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마린룩'이라고 하여 봄과 여름이면 거의 해마다 유행하는 듯한 줄무늬 옷에 마음이 약해진다는 벨로의 포스팅을 보고 곧장 공감했다. 나는 무늬보다 색깔에 집착하는 편인데 마음에 들어서 사고 보면 회색인 경우가 어찌나 많은지. 대체로 무채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흰색, 검정색, 회색의 범주에 속하는 옷들이 가장 많으나 그 가운데도 회색이 워낙 많아서 왜 만날 스님 옷 같이, 똑같은 옷을 사오느냐고 엄마에게 종종 타박을 듣는다. 반면에 벨로가 좋아하는 미색/남색 가로줄무늬 옷은 남들이 입은 거 보며 좋아라하면서도 선뜻 사게 되진 않는다. 가로줄무늬를 입으면 '키가 작아보인다'거나 자칫 잘못하면 '죄수복'처럼 보인다는 속설에 너무 깊이 세뇌당한 탓일까? ^^; 그렇다고 그런 옷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이런 옷도 있다. ㅋㅋㅋ
처음 본 순간 너무도 마음에 들긴 했으나 저 난감한 코사지(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바느질로 꿰매놓은 거다) 때문에 망설였더니, 점원이 정 마음에 안들면 떼고 입으면 된다며 꼬드겼다. 가을부터 겨울 내내 대개 군밤장수 패션(울 엄마가 헐렁한 나의 겉옷들을 보며 빈정거리는 용어;)을 고수하다 봄이 되면 좀 '소녀돋는' 옷에 눈을 돌리는 편이다보니, 아무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사고 말았던 듯하다.
그러나... 역시 코사지 때문인지 짤똥한 길이 때문인지 여성스러운 스타일 때문인지 (물론 세 가지 이유 전부 다 해당되겠지 ㅋㅋㅋ) 이제껏 몇번 안입었다. 그렇긴 하지만 니트 실의 재질도, 공단을 싸서 만든 단추도, 감색과 하늘색과 아이보리색의 조화도 모두 마음에 들어서 그냥 서랍 정리 할 때마다 쳐다보며 좋아하는 관람용 옷.
지난번 이모부 칠순잔치 때 큰맘 먹고 입으려고 스커트와 함께 챙겨두었다가 막상 그날 되니 부페음식 잔뜩 먹고 배나오면 흉측할 것 같아 입지 못했다. ㅎㅎㅎㅎ
암튼 일하긴 싫고 책도 눈에 안들어오고 TV도 별 볼일 없기에 나도 승복 퍼레이드로 트랙백하려고 옷장을 열었다. 회색 옷이 제일 많은 건 사실이나 먹물 들인 스님옷과 가장 유사한 '그레이 헤더' 옷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질 않은 느낌이라 진하고 흐린 회색옷을 몽땅 찍으려니 또 막 귀찮고... 암튼 그래서 그냥 손에 집히는 대로 골라 모았으니 큰 기대는 하시지 마시라. ^^;
가장 최근인 올봄에 산 승복 색감의 회색옷이다. 다이마루로 짠 그레이헤더 저지 원단으로 입으면 축축 쳐지고 늘어지는 게 아주 마음에 드는데... ㅠ.,ㅠ 결정적으로 입을 시기를 놓쳐 한번도 아직 입지 못했다. 4월에 샀을 땐 입기에 너무 추웠고, 5월엔 저걸 떨쳐입고(앞자락이 스카프처럼 한번 매는 형태라 좀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드는;;) 외출할 마음이 들질 않았고 지금은 너무 더워졌다. 그래도 아직은 장마철에 입을 일이 있지 않을까 노리고 있다. :-p
가디건을 좋아해 사고보면 역시나 회색이다. 역시나 소녀돋는 코사지가 달린 왼쪽 카디건은 착탈식 옷핀이라 주로 떼고 입는다. 오른쪽은 사실 스포츠웨어 같은 스타일이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데 순전히 재질과 색깔 때문에 무리해서 산 케이스. 캐시미어, 캐시미어 노래를 부르던 어느 겨울에 발견한 이 카디건은 승복 같은 회색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하늘색까지 덧대어 있으니 깃부분과 지퍼가 마음에 안들어도 그냥 살 수 밖에 없었고, 정말 정말 따뜻해서 후회하지 않았다! 회색 카디건이 또 어디 있을 텐데... 세탁소에 보냈던가. -_-;
한벌한벌 옷을 찍자니 귀찮아서 한꺼번에 열을 맞추어 놓고 찍었다.
줄 맞추느라 위 두벌도 같이 접어 놓았음. 찍고 보니 회색도 이렇게 '버라이어티'하구나야. ㅋㅋㅋ
맨 윗줄 왼쪽 세벌 빼놓고는 다 여름옷이라 반팔 아니면 민소매다.형광등 조명이라 색이 더 흐리게 나오지 않으면 진하고 나왔음. 엄청 오래된 옷들도 꽤 되는데 좋아하는 것들이라 절대 안버리고 여름마다 애용한다. 하도 오래 돼 집에서 막입는 V넥 면티도 두어개 더 있으나 하나는 빨래통에 하나는 마침 입고 있어 생략.
이번엔 겨울옷 서랍에 들어 있던 회색 털실옷. 회색 터틀넥은 겨울에 한참 입다가 좀 오래 됐다 싶으면 새로 개비하는 필수품인 것 같다. 얇은 것, 두꺼운것, 면으로 된 것, 모직으로 된 것 종류별로 있는데, 면으로 된 터틀넥이 어디로 갔는지 안보인다. 옷방에 있는 듯.
