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좋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10 인사하는 버스기사 아저씨 18
  2. 2008.10.30 버스 모험 14
  3. 2006.12.18 버스가 좋아 5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중교통수단은 누가 뭐래도 버스!
과거 내가 애용하던 노선들을 죄다 없애거나 바꿔버린 어느 재수없는 놈 때문에 간간이 화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일부러 버스타고 나가야 이용할 수 있는데다 수많은 계단이 무섭게 버티고 있는 지하철과 달리 2분만 걸으면 동네 버스 정류장이 있어 간선버스, 지선버스, 마을버스, 광역버스(물론 이 동네가 외져서 광역버스는 몇 정거장 나가야 탈 수 있다만;)까지 웬만한 동네까지 구석구석 안가는 데가 없으니 얼마나 편리한지.
게다가 지하철은 잠깐씩 나타나는 지상역 이외엔 줄곧 시커먼 지하에서 돌아다녀 밖을 내다볼 수도 없이 답답하지만, 버스는 앉든 서든 한가로이 창밖으로 세상 구경까지 할 수 있으니 심심할 새도 없다. 게다가 용인, 성남, 일산 같은 신도시에 갈 때도 지하철보다는 새빨간 색깔이 호화로운 광역버스가 훨씬 빠르다! 물론 가끔 길이 막혀 엉뚱하게 진을 뺄 때도 있지만 만인을 마주보며 앉아야 하는 지하철 좌석보다 한 방향으로 놓인 버스 좌석에서 꾸벅꾸벅 조는 묘미는 그야말로 달콤하기까지. ^^

버스예찬자이긴 해도 왕비마마 전용 기사이기도 한 두문불출 인생이라 종전엔 버스를 탈 일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요샌 요가강습을 받으러 다니느라 이틀에 한번꼴로 계속 버스를 이용하며 새삼 느낀 게 있다. 과거에도 승객이 탈 때 "어서오세요"라거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기사분들이 더러 있었고, 그게 낯설고 뜻밖이라 선뜻 답인사도 못한 채 우물쭈물 버스 뒤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헌데 요즘 버스를 타보니 인사를 건네는 기사분들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 며칠 전엔 탈 때마다 "어서 오세요"를 외치는 것뿐만 아니라 내리는 승객에게도 일일이 "안녕히가세요"라고 인사하는 기사 아저씨를 만났다. @.@
중학교 때부터 나는 버스 기사 아저씨들을 존경의 눈초리로 쳐다보았었다. 특히 내가 다니던 학교는 대단히 꼬불꼬불한 개천변길을 한참 지나 있는 곳이었는데, 도저히 차문이 닫힐 것 같지 않을 만큼 만원인 버스도 기사 아저씨의 놀라운 곡예운전 몇 바퀴를 거치면 이리저리 쏠린 승객들 사이에 또 다시 공간이 생겨났다. 가끔 복잡한 시내로 접어들 때 넓은 길이 차로마다 꽉꽉 막혀 있어도 버스 아저씨는 귀신같이 제일 잘 빠지는 차로를 골라 아슬아슬 끼어들기를 했다. 버스 전용차로가 생긴 다음엔 말할 것도 없이 천하무적처럼 쌩쌩 달려 꼬물꼬물 기어가는 자동차와 택시들을 비웃었다.
중고등학교 때 내가 애용하던 버스는 <오둘둘>과 <8번> 버스였는데, 종점이 까마득히 멀어 우리 학교와 동네 주변에선 늘 배차시간에 쫓기는 모양인지 두 노선버스 모두 레이싱을 하듯 달렸으므로, 가뜩이나 길이 꼬불꼬불해 지금도 안전을 위해 손잡이를 잡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그 구간에서 우리는 손잡이 잡지 않고 누가 오래 버티나 <빵빠레 내기>를 하며 까르륵대다 순식간에 집과 학교에 도착했었다.

