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두서없어읽기싫겠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5.10 어떻게 팔릴까 11
  2. 2011.03.24 잡념 15
  3. 2011.03.11 30년 11

어떻게 팔릴까

책보따리 2011. 5. 10. 18:32

꾸준히 책을 읽은 감상을 올리는 블로거와 달리 독후감 못쓰는 지병을 탓하며 가뭄에 콩나듯 독서 후기를 올리면서 한 가지 착각을 했던 것 같다. 파워 블로거도 아닌 주제에 마치 내가 후기를 올리면 조금이라도 책 판매에 도움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깊이 생각해볼 것도 없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같은 타령이다. 하루 접속 인원이 수백 명, 수천 명 되는 도서 전문 블로거라면 몰라도 행여나!

하여튼 출판계에 발을 담그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단군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푸념이 한해도 빠지지 않을 만큼 열악한 이 업계의 구조적 한계를 알고 있기에 나와는 별 상관없는 희소식에도 그저 반갑기만 하다. 나는 신간, 구간 따지지 않고 내키는 대로 책을 사기 때문에 나온지 몇년 지난 책을 처음 접할 때도 꽤 많은데, 그럴 때 찾아본 서지정보에서 5쇄, 10쇄 이상 발행됐다는 내용이 눈에 띄면 괜스레 기쁘다. 또한 베스트셀러를 일부러 기피하는 성향이 있으면서도 100만부를 넘겨 팔렸다는 책이 뉴스에 등장하면(물론 이제 100만부 넘겨 팔리는 책이 드물어 뉴스거리가 되고 만 현실이 서글픈 것과는 별개로) 역시나 아직도 책을 읽거나 사는 사람이 깡그리 사라지진 않았다는 생각에 슬몃 안심이 된다.

처음 번역에 발을 디디면서 깨달은, 출판기획은 도박이나 다름없다는 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스캔들에 휩싸였던 전직 큐레이터의 자서전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리라고 짐작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같은 책의 판매 호조도 내겐 그저 놀랍다. 일단 탄성이 붙어 화제에 오르고 난 다음엔, 뇌화부동하는 군중들이(워낙 이 나라 사람들은 집단주의에 휩쓸리는 경향이 많다고 생각한다. 언론에도 꽤 오르내리고 주변인들이 좀 아는 체 하면 따라 읽는 심리;;) 너도너도 덩달아 사보는 분위기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궁금한 건 어쩌다가 탄성이 붙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과거엔 주요 일간지에 서평이 실리는 게 책 판매실적을 크게 좌우했다. 조중동 서평난에 실리면 기본 1만부는 거뜬히 넘긴다고 장담하던 때도 있었다. 내가 번역으로만 밥벌이하기가 힘들어 출판사 외서기획을 돕던 시절, 서로 친분이 두터운 소규모 출판사 사장님들은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그 주요 일간지 서평 담당 기자들을 불러다가 깍듯이 '접대'했다. 한번은 나도 그들과 얼굴을 익혀두는 것이 좋겠다며 인사동으로 불려나간 적이 있었다. 기쁨조도 아니고 이게 뭔가 싶어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앉은 내 심사를 파악한 사장님은 어차피 저 사람들 2차로 보낼 데도 있으니 밥만 먹고 일어나라고 달랬다. 그날 따라 몸이 좋지 않아 2차까지 '수행'하지 못하게 된 사장님은 동석했던 다른 출판사 사장님에게 한껏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고는 준비해간 돈봉투를 은밀하게 기자들에게 하나씩 찔러주었다. 그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지 나는 이미 경리직원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빳빳한 만원권 100장씩이었다. 늘상 있는 일인 듯 그걸 받아드는 기자들은 몹시 태연자약 여유로웠고, 나는 속으로만 부르르 치를 떨었다.

