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따라 베트남에서 지내다 잠시 귀국한 친구와 쌓은 5월의 추억 기록이다. 아이클라우드 용량 절약을 위해 사진 지우기 전에 후다닥 아까운 사진만 여기다 퍼놓았었는데 뒤늦게 정리한다. ㅠ.ㅠ
여긴 북촌의 무슨 공방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주방인듯한 문짝에 조르륵 올려둔 고양이 인형이 예쁘다.
이 얼마만에 보는 펌프인가! 옛날 친가, 외가 마당에 모두 이런 펌프가 있었다. 빨갛게 녹이 슬었는데도 맑은 물이 올라와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몇년전에 월요일마다 엄마가 애청하시는 <우리말겨루기>에 '마중물'이 문제로 나왔는데, 엄마랑 나랑 동시에 답을 외쳐 서로 쳐다보며 웃었더랬지.
익선동의 어느 카페 마당이었던듯. 이때 가보고 오래된 좁은 골목과 학옥집들이 맘에 들어서 누굴 시내에서 만날 때마다 일부러 약속장소를 종로쪽으로 정해 거의 반년간 한두 달에 한 번씩은 갔더랬는데 벌써 이미 많은 곳이 변해버렸다. 아직 골목 곳곳에서 살림집으로 살고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얼마나 시끄러울까 걱정되 되고;;
같은 날 세운상가엘 왜 갔더라? 뭔가 행사가 있다는 안내문을 받았던 것 같다. 옥상에서 작은 공방 좌판이 열려 있었던 건 별 흥미가 없었는데, 그 옆 전시실에서 빈티지 그릇 벼룩시장이 열려 반색하며 구경했다.
언제부턴가 종로구에선 한옥집들을 사들이고 개조해서 한옥문화원이라든가 한옥 체험관이라든가 한옥도서관으로 일반에 공개를 하고 있다. 궁궐 쌤들 따라서 북촌 답사 따라갔다 발견한 보물 같은 한옥집들을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서 친구들도 데려갔다. 당연히 다들 어찌나 좋아하던지. 한 여름에도 누마루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정말 시원하다. 이날은 비가 와서 나름대로 또 운치가 있었던 기억...
뜻밖의 누수공사로.. 아니 정확히는 사람들에 치여 마음 고생이 너무너무 심한 나날을 보내며 당연히 불면에 시달렸다. 수시로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열이 막 오르고 (어쩌면 이건 폭염 탓으로 생겨난 온열 질환의 징후일 수도 있겠으나;;) 거의 24시간 에어컨을 틀어도 심신이 계속 고달펐다.
스트레스로 바짝 긴장한 머리가 때로는 활자로 달래지는 경우도 있으나, 이번엔 도무지 책을 들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 깊은 숲속에 들어가서 소리라도 고래고래 지르고 싶은 심정?
그래서 정말 미친 척 무박2일로 지리산 천왕봉을 가자는 이야기에 홀라당 넘어가 금요일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 결정엔 점점 몸쓰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드는 상황도 한몫을 했다. 내년엔 무릎이나 발목이 더 아파서 등산과 영영 이별을 할 수도 있는데! 하루라도 더 젊을(?)때 로망인 지리산에 한번 가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필 최고기온이 36, 7도를 육박하는 한여름에 간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설마 지리산은 시원하겠지 막연히 상상했다.
생판 모르는 일반 산악회 주최 지리산 등산에 나포함 지인 4명이 끼어서 가는 형식이었는데, 놀랍게도 무박2일로 새벽 3시부터 지리산 종주 33km를 13시간만해 해치우는 A팀이 16명이나 됐다. 혹시 버스 출발 시간을 넘겨 낙오되면 서울로 돌아오는 건 각자 알아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단다. 우어... 우리는 거의 최단코스로 10시간만에 천왕봉을 찍고 내려오는 B팀. 13.5km를 10시간에 완주하면 된다고 했다.
밤새 버스에서 자야 수월하게 등산을 할 수 있을 테니 안대와 목베개까지 준비했지만 ㅠ,ㅠ 그럼 그렇지... 당연히 숙면을 취할 순 없었고, 어느 틈에 3시가 다 되어 A팀이 성삼재에서 우르르 버스를 내렸다. 곧이어 3시 30분쯤. 우리도 백무동 계곡 주차장에 당도했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을 켜고 등산 준비를 했다.
새벽 지리산은 역시나 시원해서 23도를 가리켜 다행이었지만, 도시락과 얼음물, 커피와 간식까지 사상 최고의 무게로 꾸린 배낭이 어깨와 허리를 짓눌렀다. 물론 가장 무거운 건 비몽사몽 피로감과 불안감이 더해진 나의 육신이었다. 등산 고수이신 선배님의 안내로 빠르지도 않게 차근차근 경사를 오르는데 음...이상하다. 왜 숨이 잘 안 쉬어지지? 자꾸만 다리가 처지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해도 폣속에 공기가 잘 가 닿지 않는 느낌이랄까.
동행들이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리더이신 선배님은 속으로 나 때문에 천왕봉은 글렀고 장터목 대피소까지만 갔다가 하산해야겠다고 계산을 하셨다고 한다. ㅠ.ㅠ 말도 안되는 추측일 수도 있겠는데, 내 짐작으로는 폐소 공포증 같았다. 어둠 속에서 각자 헤드랜턴에 의지해 자기 발밑만 보고 가는 야간 산행이 상상속에선 되게 멋질 것 같았는데 현실의 나에겐 그냥 공포였던 모양이다. 조금 오르다 쉬기를 반복하며 내가 변명을 했다. 해만 뜨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실제로 사방이 서서히 밝아지자 숨이 잘 안쉬어지는 것 같은 짓눌린 느낌이 사라졌다. 미안한 마음에 그다음부턴 내가 맨앞장을 섰는데 초반에 많이 까먹은 시간을 벌충하겠다는 의욕이 간간히 과다해져 오버페이스! ㅋㅋ 이내 선두를 선배님께 양보했다.
여기가 바로 장터목 대피소
새벽 4시부터 오르기 시작해 장터목대피소에 당도한 것이 8시 30분쯤. 6시반쯤 간식으로 빵을 좀 먹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싸온 도시락을 먹을 순서였다. 선배님이 돼지고기와 라면사리까지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끓였고, 나는 산에서도 굳이 잘 먹겠다는 일념으로 얼린 냉면 육수와 도토리묵, 양념한 김치, 채썬 오이로 묵사발을 만들었다. 장터목 휴게소에선 바람이 꽤 불어 그늘에 있으면 바람막이를 입고도 덜덜 떨렸던 참이라, 뜨끈한 찌개도 먹고 곧이어 시원한 묵사발도 먹으며 꾸역꾸역 엄청난 양의 밥을 삼켰다. 점심은 하산 후에 느즈막히 식당에서 사먹을 작정이라 최대한 많이 먹어두라는 선배님의 당부 말씀. ㅋㅋ
해발 1750미터라는 장터목 대피소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그야말로 장엄했다. 와.. 지리산이 정말 큰산이로구나. 사방으로 겹겹이 펼쳐진 능선이 끝이 없었다.
