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21.12.26 제주 여행 (21/11/18~20) 5
  2. 2015.11.19 제주 풍경 8
  3. 2015.11.19 제주도 먹거리들 2
  4. 2015.11.08 근황 3
  5. 2012.04.06 건축학개론 12
  6. 2012.03.10 관광옵션 5
  7. 2008.08.06 오 제주도 4 9
  8. 2008.08.05 오 제주도 3 21
  9. 2008.08.04 오 제주도 2 15
  10. 2008.08.04 오 제주도! 9

마감일도 못 지키고 노상 바삐 허덕이는 가운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제주여행까지 다녀왔으니 창피하기도 하고 민망해서 어디도 자랑 못했던 제주 여행기를 후딱 적어보련다.

여행멤버는 나 포함 넷. 놀랍게도 엄마랑 아줌마들 따라서 여행 가고 싶어했다는 친구1의 중학생 딸이 합류하게 되었다. 과거 1박2일 여행 경험상 이 친구들은 그냥 집을 떠나 공간이동을 했고 가사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에 더 방점을 찍는다는 걸 알기에 나도 뭘 많이 보고 경험해야겠다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제주도인데 뭐... 뭘 한들 안 좋겠어! 

숙소가 제주시 근처 대명콘도 소노벨이고 일정도 2박3일이라 여행코스는 북동부로 제한하기로 원래 계획을 세웠다. 길바닥에서 운전하며 보내는 시간 아까워! 4명이 각자 하나씩 꼭 가고픈 여행지를 지정하기로 하여, 사전 미팅에서 정해진 곳은 1 스누피가든(나) 2 우도(친구1) 3 성산일출봉(친구2). 그러나 중학생인 친구딸이 키티 광팬이라, 남쪽으로 좀 치우치긴 했지만 마지막날 헬로키티아일랜드가 일정에 추가되었다. 

첫날. 11월 18일(목). 이 얼마만에 타보는 비행기던가 두근두근 설렘설렘. 여행은 준비하고 미리 상상할 때 더 설레는 듯도 하다. 수능날 탓인지 5분씩 10분씩 스케줄이 뒤로 밀려 제주에 도착하니 거의 1시가 다 되었다. 렌터카 픽업후 곧장 제주 시내에 있는 유리네로 갈치조림 먹으러 갔다가 스누피 가든으로! 3시쯤 도착했는데 바로 앞 주차장은 만차이고 건너편 주차장도 얼추 꽉 차 있었다. 핫 플레이스 맞구먼. 

첫날: 11월 18일(목) 일정에 맞춰 스누피 후드티 입고 가서 더 신남 ㅋ

6시까지 3시간 꽉 차게 놀면서도 후반부엔 시간이 모자라 친구들은 기념품가게로 먼저 향하고 나 혼자 대표로 헐레벌떡 뛰어다니며 스탬프를 찍어야했다. 실내보다 실외 정원이 훨씬 더 좋았고 입장료 아까운 줄 모르고 신났었다. 친구2도 스누피 광팬이라 모든 일정중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첫째날. 저녁으론 숙소 근처에서 검색해 흑돼지+해물구이를 먹었다. 

둘쨋날. 11월 19일(금) 우도+성산일출봉. 

우도에는 렌터카를 못 가져가는 것으로 알고 당연히 성산항에 주차후 우도행 배를 탔는데 의외로 배에 실리는 렌터카가 많았다. 미니전기차 운전에 자신이 없었던 친구들은 이때부터 불만을 표함. 렌터카 들어가도 되네! 어 그러네;; ㅎㅎ 민망. 예전처럼 우도에서 미니전기차를 3시간 빌려서 한 바퀴 일주를 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친구1이 초보운전자이고 겁이 많아 절대 속도를 못낸다는 것. 친구2는 운전면허증은 있으되 아예 운전할 엄두도 못냄. 내 파트너는 친구딸 ^^; 우리 둘은 신나게 속도를 높여 해변을 달리는데 친구네 차는 좀처럼 따라오질 못하고;; 결국 가다 서다 기다리다 서로 잃어버리고 헤매고 ㅋㅋㅋ 

우도+성산일출봉

제대로 바다구경도 못하고 허겁지겁 시간 맞추느라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았으면 우도를 가지 말걸 그랬나 싶을 정도였다. 아니 이렇게 바다가 맑고 깨끗하고 예쁜데. 고객님들은 죄다 1분 컷. 사진 찍고 이제 가자고 하심. ㅠ.ㅠ  해물짬뽕과 소라짜장면, 땅콩아이스크림에 대한 고객님들의 만족도도 그저그랬음. ㅎㅎ 그나마 검멀레 해안에서 모터보트가 우릴 위해선지 괜히 한바퀴 뺑 돌며 동그란 궤적을 남겨주어 뿌듯.

암튼 우도에서 나와 성산일출봉으로 향하며 내게 가장 시급했던 건 카페인! 아침에 숙소에서 한잔 내려 마시고 오긴 했지만 멀미하는 친구딸래미 신경쓰며 렌터카로 살살 운전하려니 이래저래 스트레스. 진한 커피로 속을 달래고 이제 좀 제대로 걷나보다 싶었더니 성산일출봉을 꼭 가고픈 코스로 꼽았던 친구2가 자긴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_+ 엥? 친구를 어떻게 혼자 두냐. 그럼 나도 같이 있을까? 하고 나서는 친구1 (역시 걷기 싫었던 것;;) 다행히 (그리고 놀랍게도) 딸래미가 나서서, 아니 카페에 앉아 있을 거면 제주도까지 뭐하러 왔느냐고 ^^;; 해서 얼결에 두 모녀+나만 성산일출봉에 올라갔다 내려옴. 숙소 들렀다가 저녁은 함덕 <다퍼주는 횟집>에서 모듬회+방어특선+산낙지. 역시나 검색했는데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엄청 화려하진 않았고, 나름 배불리 흡족.

마지막날. 11월 20일(토) . 숙소 바로 앞이 함덕해수욕장인데 코앞에서 내다보이는 해변을 결국 한번도 안 걷고 갈 수는 없다며 아침에 친구 딸래미 씻는 사이 나 혼자서라도 나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친구2가 마지 못해 따라나섬. 카페 델문도에서 저녁에 커피 한잔 했으면 좋았겠다 싶었으나 결국 못함. 이제껏 어떤 여행 멤버든 원래 내가 젤 게으른 편이었는데;; 요번엔 내가 젤 조바심을 냈던 것 같다. 제주도가 아니고 어째 서울 근교로 친구들 모시고 다니는 느낌 같아서;;  

셋째날은 애당초 일단 비워뒀던 일정에 키티아일랜드가 추가된 거라 아침 일찍 서귀포쪽으로 내려갔다. 소노벨제주 로비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입장료 할인해 미리 끊을 수 있음! 스누피가든(여긴 오히려 현장에서 할인받은 듯)처럼 실내외로 전시장이 나뉘고 루프가든도 있고 뭐 그런 줄 알았는데 ㅋㅋ 달랑 건물 하나에 주로 유치원생이나 초등생 아가들이 주고객층인듯 어른들이 우르르 온 팀은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도 친구딸래미가 신나서 사진과 동영상을 오백장쯤 찍어달라고 (첫날부터 내가 그녀의 쓸만한 찍사로 선택됨) 해서 열심히 협조했고, 아이가 키티애호가로서 정말로 기뻐하니 우리도 흐뭇.  

11월 20일(토) 아침의 함덕 해변과 키티아일랜드와 새별오름

 점심은 수제피자를 먹었는데 이름 까먹음. +_+ 맛은 괜찮았으나 신발 벗고 들어가는 좌식 테이블이라 좀 낯설었던 기억이 있다. 서울행 비행기는 6시, 렌터카는 4시까지 반납하기로 한 터라 시간도 넉넉하니 억새밭으로 유명한 새별오름엘 들르자고 즉흥적으로 합의에 이르렀는데... 막상 주차장에 차를 대니 친구1, 2모두 올라가지 않겠다고 선언. 여기서 본 걸로 충분하다나. 그나마 중학생소녀는 멋진 사진을 더 남기겠다는 일념으로 나와 둘이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경사가 가팔라지는 5분의1지점쯤(정확히는 나도 모름. 총 왕복 시간 대비 짐작만 할 뿐이다) 갔을까, 날아드는 벌레(하루살이)가 많다며 정상까지 가는 건 포기. 에효. 사실 새별오름은 지난번 친구들+친구언니들과 함께 왔을 때도 딱 거기까지만 가고 돌아섰던 아픔이 있는 곳이다. 아주머니들은 왜 그렇게 걷는 걸 싫어하시는지. 째뜬 소녀의 바람을 무시할 순 없으므로 아쉬워하며 그만 돌아서고 말았다. 제주도에 왔으면 최소한 오름을 2개는 봐야지 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자 괜한 욕망이었던 것. ㅎㅎ

이젠 시간이 너무 붕 떠버리고 말았다. 해서 굳이 서쪽으로 향해 애월해변을 굽이굽이 돌아 바닷가 드라이브를 한 뒤 (해수욕장으로 들어가서 모래사장을 좀 걸을까, 물으면 다들 되셨다고... 신발에 모래 들어가는 거 싫다고 ㅎㅎ), 렌터카 회사에서 멀지 않은 용두암에라도 갈까 다시 방황 시작. 그러나 고객님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용두암을 가기 전에 현무암 해변을 발견하고 그냥 차를 세웠다. 

뭔가 계속 아쉬웠던 나와 달리, 마지막날은 거의 패키지 제주여행 온 것처럼 알차게도 돌아다닌다며 고객님들 즐거워하심. ㅎㅎㅎ 그럼 되었다! 

