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4월 6일. 친구들과 사울 레이터 사진전을 보러 다녀왔다. 나에겐 완전히 금시초문 들어보지도 못한 작가였으나 이미 전시를 보고 온 지인들이 되게 '힙한' 전시이며 공간도 색다르다는 말을 익히 들었기에 볕 좋은 봄날 나들이로 딱이로군 하며 마음이 설렜다.
원래는 겨울에 어울리는 전시였던 모양으로, 옥상에서 빨간 우산 쓰고 눈내리는 풍경 찍은 인증샷을 많이 보기도 했는데 인기가 높아 5월말까지 연장 전시를 결정한 모양. 회현역 3번출구에서 189미터였던가 무척 가까우나 길을 잃기도 쉽다고 하더니만 쉽게 건물을 만나긴 했는데, 우리보다 앞서 계단을 올라, 후문인 듯한 나무 문을 밀어본 관람객1이 잠겼다고 하는 말에 허걱. 예약시간 이외엔 잠가두나 좀 난감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착각. 미닫이 문이었어! ㅋ
후문은 지하에서 들어가도록 되어있고, 남산순환도로 백범광장 쪽에서 접근하면 차로도 접근 가능한 정문과 카페가 보인다. 암튼 우린 뒷문으로 들어가 약간 어질어질한 금속 통로(바닥 뚫린 길 싫어함)를 지나 건물 앞마당으로 향했다.

건물 옆면? 앞면에 붙어 있는 대형 포스터. 그러나 나에겐 너무나도 눈에 거슬리는 부제! 인노그레이트허리. ㅋㅋㅋㅋ 미치겠다. 저걸 왜 굳이 한글로??

나처럼 불평하는 사람이 많았든가, 아니면 전시 기획하는 쪽에서도 민망했는지 티켓엔 부제가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로 바뀌어 있었고, 건물 정면에도 같은 문구가 보인다. 저 카페에서 풍기는 커피 냄새가 진짜 유혹적이었는데;; 전시를 12시에 예약한 관계로 점심 먹으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해서 안타까웠다. 결과적으로 점심 이후 커피 마실 집을 찾다찾다 들어간 곳에서 대실망한 이후, 피크닉 카페의 커피 맛은 과연 어땠을지 선망과 궁금함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나름 '핫'한 곳인듯 카페만 다니러 가는 사람들도 있나보다.

작가가 작품 제목을 붙이는 방식이 어찌나 독특하신지, 계속 제목 맞히기 내기를 하듯 짐작해보면 다 틀렸다. 내 눈에 주제로 보였던 피사체가 제목이 아닌 경우 많아서 제목 추측하는 재미가 쏠쏠. 이 작품은 아마도 (검은) 캐노피? 가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ㅎㅎ 무섭게 사진 찍는 내 모습이 반영에 잡힘. 

우리의 시선을 강탈했던 "주근깨 소녀" 그래도 이 제목은 무난히 맞힘 ㅋ

옥상에서 바라보이는 남산 풍경이 엄청 멋졌는데, 사진엔 확실히 감흥이 다 안담긴다. 케이블카 지나가는 것도 보이고...
한쪽 옆으로 마루를 깔아 놓고 남산방향으로는 큰 창을 내놓아 그리로 바라보이는 나무들과 풍경도 딱 "차경"으로 완벽한 공간 같았음. 건물 자체도 하나의 건축 예술품이구나 싶긴 했으나, 친구 하나가 다리가 좀 많이 불편했는데 4층까지 미로같은 전시를 보며 계속 땀 뻘뻘 걸어 오르는 수밖에 없었고, 역방향으로는 관람 불가라고 해서 약간 빈정 상했다. 난 전시 한바퀴 다 돈 다음에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오래오래 보다 나오는 걸 좋아하는데 쩝...
게다가 역방향 관람이 안되면 4층 옥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건 어쩌라고, 싶었더니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아니 그럼 다리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포함한 관람 동선도 감안해야하는 게 아닌가???!!! 요즘 가뜩이나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무시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꼴보기 싫어 죽겠는데, 단순히 지하철과 버스 이동도 어려운 마당이니 전시장 편의시설이야 오죽할까. 나중에 친구 다리가 더 불편해져서 결국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면, 함께 하는 문화생활은 극히 제한되거나 불가능하리라는 게 화난다. 최소 5년간은  세상이 약자들을 위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진 못하겠지 생각하니 참 슬픈 일이다. 그래도 계속 싸워야겠지만...