벌써 십수년 전 일이긴 하지만 그 당시 작고 이름없는 출판사의 경우는 그렇게 밥과 술과 돈과 여흥으로 서평 담당 기자를 접대해도 조만간 일간지에 서평이 실린다는 보장이 없었다. '나름' 괜찮은 책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대규모 출판사는 특별히 기자 접대를 하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서평이 실렸다. 자금력이 확보되어 있으니 대형 화제작을 언제든 터뜨릴 수 있지 않겠나. 출판계에도 통용되던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 내게 기획자 명함을 파주었던 그 출판사의 서평이 드디어 일간지에 실린 건, 직접 목도했던 돈동투 사건으로부터 1년이나 지나서였다. 로열티도 꽤 많이 주고 계약한 경제경영서를 출간했을 때였다. 일간지 서평 덕에 과연 그 책의 손익분기점을  넘겨 혜택을 보았는지 결과는 알지 못한다. 내가 곧 그 출판사 기획일을 때려치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작컨대 분명 '밑지는' 장사였을 것이다. 1, 2년 꼬박 기자들에게 그런 접대를 해야 했다면 들인 돈이 대체 얼마인가! 기가 막혀서... 

웃기는 건 서평 담당 기자들 가운데 실제로 책을 꼼꼼히 읽고 기사를 쓰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고, 출판사에서 자체 제작한 홍보자료를 순서만 약간 바꾸어 서평을 올려놓고는 그 기사의 저작권을 신문사에서 주장한다는 점이었다. 그 시절엔 나도 종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고 비상근이긴 해도 출판사에 나가보면 주요 일간지가 매일 수북하게 쌓여있었는데, 거기서 가끔 실제로 책을 읽고 쓴 게 틀림없는 서평을 발견하면 우와 놀라며 감동할 정도였다. 그때 만난 서평 담당 기자들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나빴던 나머지, 요즘도 인터넷으로 일간지 서평을 보게 되면 못내 궁금하다. 책을 직접 읽고 쓴 걸까, 홍보자료를 읽고 쓴 걸까? (화제작에 대해서 일간지 별로 대동소이한 서평이 올라오면 십중팔구 출판사 홍보자료라고 장담한다 ^^;) 아직도 서평 담당 문화부 기자들은 출판사의 깍듯한 접대를 받을까?

일간지 서평과 함께 당시엔 일간지 4, 5단 통광고나 전면광고가 '꽤 먹히던' 시절이었다. 물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전면광고, 통광고 좋아하다가 마케팅 비용에 들인 돈 만큼 책이 팔리지 않아 결국 부도를 내거나 크게 손해를 본 출판사들이 쎄고 쎘지만 말이다. 요샌 종이 신문을 본 적이 거의 없어 경향이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과거만큼 영향력이 없는데도 여전히 일간지에 4, 5단 통광고나 전면광고를 턱턱 내는 출판사들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설마 옛날보다 광고비가 싸졌을 리는 없는데 미약하기는 해도 여전히 효과가 있기 때문일까? 그 또한 궁금하다.

이제는 인터넷 서점의 엄청난 위용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의 힘이 날로 줄어들고는 있지만, 옛날엔 대형서점의 진열대도 책의 판매실적을 좌우했다. 그래서 영업사원들은 서점 직원들과 각별히 친하게 지내며 유리한 진열 위치를 선점하려 했고, 따로 돈을 내야 하는 특별 판매부스 코너도 종종 설치했다. 서점에 영업을 나가선 슬쩍 경쟁사의 책을 구석쪽으로 밀어두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과연 그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서점에 나가서도 베스트셀러는 눈으로만 구경할 뿐 괜히 못마땅해하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라며 수북하게 쌓여 있으면 선뜻 손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일부 출판사에서 책 사재기까지 해가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려고 안달을 하는 게 아닐까.

출판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과 달라진 현실 때문에 책 영업에도 고충이 많다. 요즘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입소문과 온라인 서점의 판매지수, 거기 올라간 독자 서평이라는 것 같다. 그래서 웬만한 출판사들은 책이 나오면 으레 온라인 북카페나 자체 출판사 회원 사이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 무료로 책을 나눠주고 자신의 블로그와 온라인 서점 게시판에 서평을 올리는 것이 조건인 것 같다. 그걸 알기에 나는 책이 출간된 후 후딱 올라온 온라인 서점의 후한 서평을 믿지 않는다. 출판사의 입김이 닿은 서평단의 글일 확률이 백프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닌 경우도 더러 있을 텐데 그들에겐 좀 미안타;;) 출판사에서 굳이 서평단을 모집하지 않더라도, 지은이 쪽에서 사람을 풀기도 하는 것 같다. 영어교사를 하고 있는 선배가 종종 교재를 출간하는데, 책이 나오면 어김없이 단체문자가 날아온다. 온라인 서점에 별 다섯개짜리 서평을 책임지고 두개씩 올리라고. -_-; 학교 제자들한테도 그러라고 시켰다는 후문이고, 나중에 선후배 모이는 자리에선 출석확인 하듯 서평 올렸나 안 올렸나 따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과연 인세 대박이 났는지 그건 또 잘 모르겠다. 최근 이삼 년 간은 조용한 걸 보면 인기 교재 집필자는 아닌 것 같다. ㅋㅋ

