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제일 어린 조카의 유치원 재롱잔치에 다녀왔다. 작년에 이미 녀석의 끼가 얼마나 출중한지 깜짝 놀라며 감탄했기에 올해도 기대가 컸는데, 역시나 녀석은 요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울 엄마의 촌평을 그대로 빌리자면, "비싼 돈 주고 가서 본 뮤지컬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났다". 정말로 무대가 어찌나 화려하고 프로그램도 다양한지 주최측에서 심혈을 기울인 티가 팍팍 났다. 집중력이 5분, 10분도 안되는 꼬마애들을 데리고 얼마나 진을 빼며 연습을 시켰을지 선생님들의 노고도 노고려니와, 개인당 대여섯 개는 되는 출연분량에 따라 율동과 노래, 때로는 대사를 연습하고 무대를 오르내리며 매번 옷을 갈아입어야했을 아이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어휴... 감탄과 더불어 탄식도 절로 나왔다.

10여년 전, 첫조카가 유치원을 다닐 때만 해도 재롱잔치는 그야말로 유치원 강당에서 선보이는 원생들의 소규모 발표회였다. 의상이래봤자 흰티에 청바지, 한복 정도였고 동식물 역할 같은 특수의상도 유치원 선생님들이 약소하게 꾸며 만든 소품이었던 것 같다. 아, 그때도 운동복이나 태권도복을 입고 나와 시범을 보이는 순서는 있었다. 헌데 몇년 지나지 않아 둘째조카 때부터 재롱잔치가 점점 규모도 커지고 화려해지더니, 요샌 의상이며 조명이 가히 아이돌 그룹의 단체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를 위해 전문 시스템을 동원하고 체육관 같은 공연장을 빌려 '빵빵하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나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 역시 관람을 매우 즐겼기 때문이다. 유치원 재롱잔치의 목적이 아이들의 성취감과 발표력, 혐동심을 높이는 데 있다고 하니, 이왕이면 번듯하게 포장하고 싶은 원장님들의 마음도 알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꼭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의구심이 떠나질 않았다. 어차피 의상비며 소요비용을 학부형들이 부담해야하는 형편임을 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똑같이 무대의상비를 부담했는데, 자기 아이가 입고 나온 무대의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공연장 대관 형편 때문에 평일 저녁 6시로 잡힌 재롱잔치를 나로선 기쁜 마음으로 보러갔지만, 직장 사정상 참석 못하는 부모는 없을까 괜한 걱정을 했던 게 사실이다. 정말로 콘서트장에 오듯 형광글씨 요란한 피켓까지 만들어들고 집안 식구들 대거 동원해 온 가족들도 있는 반면, 그럴 형편이 안되는 집안도 당연히 있지 않겠나. 작년엔 우리도 피켓이랍시고 스케치북에 색종이를 오려 급조한 응원판을 들었으나, 올해는 쿨하게 스마트폰 전광판을 이용하기로 했고 편한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조카의 순서가 아니더라도 앙증맞은 아이들의 몸놀림이 너무 귀엽고 깜찍해서 웃음과 박수가 절로 나왔다. 특히 올해는 완전히 모든 출연 프로그램의 '메인'을 꿰차고 무대 중앙에서 제일 열심히 신나게 정확한 동작으로 춤과 연주를 보여주는 조카 덕분에 어깨까지 으쓱했다.

그.러.나. 까칠한 인간의 취향은 어디 가도 드러나는 법. 대체로 훌륭했다고 평할 수 있는 공연이건만 중간중간에 눈쌀이 찌푸려지는 순간이 몇번 있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싶은 시대착오적인 면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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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일본어 포스터를 올리는 건
일어에 익숙하신 이웃 블로거에게 진짜 영화 제목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인지 묻기 위해서다.
영어제목은 <Memories of Matsuko>인데 마츠코 앞에 또 다른 한자가 있는 것으로 봐서
수식어가 있는 모양이긴 하지만, 그것이 정말 '혐오스런'인지 궁금했다.
(헐....  찾아보니 혐(嫌)자는 맞다. 혹시 한국 배급사에서 관객 끌기용으로 붙인 건 아닐까 분노했는데 원래부터 있던 제목인가 보다. -_-;;)

암튼 영화 속에서 마츠코를 '혐오스럽다'고 평가하는 건 말년의 극히 일부만을 본
극히 일부의 의견일 뿐이기 때문이다.
혐오스럽다기 보다는... 암담하다.