옥상 공간엔 갖가지 식물과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음. 조팝나무 꽃도 피고!

 

모르는 새 친구가 찍어준 내 뒷모습 공연히 마음에 든다. 난 새싹이 돋아난 느티나무를 찍고 있었다. (바로 아래 사진. ㅎㅎ 티스토리 사진 편집 기능 이상해져서 레이아웃이 엉망이다. ㅠ.ㅠ )

 

바빠서 놀면 안되는 일정 속에 에라 모르겠다 나가 놀았던 거라 심신이 편치않고 마음 한구석이 계속 괴로웠지만 그래도 계절의 여왕은 봄이구나 실감하며 봄볕에 달구어진 등판이 잠시라도 따사로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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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에 비행기도 못뜨는데 어떻게 마그리트의 대작들이 한국에 왔을까 의아했었는데, 당연히 원작 전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장료가 15000원? 미친거 아니야? 씩씩댔으나 30% 할인받을 방법이 있다는 지인의 말에 일단 보기로 하고 볕좋은 날 일행과 인사동에서 만났다.     

그 동안 인사동은 상전벽해... 곳곳이 낯설었고, 전시회가 열리는 인사센트럴뮤지엄은 규모가 조계사 앞길까지 이어진 초대형 '복합문화공간'(?) 같은 곳이었다. 마당에서 기웃기웃 옷구경도 하고 기념품가게도 들여다보고... 드디어 지하전시장으로 입장. 

주말 오전인데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마스크를 쓰고도 사람들과 간격을 유지하느라 제법 신경을 써야 했다.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전시를 알고 잘도 찾아오는지. 

전시장을 둘러보니, 가족과 연인끼리 온 관람객들이 꽤 많았고 다들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치.. 마그리트 작품이 사진빨이 잘 받긴 하지. ^^;;

원화가 아니라 프린트니 사진찍기가 자유로워서 그게 장점이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작품 크기도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전시장 벽 크기에 맞춰 작품을 집어넣어놓은 구성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래는 코로나 시대의 연인과 키스를 뜻하는 거 같다며 많은 연인들이 인증샷을 찍던 작품이다. 으음. 당연히 그림 제목 다 까먹음. 생각날까 싶어서 설명문도 같이 찍었으나 역시 기억 안난다. ㅠ.ㅠ 

 

투덜투덜 꿍얼꿍얼 트집을 잡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전시장 디지털 영상 속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과 줄 서서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을 보며, 결과적으로는 나도 즐기고 있었다. 그래 뭐 이 정도라도 나름의 문화생활 즐기는 거 좋지 아니한가. ㅎㅎ 

9월 13일까지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전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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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사진전

놀잇감 2016. 9. 28. 21:48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로이터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한번 가볼까나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던 차에 띠리링~ 세계난민기구에서 문자가 왔다. 기부자들 중에서 문자 신청을 받아, 특정한 날에 난민기구가 주최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될까 의심하면서도 문자 회신을 보냈는데, 우왕~ 초대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해서... 전시 종료를 하루 앞둔 9월 24일. 아침 일찍 예술의전당으로 달려갔다. 소박하게나마 음료도 준비할 터이니 9시반부터 와서 즐기라는 친절한 안내전화도 있었다. 토요일 오전 강남으로 가는 길은 나의 예상보다 더 막혔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커피와 쿠키를 즐길 여유가 있을 만큼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진 찍기 좋아하시는 왕비마마를 모셔갔는데... 으어.. 모든 사진 설명문구를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인 걸 내가 까먹었던 게 실수였지만, 암튼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흑백사진부터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순간을 포착한 장면들과 사람들, 기록 사진의 변천 같은 것도 한눈에 들어왔고, 전시 구성도 재미있었다. 거울의 방으로 꾸며놓은 포토존도 마음에 들어서 얼른 거울에 비친 왕비마마와 내 모습을 담기도 했다. 민망해서 잘 찍진 못했지만... ㅋㅋ