얼마전 신간 소설 읽고 올린 후기 때문에 출판사의 검색망에 딱 걸려든 적도 있었지만, 확실히 출판사에선 1인 미디어시대라는 요즘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 소셜미디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웬간한 출판사는 공식 사이트뿐만 아니라, 장르별 북팬카페를 운영하기도 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다 열어두고 어떻게든 독자들과 소통하려 한다. 또한 출간 기념회 같은 행사에도 주요 블로거와 북카페 회원들을 반드시 초청해 기념품과 책 선물을 안긴다. 어느 정도 위상이 높은 서평 전문 블로거나 북카페 회원의 경우 공짜로 책을 받았다고 해서 터무니 없이 호의적이기만 한 서평을 올릴 리는 없다고 믿는다. 애서가로서 자신의 신뢰도에 금이 가는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판사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지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적절한 예일지 모르겠지만, 부정선거가 판을 치던 시절 울 엄마는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불려 다니며 공짜밥을 먹었다. 어쩔 때는 누가 내는 밥인지도 모르고 갔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야 전화로 어느어느 후보가 낸 밥이라는 통보와 한 표 부탁한다는 인삿말을 듣기도 했다. 울 엄마는 밥은 얻어 먹되 안 찍어주면 그만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순진하게도 나중엔 양심이 있지 어떻게 그러느냐며 그놈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뒷구멍으로 돈을 쓴 놈은 나중에 당선되면 선거비용을 죄다 뽑으려고 부정부패를 일삼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내가 길길이 뛰며 화를 내도 소용없었다. 요새는 부정선거운동이 발각되면 당선무효가 되는 데도 여전히 뇌물성 선심을 쓰거나 밥을 내는 지자체 선거 후보자가 사라지지 않는 걸 봐도 사람들은 아직 뇌물에 약한 것 같다.

나 역시 애서가 이웃 블로거들의 리뷰를 보고 따라 읽으려고 책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짜로 받은 책이나 아는 사람의 책에 근거 없이 후한 평가를 내리는 분들이 아니다. 또한 책에 대한 내공이 깊어 팔랑귀에다 변덕 심한 나의 감상과는 평가수준도 다르다. 어차피 책 또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책을 많이 읽은 분들의 평가는 대체로 옳다. 그렇다면 나는? 독서량이 일천하여 비교대상이 현저히 적은 나로서는 그때그때 즉흥적인 감상에 휩싸일 수밖에 없고, 좀 괜찮다 싶으면 어떻게든 좀 더 '팔아줄' 방법이 없나 고심하게 된다.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리도 주제넘은 생각을 하는지 원. 그나마 위안은 이제껏 올린 후기치고 빌려본 책은 있을망정 출판사나 지은이, 번역자에게 홍보용으로 받아 읽은 책은 없다는 것 정도다. 

독서 후기 자체의 충실함보다 이런저런 책의 판매에 먼저 관심을 쏟는 나의 태도는 어쩌면 인세 대박을 향한 흑심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물론 번역료의 인세/매절 계약 여부를 내 쪽에서 정하는 건 아니고 출판사의 원칙을 따르는 것 뿐이다. 별로 안 팔릴 것이 너무도 뻔한 책을 인세로 계약할 땐 속으로 꿈을 꾼다. 아는 언니가 <체게바라 평전>을 인세로 낼 때만 해도 그렇게 많이 팔릴 줄 상상도 안했다잖아 결과는 모르는 거야, 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괜한 동병상련이랄까, 지은이든 번역가든 약간이라도 괜찮은 책은 인세로도 혜택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다. 하지만 출판은 도박이라, 어떻게 팔리는지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요지경이다. 수천만원을 들여 일간지 전면광고를 낸 만큼 수익을 뽑으려면 책을 최소한 수만부는 팔아야 할 텐데, 온라인 서점 반값 할인으로 수익구조는 나날이 열악해지는 가운데 일간지 전면광고, 버스 광고를 계속해서 해대는 출판사가 나는 더 신기하다. 베스트셀러 내고 광고 빵빵 쳐대다가 망하는 출판사를 그간 하도 많이 봤어야지. 