지금도 그 기다란 버스를 요리조리 운전하며 앞뒷문 열랴, 다인승 인원 확인해주랴, 안내방송 틀랴, 거스름돈 바꿔주랴, 배차시간 맞추랴, 멀티플레이어도 그런 멀티플레이어가 없을 정도로 바쁠 기사분들이 타고 내리는 승객에게 인사까지 한다니! 물론 친절히 건네는 인사가 기분 나쁠 리는 결코 없다. 요샌 나도 익숙해져서 인사를 건네는 기사 아저씨를 만나면 "네"라거나 "안녕하세요"라고 대꾸할 수 있게 됐는데, 혹시라도 대꾸할 순간을 놓치면 민망하다. 대답없는 벽에 대고 대화를 하듯 좀처럼 대꾸하는 승객이 없는데도 계속 인사를 외치는 기사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인사를 건네는 기사분들이 많아진 걸 보며 요즘 버스회사들이 친절을 중요시하나보다 여겼더니 그도 그렇지만 버스운행 실태를 감시하는 암행조사단 같은 게 있단다. 몰래 난폭운전 여부와 정류장 정차여부, 친절도 따위의 점수를 매겨서 인사고과에 반영한다나. 가끔 노인 승객이 넘어질 뻔할 만큼 너무도 난폭한 운전을 하거나 계속해서 휴대폰 통화를 하며 허투루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를 봤을 땐 버스에 비치돼 있는 불편 신고 엽서를 써보낼까 할 정도로 화난 적이 있으니 가끔 회사에서 실태를 조사할 필요른 느끼긴 하지만, 단순히 감시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친절은 별로 달갑지가 않다.
실태 조사기간 동안만 반짝 인사하는 시늉 따위가 무슨 소용이람. 나야 곡예운전이든 말든 빠르게 씽씽 달리는 걸 선호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최대한 안전하게 운전하며 타고 내리는 승객들 조심스레 배려하는 게 겉치레 인삿말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한동안 하차벨을 누른 뒤 버스가 설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다가 정차 후에 일어나 <안전하게> 내리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던 적도 있었지만, 한국인들의 성질머리가 대개 급하기도 할뿐더러 하차벨을 누른 뒤 얼른 미리 뒷문 앞에 대기하지 않으면 기사분이든 나머지 승객들에게든 구박을 받을 것 같아서 한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 정차할 때까지 문앞에 서 있는 사람이 없으면 정류장에 섰다가도 금방 가버리지 않나? 더욱이 내릴 때도 매번 버스카드를 찍지 않으면 안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끝까지 좌석에서 뭉기적거렸다간 내리는 뒤통수에 곱지 않은 시선이 여럿 꽂힐 것 같다.

요즘 새로 도입되고 있는 시내버스는 차체가 낮고 승하차 문 바닥에 연결판이 설치되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타고 내릴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어떤 버스에는 휠체어 장애인의 승하차시 1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다른 승객의 배려를 바라는 안내문이 붙어있기도 하던데, 나는 차츰 이 나라도 변해가나 싶어 반갑다가도 과연 배차시간에 쫓기는 기사분이나 어디서든 <빨리빨리>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이 얼마나 협조해줄지 걱정스러웠다. 아직 그런 저상형 버스를 타고 내린 장애우의 시승담을 어디서도 본 적 없지만, 내릴 때는 몰라도 어설픈 내 눈썰미로는 앞문과 툭 튀어나온 앞바퀴 위 짐칸 때문에 정말로 휠체어가 버스에 오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다시 현실성 없는 생색내기용 디자인은 아니었기를 바랄 뿐.

