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은국력'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2.11.16 그리고 부산 6
  2. 2012.10.04 추석 맞이 식겁 8
  3. 2011.10.04 홍대 와우북 페스티벌 11
  4. 2011.06.26 임재범 콘서트 4
  5. 2011.06.20 브로콜리 너마저 - 이른 열대야 6

그리고 부산

여행담 2012. 11. 16. 20:29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두시간 반. 푹신하고 넓은 우등고속 좌석은 곤한 다리를 쉬기에 딱이었고 우린 터미널 카페에서 드디어 반갑게 상봉한 쓴 커피를 '원샷'한 뒤에도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심야가 아닌데도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는 버스 안 조명을 깜깜하게 꺼두었다가 부산 노포 톨게이트에 접어들고나서야 실내등을 켜 승객들을 깨웠다.

 

안동 여행을 계획하며 잠깐이라도 부산까지 찍고 오자 결심했던 이유는 처음 일본에 가려 했을 때 부산에 내려가 하루쯤 놀다가 배를 타고 일본에 다녀오면 더 재미있겠다는 사전 모의가 무산되면서 뭔가 대단히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친구 핑계대고 이왕 나선 김에 부산에 이어 통영, 해남, 순천만 생태공원까지(여름부터 친구랑 휴가 계획 짜며 모두 언급되었던 여행지들이다 ㅋ) 죄다 둘러오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휴가가 2주라고 해도 S는 금요일 출국인데다 수요일엔 또 LA에서 같이 휴가나온 동료도 만나야했다. 은행장이 특별히 임무를 부여했다나 뭐라나 -_-;

 

다음날 약속시간에 맞춰 올라갈 KTX도 이미 2시반에 예약해둔 터라 부산에서 보낼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친구는 어디서 들었는지 숙소 예약하지 말고 우리도 <바다 보이는 찜질방>에서 한번 자보자고 별렀다. 하룻밤은 우아하게 별당아씨 노릇을 했으니 또 하룻밤쯤은 행랑아범처럼 쭈그려 자도 재밌겠다고. LA교포들의 정보력이란 암튼 놀랍기 그지없다. (심지어 친구의 언니는 한인 아침방송에서 봤다며 다이어트에 좋다는 '빼빼목'을 사오라고 부탁했다는데, 나는 금시초문이었을 뿐이고!) 찜질방도 퍽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다, 수많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잠을 잔다는 것이 가능할지 두려웠으나 까짓것 하루쯤 잠 못자면 어떠랴, 내가 LA 놀러갔을 때도 뜬금없이 코리아타운 사우나엘 데려갔을 정도로 친구는 대중목욕탕 애용자인 것을. 그리하여 만 하루가 못되는 부산일정 역시 먹는 것을 중심으로 계획했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광안대교 야경보며 시원소주에 회 먹기, 다음날 아침은 속풀이로 금수복국, 점심은 밀면! 부산 오뎅과 자갈치시장 씨앗 호떡은 간식 옵션이었다. ^^;

 

안동에선 시내버스비 1200원을 꼬박꼬박 현금으로 내야 했으나 부산에선 선후불 교통카드 사용에 불편이 없었다. 지산밸리 록페스티벌 갔을 때 사고 남은 티머니 카드가 그래서 서울과 부산에서 아주 요긴했는데, 친구가 갖고가 버렸다. 좀 남았을 텐데 ㅋㅋㅋ 인상적인 기념품이 되었으려나. 째뜬 노포에서 지하철을 타고 우리가 곧장 향한 곳은 광안역. 광안리해수욕장까지 걸어서 5분이면 된다더니, 우리 걸음으론 역시나 15분쯤 걸린 듯하고 인도에 나다니는 사람들 별로 없는 아파트촌 옆을 지나면서는 친구가 미국시민 답게 좀 두려워했다. 한국은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중고딩으로 보이는 아이들 무리와 마주쳤을 땐 나도 좀 간이 오그라들었음. ㅋ 다행히 곧 나타난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은 평일임에도 휘황찬란 해변 카페, 술집마다 사람들이 드글드글, 바닷가엔 저녁 산책 및 운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친구가 제일 재미있어 한 것은 해변에서 군데군데 영업중인 점 보는 파라솔! (광안대교 사진 오른쪽에도 살짝 걸쳐 나왔다 ㅋ) 대체 누가 저런 걸 보나 싶은데도, 파라솔마다 데이트하는 연인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사주궁합 안좋다 그러면 헤어질 건가???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었음. 오른쪽 사진은 민락 회타운인가 하는 건물 꼭대기층 횟집에서 내려다본 전경이다. 일부러 광안대교 보이는 집으로 골라간 건데 다리쪽 방엔 자리가 다 찼다. ㅠ.ㅠ

