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01.13 Sting, Sorry & Thanks 10
  2. 2010.05.12 구김살 없는 그림 14
  3. 2010.02.26 무지한 눈으로도 6
  4. 2009.06.11 자전거 바람이 불었다 21
  5. 2009.02.26 사랑하는 영자씨 18

Sting, Sorry & Thanks

놀잇감 2011. 1. 13. 06:49

2011년 1월 11일. 공교롭게도 1이 다섯개나 겹친 기념비적인 날이 스팅공연이었다. 열두시 반이나 돼서야 집에 돌아와 뜨끈한 감동이 식기 전에 적어두려고 공연 후기 끼적이다 양심상 찔려서 마무리를 못하고 이제야 끝낸다. 스팅공연을 예매한 순간은 작년이라 줄곧 5년만의 상봉이라 생각했었는데 6년만이란다. 맞다. 그때도 겨울이었고 몹시 추운 1월이었다. 그때 느꼈던 울컥한 감동을 그새 잊어버린 게 잘못이었다. 앨범투어에서 한국에도 빠지지 않고 들러준 고마움은 지난번과 똑같았으나, 요번 공연 때는 스팅에게 미안한 게  많았다.

5년전 스팅 내한공연 소식을 들었을 땐 티켓 오픈일을 달력에 크게 표시해놓고 그날 예매가능 시간이 되기 10분전부터 경건하게 컴퓨터앞을 지켰었다. 물론 꼬진 컴퓨터로 많은 이들과 경쟁하느라 결제단계에서 세 차례나 튕겨나가는 삽질을 해야했지만 결국 15분만에 중앙에서 왼쪽으로 좀 쏠리긴 했어도 앞에서 셋째줄 좌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을 거둔 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서 공연날 맨눈으로도 스팅과 도미닉 밀러의 표정과 몸짓을 눈여겨보며 황홀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적어둔 티켓 오픈일마저 까먹고 며칠 지나 허겁지겁 예매를 했다. 당연히 VIP석은 다 나가고, 플로어 R석도 맨 뒤나 가장자리만 남은 상태였다. ㅠ.ㅠ 하기야 플로어에 'R'석이 남아 있다는 게 그나마도 감지덕지였지만. 

결국엔 스팅 공연을 보러갈 것임을 알면서도 좀 뜨악한 태도를 보였던 건, 이번 Symphonicities 앨범에 크게 열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보기도 전에 신곡은 없고 전부 예전 곡들을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편곡했다는 정보만으로도 좀 걱정스러웠다. 난 뭐든 '퓨전'은 싫던데, 라면서. 그런 편견에 힘입어 막상 들어보니, Roxanne을 비롯해 두어곡 빼놓고는 다들 옛날 편곡이 아무래도 더 좋은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실한 노트북으로 추출해 질 떨어지는 음원으로 주로 들어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스팅인데, 공연을 안 갈 순 없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누구랑 가느냐의 문제가 골치아파졌다. 어디까지 연락해서 의향을 물어야 하나, 아우... 그렇게 소심함과 우유부단함에 발목이 잡혀 다 귀찮아, 라고 잠깐 딴청을 부린 사이 티켓 오픈일이 지나버린 거다. 허걱. 게다가 현대캐피탈에서 공연을 주최하며 현대카드 20% 할인을 빌미로 티켓값을 왕창 올린 것도 못마땅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6년간 이 나라의 치명적인 물가 상승률도 감안해야 하는 것이었나 보다.

