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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1.14 엄마들은 왜 그럴까 3 11
  2. 2021.09.13 엄마들은 왜 그럴까 2 2
  3. 2020.10.02 시든 꽃 1
  4. 2016.01.25 상황 역전 2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는 어려워도 암튼 물건 정리하기 원칙 중 1년간 안 입은 옷은 버려라, 가 정답이라는데 동의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외출을 삼가다보니 1년간 안 입은 옷을 추려낸다면 아마 절반도 넘을지 모른다. 그러니 옷 버리기는 코로나 시국에서 벗어난 다음으로 하기로 하고...

그래도 엄마옷들 중에는 1년이 아니라 3, 4년간 꺼내보지도 않은 옷들이 더러 있어서 몇 개 버리려고 꺼내놓았다가 한판 싸움이 났다. 모녀간의 싸움이라는 것이 뭐 서로에게 잔소리를 연달아 늘어놓고 반항하는 정도이긴 하지만, 엄마는 내가 안 입는 옷 좀 정리해서 버리자고 하면 꼭 "나도 갖다 버려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웃기는 건 또 내가 엄마 안 계실 때 몰래 버린 옷은 없어진 줄도 아예 모르신다는 점! 

노인들이 오래된 물건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 자신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신다고 --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아니 진짜로 어깨뽕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연두+주황 체크무늬 재킷 같은 건 안 버리면 대체 어쩌시겠다는 건가? +_+  그나마도 요샌 버리는 게 아니고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할 거다, 옷 수거함에 넣어두면 수출된다더라 살살 달래서 설득해 엄마의 허락을 받을 때가 많지만, 도무지 입을 일 없을 것 같은 여우털 달린 (무거운) 롱코트라든지 엄청 비싸게 장만했으나 10년도 넘게 안 입은 무스탕이라든지, 버버리 롱트렌치코트 같은 건 아직도 옷장을 차지하고 있다.

"아예 나도 갖다 버려라!"와 함께 세트로 엄마가 부르짖는 말 또 하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옷을 절대 사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간 못 버린 옷들을 다 껴안고 계시니 옷장이며 서랍장이며 옷방에 옷이 오죽 많겠나. 그러니깐 유행 지나서, 혹은 너무 무거워서 안 입는 옷들 싹 다 정리하고 새로 갑삭하고 편한 옷들로 몇 개 새로 장만하시자고 아무리 얘길 해봐야 소용이 없다. 지금 있는 옷만 다 돌려 입어도 죽을 때까지 다 못입겠다나. 

그치만 오십대인 나도 이젠 무거운 옷 어깨 허리 아파서 못 입겠고 아무리 예뻐보여도 꽉 끼는 옷은 손이 안가게 마련인데 팔십대 노인이 무거운 옷들을 대체 어떻게 입으시겠다는 것인지... 엄마 옷 정리 문제로 싸웠다고  친구들에게  푸념했더니 역시나 그들도 깔깔 웃었다. 칠, 팔십대 엄마들 죽을 때까지 옷 안 사시겠다는 레파토리는 왜 다들 똑같으냐면서. 쳇.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작년 겨울에 편하게 입을 경량패딩을 사드렸고, 당연히 엄만 요새 가끔 병원 나들이 할 때 갑삭하니 거추장스럽지 않은 그 옷만 입으신다. 새옷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어휴. 

아끼는 삶이 습관과 태도가 되신 엄마들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좀 그러지 마십시다. 계속 좀 누리고 사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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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친가든 외가든 할머니댁에 놀러 가보면 온 집안이 깜깜했다. 전깃불을 아끼느라고 혼자 계시거나 할아버지랑 두분만 계시면 낮엔 좀처럼 전등을 켜지 않는 게 일상이었던 거다. 역시나 전쟁 세대의 습관인 것 같다. 7, 80년대까지도 종종 비가 많이 오거나 벼락치면 정전사태가 났으니 학교에서 전기 절약에 관한 표어를 만든 적도 있다. 