일찌감치 렌터카 회사에 차를 돌려주고는 제주공항에 들어갔는데 우와;;; 면세점이며 터미널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쇼핑에 신이난 세 여인들과 달리 나는 그만 혼이 빠져버리고 말았고 ㅠ.ㅠ 먼저 탑승구 앞에 가서 기다리게 있겠다고 슬그머니 달아났다. 거의 산소부족을 느꼈음. 그러나... 주말 비행기는 계속 연착되고 사람들은 바글바글... 결국 7시40분이었던가.. 햄버거로 저녁을 대충 떼우고서야 서울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홀로 가이드에 운전까지 완벽했다며 친구들은 칭찬과 감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나는 완전 기진맥진. 여행으로 에너지가 차오르는 대신 완전 방전되는 요상한 느낌의 여행이었다.

부디 다음번에 제주도를 간다면 훨씬 더 여유롭게 올레길도 좀 걷고, 한라산도 오르고, 오름도 걷고, 숲길도 많이 다니고 제대로 힐링하고 싶으다. ㅠ.ㅠ 그러려면 이 멤버들과는 취향이 넘 다르다. 이 친구들은 요번에 못간 남서쪽 제주투어를 내년에 다시 계획하겠다고 하심. 중학생소녀와 나의 쿵짝이 너무나 잘 맞았는지, 그 소녀도 단1초의 망설임 없이 또 따라가겠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성사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진짜로 가게되면 아마 그때도 난 고객님들의 '니즈'에 맞춰 열심히 다니고 나서 투덜투덜하겠지. ㅎㅎ  

아참. 요번에 느낀 점. 1) 제주도 렌터카 전기차 빌리기 그리 쉽지 않다! 가격도 비싸고 제일 먼저 없어짐. 충전소 걱정에 빌려도 되나 좀 걱정했었는데 너무 일찍 알아볼 땐 아예 예약날짜가 안뜨더니 열흘쯤 전에 예약하려니 불가. 아이오닉 한번 타보고싶었는데 아쉬웠다. 꿩대신 닭으로 빌린 렌터카는 소울. 차 괜찮더군. 기록용으로 남기자면 이용한 렌터카 회사는 '제주속으로'  2) 우도에 렌터카도 진입하고 전기차에 자전거에 씽씽이까지, 어휴 정신없어서 길도 좀 헤맸다. 예전엔 아무 어려움 없이 한바퀴 일주했는데 요번엔 막 중간에 길 잃어버리고, 친구 찾아 삼만리하고 ㅠ.ㅠ 째뜬 대여료는 2대 7만원. 3시간이었던가 3시간 30분이었던가. 넉넉하다고 했었는데 점심먹고 헤매고 그러느라 빠듯했음. 우도 땅콩 안 사온 건 후회. 3) 제주 해변 경치는 북쪽보다 남쪽이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거 같다. (하긴 거의 잘 보고 다니지도 못했음)

Posted by 입때
,

제주 풍경

놀잇감 2015. 11. 19. 22:00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봐도 꿈만같다. 특히 요즘처럼 날궂고 흐리고 비오고 기분 꿀꿀한 날에는 더욱 더.

6시면 일어나는 친구덕분에 매일 쇠소깍으로 아침산책을 나갔다. 투명카약 안타고 그냥 바라만 봐도 좋았던 쇠소깍

우도에서 서빈백사해수욕장이 왜 가도가도 안나올까 도무지 의아해하다가 만난 하고수동해수욕장. 서빈백사와 달리 모래가 엄청 곱고, 경사도 완만하고 해녀상도 서있다

이번에도 해변까지 계단을 내려가는 건 시도못했던 검멀레해안. 물보라를 일으키며 홱 도는 모터보트는 보기만해도 ㅎㄷㄷ

드디어 섬을 거의 한바퀴 다 돌고 만난 서빈백사해수욕장의 맑은 바닷물.

성산일출봉 내려오다 만난 예쁜 꽃밭과 절벽. 제주 해변 곳곳에 피어난 저 연보라색꽃 정말 예뻤다

올레길5코스에 해당된다는 남원큰엉의 해안절벽. 리조트 앞마당과 함께 꾸며진 산책로가 퍽이나 예쁘다..

사려니숲길... 단풍을 보려면 1시간 이상 한참 더 무슨 삼거리까지 올라가야한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 짙푸른 삼나무만 실컷 보고 왔다. 첫날 숲터널길에서 본 단풍은 정말 예뻤는데 또 만날 줄 알고 차를 안 세운 것이 뼈아프다.

새별오름의 억새밭. 멀리선 민둥산으로 보여 에게게.. 실망하다 막상 코앞에 가보니 죄다 억새로 뒤덮여 있었다. 오름을 하나라도 구경한 걸로 만족. 새별오름 주차장 한쪽 귀퉁이 트럭에서 꼬치어묵을 사먹었는데... 제주도, 일본 북해도, 부산 여행을 통틀어 사먹은 어묵 가운데 친구는 이날 먹은 어묵이 최고로 맛있었단다. ㅋㅋㅋ

​                                                                                                           2015. 11.1 ~ 11. 3

​​



Posted by 입때
,

제주도 먹거리들

놀잇감 2015. 11. 19. 15:40


광화문에서도 저 멀리 파리에서도 끔찍한 폭력이 자행되는 동안 탱자탱자 놀러만 다녔던 사람으로서 당연히 죄책감 같은 것이 들기도 하고, 오랜 여행 끝엔 원래 무기력증이 확 찾아오게 마련이라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도 좀 어려웠다. 여행 자랑 포스팅이나 할 때냐 지금이.. 뭐 그런 생각.

그래도 여행 후유증은 지난 사진 들여다보며 차츰차츰 극복해나가야하는 것이라 우기며 슬슬 사진정리를 시작했다. 우선은 제주도에서 먹었던 것들 사진이다. 먹거리 사진을 엄청 많이 찍은 것 같은데 다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었던 듯 막상 골라보니 몇장 없다. 단체카톡방에 드글거렸던 제주도 사진들은 이미 너무 오래돼서 안보이고... 

먹거리 앞에서 심혈을 기울여 열심히 사진찍는 스타일은 아니고보니 후딱 한장씩 남긴 거라 화질도 별로다. 그래도 다음에 또 제주도엘 가게 된다면 참고할 요량으로 기록해놔야지...


11시20분 비행기로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현금봉투 분실사건으로 혼이 절반쯤 빠진 상태에서 찾아간 곳은 제주시내에 자리잡은 갈치조림집, 제주마당(제주시 노형동 914-2. T: 064-749-5501) 

갈치조림 맛있는 집은 제주에 허다하기 때문에 고민을 엄청 하다가, 한국 TV예능 프로그램과 연예계 소식을 나보다 더 잘 아는 LA아줌마들을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 배용준과 박수진이 신혼여행갔다가 먹고간 집이라나 뭐라나.. (카운터 앞에 배용준 사인이 걸려 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철판에 거대한 통갈치조림을 해주는 걸로 유명하단다. 소문으론 하루 다섯마리밖에 안판다고 해서 걱정하며 전화로 예약하려했더니 일요일이라 예약은 안 되고, 점심때 오면 떨어져서 못먹을 일은 없다는 말에 안심했는데... 막상 가보니 진짜 대왕통갈치가 아니라 작은 거 두마리(그래도 크긴 하지만)가 들었다.. ㅠ.ㅠ  

비주얼로 승부하려는 식당이 다 그렇지만 맛은.. ^^; 오래 전 먹어본 유리네 갈치조림 만 못했다. ㅋㅋ 한참 끓여야 맛이 드니 당연하겠지...온통 옷에 냄새 배고... 가격도 108000원(8명까지 먹을 수 있다는 것 같다. 공기밥은 따로 계산했던 듯. 다만 넣고 끓여먹을 라면 사리는 그냥 준다^^) 

반찬으로 나온 간장게장이 슴슴하니 맛있었고, 먼데서 온 일행들은 에피타이저인지 디저트인지 곁들여 나온 오메기떡에 반해서 두번이나 더 시켜먹었다. 서귀포올레시장에 가서 진짜 오메기떡 사먹을 거라고 얘기했는데도... ㅋ

저녁은 횟집을 갈 계획이었으니 서귀포 올레시장 구경갔다가 이것저것 먹고픈 것들을 바리바리 사기 시작하면서 전격 수정. 소라와 문어, 멍게 따위를 좀 사고, 튀김에다 순대, 오메기떡, 연시, 귤, 기타등등 생각도 나질 않는 잡다한 먹거리를 사다가 펜션 방에 모여 먹었다. 사진은 없다. 일행 중 한 명이 LA에 있는 남편에게 자랑하자, LA뿐 만 아니라 교민사회 어디든 있는 H마트에서 사온 것과 다를 바 없어뵌다는 촌평을 들었다. ㅎㅎㅎ 그래도 가격대비 만족도로는 최상의 한 끼니였음. 

친구는 이렇게 납작한 연시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면서 (뾰족한 대봉시는 LA에서도 볼 수 있단다) 시장에 가자마자 제일 먼저 만원어치 한보따리를 사들었다. 2박3일간 먹다먹다 마지막에 친구와 내가 1개씩 공항에 들고 들어갔었는데.. 어떡했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_+



다음날 아침은 펜션에서 주는 조식. 

조식펜션으로 열나 검색해서 ​찾아낸 우리의 숙소, <해와 돌바라기> 펜션(서귀포시 하효동 1068번지)의 쌀국수와 또띠아 샌드위치다. 펜션은 서귀포시 쇠소깍 근처에 있었고, 쌀국수도 맛있었고 침구며 인테리어도 깔끔하니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말하면 펜션은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 ​1층엔 조식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마련되어 있고, 객실은 당연히 2, 3층에 있는데.... 한국체류 보름간의 짐을 몽땅 다 들고 인천에서 곧장 제주도로 날아간 여행객들의 묵직한 가방을 들고 낑낑대며 계단을 오르려니.. ㅠ.ㅠ 가장 크고 무거운 가방을 가져왔던 친구의 막내올케는 1층 중간 계단에서 가방을 집어던졌다.... 결국 그 가방은 내가 들고 올라갔음. ㅋ 엘리베이터 있는 펜션은 없을테니, 아침밥도 주고 방이 1층에 있는 펜션을 구했어야했다! 