부른 배를 두들기며 다시 천왕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 시간이 9시 30분.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1.7km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상까지 목표시간은 대략 11시. 정상에서 좀 노닥거리다가 3시간 동안 하산해 점심 먹으면 딱이겠군, 했다.
보통 산에서는 1km 걷는데 30분을 예상한다. 헌데 지리산 표지판은 거리표시가 너무 박한 느낌! 서울 근교 산에서 느끼는 거리감보다 너무 멀었다. 500미터 거리 줄이기가 어찌나 어렵고 오래 걸리던지. ㅠ.ㅠ 틀림없이 표지판 잘못됐다고 투덜투덜 나중엔 욕이 막 나왔다. 아니 이게 무슨 1.5km냐고! 3km도 넘는 것 같은데!
길이 멀어서 욕이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운무와 구름에 휩싸였다 벗어졌다를 반복하는 풍경은 기가 막혔다. 우와...
물론 걱정스럽기도 했다. 계속 이렇게 운무가 몰려오면 천왕봉에서 시계가 별로 안 좋을텐데.. ㅠ.ㅠ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이왕이면 하늘이 맑게 개기를 빌며 바위 비탈을 오르고 또 올랐다.
드문드문 고사목을 만나 높은 산임을 실감하며 드디어 1915미터 천왕봉 정상!
걱정했던 대로 정상 부근은 구름에 휩싸여 시계가 좋지 못했고... 좁아터진 정상석 부근엔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이고 무셔라.
째뜬 내가 드디어 지리산 꼭대기를 올랐다는 뿌듯함과 행복함에 휩싸였다. 한라산 꼭대기는 어렸을 때 멋모르고 올라가긴 했지만 이미 오래 전에 남한 최고봉을 올랐고, 두번째로 높은 지리산 천왕봉도 드디어 구경했으니 이제 남은 건 설악산 대청봉 뿐이로다! ㅎㅎㅎ 장하다.
하산길은 중산리 계곡으로 3시간만 내려가면 된다고 했으니 최대한 정상 등반의 기쁨을 만끽하며 아이스커피도 한 모금 마신 뒤 11시반쯤 슬슬 하산을 시작했다.
이제부터 복병은 역시나 한낮의 더위였다. 천왕봉 정상 코스는 능선길이 많지 않아 그리 더운 줄 모르고 올랐는데, 내려갈 때는 숲을 벗어나 뙤약볕으로 걷는 길이 꽤 됐고, 28,9도 정도라고는 해도 습기와 열기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물은 총 2리터 정도면 넉넉하다고 했었는데;;; 1.5km쯤 남았다고 했을 무렵 결국 내 물은 동이 나버렸고 후배와 동기에게 물과 음료를 얻어마시며 민폐를 끼쳐야 했다.
산에서는 절대 주변 사람들 물 뺏어먹으면 안된다고 배웠는데 어흑. 게다가 총 6.5km였던가... 3시간이면 된다고 하던 하산길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지. 가도 가도 끝이 없어! 하도 지리지리해서 지리산이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체력은 점점 고갈되고 다리는 무겁고, 땀은 쏟이지는데 계속 덥고... 어휴. 경사가 가파르지 않는 한 숨가쁠 이유도 없는 하산길은 속도만 잘 유지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체력이 떨어져 산을 내려가는 게 고역일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산길에 비하면 오히려 천왕봉 올라가기 직전엔 쌩쌩한 편이었네 그려.
폭염에 무박2일로 지리산에 간다고 했을때 주변에서 혹시 탈진할까 우려된다고 했었는데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숨도 안찬데 너무 힘들고 진빠지고 금방이라도 눕고 싶고. 마지막 삼거리대피소였던가... 거기서 쉴 땐 나도 모르게 배낭을 맨 채 의자에 드러누워버렸다.
하여간 10시간을 예상했다가 11시간 반만에 무사히 내려와 중산리 계곡 앞 식당에서 대충 씻고 옷도 갈아입은 뒤 감자전과 비빔밥으로 맛나게 늦은 점심을 먹었다. 서울로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은 5시. 종주팀 중에는 무려 9시간만에 33km를 달려 내려와 벌써부터 쉬며 기다린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인간이 아닌게야. ㅠ.ㅠ
무사히 서울로 돌아와 24시간 만에 신사역 앞에서 버스를 내리고 보니, 정말 지난 시간이 꿈결 같았다. 우와 내가 지리산 천왕봉엘 올라갔다니! 당연히 그날은 지리산 숲의 정기를 받으며 체력을 탈탈 소진한 뒤끝이라 집에 돌아와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
그러나 지리산 효과는 며칠 가지 못했다. 매일같이 부딪쳐야 하는 아래층 아저씨 아줌마와 말을 섞기만 해도 엄마도 나도 혈압이 올라갔다. 우엑!
번역은 과거 수도자들의 수행 도구였다는 말도 있듯이, 드물게 잠깐씩 짧은 작업을 할 땐 그래도 마음의 평화가 온 것 같았지만, 불면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다면 잠 안오는 밤에 뽀시락뽀시락 또 생산적인 취미생활을 하는 수밖엔 없었다. ^^
마침 출판사 다니는 후배가 서울도서전 홍보물로 만들었다는 에코백을 준 게 있었는데, 보라색과 민트색 중에 내 취향대로 민트색 프린트를 고르긴 했어도 딱히 내가 좋아하는 '푸른 색'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반대편을 푸른색 자수로 장식하리라!
자수책을 뒤적여 여름에 맞게 시원해보이는 도안을 골라 가방에 밑그림을 그렸다.
요즘엔 알록달록한 자수보다 이렇게 단색 자수 도안이 더 마음에 든다. 나중에 자수액자를 만들어도 예쁠 것 같다.
왼쪽이 선물받은 에코백의 원래 정면이고, 가운데는 내가 자수를 놓아 새로이 탄생한 정면이고... 에코백의 단점인 수납 문제를 해결하고 지저분한 자수 실매듭도 가리고자 한쪽에만 천을 대고 주머니도 달아 오른쪽 사진처럼 안감이 탄생했다.
생각보다 꽤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 자수실도 많이 들어, 처음 2개나 사놓았던 DMC 791번실이 모자라 중도에 멈췄다가 동대문시장에 다녀와야했다. 벌써 두어번 들고 나가보았는데, 이젠 정말 가벼운 천가방이 아니고선 어깨가 아파서 뭘 매고 다닐 수가 없다. 이것저것 많이도 넣고 다니는 내 취향엔 크기가 좀 작다 싶지만 그래도 캔버스 천이 두툼한 편이라 꽤 오래 애용할 것 같다.