암튼 여름방학때 외가에 놀러가 며칠 지내다보면 외할머니는 심지어 전깃불을 켜면 덥다고 얼른 끄라고 소리치셨다. 예전 30촉, 20촉, 100촉짜리 (이런 말 아는 사람은 옛날 사람이다. ㅠ.ㅠ) 백열등에 익숙한 사고방식이었을 거다. 진짜로 백열등은 오래 켜두면 뜨거워서 손을 델 수도 있다. 그치만 형광등은 안 뜨거워진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외할머니에겐 안 통했다. 해서 여름 낮엔 어둠컴컴한 방안에서 선풍기만 휘휘 돌아가는 풍경이 그려진다.

문제는 우리 엄마도 여전히 전깃불을 몹시 아끼신다는 거다. 이번 여름에 하도 더워서 에어컨을 밤새 트는 날은 있었을지언정, 방에 전등 켜는 건 잘 볼 수가 없다. 집이 동남향이라서 오후엔 좀 거실이 어두워지는 편이라 글씨라도 읽을라치면 난 전등을 켜야 속이 시원한데 엄마는 굳이 베란다 창에 비춰가며 그냥 뭔가를 읽으신다. 화장실 갈 때도 낮엔 전등을 켜지 않으신다. 문 닫으면 당연히 어두우니 볼 일 보면서 문을 열어두는 식이다. ㅠ.ㅠ 엄마나 나나 각자 공간에서 따로 살지만 난 혼자 있어서 화장실 문 열고 볼 일 보는 건 상상도 안 되는데, 엄만 참....  

짜증이 나는 건 엄마가 뭔가 안방이나 옷방에서 물건을 찾아야할 때다. 낮에도 옷장이나 서랍에 든 물건을 찾으려면 전등을 켜야 마땅하건만, 엄만 깜깜한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뒤져놓곤 "암만 찾아도 없다"고 그냥 나오신다. 내가 전등 스위치만 올려도 바로 보이는 물건을 도대체 왜?!!

놀랍게도 전등을 잘 안 켜는 것 역시 친구의 어머님들도 공통으로 보이시는 행동이다. 노화가 진행될수록 시야가 좁아지는지 물건을 잘 찾지 못하면서도, 굳이 전기요금을 아끼는 습관... 참으로 괴롭다. 우리나라만큼 전기요금 싼 데도 없다고, LED등이나 형광등은 전기요금도 얼마 안 나온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다. 반면에 조카들은 가는 곳마다 전등을 켜두는 게 일상이다. 어두운 걸 못 견디는 거다. 혼자 있을땐 더더욱! 그래서 조카 ㅈㅁ이가 우리집에서 지낼 땐 전등 스위치 안 내린다고 할머니한테 잔소리를 엄청 들었다. 화장실도 늘 켜놓고 냉장고 들락날락해야하니 부엌도 켜놓고...  ㅎㅎ

신체리듬을 자연에 맞추려면 낮엔 태양광으로만 살고 밤엔 전등의 도움을 약간 받다가 깜깜하게 끄고 잘 자는 게 좋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냐고! 전등은 잘 안켜고 깜깜하게 사시지만 그보다 전기요금은 훨씬 더 많이 나오는 TV는 온종일 틀어놓으신다는 것 또한 엄마들의 공통점이다. 아 진짜, 엄마들은 왜 그럴까. (그렇지 않은 어머님들의 사례 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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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꽃

아픈 손가락 2020. 10. 2. 18:58

간만에 리시안서스 한다발을 사다가 꽂아두고 하도 예뻐서 연일 감탄하고 있다. 주로 식탁에 놓아두고 밥 한숟갈 먹고 씹으며 쳐다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데, 희한하게도 엄만 나와 계속 시각이 다르다.

