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난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4.28 침묵하지 말것 1
  2. 2013.08.15 어떤 고모 8
  3. 2013.05.25 급식 15

너무도 무기력함을 느끼며 그저 침묵하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몇줄 끄적이다 지우고 또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쓰다보면 결국 단순하게 몇몇 화풀이 상대를 찾고 있는 것도 같아서. 분노의 대상은 몇몇 사람이 아니라 줄곧 엉망진창이었던 이 나라와 사회의 시스템인데... 

나 역시 큰 사건을 겪으며 매번 그랬던 것 같다. 분노,  체념, 그리고 망각 또는 무관심.

그래서 다짐의 방편으로 여기 적어두련다. 잊지 말 것, 그리고 침묵하지도 말 것.

 

 

History will have to record that

the greatest tragedy of this period of social transition

was not the strident clamour of the bad people,

but the appalling silence of the good people.

- Martin Luther King, Jr.

 

직업병이 도져서 원문은 무엇일까 검색해봤다. 누군지 꽤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 부조리한 세상은 참 하나도 안변했다. 특히 구석구석 썩은 내 풍기는 이 사회는 좀체 변하질 않는 것 같다. 점점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내가 착한 사람인 줄은 잘 모르겠어도 나쁜 사람, 시끄럽게 아우성 치는 몹쓸 사람이 누군지는 알겠다. 중간쯤 되는 회색분자로 살았다고 해도 암튼... 이럴 때 분명 침묵은 금이 아니다. 다만 깊은 생각없이 설익은 목소리로 떠들어대진 말 것. 독하게 마음먹고 오래오래 지켜보고 행동해야할 때다.

 

History will have to record that the greatest tragedy of this period of social transition was not the strident clamor of the bad people, but the appalling silence of the good people.

Martin Luther King, Jr.


Read more at http://www.brainyquote.com/quotes/quotes/m/martinluth133707.html#aEIqO0uKdmO4GJWW.99

History will have to record that the greatest tragedy of this period of social transition was not the strident clamor of the bad people, but the appalling silence of the good people.

Martin Luther King,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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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will have to record that the greatest tragedy of this period of social transition was not the strident clamor of the bad people, but the appalling silence of the good people.

Martin Luther King,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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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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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모

투덜일기 2013. 8. 15. 18:22

'기집애', '가시나' 소리만 들어도 엄청나게 모욕적인 욕이라고 생각해 눈물을 쑥 빼던 어린 시절. 내가 유독 싫어하는 친척 할머니가 있었다. 말끝마다 애어른 할 것 없이 누구 이야기를 하든 '요년, 조년, 망할년' 따위를 추임새로 넣으니 당연했다. 그 양반 입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온 욕은 뭐니뭐니해도 '베라먹을년'이어서, 뜻이 궁금해진 내가 엄마한테 물어본 적도 있었다. 알고보니 '빌어먹을년'이라는 뜻이었다. 나 원 참. 그뿐인가. 귀엽다며 아이들 볼을 꼬집는 어른들은 원래도 있었지만 그 할머니는 그냥 쥐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아프게 꽉 잡고 마구 흔들어 빨갛게 만들거나 심지어 뽀뽀를 한답시고 뺨을 깨물어 애들을 울렸다. '정말 이상한 할머니'였다. 그러고는 또 매사에 생색을 어찌나 내는지, 옛날 전쟁 피난시절 굶는 이 집(울 외할머니네)식구들을 자기가 쌀퍼다 먹여서 살렸다는 둥(남편이 군무원이라 살림이 늘 넉넉했단다), 특히 울 엄마를 두고는 내가 재를 다 먹여살려 키웠노라, 그 어려운 시절에 입히고 먹인 건 물론이고 학교 공부는 내가 다 시켰노라 입만 열면 똑같은 레퍼토리의 반복이었다. 조카딸 학교 보내주는 고모가 세상에 어디 흔한 줄 아느냐고. (그렇다, 나에게 '고모할머니' 되는 양반이다) 우리 외할머니를 비롯해 다른 친척들은 그 양반의 호언장담에 맞장구도 치지않고 반박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묵묵히 듣고 넘기는 쪽이었다. 하기야 누가 말대답이라도 할라치면 괜히 막 쌍욕을 해대며 언성을 높였던 것 같다. 나로선 몇년에 한번 볼까말까 하는 사람이라는 게 다행스러웠다. 나랑 동생들한테도 제대로 인사 안한다고(인사를 왜 안했겠나. 넉살좋게 큰소리로 반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ㅂ가네 애들 저래 숫기가 없어서 어디 가서 빌어먹기라도 하겠느냐고 보기만 하면 면박을 줘대니 얼굴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내가 커서 어른이 되는 동안에도 그 양반의 큰소리는 변함이 없었다. 특히 'ㅇㅈ년(울 엄마)은 나한테 평생 잘해야한다'는 소리는 잊을 만하면 들려왔다. 아 정말, 사람 이름에 왜 '년'자를 접미사로 붙이는지! 암튼 나는 또 궁금해져서, 진짜로 외갓집 식구들이 그 양반 덕을 많이 봤는지, 특히 울 엄마가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물어보았다. 기막히게도 사연은 이러했다. 

