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됐다'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11.26 몸값 18
  2. 2010.11.17 모녀의 취향 19
  3. 2010.03.16 소인배의 승리 20
  4. 2009.11.17 인터넷 전화 12
  5. 2009.11.06 어렵다 6

몸값

투덜일기 2010. 11. 26. 14:40

처음도 아니고 두번째 계약인데 굳이 출판사로 나오라고 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2시에서 3시 사이에 아무때나 오라더니만 아침부터 일찌감치 다시 전화를 해서 나의 단잠을 깨워 2시까지 오라고 콕 찍어줄 때부터 조짐이 안좋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재미없으니 시리즈물의 계속 출간을 재고해보라고 내가 충심어린 부탁을 했던 청소년 소설의 두번째 책을 얼떨결에 계약하고 돌아와선 스스로가 한심해 엊저녁부터 계속 제머리를 쥐어박는 중이다.

어차피 책이 잘 팔릴지 안 팔릴지 예측하는 혜안 따위는 갖추지 못한 인간이니 출판사에서 계속 시리즈를 내겠다면 번역은 내가 맡아야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중간에 어떤 문제가 있든 시리즈물의 번역자가 바뀌는 건 독자를 위해서도 좋지 못한 일이다. 다행히 편집 담당자는 책이 재미있다고 했으니, 내가 청소년물을 즐기기에 너무 '늙어'버렸나보다고 짐작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다음책을 논의하러 갔었던 것이고.

하지만 시장에서 콩나물값 깎는 것도 아니고, 사람 불러다가 계약서까지 뽑아놓고 눈앞에서 원고료를 깎는 건 너무했다. 이메일이나 전화로 그런 의향을 물어왔다면 내가 아무리 소심하다고 해도 당연히 거절했을 것이다. 다른 데는 내년 계약 건부터 어렵더라도 조금씩 몸값을 올려주는 형국인데 새삼 번역료를 깎아달라니. 시리즈물의 번역료를 권당 달리할 수도 있다는 건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번역가별로 몸값이 거의 정해져 있긴 해도 책에 따라 번역료가 약간씩 조절되는 경우는 물론 있다. 분량이 너무 엄청난 책의 경우 출판사에서 미리 양해를 구하는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번역하기 쉬운 책과 어려운 책은 출판사에서도 이미 알고 있지 않겠나. 지난번 계약도 가벼운 '청소년물'임을 빌미로 나로선 최대한 양보한 선에서 번역료를 책정했던 터였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책정한 제작비에 맞춰서 두들겨 패듯 가장 만만한 '인건비'인 번역료를 막무가내로 깎으려 드는 곳을 간혹 만나게 되면 정말이지 맥이 쭉 빠진다. 시리즈물이라서 뒷권은 번역하기 더 수월할 거라는 짐작의 근거는 대체 무엇인지.

일단 사무실로 불러들이면 내가 소심해서 면전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따위의 극적인 행동은 하지 못할 거라는 걸 저쪽에서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작전은 유효했다. 나름 굳은 얼굴로 입장을 밝히기는 했어도 결국 달변의 설득에 넘어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해주었으니 말이다. 저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갑'이라서 '을'인 내가 져야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결과적으로 겨우 몇십만원가지고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는 상황이 서글퍼져 어서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비루한 밥벌이 아닌 직업이 어디 있을까마는 드물게 겪는 이런 장면은 그저 도망치고 싶을 뿐이다. 시리즈물 끝나면 다시는 상대하지 않을 출판사로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하는 수밖에.

내키지 않아도 가끔씩 가게 되는 파주 출판도시는 이상스레 정이 가지 않는다. 삐까번쩍한 건물들이 즐비해도 인기척은 전혀 없이 회색빛으로 가라앉은 그곳에 가면 괜히 숨이 막힌다. 씁쓸한 심정으로 서둘러 집에 오니 파주에 있는 또 다른 출판사에서 보낸 증정본 택배상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올해 출간되는 마지막 책일 것이다. 책표지를 쓰다듬으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나의 몸값이 여기 담겨 있으니 그만 잊어버리자고 마음먹었다. 헌데 새삼 구석에 던져둔 계약서를 보니 자꾸 울컥해서... 여기다 일러바쳤으니 이제 정말 툭툭 털고 웃어버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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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의 취향

