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루'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11.04.18 간만에 자전거 11
  2. 2010.05.08 일주일 전 19
  3. 2009.09.14 주말 떼자전거 6
  4. 2009.07.30 점입가경 6
  5. 2009.06.11 자전거 바람이 불었다 21
  6. 2009.06.01 5월 31일 12
  7. 2009.05.12 토룡마을 하층민의 첫 자전거모임 18
  8. 2009.05.06 압력솥 13
  9. 2009.04.12 초보운전 14
  10. 2009.04.10 드디어~ 16

간만에 자전거

놀잇감 2011. 4. 18. 15:09

하얀색이라 먼지가 뽀얗게 쌓인 게 더 잘 보이는 느루의 먼지를 털어내고 완전 내려앉은 바퀴에 바람도 빵빵하게 넣고 정말 오랜만에 어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요가 관둔지도 두달이 돼가고 운동이라고는 숨쉬기랑 씹기 밖에 안한 체력은 처음부터 티가 났다. 빠르면 20분, 늦어도 25분이면 도착하던 한강변까지 결국 다 못가고 중간에 쉬어야 했다. 핑계를 대려면 운동효과를 내려고 열심히 페달을 밟은 데다 맞바람 탓이었다고 둘러댈 순 있겠으나 그래도 창피한 건 창피한 거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또 깨달았다.

자전거는 한번 익히면 절대 잊지 않는 종류의 기술이라는데 사람마다 좀 다른지 나는 이렇게 간만에 자전거를 탈 때마다 서툴게 헤맨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 밀려드는 공포 때문일까? 페달질 하다 페달을 놓치질 않나, 안경이 흘러내리는데 핸들 한 손으로 잡기가 무서워서 안경도 못 올리질 않나, 스스로도 좀 난감하다 싶었다. 결국은 꾸준한 연습만이 살길이라는 건데 이렇게 몇달만에 한번씩 타가지고 언제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을지 원.

화창한 날씨에 풀풀 날려 떨어지는 벚꽃이 유혹적이라 나갔던 건데 한강바람은 아직도 쌀쌀하고 차가워 손이 시렸다. 장갑 안끼고 나간 걸 후회하며 예쁘고 새끈한 장갑을 사야겠군, 하고......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몇번이나 타려고! 다음에 느루 타러 나오기 전에 손시렵지 않은 날씨가 될 확률이 더 높다. ㅋㅋ

아 맞다. 자전거 살 때 받았던 검정색 벨을 조카에게 빼앗기고 계속 벨 없이 다녔는데, 안되겠다. 주말이라 그랬겠지만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비롯해 굳이 보행로 놔두고 자전거길로 와글와글 걸어다니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벨을 달아야지. 갑자기 요란한 전자벨 울려서 사람들 놀라게 하는 인간들이 유독 싫어서 난 아예 벨을 잘 안울리는 편이라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었으나, 그냥 띠링띠링 울리는 벨 정도는 필수품임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느루에 어울리는 벨을 그간 계속 검색하고 있었지만 마음에 꼭 차는 게 없어서 머뭇거렸는데 좀 눈에 덜 차더라도 담번에 타러 나가기 전엔 사야할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엉덩이가 심히 아프다. 흑. 허벅지의 뻐근함이야 어쩐지 지방이 근육화 된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며 흐뭇한 효과를 남긴 반면 멍이라도 들은 것처럼 아픈 엉덩이는 좀 민망하다. 간만에 자전거를 타면 왜 꼭 엉덩이가 아픈지 원! 초보자의 비애일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암튼 앉을 때마다 엉거주춤 자세가 웃긴다. ㅋㅋ


Posted by 입때
,

일주일 전

놀잇감 2010. 5. 8. 16:05

지난주 토요일이니까 딱 일주일 전이다.
입원예정일 바로 전날까지도 입원과 수술 여부를 놓고 마음을 정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는 왕비마마를 지켜보다 폭발하기 직전의 울화를 느낀 순간 느루가 눈에 띄었다. 솔직한 마음으론 완전히 가출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가출은 개뿔...
집나간다고 딱히 갈 데나 있겠나 어디.

물 한통 받아들고 나서서 올해 처음으로 밟아보는 느루의 페달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요가 몇달로 몸에 좀 근력이 붙었겠지 싶었던 생각은 어디까지나 나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는 뜻이었다. 한강쪽에서 지천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오는지 20분 남짓한 거리에 헉헉 숨을 몰아쉬면서 스스로도 민망했는데, 나 말고도 한강을 코앞에 둔 야트막한 언덕에서 낑낑거리는 자전거 초보자들을 보며 괜히 위안을 얻었다.

집에서 나섰을 땐 행주대교까지도 문제없을 것 같았는데 맞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것도, 강바람을 옆으로 맞으며 달리는 것도 그리 수월하진 않아 난지 한강공원 근처에서 배회하다 그냥 돌아서야 했다. 날씨는 화창했지만 바람이 꽤 부는데도 그놈의 한강 르네상스인지 뭔지 때문에 새로 단장한 둔치엔 사람들이 꽤 많이 버글거렸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잘난 척 전화 받겠다고 애쓰다가 잔디밭으로 벌러덩 나가 떨어졌다. 콘크리트 바닥이었으면 느루도 나도 어딘가 까지거나 된통 아팠을 텐데 등판에 지푸라기가 좀 묻었을 뿐 잔디밭이 푹신한 덕분에 멀쩡하더라. ㅋ

꽃보다 아름다운 느루


온통 시멘트로 처바르고 군데군데 요트 정박장을 만들어 놓고 사이사이 꽃밭을 가꿔놓은 새로운 한강 둔치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무로 들꽃을 만들어 놓은 이 조형물은 꽤나 인상적이라 느루를 세워놓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을 땐 작품 이름도 알아두었는데 일주일 새 까맣게 잊혀져 통 떠오르질 않는다. 자연? 세월? 두 글자였던 건 확실한데... -_-;;