가방의 완성과 더불어 더 이상 맘고생 할 일이 없으면 했으나.. 지난주에도 또 접촉사고로 전전긍긍할 일이 생겨 밤에 또 자수함을 꺼냈다. ㅠ.ㅠ 이번엔 간단하게 선인장 도안을 이리저리 참고해 냉장고 마그넷을 만들었다.
마침 친구 생일도 돌아오겠다;; 지난번에 받은 기프티콘에 답례겸... 자수 브로치따위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친구의 취향을 감안한 선택이다.
친구의 이니셜까지 새겨넣고도 막상 냉장고에 붙여보니 넘나 예뻐서 선물하지 말고 그냥 내가 가질까 한참 고민했다. ㅋㅋ (그러나 아직 전달하지 않았으므로 계속 유혹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또 만들긴 마그넷 재료가 부족해서리...
요 전 포스팅을 올린 뒤 비로소 나름 마음의 정리도 많이 된 느낌이고, 불면도 어느정도는 해소된 듯하다. 어차피 창피한 김에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나의 노력과 그 결과물 또한 자랑하고 싶었다. 남아도는 잉여력과 생산성의 결과물이 예쁘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은가. ㅠ.ㅠ
내 인스타그램엔 주로 먹거리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지만 하루에 인스타에 사진 여러개를 올리는 건 좀 민망하다. 그렇다고 블로그 포스팅 하루에 몇 개나 하는 건 안 민망하냐, 그건 또 아니지만... +_+ 블로그는 아무래도 부러 찾아 읽는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노출되는 매체이고, 인스타그램은 접속과 동시에 타임라인에 여러사람의 사진이 무조건 주르륵 떠버리니까 뭔가 많이 올리면 폐를 끼치는 기분?
하여간에 각설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열심히 해야하는데 또 하기가 싫어져서 (적당한 단어와 문장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핑계다 ㅠ.ㅠ) 오늘 해먹은 과카몰리 사진을 자랑해야겠다. 지난번 파피네 집들이에서 하도 맛있게 먹은 나초와 과카몰리가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마트 가서 밥블레스유의 지령을 받은 듯 나도 모르게 완도 활전복을 집어든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새 아보카도와 레몬, 베이컨을 카트에 담고 있더군. ㅎㅎㅎㅎ
그러고는 오늘 점심 때, 두부와 우유를 갈아 야매 콩국수를 해먹을까 싶었던 마음을 접고 과카몰리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아보카도 두개 중 하나가 좀 덜 숙성되어 잘 안 으깨졌지만 하는 수 없지. 파피한테 레시피를 좀 더 자세히 묻지 않았던 걸 후회하며 대~에충... 베이컨을 다져 볶아 키친타월에 기름을 빼놓고는 양파와 방울토마토 적당히 썰어 넣고 소금, 후추, 레몬즙 뿌려 과카몰리를 만들었다. 나초에 듬뿍 얹어먹듯, 오픈 샌드위치로 와구와구 먹을 작정으로다가.
해서 미리 식빵 두조각을 넷으로 자른 뒤 과카몰리를 얹었다. ^^; 여기다 미숫가루 탄 우유까지 한끼로 먹으니 어휴 배불러...
좀 남은 과카몰리는 또 저녁때 양상추 샐러드에 얹어 먹었음.
빵에 얹어 먹을 땐 잘 몰랐는데 소금을 넘 많이 넣었는지 좀 짜더라. 암튼 파피한테 팁을 얻은 이 과카몰리의 매력은 쫄깃하게 씹히는 베이컨이 아닐지. 아보카도 사다가 절반 뚝 잘라서 껍질째 접시에 담아 발사믹 소스 살짝 끼얹어 숟갈로 퍼먹는 걸 '반찬'이라 우길 때도 있는데... 좀 귀찮긴 해도 여름이 가기 전에 한번 더 '시원한 점심 메뉴'로 과카몰리 샌드위치는 시도해봐야겠다.
밥블레스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프로그램 보다가 또 혹해서 삼복더위에 해먹은 음식이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잡채. -_-;; 최화정이 했던 말인가, 이영자가 했던 말인가.. 암튼 잔치 음식의 완성은 갈비찜과 잡채라는 말을 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명절 때 갈비찜과 잡채가 없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왜 있지 않은가? 사실 해마다 내 생일 즈음엔 왕비마마가 말짱하게 건강했던 적이 드문 것 같다. 해서 생일날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는 '요식 행위' 역시 매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왕비마마가 살림살이에서 손 놓은지가 몇년인데! 사실 간도 못맞추고 맛도 잘 못내신다. 그런데도 아들들이나 며느리들이, 혹은 친척들이 고명딸 생일에 엄니가 미역국은 끓여주었느냐고 묻는 질문에 흔쾌히 대답을 못하는 상황 또한 왕비마마가 못 견딘다는 것이 문제다. (아 제발 다들 좀 생일에 미역국 먹었느냐는 타령 좀 그만 하라규!)
아 난 정말 왜 요리를 잘해가지고! ㅋㅋ
째뜬 그래서 올해도 생일 전날 밤에 꾸역꾸역 노친네는 미역을 불리고 쇠고기를 참기름에 볶아 미역국을 끓여냈고(물론 나의 코치가 필요했다 ㅎㅎ), 생일날 아침 모녀가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그렇다면 또 내가 가만 있을 순 없지 싶어 아침부터 복닥복닥 땀흘려 만든 것이 바로 이 잡채다. ㅎㅎㅎ 갈비찜은 달아서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잡채는 가끔 먹고 싶어져서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만드는 반찬인데 뭐 내 생일 기념으로 못 만들쏘냐!
칼질을 좀 무서워해서 채썰기가 서툴러서 그렇지 맛은 훌륭했다.
아침부터 꾸역꾸역 미역국과 잡채에 밥을 먹고 나가 점심 때 또 함박스테이크를 먹어댔으며, 하필 초복날이라 저녁때 또 삼계탕을 끓였더니만... 요즘 가뜩이나 부실한 위는 탈이 나고 말았었다. 세끼를 다 과식하다니 원 멍청하기 이를 데가 없다. ㅠ.ㅠ
의식의 흐름처럼 또 이어서 생각나는 음식이 있으니 그것은 그 다음날 바로 해먹은 월남쌈이다. ㅎㅎㅎㅎ
생일이자 초복날 도저히 삼계탕의 닭을 다 먹지 못하고 죽만 좀 퍼먹은 뒤 다음 날에도 닭죽으로 연명했었는데;;; 아무리 영계라도 퍽퍽한 닭가슴살의 처리 방법이 고민이었다. 그렇다면 라이스페이퍼에 싸먹지 뭐... ^^; 쪽쪽 찢어 맛살과 함께 월남쌈을 해먹었단 얘기다.