 음료와 함께 모든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나눠준 이 종이가방 안에는 쿠키와 난민기구 이름이 새겨진 작은 에코백, 사진 엽서, 팔찌가 들었다. 저 하얀 라벨지를 뒤집으면 황송하게도 내 이름이 적혀 있다. +_+ 소소한 데까지 신경쓴 것에 깜놀. 완전 소액 기부자 주제에 누린 게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찔리기까지 했다. 난민기구 대표도 와서 인삿말에 기념사진 촬영에... 흔히 공공기관의 장들이 늘 그러하듯 딱 거기까지만 하고 가버릴 거라 예상했는데... 1시간 가까이 도슨트 따라다니며 설명을 끝까지 다 듣고 가더라. 그 부분 또한 깜놀. 

하여간에 초대받은 사람들끼리 문 닫아놓고 특별관람하는 묘미가 뭔지 드디어 실감하고 뿌듯했다. 11시 개관을 기다려 줄섰다 들어오는 일반 관객들의 바글거림을 피할 수 있었으니! 게다가 혹시나 전시장 나설 무렵에 월기부금을 좀 더 올려 내라는 청약서라도 받으면 어쩌지, 괜히 불안한 의심을 품었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에고 부끄러버라... 선뜻 내가 기부액을 더 올려낼 수 있을만큼 부자가 되면 좋겠다. ㅠ.ㅠ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는 사진들도 많았지만, 직접 보면 확실히 가슴에 와 닿는 충격과 느낌의 크기가 다른 것 같다.  받아온 엽서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왕비마마도 사진 공부를 더 하셔야겠다고 하니... 모녀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었음은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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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첫 전시관람은 이왕이면 브레송으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같이 가기로 한 파트너랑 잡은 스케줄 상 브레송전이 두번째로 밀렸다. 째뜬 1월에 너무 집중적으로 문화생활 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계속 안다니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드네그려. 

암튼 3월 1일까지인 전시를 서둘러 보러간 건 역시나 1월말까지로 기한이 있었던 초대권 덕분. 12000원이나 하는 입장료를 내야했다면 또 브레송전을 볼까말까 고민 좀 했을 것 같다. 최소 절반 이상은 전에도 본 작품일 테고, 동대문디지털플라자가 전시장으로서 별로 매력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조명도 우중충하고... 째뜬 새로운 작품이 얼마나 왔을지가 관건인데...


브레송 사후 10주기 회고전이라는 이번 전시엔 작품수가 총 253점이라고(근데 늘 이정도 작품은 오지 않았던가?). '브레송'이라고 하면 뭐니뭐니해도 '찰나의 거장'으로서 담은 '결정적 순간'의 사진들이 인상적인데, 확실히 요번엔 도시풍경과 자연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좀 더 두드러지는 느낌이었다(어쩌면 선입견일지도!). 그래서 요번 전시 부제도 아예 <영원한 풍경>. 어림짐작한 내 느낌으론 인물 사진과 풍경사진이 반반쯤 되려나? 아니, 그래도 인물사진 비율이 더 많았던 것도 같고...

실물로 처음보는 게 틀림없는 작품도 있었지만, 지난번 전시 때 본 건지 사진첩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본 작품인지 다들 낯이 익어서 상당수가 아리까리... ^^a 에즈라 파운드, 사르트르, 베케트, 카뮈 같은 인물사진은 워낙 인상적이어서 확실히 예전 전시때도 본 작품인데, 자코메티, 피카소는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게다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카슨 매컬러스'의 사진이 두 개나 있었는데 <슬픈 카페의 노래>를 읽지 않았더라면 아마 작품을 봤더라도 휙~ 지나가고 말았을 듯. 