Posted by 입때
,

주말 떼자전거

놀잇감 2009. 9. 14. 01:44

가을에 태어난 조카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주말에 막내동생네서 미리 파티를 했다. 하지만 파티보다 중요한 건 내 자전거를 싣고 가서 준우왕자와 함께 자전거로 일산 호수공원을 같이 돌기로 한 약속이었다. 조카는 새로 장만한 자전거도 자랑할 겸, 그리고 요즘 "내가 워낙 빨라서 아마 고모는 못 따라올걸!"이라며 큰소리를 쳤던 자전거 타는 솜씨도 보여줄 겸 기대가 큰 눈치였다. 토요일에 비가 좀 온다고 했다면서 어른스럽게 며칠 전부터 날씨 걱정을 할 정도로...
나 역시 주초부터 주간날씨를 열심히 살피며 토요일엔 비가 안오길 바랐지만, 금요일밤부터 억수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천둥번개까지 치더군. 그나마 오후부턴 날씨가 갠다기에 희망을 품었지만, 집 나서려던 2시쯤엔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들며 다시 소나기가 내려 마음을 조렸다. 
어쨌거나 소나기 후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사라지고 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토요일. 정민공주네까지 자전거를 두대나 싣고 와 꿈에 그리던 우리 가족의 호수공원 떼자전거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다혼의 우베공이 두대, 역시 다혼의 실버팁 한대, BMW 미니 자전거 한대, 삼천리 애팔래치아 한대, 성인용 자전거는 모두 미니벨로였고, 준우의 삼천리 넥스트 프로액션 SF, 지환이의 레스포 자전거, 지우의 삼천리 하이킥까지 모두 모으면 자전거가 여덟대였지만 어젠 올케가 우리 왕비마마 보필을 담당하는 바람에 준우네 자전거가 한대 빠졌고, 정민네도 자전거를 두대밖에 싣지 못해 총 여섯대가 호수공원으로 출격했다. (근데 멍청하게도 자전거 몽땅 모아놓고 사진찍는다는 걸 까먹었다. 뒤늦게 미니가 합류할 때쯤엔 조카들 건사하느라 내가 정신이 좀 빠져 있었던 모양...ㅠ.ㅠ 다음에 진짜로 다 모여 떼차질할 땐 꼭 기념촬영 해놔야지...)
9월 결심을 세운 날 딱 하루만 느루를 탔던 데다 밤새 아침까지 계속 시간대별 날씨상황을 알아보다 잠드는 바람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나는 호수공원 쯤이야..라며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거의 10년 전에 거의 주말마다 호수공원에 놀러가서 빌린 자전거로 두어바퀴 쯤 수월하게 돌고 나서 잔디밭에 앉아 음주를 즐겼던 전적을 믿었던 것.
그런데 변수는 놀랍게도 조카들의 자전거 실력이었다. 무조건 일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들은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도 나에게 절대 앞장서면 안된다고, 반드시 자기네 뒤에서 쫓아와야한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그러지 말라고 해도 걔들보다 빨리 타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아니 쬐끄만 녀석들이 속력을 어찌나 내는지!
그나마 중간중간 사람들이 많아 속력을 줄여야 했는데도 준우와 정민 두 녀석을 따라 호수공원을 한바퀴 돌고 나니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인데도 내가 집에서 월드컵 공원 다녀오느라 1시간 자전거 탄 만큼의 체력소모가 느껴졌다.
중간에 음료수 마시고 수다떨며 한참을 쉬기는 했지만, 막내가 앞장서 마지막으로 한바퀴를 더 돌기 시작하자 중간 무렵부터 난 도무지 그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_+ 헥헥대며 뒤쳐져 도착하는 나를 본 동생들은 얼굴이 허옇게 됐다면서 딴사람한테 자전거 넘기고 차라리 운전을 하라고 권할 정도. 하지만 그럴 정도로 지친 건 아니었다규!!
어쨌거나 새삼 놀라웠다. 쉬지않고 재잘대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체력이 대단한 것이야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고모 앞에서 계속 온갖 묘기(한팔로만 잡고 운전하기, 엉덩이 떼고 페달 밟기, 두 다리 쫙 벌리고 자전거 타기, 요리조리 계속 방향바꾸며 타기 따위)를 부리느라 지쳤는지 준우왕자 역시 두 바퀴째엔 나랑 같이 뒤로 쳐지긴 했지만, 집에 와서도 또 숨바꼭질하며 뛰노는 녀석들을 보니 내 체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민공주는 제 삼촌의 뒤를 끝까지 바짝 쫓아갈 정도로 지칠 줄을 몰랐다는데, 한강변에서 제 아빠와 자전거를 오래 타도 어디쯤 오나 돌아보면 언제나 바짝 따라오고 있어 놀랄 정도라고 했다. 하기야 요즘 손과 발이 나보다 더 커버린 열두살 공주가 와락 나를 붙잡고 힘을 쓰면 나는 꼼짝없이 항복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완력이 세다.

주말에 조카들과 자전거를 타보고 깨달은 게 있다. 꼬박 1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간 나름대로 중간중간 숨이 찰 때도 있고 일부러 완만한 경사를 올라 허벅지가 팍팍해지는 걸 느끼긴 했지만, 그동안 내가 얼마나 슬슬 쉬엄쉬엄 자전거를 탔는지. 기어도 늘 제일 높은 데 놓고 페달질을 게을리했는데 결코 그게 좋은 운동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개천변 자전거도로에 하도 사람이 많아서 빠르게 달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이 큰 핑계는 되지만, 월드컵공원에선 더 빨리 달리는 연습을 했어야 옳았다. 앞으로도 자전거를 얼마나 자주 탈지 장담할 순 없지만, 어쨌든 어린 조카들한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는 달리는 연습을 해두어야겠다. 그래야 이렇게 몇 시간 자전거 탔다고 담날 하루 종일 지쳐 뒹굴거리지 않을 수 있겠지. ㅠ.ㅠ