싱그러운 샐러드가 곁들여진 샌드위치는 한 입 맛보니 좀 달았고(귤청이 들어간듯?), 연 이틀 쌀국수로 부탁해 먹은 난 만족했다. 일부러 쌀국수만 사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더라. 주인장 자매도 아주 친절하시다.

 





가로세로 사진을 붙이니 좀 우스꽝스럽고 순서도 뒤바뀌었지만... 우도 검멀레해안 근처 산호반점에서 먹은 뿔소라짜장면과 뿔소라짬뽕, 그리고 바로 그 옆에서 파는 땅콩아이스크림과 한라봉 아이스크림이다. 원래 계획은 항구에 내리자마자 눈에 띤다는 소라반점의 한치짬뽕과 한치짜장면을 먹는 것이었는데.. 역시나 우리가 내린 곳이 청진항이 아니었던 관계로 ㅠ.ㅠ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게다가 통 익숙치 않은 전기차를 몰고 섬을 반바퀴 이상 돌고 나자 모두들 지쳐버려서 횟집을 찾아갈까 묻는 것도 조마조마, 그냥 눈에 띄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해물짬뽕이 거기서 거기지 뭐.. 그러면서.  

소라가 정말 많이 들었다. 짬뽕은 12000원, 짜장면은 8천원. 메뉴는 딱 이 두가지. 탕수육은 안된단다. ㅋㅋ 짬뽕은 군말이 없었는데 짜장면은 양이 적다고 누군가 투덜거렸었다. ^^; 땅콩아이스크림은... 으음... 아이스크림 자체가 맛있다는 말은 절대로 못하겠고 우도의 땅콩은 정말 고소하다. 한라봉 아이스크림보다는 역시 땅콩 아이스크림을 권하겠다. 

이틀째 저녁엔 드디어 소원하던 회를 '배터지게' 먹었다. 내가 검색해서 가볼까 하고 염두에 두었던 서귀포 인근 횟집이 두어군데 있었는데 그래도 역시나 현지인에게 묻는 게 낫지 싶어 펜션 주인장에게 물었더니 좀 복잡하긴 하겠지만<쌍둥이횟집>을 가보라 추천했다. 내 목록에도 있던 집이라 얼렁 달려갔다. 그러나... 인산인해.. ㅠ.ㅠ 번호표 뽑고 40분쯤 기다려서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배가 안고팠기에 망정이지.

​4명기준 15만원짜리 특모듬'스페샬' 회세트를 시키고 2명은 두당 3만원씩 추가. 맛보기용으로 너무 조금씩 나온 갈치회와 고등어회를 맛나게 먹었고, 그밖에 곁다리 반찬들이 하도 많이 나와서 음식이 아까웠다. 빨간생선을 튀겨 소스를 끼얹은 탕수어 같은 것도 맛있었는데 절반도 못먹고.. 심지어는 회도 남기고 왔다(위 사진 속 회가 2인분 추가용으로 나온 작은 접시였다). 1년간 회 먹고 싶은 생각 안들 거라고들 하던데 과연... 마지막엔 칵테일 통조림 과일 잔뜩 얹은 팥빙수까지 나오는데.. 우린 배부르다며 마구 손을 내저었으나 너무도 친절하신 종업원께서 하나만 맛보라고 가져다주심. ㅠ.ㅠ 처음에 나온 찹쌀꿀빵(?)도 맛있다고 하니 싸가라고 한 접시 리필... 과연 다음날 언니들이 그 찹쌀빵을 다 먹었을지는 모르겠다. 째뜬 너무 배가 불러서 가장 중요한 회맛을 모르겠더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느낌? ㅋㅋㅋ 그래도 회를 투툼하게 썰어주는 건 좋았다. 관광객 상대의 이런 대형횟집에서 먹는 '모듬회' 보다 작고 알찬 횟집에서 도다리니, 돔이니 제철 생선 종류 골라가며 먹고팠으나... 이번 여행엔 그게 불가능했다. 사모님들 취향엔 역시 음식점이 좀 깔끔하고 화려해야 제맛이니까.

제주에 왔으니 흑돼지는 먹어줘야한다는 일행들의 염원으로 다음날 점심끼니로 찾아간 집은 제주시의 <흑돼지가 있는 풍경>(제주시 진군남4길 7-8, T: 054-742-1108).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추성훈과 야노시호가 그렇게 맛있게 먹는 걸 봤다면서 꼭 가야한다는 둘째언니의 원풀이 용이었다. 물론 내가 미리 경고했다. 맛있어봤자 돼지고기요, 그들은 최고의 리액션이 자동탑재된 '연예인'임을 잊지 마시라고 ^^; ​

자염을뿌려 구운 저 두툼한 오겹살을 갈치젓인가 멸치젓인가... 암튼 사진에 살짝보이는 작은 뚝배기 안 젓갈에 찍어먹는 식인데... 맛은 있었으나 딱히 흑돼지 특유의 맛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오래 끓이니 젓갈에서 토종된장 맛도 나는 것 같고 난 괜찮던데. 그래도 입짧은 친구는 젓갈에 찍는 건 아무래도 못먹겠다며 그냥 쌈장 찍어먹었다. 다만 1인분에 1마리씩 나오는 싱싱한 전복구이도 전날 횟집에서 먹었던 전복버터구이에 비하면.. ㅠ.ㅠ 비리고 질기고... 그냥 돼지고기를 더 주지 싶었다. 살아있는 전복이 꿈틀거리며 익어가는 모습도 지켜보기 좀 괴롭;;; 

두툼한 흑돼지는 100g에 만원. 1인분에 2만원이라는 얘기다. 사진 속 고기 세 덩이가 2인분. 우리는 6명이서 5인분을 시키고 추가로 김치째개에 공기밥, 비빔보리국수를 먹었다. 보리국수는 비추천. ㅋ LA손님들은 흑돼지보다도 같이 나온 싱싱하고 다양한 쌈채소에 반해서 연신 감탄을 했다. 흑돼지고기먹으러 온 사람이 아니라 제주도 쌈채소 먹으러 온 사람들 같았음. 근데... 난 저 노란 돼지껍질이 너무 딱딱하고 안씹혀서 좀 별로... 오겹살을 좋아하지만... 저런 껍질까진 먹고싶지 않다고 생각. 

야노시호가 '오이시 오이시!' 감탄하던 게 토옹 이해가지 않는다는 일행과 맛있어서 그럴만 하다는 일행으로 의견이 나뉘었는데... 본점은 점심을 2시부터 장사하기 때문에 드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한참 돌아다니다 들어가서 먹었었다. 멀지 않은 노형동에 2호점이 있단다. 사실 나는 GD가 애정한다는 돈사돈엘 가보고싶었었으나, 젓갈 찍어먹는 흑돼지 구이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흑돼지 아니어도, 백돼지여도 난 삼겹살, 오겹살이 맛있는 인간! ㅋ

Posted by 입때
,

근황

놀잇감 2015. 11. 8. 15:41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일주일간 친구따라 여행자의 삶을 시전하다 주말에 잠깐 소강상태다. 내일은 다시 부산 내려가서 국내 패키지여행을 마친 친구 일행과 합류해 북해도 여행을 갈 계획. 부산출발, 부산도착 패키지라, 목요일에 부산 도착하면 다시 1박하며 잠깐 또 부산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아이고 바쁘다 바빠. 그리고... 고되다. ㅠ.ㅠ

11월 1일에 떠났던 제주도 여행은 시작부터 아주 파란만장했다. LA친구는 이번에 혼자 나온게, 아니라 두 언니와 손아래 시누이까지 대동했고, 제주여행 팀은 큰언니의 친구 한명까지 합해서 총 6명이나 됐다. 새벽비행기로 인천공항에 내린 LA팀과 김포공항에서 아침 일찍 상봉.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좌석에 앉자마자 유일하게 휴대폰을 로밍해온 큰언니의 '새삥' 아이폰6s플러스가 보이질 않는다고 했다. 좀전까지 분명 손에 들고 있었다는데... 

내가 얼른 전화를 걸어보니 다행히도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게이트 안쪽 면세구역에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놓고 온 거란다. 찾았으니 일단 안심. 편의점 매니저인듯한 남자분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아적고, 제주에서 김포로 돌아와 돌려받기로 마무리를 지었다. 미국서 새로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 전화기인데다 온갖 비즈니스 연락처가 다 들어서 잃어버렸다면 정말 낭패였을 텐데.... 하늘이 도왔다고 다들 말했다.

제주공항에 내려선 우선 렌터카 창구를 찾아갔다. 인원도 많은데다 LA팀 아줌마들의 짐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지 알수가 없어서 미리 예약은 하지 못했다. 9인승 승합차 1대로 다니기로 결정하고 셔틀버스로 렌터카 회사로 가고 있는데, 셔틀버스 기사님이 갑자기 전화통화를 하다가 물었다. "혹시 현금 봉투 잃어버리신분 계세요?" 헉... 현금 봉투??

친구 일행은 이번 여행 경비를 미리 내게 송금해 환전해놓도록 했고, 서울서 합류한 나와 큰언니 친구도 똑같이 회비를 내서 내가 총무를 맡아 경비를 쓰기로 했었다. 하여... 내가 펜션 숙박비를 제외한 전체 경비(무려 130만원! 그나마 제주도 경비만 들고 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ㅠ.ㅠ)를 현금봉투에 넣어 들고 다녔는데, 여행 시작도 전에 잃어버린 거였다! (물론 잃어버린 줄도 몰랐음. 공항 창구에선 현금 결제 안된대서 대신 내 카드로 결제했기 때문에.. ㅠ.ㅠ) 

렌터카 창구 직원이 습득한 것도 아니고, 우리처럼 렌터카를 빌리러 셔틀버스 타고 본사로 올 손님 중 누군가 현금봉투를 주웠기 때문에 직원들이 아주 난감해했다. 습득한 분이 직접 분실자와 통화를 하고 돈봉투도 직접 전하겠다고 했다면서... 째뜬 결론적으로 여행경비는 무사히 되찾았다. ^____^  사례금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 5만원 드렸음. 분실액의 10퍼센트를 사례금으로 주는 것이 상례라고 들은 것도 같은데 그건 너무 많은 것 같고.. ㅠ.ㅠ 

아오.. 암튼 LA 아주머니들은 한국이 아직도 살만한 나라라면서 칭찬일색. 그러나 나는 여행가이드 겸 운전수로서의 임무를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멘붕이 되고말았다. 어떻게 돈봉투를 그냥 아무데나 흘릴 수가 있는지... 내가 나를 믿을 수가 없어! 정신이 혼미.. 게다가 난생처음 9인승 뉴카니발을 운전해야하는데.... 으어... 의자 높이는 건 어떻게 해야하느냐규... 일단 운전석에 앉았는데 승합차는 처음 운전한다는 내 말에 다들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더니, 국제면허증을 만들어온 둘째 언니가 무작정 운전석을 꿰찼다. 미쿡에선 그보다 더 큰 밴을 끌고 다니는 사모님이시라며...