마침 시간이 맞아서 도슨트의 설명도 들어보았는데, 아우 요즘 도슨트는 자질보다 외모가 우선인지, 너무 지나치게 봉긋한 이마와 오똑한 콧날과 눈매가 부담스러워서 계속 쳐다보고 있기가 민망했다. 목소리는 예쁜데 뭘 그닥 알고 설명하는 것 같지는 않은 느낌.. ㅠ.ㅠ 

체 게바라 사진을 설명하며 브레송이 함께 만나기로 했던 유명인이 '피델'이라고 언급하는데 그게 '카스트로'라는 걸 정작 도슨트는 모르고 말하는 게 분명. 외워서 설명하려면 '카스트로'로 외워두었어야지! 존댓말도 막 이상하게 과용하고 '뉴욕 모마 미술관에 빚을 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비츨'이라고 계속 몇번이나 발음해서 어찌나 거슬리던지. 으악... 

게다가 작품 설명문구엔 오타와 외래어 표기 오류, 띄어쓰기 잘못된 게 어찌나 많은지... 으어으어... 행갈이 이상하게 해서 읽다말고 '으잉?' 하며 다시 읽게 만든 문장도 허다했다. 작품설명 적힌 판때기가 삐딱하게 걸려 있는 것도 보여서, 액자 비뚤어진 거 못 견디는 환자인 나는 막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갔다. ㅜ.ㅜ

그래도 뭐 작품 수는 꽤나 많은 느낌이고, 생라자르 역 앞에서 물 웅덩이 폴짝 뛰는 남자 담긴 작품이랑 프랑스 브리의 풍경사진 속 하트 나무길을 찬찬히 되새겨 본 건 좋았다. 작업실에 이어 방문 앞에, 올해로 무려 10년째 되는 옛날 포스터를 개비할 마음이라, 전시 연계상품에도 눈독을 들였는데 아쒸;; 아트포스터가 여긴 무려 9천원! 종류도 브리 나무사진과 황량한 파리 에펠탑 풍경 딱 두 종류. 멋진 에코백도 있으면 살까 했으나 그런 건 아예 없고, 허접한 도록이 만오천원, 엽서세트도 만오천원, 엽서 한장엔 2천원...  +_+ 그나마도 인기 작품 낱장 엽서는 품절되고 없다. 세트로만 판매한다고. 

뭔가 괴씸해서 포스터를 살까말까 고민하다, 입장료가 굳었으니 사자 쪽으로 마음을 돌려 저 공식 포스터에 든 나무 사진을 사왔다. 방문에 붙이려면 세로 작품이 제격인데 파는 포스터가 다 가로형이니 어쩔 수 없음. 

사람들 블로그 보니깐 실제 전시장 사진과 작품 사진이 많아서 브레송전도 사진촬영을 허락하나보다 했더니 그럴리가... 촬영금지인데 사람들이 그냥 막 도촬한 거였다. 내가 보러 간 날도 휴대폰 들고 철컥철컥 사진 찍어대는 사람들 꽤 됐음. 다만 관계자들이 아주 심하게 제제하러 다니진 않더라. 난 또 하지 말라는 건 못하는 사람이라, 곳곳에 크게 확대해 벽면으로 만들어놓거나 포토존으로 만들어놓은 거나 겨우 찍어왔다. 대충 이렇게...  

​그리고 아래는... 작업실 이사 때도 고이 떼어와 방문앞에 줄곧 붙여두었던 옛날 전시 포스터. ^^; 떼어버리기 전에 마지막 기념촬영을 했다. 이건 구입한 게 아니고 전시 관계자에게 잘 말해서 일행과 한장씩 공짜로 얻은 거였다. 옛날엔 벽보 홍보용으로 대량제작한 저렴한 포스터를 막 나눠주기도 하고 2천원 정도에 팔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샌 플라스틱 '배너'를 세워두는 정도이고 벽보 포스터는 아예 만들지를 않는 게 추세인가? 나로선 괜히 아쉽다. 마음에 드는 포스터는 벽보판에서 몰래 떼어다가 집에 붙이고 그런 추억이 꽤 많은데.. 쩝...  하여간 그냥 일반 종이로 만든 포스터인데도 뒷면에 셀로판 테이프를 붙여 보강을 해서 이사까지 다니며 10년이나 간직했다뉘... 참 내가 얼마나 물건을 못 버리는 인간인지 알 수 있다. ㅠ.ㅠ