어쨌거나 설레는 마음으로 나름 예습을 거쳐 드디어 공연날, 넉넉하게 잡는다고 공연 3시간 전인 5시부터 일행을 만나 이른 저녁을 먹을 때만해도 설마 코앞에서 길이 그렇게 막힐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아무리 눈이 펑펑 내린다지만 올림픽 공원앞 네거리에서 주차장까지 1km도 안되는 거리를 통과하는데 1시간도 넘게 걸릴줄이야. ㅠ.ㅠ 그나마도 공연을 놓칠까봐 유턴차선과 중앙분리선을 마구 넘어가 횡단보도에서 공원 입구로 끼어드는 만행을 저지른 끝에 가능했던 시간이었다. 주최사에 전화를 걸어 주차관리를 이따위로 하면 어떡하냐고 항의도 하고 공연이 지연될 거라는 귀띔을 받아 좀 안심을 했지만, 결국... 우린 공연이 시작된 후에야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ㅠ.ㅠ 8시 30분쯤 공연을 시작한 모양이던데, 우리가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체조경기장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7분, 눈 때문에 종종걸음으로 공연장을 향하는 수많은 무리 속에서 우리만 늦은 건 아니라는 위안도 잠시, 그나마도 늦은 사람들을 모두 문밖에서 한참 대기시키다 짬을 봐서 들여보냈으므로 무려 앞의 네 곡이나 놓친 거다. 흑흑흑. Englishman in New York의 쿵짝쿵짝 하는 리듬이 새어나오는 소리를 문밖에서 들으며 우린 아쉬움의 한숨을 쉬어대야 했다. (아예 못 들어가게 하는 것보다야 낫지! 라고 금세 마음을 고쳐 먹긴 했다. 무려 9시 넘어서도 계속 지각 관객들이 스물스물 들어왔으므로, 우리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고 위로도 하고;;) 암튼 내가 요번 공연에서 제일 고대했던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이랑 Roxanne도 세트 리스트에서 두번째, 세번째라 다 놓쳤다. 어흑. 스팅 공연에 내가 늦다니! 스팅이 노래와 연주를 하는데 짜증스럽게 중간에 슬금슬금 좌석으로 기어들어가다니! 아무리 눈이 펑펑 내리고 거리가 멀어도, 지하철 공사로 주변 교통사정이 쥐약이었대도 팬이라면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짓이었다. 정말 미안해요, 스팅. 우리 같은 지각생들 때문에 감상을 방해받았을 다른 관객들에게도 미안하고...

정신없이 좌석에 앉아 감상을 시작하고 나서도, 오케스트라를 몽땅 외국에서 데려오는 줄 알았다가 대형화면에 비친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와 협연이라는 걸 안 순간에도 미리 실망을 했었다. 스팅 일행이 공연 전날 한국에 도착했으니 리허설을 해봤자 얼마나 했겠어, 싶었던 거다. 근데 또 미안하게도 그건 순전히 내 편견이었다. 별도의 무용에 가까운 역동적인 지휘자의 역량 덕분인지, 서울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엄청난 사전 연습 덕분인지 협연은 훌륭했다. 물론 체조경기장의 그 알량한 구조로는 섬세한 클래식 악기 소리를 일일이 전달하기 역부족이었다. 막귀로 듣기에도 일부 악기 소리는 완전히 묻히고 클라리넷 독주 소리는 막 찢어지고. +_+ 하기야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려면 예술의 전당 같은 델 가야지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뭘 더 바란단 말이냐. 하지만 스팅이 앙증맞은 클래식 기타를 들고 간간이 직접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는 가운데 장엄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공연장을 채우니, CD로 들을 때와는 확실히 깊이와 느낌이 달랐다. 팝과 클래식의 '퓨전'이라고 해서 무조건 마뜩찮게 여겼던 나를 비웃듯 라이브로 들으니 한곡 한곡 새로우면서도 정겨운 편곡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CD엔 없었던 Russians 같은 곡은 얼마나 웅장하고 감동적이던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툴툴거렸던 거 미안해요, 스팅.

사진출처: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더 멋진 사진을 못찾겠다 +_+

게다가 역시 스팅은 스팅이었다. 52년생이니 우리 나이로는 예순인 아저씨가 어쩜 그리도 관리를 잘했는지 주름살은 확실히 많이 늘었어도 딱 좋을 만큼만 비음이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는 여전했고, 온화한 표정이며 간혹 드러나는 귀여운 섹시함도 그대로였다. '거장'이란 이정도는 돼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랄까. 무슨 곡이었더라, 그의 하모니카 연주가 처음 흘러나오는데 울컥 눈물이 날뻔했다. 재작년에 나온 겨울 앨범 사진이랑 동영상에서 꽤 많이 불어난 몸집과 시커멓게 산적처럼 염색한 머리와 수염 때문에 좀 실망했었는데, 그새 다시 몸매도 날렵해져 빨간색 실크블라우스가 여전히 어울렸고 머리칼도 희끗한 연갈색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오히려 더 젊은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가 6년새 확 늙어버린 듯해 안타까웠다. 기타 연주 솜씨와 어벙한 표정은 그도 여전했지만서도. 주름살과 힘줄이 빽빽하게 드러난 손으로 섬세하게 기타줄을 튕기는 스팅과 도미닉 밀러의 연주 장면이 대형 화면으로 클로즈업 될 때마다 나도 기타를 치고 싶다는 열망에 떨었다. 죽기 전에 Shape of My Heart 도입부의 그 감미로운 기타연주를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_+