폭염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끼니를 건너뛸 수는 없다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더워도 입맛이 없어도 또 꾸역꾸역 먹으면 먹어진다는 게, 먹고 싶은 음식이 끊임없이 생각난다는 게 어쩐지 식충이 같아서 부끄럽다. 하지만 이영자의 외침대로 인생 뭐 있겠냐고!더욱이 이젠 차츰 늙고 병들어가는 것밖엔 남지 않았다고 생각이 드는 중년의 인생이기에 더더욱 하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은 가능한 한 누리고 사는 게 옳다고 우기련다.
역시나 시간이 막 남아돌던 시기에 양성평등 시각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강의를 좀 들으러 다녔다. ^^; 거기서 따라간 답사지가 또 나의 나와바리나 마찬가지인 홍지문과 세검정, 백사실 계곡, 부암동이었다.
금원당은 1817년에 원주에서 태어나 14살의 나이로 부모의 허락을 받아 남장을 한 채, 제천 의림지, 단양팔경, 금강산, 관동팔경, 설악산, 한양을 유람했던 조선시대의 놀라운 여성 여행가란다. 세상에나... 그 옛날에! 꽤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음은 틀림없으나, 이름은 알 수 없고 '금원'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었다고 한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규방 깊숙이 들어앉아 여자의 길을 지키는 것이 옳은 일인지,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세상에 이름을 날릴 것일랑 단념을 하고 분수대로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일종의 여행기인 <호동서락기>에 담긴 호방한 글이다. (이 책의 한문 번역은 <강원여성시문집>에서 옮긴 것이라고 하니 나 역시 출처를 밝혀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물론 반나절 만에 금원당의 여정을 다 따라갈 순 없는 일이고 한양 나들이를 했을 때 걸었던 창의문밖 여행 행적을 좇았던 것인데;;; 그간 다 가본 곳이었어도 새삼 느낌이 다르고 놀라웠다. 겨우 열넷, 열다섯 살에 전국이나 다름없는 조선의 방방곡곡을 여행하고,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느껴 열여섯 살에 스스로 관기가 된 조선 여인. 20대 중반엔 양반의 소실이 되어 다시 관서지방을 여행했고, 한양으로 돌아온 30세 무렵엔 유명한 문인 선비들과 삼호정 시사모임을 하며 교류했다고 한다. 34세때 드디어 여행기인 <호동서락기>를 쓰고 37세에 사망.
제주 거상 김만덕이 임금에게 청해 금강산 유람을 했던 것도 대단하다 생각했었는데, 조선 시대 '한미한 집안'의 십대 소녀가 금강산, 설악산 유람이라니 정말 신기하고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우린 왜 입때껏 이런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걸까? +_+
탕춘대성의 출입문인 바로 이 홍지문 앞에서 읊었을 법한 금원당의 여행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산이 몹시 험준한데 성가퀴가 견고하다. 이것이 바로 북한산의 성지이다. 계획에 빈틈이 없고 일을 도모함에 그 뜻이 크고 치밀하여 선왕께서 뒤의 자손들을 위하는 까닭을 여기에서 우러러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세검정에서 백사실 계곡으로 오르던 길에 자리잡았던 사찰. 19세기 초에도 있었다는 것 같다.너럭 바위가 어마어마..
이날도 꽤 더웠는데 푸르른 녹음과 깨끗한 백사실 계곡의 물소리가 참으로 좋았다.
얼마전까지도 부암동 답사때 여기가 백사 이항복의 집터라는 설명을 들었었는데;; (내가 국민학교때 소풍왔던 곳이기도 하다! ㅋㅋ) 뭔가 더 기록이 발견되어 추사 김정희 별장터로 밝혀졌단다.
풀이 무성한 연못엔 물에 발처럼 드리워졌을 정자의 주춧돌 기둥만 남아있다
부암동 어느 지붕과 들장미가 예뻐서
무슨 드라마에도 나왔던 집이라는데 이런 나무 질감 넘 좋다
저 멀리 백악의 한양도성이 보이고...
부암동 언덕 어디쯤.. 아마도 카페였던 것 같은 한옥집들의 아리따운 자태.. (저 노란꽃 이름이 '루드베키아'라고)
마지막으로 창의문에서 답사를 마쳤다. 숭례문이 불타 복원되면서 자하문으로도 불리는 창의문(북소문)은 한양도성의 대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화재다. 창의문 문루 천장에 있던 이 그림이 뭐였더라. +_+ 봉황이 아니라고 들은 것 같은데 ㅋㅋ 까먹었다.
지난번 여러 화가들의 총석정 그림을 보며, 겸재의 금강산전도를 보며 남북관계가 정상화되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나도 꼭 한번 금강산 구경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금원당 행적을 따라 걸으며 그 마음이 새삼 굳어졌다. 나름 '등산인'으로서도 금강산은 한번 가봐야하지 않겠나! ㅎㅎ
거의 성사될 것 같았던, 오래된 동네 낡은 집들의 공동 재건축이 완전히 무산되고.... 게다가 토지 구획 문제로 소송을 한차례 겪으며 앞마당 일부를 요상한 모양으로 떼어주고 그쪽에 토지 단독 소유권을 인정하라는 판결을 받은 터라 집을 매매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사하며 짐도 확 줄이고, 새집에서도 좀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은 좀처럼 실현되지 못할.. 그저 꿈이 되고 마는 것인지. 어휴. 한숨. 암튼... 그래도 뭔가 일을 겪을 때마다 (지인들의 부모님 말고 후배나 친구 본인의 뜬금없는 부음을 들을 때라든지) 단촐하게 살아야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야지 충동이 일면서 가끔 짐을 정리한다. 물론 그래도 수십년 넘게 눌러앉아 사는 집의 살림살이란 손도 대지 못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모든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노인으로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오래된 물건을 끔찍이 여기는 게 당연한 심리라는 왕비마마 덕분에, 뭘 버리기도 쉽지가 않은데 그래도 요번엔 꽤 많은 물건을 처분했다. (되다말다 했던 고물 진공청소기, 빨래걸이로 전락한 헬스 바이크, 스탠드형 나무 옷걸이, 오래된 나무 밥상, 빈 도기 화분들... 그리고 수많은 가방과 옷가지들! - 옷과 가방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고 나머지는 대형폐기물 신고했다.)