 

그래도... 요즘 제철이라며 전어회도 따로 좀 챙겨주시고 맛과 서비스는 흡족했다. 배고파서 허겁지겁 집어먹다가 매번 아차, 그러면서 찍은 사진들. (휴대폰에 먹고팠던 갖가지 한국 음식 사진을 넣어가는 것이 친구의 소망이라면 소망인지라;;)

 

부산에 왔으면 시원소주를 마셔줘야지 암, 그러면서 술꾼인척 소주를 시켰으나 결국엔 사이다와 소주를 3:1의 비율로 섞어 먹다 배부르다는 핑계로 반병 남기고 왔다. 소맥을 할 걸 그랬나보다. ;=p

 

 

밤이 깊어가고 있었으나, 찜질방에 체류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싶어 내가 짜낸 아이디어는 심야영화를 보는 것. CJ에서 배급하는 영화들은 LA에서도 볼 수 있다며 친구는 이왕이면 다른 걸 보고 싶어했으나 마침 볼만한 다른 한국영화가 없으니 선택은 결국 <광해>였는데, 나는 또 묘한 인연 같은 걸 느꼈다. 영화 장면장면마다 우리가 최근에 갔던 창덕궁 구석구석이 막 나오는 게 아닌가! 쓰러진 광해가 숨어있던 집 역시 안동 하회마을일 리 없는데도 낮에 본 한옥들과 겹쳐져 더욱 실감이 났다. 그토록 뜸들이다 부산에까지 와서 <광해>를 보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인가 싶기도 하고.

 

암튼 미루고 미루다 새벽 2시가 다 돼 택시타고 찾아간 달맞이 언덕 베*타 찜질방은 상상했던 것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었으나 꽤 훌륭했다. 그리고 평일이라 사람들 별로 없으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드넓은 방마다 자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큰 방엔 거의 누을 자리가 없을 정도! 여성용 수면실이 따로 있긴 하던데 좁은데다 온도가 너무 높아 숨이 막힐 정도이고 코고는 소리도 요란하여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다들 덮고 자는 담요는 과연 어디에서 구하는 것일까 이리저리 구경다니며 탐색하던 우리도 드디어 담요와 목침을 하나씩 구해들고 제일 덜 더운 방에 몸을 눕혔다... 근데 거기도 너무 더워 ㅠ.ㅠ 나는 잠든 친구를 남겨두고 찬바람을 쏘이러 베란다 앞으로 갔다가 식당으로 갔다가... 결국 다시 친구 옆으로. 에구구 여행에서 잠자리는 역시 편해야 제맛임을 실감.

 

 

그렇긴 해도 또 눈을 뜨자마자 이런 광경을 호텔이나 모텔이 아닌 곳에서 만나보는 묘미는 인정해야할 것 같다. 전날 밤 그저 깜깜한 유리창으로만 보였던 목욕탕 전면도 죄다 저렇게 바다로 향해 있어 탕에 들어앉아서도 바다감상이 가능했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정말 참 찜질방 자리 하나는 잘 잡았다. ㅎㅎ

 

아래는 노천탕이 있다는 옥상구경하러 올라가서 찍어온 해운대 앞바다 사진. 아침을 먹고 나서 친구에게 해운대 모래사장을 좀 걸어보겠냐고 했더니 바다구경은 충분하단다. 맞다, LA에서도 바다는 금방이었지... 