어쨌거나 승객에게 인사하는 버스 기사 아저씨들의 숫자가 앞으로 더 많아질지 아닐지, 그에 답하는 시큰둥 승객들의 변화는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내 생각 같아선 그냥 서로 뻘쭘한 승하차 인사는 건너뛰고 빠르고 안전한 버스 운행에만 신경써주면 고맙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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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모험

추억주머니 2008. 10. 30. 20:48

내가 공식적으로 기억하는 최초의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지만, 가족들의 증언과 놀림으로 각인된 어린시절의 장래희망은 버스차장이었단다(참고로 한살 어린 나의 큰동생의 꿈은 버스 운전수였고, 나와 둘이 세트로 버스놀이를 많이 하고 놀았다고 했다).
나와 세대차가 많이 나는 이들은 그 존재를 알지도 못하겠지만, 버스 중간에 달린 문앞에 섰다가 정류장마다 오르내리며 차비도 받고 만원버스에 사람들을 밀어올리기도 했던 자주색 유니폼에 빵떡모자를 실핀으로 꽂은(주로 양쪽으로 땋은 갈래머리거나 단발머리였다) 버스 차장이 되겠다고 했다니 얼마나 웃긴지. 버스 외부에 달린 볼록거울도 없고 하차벨도 없던 시절, 버스 차장은 차체를 탕탕 두번 두들기며 "오라이!"라고 외쳐 운전수에게 출발을 알렸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둘 이상 데리고 탄 승객이 있으면 자기가 대신 한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버스 계단을 내려주기도 했다.
버스 차장이 되고 싶다고 얘기했던 건 정말로 생각나지 않지만, 버스차장이 아직 어려 행동이 굼뜬 나나 큰동생 중에서 가까이에 있는 아이를 덥썩 안아 허공을 날듯 버스에서 내려주었던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무서움 많은 나는 대부분 거친 손길로 내 허리를 안아 붕 날리듯 버스 밖으로 내려주는 걸 싫어했는데, 왜 차장이 되겠다고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알 것도 같다. 어린 나의 눈에 그저 버스가 멋있고 근사해 보였을 것이다. 
어쨌든 국민학교 시절 "커서 뭐 될래?"라고 묻는 어른들의 질문에 암팡지게 "선생님이요!"라고 대답하곤 했던 나에게 삼촌과 고모들은 버스 차장 된다더니 웬 선생님이냐며 버스 운전수가 되겠다던 큰동생과 나를 한꺼번에 놀려댔다.

동생의 버스 운전수 희망이 언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 이내 버스차장이란 직업의 지난함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차비를 <삥땅>치는지 감시하느라 근무가 끝나면 알몸수색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는 버스차장들의 항의시위 사건도 뉴스에 종종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똑같이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에 또래 친구들에게 차비를 받고 여린 몸으로 만원버스 문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온몸으로 사람들을 받치고 있는 모습도 안쓰러웠다. 그래서 버스 차장이 되겠다던 나의 소망은 재빨리 꼬리를 내렸고 다만 버스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애정만 오래도록 남았던 모양이다.
많이 흔들리거나 기름냄새가 심한 버스에서 멀미를 해 샛노란 얼굴로 중간에서 내려야 하거나 엄마가 준비하고 다니던 비닐봉지에 구토를 한 기억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나는 어려서도 지금 만큼이나 버스 타는 걸 좋아했다. 제일 처음 혼자 버스를 탄 게 몇살 때였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암튼 혼자 타는 버스를 나는 대단한 모험처럼 즐겼고 멀지는 않지만 노선이 기묘해 꼭 한번은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할머니댁에 주말마다 숙제를 챙겨들고 가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이 나의 낙이었다.
다른 교통수단보다 버스가 훨씬 좋다는 이야기를 언젠가도 적어놓았지만, 고등학생 땐 심심할 때마다 친구들과 회수권 한장으로 떠나는 버스 종점여행이 엄청 재미있고 신나는 일탈이었다. 그땐 버스노선도 워낙 길어서 왕복하려면 3시간즘 걸리는 버스도 있었는데, 그 오랜 시간 조잘조잘 떠들며 창밖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는 늘 신났다.