그러고도 좁은 집이 답답하게 여겨져 책장 배치를 좀 달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여지껏 끼고 있던 원서 전공책들을 죄다 노끈으로 묶어 내다놓았고, 중고책으로 팔만한 책들을 수십여권 골라내 몇 차례에 걸쳐 알라딘에 들고가 예치금을 두둑히 마련했다. ㅎㅎㅎ
그러고도 남는 시간엔 또 충동적으로 작업실 방에서 뒷베란다로 통하는 철문과 창틀에 페인트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뭔가. 인터넷으로 폭풍검색을 좀 하다가 배송되는 시간도 기다리기가 싫어져서 후다닥 동네 페인트 가게로 달려나갔더니 하필 일요일. 두군데 다 문을 닫았더라. 그렇다면 방법은 다이소뿐. +_+
다이소에서 파는 한통에 2천원짜리 초소형(혹시 착각했나 찾아보니100ml짜리도 아니고 60ml였다 ㅠ.ㅠ) 젯소와 페인트를 두개씩 집어왔었는데, 이것은 곧 미친짓으로 판명된다. 생각보다 얼마나 페인트가 많이 필요하던지! 똑같은 걸 몇번이나 더 사다 날랐는지 원... 페인트가 살짝 연두빛이 도는 반광 '미색'이었는데 창틀과 나무색깔 창문 4개에 모두 2번씩 칠하려니 ㅠ.ㅠ 어휴... 사실 그렇게 두번씩 열심히 두껍게 칠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면 그 앞에 책장을 옮겨다 놓을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싸구려 책장 2개와 오래된 장식장을 싹 다 버리고 5단 책장 넓은 걸 2-3개 사들여 작업실을 다시 꾸미리라 마음 먹었으나... 나 혼자선 큼지막한 장식장을 내다버릴 방법이 없었다. +_+ 나사를 죄다 풀고 문짝을 다 떼어 부셔버릴까, 동생들 찬스를 써볼까 여러가지 고민을 했으나... 결정적으로 비전문가 동생 둘이 무거운 장식장을 가파른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누굴 잡을라고...
누렇게 변색된 벽지 어쩔;;
해서 책장 사는 것도 일단 임시 보류. 책장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일단 버릴 책과 팔 책을 솎아낸 뒤, 마루와 방에 따로 놓았던 '체리목' 3단 책꽂이를 세로로 나란히 붙여놓았다. 겨울에 찬바람도 막아줄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옛날 집이라 케이블 TV나 인터넷 전용선 따위가 모두 베란다문과 창문으로 들어와야 하기 때문에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어마어마하다. 문풍지로 최대한 막아도 한계가 있음.
하여간... 마스킹테이프까지 붙여가며 (종이 벽지에 붙인 부분은 나중에 뗐더니 죄다 들고 일어나 허옇게 됨 ㅠ.ㅠ )이틀에 걸쳐 낑낑대고 칠한 창문과 문쪽 증거샷이다. ㅎㅎ 책장 놓기 전에 사진을 찍어놓은 게 없어서 방금 찍음 ^^; 여긴 주로 내가 번역한 책 증정본만 모아놓았기 때문에 클릭해도 사진 안 커집니당~)
하여간... 셀프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 정말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알량하게 창문 4개 페인트 칠하면서 흘린 땀이 얼마며, 버린 옷이 몇벌인지! ㅋ
그런데 페인트칠을 하면 할수록 단순한 작업에 재미가 붙어, 이젠 방문짝과 벽도 페인트를 칠하면 어떨까 마음이 자꾸만 들먹들먹했다. 거의 20년쯤 전에 '연분홍색'으로 칠해놓은 방문과 욕실문이 너무도 마음에 안들었기 때문이다. 욕실 문엔 이미 아이보리색 무늬목 시트지를 사다 붙여놓은지 몇달 되었었다.
그렇다면 이젠 방문 차례! ㅎㅎㅎ그런데 도배한 지도 워낙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벽지가 너무 도드라져보이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면 실험적으로 한쪽 벽면에만이라도 페인트를 칠해보리라는 밑그림이 나왔다.
해서 완성된 것이 아래 사진 모습이다. ^^; 최대한 누런 벽지를 안보이게 사진에 담으려니 참으로 알량하군..
양쪽 문 사이의 좁은 벽엔 원래 키재기용 스티커가 붙어있고 조카들 넷이 폭풍성장하며 달라진 키높이와 날짜가 온갖 색깔의 필기도구로 촘촘히, 매우 어지럽게 적혀있었다. 나름 소중한 그 역사를 지우는 게 찜찜했지만 ㅠㅠ 고모도 이제 헌집일망정 깨끗이 좀 살고 싶단다. 대신 녀석들의 사포 모빌 작품을 옮겨 달았으니 용서해주길...
문짝에 칠한 페인트 역시 너무 얕잡아보고선 다이소 무광 페인트 500ml짜리를 선택했다가 몇번이나 더 사러 나가야했다. ㅠ.ㅠ 2-3리터짜리 친환경페인트 한방에 주문했으면 되었을 것을... 으휴.. 암튼 이쪽 벽면을 다 하얗게 칠해 나머지 벽들이 더욱 누렇고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 거울까지 온통 아이보리색으로 칠한 한쪽 벽면의 변신을 보며 다음번엔 방에 셀프 도배를 해볼까, 또 페인트칠을 해볼까 고민 중이다.
다행히 7월 접어들면서 이런저런 바쁜 일(진짜 일 말고 그냥 잡다한 신경쓸 일)이 생겨 더는 셀프인테리어에 관심을 집중하지 못하게 되어 슬며시 기쁘기도 하다. 머리 쓰는 일 말고 이제 남은 평생은 단순하고 몸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선망을 잠시 품었지만, 나처럼 부실한 몸으론 그것도 불가능할 거라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만큼 단순 페인트칠마저도 어찌나 고된지 폭풍 붓질을 하고나선 삭신이 다 쑤셔서 팔목과 어깨에 며칠 파스를 붙여야했다.
혼자선 꽤나 뿌듯했는데, 집에 다니러 온 올케들에게 문칠을 자랑했더니만 손잡이 안 빼고 그냥 칠했다고 핀잔을 들었다. 아 그건 옛날에도 원래 그냥 안빼고 칠해서 어쩔 수 없었거든요! 욕실 문은 손잡이도 새로 사다 교체했는데 방문도 사실 손목 아파서 못 돌리는 경우도 있는 둥근 손잡이 말고 일자형 손잡이로 바꿀까 하는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 아직도 멀고 먼 셀프 인테리어의 길!
달력을 찾아보니 중앙박물관 <칸의 제국 몽골> 전시회를 다녀왔던게 벌써 한달도 더 지난 5월 21일이다. 기억 휘발되기 전에 후기 남기려고 바로 며칠 뒤에 사진만 대충 골라 올려두고는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5월말엔 그러고 보니 나름 친구들이랑 많이도 놀러다녔네그려.
몽골은 언제고 꼭 가보고싶은 여행지이기도 해서, 몽골 관련 전시라기에 기대가 컸다. 중박에서 특별전시하는 공간인 본관 건너편 전시실이 아니라, 본관 내부에 따로 기획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더라. 만나는 장소를 당연히 매표소 앞이라고 했다가 예상한 곳에 매표소가 없어 다들 좀 당황했으나 우리에겐 휴대폰이 있으니 헤맬 일은 없었다.
