도 되는 홍남교까지밖엔 가본 적이 없어서, 나머지 산책로는 오늘 처음 구경한 셈이었는데 우리 동네 앞보다 꽃밭도 더 많고 중간에 키가 높이 자란 갈대 같은 것도 몇 개 있어서 깜짝 놀랐다. 한강에 더 가까이 가면 더 놀라운 수생식물들을 만나게 될까? +_+
물론 늙은 딸이 또 운동하다 무슨 일 날까봐 전전긍긍하며 집에서 기다리는 엄마랑 통화하느라 중간에 두 번이나 쉬기는 했지만, 다음번에도 천천히 조심조심 달리면 한강 고수부지까지 가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듯하다.

거의 한달만에 느루를 외출 시킨 덕분인지, 잠깐이나마(그래도 집앞 언덕에서 끌고 내려가고 끌고 올라오고 하는 시간까지 1시간은 넘게 걸렸다) 운동을 한 덕분인지 온종일 노곤하게 늘어져 있던 몸과 마음은 많이 가뿐해졌다. 바야흐로 자전거 타기 좋은 봄날이니 바쁘더라도 일주일에 세번은 느루를 타고 나가기로 내 자신과 약속을 했다. 과연 잘 지켜질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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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의 사건

투덜일기 2008. 3. 24. 21:50
온종일 비가 내렸던 어제와 달리 햇빛이 쨍하고 얼굴을 드러낸 월요일.
바람이 좀 불기는 했지만 자전거 타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날씨 같았다.

내가 자전거를 장만한 목적은 여러가지였다.
첫째, 여실한 본인의 운동부족 타파.
둘째, 매일 햇빛 쪼이기가 필수적임에도 혼자선 좀처럼 대낮 산책을 꺼리는 왕비마마를 이끌고 운동 나가기.
셋째, 길이 좀 험난하기는 하지만 편도 4km에 불과한 작업실까지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출퇴근하여 휘발유 절약 및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동참. -_-;;
넷째,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토룡마을 자전거모임 참석 ^^
.
.

그리하여...
몇년만에 한번씩 오랜만에 꽤 오래 자전거를 타도 큰 무리는 없었던 <젊은 시절>의 나(생각해보니 모두 2, 30대였더군)를 과신했던 나는 겨우 첫날인 주제에 위 목적 가운데 세 가지를 모두 달성하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내 공간으로 얼마나 더 남게 될지 알 수 없는 작업실에 하루라도 더 나가 일하자는 생각에
가방을 챙겨들고 (배낭이 아니라 크로스백을 무겁게 둘러맨 것부터 실수였음)
엄마를 독촉해 일단 집앞 산책로로 내려가 느루를 달려보니 거침없이 페달이 밟혀 작업실 아니라
한강까지라도 단숨에 갈 수 있을 <듯> 했다. -_-;;



위험하게 작업실까지 가는 건 무리라며 큰 걱정을 해대는 엄마에게 도착하자마자 전화할 터이니 걱정 마시라고 큰소리를 뻥뻥 친 나는 드디어 산책로를 벗어나 도로로 올라와 인도에서 살살 느루를 몰았다.
그러나... 좁은 인도에 오가는 수많은 초등학생과 행인들 때문에 계속 자전거를 타는 것은 무리였고
상당부분 그냥 끌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인적이 드문 일방통행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아뿔싸... 처음엔 신나게 기어를 변속하며
오를 수 있었던 야트막한 언덕이 끝쪽엔 급경사라 하는 수 없이 다시 느루에서 내려 끌고 올라가야하는
형편이었고, 차로 다닐 땐 그저 완만하게만 느꼈건만 꽤나 가파른 언덕의 울퉁불퉁 좁은 인도에서
느루를 끌고 내려오자니 목표까지 절반도 못 간 지점에서 이미 내 욕심이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곧장 다시 집으로 방향을 돌린 것은 좋았는데...
사람 많은 데선 느루를 끌다가 다시 인적이 드문 곳에선 느루를 타고 달리다
가파른 집앞 언덕에선 당연히 느루를 끌고 끙끙 헉헉거리며 올라오려니... 우리 집으로 이어지는
골목 모퉁이를 돌 무렵엔 숨이 너무 차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을 듯했다.
집을 10미터쯤 앞둔 골목에서 그만 느루를 세워놓고 땅바닥에 주저 앉은 것. ㅠ.ㅠ
다행히도 언덕 아래엔 빨간 옷을 입은 왕비마마가 올라오고 계셨기에 손까지 흔들어 주었는데...
엄마가 반색을 하며 작업실까지 안 가고 돌아온 게 천만다행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이
나는 차츰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어지럽고 귀가 윙윙 울리더니 앞이 캄캄해졌다.
운동 안하던 인간이 갑작스레 심한 운동을 해 심장에 무리를 주면 죽을 수도 있다더니
내가 그꼴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덜컥 들만큼 사태는 심각했다. -_-;;