 

전쟁통 피난시절, 울 엄마네는 피난을 내려가다 이미 인민군 세상이 된 걸 알고 이천인가 안성 쯤에서 서울로 되돌아갔단다. 그러고 한참 뒤, 서울 수복이 된 후 부산으로 피난갔던 그 양반 남편이 서울로 찾아왔더란다. 집에 먹을 것도 부족할 테니 군입 하나 줄이는 셈 치고 울 엄마(당시 10살)를 부산으로 데려가겠다고. 부산엔 학교도 열렸으니 학교도 보내주고 배불리 먹여주겠다고 했다나. 외할머니는 울 엄마한테 그럼 너라도 굶지 않게 따라가라 명했고, 착한 엄마는 고모부를 따라 부산으로 먼길을 떠났다. 이 대목에서 이미 짐작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부산에서 울 엄마가 전쟁으로 중단했던 학교를 다닌 건 맞지만 엄밀히 따져 그 양반네 집안에서 울 엄마의 위치는 '더부살이 식모'였다. 군무원이라 집에 쌀이며 기타 양식이 풍족하면 뭐하나,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애보고(어린 사촌동생들이 둘이라나 셋이라나;;)... 아침에도 학교를 가려면 열살짜리 어린애가 군불을 피워 밥을 손수 해서 상차려 바치고 가야했단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것처럼 화가 났다. 결국 제몸 편하려고 조카딸 데려다 식모살이 시켰다는 거 아닌가! 악당이 따로 없다. 그러면서 무슨 생색은! 미친 거 아닌가?

 

다행히 울 외할머니네도 1.4후퇴 때 부산으로 합류를 했고 드디어 모녀상봉을 했더란다. 맏딸만은 끼니 안굶고 배불리 먹으며 학교에 잘 다니고 있을 거라 짐작했던 외할머니는, 그 추운 겨울에 개울가에서 맨손으로 그집 식구들 빨래하느라 손등이 다 터져서 피가 줄줄 나는 딸의 손을 보고는 즉각 사태파악을 한 뒤 그 길로 도로 데려갔단다. (울 엄마 손등엔 그 때 동상에 걸려 터진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고 요새도 가끔 가렵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그 괴상한 양반이 울 엄마를 학교 보내고 먹이고 입히고 했으니 평생 잘해 받아야 한다는 '은혜'를 베푼 기간은 기껏해야 1년 남짓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비단 옷 입고 드러누워(울 엄마의 묘사다;;) 피둥피둥 놀면서(주로 화투를 쳤단다) 열살짜리 조카딸한테 무임금 가사노동 전담시킨 죄값은 어떻게 하느냐고! 그 양반의 만행은 세월이 흘러 울 엄마가 여고입학할 때 다시 속개된다. 가난한 집에서 '기집년'이 무슨 고등학교엘 가느냐고 길길이 날뛰며, 돈 벌어 남동생 뒷바라지나 하라고 울 엄마의 교복을 진탕에 집어던졌다나 뭐라나...  자기한테 월사금 보태달라고 할 생각은 얼어죽어도 하지 말라면서... 아니, 자기가 왜 무슨 참견??