원래도 엄만 꽃을 좋아하면서도 '절화'를 별로 탐탁히 여기지 않으신다. 생명을 똑 잘라 죽여서 꽃아놓기 때문이란다. 불자의 마음이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예쁜 꽃 좀 곁에 두고 보려고 사온 나로선 좀 심술이 난다.

이번에도 신이 나서 꽃다발을 꽂아두고 이쁘지, 이쁘지? 묻는 내게 엄만 대뜸 "꽃이 꼭 조화같다"고 대꾸했다. +_+ 꽃도 잎도 모두 조화처럼 생겨서 신기하다고. 시니컬하시기는...

리시안서스가 좀 하늘하늘한 꽃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리어카 좌판에서 산 거라 덜 싱싱했는지 사온지 사흘째부터 한두 송이씩 좀 말라가며 시들기 시작했다. 난 가끔 시든 꽃도 거꾸로 말려 오래 두고보는 인간인지라 별 생각 없이 보고 있는데 엄만 연일 가위를 들고 시든 꽃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내 눈엔 아직 멀쩡해보이는 꽃도 꽃잎 가장자리가 말랐다며 어서 잘라버려야겠다고. 아니 왜?!

오늘로 닷새째. 아침 저녁으로 두번씩이나 시든꽃을 솎아낸 꽃은 처음 저날보다 거의 3분의 1은 줄어들었는데;; 오늘 저녁 식탁에서도 엄만 밥을 먹는 내내 매의 눈으로 또 잘라버릴 꽃을 찾는 눈치였다. 아 놔 진짜! 아직 다 멀쩡하구만. 엄마, 그냥 제일 싱싱하고 예쁜 꽃만 보면 안돼? 왜 예쁜 꽃 놔두고 계속 시든 꽃만 쳐다봐요? 내가 따지듯이 물었다. 누가 우울증환자 아니랄까봐! 설마 완벽주의 성향 때문인 거야? 

사과를 한 상자 두고 먹을 때 썪은 사과부터 먹는 사람과 제일 잘 익고 맛있는 사과부터 먹는 사람이 있다나 뭐라나, 그게 삶의 태도일 수도 있다는 우화를 읽은 기억이 난다. 썪은 사과는 물론 미리 다 골라내 멀쩡한 사과를 보호해야겠지만... 좋은 거, 맛있는 걸 늘 제일 마지막에 먹으려고 아끼는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그러다가 다 썪히기 십상이고.

디저트로 과일을 먹을 때도 엄만 젤 덜 단 과일부터 먹는다. 예를 들면 방울토마토, 사과, 참외 등의 순서. 먼저 단 과일을 먹으면 다음 과일은 맛이 없어진다나. 의도적으로 노력을 했던건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나는 제일 먼저 좋아하는 과일을 먹는다. 새콤달콤한 과일을 좋아하므로 사과, 참외, 토마토의 순이기 쉽다. 달지 않은 토마토를 맨 마지막에 먹어야 입가심도 될 것 같고. 

우울증 환자의 특징인지, 아니면 없이 산 기억이 있고 아끼는 것이 생활화된 구세대 여성의 특징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반찬을 앞두고도 엄마의 태도는 짜증스러울 때가 많다. 내가 기껏 솜씨를 부려 새로 만든 메인 요리를 앞에 두고도 엄마의 첫번째 젓가락질은 '없애버려야 할' 오래된 반찬을 향하기 일쑤다. "저거부터 다 먹어치우자"라는 논리인데, 어차피 그게 마지막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냥 새 반찬은 좀 아껴야겠다는 심리일까? 인지능력이 약간 떨어지면서, 시야가 좁아지는지 반찬도 눈앞에 있는 것만 공략하는 느낌이라 요샌 아예 식판처럼 큰 접시에 반찬 할당량을 정해 밥과 함께 담아드린다. 그러면 또 군말없이 새 반찬부터 드시는 걸 볼 수 있다. 