Posted by 입때
,

점입가경

투덜일기 2009. 7. 30. 23:37

왕비마마의 저녁운동을 채근하다 지쳐서 홀로 느루를 끌고 홍제천변엘 나갔다가 이를 갈았다. 하필 홍제천변 산책로에서 행사가 벌어지고 있어 문제의 분수와 폭포 앞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는 지나갈 수가 없었고 설상가상 대형 광고판으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하는 어느 주민의 모습이 중계되고 있었다.
며칠 전 동네 버스정류장 유리에 붙어있던 홍보물을 본것도 같았다. 시낭송의 밤이라나 뭐라나 하는... 게스트 목록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유현상>이기에 속으로 큭큭 웃으며 과연 누가 가려나 싶었는데, 그건 내 생각이었나보다. 무대 위쪽으론 사람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아래쪽 산책로에 돗자리를 깔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 걸로 봐서 의외로 행사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시낭송의 밤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올까봐, 주민 노래자랑으로 프로그램이라도 바꾼 모양이었다.
일요일 낮마다 울 엄마도 송해 할아버지가 사회보는 <전국노래자랑>을 반드시 시청하는 분이긴 하지만, 나는 거기 나오는 사람들도 그 프로그램이 수십년째 장수하는 이유도 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TV에 얼굴 내보이는 게 신나고 좋을까. 내눈엔 망신살로밖에 안보이는 출연자들의 온갖 <쇼>와 <땡 소리>가 어떤 매력이 있는지 나로선 정말이지 모르겠다. 한민족이 원래 가무를 즐기기는 했다지만 혼자 끼리끼리 즐기는 거랑, 전국적으로 보여주며 즐기는 거랑은 다르지 않을까. 오늘도 나에겐 괴로운 소음이어서 더운 여름밤에 불쾌지수와 짜증을 배가하는 장면에 불과했던 주민 노래자랑을 꽤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걸 보면, 내 정서가 확실히 소수에 속하긴 하는 모양이다.
가끔 눈쌀 찌푸리면서도 일요일 낮엔 절대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리지 않는 왕비마마에게, 그게 왜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그냥 달리 볼 게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마도 한민족이 예로부터 가무를 즐겨왔다고 세뇌된 학습효과이거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지켜보는 못된 쾌감 또는 음치, 박치로서의 동병상련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럼, 노래자랑 프로그램 싫어하는 나는 뭐지? 노래 잘하는 사람의 노래는 얼마든지 감사히 들어줄 수 있지만, 들어줄 가치도 없는 음치 아마추어들의 노래를 귀따갑게 참아야할 이유를 나는 도저히 꼽아낼 수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나도 분명히 가무를 즐기긴 하는데... 참..

어쨌거나 오늘 내가 점입가경이라고 느낀 건, 동산에 억지로 파이프를 끌어올려 만들어놓은 폭포에다 이젠 알록달록 조명시설까지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자라는 나무와 풀에게도, 오래도록 그 동산을 지키고 있던 바위에게도 나는 막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은 일단 훼손했다가 복원하고 인공적으로 마구 꾸며야 아름답다고 여기는 웃기는 취향의 행정가들과 주민들 때문에 니들이 고생이 많구나, 하고. 그나마도 밤엔 폭포 물줄기가 안보여 꺼져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젠 밤에도 그 동산에 자라는 식물들은 쉴 수가 없어졌다. 게다가 지난 폭우때 떠내려가 박살났다는 황포돛배도 어느틈엔가 새로 만들어 물레방아 앞에 세워놓았더라. 박살 난 걸 교훈삼아 다시는 안 가져다 놓기를 바랐던 내가 순진했다. 이상하게 변해가는 홍제천의 모습이 꼴사나워 구시렁거리는 나 같은 사람들이야 뒷전에서만 혀를 찰 뿐, 앞에 나서서 큰소리를 내는 이들은 대부분 분수에 폭포에 황포돛배에 볼거리 많아졌다고 좋아라하며 박수치는 사람들일 테니 아마도 얼마 지나면 또 이상한 인공 건조물이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을 불태울 순 없는 법이라 했으니, 꼴보기 싫으면 내가 이사를 가야겠지. 그래도 자전거 도로로 한강까지 갈 수 있는 점 하나는 좋은 동네인데... ㅠ.ㅠ
할 수 없다. 그전까지는 볼썽사나운 것들 앞에서 시선을 돌릴 수밖에.
Posted by 입때
,

내가 작년에 느루를 장만하고 나서, 그때 직접 매장을 추천하고 조언을 해주었던 막내동생네도 곧 미니벨로를 장만했다. 애팔렌치아라고 하던가, 검정색으로 아주 늘씬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그러고선 올해부터 아직 네발자전거를 벗어나지 못했던 준우왕자의 강훈련에 돌입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지만 겉보기론 3학년이라 해도 믿을만큼 키가 훤칠한 녀석이라 머지 않아 제 엄마와 함께 미니벨로를 탈 수 있게 하기 위해, 네발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뗀 거다. 겁이 많아서 통 진도가 안난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았는데 어느 틈엔가 녀석은 순식간에 두발 자전거를 마스터 하고야 말았단다. 이렇게...

그러고 나서 좀 있다 준우왕자의 동생인 지우의 생일이 돌아왔다. 겨우 만 세돌이 되는 녀석은 똑 소리나게도 우리에게 선물을 콕 찝어 요구했다. 자전거를 사달라고. +_+ 그것도 하얀색이랑 검정색으로.
"고모, 지우 자전거 사주세요. 하양색이랑 검정색 있는 거..."라는 지우의 말을 직접 전화로 들으며 나는 내심 걱정이 앞섰다. 애들 자전거가 죄다 파랑 아니면 분홍, 아니면 노랑, 초록 같은 원색이던데, 하얀색이랑 검정색이라니...
그런데 그건 나의 기우였다. 지우 기호에 딱 맞는 어린이용 자전거가 있더라!
어린 녀석 취향이 세련됐기도 하여라. @.@
문제의 자전거는 삼천리자전거에서 나오는 <하이킥>이란다. 지우도 또래들보다 키가 커서 12인치를 사줘야 하나 16인치를 사야하나 고민했는데 딱 맞춤처럼 14인치짜리가 매장에 있더라나. 당연히 지우왕자는 저 자전거에 올라타곤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ㅎㅎㅎ
제가 원하는 선물을 생일선물로 받은 지우는 연일 자전거 타기에 힘쓰는 모양이고, 겁이 많아 속도 내는 건 엄두도 못냈던 제 형과 달리 방향전환이며 속도내기에 거침이 없어 오히려 걱정이다. *_*

무릎 보호대를 하고 제 형의 뒤꽁무니를 거의 바짝 뒤쫓는 지우의 모습을 보면 난폭운전의 기질마저 느껴진다. ^^; 귀여운 녀석...