사실 책이 어떻게 팔릴지는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닌데 책으로 밥벌이를 할 운명을 선택하고 보니 신경이 쓰이는 것뿐이다. 언젠가 쓴 포스팅에 당신이 읽는 책 한권이 이 나라의 출판계와 라니의 밥줄을 지킵니다, 라고 눙쳤던 게 생각난다. 어디까지나 목표대로 예순 살까지 번역으로 먹고 살기 위한 안간힘이라고 생각하면 한편 눈물겹다. 누군가 책이 어떻게 팔릴지 걱정하지 말고, 마감일이나 잘 지켜 일감이나 짤리지 말라고 충고할 것만 같다. 암, 그래야 하고 말고.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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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

하나마나 푸념 2011. 3. 24. 02:35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세상을 떠났단다. '여배우'라는 말과 함께 내 의식과 무의식에 동시에 자리잡고 있었을 두 사람이 바로 오드리 햅번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였는데, 이제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어리고 깜찍한 모습으로 <녹원의 천사>, <작은 아씨들>에 나온 리즈 테일러를 보면서 어린 나는 세상에 저렇게도 예쁜 사람이 다 있군, 하며 놀라워 했다. 인형처럼 생겼다는 말의 의미가 뭔지도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리즈 테일러가 나온 여러 영화를 봤지만,  고등학생 때까지 우상이었던 제임스 딘과 함께 나온 <자이언트>에서의 모습이 내겐 가장 아름다웠던 것 같다. 타블로이드판 신문에서 늘 욕 먹고 씹히던 남성편력도 내겐 멋졌다. 남자만 여러 번 결혼하란 법 있나. 게다가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마다할 남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고혹적인 입술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나라도 혼이 쏙 빠져나갈 것 같던데. 다만 오드리 햅번처럼 외형적으로도 자연스레 아름답게 늙어가지 못한 게 안타깝긴 해도 온갖 지병과 싸우며 끊임없이 사회에 기여한 노력은 똑같이 우러러보인다. 대중과 미디어가 아무리 제 멋대로 소모해버리려고 파고들어도 당당히 버텨냈으니 이젠 고이 잠들어 편히 쉰다고 생각하면 될텐데, 왠지 기분이 착잡하다. 

