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중교통수단은 누가 뭐래도 버스!
과거 내가 애용하던 노선들을 죄다 없애거나 바꿔버린 어느 재수없는 놈 때문에 간간이 화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일부러 버스타고 나가야 이용할 수 있는데다 수많은 계단이 무섭게 버티고 있는 지하철과 달리 2분만 걸으면 동네 버스 정류장이 있어 간선버스, 지선버스, 마을버스, 광역버스(물론 이 동네가 외져서 광역버스는 몇 정거장 나가야 탈 수 있다만;)까지 웬만한 동네까지 구석구석 안가는 데가 없으니 얼마나 편리한지.
게다가 지하철은 잠깐씩 나타나는 지상역 이외엔 줄곧 시커먼 지하에서 돌아다녀 밖을 내다볼 수도 없이 답답하지만, 버스는 앉든 서든 한가로이 창밖으로 세상 구경까지 할 수 있으니 심심할 새도 없다. 게다가 용인, 성남, 일산 같은 신도시에 갈 때도 지하철보다는 새빨간 색깔이 호화로운 광역버스가 훨씬 빠르다! 물론 가끔 길이 막혀 엉뚱하게 진을 뺄 때도 있지만 만인을 마주보며 앉아야 하는 지하철 좌석보다 한 방향으로 놓인 버스 좌석에서 꾸벅꾸벅 조는 묘미는 그야말로 달콤하기까지. ^^

버스예찬자이긴 해도 왕비마마 전용 기사이기도 한 두문불출 인생이라 종전엔 버스를 탈 일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요샌 요가강습을 받으러 다니느라 이틀에 한번꼴로 계속 버스를 이용하며 새삼 느낀 게 있다. 과거에도 승객이 탈 때 "어서오세요"라거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기사분들이 더러 있었고, 그게 낯설고 뜻밖이라 선뜻 답인사도 못한 채 우물쭈물 버스 뒤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헌데 요즘 버스를 타보니 인사를 건네는 기사분들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 며칠 전엔 탈 때마다 "어서 오세요"를 외치는 것뿐만 아니라 내리는 승객에게도 일일이 "안녕히가세요"라고 인사하는 기사 아저씨를 만났다. @.@
중학교 때부터 나는 버스 기사 아저씨들을 존경의 눈초리로 쳐다보았었다. 특히 내가 다니던 학교는 대단히 꼬불꼬불한 개천변길을 한참 지나 있는 곳이었는데, 도저히 차문이 닫힐 것 같지 않을 만큼 만원인 버스도 기사 아저씨의 놀라운 곡예운전 몇 바퀴를 거치면 이리저리 쏠린 승객들 사이에 또 다시 공간이 생겨났다. 가끔 복잡한 시내로 접어들 때 넓은 길이 차로마다 꽉꽉 막혀 있어도 버스 아저씨는 귀신같이 제일 잘 빠지는 차로를 골라 아슬아슬 끼어들기를 했다. 버스 전용차로가 생긴 다음엔 말할 것도 없이 천하무적처럼 쌩쌩 달려 꼬물꼬물 기어가는 자동차와 택시들을 비웃었다.
중고등학교 때 내가 애용하던 버스는 <오둘둘>과 <8번> 버스였는데, 종점이 까마득히 멀어 우리 학교와 동네 주변에선 늘 배차시간에 쫓기는 모양인지 두 노선버스 모두 레이싱을 하듯 달렸으므로, 가뜩이나 길이 꼬불꼬불해 지금도 안전을 위해 손잡이를 잡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그 구간에서 우리는 손잡이 잡지 않고 누가 오래 버티나 <빵빠레 내기>를 하며 까르륵대다 순식간에 집과 학교에 도착했었다.

지금도 그 기다란 버스를 요리조리 운전하며 앞뒷문 열랴, 다인승 인원 확인해주랴, 안내방송 틀랴, 거스름돈 바꿔주랴, 배차시간 맞추랴, 멀티플레이어도 그런 멀티플레이어가 없을 정도로 바쁠 기사분들이 타고 내리는 승객에게 인사까지 한다니! 물론 친절히 건네는 인사가 기분 나쁠 리는 결코 없다. 요샌 나도 익숙해져서 인사를 건네는 기사 아저씨를 만나면 "네"라거나 "안녕하세요"라고 대꾸할 수 있게 됐는데, 혹시라도 대꾸할 순간을 놓치면 민망하다. 대답없는 벽에 대고 대화를 하듯 좀처럼 대꾸하는 승객이 없는데도 계속 인사를 외치는 기사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인사를 건네는 기사분들이 많아진 걸 보며 요즘 버스회사들이 친절을 중요시하나보다 여겼더니 그도 그렇지만 버스운행 실태를 감시하는 암행조사단 같은 게 있단다. 몰래 난폭운전 여부와 정류장 정차여부, 친절도 따위의 점수를 매겨서 인사고과에 반영한다나. 가끔 노인 승객이 넘어질 뻔할 만큼 너무도 난폭한 운전을 하거나 계속해서 휴대폰 통화를 하며 허투루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를 봤을 땐 버스에 비치돼 있는 불편 신고 엽서를 써보낼까 할 정도로 화난 적이 있으니 가끔 회사에서 실태를 조사할 필요른 느끼긴 하지만, 단순히 감시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친절은 별로 달갑지가 않다.
실태 조사기간 동안만 반짝 인사하는 시늉 따위가 무슨 소용이람. 나야 곡예운전이든 말든 빠르게 씽씽 달리는 걸 선호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최대한 안전하게 운전하며 타고 내리는 승객들 조심스레 배려하는 게 겉치레 인삿말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한동안 하차벨을 누른 뒤 버스가 설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다가 정차 후에 일어나 <안전하게> 내리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던 적도 있었지만, 한국인들의 성질머리가 대개 급하기도 할뿐더러 하차벨을 누른 뒤 얼른 미리 뒷문 앞에 대기하지 않으면 기사분이든 나머지 승객들에게든 구박을 받을 것 같아서 한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다. 정차할 때까지 문앞에 서 있는 사람이 없으면 정류장에 섰다가도 금방 가버리지 않나? 더욱이 내릴 때도 매번 버스카드를 찍지 않으면 안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끝까지 좌석에서 뭉기적거렸다간 내리는 뒤통수에 곱지 않은 시선이 여럿 꽂힐 것 같다.

요즘 새로 도입되고 있는 시내버스는 차체가 낮고 승하차 문 바닥에 연결판이 설치되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타고 내릴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어떤 버스에는 휠체어 장애인의 승하차시 1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다른 승객의 배려를 바라는 안내문이 붙어있기도 하던데, 나는 차츰 이 나라도 변해가나 싶어 반갑다가도 과연 배차시간에 쫓기는 기사분이나 어디서든 <빨리빨리>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이 얼마나 협조해줄지 걱정스러웠다. 아직 그런 저상형 버스를 타고 내린 장애우의 시승담을 어디서도 본 적 없지만, 내릴 때는 몰라도 어설픈 내 눈썰미로는 앞문과 툭 튀어나온 앞바퀴 위 짐칸 때문에 정말로 휠체어가 버스에 오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다시 현실성 없는 생색내기용 디자인은 아니었기를 바랄 뿐.

어쨌거나 승객에게 인사하는 버스 기사 아저씨들의 숫자가 앞으로 더 많아질지 아닐지, 그에 답하는 시큰둥 승객들의 변화는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내 생각 같아선 그냥 서로 뻘쭘한 승하차 인사는 건너뛰고 빠르고 안전한 버스 운행에만 신경써주면 고맙겠는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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