투덜일기 2010. 11. 17. 16:23

넉달만에 동창모임 오찬에 나가셨던 왕비마마가 4시를 넘기고도 귀가하지 않았다. 걱정이 돼서 전화를 걸었더니 친구분들과 쇼핑을 다니다 이제 귀가 중이라는 대답. 그간 다리 허리도 아프고 심리적으로도 불안하여 홀로 외출은 꿈도 못꾸던 양반이 최근 매일 꾸준한 산책과 운동으로 이룬 쾌거이니 나로선 박수라도 칠 일이었다. 그리고 일흔살 노여사님들 다섯 분이 대체 어디로 쇼핑을 다니셨는지(강남 모처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고), 쇼핑 품목은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가하러 다녀와 보니 그새 귀가하신 왕비마마는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 장만한 겨울외투를 보여주었다. 헌데 소재만 좀 달랐지 기존에 있던 외투와 색깔(진한 갈색)이며 길이와 스타일이 거의 똑같았다. 어차피 사온 물건이니 그냥 잘 샀다고, 예쁘다고 칭찬해드리면 좀 좋으련만 까칠한 딸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갈 리가 없다. -_-; 이왕 사는 거 왜 똑같이 생긴 걸 샀느냐고 타박부터 튀어나왔다.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라는 왕비마마의 대답을 들으니, 타박부터 앞세운 것이 민망해져 얼른 잘 사셨다고 칭찬을 해주었는데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문고리에 걸어두었던 또 하나의 패딩외투를 꺼내며 '하도 싸서 니 꺼도 사왔으니 입어보라'는 말씀. 헉... 내 눈엔 이보다 더 흉측할 순 없을 듯한 '빤딱이' 남색 원단에다 '프린세스' 라인(패딩에 웬!!)이고, 심지어  목엔 회색과 청색으로 '여우털'이 부숭부숭 징그럽게 달려 있다. (물론 왕비마마는 그 '여우털'이 '포인트'라고 강조했다) 그야말로 할머니들이 가뿐하게 동네 마실 다니실 때 입으면 딱 좋을만한 물건을 비록 나이는 40대지만 곧죽어도 '영플라자'에서만 옷을 사입는 딸에게 사다주시다니.. ㅠ.ㅠ 

사실 우리 모녀는 취향이 너무도 달라서 자기 마음대로 골라 서로에게 선물한 옷은 원래 성공하기가 힘들다. 왕비마마가 거동이 그나마 자유로웠던 5년전까지는 내가 그렇게 타박을 하고 퇴짜를 놓아도, 백화점 갔다가 괜히 집어들고 오시는 옷이 종종 있어서 너무도 괴로웠다. 내가 즐겨입는 옷들이 다 너무도 후줄근하고 추레하고 칙칙하다고 여겨 못마땅해 하는 왕비마마가 골라오는 옷이야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나마 내가 충동적으로 사오는 왕비마마의 옷은 성공률이 5할대는 되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두번에 한번은 색깔이며 디자인 때문에 바꿔야 하거나 아예 반품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그간 모녀는 옷을 사다주고도 괜히 욕을 먹어 각자 삐치는 역사의 반복을 교훈 삼아 다시는 자기 마음대로 옷을 사다 내밀지 않기로, 그러니까 옷을 사주려거든 같이 가서 입어보고 고르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새삼 도대체 왜??!! 

옷이 너무 '미워서' 절대로 입을 수 없다는 나의 입장과 동네 마트 갈 때라도 막 입으면 되지 않느냐는 왕비마마의 옥신각신은 서로의 취향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친구분이 사입고 온 옷이 좋아 보여 다들 따라가 한두벌씩 샀다는 그 옷의 판매처가 정확히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가격으로 보아 '반품불가'가 확실하다) 반품이나 교환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마당에 모녀가 실랑이를 부려봤자 소용 없는 일이다. 결국 입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최후통첩과 함께 (나 또한 자꾸 강요하면 차라리 헌옷 기부함에 넣어버리겠다고 협박했음 -_-;) 왕비마마는 아침에 다시 입어보라며 문제의 패딩을 내 방에 걸어놓고 물러나셨다. 하지만 오늘 다시 쳐다봐도 내 눈엔 역시나 몸서리 처지게 싫고;; ㅠ.ㅠ 

재킷도 외투도 다들 '넣고 꿰맨 것 같이' 몸에 딱 맞는 스타일이 유행일 때에도 나는 넉넉하고 큼지막한 옷이 좋았다. 그래서 과거엔 가끔 남동생들 옷을 빌려 입거나 아예 내 옷을 크게 사서 어린 동생들과 나누어 입는 것도 좋았다. 할머니의 유품 가운데서 내가 골라 가진 큼지막한 순모 니트 외투는 그야말로 할머니 같다고 왕비마마가 질색팔색을 하든 말든 여전히 십수년째 나의 애용품이다. 아버지의 유품중에서도 수많은 옷가지는 거의 다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지만 그 전에 동생들도 올케들도 최대한 자기 몸에 맞는 걸 골라 간직했고, 나 역시 왕비마마가 내겐 어울리지 않는 '잠바떼기'라고 못마땅해 하시는 아버지 옷 두 어벌을 챙겨 입고 다녔다. 적어도 옷차림에 관한 한 나는 별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내' 눈에 예뻐 보이고 좋으면 그만이고, 남들이 뭐라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10년, 20년 된 낡은 옷을 버리지 못하는 건 나름의 역사와 추억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로'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 유행에 크게 뒤떨어졌든 아니든 그런 옷을 입고 나서면 슬며시 기분이 좋아진다.