 

내 어린시절 기억 속의 그 양반 모습도 참 가관이다. 짜리몽땅한 키에(145센티미터쯤 되는 것 같다) 부를 과시하기 위함인 듯 요란한 양단 치마저고리에 주로 털배자를 떨쳐입고 동그란 얼굴엔 나비모양의 뿔테안경을 걸치고 나타나선 우리 외할머니댁에서 며칠 묵어가곤 했는데, 나를 보면 최대한 방정맞게 혀를 쯧쯧쯧쯧 차면서 '기집년'이 공부를 잘하면 뭐하니, 팔자만 세진다.. 따위의 악담을 덕담처럼 던져댔다. 평생 가족에게든 남에게든 제대로 이로운 일을 하고는 살았는지 어쩐지도 잘은 모르겠으나, 정말로 그 양반 입에서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건 들어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울 엄마의 우울증이 심해지자, 그 양반은 또 귀신 들린 거라면서 굿을 해야한다고 난리를 피워서(굿을 안하면 화가 온 집안으로 퍼져 자기네도 해를 입는다나 뭐라나;;) 외할머니가 하는 수 없이 울 엄마를 데리고 굿당을 찾기도 했단다. (이날의 장면은 어린 시절 나의 뇌리에도 충격적으로 새겨졌다. 그 양반이 울 엄마를 끌어다가 마당 한 구석에 꿇어앉혔고,  무당이 울 엄마한테 살아있는 수탉을 확 던져셔 내가 막 울었음;;내가 다섯 살 때라는 것 같다)  심지어는 시집살이 때문에 울 엄마의 정신이 병들었으니 울 아버지와 갈라놓으라고도 한 적도 있단다. (진짜 그 양반 정신분석 한번 해보고 싶은 대목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망발을? 울 엄마의 우울증 역사는 미혼시절부터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른이 되어 그 양반의 실체를 알고 난 뒤로 나는 가능하면 그 양반과 마주치는 자리를 피했고 울 엄마와도 상종을 막았으며 최근까지 거의 교류가 없었다. 잘은 몰라도, 아무리 전쟁통이라지만 10살에 엄마와 떨어져 배불리 학교 보내줄 줄 알고 따라간 고모 집에서 졸지에 식모살이를 하게 된 건 울 엄마에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았을까? 그러고도 자기 잘못한 줄 모르는 양반이니, 그런 사람과는 떼어놓는 게 상책이다. 

 

아들 선호사상이 엄청난 데 하필 딸만 셋 둔 양반이라 나의 외숙과는 예로부터 쿵짝이 잘 맞아서 수시로 드나드는 모양이었지만, 울 엄마도 어린시절부터 평생 싫은소리를 들었던 상처가 워낙 컸던지 언제부턴가는 그 양반 돌아가도 문상을 가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그 양반이 불행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건 다 인과응보라고 나 역시 매몰차게 악담을 했다. 딸 셋은 각기 호주와 캐나다로 이민간 지 오래였고, 혈육들도 그 양반의 더러운 입과 안하무인 태도를 못견뎌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딸들이 보내주는 일정액의 생활비로 독거노인으로 사는 수밖에. 아흔이 다 된 나이라 얼마 전부터는 거동이 불편해 요양병원에서 지내지만, 정신은 말짱하여 목에 휴대폰 걸고 다니며 사방으로 전화를 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번인가 집으로 온 전화를 내가 받아서 대충 통화하고 끊었다. 여전히 고압적인 자세였다. 니 엄마는 아파서 그렇다 치고 니년은 젊은 년이 왜 얼굴 한 번 안 뵈주러 오느냐고 했던가. 다행히 왕비마마는 집에 안 계셨고;;) 자식들에게도 버림받은 노인에게 인간적인 동정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뜬금없이 욕설을 퍼붓는 그 양반이 울 엄마의 '고모'이며 나에겐 '고모할머니'라고 생각하면 연민보다는 짜증이 더 치밀었다. 더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귀찮은 존재 정도? 차라리 남이었다면 안타깝고 불쌍히 여길 수도 있었을까? 