준우마저도 두발 자전거로 씽씽 달리는 모습을 본 데다 고모와 작은엄마의 미니벨로 맛을 본 정민공주는 자기도 기어 달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이미 온 집안에 불어닥친 자전거 바람에 물든 큰동생네도 전격 미니벨로를 장만하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내 자전거랑 똑같은 다혼 우베공 흰색으로...
다만 사이즈는 내것보다 큰 걸로. ㅠ.ㅠ

이 자전거를 타다가 공주는 오른쪽 무릎을 왕창 갈아 진물이 날 정도였는데도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러 나가는 눈치다. 사진은 5월 31일에 소풍 갔던 월드컵 공원에서 타는 모습이고, 공주의 아빠가 찍은 사진이다. 자전거를 타고 느껴지는 바람이 보이는 것 같은 이런 사진.. 좋다. @.@



자존심이 심히 상하기는 하지만, 조카랑 고모랑 나란히 똑같은 미니벨로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아주 그럴듯하다. 왼쪽이 내 느루, 오른쪽이 공주의 우베공.
이땐 하필 내 자전거를 올케가 타느라 안장을 제일 낮게 했고, 정민이 자전거는 동생이 안장을 높여 탄 직후라 더더욱 형님과 동생 같이 보인다. ㅎㅎㅎ

이번엔 여기저기서 동생들 사진을 퍼왔지만, 담번엔 정말로 온가족이 떼로 모여 자전거를 탄 뒤 단체사진을 찍어와야겠다. 암튼 온 집안에 부는 자전거 바람, 참으로 흐뭇하다.
 
 
Posted by 입때
,

5월 31일

투덜일기 2009. 6. 1. 15:50

얼마전 토룡마을 주민들과 자전거를 타러 갔던 날, 홀로 집을 지키던 엄마가 전화로 말했었다.
"월드컵 공원 좋아? 엄마도 가보고 싶다."
서울서 태어나고 자라서 오히려 서울 곳곳을 <관광>하러 다니는 게 어색한 우리 엄마는 특히 최근들어 생겨난 크고 작은 공원 같은 곳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는 듯해, 몇년 전부터 가끔씩 모시고 다니리라 다짐은 했지만 실천에 옮기는 건 늘 게으름에 밀리기 일쑤다. 하늘공원은 작년엔가 막내네가 모시고 다녀왔지만, 바로 아래쪽 평화공원엔 왕비마마가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다. 더불어 서울숲과 올림픽공원, 한강 둔치, 유람선도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그래서 더 더워지기 전에 월드컵 공원 소풍을 계획하고 나선 것이 어제. 엄마는 걷는 운동을 하고 나는 자전거를 차에 싣고 가 타기로 마음 먹었더니, 소풍 계획을 알게된 정민공주네도 합류하고 싶어 했다. 온집안에 몰아친 자전거 열풍에 휩쓸려 자기도 어린이용 자전거 말고 <기어> 달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공주가 드디어 소원을 이루어 <우베공>을 장만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와 똑같은 하얀색. 당연히 작은 사이즈로 샀을 줄 알았더니, 자존심 상하게도 M사이즈였다. ㅠ.ㅠ 좀 더 있으면 당연히 공주가 나보다 키가 커지겠지만, 제 아빠도 같이 타려면 큰 걸 사는 게 정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모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뭐든 고모 자전거랑 똑같아야 한다며 욕심을 부리던 공주는 제 자전거가 더 크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모양이더니, 벨로 언니도 M사이즈라니깐 그제야 생글생글 웃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M사이즈 살 걸! 안장 제일 낮추면 지금 내 안장 높이랑 똑같던데 ㅠ.ㅠ;;

원래 계획은 왕비마마를 모시고 월드컵 공원을 한바퀴 돌아 <빡시게> 운동을 시키는 것이었지만, 초장부터 다리 아프다며 드러누워 좀체 운동을 하려하지 않는 왕비마마를 독려하는 건 불가능했다. 속으로는 정말로 눌린 척추신경을 복원하는 수술을 해야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인지 겁부터 나는데, 겉으로는 엄살부린다며 엄마한테 자꾸 짜증을 내고 있었다. 왕비마마는 자꾸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주고 가는 중국집, 치킨집 먹거리에 끌리는 모양이었고 공주네 식구도 잔디밭에 앉아 짜장면과 짬뽕을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단호히 그들을 말렸다. 말이 소풍이지 본래 목적은 가열찬 운동이건만, 나와서 잔뜩 먹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람!  

왕비마마의 운동량은 오히려 평소 홍제천 산책 때보다 적었지만, 전체적으로는 훌륭한 편이었다. 월드컵 공원에 간 게 수차례이면서도 구석구석 다 돌아본 적 없던 나는 거의 공주에게 끌려다니다시피 공원을 여러바퀴 돌아야 했고, 심지어 공원이 너무 좁아서 자전거 타는 맛이 안난다는 공주를 데리고 한강으로 나가 성산대교, 양화대교를 지나 당산 철교까지, 그리고 다시 돌아 가양대교 방면으로 자전거길 조성공사를 새로이 하느라 길을 막아놓은 곳까지 다녀왔으며, 귀가길에도 차는 동생에게 맡긴 채 홍제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_+
자전거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올케 역시 핸들이 좀 흔들리긴 해도 꽤나 진척이 있어 사람들이 많지 않은 길에선 퍽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게 되었으며, 잠시 한강변 답사를 다녀온 큰동생도 우리집에서 반포대교까지는 무리없이 출퇴근할 수 있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원래 언덕 위 우리집에서 월드컵공원까지 자전거로 걸리는 시간은 25분에서 30분. 차로 가면 주차시간까지 합해도 15분이 안 걸린다. 시간상으로는 당연히 자동차가 빠를 수밖에 없지만, 돌아오는 길에 과연 누가 빨리 도착할 것인지 궁금했는데, 예상외로 자전거를 타고 온 우리가 훨씬 빨랐다. 자전거길 조성공사로 군데군데 공사중이던 홍제천변 산책로 포장이 거의 끝났기 때문이기도 했고, 공원 주차장에서 차 두대가 빠져나오는데만도 엄청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팍팍한 다리로 자전거를 끌고 마지막 언덕길을 오르며 나는 정말 죽을 맛이었는데, 여전히 팔팔하게 기운이 넘치는 공주는 공원에서 고모네 집까지 생각보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실망이라고 했다.