벌써 한달도 더 지나버려서 사진을 보아도 그때 느꼈던 세세한 감동이나 신기함은 잊히고 말았다. ㅠ.ㅠ 암튼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도 거슬렸던 건 해설하는 분이 자꾸만 '저희 나라'라고 설명했던 거다. 몽골을 우리나라보다 높일 생각이 있었던 건 분명 아니겠고 관람객을 너무 존대하려다 보니 초심자의 실수겠거니 짐작하면서도 너무 귀에 거슬려서 나중엔 설명듣다 뒤로 빠지기도 했다. 중앙박물관의 도슨트도 다들 자원봉사로 알고 있다. 기본 소양은 다들 검증되었을텐데 왜 기초적인 말실수로 점수를 깎이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날의 짜증스러운 마음 같아선 중앙박물관 게시판에 전시 날짜와 시간대를 올려 담당자의 잘못을 '시정'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도 고민했으나, 결국 게을러서.. 그리고 또 뭔가 짠하기도 해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ㅋ
하여간에 전시는 볼만했다. 관람료가 6천원이라보니 ^^; 특별기획전시 치고 비싸지 않아.. 뭐 이런 느낌이었고 그래서 가성비가 좋았다고 느꼈던 것도 같다. 몽골은 국보급 문화재를 전시하는 대규모 박물관이 마땅히 있질 않아서 몽골에 막상 가도 이런 정도의 문화재를 한꺼번에 보긴 힘들다고 하는 것 같다. 암튼.. 몽골의 선사시대부터 칭기즈칸 시대까지 생활상과 역사를 훑어볼 수 있고, 신기하고 멋진 유물과 기록들이 꽤 많았다.
아래는 실제로 사용했던 걸까, 의례용일까 아니면 장식품일까 궁금했으나 결국 묻지 못했던, 주요 유물 안장이다. 사진 잘 찍었다고 스스로 흡족했음. ㅎㅎ
황후의 옷 치고 덜 화려하다고 느낌 ^^;
아마도 황후의 신발;;
'마두금'이란 전통 악기
정교한 공예품으로 소개된 물건들이었던 것 같은데 굳이 왜 찍어왔는지, 내가 왜 올렸는지 기억 안난다. ㅠ.ㅠ 경복궁 꽃담이나 아미산 굴뚝처럼 몽골에서도 도자기로 정교하게 구운 장식물들을 만들었단 게 신기했나? 에효...
암튼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의 대나무 뼈대를 벽처럼 세워 공간을 나누고, 마차와 식기 같은 생활 유물도 볼 수 있게 해놨다. 칸, 카안, 카간..의 차이를 듣기도 했는데...
척추협착증 수술 때문인지 엄마는 식탁 의자의 나무 등받이를 불편해해서 늘 쿠션을 대고 앉아야 한다. 근데 쿠션은 자꾸 부엌 바닥으로 떨어져 성가시고 그렇다고 리본 달린 방석을 묶어놓으니 또 보기가 싫어서 결국 어버이날 선물 겸 은방을 꽃 자수를 놓은 쿠션 등받이를 만들었다. ^^;
우선 때 안 타는 진밤색 천을 사다가 은방울꽃 자수를 놓고...
등받이로 씌우려면 나름 튼튼해야 하므로 심지와 안감을 넣어 퀼트 비스무리하게 꿰매고...
얼렁뚱땅 솜을 넣을 겹천까지 꿰매 완성! (내가 만들었지만 어떻게 이렇게 그럴듯하게 탄생했는지 돌이켜보아도 잘 모르겠다. ㅎㅎ)
아래는 구름솜을 사다가 채워넣고 의자에 씌운 모습이다.
엄마는 물론 매우 만족하시었고... 한참을 뜸들이다 결국 내가 앉을 의자는 쿠션솜 없이 그냥 자수 등받이로만 만들어 씌웠다.
보통 사진이 들어가는 내용은 휴대폰으로 사진만 먼저 올려놨다가 텍스트는 나중에 컴퓨터 앞에 앉아 적어넣고 포스팅을 완성하는데;; ㅠ.ㅠ 일 없다고 컴퓨터를 아예 멀리하다가 실수를 저질렀다. 완성되지도 않은 포스팅을 공개하다니 창피하도다.. ㅎㅎ 그럼에도 계속 컴퓨터 전원조차 켜지 않는 게으른 나날을 며칠 보내고 이제 겨우 긴 메일을 써야해서 자리 잡고 앉았다.
비공개로 차곡차곡 쌓아둔 포스팅 갯수가 꽤 되는데;; 영화나 전시, 책 본 후기는 아무래도 좀 더 공들여서 생각하며 써야하니 도무지 마무리가 되질 않는다. 노상 침방나인 같은 자수 포스팅이나 하고 있으려니 그 또한 민망하여 저어하였으나 노출된 김에 또 핑계삼아 자랑질을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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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력 폭발로 인해 틈틈이 이어지는 취미생활의 기록이다. 아마 손목과 팔꿈치가 아프지 않다면 며칠에 하나씩 뭔가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르겠으나, 하루이틀 빡세게 바늘을 쥐고 나면 손가락마디까지 죄다 뻣뻣해져서 그나마 다행히 쉬엄쉬엄 하고 있다.
나름 작품 완성 순서대로 설명해보자면...
1. 컵받침
음력 1월이었던 작은올케 생일 선물로 만든 작품이다. 자수책을 보며 본인이 마음에 드는 도안을 골랐고, 브로치 같은 건 잘 안하고 다니니 실용적인 컵받침이 좋겠다고 주문했다.
뒷면엔 퀼트용 천을 골라 꿰맸더니, 친구가 뒷면이 더 예쁘다는 망언을 하며 약을 올렸다. 프린트 원단이 더 예쁜데 고생되게 이런 짓을 뭣하러 하느냐고.. ㅋㅋ
그러게... 손자수, 손뜨개, 손바느질... 요즘 같은 디지털, IT 최강 시대에 왜 이런 아날로그 회귀성 노동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뭐...내눈엔 이게 더 예쁘니까? ^^*
나름 생일선물이라고 리본으로 묶어 포장해 건넸더니, 생일 주인공은 아까워서 어디 컵받침으로 쓰겠냐며 벽에 걸어놔야겠다고 했다. 아니 그럼 안 되지! (오른쪽 아래는 재단이 잘못돼서 크기가 좀 다르고 정사각형 아니라고 클레임 들어왔었다;; ㅋ)
얼마간 걸어뒀다가 컵받침으로 쓴다고 하더니만 요샌 쓰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암튼... 컵받침으로 첫작품이었는데, 컵을 올려두려면 무늬를 가장자리쪽으로 작게 넣어 컵을 올려도 자수가 보이도록 하는 도안을 써야한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그치만.... 난 계속 우길란다. 컵받침도 가운데 무늬가 더 예쁘다!
집에 가서 이렇게 걸어두었다고 보내온 인증샷이다
2. 꽃 브로치
장미와 수국을 표현한 건데 그래보이나? ^^;
이건 전작에 이어 음력1월 마지막날 생신이었던 울 왕비마마를 위해 만든 선물이다.