리즈 테일러의 부고가 아니어도 온종일 잡념이 많아 별로 일을 하지 못했다. 학력위조 파문과 정치권 특혜 의혹으로 언론을 홀딱 뒤집어놓았던 장본인이 이번에는 또 책으로 세상을 들쑤시고 있다. 당시엔 나도 한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력위조 문제가 이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주의가 낳은 폐해라 생각했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질겅질겅 씹어대듯 한 여자를 매도하는 분위기가 못마땅했다. 도무지 실체가 잡히진 않지만 누구나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연예계 성상납 비리와 마찬가지로, 줄줄이 엮인 굴비처럼 오르내리던 수많은 정치권 인사의 개입은 진실 여부를 떠나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남성 중심의, 상품으로서의 여성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도 그 여자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는데, 요번에 대대적인 출판기념회를 열어 선정적인 회고록을 내놓은 걸 보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책을 냈을까? 하기야 요즘은 굳이 자비출판을 하지 않더라도 책 내는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느 쪽에서 기획을 하든 일말의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법. 나무에게 부끄럽든 말든, 일단 책의 형태로 출간된 책은 세상에 나올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라는 출판계의 속설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자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더 어처구니 없고 힘빠지는 소식은 그런 황당한 자서전이 벌써 나온지 하루만에 2만부가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나는 출간기념회도 그렇고 책 속에 언급되었다는 정치인의 이름도 그렇고, 그 여자가 들고 나왔다는 명품 가방이 더 큰 이슈가 되는 찌라시 언론에 그저 코웃음만 치고 있었는데, 이 나라 출판시장이 겨우 그 꼴이라니 맥이 탁 빠졌다. 노이즈 마케팅이든 아니든 자서전을 낸 그 사람으로서나 출판사 입장에선 두손 들고 환영할 일일 것이다. 이 엄청난 불황에 초판을 5만부 씩이나 찍어서 1, 2주 만에 2쇄 인쇄에 돌입하는 책이 어디 흔한가.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백만부 이상 팔리는 초베스트셀러를 일년에 서너 권씩 냈던 어느 대형 출판사도 작년에는 10만부 이상 팔린 책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게 요즘 현실이다. 최근 1, 2년 새 초베스트셀러 경향을 보면, 인기 작가 몇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연예인이나 아이돌의 팬덤에 편승해 낸 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연예계와 가요계 뿐만 아니라 출판계 마저도 연예인과 아이돌이 접수하는 거 아니냐고 씁쓸해 하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거라던데, 정말 출판시장에서 이제 팔리는 책은 떠들썩한 유명세를 업어야만 나올 수 있다는 뜻일까?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번역을 하든 글줄만으로 밥벌이를 제대로 하는 게 그리 쉽지 않고,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출판계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남은 한 가지 잡념은 가끔 주제도 모르고 펄럭대는 내 오지랖에 대한 자책이다. 주변에서 간혹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지인들이 있으면 펄펄 뛰며 말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막연하게 아련한 희망을 심어주지도 않는 편이다. 그저 혹독한 현실을 일러주고 스스로 가능성을 점쳐보도록 이끄는 것밖엔 해줄 수가 없는 걸 어쩌랴. 그리고 책이란 게 백이면 백 모든 사람에게 다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문장 역시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 오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친구의 문장력과 외국어 이해력을 속속들이 알 방법 또한 없다. 그러니 나로선 얇디 얇은 연줄을 대어줄 순 있으되 그 이상의 생존은 어디까지나 본인에게 달렸다. 실제로 지난 십수년간 우연한 기회로 몇몇 지인들을 '추천'해본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어느 출판사든 초짜 번역가를 선뜻 쓰려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책의 검토나 시험번역의 기회를 어렵사리 주선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연줄'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서로 운대가 맞아야지 소심의 극치인 내가 먼저 불쑥 누군가를 소개해주겠다고 나섰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돌이켜보면 양쪽에서 만족하는 결과가 나온 적이 별로 없다. 시험번역을 통과했던 친구 하나는 결국 자기 이름으로 번역서를 한권 내기는 했지만, 자기는 죽어도 번역으로 못 먹고 살겠다며 떨어져나갔다. 현재는 학원 원장님이신데, 나더러도 만날 그 골빠지는 일 때려치우고 고액과외나 하라고 권유한다. 친구 하나는 안타깝게도 시험번역 단계를 통과하지 못했다. 수년에 걸쳐 서로 재고 테스트하고 망설이는 과정을 거쳐 동료 번역가 대열에 접어든 친구가 둘 있는데, 하나는 출산 후 육아에 전념하다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 아무데도 찾아주는 데가 없다고 괴로워하는 중이다. 얼마 전 다행히도 검토 일을 하나 연결해줬건만, 작품 분석력이 떨어져 안되겠다는 출판사 지인의 귀띔을 들었다. ㅠ.ㅠ 다른 친구 하나는 세번째 책이 요번에 나올 예정인데, 마침  잘 아는 후배가 그 책의 외주 편집을 맡았다. 뜻밖에도 문장력도 없고 원고의 첫장부터 오역 투성이라면서 온통 새빨갛게 된 교정지를 후배가 내게 보여주었다. 그 친구에게 일을 맡긴 최종 결정은 출판사가 했음에도, 내 얼굴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물론 친구에겐 여태껏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앞으로 절대로 사람을 추천하지 않기로 홀로 결심만 세웠다. 그러면서 총체적으로 또 다시 시작된 고민. 과연 나는 이 일을 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잡념인데 잘 떨쳐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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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추억주머니 2011. 3. 11. 23:12