그러나 버스 종점여행에 맛을 들이기 이전에, 한번은 버스를 잘못 타 크게 식겁한 적이 있었다.
중학생 때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마지막날엔 꼭 단체로 영화나 연극관람을 했었는데 그날은 마침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난 뒤였다. 친구들과 나는 당시 유행했던 <잘생긴> DJ가 나오는 떡볶이집엘 가느라 대학로에서 성신여대앞 돈암동까지 걸어갔다. 차비까지 돈을 톡톡 털어 모은 돈으로 떡볶이와 튀김 따위를 사먹은 우리들은 내가 여유 있게 갖고 있던 회수권을 한장씩 나눠가진 뒤 각자 집으로 향했다. 돈암동에서 집이 멀지 않은 친구들은 걸어가기로 했고 그 외의 친구들과 나는 회수권을 한장씩 손에 들었다. 가끔 친구들을 따라 돈암동에 떡볶이를 먹으러 간 적은 있었지만 여전히 낯선 그 동네에서 불안해 하는 내게 친구들은 타야할 버스 두 가지를 가르쳐주고는 총총이 제 버스가 오는 순서대로 가버렸다. 그런데 친구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내가 타야할 버스는 둘 다 중간에 노선이 갈라져 버스 앞에 별도로 붙여놓은 표지판을 확인하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는 사실이었다. 수중에 회수권도 딱 한장밖에 없는 주제에, 그때도 잘난척 하는 아이였던 나는 버스 운전기사에게 방향을 묻지도 않고 늘 학교앞에서 보던 버스 번호를 보자마자 냉큼 올라탔다. 

그러나 내가 탄 버스는 예상하던 동네로 가지 않았다. 버스 노선이 바뀌었나보다고 애써 위로하며 좀 지나면 낯익은 길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질 않았다. 급기야 나는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어느 아주머니께 이 버스가 **동 가는 거 아니냐고 물었고, "하이고, 버스 잘못탔네!"라는 청천벽력같은 대답을 들었다. 이미 나는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땐 당연히 버스 안내방송도, 버스노선도 같은 것도 없었다. 이미 버스 차장 제도도 없어진 뒤였다)
때는 깜깜한 밤이었고 내 수중엔 회수권도 땡전 한 푼도 없었다. 대학생 때도 종종 해지는 시간이 통금시간이었던 내가 겨우 중학생 때 밤중귀가라니. 난생 처음 간 동네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어정거리며 느꼈던 낭패감과 공포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나는 엉엉 울며 일단 건널목을 찾았다. 건널목 앞 구멍가게엔 빨간 공중전화가 매달려 있었다. 일단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 내 상황을 알려야한다고 생각했고, 훌쩍훌쩍 울며 가게 주인에게 다가가 돈이 없는데 집에 전화를 걸어야하니 20원(10원이었던가?)만 빌려달라(언제 갚겠다고?)고 했다. 가게 주인은 나를 째려보고는 험악한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 유리 미닫이 문을 탁 닫았다.
서러움이 복받쳐 엉엉 울며 건널목을 건넌 나는 어서 차비와 전화비를 구걸해야 한다는 생각과 어떻게 그 돈을 마련할 것인지 절망감 사이에서 한동안 울기만 했다. 행인도 거의 없던 캄캄한 밤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울고 있는 교복 입은 여중생이라니. 누가 봐도 가엾긴 했던지, 멀리서 다가오던 아줌마가 나를 빤히 관찰했다. 나는 속으로 이 아줌마에게 어떻게든 사정을 설명하고 돈을 구걸해야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아 그쪽을 흘끔거리며 계속 울고만 있었다. 다행히도 그 아줌마가 왜 우냐고 말을 걸었고, 나는 웅얼웅얼 버스를 잘못 탔는데 차비가 없다고 고백한 뒤 또 한참 끄억끄억 울어댔다.(내가 울음끝이 좀 질기다^^;)
착한 그 아줌마는 당장 지갑을 열어 백원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며 집에서 엄마가 걱정하겠다고 혀를 찼다. 나는 전화부터 해야하는데 전화할 돈도 없었다고 흑흑 흐느꼈고, 아줌마는 길 건너편 공중전화를 가리키며 전화부터 하라고 타일렀다.
당시 학생 차비는 50원쯤 되었던 모양으로 백원이면 차비와 전화를 걸고도 남는 돈이었다. 그때 백원이 지금 천원보다도 가치가 높았다는 얘기다. 암튼 나는 그 쌀쌀맞은 가게 주인에게 다시 가서 백원을 내밀며 전화걸게 잔돈을 바꿔달라고 말하며, 속으로 가게 주인이 나를 의심해 그 돈을 훔쳤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그래서 돈을 빼앗으면 어쩌나 마구 떨었다. 다행히 매몰찬 가게주인은 말없이 잔돈을 바꿔주었고, 내가 공중전화에 매달려 또 엉엉울면서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이야기를 엿듣는 눈치였다.

