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아직 안 가본 곳이 더 많기는 하지만 경주는 내가 제주도 다음으로 좋아하는 국내 여행지다. 제주나 경주나, 그저 눈길 닿는 곳이면 다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느낌이라 갈 때마다 그 감흥이 조금씩 달라지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달까.
고등학생 때 기차를 타고 처음 찾아가 불국사 근처의 형편없는 여관촌에서 먹고자며 둘러본 경주 수학여행은 '경주'보다 '수학여행'에 방점이 찍히는 기억으로 남았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따위의 기억은 죄다 그 앞에서 60명이 빨간 모자를 똑같이 쓰고 찍은 단체사진으로 남았을 뿐이었고, 천년 고도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서의 경주 느낌 보다는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 기관사 아저씨를 구워삶아 객차 불을 끄고는 선생들에게 밀가루와 생닭발을 던진 일, 여관방에서 단체로 몰래 술마시다 뛰쳐나가 주정 부린 친구때문에 모든 것이 발각돼 단체기합을 받던 일, 토함산 일출을 본다며 깜깜한 새벽에 몽둥이 든 양치기에게 몰린 양떼처럼 바삐 산길을 오르다 숨이 딸려 몰래 뒤쳐진 것 뿐인데, 뒤 따라 오는 남학교 학생들과 모종의 접선(?)을 시도하려는 몹쓸 문제아 취급을 받아 억울했던 일, 모든 반찬이 비리고 짜기만 해서 너무도 맛 없었던 여관 음식 때문에 단식투쟁(?)을 하며 초코파이로 버텼던 일... 등등 주로 사고 치고 즐거워 했던 수학여행의 추억이 강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사진으로 남은 추억뿐 ^^;;
불국사 앞이다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더라면 누구든 하나씩 갖고 있을 사진이 아닐까...
그 후 10년쯤 지나 가을 단풍이 예쁠 때 찾아간 경주는 정말 숨겨진 이야기 보따리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반겼고 똑같은 자리에서도 나는 전혀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운 좋게도 분황사 터에서 만난 어떤 대학원생 덕분이었다. 박사 논문을 준비중이라던 그는 안내문을 대충 읽고 종알종알 떠들면서 몰려다니는 우리에게 국사책에서 그림으로만 봤던 모전석탑을 제대로 보는 법을 설명해주었고 유적지 한 귀퉁이에 그냥 아무렇게나 놓여 굴러다니는 바위 하나도 예전엔 어느 돌부처의 몸뚱이나 어깨였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정말로 어느 마당 한 구석에 절반쯤 파묻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석상과 돌부처를 발견하는 재미를 알게 해주었다.
이번엔 1월이라 무료 문화재 설명 도우미도 없었고 운 좋게 신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지만 그냥 아는 만큼, 모르는 만큼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어설피 구경한 경주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50년만에 다시 경주를 찾은 엄마와 20년 만에 다시 경주에 간 막내, 15년 만인 올케, 10년이 조금 넘은 나, 그리고 난생 처음 경주에 가본 어린 조카의 느낌을 비교하는 묘미가 워낙 특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여행지에서 매번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 건 어쩌면 달라진 내 나이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달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공통점이라면 수학여행 이후 늘 그랬듯 이번 경주여행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주까지 처음부터 차로 여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학여행 때 말고는 계속 울산이나 부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서 거기서 렌터카로 경주까지 올라가는 경로를 택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대단히 먼 곳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내려가보니 중간에 휴게소에 두번 들러 점심까지 먹은 시간을 포함해도 총 5시간 밖에(!) 안 걸리는 거리였다. 그리고 과거엔 매번 해안도로를 따라 경주에 진입했기 때문에 몰랐는데^^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로 들어서면 톨게이트마저도 기와를 멋드러지게 얹어 아, 역시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물며 경주 시내 길거리의 주유소도 지붕엔 죄다 기와를 얹어놓아 양복에 갓 쓴 것마냥 어색한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그래도 검정색 기와와 날렵한 기와집을 원없이 볼 수 있는 건 좋았다.