지난번 공연때는 중간에 휴식시간 없이 두시간 쯤 그냥 내달리는 바람에 앵콜곡을 듣고도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엔 중간에 15분 휴식시간을 두었다가 1, 2부로 진행해 공연이 더 풍성하고 긴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점잖기만 했던 스팅이 중간중간 살랑살랑 팔과 몸을 흔들어 춤을 선보이는 여유까지 부리질 않나, Moon Over Burbon Street을 부를 때는 한국에도 뱀파이어가 있느냐며 소매 안감이 빨갛게 드러나는 드라큘라 코트 같은 긴 재킷을 갈아입는 정성을 보여주질 않나, 예전 공연보다 조금이라도 더 보여줄 거리를 고민한 듯한 흔적이 엿보였다. 세트 리스트를 보면 다 계획된 거라 할 수 있겠지만 암튼 인사하고 들어갔다가 계속 다시 나오며 앵콜곡을 무려 '네 곡'이나 불러준 것도 황홀했다. 이미 2부 끝날 때부터 모두들 기립한 상태에서 다 같이 춤을 추며 감상했던 Desert Rose에 이어 세곡째인 Fragile이 흘러나올 때도 탄식하듯 기뻐했지만, 악착같이 계속 박수를 치며 기다린 끝에 정말 가려고 했었던 듯 중세 수도사의 망토 같은 기다란 진회색 외투를 걸치고 나온 스팅이 무반주로 마지막 곡(뭔지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I Was Brought to My Senses였단다)을 불러줄 땐 정말 깊은 고마움과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앞으로 또 스팅을 보려면 또 다시 5년을 기다려야 하는 건가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더 컸던 것 같다. 1998년, 2005년, 2011년, 그나마 1년씩 줄어들고 있는 내한공연 주기를 감안한 예상 기다림이 5년이다. 그럼 그때 스팅은 몇살이고 또 우리는 몇살이냐며, 한껏 들뜬 기분으로 눈밭을 걸어 나오던 평균나이 47세인 우리 일행은 마냥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래도 스팅은 100살까지 노래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결론이었지만.

미안함과 고마움에 부르르 떨었던 감동의 세시간이 지나고 눈덮인 올림픽 공원을 빠져나오는 길은 들어갈 때만큼이나 어려워 지하 주차장에 또 삼십분이나 갇혀있었어도, 스팅을 만나러 가느라 할애한 총 7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공연이었다. 다음 공연 때는 기필코 망설임 없이 제일 좋은 좌석을 확보하고 대낮부터 올림픽공원에서 놀다가 절대로 지각하지 않을 테다!  

놓친 게 못내 아쉬워서... 유튜브를 뒤졌다. 음향 좋은 동영상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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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김살 없는 그림

놀잇감 2010. 5. 12. 20:40

간만에 숨 좀 돌린답시고 구김살 얘기를 썼더니 계속 기분이 구겨진 채로 있는 것 같아, 다시 반전을 모색하는 포스팅이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땐 그저 만만한 게 나의 조카들 자랑. ㅋ