 

 

 

간단하게 때밀이(!) 목욕을 마치고 나서 행선지는 계획대로 금수복국 해운대점. 오래 전 부산에 갔을 때 택시타고 가자했더니 교묘하게 곧장 2층 입구에 내려주어 얼결에 수만원짜리 '정식'을 먹어야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조심해야지 했는데, 웬걸. 택시 아저씨가 쿨하게 큰길가에 내려주고 골목안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

 

그래서 시켜먹은 것이 은복 지리와 복주머니 만두. 

LA 한식당에 비해서 다들 음식이 왜 이리도 양이 적으냐고 투덜거리던 친구는 처음으로 1인분다운 뚝배기를 만났다고 기뻐했다. 서울에도 이미 분점이 있지만, 말간 국물의 복국은 어쩐지 부산에서 먹어야 제맛인 느낌. 해장할 필요도 없이 속은 멀쩡했지만 어김없이 시원했다.

 

 

마침 복국집 바로 앞에 원두커피집도 있겠다, 이날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순히 풀려주는 기분이었다. 이후 부산관광은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태종대, 자갈치시장 쪽을 돌아 기점인 부산역으로 시간 맞춰 돌아오는 것이었다. 해운대 코스를 타면 광안대교도 건너간다잖아! (버스비는 만원. 하루 종일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내리며 계속 관광이 가능하다. 우리가 일본에 간 동안 역시나 부산여행을 한 울 엄니가 가르쳐 주심. 후쿠오카 시티투어버스에 비해 훨씬 유용한데 우린 다만 시간이 부족....해서 그만;;) 

 

 

진짜로 광안대교를 건너가며 버스 차창으로 보이는 해운대 인근의 스카이라인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름엔 정말로 뚜껑없는 이층 투어버스가 다닌다는 듯;;

 

 

 

 

 

 

 

 

 

부산역 앞에서 은행구경과 서비스 체험도 좀 하고(얼마나 친절하고 편리한지 친구가 미국은행과 비교를 원했다), 다시 태종대행 시티투어버스를 타긴 했으나, 2시반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자갈치시장은 아예 갈 수도 없을 듯했고 태종대도 제대로 볼 여유는 없었다.  잘 기억도 나진 않지만 예전엔 택시를 타고 등대앞까지 갔었던 것 같은데... 이젠 입구부터 차량이 통제되고 거기선 다시 코끼리 열차 같은 걸 타고 올라가야 한단다. 게다가 시티'투어'버스다 보니 어찌나 해안으로만 돌고돌아 구석구석 다녀주시는지, 도심에서 태종대까지 시간도 꽤 많이 걸렸다. (나중에 택시타고 와보니깐 부산역까지 15분도 안 걸리더만!)  

 

 

말이 태종대지 솔숲길로 조금 걸어내려가 우묵하게 파인 만과 전망대 앞 바닷가를 본 것으로 이날의 관광 끝. 점심으로 별렀던 밀면을 먹을 시간조차없었다. ㅠ.ㅠ

 

 

결국 우린 회먹으러 부산 온 거였네, 라고 자조하며 기차시간에 맞추느라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어야할 정도였다. 헉헉대며 자리에 앉아, 또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서울역.

 

 

곧장 전철로 이동하여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의 동료들과 합류, 쌈지길과 청계천을 쏘다닌 뒤론 다시 홍대앞(주차장길 네일샵→액세서리 가게→조폭 떡볶이→커피집)을 휩쓸다 이날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온 우리는 장렬히 쓰러지고야 말았다. ㅋㅋㅋ

전국이 일일생활권임을 몸소 실천한 좋은 예.