꼬물꼬물 노상 자수를 놓고는 있는데 막상 당신에겐 하나도 선물을 안해드려 속으로 좀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마침 생신도 돌아오겠다, 얼른 브로치를 수놓았다. 왕비마마 취향에 맞게 분홍분홍, 보라보라한 느낌의 장미와 수국.
여기저기 달아보다가 니트 조끼에 가장 잘 어울린다며 몇번 하고 다니셨더랬다.
1, 2번 선물은 같은 날 증정식을 했으므로, 포장 완제품(?)도 함께 찍어봄
3. 이니셜 브로치
한달동안 동거하고 있던 친구가 1, 2번 선물 제작의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었으니... 게다가 또 3월말 출국 바로 다음주가 생일이었으니 하나 작품을 만들어주겠다고, 뭐든 골라보라고 호기롭게 자수책을 들이밀었더랬다.
허나 친구는 고생스럽게 뭘! 아무것도 하지 마! 이런 식이었다. 그럼 내 맘대로 젤 쉬운 꽃브로치 하나 만들어준다고 협박했더니 팬심 폭발하여 '그분'의 이니셜을 새겨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ㅎㅎ 그분이 사인할 때 덧붙이는 옆으로 뚱뚱한 하트까지 나름 도안도 팬클럽을 여기저기 뒤져서 새기고 꾸며 선물했다.
자수실을 완전히 구비하지 않은 때라... 이제보니 잔잔한 꽃색깔이 좀 더 다채로웠으면하는 마음이 있네그려. 암튼 이 브로치는 친구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다.
4. 별자리 컵받침
아주 수월하고 시간 덜 드는 단색 도안을 골라 또 다시 꼼지락꼼지락 만들어본 컵받침 세트.
열심히 다렸더니 번떡번떡 ㅋㅋ
이 또한 크기가 살짝 제각각이다. 아 몰랑. 공산품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모서리 꿰매서 뾰족하게 뒤집기가 만만칠 않았다. 핑계라면 앞뒤로 제법 두툼한 리넨천을 붙였더니만... ㅎㅎ
5. 꽃 브로치 again
엄마한테 만들어드린 장미꽃 자수를 분홍바탕에 놓아본 것. 이십대부터 입때껏 핑크공주로 살고 있는 후배를 위해 고른 배색이다. ^^;
근데 이런 꽃자수 브로치는 나 같은 사람이나 좋아라하지 개인적인 스타일상 막상 받고도 처치곤란으로 느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에코백 같은데나 달면 모를까... 근데 또 딱 떨어지는 정장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에코백 패션을 모른다! ㅋㅋ
6. 자수 손수건
마지막으로 주문(?)받은 선물이다. 설날에 모였을 때 큰올케는 손수건용 자수 도안을 골랐다. 원래는 파우치에 놓인 꽃다발이었는데 자수 손수건을 갖고 싶으시다고...
해서 지난주 생일에 맞춰 완성하느라 다시 손수건이랑 실을 더 사러 동대문에 다녀온 후에야 마무리된 작품. 레이스까지 달려있는 자수용 손수건을 찾으려 발품을 꽤 팔았으나 못 구하고 ㅠ.ㅠ 오버로크 처리된 1500원짜리 손수건을 사와 가장자리를 홈질로 꿰맸다. 자수가 아까워서 그냥 놔둘 수가 있어야지!
원본사진과 비교샷 ^^
원본은 바탕이 베이지색이라 꽃봉오리가 흰색이지만, 흰바탕인 손수건인지라 연노랑으로 바꿨고, 주인공의 주문대로 선물받을 이의 이니셜도 새겨넣었다. 내가 해놓고도 계속 감탄하며 사진도 여러장 남김 ㅋㅋ
원래는 한쪽에만 꽃다발을 수놓을까 했으나...
반대편이 넘 심심할까봐.. 그리고 또 나의 이니셜도 어딘가 남기고 싶어서 욕심을 냈다. 전문가의 도안을 따라한 게 아니고 내 맘대로 배열해놓고 막 예술가적 감수성 폭발했다고 자뻑모드.. ;-p
불안감 탓인지 책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멍하니 놀기만 하기엔 식충이스럽고... 손목은 아파도 뭔가 생산적인 노닥거림을 하는게 확실히 시끄러운 정신 가다듬기에 도움이 된다. 한땀한땀 수를 세며 샘플 사진이나 도안과 자수를 비교하고 있으면 정말로 잡생각이 들 수가 없다. 혹시라도 잡생각이 삐지고 들어온 순간 바로 틀려 풀어야하는 사태 발생! 귀찮아서 풀지 않고 개성이라 우기겠다 맘먹은 부분도 많지만, 책에 있는 도안이 아니고 인터넷을 뒤져 시도해 본 '작품'들도 이 정도면 됐지 싶어 대체로 흡족하다.
1. 또 브로치
도안이 작아 가장 쉽게 뚝딱 끝낼 수 있는 브로치로 또 뭘 만들까 하다가, 2개를 골라 만들었다.
이건 완성 작품 컷이고... 왼쪽 라벤더 꽃의 '불리온 스티치'를 얕잡아보고 대충 연습하다 도통 모양이 안나와서 유튜브 동영상 보며 다시 제대로 악혔다. 무엇을 배우든...유튜브에 정말 없는게 없다! 일일이 동영상 찍어 올리는 분들에게 정말 깊이 감사할 일이다.
왼쪽 위는 사진만 보고 홀로 따라한 실패작 ^^
스파이더로즈 스티치라고 하는 장미 크기가 맘에 안들어 하나 더 만듬
유튜브 영상 보고 제대로 완성한 라벤더꽃 브로치 ㅎㅎ
2. 있던 가방에 자수를 또 놓음
4계절 중 겨울 빼고 거의 노상 들고 다니던 청치마 재활용 가방은, 축 쳐진 어깨에 두툼한 겨울 외투까지 걸치고선 도무지 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겨울엔 그저 크로스백이나 배낭만 들어야 하는 부실한 어깨. ㅠ.ㅠ
암튼 봄이 오면 곧 다시 들고 다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에코백을 캔버스 삼아 나무를 수놓았다. 갖고 있는 책 도안에 마침 데님천을 바탕으로 한 게 있어서 이거다 싶었던 것.
그러나 한겹 천을 수틀에 끼우고 자수를 놓아도 쉽지 않은데 안감까지 넣은 두겹 천을 수틀에 끼우고 가방끈까지 훼방을 놓는 상황에서 꾸역꾸역 도안을 옮겨 베끼고 자수를 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이 들고 날때 끈 안쪽으로 실이 지나가거나 반대편 가방 천이 꿰매지거나.. ㅋㅋ 실을 몇번이나 풀어야했다.
그래도 결국 뿌듯한 작품 완성!
아래는 원래 작품 사진과 비교샷. ^^;; 느낌이 꽤 다르다. 내 맘대로 잎맥을 더 넣은 것도 있고 ㅎㅎ
멍하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면 좋으련만 틈만 나면 생선성이 폭발한다. 내가 이토록 조바심 많은 인간인줄 새삼 느끼는 나날이다.