영화는 유치찬란한 색감과 70년대 미국 뮤지컬 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악과 노래,
파란만장 신파의 형태를 띄고 있어서 영화보는 내내 저도모르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유발하는데, 묘하게도 계속 나는 기분이 몹시 나빴다.
어쩜 이 감독은 여자의 일생을 저렇게도 처절하게 망가뜨려놓고도 그걸 가족주의와 사랑로 포장하려든단 말인가!

이제부턴 스포일러 염려가 있으니 영화 볼 사람은 클릭하지 마시길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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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참 먹고 난 식곤증에 시달리다 졸음 쫒기의 일환으로 적어본다. -_-;;
(다 쓰고 나면 부디 잠이 깨길..)
이제는 끝나버린 제9회 여성 영화제에서 본 마지막 영화 두 편.
<스파이더 릴리>와 <스무살이 되기까지>

전혀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남은 표와 시간 분배와 보고 싶은 영화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영화를 고르다 보니 두 영화를 고르게 되었는데
영화의 느낌은 전혀 달랐지만 내눈엔 비슷한 코드가 감지되었다.
제목에도 적었듯이 나를 둘러싼 가족과 성장, 그리고 첫사랑에 관한 영화라는 것.

이번엔 놓쳤더라도 나중에 개봉할 때 찾아보거나 (<스파이더 릴리>는 5월쯤 개봉한다는 후문^^) 어둠의 경로로 찾아볼 분들을 위해 이제부턴 more 기능으로 해야할 듯.
스포일러는 최대한 피해보겠지만, 모든 영화 리뷰는 스포일러 요인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므로 알아서들 보시라. ㅋㅋ





참참참...
<스파이더 릴리>를 볼 때도 거의 빈좌석이 없었는데
<스무살이 되기까지>는 완전 매진이었다면서 주최측에서 깜짝 이벤트로 선물을 나눠주었다.
물론 재수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내가 대여섯 명 뽑아 주는 이벤트에 당첨될 리 없었지만
9회째인 여성영화제가 그토록 성황리에 매진을 기록하는 걸 보니 주최측이 아님에도 몹시 뿌듯했다.
내년엔 바야흐로 10주년째. 올해는 겨우 3편으로 마감했지만 내년엔 좀 더 미리미리 계획적으로 영화를 골라 좀 더 많은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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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조각들

삶꾸러미 2007. 4. 9. 01:26

화창한 일요일, 간만의 외출.
출퇴근 하며 집앞 앵두꽃과 옆집 벚꽃, 목련,  온동네 개나리가 다 핀 건 알았지만
정작 온 거리가 꽃밭이라는 데 조금 놀라며
꽃처럼 화사한 사람들 틈에서 내가 좀 우중충하다는 느낌에 움츠러들었다.
찬란한 햇살 속에 혼자서만 우중충하다는 자의식은 순전히 4개월째 방치한 대책없는 머리칼 탓이렸다. 어서 손봐줘야 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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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영화제 영화를 드디어 한 편 봤다.
행복의 적들. Enemies of Happiness.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역시 인간의 삶은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는 걸 실감한다.
총탄이 난무하는 남성중심사회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치에 뛰어든 젊은 여성의 삶이야 오죽하랴.
1시간만의 짧은 영화에서 참으로 치열한 삶의 진정성을 본 듯하다.
몇년 째 암살의 위협을 받으며 최초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되고, 여전히 국회 안에서도 민주주의와 여권 보호를 위해 압제와 편견에 맞서 싸우고 있는 그녀는 이제 겨우 29살이라고 했다.
게다가 상영이 끝나고 뜻하지 않게 다큐멘터리 주인공 말랄라이 조야(www.malalaijoya.com)와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허울좋은 친미정권은 민주화를 표방하지만 정권을 쥔 자들은 여전히 범죄자 집단과 군벌이고
아직도 어린 소녀들에 대한 강간과 학대가 자행되고 있으며
말랄라이 조야에 대한 죽음의 위협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단다.
자기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민중의 행복을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박수가 절로 나왔고, 조야의 신변보호와 정치활동을 위한 기금모금을 한다는 말에 당연스레 지갑이 열렸다.
저 위 사이트로 들어가면 달리 기부 방법이 있다고 하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참여바람 ^^