 

(201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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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맞이 식겁

삶꾸러미 2012. 10. 4. 09:00

추석 전날, 식탁에서 엄마랑 동생은 밤을 까고 나는 나물을 다듬는 중이었다. 명절은 자기에게도 잔칫날임을 잘 아는 조카네 개 파랑이, 꼬리를 흔들며 여기저기 기웃거려봐도 아직은 먹을 것도 없고 퉁박만 받기 일쑤였다. 자꾸만 다리에 기어올라 아양을 떠는 녀석에게 저리 가라고 이르고는 주방으로 뭘 가지러 갔던가. 우연히 나는 파랑이가 식탁 밑에서 뭔가를 집어먹는 광경을 목격했다. 마침 개주인인 큰동생 내외는 빠뜨린 물건을 사러 외출 중이었는데, 잠시 뒤 파랑이가 갑자기 컥컥거리기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식탁 밑으로 떨어진 밤껍질을 낼름 주워먹은 듯했다. 개문외한인 나와 막내동생이 보기엔 녀석이 숨을 못쉬어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어린 조카가 목부분을 어루만지고 입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소용없는 일. 사람이면 뒤에서 껴안고 상복부 마사지라도 한다지만, 개는 그럴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나. 파랑이는 입도 못 벌리고 그릉그릉 캑캑 괴로워했다. 하필 주인도 없는데! 

 

버둥거리는 파랑이를 안고 동생과 나는 다급히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막내동생은 얼마 전 친구 가족들과 놀러갔었는데, 그날따라 아픈 개를 집에 두고 갈 수 없어 함께 데려왔다는 친구네 개가 시름시름 앓다가 새벽에 결국 죽는 광경을 목격했다며 심난해 했다. 입도 못 벌리고 몸부림치던 파랑이는 다행히 차에 타고 가는 도중 입을 벌리고 캑캑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추석연휴라 문을 닫았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동물병원은 열려 있었고, 의사에게 파랑이 상태를 이야기하니 그나마 밤껍질이라면 다행이라고 했다. 똥으로 나올 확률이 높은 거라서 외과적인 수술까지는 필요없을 것 같다고. 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보자면서 석장이나 찍었는데, 밤껍질은 또 엑스레이에 안나오는 이물질이란다. 일단 식도에선 넘어갔으나 이물질에 놀란 위가 약간 뒤틀려 있는 상황이고, 지켜보아야 알 수 있으니 소화를 돕는 주사 2대를 놔주겠다고. 어휴...

 

우린 완전 식겁해서 벌벌 떨었는데 전화로 소식을 전해들은 개주인은 가끔 뭘 잘못 삼켜서 좀 그러다 마는데 뭐하러 병원까지 갔느냐고 천하태평이었다. 우쒸! 우린 진짜로 파랑이 숨넘어가는 줄 알았단 말이다! 명절 앞두고 웬 난리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순간적으로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 쓰고 앉았던 것도 모르고 나 원 참. 원래도 파랑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최대한 불쌍을 짓고 바들바들 떨면서 모두에게 사랑의 손길과 맛있는 것을 갈구하는 놈이다. 해서 바들바들 떠는 것이야 그러려니 하겠는데 집에 와서도 약간 몸을 뒤채며 경련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밤껍질이 위와 장의 벽을 긁어대면서 빠져나갈 거라 토할 수도 있으니, 수의사는 문제 생기면 다시 병원에 데려오라고 말했었다. 잔칫날 앞두고 파랑이도 나름 포식의 꿈에 부풀어 있었겠으나, 놀란 위에 인간의 음식이 들어가면 안될 것 같아 요주의 애견인들에게 신신당부를 해두었고, 결국 추석날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나가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애완동물은 정말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님이 확실하다. 엄청난 병원비도 그렇고(4만7천원!), 말도 안통하는 애들이 어딘가 모르게 아프면 무서워서 어쩐담.