가이드의 위상은 시작부터 처절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으니... 에효. 

그래도 첫날 멘붕 충격에서 벗어난 둘쨋날부터는 다시 내가 가이드 겸 운전수의 임무를 무사히 수행했고, 먹부림에 가까웠던 여행은 즐거웠다. 간만에 간 제주도는 아이고.. 어찌나 아름답던지! 돌아오기가 안타까웠다. 물론 2박3일이 5박6일쯤 되는 듯한 기분이 들만큼 스트레스 또한 많았으나 ^^; 제주도의 아름다움이 그 스트레스를 죄다 무마해주었다. 가능하다면 한 일주일 넉넉하게 둘러보며 올레길도 제대로 좀 걸어보고 싶은 마음 굴뚝. 물론... 다음엔 이왕이면 까다로운 사모님들 말고 ^^ 편한 파트너와 함께 여행하고 싶다. ㅋㅋ 숙소가 서귀포시 쇠소깍 근처에 있어서 주로 그 근방과 우도를 다녀왔는데 날씨도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둘쨋날 아침산책에서 발견한 숙소 옆 돌담 너머의 귤밭. 저 귤이 다음날 보니 다 수확되고 없었다. 농장에서 사먹은 귤은 아직 좀 맛이 덜들은 느낌도 있었지만 완전 꿀맛. 게다가 엄청나게 큰 15kg 한박스에 겨우 만오천원! 귤값이 폭락해서 인건비도 안나올 지경이라 제주 농민들의 시름이 크단다. 겨우내 제주 농장에다 직접 연락해서 택배로 받아 사먹어야지 마음 먹었음.  

위 ​사진은 우도 서빈백사 해수욕장이다. 옛날에 성산항에서 우도 갔을 땐 분명 천진항에서 내려서 조금만 가면 이 해변이 나왔었는데.... ㅠ.ㅠ 이번에 우리가 내린 항구는 천진항이 아니었다. 그래서 또 나의 머릿속 내비게이션과 방향감각이 꼬이고... 소형 전기차를 빌려 둘둘씩 타고 우도를 둘러보자던 계획은... 믿었던 언니들의 운전포기로 아슬아슬... 사고 안나고 잘 끝난 게 다행이었다. 


요번에 우리가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당도햇던 항구는 '하우목동항'. 예전엔 제주 모슬포에서 오는 배들이 여기로 오고, 성산항 출발한 배는 천진항으로 다녔던 것 같은데 서로 바뀐듯하다. 째뜬 전기차나 스쿠터를 빌릴 분들에게 팁을 드리자면... 하우목동항 근처의 전기차, 스쿠터 렌트업체보다 천진항 근처의 전기차, 스쿠터가 훨씬 '새것'이고 모양도 예쁘고 색깔도 다양하다. 우도에서 잠깐씩 해가 구름속으로 숨을 땐 한기가 느껴졌었는데, 그땐 같은 모양이라도 문 달린 샛노란 전기차를 탄 사람들이 엄청 부러웠다. 하지만.. 하우목동항과 천진항 사이가 전기차로 5-10분 거리이니 걸어가서 빌려타고 또 나중에 항구까지 걸어올 생각을 하면 강력 추천하진 못하겠다. 배가 천진항으로 들어갔을 때라면 모를까...  하여간 나는 외모지상주의자답게 색깔 다양하고 예쁘고 '새것'인 남들의 전기차를 나는 계속 부러워했었다. ^^ 

'같은 날 섭지코지에서 본 석양이다. 

서울로 올라와서 4일엔 컬투쇼 정찬우의 광팬인 둘째언니를 위해 1달전부터 신청해놓았던 컬투쇼 방청단으로 SBS엘 갔었고, 다음날은 명동, 남대문시장, 삼청동, 청계천 시내관광을 풀코스로 다녔고...


LA팀들이 국내여행 패키지를 떠난 6일엔 미리 계획했던 대로 등산. +_+ 체력은 국력이다. 물론 등산이라기보다는 단풍구경을 나선 것인데, 중간에 갑자기 농사짓는 후배가 텃밭에 고구마를 못캐서 버리게 생겼다는 말에 등산을 중단하고 일산으로 달려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는 비를 맞으며 고구마와 땅콩을 캤다. 겨우 일주일만에 한 3개월치 외출과 활동량을 몽땅 해치운 기분... 

비오는 주말 내내 몸을 추스리고 있는데.. 우잉... 날짜가 일러서 북해도엘 가도 눈대신 계속 비가 온다는 전망이다. 젠장. 여행은 뭐 비가오나 눈이 오나 나름의 재미와 감동이 있지만... 이왕이면 날씨가 좋아야하는데... 아쉽다. 째뜬 그래서 또 다음 근황은 북해도와 부산 다녀오고 친구 돌려보낸 뒤에야 정신 차리로 알릴 수 있을 듯. 


Posted by 입때
,

건축학개론

놀잇감 2012. 4. 6. 13:07

* 스포일러 주의 

이 영화에 대해서 들었을 때 나는 한가인/엄태웅 조합보다도 배수지/이 제훈 조합에 훨씬 더 관심이 갔다. 나 역시 <파수꾼>에서 기태 이제훈을 보며 앞으로 주목할 만한 괜찮은 배우 하나를 얻었군 하며 흐뭇했었고, 수많은 아이돌 걸그룹에 대해선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면서 유일하게 알고 예뻐하는 아이가 '수지'다. 엄청 공들여 만져놓은 듯한 인공미 소녀들의 물결 속에서 수지양은  자연스러운데도 맑갛게 빛나며 예쁜 느낌! 한가인의 미모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열아홉살 수지와 비교하니 확실히 광채가 다른 것 같았다. 물론 빛나는 청춘을 그려난 과거의 화면이 현실에 찌든 현실의 모습보다 당연히 환하고 아름다웠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멜로 영화는 여주인공이 예뻐야 보기 뿌듯한 이 불편한 진실.. -_-;

영화를 보기 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포스터의 저 카피 대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쌍년/놈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이웃 어느분의 의견에 빵 터져 킥킥댔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역시 그 말이 진리였다. 감정에 서툴고 사소한 것으로 오해하고 자격지심과 자존심 앞세우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찌질하게 먼저 상처 주는 쪽을 택했던 청춘 한때를 그 말만큼 잘 찝어낸 말이 또 있을라고!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나도 분명 '쌍년' 짓을 했다는 건 잘 안다. 영화처럼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재회는 아니었지만 세월이 흐른 뒤 만났을 때 진짜로 왜 그랬냐고 나더러 따지더라. ㅋㅋㅋ  

수지와 이제훈에 대해선 이유없이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반면, 엄태웅과 한가인에겐 우려의 시선을 품고 있었는데 퍽 괜찮았다. CF속의 한가인이 그간 예뻐서 좋긴 해도 연기하는 걸 제대로 본적이 한번도 없다가 <해를 품은 달>에서 보며 얼마나 아쉬웠는지. "연우 역할을 문근영이 했으면 얼마나 좋아!"라는 탄식을 수도없이 내뱉을 만큼 김수현과 별로 어울리지도 않고 연기도 참 못했다(상대적으로 김수현과 아역 김유정 양이 사극 연기를 너무 잘한 걸수도 ^^;). 역시나 어울리는 옷은 따로 있는지, '제주도 학원출신' 음대생이지만 피아노는 지긋지긋하고 아나운서가 돼 돈을 잘 버는 게 꿈이었으나 결국엔 의사 부인이었다가 술마시고 쌍욕도 마구 하는 이혼녀가 된 서연의 옷은 한가인에게 퍽 잘 어울렸다. 세상풍파는 혼자 다 겪은 듯 외모도 성격도 확~ 변해버린 승민(이제훈이 나이든다고 어떻게 엄태웅이 되느냐고!)을 수긍하는 건 약간 더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는 뭐 그랬다 치고! 보는 것이 극의 묘미이니 꼬치꼬치 따질 수야 없다.

감독이 꽤나 오래 준비하고 다듬은 대본이라더니 가끔 가슴을 툭 떨어뜨리거나, 참 기발하다고 킥킥대게 만드는 대사가 꽤 많았다. 알탕, 대구탕과 달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 '매운탕'도 그렇고, '싱숭이생숭이', '우루사'도 그렇고... (그런데 일주일도 안 돼서 벌써 다 까먹었으니 원;;) 하여간 근래 보기 드문 최고의 조연 캐릭터 '납뜩이' 조정석이 한 말과 행동들은 죄다 인상적이었다.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이제훈한테서 <파수꾼>의 기태 그림자를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나는 (특히 택시기사한테 대신 화풀이하는 장면 ㅠ.ㅠ) 그에게 납뜩이 같은 솔직하고 좋은 친구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까지 여겼다. 물론 여기서 이제훈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는 건축학과 새내기 승민이었는데, 미련한 내가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는 뜻이다. -_-;

서울이란 도시는 고향이라 여기기 좀 뭣한 공간이지만 그래도 나고 자란 곳이다보니 서울에서도 낯익은 지명이 영화 배경으로 등장하면 엄청 반갑고 정겹다. 전도연 하정우 나왔던 <멋진 하루>도 그래서 더 좋은 영화로 기억된 듯한데, 이 영화에서도 '정릉' 때문에 호감이 배가됐다. 살아본 적은 없어도 그 동네 사는 친구들이 엄청 많아 나 역시 개포동-정릉간 그 버스를 갈아 타고서 자주 놀러다녔고, 누구의 묘인지 아직도 헷갈리는 '정릉'엔 중1때 소풍을 갔었다. 소풍 장소가 발표되자 당시 정릉 친구들은 아우성을 쳐댔다. 국민학교 6년 내내 정릉으로 소풍 다녔는데 중학교에 와서도 또 거길 소풍으로 가야하느냐고! 그리고 건축학개론 첫 시간엔가 서연과 승민이가 지도에 빨간펜으로 그리던 길 위에 현재 내가 사는 집도 있다. 아니, 내부순환로가 개통된지 오래지만 북악터널을 지나 구불구불 신촌으로 이어지는 그 옛길은 요새도 내가 걸핏하면 지나다니는 길이다. 나와 별 상관도 없는 그 설정에 괜스레 흐뭇했던 이유는 역시나 강북인의 정서였을까?   