밤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던 딸이 대뜸 전화를 걸어 엉엉 울며 버스를 잘못 타 어딘지도 모르는 동네에 내렸다고 하자, 엄마는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갈테니 얼른 버스를 바꿔타고 오라고 당부했다. 차비도 없어서 길 가는 아줌마한테 얻었다는 말에 엄마는 푹 한숨을 쉬었을 뿐 야단을 치지는 않았다.
드디어 버스를 다시 타고 몇번이나 운전기사와 주변 승객에게 **동 가는 거 맞느냐고 묻던 나는 익숙한 길과 동네가 나타나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엄마가 눈에 들어온 순간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춘추복을 입기엔 아침저녁으로 약간 쌀쌀한 날이었던지 엄마는 스웨터를 팔에 걸친 채 기다리다, 버스에서 내려 꺼이꺼이 우는 나에게 얼른 옷을 입혀주었다. 엄마 팔짱을 끼고 집으로 돌아오며, 친구들과 돈을 모두 털어 떡볶이를 사먹느라 여유 있던 회수권을 나눠가졌다는 사실을 실토했음에도 나는 전혀 야단을 맞지 않았고 다만 앞으로는 비상금으로 천원짜리 하나랑 회수권 10장을 꼭 갖고 다니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다음날 내 모험담을 들은 친구들은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나는 정말로 간담이 서늘해졌던 경험이었다.

지금 계산해보니, 내가 처음 홀로 버스를 탔던 건 5학년때부터인 것 같다. 셋방을 전전하느라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같은 동네에서 집을 옮겨다녀야 했던 그 시절, 5학년 무렵엔 학교에서 걸어다닐 수 없어 버스를 타고 대여섯 정거장 정도 가야하는 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7살에 입학한 나는 당시 11살이었다.
그런데 올해 11살이 된 정민공주도 얼마 전 버스 모험을 시작했다.

만날 제 엄마 차를 타고 편히 오던 우리집엘 혼자서 버스를 타고 오는 것은 올들어 시작된 정민이의 소망이었다. 제 엄마와 버스를 타고 오는 걸 일부러 몇번 연습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달 처음으로 정민이는 영어공부를 할 책이 담긴 보조가방을 들고 첫 홀로 버스 여행을 시도했고 결과는 대체로 성공이었다. 중간에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 하는데, 얼마전 버스 노선번호 뒤에 A/B 식별제가 시행된 후라 주변 아줌마에게 물어 확인한 뒤에 버스를 탔다고 했다. 
비록 한 정거장 전에 내리는 바람에 한 정거장은 걸어오다 마중나간 나와 상봉하긴 했지만 정민이도 나도 몹시 뿌듯했었다. 
문제는 두번째로 오던 날이었다.
갈아타는 버스정류장에서 정민이는 하필 나에게 110번 A를 타는 것인지 B를 타는 것인지 전화로 물었고, 나는 너무도 확신에 차서 A라고 가르쳐주었다. -_-;;
그러나 20분쯤 뒤 정민이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고모, 이 버스 이상한데로만 가는데? 이번 정류장이 경동시장이고 다음이 동대문 구청이래."
헉... 내가 잘못 가르쳐줬던 거다! 운전기사 아저씨한테 한바퀴 돌면 **동엘 오는지 물어보고 아니면 건너가서 갈아타라고 일러준 뒤 나는 초조하게 마음을 졸였다.
중학생이면서도 낯선 동네에서 더럭 겁을 집어먹었던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다행히 정민이에겐 돈도 넉넉하고 휴대폰도 있으며 시간도 대낮이었으니 나보다 나은 상황이었지만, 역시나 어린 정민이는 겁이 난다며 전화를 끊지 말고 계속 통화를 하자고 했다.  
어리버리한 고모 탓에 결국 정민이는 길을 건너 버스를 타고 처음 출발했던 기점으로 되돌아가느라 한시간이나 허비한 뒤 무사히 110번B 버스를 탔고, 정류장도 제대로 내려 버스정류장에서 멍청한 고모와 상봉했다. 과거의 나와는 상황이 꽤 다르긴 하지만, 버스에서 내리던 정민이는 약긴 긴장된 표정이었다가 나를 보며 이내 생글생글 웃었다. 그때까지 1시간 반동안 부주의한 정신머리를 자책하며 정민이만큼이나 전전긍긍 조바심을 쳤던 내가 더 감격스러웠지만 물론 울진 않았다. ㅋ
그러고 나서 지난 월요일. 세번째로 버스모험을 시도한 정민이는 출발할 때도 도착해서도 전화 한번 안하더니 대뜸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왜 마중을 안 나왔느냐고 따졌다. ^^