 

어쨌거나 엊그제 그 양반의 뒤늦은 부음을 들었다. 지난 설날에도 그 양반을 집에 모셔와 며칠 지냈다던 외삼촌도 나중에 일처리가 다 끝난 뒤 통보만 들었다는 걸 보면, 장례를 위해 딸자식들이 귀국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남보다 못한 '어떤 고모'의 일생이 끝난 셈이다.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여기다 시시콜콜 적고 앉았는지, 그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가깝든 멀든 집안 어르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도리도 외면했던 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진정코 하나도 찔리지 않는 걸. 그보다는 그 양반 문상도 안가겠다 장담하던 왕비마마가, 다음번 절에 가는 날 '영가등'('영가'는 망자를 의미한다)이나  하나 켜야겠다고 한 말 때문인 것 같다. 그 또한 울 엄니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겠지만, 암튼 딸들도 안 들여다보는 노친네의 죽음을 결국엔 어린 시절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조카딸이 챙기누나 싶어져서 나는 또 좀 화가 난다.

 

이런 부끄럽고 시시콜콜한 가족사를 이런 공개적인 공간에 적어놓아도 되는지, 내 얼굴에 침뱉기는 아닌지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결국 공개하는 건 울 엄마가 절에 가서 평생 미워한 고모를 위해 재를 올려 마음을 씻으려는 것처럼 나도 옹졸하게 마지막으로 실컷 망자를 욕해 꽁한 마음을 풀려는 시도가 아닐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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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투덜일기 2013. 5. 25. 12:47

나는 급식과 대체로 친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어려선 당연히 도시락 세대였고, 그 이후엔 선택의 여지가 조금은 있다 하나 단체급식과 다를 바 없는 저렴한 학생식당의 '스텐' 식판과 푸슬푸슬 찐밥과 배식대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싫어서 가능하면 교문 밖 분식집에서 차라리 라면을 먹었다. 그도 아니면 하숙하는 친구의 월식 식권을 축내거나...  배식구 근처에서 풍기는 그 혐오스러운 냄새를 누군가 '잔반' 냄새라고 가르쳐주었다. 어쩔 수 없이 쌓인 음식물쓰레기의 냄새. 저렴한 밥을 먹는 대가로 반드시 본인이 큼지막한 그릇에 쓸어모아 두어야 하는 오물그릇. 방금 맛나게 먹은 음식들이라 해도 한데 뒤섞여 국물과 함께 처참하게 모여 있으면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그 자태. 배식구와 퇴식구가 아무리 멀어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그 잔반의 냄새가 나는 정말이지 토나오게 싫었다.

 