내가 건축을 해볼 생각은 꿈에도 없었지만(건축과는 이과잖아! 난 수학 못해! 뭐 이런 원초적인 한계;;) 건축하는 사람에 대한 로망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막상 그들 일하는 얘기 들어보면 처음엔 엄청난 박봉에 노상 밤샘에, 건축주와의 신경전에 끔찍한 직업이 따로 없다 싶지만 그래도 '집'과 '건물'을 어느틈에 뚝딱(은 결코 아니겠으나;;) 만들어내는 일이란 얼마나 경이롭고 멋진가! 게다가 영화에 그 과정이 나오는 건축의 배경은 심지어 제주도다. 한옥열망과 더불어 제주도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열망 또한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화 보는 내내 막 부럽다가 막판엔 심술이 났다. 그러니깐, 제주도에 저 정도 집 짓고 살려면 예쁜 외모로 의사랑 결혼했다가 위자료 엄청 받고 이혼해야 되는 건가? 아니지, 그 전에 일단 제주도에 물려받을 땅과 집이 있어야 하는 거네! 흑... 비뚤어진 심보로 투덜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제주도 바닷가에 옛집과 추억을 최대한 살려 지은 집은 참 아름답고 마음에 들었다. 확 터를 갈아엎고 새로 지은 집이 아니라서 더 애틋했던 것 같다. 인생 역시 깡그리 갈아엎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불가능지만, 서연과 승민 역시 과거의 기억을 가지런히 잘 정돈했으니 그 집처럼 낯익으면서도 새로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납뜩이 때문에 대체로 깔깔 웃다가 영화관을 나왔는데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 때문인지 덩달아 환기된 청춘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조용히 빗속을 걸으며 조금 슬펐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가 좋았지' 싶었던 부분도 확실히 더러 있긴 하다. 엄청 잘 만든 수작이 아님에도 이렇게 인기몰이를 하는 건 다들 영화의 틈을 각자의 추억으로 메우기 때문인 듯. 암튼 이 영화 때문에 새삼 봄을 앓는 주변의 중년들이 몇몇 보여서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들에겐 이 영화가 싱숭이생숭이다. ㅋ

Posted by 입때
,

관광옵션

하나마나 푸념 2012. 3. 10. 06:29

사대문에서 그리 멀진 않되 꽤 후미진 동네이기 때문인지, 동네 근처에 '이상한 곳'이 꽤 많다. 도로도 넓지 않은데(겨우 왕복 4차선), 오전오후 따질 것도 없이 관광버스가 떼로 몰려와 한 차선을 점령하고 주정차할 만큼 붐벼, 가끔 경찰차가 슉슉 마이크 소음을 내며 도로정리를 할 정도다. '내국인 출입금지'라고 건물 앞에 팻말이 붙어 있고 시뻘건 간판은 오로지 한자로만 써붙인 <고려인삼 면세점> 이야기다. 내가 발견하기론 1, 2킬로 미터 이내에 네 다섯 군데나 몰려 있는데도, 죄다 성업중인 것으로 보인다. 관광버스 앞에 써붙인 글씨로 보면 대부분 중국인 관광객이고, 가끔 일본 관광객 버스도 보인다. 길을 막고 줄지어 서 있거나 좁은 주차장으로 기다란 버스를 대려고 중앙선까지 넘어갔다 후진하는 관광버스들 때문에 병목현상이 생겨 그 앞을 지나려면 한참 걸리기 때문에 짜증도 나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에 끌려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안쓰럽다. 보나마나 저렴한 한국관광 상품으로 놀러와, 실제 관광은 하는둥마는둥 툭하면 이런저런 면세점으로 끌려 다녀야 하는 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인상으로 남을까.

현지 언어에 자신이 없고 낯선 나라로 여행을 갈 때는 나도 더러 패키지 여행상품을 선택하지만,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여행상품만큼 딱 떨어지는 것도 없음을 이젠 나도 잘 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패키지 상품을 선택하더라도, <노옵션, 노팁, 노쇼핑>이라고 처음부터 딱 못박아 놓은 상품을 찾는다. 그런 상품도 가이드에 따라선 슬쩍, 이건 정말 너무 좋은 상품이라 소개 안하면 고객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한 군데쯤은 데려가는 형편이니, 정말 패키지 여행은 편하고 싼맛에 가긴 하면서도 일신의 편안함과 맞바꾸어야 하는 나름의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내가 최초로 패키지 여행상품을 경험했던 것은 아마도 제주도 수학여행이었겠으나, 워낙 돈없는 대학생들의 수학여행이라 물건을 사라고 강요받은 기억은 전혀 없다. 그러나 직장생활 하면서 두번째로 친구들과 간 제주도 패키지는 상황이 달랐다. 관광코스 사이사이에 오전 오후 각 한 군데씩은 특산품 판매장에 끌려다녔던 것 같다. 절대 '옥돔'은 사오지 말고 '귤'이랑 '미역'이나 사오라는 엄마의 당부를 받고 간 상황이었는데, 가이드가 특산품 매장마다 하도 다그쳐대는 바람에 꿀과 로열젤리, 영지버섯 같은 걸 사들고와 엄마에게 혼이 났었다. 제주도는 그때도 아름다웠고 여행은 대부분 즐거웠지만, 이후 다시는 제주도에 패키지 여행으로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옵션도 어찌나 많은지, 입장료 저렴한 데는 지들이 내준다고 생색내면서 배타고 좀 비싼 데는 죄다 따로 돈을 걷두만. 쳇...

그러나 십수년 뒤인 2002년, 나는 그 다짐을 깨고 또 한번 제주도 패키지 여행에 따라나선다. LA로 이민간 친구가 언니랑 다니러 오면서 끊은 항공권이 하필 제주도 패키지 포함이었고(이왕이면 제주도 여행도 하고 좋잖아! 라고 친구가 말했을땐 나도 그저 헤벌레 좋아라 찬성했다), 나는 별도 1인용 여행비를 내고 공항에서 만나 그 팀에 합류했다. 허나 제주 공항에 내려 관광버스에 오르는 순간부터 나는 얼굴이 뜨거웠다. 버스엔 '고국방문단 환영'이라는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옆구리에 붙어 있고, 비디오 촬영기사가 계속 일행을 따라다니며 동영상을 촬영했다. ㅠ.ㅠ 대부분 십여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민자들이라 '역사적인' 현장을 기록으로 남길만한 상황인지 어쩐지 모르겠으나, 나와 친구 일행은 거의 미칠 것 같았다. 우리는 절대로 그 비디오 테이프를 사지 않을 테니 찍지 말라고 가이드와 촬영기사에게 극구 당부해보아도, 같은 여행 팀이니 그냥 자연스럽게 촬영에 협조해달라는 말만 돌아왔다. 우웩~~!!

어쨌거나 때는 가을이 한창이라, 나는 버스에서 제주 오름 근처의 억새밭이 정말 장관이겠다고 미리부터 운을 띄웠다. 가을 제주 바다는 또 얼마나 예쁜 옥색인지 몰라. 바닷물도 아직 따뜻할 걸... 그러나, 아무리 패키지 여행이라지만 고국방문단을 위한 제주 관광 코스는 정말 너무 심했다. 관광지 하나 건성으로 휙 보고 특산품 판매점에 가면 1시간 반씩 머무는 걸 3일 내내 번갈아할 줄이야! 특산품도 내가 예전에 소개받던 것과는 가격대가 아예 달랐다. 대부분 하나에 수십만원을 넘어 백만원에 가까운 말뼈(관절염과 골다공증에 특효라나)! 동충하초(설명만 들으면 거의 만병통치약이두만)!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아가리쿠스 버섯(항암과 당뇨치료제라고 들은듯)! 워낙 고가인지라 그런 상품을 사면 자연산 꿀이랑 로열젤리(십수년 전엔 내가 돈 깨나 주고 사왔었는데!)를 덤으로 막 준다고 했다. 일행중 우리만 삼십대였고, 동영상 촬영거부에다 쇼핑은 전혀 할 마음이 없어 상품설명할 때 일부러 휘휘 농장 구경이나 다니고 있으니 가이드에겐 미운털 깨나 박힌 상황이었다. 하지만 싫은 데 어쩌라고!

관광지라도 제대로 데려가면 좋겠는데, 어쩜... 바다라곤 용두암과 외돌괴 두 가지만 딱 보여주더니 잠수함, 유람선 타는 것도 옵션, 몽고인들의 조랑말 쇼도 옵션(제주도 가서 왜 몽고 조랑말 쇼를 보라는 건지!), 조랑말 시승도 옵션, 무슨무슨 박물관도 옵션... 죄다 돈내고 하는 것만 강요했다. 물론 억새밭 구경과 제주 해수욕장 구경 따위는 아예 코스에 없었다. -_-; 오죽하면 사흘간 제주 관광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으로 친구가 꼽은 것이, 호텔 마당 앞 풍차 카페에서 밤에 맥주랑 칵테일 마신 거였다. 우리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려고 간 거라규~! 결국 우린 관심없는 옵션 코스 때 관광버스에 그냥 남아있겠노라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으나, '안전 관리상 불가'하다는 말에 한숨을 쉬었다. 다 이민자인데 유일하게 신분이 다른(?) 내가 가이드에게도 골칫거리였을 테지만, 아니 말이 안통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제주도엘 벌써 몇번째인데! 어휴!