 아참.. 벨로와도 심히 공감했지만, 자원봉사자인지 고용된 통역사인지 모를 사람이 어찌나 우리말도, 영어도 핵심을 짚어가며 잘 정리를 해주는지 완전 감동이었다.
이상한(?) 색깔이 대비된 튀는 짧은 스커트를 입고서 앉음새도 민망한 바람에 속으로 대뜸 못마땅해하고 있었는데, 알게 모르게 늘 겉모습/외모 지상주의에 편승하는 내가 민망하고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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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아트레온 앞을 오가며 올해도 느낀 건
영화제 전용 티켓박스가 있는 곳 앞의 쉼터에 유독 흡연 여성들이 많다는 것.
(다른 땐 주로 쌍쌍이 닭살을 떠는 연인들이 터를 잡고 앉아있는 곳이다)
그리고 행사장엔 늠름한 장정 같은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리땁고 우아한 행사요원들도 많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흡연을 하고 성별 차이에 대한 반발을 겉모습으로 하는 이들이 여성주의 문화를 대변하는 건 아닌가 좀 걱정스러웠다.
그건 내가 학교를 다니던 80년대에도 그랬기 때문...
이젠 좀 더 자연스러워져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아 물론, 구태의연한 내 편견의 잣대로 그렇게 보인 것뿐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나 역시 늘 경험에서 비롯된 불만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반항적 여성주의에서 탈피해 좀 더 견고한 사고체계와 대안을 내세울 수 있는 제대로 된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은' 하는데 늘 생각에만 그치는 게 문제다.
행동하지 않는 자는 불만을 품을 자격도 없다고 했거늘...

아무려나 영화제가 끝나기 전에 몇 편 더 볼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기를 빌고 있다.
언제나 즐거운 벨로와의 데이트에 겸해서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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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부쩍 아기옷을 사러 가는 일이 잦았다.
출산율 저조 시대라고 언론에서 떠들어대긴 하지만 내 주변엔 조카들도 집집마다 둘씩이고
결혼한 지인들은 어김없이 신기하게 예쁜 아기들을 세상에 내놓고 있기 때문.

아기 옷을 사러 가면 매장에서 제일 먼저 묻는 질문이 정해져 있다.
몇 개월이나 됐느냐는 것, 아니면 여자 아기냐, 남자 아기냐.
그래서 성별을 밝히면 아주 당연하게 남녀 아기에 따라 구분된 색깔의 옷을 보여준다.
분홍색 아니면, 하늘색.
나처럼 색깔로도 성차별하는 걸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을 위해
다행히 흰색과 연노랑색, 가끔 연두색도 눈에 띄지만 무늬마저도 확연한 성차별을
강요한다.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열기구 따위는 남자 아기 옷인 푸른 계통에
꽃, 과일, 나비, 인형, 구두 따위 모양은 분홍 계통의 옷에 들어 있으며,
중성이라 할 수 있는 곰돌이나 토끼 따위의 무늬는 친절하게(!) 하늘색과 분홍색 두 가지가 모두 갖춰져 있기 일쑤다.

물론 나는 하얀색이나 노랑색 같은 성차별 없는(?) 색을 주로 선호하고
가끔은 일부러 여자 아기에게 자동차 그림이 들어간 하늘색 옷을 선물 하기도 하고
남자 아기에게 자주색 꽃무늬 반바지를 선물하는 등의 파격을 부린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옷을 입은 아기들의 성별을 주변에서 헷갈려하기 때문에 엄마들도 난감해 하고 혹시 모를 혼돈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여자 아기의 민대머리 같은 이마에 레이스 머리띠로 표시를 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어쩌다가 푸른 계통은 남자를, 붉은 계통은 여자를 무조건적으로 상징하게 된걸까?
지금은 초등학생이 된 큰 조카 정민이는 원래 분홍색을 좋아하는 핑크 공주이긴 했지만
사촌에게 물려받은 남자 아이 옷도 아무렇지 않게 입었던 터라 
다른 계통의 색에 특별한 반감은 없었는데,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초록색 옷을 입고 갔다가 같은 반 친구들이 남자 옷을 입었다고 놀렸다며 그 옷을 다시는 입지 않으려고 했었다. ㅡ.ㅡ;;
그때 나는 몹시 분개하면서
겨우 5, 6살밖에 안된 아이들이 색깔로도 성차별을 하게 만든 몰상식한 어른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 뒤로도 계속 온 사회가 강요하는 성별 색깔론을 우리 조카들에게만은 어떻게든 고착시키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악순환은 계속되는 법이라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어린이날에 세발 자전거 하나를 사려고 해도,
짙은 파랑에 로보트 장식이나 자동차 장식이 거칠게 들어간 모양 아니면
공주나 바비인형 같은 그림이나 분홍토끼가 그려진 분홍색과 빨간색 자전거가 양자택일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성별 다른 동생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이왕이면 중성적인 느낌의 자전거나 장난감을 사려고 하면 선택의 폭은 몹시 좁아진다.