 

요번 추석엔 노동의 후유증이 어찌나 강렬한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미 몸이 막 늘어지고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바닥난 체력탓 수면부족 탓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아마 본격적인 노동도 하기 전에 파랑이 때문에 식겁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겠다. 명절 노동의 최소화를 위하여 그나마도 온 친척들이 저녁까지 내리 먹고 버티던 악습을 걷어치우고,  점심 먹고 헤어지기로 결정한 지 수년째. 하도 길이 막혀 15분 거리를 한 시간이나 걸려 집에 돌아와선 다 저녁 때가 됐거나 말거나 곧장 쓰러져 자버렸는데 열몇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도 온몸이 결렸다. 머리는 또 왜 지끈지끈 아픈지 좀 서러울만큼 연휴 내내 힘이 들었다. 볕 좋은 가을날씨 즐길 틈도 없이 연휴는 다 가버렸는데, 묵직한 몸은 여전하다. 오늘부터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뭐, 이러면서 기운내려고 용쓰는 중.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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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두해 정도만 열심히 구경다녔지 몇년째 방구석에서 벼르기만 하다가 놓쳤으나, 이번엔 28일부터 거리 도서전을 하는 걸로 착각하고서 비오는 날씨를 미리 걱정하는 심리적 부지런을 좀 떨었더니 (원래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둘쨋날에 성공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거리도서전 책구경도 구경이지만 제니스 브레드 샌드위치와 초콜릿 스콘이 근래 부쩍 간절히 땡겼기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

어쨌든 일요일 늦은 점심을 아주 뿌듯하게 먹어치우고 나서 거리 도서전을 하는 주차장길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조짐이 예사롭질 않았다. 죠스 떡볶이랑 무슨 핫도그집, 그 옆 분식집들 앞에 각기 줄이 10미터도 넘게 서 있고 그 인파의 대부분이 아이들을 동반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더니 드디어 전시부스의 하얀 뾰족천막이 눈에 들어왔는데... 헐... 양쪽 골목이 모두 빽빽한 인간의 물결이었다. 문학동네가 맨 처음 부스였던 것 같은데 사람의 장막에 둘러싸여 책 진열대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 +_+ 된장, 된장... 첫날인 토요일에 올 걸 그랬다고 속으로 자책했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 (특히 원고에 매진하지 않고 놀러나왔다고 타박할 수 있는 '갑' 입장의 거래처 담당자들 -_-;) 처음엔 슬쩍슬쩍 피해다녔는데 좀 지나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을 듯했다. 그 많은 인파 중에서 과연 누가 날 알아보겠어! 게다가 아동서를 함께 내는 대다수 출판부스엔 아예 진입이 불가능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책 좀 찾아보고 싶었는데 두어번 배회하고도 끝내 인파를 못 뚫고 들어간 부스가 몇개나 됐다. 현암사, 문학동네, 시공사... 또 어디더라.

원래 따끈따끈한 신간을 30% 할인받아야 뿌듯한 건데 하도 도떼기 시장이라 신구간을 따져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으면 훑어보는 거고 아님 그냥 기웃거리다 마는 거고... 따끈한 신간 코너엔 특히 사람이 많아! 루나파크의 런던 에세이도 책 있으면 일단 구경이나 해보려 했는데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쳇

게다가 일요일이라 가족단위의 내방객이 많을 것을 예상했는지 부스마다 유독 아동서가 많아보였다. 어우... 정신없어. 아무리 일년에 한번이라지만 휴일에 불려나와 엄청난 인파에 시달리면서도 친절히 인사를 건네고 있는 출판사 직원들도 측은하고, 엄마 손에 이끌려나와 얼른 책을 고르라고 강요 당하고 있는 몇몇 아이들도 안쓰럽고, 꽤 오래도록 부스 안에 진입 못해서 빙글빙글 주변만 맴도는 나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ㅋㅋ

그렇다고 포기하고 돌아갈 순 없는 일! 그나마 사람들이 덜한 끄트머리 팝업북 코너에서 이책저책 열어보다가 (수입책이라 그런지 내가 온라인서점에서 사는 값이랑 할인가가 별 차이 없어 굳이 살 이유가 없었다) 점찍어둔 몇몇 출판사 부스에 재진입을 시도했다. 두세번 가보고도 인간의 벽을 뚫지 못한 데도 있으나, 결국엔 마음산책, 문학과지성사 구간 부스에서 책을 고를 수 있었다.