째뜬 덕분에 나는 제주도에 그토록 수많은 특산품 면세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수정은 익산이 유명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 글쎄, 제주도에서도 팔더군! ㅋㅋ 정말로 또 LA 부자 교포아주머니들은 이따시 만한 자수정 금반지와 목걸이를 막 척척 사주시고... 가이드는 싱글벙글...  촬영기사 아저씨는 그들을 열심히 비디오카메라로 찍어대고... 정말 우리에겐 악몽이나 다름없는 제주여행이었다.

동네 근방에 있는 <고려인삼 면세점> 앞에 선 관광버스 행렬과 외국인들을 보며, 자꾸만 그 때의 '고국방문단' 패키지 여행이 떠올라 유심히 사람들 얼굴을 살피는데 내 선입견 탓인지 표정들이 다 좋질 않다. 명동은 물론이고 이대앞과 홍대앞에도 와글와글 지도 들고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들의 표정과는 사뭇 다르다. 들어보면 개인으로 찾는 일부 한류관광객들이 아닌 한, 그들도 하루쯤 시내 자유관광을 하는 것일 뿐 역시나 저렴한 패키지 상품으로 여기저기 특산품 면세점에 끌려다니는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 과연 그렇게 한국과 서울을 '관광'하고 나면 또 다시 오고 싶은 애틋한 마음이 들까? 어차피 패키지 상품이라는 것의 특징과 단점을 그들도 알고 오긴 했겠지만, 한류를 업고 여행사마다 싸구려 상품으로 외국인들 데려다가 망신만 시키는 건 아닌지 퍽 궁금하다. 내가 아무리 제주도는 그런 데가 아니라고 나중에 변명해 보아도, 친구와 언니에게 제주도는 음식도 별로 맛없고, 구경할 데도 별로 없으면서 바람만 엄청 불고, 야자수는 말라죽는 곳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수년 뒤 다시 온 친구에게  내가 제대로 제주여행 가자니깐, 차라리 일본엘 가자고 했을라고. +_+ 친구는 올 가을쯤 다시 한국으로 놀러올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제주 올레길 한번 걸어볼래? 라는 나의 질문에 역시나 방사능 괜찮은 곳으로 골라서 일본 온천이나 가자니깐! 하고 대답했다. 첫인상은 이렇게 중요한 것일진대. 
Posted by 입때
,

오 제주도 4

여행담 2008. 8. 6. 15:12
어쩐지 아쉬워서 두고두고 조금씩 후기를 올려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질 것도 같고 기억력도 가물거려 나중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마무리를 해야겠다.

2008. 8. 1.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날.
아침식사용으로 사놓았던 소박한 양식(바나나, 사발면, 포장용기 밥 따위)들은 거의 떨어져 우유와 주스 정도만 남았지만 그나마도 모두 해치우고 가야한다는 일념에 모두들 우유와 주스를 두잔씩은 벌컥벌컥 마셔댄 것 같다.
호화로운 나인브릿지 빌라와는 일찌감치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는데, 밤중 귀가길에 앞좌석에 앉았던 잇점을 살려 얼핏 풀 뜯어먹는 노루를 구경한 벨로와 키드님과 달리 당시 뒷자리에 앉았던 지다님과 나는 결국 한라산 중턱에 사는 노루를 볼 기회가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숙소 주변을 산책했더라면 또 모르겠는데, 잠자리가 설어 토끼잠에 시달리는 데다 아침잠까지 많은 내가 그런 부지런을 떨 수는 없었으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마지막 날엔 다들 꼭 가보고 싶었다고 손꼽았던 김영갑님의 두모악 갤러리를 먼저 찾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주도가 좋아서 제주도 사진만 찍다가 병든 몸으로도 제주도에 남아 그곳에 묻혔다는 사진작가의 일대기가 아니더라도 길쭉하게 제주도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은 참 아름답고 정겨워서 슬펐다.
접사는 금지되어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서 이 정도면 접사일까 아닐까 고민하면서 굳이 서툰 솜씨로 찍어본 사진들은 그분 작품에 대한 훼손일 것도 같아서 올리지 않기로 했다.
마치 아프리카 대초원의 바람을 담은 듯한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었는데...

처음엔 갤러리 바깥에 조성된 정원에 옹기종기 장식되어 있는 작은 조각들도 혹시나 사진작가의 작품일까 열심히 사진에 담았는데 어느 여성화가의 작품이라는 듯하여 맥이 좀 풀렸다. 어쨌든 현무암 하나하나를 쌓아올리고 곳곳에 나무를 심어 가꾼 정성은 본인의 것이라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뒷마당에 줄지어 놓인 작은 돌 연못도 예쁘다.

공항 시간에 맞춰 한 군데 더 어디를 갈 것인가 고민했던 우유부단한 일행들은 갤러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절물 자연휴양림을 선택했다. 산굼부리와 휴양림 가운데 고르라고 칼자루를 지다님께 쥐어주었는데 단칼에 "휴양림이요!"라고 대답해주어서 속으로 얼마나 고마웠는지. ^^;;
산굼부리는 산등성이 중간쯤에 형성된 분화구라 가을엔 단풍과 억새밭이 장관이고, 봄에도 꽃구경이 흥미롭지만 한여름 뙤약볕에 그늘 하나 없는 그곳으로 올라가려면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휴양림에 가기 전에 먼저 점심을 떼우기로 했던 우리는 전날 우도 정자 옆 간이 식당에서 본 열무국수를 계속 부르짖으며 비빔밥 같은 것도 좋지만 열무국수를 먹고싶다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주워섬겼는데, 토룡마을을 이끄는 뛰어난 영도력과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눈썰미마저 빠른 키드님이 전격적으로 국수전문점을 발견하여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시원한 국수를 맛볼 수 있었다.
콩국수는 비싼 흰콩을 아끼느라 땅콩을 너무 많이 넣은 맛이기는 했지만 비교적 훌륭했고
열무국수 또한 담백하고 시원하여, 더불어 시켰던 해물파전과 먹기엔 금상첨화였는데 어찌나 양이 많던지
모두들 국수와 파전을 조금씩 남기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먹은 국수와 파전까지... 이번 여행의 먹거리는 <제주도에선 맛난 음식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주었다. 예전 제주도 여행에선 친한 현지인이 권해준 식당이 아닌 한, 늘 먹고도 별 맛도 없으면서 터무니 없이 바가지 쓴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는데, 제주도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정비를 했다더니 먹거리 문화까지 개발된 것 같아 흐뭇했다.

절물 휴양림은 역시 지난번 막내동생의 여행담을 주워듣고 알게 되어 처음 가본 것인데, 손바닥만한 공간을 휴양림이라고 이름 붙여놓고 입장료를 받는 기분 나쁜 과거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퍽 괜찮은 곳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꽤 넓은 중앙로엔 그늘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는 골진 나무판자가 정갈하게 깔린 오른쪽 숲길로 무조건 접어들었는데, 그러면서도 오로지 우리의 목표는 그늘진 평상을 찾아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드러누워 산림욕과 낮잠을 즐기는 것이었다. ^^
그렇게 평상에 드러누워 올려다본 하늘이 어찌나 맑고 파랗던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평상에 드러누워 이 사진을 찍을 땐 드러난 하늘 모양이 나비 같다고 생각하며 자랑삼아 찍은 것인데 와서 보니 막상 그 느낌이 별로 없다. 솜씨 탓도 있겠지만, 특히 자연은 마음에 담기는 것처럼 푸근한 모습으로 사진에 담겨주질 않는 듯.

숲속에선 피톤치드가 나오네, 음이온이 발생하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야 없는 법인데
이곳 평상에 드러누웠을 땐 확 트인 공간에서 절대로 잠들지 못하는 까칠한 인간답지 않게 나도 까무룩 잠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숲의 심신 안정 효과가 그만큼 탁월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

아쉽게 휴양림을 떠난 우리는 공항까지 21분 걸린다는 네비게이션의 말을 믿고 시간을 안배했건만
마지막에 연료탱크를 꽉 채워 렌터카를 돌려줘야하는 상황에서 공교롭게 마지막 주유소를 지나치는 바람에 다시 공항에서 빠져나와 뺑뺑도는 난항을 겪기도 했지만, 무사히 차를 넘길 수 있었다.
이번에 새삼 알게 된 건 제주도 휘발유 값이 서울보다 훨씬 싸다는 것!
서울에선 2천원이 넘는데, 제주도는 리터당 겨우 1810원!
연료통을 가득 채우면 거의 만원 가까이 차이가 날 거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제주도에서 살고 싶어졌다.  +_+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국내여행이지만 공항에서 면세쇼핑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 듯한데
한도액이 40만원이다보니 아주 값비싼 명품 가방같은 것들은 있지도 않고 주로 화장품과 선글라스 정도인데도 사람들이 완전 미친듯이 쇼핑을 하더군.
나도 화장품을 사기는 했지만 대단히 정신없는 도깨비 시장 같은 분위기라 오래 구경하진 못할 듯했다.