이번에 중학생이 된 조카가 배정된 학교는 공교롭게도 나의 모교다. 무려 30년도 더 차이나는 동문이 된 셈이다. 아무리 같은 학교라도 30년이 더 흘렀으니 내가 아는 선생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 놀라워라. 내가 중3때 막 대학을 졸업하고 솜털인지 수염인지 보송보송한 얼굴로 부임했던 한문 선생이 요번 조카네 담임이란다. 담임들 이름도 얼굴도 다 까먹은 내가 이름까지 기억할 정도면 몹시 치 떨리게 싫어했거나 퍽 괜찮게 생각했거나 둘 중 하나인데, 다행히도 후자쪽이다. 어눌하고 착하고 순박한데다 어리바리 부임 첫 해라 중3인 우리들에겐 간혹 '밥'이 되기는 했지만, 한문을 정말로 유려한 필체로 잘 썼고 서예반 담당이라 미술반에서 힘 쓸 일이 있을 땐 자주 일꾼으로 불려다녔다. 환경미화나 채점 도우미 같은 일로 늦게 집에 가게 됐을 때 하굣길에 만나면 혼자 집에 가서 밥해먹기 싫다면서 우리들과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 김밥, 우동 같은 걸 사주기도 했다. 출석부로 머리통을 찍는 선생이 없나, 대걸레 자루로 엉덩이를 퍽퍽 때리는 선생이 없나, 조각분필 담아놓은 플라스틱 통으로 뒤통수를 쳐 깨뜨리는 선생이 없나, 여학생에게도 살벌한 체벌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선생도 기다란 나무 막대를 꼭 가지고 다니긴 했지만(그 학교 교사들 사이에선 일종의 패션이었을까?), 그건 어디까지나 칠판 가리키기 용이었을뿐 체벌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미친개, 똥싼바지, 변태, 복부인, 입걸레, 싸롱화, 손버릇 따위의 부정적인 별명이 대세인 학교에서 그 선생의 별명은 상당히 우호적이고 귀여운 구석마저 있는 '도날드덕'이 되었다. 단지 입술이 좀 투툼하고 튀어나왔다는 이유로. (조카가 대번에 지네 담임 별명 뭐였냐고 묻기에 안 가르쳐줬다. 저절로 알게 되면 모를까.. 30여년 전 별명으로 아직도 불리는 거 싫을지도 모르잖아;;) 애들이 막 장난치고 떠들어도 그냥 담임이 허허 웃는다는 조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별로 안 변하신 것 같기는 한데, 진실이야 알 수 없어도 어쨌든 다행이다 싶다.   

재단이 부유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거느리고 있는 그 사립학교는 원래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에선 언감생심 절대 배정되는 일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졸업하던 해 처음으로 우리 동네 아이들을 꽤 많이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몇몇 선생들이 가끔가다 한 마디씩 학생들 들으라고 가시돋친 소리를 해댔다. 출신학교 성분이 과거와 달라져서 학교 '질'이 떨어졌다나. 가뜩이나 산꼭대기에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학교에 정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건 되먹지 않은 일부 선생들 때문이었다. 인근 구와 달리 아무래도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OOO구' 출신 아이들이 많아져 자기네 '부수입'이 줄어드는 걸 안타까워했으리라는 건 나중에야 알 수 있었지만, 당시에도 선생들 가운데 누구누구가 돈봉투를 특히 밝히는지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들은 성적과 상관없이 같은 재단의 사립 국민학교 출신들을 드러나게 예뻐하는 분위기였다. 사립 국민학교 학비를 댈 정도면 퍽 부유한 집안이니 '당연히' 때마다 상당 금액의 촌지 봉투를 상납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고등학교까지 그 재단 학교로 진학하고 말았는데, 거긴 더 심했다. 그 학교 고3 담임을 연이어 3년만 하면 집 한채를 거뜬히 살 수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들으니, 사업가 아버지를 뒀던 친구 하나는 고3때 담임(나도 같은 반이었다 -_-;;)이 진학조언을 핑계로 한달에 한번씩 집으로 찾아와 '정기수금'을 했다고 고백하며 치를 떨었다. 내가 졸업 후 완전히 학교를 외면하고 살았던 것도, 교생실습을 모교로 정해 나가는 애들을 보며 '미친 거 아닌가' 생각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비록 그런 학교지만 더러 의롭고 '착한' 선생들이 없지는 않았다.(학교 축제 때 액자 값도 안 낸 나의 그림을 걸어준 미술반 선생도 그 가운데 한 분이다 ^^;) 주로 부임한지 얼마 안되는 풋풋한 신참 선생들이었다. 스승의날 두당 정해진 돈을 내서 담임에게 고가의 전기밥솥을 선물했는데(선물 품목도 학급 서기를 통해 넌지시 지시된 사항이었다) 색깔과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다시 바꾸러 다니게 만들었던 닳고 닳은 아줌마 선생이 있는가 하면(자기가 바꾸지! 지금 생각해도 화난다;), 꽃과 편지만 받고 선물은(스카프였던가 그랬다;;) 굳이 돌려주며 나무라던(너희들이 돈이 어디 있다고 이런 비싼 걸 사느냐고)  해맑은 풋내기 담임 선생도 있었다. 세속에 찌들지 않은 그런 선생들을 반기긴 했지만, 이미 시니컬해진 우리는 그들도 지금 젊어서 그렇지 몇년 더 지나면 탐욕스러운 다른 선생들이랑 똑같아질지 모른다고 씁쓸해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총각선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사춘기 여학생 특유의 무대포 감수성으로 짝사랑을 불태우는 아이들은 없었다. 의도적으로 성적을 올려보겠다고 선생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영악한 학생은 있었을망정.  