정민이가 5살 때였나, 버스는 가난한 사람들만 타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일부러 단둘이 버스를 타고 시내 책방에 갔던 적이 있다. -_-;;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구경하는 재미와 파란 줄이 그어진 버스전용차선의 의미, 주차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비싼 택시비를 낼 필요도 없이 빠르게 목적지에 갈 수 있는 버스의 묘미를 제대로 설명해주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정민이는 혼자서 버스를 갈아타고 고모네 집에 오는 걸 대단한 재미로 느끼는 눈치인데, 그게 장하고뿌듯하긴 해도 여전히 나와 울엄마는 공주의 홀로서기가 불안하다. 그나마 밤중에도 홀로 버스타고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땐 10살쯤부터 스스로 다 컸다고 잘난체 했었지만, 조카를 보면 아직도 마냥 애기 같고 불안하다. 동생부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가 우겨서 정민이에게 휴대폰을 사준 것도 그 때문이다. 세상이 좀 험악하고 불안한가! 아이가 셋이라 다섯식구가 가끔 택시를 탈 때도 눈치를 봐야했고, 웬만해선 우르르 버스를 타고 다녔던 나의 어린시절과 달리 조카들은 태어나자마자 제 아빠가 모는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건 지극히 드물기 때문에 요즘 아이들의 홀로서기는 더더욱 느리고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조카들이 자라는 걸 지켜보며 세상은 달라졌어도 많은 것들이 되풀이됨을 느끼며 참 신기하다.
짜증스러워 귓등으로 흘렸던 어른들의 잔소리를 지금은 내가 하고 앉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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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좋아

추억주머니 2006. 12. 18. 15:51
약속시간에 대한 압박감과 상관없이 대중교통수단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버스를 택하는 사람이다.

우선 지하로 내리락 오르락해야 하는 수많은 계단들이 제일 싫고
(나의 계단 공포증 역사에 대해선 나중에 글을 쓰든지, 어딘가 올린 글을 퍼오든지.. 하겠음 ㅜ.ㅜ)
지하 특유의 탁한 공기랄까, 꽉 막힌 느낌이 싫고 (밀실 공포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또 목적지까지 끊임없이 밖을 내다보며 어딘지 정류장을 확인해야 하는 것도 싫고
(지하철 고수들은 휴대폰 알람 맞춰놓고 잠도 잔다는 걸 알지만! 나 같은 하수는 좀 멀다 싶어 책 따위를 본다거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다가 걸핏하면 정류장을 지나치기기 일쑤다)
환승역에서 우르르 떼거리로 내리고 오르는 인간들 물결에 휩쓸리는 것도 싫다.
왠지 나는 꼭 넘어져 밟힐 것만 같은 기분;;;