다행히 의식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고
세발자국 걷고 다시 주저앉아 머리를 다리 사이로 숙이고 호흡을 가다듬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동네 사람들이 어서 119를 불러서 병원에 데려가라고 성화를 해대는 와중에
가까스로 괜찮다며 집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

집안에 들어와 누워서도 거의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듯 숨이 가쁘고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는데
옆에서 완전 식겁한 엄마는 우황청심원을 마시고도 계속해서 무서워 엉엉 우시고
나 역시 스스로가 부끄럽고 겁도 나고 하여간 정말로 죽. 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누운 채로 엄마를 달랠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을 차려 혈압을 재달라고 하니
80에 42, 맥박도 50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
엄마는 당장 병원에 가야한다며 또 울음을 터뜨리고...
.
.

저녁까지 계속 누워서 쉬었으므로 당연히 혈압과 맥박은 서서히 회복되었고
지금은 거의 멀쩡하다. ^^*

엄마는 자전거를 사준 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괜히 호통을 치시고 지금도 아까 생각만 하면
심장이 벌렁거린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아.. 민망해 죽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딱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제 체력과 실력도 모르는 주제에 기분만 믿고 무턱대고 난리를 피우다니...
첫날부터 이런 창피한 사건을 벌였으니 앞으로는 정말로 아주 살살 <느루> 타야한다는 무서운 교훈을 얻었다.
ㅠ.ㅠ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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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전거

놀잇감 2008. 3. 23. 22:40
1년 넘게 별렀던 <내> 자전거가 드디어 생겼다. ^^
어제부터 만 하루 넘게 세워두고 구경만 하고 있는데(조립직후 차에 실어 오기 전에 약 15미터쯤 시승하긴 했다) 쳐다볼 때마다 정말로 얼굴에 미소가 벌벌 흐른다.

루이가노와 스트라이다, 다혼의 미니벨로들까지 모두 판매하는 멀지 않은 매장을 막내동생이 알려준지 몇달만에 벼르고 별러서 어제 전격 쇼핑에 나섰고, 매장에서도 1시간 가까이 고민하다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내가 선택한 건 하얀색 우베공.

벨로가 추천해준 미니벨로 가운데서 나름 마음속으로 점찍어둔 <루이가노, 우베공, 커브, 보드워크, 비테세> 가운데 매장에 가면 텔레파시가 통하듯 나의 단짝이 되어줄 자전거가 빛을 뿜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나의 우유부단함은 자전거를 살 때도 여지없이 걸림돌이 되었다.
하얀 우베공과 베이지색  보드워크 사이에서 좀처럼 선뜻 고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

일단 커브와 비테세는 몸판을 가로지르는 가로대가 옆에서 보면 넙적하여 내가 추구하는
가늘가늘하고 날렵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일찌감치 물망에서 제외되었고
루이가노 역시 매장엔 너무 비싼 모델만 있기도 했지만 핸들을 잡아보니 어쩐지 약간 무시무시한 느낌이랄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색깔도 진밤색과 검정색 뿐 -_-;;)