울 엄만 정말 연구대상이다. 나로선 아무리 탐구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  명절을 앞두고 엄마 친구들이 안부 전화를 걸어왔을 때, 엄마의 대꾸방식도 참 여전하다. 엄마 친구분들은 병든 엄마를 오래전부터 챙기는 나를 대견해하고 칭찬하시는데, 엄만 맞장구를 치다가도 곧바로 딸 흉을 본다. 소곤소곤 뒷담화가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니 듣건말건 상관없다는 태도다.  "맞아, 내가 딸 때문에 사는 거지. 쟤 없었음 벌써 죽었겠지. 근데 쟤가 성질이 드러워서 나랑 맨날 싸워. 잔소리가 말도 못해..."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매번 대꾸가 똑같다. 저렇게 자기 의견에 솔직한데 왜 우울증이지 싶을 때도 있다. 저것도 방어기제인가?

암튼 난 하필 시든 꽃만 유심히 바라보고 매번 썩은 과일부터 골라 먹는 그 비관적 태도에 물들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중이다. 내 눈에 꽃은 대체로 시들어도 예쁜데.  드라이플라워도 있구만요. 남은 것중에 제일 맛있는 사과를 골라 먹으면 매번 끝까지 제일 맛있는 것만 먹을 수 있다는 낙관론, 눈 가리기 아웅이라도 좀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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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역전

투덜일기 2016. 1. 25. 16:51

이제는 하도 재미가 없어져서 잘 보지않는 <개그콘서트>를 어제 우연히 채널 돌리다 보게됐는데, '웰컴 투 코리아'인가 하는 코너에서 한국의 엄마들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자식이 내 옷 그거 어디 갔느냐고 찾으면, 보지도 않고 어느 서랍 몇번째 칸에 들었다고 척척 얘기해주는 엄마들의 신비로운 능력에 대해서. <응답하라 1988>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얼핏 다뤄졌었다. 엄마 없이 너무도 잘 지내던 가족들에 황망하고 섭섭해하던 엄마의 기분을 돋우려고 개정팔은 서랍을 마구 헤집어놓은 뒤 특정 옷을 찾아달라고 엄마에게 부탁을 한다. (빨래를 해서 잘 개어 서랍에 정리해둔 장본인이었을) 엄마 라미란 여사는 혀를 끌끌 차며 아들 방에 들어와 당연스레 그 옷을 찾아주고...


음. 서론이 길었는데 암튼 울 엄마도 옛날엔 그랬었다. 목도리나 장갑이 통 안보여 찾아 헤맬 때라든지, 계절이 바뀌고서 작년에 입었던 그 바지를 찾다가 신경질을 부리면 희한하게도 엄마는 내가 방금 찾아본 그 서랍 속에서 쏙 문제의 옷이나 물건을 찾아내주곤 했다. 이상하다? 왜 내가 찾을 땐 안보였지? 아깐 분명히 없었는데...


우린 집과 옷장이 좁아서 코트 같은 겨울옷은 봄부터 여름 내 세탁소에 맡겨두었다가 입을 때 쯤에나 찾아와서 입는 경우도 잦았는데, 막상 날이 갑자기 추워져 성질과 난리를 피우며 옷을 찾아 헤매고 있노라면 엄마가 새벽부터 세탁소에 가서 외투를 찾아다주기도 했었다. 와 울 엄마 기억력짱... 뭐 그런 생각을 늘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들의 그런 능력은 때때로 평생 가지 않나보다. 듣자하니 어떤 엄마들은 노년에도 여전히 그런 명민한 능력을 발휘하신다는데 (실제로 울 외할머니는 팔순이 넘도록 그런 능력의 소유자였다. 사랑방 시렁에 얹어놓은 대봉시 중에서 맨 왼쪽 두개만 잘 익었으니 그 놈으로 집어오라고 안방에 앉아서도 콕 찝어서 심부름을 시키신다든지... ) 울 엄만 아니다. 