급식에 대한 인식이 완전 바닥인 나와 달리, 유치원이며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어김없이 급식에 익숙해져야 하는 요즘 아이들은 또 생각이 다르겠지 싶으면서도 여전히 염려스럽다. 누군가는 엄마들이 도시락 싸기에서 해방된 게 여성참정권만큼이나 중대한 일이라고 하고, 웬만한 학교는 부실한 엄마표 집밥보다 급식이 훨씬 더 알차다는 말도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급식 담당 외식업체와 교장의 담합이나 유통기한 지난 식재료를 공급하다 걸린 사건이 종종 있는 마당에, 애들 급식이 정말로 영양과 맛 면에서 합격점인지 어쩐지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나도 최근 다시 3500원짜리 구내식당 밥을 2주에 한번 먹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나마 식판은 아니고 큼지막한 스텐 대접을 주로 쟁반도 없이 덜렁 국그릇과 함께 들고가 먹지만 단체급식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구나 느낀다. 잔반통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운동 중이라고 사방에 적어놓은 덕분인지 퇴식구 앞에 놓여있는 잔반통은 흔히 식당에서 뼈통으로 쓰는 작은 스텐그릇이고, 주로 국국물만 버려지는 것 같다.(아마도 자주 비우겠지;;) 언젠가 심히 배가 고팠던 내가 밥을 좀 많이 퍼서 덮밥 양념을 달라고 내밀었더니, 아주머니가 밥 많아서 남기겠다고 덜고 오라고 했다. 민망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내가 봐도 많았다. 그대로 시도했다면 꾸역꾸역 다 먹었을지 남겼을지 그건 모를 일이지만;;) 얼른 전기밥통에 다시 덜어냈다. 자기가 푸는 음식 양도 잘 조절을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퍼준 급식밥을 말없이 다 먹어치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뜬금없이 급식과 잔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건 막내조카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조카가 급식 때문에 고전중이라고 들은 탓이다. 원래 좀 편식이 심하고 양도 적어 염려를 했지만, 유치원에선 그래도 잘 먹는 편이라 적응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근데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훈육방식은 유치원 선생님과는 당연히 다르고, 오십대 베테랑 선생님들이 주로 맡는 1학년 급식은 종종 '억지로 참고 빨리 먹기' 훈련인 것 같다.

 

집에선 밥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으라고 가르치는데 아 왜!? 거기다 '국물' 문제가 또 큰 걸림돌이란다. 우리집은 특히 가계 모두 고혈압 인자가 있어서 간을 최대한 싱겁게 하는 편임에도 '국물은 다 먹지말고 남겨!'가 식탁의 모토다. 수년간 잔소리를 해댄 끝에 왕비마마는 요새 아예 국과 찌개를 젓가락으로 드실 때도 많다. 실버아카데미에서도 매번 강조한단다. 한식의 국물만 안 먹어도 나트륨 섭취량을 대거 줄일 수 있다고. 작은올케는 국을 아예 안 끓여먹을 때가 많단다. 국이 꼭 있어야 밥먹는 식구들이 아니니 상관없다.

 

헌데 조카의 담임선생님은 국을 국물까지 다, 남김없이 먹어야하는 걸 급식교육의 모토로 삼으신 분인가보다. 먹기 싫으니까 아이들이 국은 조금만 달라고 해도, 그걸 또 용납 안하신단다. 모든 반찬을 적당량 다 남기지 말고 먹어야한다고. 아 대체 왜!?!? -_-;; '밥먹기 속도와 국'에 대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틈 사이에서 된통 고생하는 건 물론 조카녀석이다. 먹기는 싫은데 버리진 못하게 하고... 그러다 보니 맨날 밥을 늦게 먹어서 선생님한테 미운털 박히고 혼나고... 심지어 얼마전엔 점심시간 끝나도록 식판을 못 비운 우리 조카에게 국 다 먹을 때까지는 어림도 없다며 홀로 책상에 식판을 두고 5교시를 지내게 했단다. 다른 애들 다 책 펴놓고 공부하는데 혼자 냄새나는 식판 앞에놓고 앉아있으면서 여덟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부 학교에선 환경과 아이들 편식 고치기의 일환으로 반마다 나오는 급식 잔반의 양으로 담임 선생님들 인사고과 점수를 매기는 데도 있다고 들었다. (아 정말 학교가 미쳤다;)  인사고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잔반이 제일 많이 남은 반 선생님은 교장한테 잔소리를 듣기도 하고...  암튼 급식 때문에 아이의 수업권을 박탈했다는 얘기를 전화통화 하다가 전해들은 나는 대번에 "그 선생 미친 거 아냐?"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이들의 편식을 고쳐주려는 의도도 알겠고, 음식쓰레기를 줄여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방침도 알겠고, 1학년이니깐 더더욱 학교 규율에 적응시키려 더 엄하게 한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밥 늦게 먹는다고 선생님이 아이를 미워(?)하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얘기들 들어보니 조카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한테 한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달리기에서 무려 1학년 전체에서 1등을 했다는데, 그거야 담임의 판단력이 개입할 수 없는 분야라서 어쩔 수 없었을 거다. 그 외엔 밥 늦게 먹고 국물 안 먹고, 숫기 없어서 발표 잘 안하고, 수업중에 친구가 말시키면 대답해주다가 걸려서 수업시간 내내 팔 들고 벌 서고, 엄마가 치맛바람 일으키며 찾아다니지도 않는 조카녀석은 그냥 밉상으로 찍혔구나 싶다. 다른 건 몰라도 '그림' 하나는 미술학원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주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뜨르르 실력을 인정받았던 조카의 그림을 담임 선생님은 여태 단 한번도 칭찬해주지 않았다.