아무튼...
나는 아주 어렸을 때 매연 냄새 때문에 멀미를 할 때를 지나고선
계속 버스가 좋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시험 끝난 날이라든지, 토요일에 특별활동으로 고궁이나 박물관 따위엘 간 날이면 친한 친구들이랑 '버스여행'이란 걸 하며 즐거워했다.
말이 여행이지, 사실은 그냥 노선이 제일 긴 버스를 골라잡아 타고 맨 뒷좌석에 주르륵 앉아 수다를 떨며 종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뿐인데도 그땐 그게 어쩌면 그리도 재미있고
뿌듯한 '여행'이었는지 모른다.
달콤한 초콜릿을 나눠먹으면서, '마이마이' 따위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원래 이 이름이 이리도 길었던가?)로 음악을 들어도 좋았고, 그냥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가 틀어놓은
'뽕짝' 음악에 맞춰 마구 흔들리는 버스 차체에 몸을 얹고 까르륵 대는 것도 좋았다.

지금은 버스 타고 다니는 일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버스에 올라 맨 뒤에서 바로 한칸 앞에 있는 하나짜리 의자에 앉아 창밖 거리를 내다보거나,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묘미는
여전하다. 혹시 백일몽에 잠겼더라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내다보면 어딘지 곧장 알 수 있는 낯익은 느낌이 무엇보다 나에겐 편안함을 주는 듯하다.
딴짓하다 말고 과연 다음 역이 어디일지 깜깜한 굴안에서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는 지하철의 느낌과는 얼마나 다른지!

그러고 보니 서울 시내버스 디자인도 참 많이도 바뀌었다.
전 모 대통령의 부인이 보라색을 좋아한대서 바뀌었다는 아주 탁한 보라색 시내버스는  
참 혐오스럽다고 여겼는데, 정말로 보라색으로 바뀐 이유가 영부인의 개인적인 취향이었던 걸까 새삼 궁금하군.
아무튼... 내 개인적인 취향으론 연노랑 바탕에 샛노란 색이 띠처럼 둘려지고 빨간색으로 노선번호가 동그랗게 그려졌던 때가 제일 예쁜 것 같다. ^^

이번에 명박이놈이 바꿔놓은 버스는 일단 나에게 오랜 동안 혼돈을 주기도 했고
웬만한 시내까지는 다 있던 집앞 노선을 홀라당 없애버렸기 때문에 괘씸죄가 적용되어
별로 예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초록색 지선버스 번호는 4자리가 된 바람에 번호 외기도 힘들뿐더러
나처럼 눈이 나빠 야맹증까지 있는 인간에겐 멀리서 번호 알아보고 타기도 어려워졌으니까.

그런데!!
내가 이런 버스 타령을 하는 블로그를 포스팅하게 된 이유는
며칠 전 집앞 신호등에 걸려 기다리다
멀리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커다란 선물 포장(!)을 보고 몹시 흐뭇했기 때문이다.
가끔 버스 측면광고에서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보며 기발하다 생각한 적은 있지만
이번엔 파란색 버스에 전면, 후면까지 '빨간' 리본을 둘러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라는 글씨를 적어놓은 뒤 측면에 영화 광고를
실었는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확 전달되는 예쁜 모양새에 공연히 기분이 좋아졌다.

조수석에 앉으셨다가 나보다 먼저 그 버스를 발견하신 울 아부지,
'아니, 저게 대체 뭐냐?'고 물으셨는데
무슨 광고일지 나도 궁금해져 신호 떨어졌는데도 그 버스 지나가길 기다리느라
고개를 쭉 빼고 있었다. ^^;;

나와 취향이 다른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한참 지난 영화 포스터를 달고 다니는 버스를 보며 눈쌀을 찌푸리듯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도 한참동안 요란한 빨간 리본을 앞뒤로 매단 버스를 보면
을씨년스럽다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버스를 볼 때마다 공연히 나에게 달려오는 선물을 받는 느낌일 거란 생각에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해낸 사람에게 고맙다.

서울 시내를 쏘다니는 빨간 리본을 단 선물이라니...
아이디어가 너무 귀엽잖아!

그나저나 올해가 가기 전에 그 예쁜 버스를 한 번 타보아야 할 텐데
과연 기회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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