해서 브레송 사진전에 대한 총평은 음... 이미 최근 전시를 본 사람이라면 굳이 또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것. 특히 몇년 전 세종문화회관 전시를 봤다면 작품이 2/3이상 겹치는 것 같았음. 게다가 추세로 보면 국내에서 브레송 인기가 워낙 높아 수년에 한번씩은 전시가 되풀이되는 것 같지 않은가? ㅎㅎ 머잖아 또 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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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매카트니라는 사진작가에 대해서 내가 미리 뭘 좀 안 것도 아닌데, 애당초 보러가겠다 마음 먹었던 건 작년 폴 옹의 내한공연이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되었던 게 크게 작용했지 싶다. 거기다 대림미술관도 쫌 내가 좋아하는 건물이고, 심지어는 초대권까지 생겼으니...  해서 카톡으로 온 초대권 이미지로 공짜 관람을 꿈꾸며 야심차게 달려갔으나 초대한 팀원 이름을 적어내야한다고 했다. 알음알음 이루어지는 패밀리 세일이나 전시의 온라인 초대권은 원래 인쇄해서 관계자 이름 적어 제출하는 게 원칙이다. 매번 따라만 다녀보아서 생각도 못했지 뭔가. 초대권 전송해준 후배에게 차마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는 못하겠고... 조심스레 문자를 보내놓고는 좀 기다리다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표 끊고 들어갔다. 그나마 유료 멤버십 가입(만원으로 티켓 두장과 커피 한잔 구매가능)하고 40% 할인받으면 매우 저렴한 입장료.  
원래는 5천원. 할인후엔 3천원

대림미술관 모든 전시에 관람객이 많은 이유는 뭔가 너그럽고 호의적이라는 기분 때문인 듯하다. 멤버십 회원을 위한 무료 공연이나 문화행사도 꽤 많은 편이고... 티켓이나 전시장내 인증샷을 제시하면 기간중 언제든 재관람이 가능하단다. 게다가 작품 사진 촬영도 오케이...
사진을 다시 사진으로 찍어오는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으면서도 괜히 막 담아오고 싶어졌다. 벽에 확대해놓은 사진까지도.

4월까지 전시라니 틈나면 한번 더 보러갈까나...
3, 4층의 유명인 사진들보다 확실히 나는 2층의 가족사진이 더 좋았다. 연출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았다는 아이들 사진이 특히 사랑스럽다. 폴 매카트니는 확실히 연예인답게(?) 사진마다 좀 노련한 모델 느낌을 풍기는 데다 젊은 시절 그는 너무 예쁘게 생겨서 별로. ㅋ 딸인 스텔라 매카트니가 한국 전시 기획에도 참여했다는데, 디자이너로 성공한 배경엔 유명한 부모님의 후광이 있었을까 없었을까(당연히 크게 작용했겠지), 양쪽 부모의 예술적인 감수성을 물려받은데다 엄청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테니 유리했겠다 그럼서 괜히 (대체 왜?) 배아파했다. 결국 인생엔 타고난 재능과 든든한 비빌 언덕이 모두 중요하다는 결론. 

흑백 사진 좋아서 구경 가놓고 웬 뜬금없는 푸념인가 그랬다. 

​휴대폰 사진을 넘기다 보니 벽에서 찍어온 지미 헨드릭스 사진이 특히 마음에 든다. 5천원에 팔던 맨 위 사진 흑백포스터가 좀 탐나긴 했으나 가로사진이라 패스~ 

방문에 붙일 새 포스터를 산다면 나중에 브레송의 풍경사진을 노려볼 작정이다. 이로써 보고싶은 전시 목록 중 하나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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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폴더를 슬쩍 훑어보니 누구에게든 도움이 될만한 독서후기보다는 그저 감상에 치우친 책자랑이 많다. 책읽기에 대한 내공과 역량이 그것밖에 안된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후기보다는 책자랑 또 한판.

사진집은 워낙 비싸서 잘 안사게 되는데 작년말쯤에 나온 윌리 로니스의 이 책은 괜스레 갖고 싶었다. 순전히 바게트 빵 들고 뛰어가는 저 아이 사진이 표지라서 그랬던 것 같다. 오래 전 전시회 다녀와서 흑백사진을 추억하며 막내동생 사진이랑 비교해 올렸던 바로 그 사진이다.
게다가 이 책은 그냥 사진집이 아니라 사진을 찍은 '그날'에 대한 뒷이야기도 담겨 있다고 했다. 원제는 <Ce jour-là>, 부제가 '내 작은 삶의 기적: 윌리 로니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이다.