몇년 전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본인이 잘 개어 서랍에 넣어둔 옷도 종종 못찾아, 버릇처럼 "암만 찾아도 그 옷이 안나온다"며 이상하다고 나를 들복는다. 물론 옷에 발이 달려 어디로 사라졌을 리 없으니, 내가 뒤지면 반드시 나온다. 옷장에 버젓이 걸려있는 외투나 스카프도 내 눈엔 빤히 보이는데 못찾겠다고...


그뿐인가. 나이들면 혀와 입주면 근육과 신경이 무뎌져서 아이처럼 입가에 뭘 잘 묻히거나 흘린다는 이야기를 누누히 듣기는 했지만 아오 진짜로 얼마나 흘려대는지! 엄마가 외출복과 집에서 입는 옷을 구분하지 않고 입는 걸 난 아주 질색을 하는데, 그 첫번째 이유가 앞섶에 생기는 얼룩 때문이다. 엄마가 집에서 입고 지내는 상의 앞섶은 깨끗한 게 하나도 없다. 뭘 흘린 걸 발견하고서 금방 초벌빨래를 하거나 빨래하기 전에 잘 문지르면 지울 수 있지만, 문제는 엄마가 언제 흘렸는지도 모르게 수많은 음식물 얼룩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 ㅠ.ㅠ


본인도 밥먹으면서 잘 흘린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계속 휴지로 옷도 닦고 식탁보도 문지르지만 ㅋㅋㅋ 나중에 보면 식탁 아래 밥풀이며 반찬 부스러기가 즐비하다. 오늘은 바닥에 점심에 끓여먹은 우동 가락까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이젠 삼둥이처럼 전용 턱받이를 장만하거나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하시라고 구박한 적도 있다. 몇번은 실제로 식탁 앞에서 앞치마를 입힌 적도 있지만 금세 민망해졌다. 까짓거 옷을 빨면 되지... 요양병원 환자도 아니고.. -.-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잘 둔 다고 보관해둔 반지나 팔찌, 용돈 봉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전전긍긍하는 엄마를 보면 한숨부터 푹 내쉰 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수색에 나설 수밖에 없다. 물론 엄마가 찾아본 곳에서 약간만 수색 반경을 넓히면 문제의 물건은 금방 발견된다. 요샌 종종 서랍안에 멀쩡히 들어 있는 손톱깎이도 사라졌다고 찾는 판국이라(다른 물건에 조금만 가려져 있어도 못 찾으신다) 나의 짜증과 분노는 점점 심해진다. 아 대체 왜 잘 찾아보지도 않고!!


그러나 그 분노가 향하는 진짜 대상은 엄마가 아니라 엄마의 노화와 무기력을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인 것 같다. 더는 우리 엄마가 전지전능 초능력자 같았던 슈퍼맘이 아니고 그냥 늙어가는 노인이라는 것을, 그 옛날 엄마가 우릴 보살펴주었듯이 역전된 상황에서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싫은 거겠지.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들이 사방에서 엄마, 엄마, 여보, 여보 불러가며 이것저것 찾아달라고 해달라고 보챘던 시절의 울 엄마 나이는 사십대였다. 내가 대학1학년 때 울엄마 나이가 겨우 45세. 지금의 나보다 한참 젊다. ㅠ.ㅠ 그러니깐 30여년이나 지난 지금의 엄마에게 그 옛날의 전능함을 기대하면 안되는데, 중년이 되어서도 도무지 철딱서니 없는 딸은 여전히 늙은 엄마의 현재 모습을 선선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정작 엄마는 이제 초연한 것도 같다. 내가 아무리 길길이 날 뛰어도, 늙으면 애가 된다잖니, 너도 늙어봐라, 어쩌겠니 이렇게 된걸... 그러면서 웃어넘기신다. 그래서 다행이지만, 이렇게 모녀의 상황이 역전된 세월이 서글픈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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