이런 말도 안되는 성별 색깔론의 기저엔 하나라도 상품을 더 팔려는 상업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성별 같은 형제자매를 키우는 집은 몰라도, 성별 다른 남매를 키우는 상황에선 색깔로라도 옷이며 장난감을 '차별화'해야 마지못해 부모가 소비활동을 더 하게 될 터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상업주의에서 비롯된 성차별 색깔론이 계속해서 그 아이의 사고방식을 좌우한다는 게 아닐까.
그림에 재능과 관심이 많은 9살된 우리 조카가 며칠 전에 그간 잘만 쓰던 그림물감과 파레트 겉포장이  '남자색'이라서 아이들이 놀리기 때문에 학교에 가져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다 제 부모한테 매를 맞았던 사건과 같은 일들이 앞으로 또 안 벌어질 리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서도 성별의 차이는 존재한다고 한다.
'대개' 여자아이들이 인형놀이와 소꿉놀이 같은 역할 놀이를 좋아하는 반면
남자아이들은 블록이나 공룡, 자동차, 로보트 같은 난감을 더 좋아한다는 식으로.
그 때문에 남자아이들의 공간감각능력이 상대적으로 더 발달하는 반면
여자아이들은 감수성과 섬세한 언어 능력 따위가 더 발달한다지.
하지만 그건 '대략적인' 판단일 뿐, 그 안에도 분명 개인차는 존재할 것이고
오히려 그렇게 뭉뚱그린 일반화와 획일화의 틀 때문에 아이들이 제대로 타고난 성품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자동차와 로봇을 갖고 놀기를 유독 좋아하는 여자아이나
인형놀이와 소꿉놀이를 몹시 좋아하는  남자아이를 단정적으로 동성애와 결부시키는 섣부른 오해도 종식되어야 할 것 같다.
나 혼자만의 경험을 확대해서 진리처럼 떠벌일 생각은 없지만,
어째뜬 난 어려서도 커서도, 눈껌벅이는 값비싼 인형들이 무섭고 먼지 풀풀 나는 곰돌이 인형 따위를 귀찮아 했었다. (그래서 내가 모든 애완동물을 싫어하게 됐다고 보는 지인들도 있긴 하다;;) 어려운 시절이라 동생들이 값비싼 장남감을 선물 받는 경우도 지극히 드물긴 했지만, 가끔 동생들 몫으로 자동차나 총 따위가 생겨나면 난 그 누구보다 신이 나서 '부릉 부릉' '빵야~ 빵야~'를 외치며 놀기도 했단 말이지.

저 유명한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의 아기가 태어나 처음 공개된 사진 때문에
세계 언론이 떠들썩할 때, 나는 그 아기가 입은 옷이 여자아기임을 상징하는 상투적인 분홍색도, 아기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색도 아닌 중성적인 '회색'임을 지적하며
역시 '안젤리나 졸리답다'고 했던 기사가 잊혀지질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회색 신생아 옷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배냇저고리를 떠올려 보자. 모두 흰색 아니면(염료가 안 들어가 가장 아기 피부에 순하다던가) 연한 분홍, 하늘색, 연노랑이다.
그나마 조금 큰 아기들의 속옷이나 완연한 겉옷엔 회색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거다.

아무튼 이번에도 여자아기 옷을 사면서
나는 흰색 내복과 함께 결국 예쁜 디자인 때문에 ㅠ.ㅠ 끄트머리에 노랑 레이스가 달린 꽃분홍색 바지와 꽃무늬 프린트가 들어간 셔츠를 사고 말았다.

색에는 성별이 없노라고 목청 높여 부르짖으며, 편견에 물들지 않은 아기들에게만은
그런 어른들의 잣대를 강요하지 말자고 주장은 하지만
교묘한 상업주의가 파놓은 함정에 매번 이렇게 덜컥 자진해서 걸려든다.
몹시 씁쓸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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