반면에 왕비마마는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가 최우선이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도 가을이면 겨울옷 입는 걸 꺼린다. 남들이 겨울옷을 꺼내 입은 걸 보아야만 그제야 안심하고 입는 식이다. 외투를 입으면 반드시 단추나 지퍼를 채워야 집을 나선다. 앞섶을 풀어헤친 모양새는 불량스럽고 단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본인에겐 너무도 어색하단다. 땀을 삐질삐질 흘릴망정 집밖에선 재킷이나 외투의 단추를 잘 풀지 않는다. +_+ 겨울이면 놀라울 정도의 겹쳐입기 신공을 벌이느라 여러 옷을 풀어헤치고 목도리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다니는 딸의 차림새가 왕비마마에겐 얼마나 '거지 같이' 보일지 알만하다.

원래도 체구 차이가 크게 나서 옷을 같이 입는 모녀들처럼 (정민공주는 이미 제 엄마와 고모 옷을 수시로 빼앗아 입고 있지만;;) 옷을 나눠입고 살아본 역사가 없긴 하지만, 체구가 같았더라도 아마 왕비마마와 나는 극과 극인 취향 때문에라도 절대 옷을 공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십년간 지켜보고 같이 살며 서로 못마땅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양반이 왜 새삼 이런 일을 벌이셨는지 원. 그나저나 저 흉측한 물건을 어떻게 하나 그게 큰일이다. 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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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배의 승리

2010. 3. 16.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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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전화

투덜일기 2009. 11. 17. 16:09

최근들어 왕비마마는 TV 광고를 보다 비감에 젖는 일이 많아졌다. 당최 무슨 선전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광고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처음엔 나름대로 설명을 해드렸지만 반복되는 설명에도 똑같은 푸념을 늘어놓는 횟수가 잦아지자 급기야 심술무수리는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가 못 알아먹는 광고는 엄마가 몰라도 되는 광고야! 굳이 알려고 하지 마!"라고.
참 못됐다. 나도 안다.

언젠가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엄마에 대한 짜증을 늘어놓는 딸에게 넷째 고모가 호통을 쳤다고 했다.
"난 옛날에 할머니가 아무리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해도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응, 응 거리면서 다 들어드렸어! 딸년이 돼가지고 엄마가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고 그러면 늙어서 그러시나보다 안쓰러워하지는 못할망정 짜증을 내고 난리니!"
부쩍 심해진 왕비마마의 건망증 때문에 자꾸만 짜증이 심해진다는 내 넋두리에 대한 고모의 위로였던 셈인데, 우리 할머니의 반복되는 레퍼토리는 나도 익히 잘 알지만 재미난 이야기의 반복이지 울 왕비마마처럼 <'비비디바비디부'가 무슨 뜻이냐, 뭐하는 선전이냐>는 질문 따위를 광고 나올 때마다 수십번, 수백번(은 과장이겠지만;;) 묻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에겐 별 위안이 되질 못했다. 

사실 요즘엔 티저 광고처럼 궁금증을 유발하려고 일부러 감질나게 메시지를 숨기는 광고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무슨 광고인지 통 알 수 없는 <요상한> 광고가 많다. 워낙 문외한이라 나에겐 IT관련 광고가 좀 그런 편인데, 휴대폰으로 인터넷 전화를 쓸 수 있다며 유선전화 선을 가위로 뚝 자르는 광고 같은 건 영문을 몰라 돌연 화가 나기도 한다. 뭘 어쩌라는 거야! 나도 아리송한 광고가 많은 지경이니 늙으신 왕비마마야 오죽하랴!
울 엄마가 아직도 개념파악을 하지 못한 광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쿡>하라는 선전이다. KT에서는 배냇짓을 하는 예쁜 아기 덕분에 새로운 브랜드 광고 효과가 높다고 득의양양하는 모양이지만, 아직도 울 엄만 <쿡>하고 <쑈>하라는 얘기만 나오면 이맛살을 찌푸린다. TV도 보고 인터넷 전화도 하고 휴대폰까지 뭔가 죄다 한꺼번에 어쩌라는 건데, 사실 나도 뭔소린지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뿐이지.