하늘색 우베공은 이미 벨로가 장만하였음을 알고 있기에 똑같은 걸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차피  하늘색은 수입할 때 작은 사이즈가 아예 들어오질 않았대고, 작은 사이즈로 물건이 있는 건 흰색, 분홍, 빨강 뿐 베이지색과 검정 따위도 아예 작은 크기는 이번에 수입조차 되지 않았다고 했다.
여기저기 팽배된 색깔의 성별화에 또 한번 분노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보드워크는 크기가 하나이고 은은한 베이지색이 마음에 들었으나 핸들 세로축이 전체적으로 은색이라는 점과 프레임에 새겨진 로고가 우베공보다 예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
ㅎㅎ 나 같은 자전거인생 초보에게 성능 따위는 얼추 비슷하다 여겨졌으니 일단 사양 비교는 뒷전이고 예쁜 게 더 중요하기 마련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게 선택의 고민을 준 문제의 보드워크와 우베공)

조카들까지 거느리고 가서 매장 사장님과 사모님을 오랜 시간 고문하듯 창고와 매장을 오간 끝에
결국 베이지색 보드워크를 살 것 같다는 사장님의 추측과 달리 나는 구름빛깔의 우베공을 골랐고
(다혼에서 베이지색은 sand, 흰색은 cloud라고 표현하는데 구름빛깔이라니 흰색보다 얼마나 멋진가!)
후련한 마음으로 박스를 뜯어 조립을 기다렸다.

고르기만 하면 금세 끝날 줄 알았던 자전거 구입은 그 뒤로도 꽤나 시간이 걸려, 지켜보는 우리는 계속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조립을 마치고도 내 키와 뒷굽이 높은 운동화에 맞춰 -_-;; 안장 높이를 정하고, 팔자 걸음을 걷는 터라 페달도 똑바로 제대로 못 밟는 나의 자세를 교정하기 위한 잠깐의 교육을 받으며 나는 진땀을 약간 흘렸다. ㅋㅋ

매장을 나와 잠깐 골목길에서 새 자전거를 타보았는데, 워낙 오랜만이기도 하지만 어찌나 페달이 휙휙 잘 돌아가고 금세 속도가 나는지 약간 걱정스러울 정도였으나 일단은 차에 고이 모셔 태우고 집으로 돌아와선
바퀴에 묻은 흙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실에 세워둔채 계속 감상중이다.

오늘 하필 비가 오지 않았다면 당장 홍제천변으로 달려갔겠지만
며칠 또 이렇게 뜸들이며 감상만 하는 묘미도 괜찮을 것 같다. ㅎㅎㅎ

참... 이름도 정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자전거를 사면 꼭 한글 이름을 붙이려고 생각했지만, 막상 정해둔 이름은 없었는데
어제 오늘 이리저리 찾아보고 고심한 끝에 <느루>라고 부르기로 했다.
<느루>는 "한꺼번에 몰아치지 아니하고 오래도록"이라는 뜻을 지닌 부사로
"하루라도 느루 쓰는 것이 옳고..."와 같이 쓰인단다.
다들 빠르게 살지만 나 혼자 느릿느릿 살아도 좋겠다는 바람도 있고 워낙 게으른 내 성향과도 잘 맞는데다
늘 일을 몰아쳐서 해치우는 그릇된 작업 습관을 반성도 할 겸,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누룽지'랑도 어감이 비슷해 이래저래 마음에 든다.
우베공이 어떤 이들에겐 속도계가 필요할 만큼 제법 빠른 자전거라지만 매연 뿜는 자동차에 비길까.
지금 같아선 나는 그냥 휘휘 바람을 가르는 느낌을 만끽할 정도로만 달릴 생각에 그저 흐뭇하고 행복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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