어느새 너무 익어 마당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앵두를 올해 처음 따면서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정말 감개무량했다. 느루를 장만하고 1년 넘게 내가 자전거를 탄 시간은 하루에 길어야 1시간 남짓. 다리가 묵직해지기 시작하면 이내 쉬면서도 홀로 흡족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젠 중간에 쉬엄쉬엄 타기는 했어도 꼬박 3시간은 자전거를 탔을 거다. 막판엔 엉덩이가 찢어질 듯 아프고 다리도 묵직하다 못해 거의 뻣뻣해졌으니까. 밤 10시도 되기 전에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일어난 오늘도 여전히 삭신이 쑤시는데, 예상보다는 거뜬하다. 지난주에 미리 좀 걷고 자전거를 타둔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 왕비마마도 자전거를 타실 수 있다면 다리가 좀 아파도 운동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프렌즈>에서 피비가 타던 어른용 네발 자전거 생각이 난다. 우리나라엔 어른용 네발 자전거 없나? +_+ 알아봐야겠다.  



Posted by 입때
,
마을 이름이 하필 '토룡'이어서 모임 날짜만 잡으면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는 징크스는 아마도 이제 깨진 것일까? 한달쯤 전부터 거창하게 날을 잡았던 예전 모임과 달리 번개치듯 긴급하게 잡은 날짜라 하늘이 미처 손을 쓸 새가 없었을 가능성도 있겠으나, 어쨌든 토룡마을 주민들의 5월 자전거 모임은 화창하다못해 푹푹찌는 여름날씨 같은 주말을 마음껏 즐기는 기회가 되었다.
느루를 장만한지 1년이 넘고도 석달이 지나 드디어 토룡 마을 주민들의 자전거모임엘 참석하며 나는 정말 감개가 무량했다. 자전거 장만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토룡마을 주민들의 자전거 모임에 나가보는 것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꿈의 자전거인 토룡왕자님의 브롬톤을 알현하고 잘하면 시승해보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었으니! (자알~ 생긴  데다 씽씽 잘 나가기도 하는 브롬톤을 시승해본 것은 물론이고, 무려 18초만에 브롬톤을 접고 30여초만에 다시 펴는 키드님의 신공을 구경할 수 있었다!! @.@)
유일한 난관은 도시락 준비였는데, 약식을 만들어가겠다고 큰소리를 쳤던 지난번 모임 때 날이 궂어 회동이 취소되면서 준비해둔 재료를 마냥 썩히기도 뭣해 그 다음주에 당장 약식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다. 다시 장을 봐다가 새로 만들면 되겠지만 <미술관 옆 동물원> 프로젝트(?) 이후 심신이 피폐해진 데다, 냉동실에 절반 잘라 넣어둔 약식을 재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요행심에 그냥 버티긴 했는데, 워낙 여름날씨 같은 오후 기온에 신선하지 않은 약식이 상하지 않고 무사할지 내심 겁이 났다. 결과적으로 모두 모여 나무그늘에 앉아 소풍나온 이들처럼 점심을 먹을 때까진 맛이 무사했으니 다행이긴 하다. 저녁시간까지 남아 있던 녀석들도 과연 쉬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

어쨌거나 첫번째 자전거모임에 전격 참석해본 결과 내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토룡마을에서 내가 최하층민이라는 사실이었다. 왜냐고?
일단 두 왕족부터 따져보자면, 그들은 내 기준으로 볼 때 뭣 하나 부족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인간들이었다. 소문과 사진으로만 알던 토룡왕자의 하늘색 브롬톤의 유려한 자태 때문이 아니다. 벨로 공주의 경우엔 검소하게도 하층민인 나와 같은 우베공을 타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그 둘은 각각 루이가노와 브랑셰, 이름 모를 오래 된 자전거까지 다수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토요일에 내가 확인한 바로는 토룡마을의 계급은 단순히 부의 크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선 계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다음과 같다고 확신한다.
첫째. 자전거 타기 기술
둘째. 운동신경
셋째. 체력
넷째. 요리솜씨