오래된 문지 시선은 단돈 2천원에, 소설은 3천원에 살 수 있는데 황순원의 저 <별>은 무려 '천원'이라고 했다. 집에 황순원 소설선이 있는 걸 알기에 같은 책 아닌가 하면서도 3천원인데 뭘, 이러면서 골랐더니만 '천원'이래고 집에 있는 책은 <카인의 후예>더라. 그야말로 오늘의 득템!

아쉬운 건 30% 할인중이던 기형도 전집도 살 생각이었는데 2천원짜리 구간시집 남은 게 얼마 없어서 고르다보니 그새 까먹는 바람에 빠뜨렸다는 것. ㅠ.ㅠ. 

표정훈과 페터 회는 오래 전부터 읽을까말까 하는 책이었기에, 그리고 문지 부스에서 이리저리 밀리며 시집을 고르느라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 원래 목표인 5권을 채워야한다는 일념으로 대충 고흐 책까지 집어 계산해달라고 했다. 다섯권 목표였는데 일곱권을 샀으니 대단히 훌륭하게 지름신을 막았다고 할 수 있다.

마침 막내동생네가 놀러온다는 바람에 애들 책을 사느라 체력과 쇼핑욕이 급격히 떨어진 덕분이기도 하다. 어딘지 출판사 이름도 까먹었고 책도 벌써 조카들이 가져가버려서 여기 자랑할 수도 없는데, 애들 책 사니깐 예쁜 연필세트도 선물로 주더라! 다만... 자녀가 몇분이냐고 물어서 잠시 머쓱. 넷이라고 하려다가, 민망하여 둘이라고 대답했는데 연필 선물로 주려고 그러는 줄 알았으면 그냥 넷이라고 할 걸 그랬다. ㅋㅋ 조카들 책까지 치면 목표량의 두배인 셈이지만 할인받은 가격을 생각하면 입이 저절로 귀에...

똑같은 지름신을 영접하더라도 책을 사는 건 소비욕에 대한 자책감이 훨씬 덜하므로, 아마 동생네가 저녁먹으러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일단 커피숍으로 후퇴해서 카페인으로 심신을 가다듬은 다음 한번 더 공격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한편 아쉽다. 그러나 올해는 일단 방구들을 박차고 나갔다는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최승자 시집 말고는 그냥 순전히 제목으로 고른 시집이긴 해도, 가을에 시집을 사본지가 과연 얼마만인가 싶은 것이 아주 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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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콘서트

놀잇감 2011. 6. 26. 17:47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보지 않았지만 그 방송 때문에 임재범이 음악인으로서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게 된 건 기쁘게 생각한다. 덕분에 임재범의 전국투어 콘서트도 기획된 거나 마찬가지니, 말도 많고 탓도 많은 그 프로그램을 앞으로도 볼 마음은 없지만 고마워해야할 것 같다. 콘서트를 앞두고 하필 임재범이 오른손 골절에 맹장수술까지 겹쳤다는 소식에 예매를 하면서도 건강문제로 공연이 취소되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태풍이 몰고온 폭우속에서도 콘서트는 무사히 열렸다.

나도 가볍게 배를 열고 닫은 수술을 해봐서 알지만, 수술한지 한달만의 체력이란 게 뻔한데 콘서트라니 공연보러 가긴 가면서도 내심 미친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임재범 본인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려 했다니까, 한편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 안쓰러웠다.
공연이 취소되지 않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므로 체력과 목소리가 기껏해야 예전의 7, 8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듯 해도 이해해줄 수밖에 없었다. 첫곡이었던 빈잔을 부르고 나서 곧장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걸 보며, 과연 저래서 끝까지 공연을 해낼 수 있을까,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는데, 후반부에 디아블로와 함께 한 하드락 공연을 보면 또 언제 힘들어했나 싶게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였다. 가수에겐 노래가 곧 힘이고 약이기 때문일까.