첫조카가 생겼을 땐 나의 조카만 '유독 천재'라서 그림을 잘 그리는 거라고 착각했고, 화가의 혈통(울 막내고모)이 어떻게든 유전자로 발현된 게 틀림없다고 감탄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남의 조카들도 그 또래 때는 다들 비슷한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모양이었다. 개인차야 약간씩 있겠지만, 나의 조카들만 천재성을 발휘한 건 아니란 사실에 좀 맥이 빠졌어도 여전히 나는 "혹시 몰라..." 하는 마음에 아직도 조카들이 이면지 따위에 그려준 작품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헌데 녀석들의 머리가 굵어지면서 언제부턴가는 통 작품을 받을 수가 없어졌다. 내가 지켜본 결과 아이들이 가장 황홀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시기는 다섯살 전후(만으로는 48개월 전후)이고, 유치원이다 뭐다  제도권 교육에 물들면서 7살쯤 접어들면 함부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해서 최근 2년간은 통 조카들의 새작품을 확보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는 의미다. 집에 놀러가거나 유치원 발표회 같은 델 따라가서 그간 그린 작품들을 구경할 기회가 더러 있긴 했지만, 오로지 나만을 위해 그린 작품을 헌사받는 기쁨을 그깟 한번 구경하는 것과 비교할 순 없는 법. 나로선 제일 어린 지우가 어서 커서 고모에게 그림을 안겨줄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우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어쩐 일인지 색칠에만 관심을 보여 윤곽선은 딴 사람에게 그리게 하던 녀석이 하루에도 스케치북을 몇권씩 써버린다는 소문이었다. 옳다구나 싶었고, 때를 노리던 나는 드디어 지우의 그림을 확보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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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는 아름답고 눈부시더라. 다들 김연아 칭찬에 입이 마른 터에 나까지 거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고 쓰면서도 쓰고 나서도 기분 좋아지는 포스팅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제만해도 <1등만 기억하고 주목하는 더러운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 최소한 곽민정 경기부터는 관람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알람을 맞춰 놓고도 그냥 누르고 잤다. 민정양, 미안. -_-;

이름 까먹은 그루지야 선수가 넘어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잠을 떨쳐낸 나는 미국의 레이첼 플랫 선수부터 정신을 차리고 경기를 관람했는데 이제 겨우 17살이라 토실토실 젖살이 남아 있는 귀여운 얼굴로 정말 신나게 즐기면서 경기하는 모습이라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안도 미키는 등장과 함께 속이 상했다. 아무리 프로그램이 클레오파트라라지만, 그래도 지난번 시퍼러둥둥한 의상보다는 좀 차분해졌지만, 내가 초록색 옷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지닌 이유를 증명이라도 하듯 촌스럽게 느껴지는 초록색 의상은 이번에도 안습이었다. 솔직히 나는 아사다 마오보다 안도 미키가 더 뛰어난 재능과 노련함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좀 넓은 듯한 얼굴과 이목구비도 시원시원 매력이 있고. 헌데 안도 미키는 매번 의상이 꽝이다. 뭘 그리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지 원! 게다가 클레오파트라 때문인지 난데없는 단발머리도 어색하고, 피겨 스케이팅에 완전 무지한 울 엄니가 보시면서 "쟤는 왜 스케이트를 타다 말다 한다니."라고 하실 정도로 연기가 뚝뚝 끊겼다. 보라색 옷 입고 했던 세계 선수권 대회였나 그땐 그나마 좋았었는데!

안도 미키의 안쓰러운 연기 뒤에 본 연아의 모습이야 뭐 다들 아는 바대로 완벽했고 무지한 눈으로 봐도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왕비마마도 "김연아는 진짜 잘하네. 딴애들이랑 확실히 다르다."고 촌평할 정도였다. 연기를 끝내고 눈물을 터뜨린 연아를 보며 나도 질질 울어대자 왕비마마는 상당히 의아해하셨지만, 자기도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는 연아의 말처럼 나도 왜 울었는지는 딱히 잘 모르겠다.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눈물이 난다는데 그런 것이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다.

넘기 어려운 연아의 세계신기록 이후 연기를 펼친 아사다 마오도 그만하면 대단했다. 혹시라도 너무 큰 부담감에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몇번의 실수는 있었어도 훌륭하게 연기를 끝낸 걸 보면 연아도 그렇고 마오도 그렇고 스무살짜리들이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그림이나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나쁜 방법이 <예쁘다/안 예쁘다> <멋지다/별로다><마음에 든다/안 든다>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라는데, 무식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매번 예술품 앞에서 순간적으로 마음을 양분하며 감상을 이어간다. 마음에 안 들었던 작품이 나중에 다시 마음에 들어올 수도 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김연아에 대해서도 나는 언제부턴가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것처럼 경외감을 품게 된 것 같다. 예쁘고 멋져서 마음에 꼭 드는 예술품인데, 심지어 거기다 인간적이고 마음 씀씀이도 넓은 대인배이며 스무살에 걸맞은 천진난만함까지 갖추고 있으니 어쩌란 말이냐. 저절로 애정이 샘솟는 걸. ^^ 