 

그림 잘 그렸다고 교실 뒤에 붙여놓고 상도 주었다는 아이들 작품을 가서 보고온 올케 역시 당연히 마음이 상했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제도권 교육에서 원하는 '얌전한' 그림이 따로 있다지만, 디테일한 스케치 묘사력과 색채감과 아이디어가 정말로 남다른(! 팔불출인 거 안다 ㅋㅋ) 그림을 몰라보다니 쳇. 아무리 전문가가 아니라도 미술시간에 과정을 둘러보면 누가누가 얼마나 열심히 그리는지 척 대번에 알지 않을까? 특히나 칭찬과 격려가 중요한 1학년 아이들에게는 아무리 편애의 마음이 들더라도 골고루 상을 나눠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그리다 만 거 같은 그림인데도 순전히 밥 빨리 먹고 담임 말에 고분고분한 아이들이 그렸다는 이유로 잘 그렸다고 상주고 교실에 붙여놓고 그럼 안되는 거 아니냐고!! 애들 그림이 죄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뭔가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지!!

 

급식 문제로 여전히 선생님한테 만날 혼난다는 조카에게 얼마전엔 내가 못된 반항을 가르쳐보았다. <우리 할머니가 국 국물 먹으면 고혈압 걸린다고 먹지 말랬어요!>카드를 써보라고 한 거다. ^^;; 그럼 선생님도 좀 이해를 해주거나, 속으로 엇뜨거라 하거나 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숫기 없고 선생님한테 아직은 잘보이고 싶어하는 조카는 당연히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단다. 어휴...

 

내가 조카였다면 급식 때문에라도 매일매일 학교 가기가 싫을 것 같다. 점심시간만 되면 미리부터 먹기 싫은 국물 흡입할 생각에 체기가 돌지나 않을까. 조카는 원래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양이 작아서 몇 숟갈 먹고는 배부르다며 끝내는 아이다. 오죽하면 몸매가 자코메티의 조각 같을라고. 그렇게 먹고도 콩나물처럼 키는 쑥쑥 자라주니 고맙다. 하여간 학부모 면담때 급식 국물 갖고 애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선 강력하게 항의(?) 내지는 읍소라도 하겠다던 올케는 역시나 아이 맡긴 약자라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왔단다. 미운털 더 박히면 어떻게 해요... 라고. 아아악~~~! 묘안도 없으면서 암튼 요즘 급식만 생각하면 속이 상하다. 여덟살 아이는 계속되는 담임과의 대립을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까. 째뜬 보지도 못한 조카네 담임선생님을 엄청 미워하고 있다. 당신이 인정 안해도, 지우 실력은 어디 안간다규! 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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