일요일 공연 준비로 체력을 비축해야 하므로 어젯밤 앵콜은 아예 사전에 양해를 구해 가능성부터 막아버렸고, 체력안배를 위함이라고 십분 이해는 되지만 중간중간 보여준 동영상과 내레이션은 쓸데없이 많았으며,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들려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썰렁하고 난감한 개그 개인기를 많이 보여준 건 아무래도 민망했다. 간간이 못마땅해 투덜거리는 일반팬인 내 옆에서 <임재범을 알아야 락을 알지> 회원이기도 한 열펼 팬인 친구는 자꾸 나를 나무랐다. 저렇게라도 시간을 떼우며 좀 쉬고 힘을 비축해야 다음 노래를 하지 않겠느냐고. ㅎㅎㅎ 누가 그걸 모르나. 임재범은 마지막 무렵 <비상>을 부르며 실제로 비상하듯 입체 무대로 공중에 올라가더니 울컥해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는데, 치열하고 처절한 삶을 살아온 인간이자 가수로서의 지난날 때문이려니 하면서도 전체적인 공연 콘셉트가 너무 '감상돋는' 쪽으로 간 게 아닌가 싶었다. 노래 한곡 끝날 때마다 헐떡거리거나 "아이고 죽겠다"를 연발할 정도로 힘겨워하면서도 악착같이 3시간에 가까운 공연을 이어나가는 임재범의 모습을 봐야하는 것도 감격과 동시에 약간은 고문이었고.

째뜬 공연의 형식이 내 취향과 좀 달랐다는 것뿐이지, 체력과 목소리가 절정의 컨디션이 아님에도 노래마다 감동이었으니 보러가길 잘했다는 생각이고 대체로 행복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상의 탈의로 새하얀 속살과 사방에 새겨진 문신까지 보여주는데는 좀 놀랐다. ㅋㅋ 수술 한달만인 쉰살 아저씨 몸이 탄탄하기도 하여라.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겠다고 생각했는지 의상도 다섯벌이나 갈아입으며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는데, 난 아무래도 두번의 수트 차림이 제일 좋았다.  지난 1월 스팅 공연때 폭설 때문에 하도 주차에 고생을 했던 터라 요번엔 아예 지하철 타고 다녀오느라 나도 체력이 딸려 오늘까지 빌빌하다. 무거운 장화를 신고 뛰었더니 장단지도 땡기고... 구경만 한 하고 온 나도 이런 꼴인데 임재범은 오늘 저녁 또 어떻게 공연을 할까, 그게 더 놀랍다. 다시는 세상을 등지지 말라고 팬들이 <지수애비 입산금지>(임재범의 열살짜리 딸 이름이 '지수'라고;)라는 팻말도 들고 있던데, 정말로 계속해서 임재범이 늙을 때까지 감동적인 노래와 공연을 해줄 수 있기를 빈다. 노래 잘하는 가수들에 대한 대중의 현재 관심이 과연 금세 수그러들지 않고 지속적인 환경으로 자리잡을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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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공연 보러가실 분들은 나름 주최측이 신경을 쓴 듯한 공연 형식에 관하여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합니다. ^^;