다들 몹시 피곤하여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들 꾸벅꾸벅 조는 분위기였는데, 돌아오는 한성항공은 착륙을 앞두고 어찌나 불안하게 흔들거리는지 뱃속과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았고 설상가상 통로 반대편에 앉은 몰상식한 인간이 계속 휴대전화를 끄지 않고 뭔가를 하고 있어 <다이하드>에서 몰래 기내에서 전화질하는 기자에게 주먹질을 했던 브루스 윌리스 부인의 장면이 떠오르질 않나, <아는 여자>에서 동치성 부모님이 기내에서 동치성이랑 통화하다 꽝 추락사하는 장면이 떠오르질 않나 불안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물론... 김포에 무사히 착륙했으니 이렇게 후기를 올리고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내 몰상식 비율을 봐서라도 비행기 같은데선 아예 휴대폰 전파가 안잡히게 해야하지 않을까 공연히 부르르 주먹쥐고 떨었었다.
-_-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비행기 이착륙할 때 매번 불안하지만, <그래도 비행기 사고로 죽으면 보상금도 많이 나오잖아>라고 위로하며 자신을 달랬었는데 저가항공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쩐지 보상금도 적게 나올 것 같아 앞으로는 더더욱 좀 덜 흔들리고 안전한(확실하진 않지만;;) 비행기를 타기로 결심했음. ㅋㅋ
Posted by 입때
,

오 제주도 3

여행담 2008. 8. 5. 14:03
셋쨋날(2008. 7. 31)은 드디어 내가 우도에 발을 디디는 날이었기에 더욱 설렜다.
스물한 살 이후 제주도엘 꽤 여러번 가봤지만 우도에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 수학여행이나 패키지 여행상품엔 우도행이 포함되지 않았었고 나중에 렌터카를 빌려 제주도를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됐을 땐 늘 날씨가 나빠 배를 탈 수 없거나 시간이 촉박해 매번 우도를 포기해야 했는데
우도에 하필 국내 유일의 산호해변이 있다는 말에 더욱 동경을 키웠던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찬란하다 못해 검은 머리가 지글지글 타버릴 것 같은 강렬한 태양과 새파란 하늘 아래 우도행 배는 더욱 푸른 바닷물을 헤치고 출발했고,
방파제 위에 마주보며 서 있는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사이로 성산항을 빠져나갔다.



















돌아보니, 일년 중에 말갛게 얼굴을 드러내는 날이 절반도 안된다는 한라산이 저 멀리서 우릴 배웅하듯 구름을 이고 서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산항에서 빤히 건네다보이는 우도는 어느새 우리 눈앞에 나타났고 역시나 제일 먼저 빨간 등대가 눈에들어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뒤이어 우릴 반기는 건 검은 바위 해안에 고고하게 앉아 있는 갈매기들.
서해안 갈매기는 새우깡에 목을 매고 기를 쓰며 달려드는 데 반해 제주도 갈매기들은 인간들이 귀찮다는 듯 다가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

나름 서둘러 나선다고 생각했지만 우도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오후 2시.
가장 뜨겁고 더운 시간에 자전거로 우도를 한바퀴 돌아야 한다니 내심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최대한 넉넉하게 마지막 뱃시간에 맞춰 자전거를 빌린 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전거 초보자가 어련하겠나. 출발 직후 처음 만난 번잡한 삼거리에서 다가오는 트럭을 피하려던 나는 그만 어이없게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넘어져 시멘트 차단벽에 무릎을 갈았다. 나중에 보니 바지에도 살짝 구멍이 났더군. -_-;;
그나마도 이후엔 피를 보는 사고는 없어 다행이었다.

처음 자전거를 세운 곳은 기대했던 대로, 하얀 산호가 깔린 해변이라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볼 수 있다던  서빈백사 해수욕장. 봄에 동생이 사진에 담아왔을 때만 해도 날이 흐리긴 했어도 이런 모습이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봄 우도에 간 지우











































미세하게 부서진 돌멩이처럼 새하얗고 동글동글한 산호 백사장은 똑같았으나
사람들이 들어가 휘저어 놓은 바다는 해초들이 떠올라 에메랄드빛은 커녕 뿌연 미역국 같았다. +_+

실망을 애써 감추고 다시 해안도로로 페달을 밟으니 드디어 백사장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옥빛 바다를 발견할 수 있었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돌담 앞에서 풀을 뜯고 있는 예쁜 어미말과 새끼말도 만났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다님과 벨로가 실제로 말을 타고 작은 마당을 한바퀴 돌며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는 사이
벌써부터 기진맥진해진 나는 그늘에서 기력을 회복한 뒤, 근처 정자에서 전날 내기했던 대로 우도반점에서
자장면을 배달해 먹고는 잠시 행복해했으나 4시 넘어 늦은 점심을 먹고난 뒤의 체력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다행히 우도의 절반은 돌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햇빛은 숨막히게 뜨겁고 어느덧 맞바람까지 치고 있는데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져 계속해서 일행들보다 최소 50미터는 뒤쳐져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막판 고비인 언덕이 시작되었으니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전망대가 있을 법한 우도 꼭대기의 등대 주변에서 잠시 쉴 때는 거의 내 정신이 아니었다.

아득하고 혼미했던 나의 정신이 반영된 듯 그 때 찍은 사진은 이렇게 뿌옇다. ㅋㅋ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다가 이미 상당히 얼이 빠져 헉헉대던 나는 이 사진을 찍고 나선 난간 기둥에 걸어두었던 가방을 깜박 잊었다가 나중에 자전거 세워둔 곳까지 가서야 비로소 기억해내고 후다닥 다시 가져오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으니
얼마나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알만하다.

우도를 자전거로 1시간이면 돌 수 있다는 말은 확실히 거짓말이다.
우리는 서빈백사 해수욕장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는데 나중의 언덕 고비를 생각하면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반대방향으로 돌았더라면 초반부라 힘이 더 있기는 했겠지만 더 오랜 시간 자전거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야했을 터.
중간에 자장면을 배달시켜 한참 기다렸다가 점심을 먹고 중간중간 쉰 시간까지 합해서 꼬박 3시간 반이 걸렸는데, 아마 마지막 배를 놓쳐선 안되며 5시반까지 자전거를 돌려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었다면 나 혼자선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것 같다. 아니, 앞으로 다시는 우도를 자전거로 돌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거다. ㅠ.ㅠ
지난 봄 자동차로 우도를 돌아보았던 막내동생은 내가 이번에 바구니 달린 자전거로 우도를 한바퀴 일주했다고 하자,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이 장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암.. 나도 내가 자랑스러웠다.
우도 자전거일주는 남들에겐 별것 아니었을지 몰라도, 내겐 철인3종경기 못지 않은 레이스였음을 고백한다.
마지막 언덕을 오를 땐 첫날 느루를 타고 나갔다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어지러움증도 느껴졌으므로
지나가는 차를 세워서 사례를 할 터이니 트렁크에 자전거를 실어달라고 부탁을 할까,
트럭을 불러서 자전거를 보낸 뒤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갈까,
일행들은 먼저 마지막 배로 돌려보낸 뒤 나는 우도에 남아 어디서든 일박을 하고 다음날 합류할까,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을 다 했었지만, 결국엔 무거운 몸과 자전거를 이끌고 마지막 언덕을 올랐고
생존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다.


이후 우도 항에 도착해 자전거를 반납하고 다시 배에 올라 성산항으로 돌아오던 과정은 과음 후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기억이 단편적이다. 선실에서 다짜고짜 드러누워 늘어져 있던 모습을 벨로가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지 않았다면 내 몰골이 얼마나 흉측했는지 몰랐을 듯.


성산항에서 가까운 섭지코지는 일몰이 가까운 시간에 가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유명한 건축물을 보겠다며 일행들은 검은 오솔길을 씩씩하게 걸어가고
우도 이후 체력이 고갈된 나는 뒤에 남아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울타리 난간에 앉았다가 옆을 돌아보니 섭지코지의 또 다른 등대와 전망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는 시나브로 기울어가는데 일행들은 돌아올 생각을 않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광이라 실제보다 어둡게 나와서 그렇지 아직 꽤나 밝았고, 사실은 일행들도 금세 돌아왔음 ^^;;)

섭지코지에서 일정을 마무리한 우리는 9시까지 운영한다는 콘도 식당에서
<활어해물탕과 가마솥밥>을 먹을 일념에 열심히 달려왔으나 너무 늦어 방에서 사발면, 사발우동 따위로 저녁을 떼워야했지만 별로 배고픈 줄도 모르는 피로 뒤끝이라선지 그것 또한 감동적으로 맛있었다.

일행들은 또 다시 마지막 밤까지 포켓볼 열정을 불태우러 나갔지만 나는 홀로 남아 소파에서 뒹굴며 맥주를 홀짝였는데, 당연히 쏟아질 줄 알았던 잠은 놀랍게도 피로에 지친 마지막 밤까지 나를 배신하였으니... 오후 늦게 우도에서 원샷했던 커피 탓을 해보아도 이미 후회하기엔 늦은 뒤였다. 쓸데없이 예민한 잠버릇은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는지 원...
암튼 그렇게 제주도의 마지막밤은 광란의 음주나 유희 없이 소근소근 가벼운 맥주 한잔과 함께 마무리 되었다.
Posted by 입때
,

오 제주도 2

여행담 2008. 8. 4. 17:10
사실 제주도로 떠나기 전에 나에겐 끝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원서 읽고 리뷰 쓰기를 죽도록 싫어하긴 하지만, 지난 원고를 워낙 늦게 넘겼던 터라 벌 서는 셈치고 출판사의 부탁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넉넉하게 2, 3주 동안 소설을 한 권 읽고 검토서를 보내달라는 약속날짜가 바로 제주도 출발 직전의 월요일.
그러나 또 내가 누군가.
원고 마감일에 관한 한 이미 거짓말쟁이 양치기소녀가 된 지 오래.
제주도 가기 전에만 보내면 되겠거니 차일피일 미루며 영화보고 친구 만나고 맛있는 거 사먹으러 다니며 실컷 놀다간 또 다른 책 역자후기 때문에 일주일 또 낑낑댔으니, 출발일 전날 새벽 3시 반까지 검토서를 정리하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책을 싸들고 가자 결심하고 말았다.

