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도 복잡한 김에 떠오르는 대로 세웠던 오늘의 목표는 세가지.
첫째, 인간이나 애완견 장애물이 출몰하더라도 유연하게 우회하여 자전거 급히 세우고 내리지 않기.
둘째, 벨 울리지 않고 속도 조절만으로 장애물 피해가기.
셋째, 홍제천에서 월드컵 공원 가는 길 숙지하기.
결론적으로 말하면 목표달성에 성공한 건 하나밖에 없다. ^^
정답은 세 번째!
미리 찾아 공부한 바에 의하면 홍제천과 불광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불광천으로 올라가면 월드컵 공원과 이어진다고 하기에 일단 또 다리 아플 때까지 가보자 페달을 밟았더니 정말로 불광천으로 접어들자마자 월드컵 경기장이 보이고 금세 월드컵 경기장역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이 나타났다. 내심 계단만 있으면 어쩌나, <느루>를 들고 계단을 걸어오르는 무모한 짓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 고민했는데 그건 나의 기우였고 비탈길을 오르니 곧장 월드컵 경기장역 3번 출구가 보였다. 지난번에 갑작스레 한강을 맞닥뜨렸을 때만큼이나 감격했고 느루와 내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ㅎㅎ
시간은 한강까지와 동일한 25분. 느낌상으론 지난번보다 조금 빠르게 달렸다 싶었는데, 확실히 지난번보다 덜 힘들기도 했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월드컵 공원가는 길이야 익히 잘 알고 있으므로 경기장 주변만 휘휘 한바퀴 돌아 정세를 살핀 뒤 물 한 모금 마시고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갑자기 사람들이 앞을 막아서더라도 초보 티 펄펄 풍기며 급정거를 한 뒤 자전거에서 내려서는 짓은 하지 않으려던 오늘의 다짐은 월드컵경기장 근처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길을 막더라도 차라리 나몰라라 길을 가는 사람은 피해가기가 수월한 반면 뒤에서 오는 자전거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비켜주려 하면 꼭 내가 피하려던 방향과 겹치기 일쑤라 더 위험하다. 길을 가다 누군가 마주치게 되어 피하려고 하면 계속 같은 방향으로 서로를 방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경우 그럴 땐 그냥 상대방이 무례하게 가던 길을 가주었으면 고맙겠다. -_-;;
해서 오늘도 의도하지 않게 딱 한번 급히 자전거를 세워 발을 디뎠다가 다시 출발해야 했다. 음... 초보운전 붙이고 다니며 수시로 수동 자동차 시동 꺼먹던 십수년전이 마구 떠올랐다. +_+
자전거를 탄다고 하니 지인들이 음악은 주로 뭘 듣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나는 자전거 베테랑이 되더라도 음악을 들으며 다니게 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다. 차에서도 음악을 그리 크게 듣는 편이 아니라 이어폰을 꽂더라도 작게 들으면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오감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도 아니고 난 그냥 길가에 피어난 토끼풀, 개망초, 애기똥풀꽃, 제비꽃, 달맞이꽃, 강아지풀, 왕바랭이(아는 이름 총동원했다ㅋㅋ)같은 들꽃, 들풀 구경에 더 심취하고 싶다. 과거에 라디오나 카세트테이프 틀어놓고 공부를 시작하긴 했어도 진짜 몰입할 땐 아무 소리도 없는 정적이어야 하는 나의 까탈스러움 또는 단면적인 두뇌는 지금에도 이어져 정말로 열심히 일 할 땐 음악을 틀어놓지 못한다. -_-;;
그러니까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에게 자전거 타기는 <나름> 집중해야 하는 육신의 과제랄까. ㅋㅋ
오늘 세운 목표 가운데 두번째, 벨 사용하지 않기는 자동차 경적소리와 같은 맥락에서 세운 것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나는 정말이지 쓸데없이 빵빵거리는 인간들을 혐오한다. 보행 신호등이 채 바뀌기도 전에 빨리 신호 무시하고 가라고 뒤에서 빵빵대는 인간이나, 인도와 차도 구분이 없는 오묘한 길에서 저만 빨리 가겠다고 짐승 몰아세우듯 사람들에게 빵빵대는 인간들을 보면 확 받아버리고 싶다. 지들은 골목길 걸어갈 때 없나!! 물론 나 역시 경적을 안쓰고 살 수야 없지만 길가다 느닷없는 경적소리에 자지러지게 놀라 기분이 몹시 나빴던 경험들 때문에라도 최대한 소리를 적게 내려고 애쓴다. 짧게 아주 살짝 누르면 <뿌앙뿌앙> 또는 <빵빵>소리가 안나고 <뿌..뿌..>나 <아니라 <삐..삐..>에 가까운 소리가 나는데^^ 그것만으로도 보행자는 충분히 비켜줄 수 있기 때문이고, 내쪽에서 다른 차를 독촉하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지만 그때도 살짝만 눌러대면 그래도 덜 미안하다.