그런데 며칠 전 나는 내 방으로 걸려온 전화국 텔레마케터의 집요한 설득에 결국 넘어가 인터넷 전화를 신청하고 말았다. 유선전화를 쓰고 있기 때문에 <무료>로 인터넷 전화를 설치해줄 것이며 추가 비용도 전혀 없이 무선 전화기도 <공짜로> 주는데 문자메시지도 보낼 수 있는 그 무전전화기의 문자 요금은 휴대폰 문자 요금의 절반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요지였다.
멍청한 나는 전화기를 지저분하게 또 달고 싶지 않다고 계속 발뺌을 하다가 일단 써보고 불편하면 인터넷 전화든 유선전화든 둘 중 하나를 해지해서 치우면 된다고 받아치는 바람에 더 물러서지 못하고 우물쭈물 그러마고 허락을 했는데, 오늘 드디어 인터넷 전화가 설치되었다.

멍청하게도 나는 유선전화와 똑같은 번호로 쓸 수 있는 인터넷 무선전화기만 생기는 줄 알았더니, 070으로 시작되는 인터넷 전화번호가 새로이 따로 주어진댄다. -_-;; 인터넷 전용선 단말기에 뭔가를 푹 꽂아주고는 무선전화기 하나를 두고 갔는데 기분이 영 찜찜하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뭔가 큰일을 지저르고 만 느낌!
추가 기본요금 같은 건 없다고 들었지만, 지금도 방방마다 전화가 너무 많아 걱정인데 (번호 둘에 유선전화 전화기만 모두 네 대였다) 것도 모자라 전화를 또 하나 놓다니... ㅠ.ㅠ
그래도 혹시나 광고에서 본 건 있어가지고,  인터넷 전화를 놓으면 휴대폰으로 무료 인터넷 전화도 쓸 수 있다던데요.. 하고 물었더니 시방 광고는 그렇게 하고 있지만 지금 사업개발이 진행중이고 아직 실행은 되지 않고 있단다.

역시나 과장광고였던 것! 쿡하고 쑈하고 결합해서 어쩌라고 만날 떠들어대는데 나는 아직도 따로따로 쿡하고 쑈하면서 낼돈은 다 내고 별로 편하지도 않게 살고 있는 게 확실하다. 조금 더 잘 알면 정말로 비용절약이 가능하긴 한 건가?? 다 귀찮아서 더 알아볼 엄두는 내지도 않은 채, 새로 달아놓은 인터넷 전화를 계속 째려보고는 있는데 영 불안하다. 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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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투덜일기 2009. 11. 6. 16:45

어제 친구 아버님의 부음을 듣고 밤에 문상을 다녀왔다. 작년에 엄마를 여의고 1년 반만에 다시 아버지를 여읜 그 친구에겐 언니오빠가 다섯이나 되는데도 부음을 전하는 전화를 끊으며 퍼뜩 든 생각은 <고아>라는 말이었다. 엄마아빠 다 돌아가셨고 비혼이니 아이는 아니어도 고아인 셈이라는 생각이 든 거다.
여러가지 병치레로 요즘 특히 고통을 겪고 있는 왕비마마가 걸핏하면 빨랑 아버지 따라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를 때 내가 버럭 소리치는 말도 비슷하다. <엄마도 없으면 나더러 고아로 살란 말이야?!>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부모가 없으면 고아로 느껴지는 유아적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새삼 네이버 국어사전을 뒤져보니, <부모가 없는 아이> 말고도 두번째 뜻에 <북한어] 예전에 어버이를 잃은 상제가 스스로를 이르던 말>이라고 돼 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니 한편으로 위로가 되지만, 그래도 역시나 <고아>라는 말은 너무 외롭고 쓸쓸하다. 어젯밤엔 문상을 다녀와 잠든 엄마의 어깨 위로 이불을 올려주며, 성질 좀 죽이고 좀 더 다정한 딸이 되어야지 결심했는데, 만 하루도 못돼서 오늘 계속 왕비마마랑 티격태격했다. 종종 정적속에 입다물고 혼자 있는 걸 즐기는 딸과, 온종일 틀어놓은 TV소음을 배경으로 치덕치덕 붙어서 만지고 얘기하길 원하는 엄마의 조합은 늘 어렵다. 
원래부터 오늘 약속이 있어서 외출해야 하는데, 왕비마마는 또 화난 딸의 임시 가출로 여길 게 뻔하다. 특별히 잘못한 것 없는데도 서로에게 뾰족한 말을 날리게 되는 이런 날엔 그냥 침묵의 시간이 약이란 걸 왕비마마는 왜 모르실까. 이럴 때마다 좀머씨가 생각난다. 나를 좀 제발 그냥 내버려두란 말이야!!
그 딸 참 못됐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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