다들 일상의 구차스러움을 잊을 만큼 기쁨과 감동을 안겨준 김연아에게 고마워하는 분위기던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울지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듯했으나, 오늘은 무한반복 재방송되는 연아 얼굴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만병통치 효과가 있는 김연아 백신이라도 맞은 기분이다. 고마워요, 연아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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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년에 느루를 장만하고 나서, 그때 직접 매장을 추천하고 조언을 해주었던 막내동생네도 곧 미니벨로를 장만했다. 애팔렌치아라고 하던가, 검정색으로 아주 늘씬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그러고선 올해부터 아직 네발자전거를 벗어나지 못했던 준우왕자의 강훈련에 돌입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지만 겉보기론 3학년이라 해도 믿을만큼 키가 훤칠한 녀석이라 머지 않아 제 엄마와 함께 미니벨로를 탈 수 있게 하기 위해, 네발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뗀 거다. 겁이 많아서 통 진도가 안난다는 소식을 들은 것 같았는데 어느 틈엔가 녀석은 순식간에 두발 자전거를 마스터 하고야 말았단다. 이렇게...

그러고 나서 좀 있다 준우왕자의 동생인 지우의 생일이 돌아왔다. 겨우 만 세돌이 되는 녀석은 똑 소리나게도 우리에게 선물을 콕 찝어 요구했다. 자전거를 사달라고. +_+ 그것도 하얀색이랑 검정색으로.
"고모, 지우 자전거 사주세요. 하양색이랑 검정색 있는 거..."라는 지우의 말을 직접 전화로 들으며 나는 내심 걱정이 앞섰다. 애들 자전거가 죄다 파랑 아니면 분홍, 아니면 노랑, 초록 같은 원색이던데, 하얀색이랑 검정색이라니...
그런데 그건 나의 기우였다. 지우 기호에 딱 맞는 어린이용 자전거가 있더라!
어린 녀석 취향이 세련됐기도 하여라. @.@
문제의 자전거는 삼천리자전거에서 나오는 <하이킥>이란다. 지우도 또래들보다 키가 커서 12인치를 사줘야 하나 16인치를 사야하나 고민했는데 딱 맞춤처럼 14인치짜리가 매장에 있더라나. 당연히 지우왕자는 저 자전거에 올라타곤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ㅎㅎㅎ
제가 원하는 선물을 생일선물로 받은 지우는 연일 자전거 타기에 힘쓰는 모양이고, 겁이 많아 속도 내는 건 엄두도 못냈던 제 형과 달리 방향전환이며 속도내기에 거침이 없어 오히려 걱정이다. *_*

무릎 보호대를 하고 제 형의 뒤꽁무니를 거의 바짝 뒤쫓는 지우의 모습을 보면 난폭운전의 기질마저 느껴진다. ^^; 귀여운 녀석...

준우마저도 두발 자전거로 씽씽 달리는 모습을 본 데다 고모와 작은엄마의 미니벨로 맛을 본 정민공주는 자기도 기어 달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이미 온 집안에 불어닥친 자전거 바람에 물든 큰동생네도 전격 미니벨로를 장만하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내 자전거랑 똑같은 다혼 우베공 흰색으로...
다만 사이즈는 내것보다 큰 걸로. ㅠ.ㅠ

이 자전거를 타다가 공주는 오른쪽 무릎을 왕창 갈아 진물이 날 정도였는데도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러 나가는 눈치다. 사진은 5월 31일에 소풍 갔던 월드컵 공원에서 타는 모습이고, 공주의 아빠가 찍은 사진이다. 자전거를 타고 느껴지는 바람이 보이는 것 같은 이런 사진.. 좋다. @.@



자존심이 심히 상하기는 하지만, 조카랑 고모랑 나란히 똑같은 미니벨로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아주 그럴듯하다. 왼쪽이 내 느루, 오른쪽이 공주의 우베공.
이땐 하필 내 자전거를 올케가 타느라 안장을 제일 낮게 했고, 정민이 자전거는 동생이 안장을 높여 탄 직후라 더더욱 형님과 동생 같이 보인다. ㅎㅎㅎ