모교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어서 통 모르고 살다가, 악연 때문인지 학교와의 고리를 끊지 못해 지금까지도 끌려다니는 친구의 말을 듣자니 탐욕스럽기로 유명했던 선생들은 하던 가락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벌써 오래 전에 정년퇴직을 한 사람도 있고, 정년 이전에 관두고 음식점 같은 걸 차린 선생도 있는데 불쌍한 그 친구는 개업식에 화분을 보낸 것도 모자라서 간간이 그 집에서 모이는 퇴물 남녀 선생들 모임(역시나 유유상종이다)에 불려나가 음식값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30년전 제자를 여전히 봉으로나 여기는 선생들이라니 에잇! 전화번호를 확 바꾸고 다시는 이용당하지 말라는 나의 충고에, 친구는 하필 퇴물 선생 하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공교롭게 동네 마트에서 만났을 때 예의상 장본 비용을 한번 내줬더니만, 그 담에 만났을 땐 잘 나가는 제자(친구는 전업주부라고!!!) 덕을 수십년째 본다고 마트 점원에게 마구 자랑하면서 또 내달라는 식으로 뻔뻔함을 보이더란다. 아니 왜?!?! 게다가 만나는 동창들 있으면 다음번 모임에 어디 한번 데려와보라고도 하더라나. 정말로 애정을 쏟으며 사제지간을 다진 것도 아니고, 순전히 촌지로 얽힌 악연을 그들은 왜 계속 누리려고 하는지 원! 나는 거의 게거품을 물다시피 흥분하며 욕을 하다가, 앞으로 또 그런 속물퇴물들한테 연락오면 시댁이든 친정이든 우환이 생겨 지방에 내려갔다고 거짓말 하라고 시켰다. -_-"
 
교수에 대한 나의 인상이 나쁘듯, 안타깝게도 교사에 대한 나의 인상도 그리 좋지 않다. 간혹 정말로 아이들의 인성교육과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전해듣기는 하지만, 내가 겪어보고 주변에서 전해들은 교사의 모습은 교육자가 아니라 그냥 월급쟁이 조직원에 가깝다. 전반적인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 교사가 무능하다고 무시하고, 선생들은 선생들대로 학생들이 걸핏하면 교육위원회에 고발하겠다고 협박이나 한다며 교권이 땅에 떨어졌느니, 말세니 운운한다. 나도 한때 잠깐 교사가 천직이 아닐까 상상한 적이 있지만, 역시 그 길을 안 가길 잘했다 싶다.