어려서부터 내가 품고 있는 자전거 타기 기술의 로망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한손으로 핸들 잡고 타기. 두 손 다 놓고 탈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ㅠ.ㅠ
또 하나는 한 발만 페달을 밟고 자전거 옆에 섰다가 자전거를 밀며 출발해 남은 다리를 유연하게 들어올려 안장에 앉아 자전거를 출발시키는 기술이다. 
현재 내 수준은 아주 잠깐, 한 1초쯤 한쪽 손을 놓고 얼른 머리를 넘긴다든지 안경을 올리고는 금세 핸들을 잡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핸들은 불안하게 흔들려 넘어지기 직전까지 바퀴가 버벅대기 일쑤다. 그런데 그날 토룡왕자와 벨로공주는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듯, 한손에 샌드위치가 든 종이가방을 들고 자전거를 몰고 오질 않나, 묵직한 과일 도시락이 든 쇼핑백을 들고오질 않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아무 어려움 없이 전화를 받질 않나... ㅠ.ㅠ
자전거 초보인 통통님과 나의 경우, 중간에 잠시 굳이 멀지도 않은 거리를 자전거 타고 물을 사러 매점엘 간 적이 있었는데 매점에서 파는 냉커피와 아이스티를 본 순간 옳타구나 하나씩 사가서 나눠먹자며 사들고 나서는 이내 난감해졌다. 우리 실력으론 밀봉되지도 않은 음료수는커녕 밀봉된 물병도 비닐봉지 없이 들고 자전거를 운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 마신 뒤 버리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통통님이 쓰레기통으로 향했을 때, 나는 어렵사리 물병을 바지 주머니에 끼우고는 절반쯤 남아 좀 덜 흘릴 듯한 냉커피를 왼손에 쥐고 핸들을 살짝 같이 잡는 만용을 부려봤지만 브레이크만 안 밟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그 짧은 거리를 오는 사이 당연히 바지에 커피를 흘리고야 말았다. 헌데 토룡왕자는 자전거 타면서 휴대폰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문자 메시지도 보낼 수 있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자전거 옆쪽에서 한발로 페달을 밟고 자전거를 출발시키는 기술은 토룡왕자도 못한다는 사실에 괜히 마음을 놓기는 했지만, 어려서부터 부족함 없이 자전거 기술을 익혀왔을 왕족들한테 내가 어찌 비교될 수 있겠는가 하는 서글픔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운동신경과 체력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자전거 모임에선 여흥으로 <고무줄놀이>와 <배드민턴 치기>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노나또님과 지다님은 어찌 그리 나비처럼 사뿐사뿐 폴짝폴짝 고무줄을 하시던지! 애당초 고무줄 잡는 역할이나 하겠다고 했던 나도 미친 척 시도해보았지만 한두번 뛰고도 무거운 몸이 출렁거려 다시는 시도해볼 마음도 안생기는 나와 달리 고무줄 놀이의 대가 지다님과 노나또님은 그야말로 펄펄 나는 듯했다. 고무줄 놀이가 상대적으로 천한 계층의 유희였던지 두 왕족은 고무줄에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어 시작된 배드민턴 경기에선 악천후 바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순발력과 공격력을 보여주었다. 고무줄 놀이 때는 나와 더불어 고무줄 잡는 역할에 충실하여 잠시나마 나와 비슷한 계층이 아닐까 희망을 품게 만들었던 통통님 마저도 배트민턴에선 대단한 파워와 승부근성을 보이며 뛰어난 운동신경을 자랑했는데, 머리 나쁜 나는 그제야 통통님 역시 결코 나와는 같은 계급일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남산부터 한강까지, 그리고 다시 성산대교를 지나 근 2시간에 이르는 장거리를 물 한 모금 없이 주파한 강철체력의 통통님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1차로 자전거 모임에 참석한 뒤 바삐 성남으로 축구경기 응원을 떠난 노나또님의 체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ㅠ.ㅠ
저질 체력인 나는 겨우 40분 거리도 혹시 더위 때문에 늦어질까 조바심을 내며 페달을 밟아야했기에, 점심을 먹고 나선 고무줄도 배드민턴도, 농구에도 흥미가 없어 그저 푸르른 잔디밭에 누워 쉬고 싶었거늘... 나를 뺀 모든 이들은 그저 쉴새없이 공원을 뛰고 또 뛰어놀며 온갖 재주와 실력을 선보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나마 요리솜씨라면 나도 명함을 들이밀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우선 노나또님이 익히 블로그에서 자랑하시던 주먹밥과 유부초밥은 되직하게 지은 밥에 갖은 양념을 해 맛도 일품인 데다 모양새까지 앙증맞고 먹음직스러웠다. 처음 차려놓았을 땐 양이 많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한톨 안 남기고 모두들 먹어치웠을 정도이니 말해 뭣하랴. 게다가 키드님의 그 유명한 <치킨> 샌드위치 역시 맛과 모양 면에서 다들 "사온 것 같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드물게 내가 집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보면 언제나 싱겁던데.... +_+
그에 비하면 내가 무성의하게 데워간 약식은 자른 크기도 들쭉날쭉, 견과류 내용물도 들쭉날쭉, 말들은 안했어도 분명 군데군데 너무 딱딱한 부분이 있었을 거다. 그나마 지다님과 통통님이 바쁜 관계로 도시락을 <싸>오지 않고 <사>는 바람에 은근히 안도했다고나 할까. 수박을 두 그릇이나 정갈하게 잘라와 모두의 갈증을 해소해 준 벨로공주는 요리솜씨로 쳐줄 수 없긴 해도 일단 왕족이고 자전거 솜씨가 가장 탁월하니 계급 결정에 영향을 제일 약소하게 미치는 마지막 기준이야 아랑곳하지 않을 게다.

하층민으로서의 서글픈 깨달음을 이렇게 주절주절 적고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거나 나도 토룡마을 자전거 모임에 드디어 참석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나 같은 저질 체력 운동부족 하층민에게도 동등하게 즐길 기회를 준 걸 감사하며, 계급이야 어떠하든 앞으로도 열심히 자전거 타기에 힘쓰겠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자 나의 결론이다. ㅋㅋㅋ
Posted by 입때
,

압력솥

투덜일기 2009. 5. 6. 16:14

요즘은 간혹 수증기 배출 직전의 압력솥처럼 머리끝까지 뜨거운 것으로 가득차는 느낌이 든다. 그럴땐 자동으로 추가 딸깍거리든지 수동으로라도 밸브를 꺾어 수증기를 뽑아주어야 하는데 이제 나에겐 그런 안전장치가 없다는 생각에 위기감을 느낀다. 그냥 계속 화르륵화르륵 끓다가 고무패킹은 물론이고 솥째로 여기저기 망가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전엔 그렇게 머리끝까지 뜨거워지기 전에 시원하게 식혀주고 달래주는 역할을 오롯이 아버지가 맡으셨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옛날보다 더 빨리 뜨거워지는 낡은 솥이 되었다는 얘긴지 잘 모르겠다. 그저 부재의 슬픔을 크게 느낄 뿐이다.