다녀온 지 며칠 지났다고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려 하므로 다 사라지기 전에 몇 자 적어두어야겠다. 순전히 연말 집계용으로라도. ㅋㅋ
난생 처음 가본 브로콜리 너마저 공연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괜찮다'라고 하겠다. 라이브로 듣는 덕원의 노래가 워낙 안습이라는 언질을 하도 들어 기대치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겠으나, 어쨌든 6월 8일부터 시작된 정기공연의 무대가 매번 그들에겐 연습이자 라이브였을 터이므로 공연 초반 몇번의 불안한 음이탈을 제외하곤 대체로 노래가 안정된 느낌이었다. (지산을 비롯해 다른 무대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는 일행들의 증언도 "덕원 노래솜씨 많이 늘었다"는데 모아졌다^^)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내가 보기엔 다른 세션도 없이 겨우 네명--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이 그런 꽉찬 연주와 노래를 동시에 해낸다는 게 신기할 정도. 멤버들의 생김새도 소박한 노래와 이름이랑 딱 맞는 맑은 느낌이었다. 좀 더 화려하거나 느끼한 생김새를 지닌 사람들이었다면 나로선 뭔가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공연 예습하느라 CD들으며 마음에 든다고 손꼽은 노래들이 역시 공연에서도 좋았지만, CD로 들을 땐 별로라고 생각했다가 새로이 '발견'한 노래들도 두어 개 있었다. <울지마>, <마음의 문제> 같은 곡들. 2집 들을 때 첫곡인 <열두시반>부터 주르륵 네번째 <커뮤니케이션의 이해>까지 다 좋아라 듣다가, <울지마>, <마음의 문제>, <이젠 안녕> 세 곡은 괜히 마음에 안들어서 그냥 통째로 건너뛰고 들을 때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안 그럴 거다. 마이크와 음향 탓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CD로 들을 때보다 덕원의 목소리가 더 굵고 힘 있게 들렸고, 일부러 미성을 내려고 애쓰는 듯한 기미도 사라져 좋았다. 2집 노래를 중심으로 CD순서와는 반대로 <다섯시 반>으로 시작해 2부에선 좀 신나는 노래로 쾅쾅 달리다 <열두시 반>으로 끝낸 것도 나름 이야기의 흐름처럼 느껴졌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얘기로 괜히 썰렁하게 시간 때우는 것보다 노래 한 곡이라도 더 부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중간에 넷이 줄지어 자리잡고 앉았을 땐 내심 불만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멘트는 적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더 길었으면 화났을 듯;;

초반에 이번 공연엔 앵콜 없다고 잘라 말하고 나서 정말로 <열두시 반> 노래 끝내고 나서는 인사도 없이 악기 두고 나가버렸을 땐 좀 황당했다. 것도 본인의 고집이려니 하면서 나는 앵콜을 외치지도 않았고, 사람들 빠져나가기를 기다려 느릿느릿 거의 맨 끝에 공연장을 나왔는데 깜찍하게도 앵콜 공연을 상상마당 입구에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하필 우리 바로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에서 자꾸만 알람을 시끄럽게 울려대는 바람에 짜증지수가 치솟기는 했지만, 우리가 원했던 <꾸꾸꾸>랑 <보편적인 노래>를 그 난리통에 들을 수 있어서 '원 풀었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만 들었지 실제론 처음 들어가본 상상마당 지하 공연장의 음향과 냉방수준도 괜찮은 편이라, 가격대비(평일 공연 25000원) 공연 만족도를 따진다면 꽤나 흡족했다. 무대가 워낙 높아서 맨 뒤쪽에 있던 단신의 나도 이리저리 사람들 머리 사이로 움직여 다니며 구경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스탠딩 공연이라해도 나 같은 노구를 위하여 맨 뒤쪽에 의자 몇개라도 놔주지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는 했다. 간만에 한시간 반 이상 서서 공연을 보려니 힘들어서 원!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도 중간 이후부터는 다리와 허리가 아파 슬그머니 혼자 벽에 가 기대 있었는데 바닥뿐만 아니라 나무 벽으로도 쿵쿵 전해지는 음향과 리듬이 느껴져 이것도 괜찮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공연 후기를 두 마디로 줄인다면, '괜찮다~'와 역시 스탠딩공연은 '힘들어'인가? ㅎㅎ 가만 뒀으면 공연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을 터인데 옆구리 찔러 가자고 해주신 지다니께 몹시 감사. 그나저나 브로콜리 너마저도 참여한다는 서울대 <본부스탁> 공연은 성황리에 잘 끝났을까 궁금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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