내가 교생실습을 나갔던 모 중학교엔 마침 엄마와 이래저래 아는 분이 영어과 주임 선생님이었다. 교생실습을 하던 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던 건 아니라서, 실습 점수에 부당한 이득을 누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실습이 끝나고 나서 세상 참 좁다며 웃어 넘긴지 몇달 후, 나에겐 그분과 엄마를 통해 모종의 교직 협상안이 들어왔다. 교생실습을 나간 그 학교에 영어교사 충원 계획이 있는데, 이미 서로 안면도 있고 시범수업도 해보았고 하니 '천만원'의 기부금을 내면 나를 곧장 취직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형편에 상당히 큰 돈이었는데도 엄마는 그분의 설득에 약간 넘어가서 (빚을 내서라도 일단 취직을 하고 나면 평생 '우량 직업'이 생기는 거고, 그 정도 돈은 금세 만회할 수 있다고 했다나;) 아버지까지 포섭할 기세였다. 그러나 당시가 어느 때인가, '압제와 굴종'을 깨치고 나아가 투쟁해야 한다고 노상 나라와 대학가가 들썩이고 있었다. 불의와 타협하면 큰일나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말로만 듣던 교직비리라며 당장 고발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물론 엄마의 지인의 안위까지 걸린 사안이라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내가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한 뒤에도 엄마는 교직에 대한 미련을 오래도록 버리지 못했다. 졸업한 다음해였던가, 걸핏하면 철야에 야근에 시달리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엄마는 심지어 나와 상의도 하지 않고 덜컥 임용고사 시험에 접수를 해놓고 아무 준비도 없이 내게 "혹시 아니? 한번 시험이나 봐  봐라."고 종용했다. 서울/경기 지역에 영어교사를 세 명인가 뽑는 그 시험에 내가 합격할 리는 만무했지만 말이다. ^^; 암튼 그 이후 직장을 옮겨다니면서 간혹 나도 가지않은 길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교직비리에 응해 그때 천만원을 내고 영어교사 자리를 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하긴 했다. 설마 그 천만원을 단기간에 벌어들이느라고 부임 첫해부터 부잣집 애들 학부모 면담하며 노골적으로 촌지를 달라고 하진 않았겠지? 라고 킥킥거리면서.

살기 좋은 나라인지 아닌지 선진국인지 아닌지는 국민소득이 아니라 사회의 투명성과 아이들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우하는 시스템을 보면 된다고 했다. 겉으로는 학교 체벌도 사라지고 촌지도 불법이고 교직비리도 없는 사회가 된 것 같지만, 주변의 학부형들을 보면 알게 모르게 여전히 백화점 상품권을 스리살짝 담임교사에게 건네고 티 안나게 집으로 택배선물을 부친다. 작년 배추파동 때는 몇몇 엄마들이 아예 담임선생의 김장김치까지 책임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 자기 자식을 잘 보이기 위한 극성 엄마들의 몸부림 같아서 씁쓸하지만, 30년 전에도 촌지 수금하러 다녔던 선생이 존재했듯 지금도 여전히 백화점 상품권 수십장 들고 다니며 바리바리 쇼핑하는 '일부' 교사 목격담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더러 오가는 걸 보면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어디나 썩은 구석은 있다지만, 그런 몰상식한 교사들이 존재하는 한 학교 현장에서 피해를 보는 학생들이 존재하리라는 것은 뻔한 사실이고, 학부모 교육열은 어디에 내놔도 최고라는 이 나라 교육의 현실은 확실히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이제 궁금한 건 딱 하나다. 30년 넘게 한 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쳐온, 젊은 시절 청렴하고 곧아 보였던 조카네 담임 선생님의 현재 성품은 어떠할까. 사람은 좀체 안변한다는 게 진실이듯, 사람은 세월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는 사실도 진실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한낱 인간이 30년간 어떻게 안 변하겠나. 너덜너덜해져서 버릴까말까 하다가 못 버리고 그냥 서랍장에 들어있던 중학교 졸업앨범을 새삼 꺼내 '도날드 덕'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한번 확인하며 간절히 빌었다. 휙휙 갈겨쓰듯 칠판에 적어도 멋드러졌던 선생의 한문 필체가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듯이, 착했던 선생님의 인품은 안변했기를. 그리고 이젠 최고참 교사에 속할 그분의 조용조용한 카리스마로 촌지 밝히던 속물 선생들이 끼리끼리 목청 높이던 학교 분위기는 확 바꾸어 놓았기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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