어제 저녁엔 간만에 느루를 끌고 나갔다. 벌써 낮엔 너무 더운 느낌이고 햇볕도 싫어 어둑어둑해진 다음 도둑고양이처럼 언덕을 내려가 개천변 산책로를 달리는데 초저녁에 운동 나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자연하천을 복원한다고 크게 광고는 했지만 군데군데 큼지막한 바위를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개천 양쪽엔 수생식물을 심으면서 그 언저리를 시멘트로 떡칠해댄 꼬락서니를 보면 공무원들 가운데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 과연 없는 것인가 의아하다. 멀쩡하던 동산에 괜히 파이프를 올려 인공폭포랍시고 물을 내려뜨리고 우스꽝스럽게 복원한 물레방아와 조악한 나룻배 옆으로는 유치찬란한 조명과 함께 틀어놓은 음악분수가 용을 쓰는데, 인상 쓰며 얼른 그곳을 지나치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그저 좋아라 분수 앞에 모여 구경을 한다. 처음엔 거의 매일 돗자리까지 싸들고 나와 음악분수를 구경하는 인파가 상당했다. 아직 복원이 끝나지 않아 더러운 물비린내가 풀풀 나는 개천변 산책로라도 없었으면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어디서 무얼 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월드컵공원 인공호수 주변에도 삼삼오오 밤마실 나와 돗자리 깔고 놀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났다. 가보진 않았어도 한경둔치 역시 같은 풍경이었을 거다. 휴일날 사람들로 빽빽하게 뒤덮힌 한강 둔치를 보면, 사람들이 원래 물가를 그토록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공원 같은 휴식처를 미치도록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인지 어리둥절하다. 드라마만 봐도 주인공들이 걸핏하면 한강 둔치에 서서 고민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무작정 거니는 장면을 빠뜨리는 드라마가 거의 없는 지경이니, 방송 쪽에서도 한강 둔치 없었으면 어쩔뻔했나 싶다. 멋대가리 없이 뚝 자른 듯 시멘트로 싸발라놓았을망정.
이제 또 자연하천으로 복원한다고 한강변도 죄다 파헤쳐놨던데 말만 그렇지 은근슬쩍 또 여기저기 시멘트로 발라놓을 게 뻔하다. 그나마도 좋다고 날마다 산책나가고 자전거타고 돗자리 들고 소풍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누군가는 또 생색내는 놈한테 잘한다고 박수쳐주겠지. 느루와 바람을 쏘이러 나간 마당임에도 심히 뒤틀린 심사로는 곱게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쨌거나 느루를 타고 느낀 밤바람 덕분에 오래 된 압력솥은 어제 또 폭발의 위험을 살짝 넘기고 열이 식었지만 아직도 안전한 배출용 밸브를 마련해볼 방법은 요원하고 그래서 오늘도 쉽사리 푸르르 푸르르 끓는 소리를 내고만 있다.
Posted by 입때
,

초보운전

놀잇감 2009. 4. 12. 17:20

내가 처음 운전을 시작하며 몰던 차는 <무려> 수동이었다. 그땐 면허증을 딸 때 수동, 자동 구분없이 무조건 수동으로만 따야했고, 지금보다 <스틱>이라고 부르는 수동 변속 자동차가 훨씬 더 많이 돌아다녔던 것 같다. 자동은 기름값이 많이 든다고 해서 소형차들은 웬만해선 다 수동으로 뽑았으니까. 그건 사실이었다. 그때 기름값이 워낙 싸기도 했겠지만, 나의 첫차인 프라이드FS로 나중에 안산까지 출퇴근을 하느라 매일 꼬박 왕복 100km를 달릴 때에도 한달 기름값이 단돈 7만원이었던 걸 기억한다. 지금은 꽉 채워서 기름 한번 넣으려 해도 7만원이 더 드는데. ㅠ.ㅠ
내가 처음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하던 때의 직장은 삼성동 코엑스였기 때문에 꽤 먼 거리였고, 시내를 가로지르든, 강변도로나 올림픽대로를 타든 초보운전자인 나에겐 난코스였다. 주말에 사촌동생과 몇번 시험운행을 해봤음에도, 처음 혼자 차를 몰고 출근하는 날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일찌감치 집에서 출발한 나는 하필 강변도로에서 사고를 낸 버스 뒤에서 차마 옆으로 끼어들지 못해 낑낑대며 계속 서 있느라 30분쯤 허비하는 등 온갖 삽질을 거쳐 9시가 다 돼서야 코엑스에 당도했고, 그나마도 양옆에 아무 차도 없는 곳을 찾아 주차를 하느라 드넓은 옥상 주차장(초보시절 코엑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면 사무실 못 찾아갈 것 같았다)을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 전날 일요일에 사촌동생과 출근 예행연습을 할 땐 당연히 허허벌판이던 주차장이 출근시간 임박했을 땐 꽉 차있는 게 당연했으니, 엘리베이터에서 제일 머나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헐레벌떡 달려가야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총무과장이 얼른 집에 전화부터 하라고 일렀다. 물론 그땐 핸드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첫 출근을 무사히 했는지 엄마한테 보고를 하기로 약속했었는데 7시도 되기 전에 집을 나선 내가 9시 다되도록 연락이 없자 식겁한 울 엄마가 여러번 전화를 했던 모양이었다. ^^;;

얘기가 자꾸 삼천포로 빠지려고 하는데, 암튼 나는 손수 예쁘게 쓴 <초보운전> 표시를 최소한 6개월은 달고 다닐 작정이었다. 막힌 길에서 조금씩 전진하느라 클러치를 밟은 왼발이 끊어질 듯 아파와도 그럭저럭 잘 나가다 뒤에서 괜히 빵빵거리면 당황해 덜컥 시동을 꺼먹거나 언덕만 나타나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초보시절, 그나마도 초보 딱지를 달고 버벅거리면 베테랑 운전자들이 알아서 피해주거나 더러 착하게 양보를 해주는 일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에선 <초보운전> 표시는 3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매일 출퇴근하니 감각도 금세 익힐 텐데 뭘 6개월까지 다느냐고 놀렸다. 지금 기억으론 아마 4개월 정도 <초보운전> 표시를 달고 다니다, 꽉 막히는 언덕길에서 섰다 가야했을 때 뒤로 밀림의 정도가 내 나름대로 쓸만하다 싶어 흔쾌히 초보 표시를 떼냈던 것 같다. 하지만 표시만 뗐을 뿐이지, 갑자기 옆으로 거대한 트럭이 달려든다든지 어디선가 오토바이가 튀어나온다든지 급정거를 해야할 때 심장이 벌렁거리며 핸들이 흔들리는 초보증상은 그 뒤로도 몇달은 지속되었다.
어제 거의 반년만에 다시 자전거를 타면서 새삼스레 까마득한 그 시절이 떠올랐다. <초보운전> 표시를 달고 다니던 어리숙한 나의 운전솜씨와 지금의 자전거타기 실력이 비슷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원래도 도로교통법 상 자전거는 이륜차라나 뭐라나 자동차에 해당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하여간 어제 내가 깨달은 자동차와 자전거 초보운전의 공통점은 이렇다.
1) 갑자기 아이가 튀어나오거나 진로가 막히거나, 빠르게 옆으로 지나치는 다른 자전거를 만나면 여지없이 당황해 핸들이 흔들린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2) 앞지르기를 할 때 얼만큼의 속도와 여유 거리가 필요한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3) 급회전은 당연히 무리고, 천천히 회전할 때도 얼만큼의 회전각도가 안전한지 자신이 없다.
4) 언덕길과 평지에서 기어변속이 서툴다.
5) 꽤 오래 공백기를 두면 그나마 익혀둔 운전감각이 떨어진다.
6) 베테랑 운전자들의 조롱섞인 위협과 앞지르기를 감내해야 한다.
7) 정신 흐트러질까봐 운전(특히 주차중엔!)하며 음악을 못 듣는다. ㅋㅋ
^^;
그나마 수동 자동차와 달리 자전거는 당황해도 시동은 안 꺼먹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하며 어젠 정말 조심조심 느루를 몰았다. 어려서부터 탔으니 자전거를 탄 역사는 무려 30년이고, 자동차 운전의 역사 또한 그 절반이 넘는 18년인데 자전거는 중간에 공백기가 너무 길어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다. 자전거에도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는데, 운전을 하다보면 굳이 초보 딱지를 붙이지 않았더라도 척 보면 초보 운전인 걸 알 수 있는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오듯 베테랑 자전거족들에겐 나 같은 초보 자전거족이 한눈에 파악될 것도 같다. 사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 옛날 내 눈엔 유독 <초보운전> 표시를 붙인 자동차들이 많이 보여 괜한 동질감을 느꼈듯이 어제도 내가 보기에 초보 자전거족인 사람들은 대강 찝어낼 수 있을 듯했다. 초보 주제에 내가 앞지르기를 해야할 정도로 왕초보인 이들도 더러 있었을 정도!