왼쪽 가운데 옷은 검정색처럼 나왔지만 실제로는 그냥 진한 회색이다. 첫직장에서라면 딱 '다크 차콜그레이'라고 불렀을 색깔인데...
당연히 회색 재킷과 코트도 두어개 씩은 있으나 옷방에서 꺼내오기 귀찮아 대신 소품을 찍었다.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회색을 좋아하긴 해도 나름대로 다양하게 진하고 흐린 변화를 추구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검정색처럼 나온 겨울 목도리도 엄연히 진한 회색이라고 극구 주장.
스카프와 목도리를 옷장에 다시 넣다가 회색 원피스에도 눈길이 갔
다. 꽤 오래전에 산 옷이고 한해에 한번 입을까말까 하지만 어쨌거나 단순한 디자인과 색깔이 내 마음에 꼭 든다. 비록 지인들에겐 '너무 수녀복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스님옷이나 수녀복이나 그게 그거지! ㅋㅋㅋ
그밖에 회색 추리닝은 긴것, 칠부, 반바지까지 계절별로 갖추어져 있으나 굳이 사진까지 공개하지 않아도 상상가능한 옷이므로 생략하였다. 그러고 보니 양말은 칠할이 회색이고, 속옷까지 회색이 적지 않으니... 회색 인간의 회색사랑은 앞으로도 끝이 없을 듯. ^^;
집에 3분짜리 모래시계가 있다. 화장실에 두고 양치질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한지 한 일년쯤 된 것 같다. 원래부터 양치질 용으로 산 건 아니었고, 그냥 어느 기념품 가게에서 친구가 뭘 굳이 사주고 싶다고 해서 만만한 모래시계를 집어들었는데 그냥 두고 먼지만 씌우느니 뭣에라도 써먹어 보자는 생각이 들어 화장실엘 갖다 둔 거다. 하루 종일 어영부영 지내다 보면 3분쯤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는 것 같지만, 생각외로 3분이란 시간은 퍽 길다.
양치질의 원칙 3-3-3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꼬박꼬박 실천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거의 평생 아침저녁 하루 두번 양치질을 고수한 나로서는 직딩 시절(그마저도 첫 직장 3년은 양치질로 유난 떠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시간 이후 거의 한 사람도 빠짐없이 치솔을 들고 화장실엘 가는 문화가 거의 충격적이었다. 귀찮음은 둘째 문제였다. 워낙에도 질질 뭐든 잘 흘리는 편이지만, 특히 양치질을 할 때는 얼굴 주변은 물론이고 종종 옷섶에도 치약을 묻히는 인간인 내가 회사에서 정장이나 유니폼을 입은 채로 어떻게 양치질을 하라는 것인지! 양치질을 하고 나면 거의 반 세수는 해야하는 형편인데 화장은 또 어떻게 고치라고?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두들 닭벼슬 머리에 진한 아이섀도와 진한 립스틱으로 무장한... 나도 그 무리였다 ㅋㅋ) 그래서 나는 더러운 인간 취급을 받거나 말거나 점심시간 양치질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습관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날은 온종일 세수 및 양치질을 삼가(?)다가 잠자기 전이라든지 졸음을 깨기 위한 방편으로 '큰 맘먹고' 양치질을 시도하는 극강의 게으름을 부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드물게 하는 양치질도 원칙에 맞게 3분간 꼬박 구석구석 닦는데 공을 들이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모래시계가 생긴 후, 평소대로 쓱싹쓱싹 열심히 양치질을 한 뒤 이쯤이면 3분 지났겠지 쳐다보면 대개는 모래가 절반도 안 떨어진 상태였다. 치아가 모두 30개 전후이므로 이빨 한 개당 5, 6초씩 꼼꼼하게 닦으면 3분 양치질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치과의사들의 조언도 모르는 바 아니다. 헌데 이론적으로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이빨 한 개당 5, 6초 골고루 문지르기, 이건 성미 급한 나에게 놀라운 인내심을 필요로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모래시계가 눈에 들어오는 날이면 나는 전체적으로 북북 닦은 이빨을 또 닦고 문지르며 떨어지는 미세한 모래를 거의 째려봐야 한다. 그러면서 매번 느낀다. 3분이 왜 이렇게 길어!?!?
밤참으로 찐 옥수수를 세 자루나 데워먹고 나서 분위기 전환 용으로 방금 어렵사리 3분 모래시계에 맞춰 양치질을 마치고는 생각했다. 3분이란 시간은 포스팅으로 한 번 짚고 넘어가기에 충분한, 놀라운 시간이라고. ㅋ 3분 얘기 쓰느라고 일할 시간 또 30분 허비하긴 했지만, 그래도 쓸데없이 인터넷 서핑에 허비하는 시간에 비하면 심히 건설적이다. 이 글 마무리 하면 모래시계 꺼내다 엎어놓고 3분간 몇줄이나 번역하나 실험이나 해볼까나... 과연 그 실험은 작업 진도에 고무적인 영향을 미칠까, 아니면 허탈과 자괴감을 안겨줄까. 시간은 휴대폰 스톱워치로도 잴 수 있는데 굳이 모래시계 놀이를 생각하는 걸 보면, 그냥 일이 하기 싫은 거라는 결론이 나오는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