암튼 지난번 한강까지 갈 때는 <뒤에서 자전거가 오고 있습니다>라고 알리는 목적으로 미리미리 벨을 울리기도 했는데 그러면 오히려 사람들이 당황하여 가던 길에서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더욱 위험해지는 것도 같았다. 해서 그냥 좀 속도를 늦춘 뒤 조용히 추월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자전거 타는 다른 사람들도 내가 진로를 방해했을 때나 벨을 울렸을 뿐 놀라운 속도로 나를 앞질러가는 고수들도 일부러 벨을 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도 다섯 식구가 과감하게 산책로 양방향을 완전히 막고 걸어가는 이들과 맞닥뜨리는 바람에 딱 한 번 벨을 울리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산책로 우측통행 문화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는 한 벨을 안써보겠다는 나의 목표 역시 달성되긴 힘들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질문. 자전거 타기 역사가 오래되신 분들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앞서 가는 보행자나 자전거를 추월해야 할 때, 벨을 울리는 것이 안전할까요 안 울리는 것이 안전할까요? 보행자 입장에서도 뒤에서 띠링띠링 거리면 기분 나쁘거나 위압감을 느끼진 않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알려주시와요. ^^;
아무튼... 약 한시간만에 월드컵 경기장까지 왕복하고 돌아왔어도 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는 걸 보니 조금씩 체력이 좋아지고 있는 건 확실하다! 비록 내일은 여기저기 또 조금씩 결리겠지만 이번 연휴엔 <느루>에게 덜 미안하다.
그리고 느루와 함께 바람 쏘이고 돌아오니 공연히 성질부리고 뛰쳐나갔던 이유도 결국엔 내 속좁음 때문임을 깨달았다.
[#M_그런 의미에서 실토하자면...|얼른 닫자|연휴 저녁이랍시고 나름 신경써서 내가 만든 오늘 저녁의 메인 요리는 부추잡채였다.
채썬 돼지고기를 소금, 후추 뿌려 밑간 해놓고, 당근, 양파, 홍청 피망, 부추를 채썰어 들기름에 살짝 복다가 굴 소스로 마무리했고, 신경쓴답시고 만날 전자렌지에 찌던 꽃빵도 찜그릇에 올려 부드럽게 쪄놓았는데... 맛을 보신 왕비마마께서 한 말씀 하셨다.
"냄새는 아주 그럴듯하게 나더니 실제로 먹어보니 별맛없다."
ㅠ.,ㅠ
내 입에는 맛있기만 하더구만!!!
대체로 요리솜씨가 좋지만 가끔 너무 실험적이어서 진짜로 맛없는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나도 맛없다고 실토한단 말이다!
자전거 타고 나서 마음 다 풀렸대놓고 사진 보니 다시 울컥 하려고 한다.
다시는 부추잡채 해주나 봐라. ㅋㅋㅋ
하지만 왕비마마는 워낙 솔직해서 마음에 없는 입에 발린 말을 못하는 성격이다. 그런 아줌마가 우울증은 왜 걸리는지 참 불가사의할 때가 있을 정도. +_+
하지만 나 스스로 식탐녀이기 때문에 맛에도 민감한데, 절대로 <맛없지> 않았다! 채소 많이 드시게 하려고 일부러 싱겁게 만들기는 했지만 늘 먹던 정도였는데, 나중에 들은 엄마의 변명은 <냄새에 비해서> 맛이 없다는 것이었다지만 째뜬 밴댕이 속알딱지 늙은딸은 순간적으로 불끈 열이 올랐었다는 부끄러운 이야기다. ;-P
한 요리 한다고 자부하는 인간의 자존심에 살짝 금이 갔기 때문일 텐데, 자꾸 까탈스러워져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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