이번엔 여기저기서 동생들 사진을 퍼왔지만, 담번엔 정말로 온가족이 떼로 모여 자전거를 탄 뒤 단체사진을 찍어와야겠다. 암튼 온 집안에 부는 자전거 바람, 참으로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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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는 얘기겠지만, 비틀즈의 노래 Hey, Jude는 존 레논의 아들 줄리앙을 위해 폴 매카트니가 만든 노래다.
존 덴버의 노래 가운데서도 아내를 위한 노래 Annie's Song이란 게 있다.
음악가를 가족으로 둔 덕분에 자기 주제가를 갖게 된 사람은 대단한 행운아겠지만, 반드시 본인을 위해 작곡된 노래가 아니더라도 자기 이름이 들어간 곡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들도 퍽 흐뭇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대중가요엔 끊임없이 제목이든 가사에 사람 이름이 들어간 노래가 나오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런 맥락으로 나온 가요 중엔 이 나라의 수많은 영자씨들을 위한 노래 <사랑하는 영자씨>가 있다.

40년대 출생이신 울 엄마 또래엔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끝소리가 <子>인 이름들이 수없이 많고, 그 가운데서도 <영자>란 이름을 가진 딸은 거의 집집마다 하나씩은 꼭 있지 않나 생각될 정도다. 요새도 한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는 울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모임에도 열두 명 가운데 무려 <영자>가 셋이란다. 김영자. 홍영자. 이영자.
그 아주머니들의 노래방 18번이 모두 <사랑하는 영자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많은 영자씨 가운데 한 분인 울 엄마는 <만남>과 <애모> 이후 거의 강제적으로 <사랑하는 영자씨>를 애창곡으로 삼아야 했다. 누가 부르든, 울 엄마를 대동하고 노래방엘 가게되면 반드시 신청해야 하는 지정곡쯤이 되고 말았으니까. 사실 이 노래는 본인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불러줘야 하는 것이라, 듀엣 곡이 되는 게 보통이었다. 주로 울 아버지가 아내에게 바치는 연가의 형식으로.
그리고 울 엄마가 요 전에 쓰시던 휴대폰 화면에는 <사랑하는 영자씨>라는 글씨가 기본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아마도 평생 곰살맞으셨던 울 아버지의 소행이었을 거다. 휴대폰 기본설정 바꾸기의 달인인 정민공주가 그 글귀를 없앴을 때 울 엄마가 펄쩍 뛰면서 야단을 쳤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아무려나 지난 화요일은 우리집 영자씨의 생신이었다. 주중이라 당연히 늘 하던 대로 주말에 미리 모여 저녁을 먹고 케이크 촛불을 껐다. 언제부턴가 가족들의 생일파티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조카들의 선물을 개봉할 때다. 어린 조카들이 할머니나 고모, 제 부모에게 하는 선물이란 당연히 손수 그린 그림이나 카드 뿐이지만, 며칠 전부터 은근히 압력을 넣어 받아내는 아이들의 선물은 그야말로 사랑스럽다. 내가 팔불출 고모임은 이미 만방에 알려졌으니 이참에 또 자랑하려는 것이 본 글의 목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다들 짐작하셨겠지...


주말에 미리 생일파티를 끝내더라도 정작 당일을 그냥 넘길 순 없는 일이라, 무수리는 전날 장을 봐다가 미역국 끓이고 불고기 재고 초고추장 만들고 두릅 데쳐서 조촐한 아침상을 차렸다. 전날 밤 적어놓은 카드엔 정민공주의 카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만날 툴툴거리고 잔소리 해야 하는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고는 무뚝뚝해서 좀처럼 하지 않는 말, "엄마 사랑해요"라는 말도 마지막에 적어 넣었다. 그러곤 또 민망해서 성의없는 현금 선물과 함께 모르는 쳑 소파에 갖다 놓고 드물게 모녀가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었다.

소파에서 발견한 카드를 읽은 엄마는 아침부터 사람을 울린다고 투덜거렸고
미역국 끓이느라 못 잔 잠을 자겠다고 심술내며 방에 들어온 무수리 딸도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영자씨가 옆에 안 계실 날이 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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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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