내가 충동적으로 자수를 해볼까 생각했던 적은 전에도 몇번 있었다. 공주였던가 어느 약선밥상 밥집에서 수제 자수브로치를 팔고 있었는데, 진짜 간단한 꽃 수놓아놓고 막 만원 만오천원...(비싸다면서 결국 샀다 ㅋㅋ) +_+ 인건비를 감안해야겠지만 저 정도는 나도 할텐데! 싶었던 거다. (그러나 막상 직접 만들어보면 그냥 사는 게 차라리 싸다는 걸 절감한다. ;-p)
그러다 작년엔 특히 뭔가 손꾸락을 꼼지락거려 뭔가 더 만들고 싶어졌는데 그건 아마도 웹툰 <오늘도 핸드메이드>를 열심히 봤기 때문인 것 같다. 5분스케치를 해보니 웹툰 작가들이 특히나 막 위대해보였고, 더더욱 미술전공자로 온갖 만들기에 능한 황금손 작품들을 보며 감탄함과 동시에 뜨개질과 프랑스자수 욕망이 더욱 불타올랐다. 마침 뜨개질 책도 번역했겠다. ㅎㅎ
어느덧 이 웹툰은 완결되어 단행본도 나왔는데, 책도 사고싶단 생각을 하긴 했으나 막상 사진 않았다. 책까지 사면 거기 들어 있는 모든 핸드메이드 작품을 막 다 따라하고 싶어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ㅋ
암튼 프랑스자수 책 선물도 2권이나 받았고, 또 서점에서 책구경하다 내가 충동구매한 자수책도 있고 이미 발동은 부릉부릉 걸린 상태. 부리나케 필요한 색깔의 린넨과 자수틀을 인터넷으로 사들였다.
문제는 필요한 수십종의 실 색깔을 일일이 인터넷으로 제대로 받기 어렵다는 점. 번호가 워낙 비슷비슷하다보니 실색깔 번호 잘못 받았다는 불평 후기가 엄청났다. 한개 몇백원밖에 안하는 실을 일일이 골라 반품할 수도 없고, 그게 아니면 그냥 필요없는 색깔까지 세트로 장만해야하고... 그 속에 내가 필요한 색깔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고. 쳇.
해서 동대문시장에 한번 나가긴 나가야하는데.. 마음속으로 고민만 하던 차에 덜컥 DDP에 전시를 보러 가게 될 줄이야! 이것은 나의 취미생활을 위한 운명적 계시가 아닌가... 뭐 이런 얼토당토 않은 핑계를 대가며 메모지에 빼곡히 번호를 적어가지고 자수실을 사러갔다. 물론 실을 감아둘 '보빈'이라고 부르는 실패랑 보관상자랑 자수바늘이랑, 수성펜, 트레이싱페이퍼, 먹지, 순간접착제, 브로치 재료까지... 바구니에 죄다 담고나니 ㅋㅋㅋ 7만원이 다 되더라는;; (원단이랑 수틀 구입비까지 더하면 10만원. 흠... 1년 취미생활 비용으론 괜찮은가? 과연 나는 몇번이나 더 동대문 재료상으로 달려가게 될까. 화방 가서 사야하는 나무 판넬도 있는데;;)
아래는 책을 보며 내가 목표로한 자수 작품 사진과... 그아래 손목 염증 도져가며 일일이 번호 적고 실패에 감아둔 아름다운 자수실이다. +_+ 내가 구입한 건 책에서 권하는대로 앵커 사와 DMC 25번. ㅎㅎ
맨처음 감은 흰색 실은 욕심 부리고 실 2개를 한꺼번에 감았더니 뚱뚱해서 안꽂히더라. ㅋㅋ 보빈에 감아 파는 자수실이 죄다 8m였던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ㅠ.ㅠ 암튼 많이 필요할 것 같은 색깔은 2개씩 샀더니만 보빈이 결국 모자랐다.
첫날은 자수실 정리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
둘쨋날밤에 드디어 제일 먼저 시도할 작품을 골랐다. 4개절 나무 브로치 중 가장 간단한 겨울나무.
책에 실린 도안을 트레이싱페이퍼 대고 그려서 다시 먹지대고 천에 옮기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ㅠ.ㅠ 엄청 짓눌러 그려도 잘 안보여! 대충 감으로 비슷하게 하다보니 원본 도안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포스팅용으로 중간샷도 찍으려니 에고... ㅋㅋ 둥근 브로치 판에 씌우려면 저렇게 홈질 후 실을 잡아당겨 주름을 잡아준 뒤 뒤에도 꽁꽁 당겨가며 실로 꿰매야한다. 겨울나무는 어쩐지 첫 작품이 마음에 안들어 하나 더 만들었다.
두번째로는 여름나무. 실 하나에 여러 톤의 초록색이 들어간 실은 단색보다 두배반이나 비싸다. 일반 단색실이 5백원이면 복합사라고 하는 색실은 천이백원. 염색하기 어려울테니 당연하겠지.
여름나무엔 내 이니셜도 새겼다 ^^v
이상하게 같은 크기인데 겨울나무 동그라미가 더 커보인다. ㅋ
일단 여기서 또 하루를 마감하고 그 다음날.. 욕심을 부려 봄꽃 핀 나무를 시작했다. 역시나 연분홍색은 복합사로 프렌치너트 스티치를 해야하는데, 와 소싯적에 자수 좀 놔봤다고 자부심 부렸던 것도 무색하게 책 속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매듭이 풍성하게 안만들어졌다. ㅠ.ㅠ 욕심 부려서 한번 더 휘감으면 막 튀어나오기나 하고.. 젠장. 거의 마지막에야 요령을 좀 터득했는데, 내가 실을 감을 때도 바늘을 꽂을 때도 너무 꽁꽁 잡아당긴 탓이었다. 암튼 여기서도 먹지 대고 그린 도안은 잘 안보여서 막 대충대충 채우기 신공..
가을을 제외한 (생각해보니 가을용 황갈색 원단은 안 산듯;;) 봄여름겨울 3계절이 완성되었다. 첫 작품치고는 이만하면 훌륭하다고 자화자찬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잠들었지만.. ㅠ.ㅠ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손목이 심히 아팠다. 양념통 뚜껑을 열 수가 없을 만큼 ㅠ.ㅠ 해서 당분간 자수 취미생활은 좀 쉬어야겠다. 내일 정형외과 가면 무릎 대신 손목에 물리치료를 받을까 그러는 중.
Foodie 앱으로 찍었더니 사진이랑 실제 브로치랑 구분이 잘 안간다! ㅎㅎ 이것이야말로 사진빨이로다.윗줄이 책속 사진이고 아래 3개가 나의 실습작품임.
원작과 도안은 박성희의 <처음 만나는 프랑스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