찾아보니 전시를 보러간건 2007년이었고 사진작가는 2009년에 작고했단다. 1910년에 태어나 무려 아흔아홉살.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해 태어났건만 14년을 더 살았다. 근대와 현대를 모두 경험한 이에 대한 선망일까, 수많은 <결정적 순간>을 선보인 앙리-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도 좋고, 같은 말이라 생각되는 <정확한 순간>을 담은 윌리 로니스의 사진도 좋다.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오래전 전시회때 본 사진들은 책에 별로 들어있지 않은 듯하다. 내가 마음대로 로니스의 아들 뱅상이라 짐작했던, 저 <작은 파리지앵> 사진을 포함해 두어 장만 낯이 익었다.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바스티유의 연인> 사진도 없다. 그 대신 같은 날  찍은 <바스티유 기념탑의 그림자>가 들어있는 식이다. 60장쯤 되는 사진과 그 뒷이야기가 짤막하게 담겨 분량은 180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읽을 거리가 좀 더 많기를 바랐으나, 사실 사진은 구구절절 설명을 듣기보다 보는 사람의 인상과 느낌이 더 중요하므로 이야기가 짧아 사진이 더 돋보였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사진이 더 많았다면 가격도 훨씬 더 비싸졌겠지!

가능하면 연출하지 않고 그냥 주어진 순간을 포착하거나 기다렸다가 일상을 잡아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는 작가도, 저 빵소년 사진은 연출한 거란다. 빵집 앞에 할머니와 줄 서 있는 저 아이를 보고 부탁해 '세번이나' 달리게 했다는 사연. 우연히 맞닥뜨려 포착한 사진들은 확실히 조금 흔들려 초점이 흐려지기도 했던데, 저 바게트 빵소년 사진은 정말 거의 완벽해보인다.

두고두고 찬찬히 보고 읽을 심산으로 산 책인데, 택배상자 열다가 그 자리에 앉아 다 읽고 말았다. 사진도 좋지만 간결한 단상과 사연을 적은 담백한 글도 좋다. 요즘 부쩍 '세상은 불공평해! 뭔가를 잘하는 사람은 다른 것도 다 잘해! 공부 잘하는 사람은 그림도 잘 그리고 악기도 잘 다루고!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이 성격도 좋고 머리도 좋아!'라고 투덜대는 일이 잦아졌다. 이 책을 보고서도 하이고, 바흐를 몹시도 좋아했다는 이 아저씨 '사진도 잘 찍지만 글도 잘쓰네' 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_-; 

"보통, 나는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기다린다. 어떤 사진이든 그냥 그 상황의 인상에 다른다. 내 순간성을 잡을 수 있는 좋은 위치만 찾으려고 애쓸 뿐이다. 실재가 더 생생한 진실 속에 드러나도록, 그것은 시점의 쾌락이다. 때론 고통이기도 하다. 일어나지 않은 것을, 혹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어날 일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p30)

"사실, 내 사진 인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붙잡고 싶은 것은 완전히 우연한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은 내가 할 줄 아는 것보다 더 훌륭하게 나에게 이야기해줄 줄 안다. 내 시선을, 내 감성을 표현해주는 것이다. 사진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뭔가 일어나고 있다. 내 인생은 실망으로 가득 차 있으나 커다란 기쁨도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이런 기쁨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다. 삶이 슬그머니 아는 척을 해오면 감사하다. 우연과의 거대한 공모가 있다. 그런 것은 깊이 느껴지는 법이다." (p91-92)

으음... 혹시나 저작권법 위반 어쩌구 할까봐, 그리도 또 좀 퍼오기 귀찮아서 사진 없이 글만 인용하려니 느낌이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군. 암튼, 새하얀 설경을 어스름에 찍어놓은 것 같은 소박한 흑백사진과 글들이 참 어울리는 책이다. 서늘한 느낌과 따뜻함이 공존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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