겨우 4시간 자고 일어나 제주도 여행을 시작했고 밤중에 일행들과 맥주도 한 잔 걸친 셈치고는 새벽까지 꽤나 양호하게 정신이 말짱했다. 역시 습성을 속속들이 잘 모르는 일행들과의 여행 때문에 소심한 인간답게 퍽 긴장을 했던 모양인데다, 더 늦기 전에 검토서를 마무리하고 남은 기간 부담없이 놀아야겠다는 욕망이 작용한 듯했다.
해서 모두들 잠든 새벽 (실은 닌텐도 동물의 숲에 심취한 벨로가 게임하는 소리가 딩동딩동 꽤나 오래까지 아어지긴 했지만;;) 게으름녀의 여행 첫날밤은 일과 함께 3시 반이 넘도록 이어졌다. ㅠ.ㅠ
원래 계획은 일을 끝내는 대로 클럽하우스로 걸어가서 24시간 사용할 수 있다는 컴퓨터로 문서를 정리해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새벽 4시가 다 된 시간에 숲속으로 난 꽤 먼 오솔길을 홀로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해서 또 다시 눈을 붙였다 떴다 4시간쯤 토끼잠을 잔 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는
일행들이 일어나기 전에 숙소로 돌아올 심보로 몰래 카드 키를 들고 컴퓨터로 향했으나...

애당초 검토서가 늦어졌던 이유, 출간을 권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론을 좀처럼 내릴 수가 없었으니
타이핑을 다 끝낸 뒤에도, 결정적인 검토 소견을 마무리하지 못해 전전긍긍 급기야 일행들이 모두들 잠에서 깨어나 외출준비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놀 때까지 2시간을 넘기고서야 마무리를 할 수가 있었다.

기상청의 날씨예보 어긋나기는 제주도에서도 어김이 없었고
오전오후 비올 확률이 각각 60%나 된다는 예보와 달리 화창하기 이를 데 없는 날씨에 우린 셋쨋날로 미뤘던 해수욕을 전격적으로 당겨 즐기기로 결정.
미리 수영복을 챙겨입고 놀기 가장 좋다고 벨로가 추천한 협재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은 올려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후련했고, 공기가 맑기 때문인지 제주도 하늘의 구름은 늘 손을 뻗으면 잡힐듯 낮게 깔려 바람따라 떠돌았다.



허나.. 이틀 내리 수면부족에 시달린 내가 제정신을 차렸을 리 없으니, 놀랍게도 협재 해수욕장에선 사진을 단 한장도 찍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ㅠ.ㅠ
완만하고 고운 모래의 백사장과 옥빛 바다, 그 주변에 어우러진 검은 현무암의 해안, 건너편에 바라다 보이는 초록과 연둣빛 비양도의 모습을 남겼어야 하는 건데...
미치도록 뜨거운 햇살 아래 다들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나는 가방도 지키고 뙤약볕 아래 우산을 쓰고서라도 어떻게든 눈을 붙여볼 요량으로 홀로 남았으나 쓸데 없이 예민한 인간이 그런 해변에서 잠들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잘못이지.
더위에 헐떡이다 잠시 바다에 몸을 식혔다가 또 금세 돌아와 망연자실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는 나에게 벨로는
<애들 노는 거 지키는 엄마 같다>며 정곡을 찔렀다. ^^;
실로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심 나이가 들면 바닷가에서 파도타기를 하며 노는 재미도 줄어드는 것인가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날은 암튼 덥고 피곤하고 가방과 돗자리를 지키는 책임감은 내 몫이라는 생각에 마냥 심신이 늘어졌던 것 같다.
암튼 경사가 완만해서 서해안처럼 가도가도 물이 얕고 깨끗하고 파도도 적당히 치는 협재 해수욕장은 가족단위로 파도타기에 아주 좋은 해변이었다. 과거에 함덕해수욕장과 하얏트 호텔쪽 중문 해수욕장에서 놀아본 적이 있었는데 중문은 경사가 급하고 모래가 굵어 발바닥이 좀 아팠던 반면, 함덕 해수욕장은 모래가 거의 밀가루 수준으로 곱고 백사장이 넓어 흡족했었는데 제주도에서 해수욕하려면 협재, 함덕처럼 북쪽 해변이 놀기 좋다는 점을 기억해두어야겠다.  

오후들어 백사장에서 시켜먹은 '주황색' 치킨 한 마리와 미리 싸 간 천도복숭아로 점심을 떼운 우리는
주섬주섬 해수욕을 마무리하고 차디찬 물로 바닷물과 모래만 대강 닦은 뒤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로 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선 다들 최대한 여유롭고 헐렁한 일정을 목표로 삼았던 데다 대체로 무얼 하든 다 좋은 우유부단함의 극치를 선보였으니, 매번 가장 어려운 점은 행선지를 정하는 것이었던 듯. ^^

바닷가에 가서는 반드시 해산물과 회를 먹어야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는 했지만
이번 여행엔 회를 못 먹는 일행이 둘이나 되었으므로, 거나한 횟집을 가는 것은 당연히 횡포였기에
비교적 저렴하고 푸짐한 동복리 해녀 잠수촌의 포장마차 같은 간이 횟집엘 가자고 내가 주장했는데
그리도   푸짐하던 해녀 할머니들의 인심도 성수기 관광철엔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걸 실감하여 마음이 상했다.
4년 전 봄에 갔을 땐 냉장고 대신 바닷가에 담가 놓았던 그물에서 건져올린 해삼과 멍게를 푸짐하게 잘라주고도 무조건 한 접시에 만원이었으며, 삶은 문어와 구운 석화도 대단히 넉넉했었는데 이번엔 아예 석화도 없고 접시는 하나같이 바닥에 깔린 정도.
내 마음도 상했지만, 굳이 해산물 싸게 먹자고 거기까지 데려간 일행들에게 미안해서 더 화가 났다. -_-;;

이어 보성 녹차밭보다 훨씬 더 넓고 볼만하다는 지인의 귀띔을 들었던 터라 오설록 녹차박물관에 가자는 내 의견에 다들 그러마고 하긴 했는데, 예상과 달리 입장료가 없는 건 좋았고 뜻밖에 10년만에 대학동창을 만나기도 했지만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겉에서만 바라본 제주 녹차밭은 큰 감흥이 없었다.
골이 좁은 밭고랑으로 일일이 사람들이 들어가 차잎을 따는 광경을 상상만해도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차 농사의 어려움이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제주도의 비경은 역시 바다와 오름이라는 사실만 백만번 실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퍽이나 부실했던 둘쨋날의 먹거리에 그나마 식탐의 기쁨을 준 건 저녁에 찾아간 유리네 식당의 갈치조림.
늘 관광버스 줄지어 서 있고 왁자지껄 요란하여 순번을 기다리기 일쑤인 그곳에서 우린 운 좋게 가자마자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고 3만5천원에서 전격적으로 값을 내려 3만원(공기밥 값은 따로^^)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갈치조림을 맛있게 먹으며 다들 공기밥을 후딱 비웠다. 딸려나온 게장과 다른 반찬들도 괜찮았는데, 시끄럽고 번잡하긴 해도 제주도 갈치조림은 역시 유리네만큼 맛있는 데가 없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갑자기 불붙은 포켓볼 열정...
운동신경 젬병인데다 기억력도 나쁜 나는 소싯적에 시도해 본 당구와 포켓볼을 평생 멀리하며 살리라 다짐했건만 콘도에 마련된 당구 테이블을 발견한 일행들은 전의를 불태웠고...
난생 처음 쳐본다면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키드님과 지다님, 그리고 다른 데 가서는 형편없는 실력이라지만 우리들에겐 완전고수로 보였던 벨로의 내기 본능에 편승하여 얼떨결에 시작된 2:2 게임에서 막상막하의 막당구 내공을 보이던 라니와 지다의 하수팀은 결국 우도반점 자장면 내기에서 분패하고야 말았다.
팔다리가 짧은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느라 낑낑거린 나는 이미 두번째 게임 즈음에서 지루해져 하기 싫었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며 어찌나 재미있어 하던지, 낮에 해수욕장에서 비교되었던 파도타기의 열정과 더불어 나의 나이듦을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ㅜ.ㅡ
 
어쨌거나 둘쨋날도 시원한 맥주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며
벌써 이틀이 지났다는 사실에 마구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2008. 7. 30)
Posted by 입때
,

오 제주도!

여행담 2008. 8. 4. 15:51
나는 웬만한 동남아시아의 휴양지보다 제주도가 백번 낫다고 생각하기에
<그 가격이면 차라리 외국을 가지!>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 가격이면 차라리 제주도를 가지!>라고 추천한다.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맑은 옥빛 바다와 절경이야 비슷하다 쳐도, 더 가깝지, 훨씬 더 깨끗하지, 더 안전하지, 말 잘 통하지, 직접 운전해 돌아다니든 택시를 부르든 싼값에 맛난 음식 골라먹을 수 있지, <기브 미 원 달라>라고 외치며 쫓아다니는 눈동자 풀린 아이들이나 기념품을 팔려는 가난한 현지인들을 감당할 필요도 없으니 하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가깝고 가기 쉽지만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라는(대학 수학여행 때 목포에서 배 타고 한 번 가봤는데 ㅠ.ㅠ 8시간이던가 끔찍이도 오래 걸렸던 뱃길로는 두번 다시 제주도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지리적 특성 때문에 어쩐지 제주도는 내게 늘 동경과 그리움의 장소이건만 이번엔 무려 4년만에 제주도를 다시 찾았다.

난생 처음 타보는 한성항공은 저가 항공사답게 작고 허름한 비행기로 (내가 싫어하는) 롤러코스터의 스릴을 만끽하게 해주었으나, 기내에서 물 한잔도 안 주더라는 '카더라' 통신과는 달리 주스와 생수는 한잔씩 마시게 해주는 성의를 보였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도 큰 비행기는 게이트에서 곧장 탈 수 있지만 작은 비행기에 배정되었을 땐 공항내 버스를 타고 활주로까지 친히 나가야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게이트에서 다시 버스로 비행기까지 가야하는 건 그러려니 했으나 문제는 비행시간. 예정 시간은 1시간 5분이었지만, 갈 때 올 때 실제 걸린 시간은 각각 1시간 반이었다. -_-;;

째뜬 벨로의 신분증 사건과 예약없이 극성수기에 렌터카 확보하기 과정에서 식겁하는 순간이 있기는 했으나
모두 극적으로 해결되어 꿈결같은 제주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