무슨 일에든 서툴고 긴장되는 처음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참 쉽게 잊는 것 같다. 옛날에 <당신도 한 때는 초보였다>라고 쓴 초보운전 글귀가 유행을 하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초보운전> 표시를 보는 일조차 드물어진 듯하다. 자동 변속기 운전면허가 생겨나고 도로주행까지 시험 과목에 들면서 다들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일지, 괜히 <초보운전> 표시를 붙여 무시당하기 싫은 자존심 강한 초보들이 많아진 때문인지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매사에 초심을 무시하는 풍조가 대세인 건 확실한 느낌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나 같은 사람이나 초심을 다잡을 수밖에 없는 초보임을 강조하며 사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반년만에 나는 다시 자전거 초보 인생을 시작했고, 작년의 행태를 봐서는 내년 이맘때도 어리버리한 자전거초보로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전거를 타고 느끼는 싱그러운 바람결이야 초보든 베테랑이든 똑같지 않겠나!  
Posted by 입때
,

드디어~

놀잇감 2009. 4. 10. 21:27

느루 바퀴에 바람이 빠진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산책로 군데군데에 자전거 바람 넣는 도구가 설치되어 있지만, 보통 주입구론 느루에 바람을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순간 어찌나 좌절했던지.
완전히 바람이 빠진 상태라 질질 끌고 가거나 차에 싣고 가야 바퀴에 바람을 넣을 수 있다는 걸 핑계로 지난 가을부터 지금까지 계속 어두운 골방 구석에 처박아놓기를 몇달. 먼저 펌프를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바람을 넣을까도 생각했지만 어떤 주입구가 맞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지레 걱정이 들어 최상책은 자전거를 산 가게에 싣고 가서 흙받이도 달고 펌프도 사고 바퀴에 공기도 주입하고 몇번 안타긴 했지만 전체적인 점검도 받으리라 별렀었다. 그러고는 오늘 저녁, 밥을 워낙 일찍 먹은 바람에 아직 훤한 하늘을 본 순간 에라 모르겠다 충동적으로 양평동까지 느루를 싣고 다녀왔다!
바퀴에 바람이 하나도 없는 걸 설마 타고 오진 않았겠죠!라고 외치는 사장님에게 절대 아니라고 변명을 하면서도 어찌나 민망하던지. 그렇게 바람빠진 바퀴에 올라타고 자전거를 몰았다간 바퀴 다 찢어진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규~.
아무려나... 모든 종류의 자전거에 바람을 넣을 수 있는 펌프도 사고, 하필 가게에서 떨어져 장렬히 전사한 라이트(자전거 살 때 공짜로 받은 거였다)도 새끈한 걸로 하나 새로 사고, 흙받이도 달고, 귀여운 인형도 하나 사고... 자전거값의 절반에 달하는 돈을 쓰고 돌아왔다. ㅋㅋㅋ 그나마도 원래 흙받이를 다는 공임 만원을 따로 받아야하는 건데, 사장님이 그건 안받으시겠다고 해서 고맙고 죄송했다. 만원 깎아주신 고마움으로 자전거 가게 광고나 해드려야지(겨우 만원 깎아준 것 같고 웃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물건 살 때 절대 못깎고, 또 깎아준다고 해도 내심 불편하다. 얼마나 바가지를 씌웠길래 깎아준다고 하는 걸까 싶어서.. -_-;; 그래서 정찰제를 선호함. 근데 이번엔 정찰 가격에서 깎아주신 거고, 처음에 자전거 살 때도 다들 주는 거라고는 해도 라이트, 미등, 물통꽂이도 거저 받았기 때문에 옛날에 받은 친절까지 합해서 고마웠던 것임). 상호는 RMP 스포츠이고 다혼에서 나오는 각종 미니벨로와 루이가노, 브롬톤은 물론이고 산악자전거도 종류별로 많은 것 같았음. 양화대교 건너서 직진하다가 경인고속도로 고가 밑에서 유턴하면 되는데, 건물 뒤에 주차장도 있어서 굳이 자전거를 타고 가지 않아도 되는 게 난 좋더라. 자전거를 타보니 주변기기며 악세사리들은 또 왜 그리 많은건지, 사실 점검 기다리는 동안 자전거 뒤에 다는 예쁜 가방도 지를까말까 몹시 고민을 했는데, 애써 참았다.
이젠 바퀴에 바람빠져서 자전거 못탄다는 소리는 절대 못하게 됐으니 슬슬 저질체력 좀 단련해보려나...
이런 얘기는 얼른 만방에 알려야 주변의 압력으로라도 느루에 콧바람을 쐴 것 같아 돌아오자마자 득달같이 적고 있다. 내일은 드디어 꽃길 한판 달려봐야지~~~!!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