첫날엔 워낙 추운 날씨라 돌아다니기 힘들 것 같아, 2시반쯤 콘도에 도착하자마자 짐풀고 곧장 아쿠아월드로 내려가 물놀이를 했으므로 사진은 한 장도 없다. ^^ 설악 워터피아에 비하면 규모가 절반도 안되는 크기이고 놀이시설 내 먹거리도 훨씬 부실했지만 한겨울에 온천여행 삼아 가족끼리 놀러온 사람들이 꽤 많았고 조카들도 울 엄마도, 본전 안 아깝게(!) 실컷 놀다가 늦은 저녁을 먹으러 숙소로 퇴청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나에겐 본디 여행이란 최대한 '편하고' 맛있게 즐겨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해서 숙소를 콘도로 잡았다고 해도 웬만하면 끼니는 밖에서 사먹는 걸 고집하는데 놀러가서 한 끼는 꼭 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어야 제맛이고 아침 정도는 간단히(?) 해먹자는 막내부부의 계획에 살짝 난감했지만 ^^;; 알뜰한 그들의 방식을 무조건 마다할 수도 없어 그러마고 동의를 했더랬다. 허나... 테* 그릴까지 싸가지고 간 동생 부부의 열성으로 삼겹살은 맛있게 구워먹을 수 있었으되 으으으... 코딱지만한 전기밥솥에 무식하게 많은 쌀을 앉힌(다음 날 아침에 먹을 밥까지 한꺼번에 해치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만;;;) 나의 실수로 밥은 완전히 설어 냄비에 다시 쏟아 밥을 짓느라 냄비를 새카맣게 태우고 3층밥을 해서 뒤집어 억지로 익히는 해프닝이 벌어지고야 말았으니... 어흑..
동생부부와 엄마는 탄내 별로 안나고 먹기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그 많은 밥을 다 망쳤다는 자괴감에 빠진 나는 일단 뱃속에 넣어 최대한 밥을 줄여보자는 작전으로 삽겹살을 배불리 먹은 뒤에도 술김에 집에서 먹는 양보다 두배나 많은 밥을 꾸역꾸역 먹은 뒤 술과 밥에 취해 그대로 뻗어버리고야 말았다. @.@
다음날 나는 물론이고, 역사상 최대 과음으로 우릴 모두 놀라게 했던 왕비마마, 복분자주+맥주에 취한 올케까지 세 여자는 모두 탱탱 부은 얼굴로 아침을 맞이하여 여전히 빌빌 거리고 있는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나신 왕비마마 曰, "다들 술 마셨는데 국물이 있어야 밥을 먹지 않겠니...." ㅠ.ㅠ 2박3일간 가사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었던 무수리는 어쩔 수 없이 슈퍼에 내려가 대파와 계란, 고춧가루, 소금, 3분 북어국을 사와 계란탕을 끓여 왕비마마께 바칠 수밖에 없었다.
째뜬 해장에 성공한 우리는 ^^ 드디어 경주 시내 관광에 나섰으니 첫 행선지는 안압지.
'안압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완전히 폐허가 된 그곳에 거러기와 오리가 날아들어 붙여진 후대의 이름이고, 원래 이름은 '임해전'이라는 별궁이 있던 터라는 뜻의 '임해전지'였다. 막내는 이곳에 조명시설을 잘 해놓아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며 혼자라도 찾아가 야경 사진을 찍어보려고 노렸으나 밤마다 음주를 하느라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내가 찍은 사진은 이렇게 참 민망하게 멋없다. 하늘로 뻗어오른 지붕 꼭대기 장식인 '치미'와 처마 끝에 장식한 도깨비 모양의 기와가 확실히 다른 시대 건축물과 다름을 느꼈는데 내가 찍은 사진엔 제대로 안보인다. 흑..
임해전지에 복원해 놓은 제일 큰 건물 지붕..
임해전지는 별궁을 세우고 못을 파 희귀한 동물과 식물을 길렀다는 곳인데 연못을 따라 한 바퀴 완전히 돌아볼 수 있도록 길이 닦여 있다. 유모차를 끌고 가기엔 좀 험란했지만, 신기하게도 뒤쪽엔 작은 대숲도 있었다.
남쪽이기 때문인지 경주에선 곳곳에서 흔히 이런 대나무를 볼 수 있다. 불국사 근처에도 수종 다양한 아름드리 나무 사이로 가느다란 대나무들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던데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알량하게나마 <와호장룡> 생각도 나고 해서 볼때마다 느낌이 색다르다. 7살난 준우는 저기서 '티라노사우루스'가 나올 것 같다며 앞에 서서 으르릉 공룡소리를 내는 바람에 또 한참을 웃었다. ^^
경주에 사는 사람들은 늘 보니까 아무런 감흥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갑자기 옆에 커다란 능의 봉분이 예고도 없이 솟아오르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도 신기하고 좋았다. 이번엔 다리 부실한 왕비마마 때문에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않아 시내를 구석구석 다니지 못해 그런 느낌을 많이 만끽하진 못했지만 천마총 근처 대릉원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능을 보니 감회가 새로워 카메라를 들이댔다.
이날 날씨가 참 좋았는데 햇살이 너무 찬란한 때문인지 역광이라 사진이 영 어둡다. ㅠ.ㅠ 역시 실력없는 찍사는 사진기 탓만 왕창...
다음 행선지는 대릉원에서 아주 가까운 첨성대. 고등학교 때 처음 첨성대를 보고도 "에게 이게 뭐야. 뭐가 이렇게 작아?"라고 구시렁거렸는데 어쩐 일인지 첨성대는 와서 볼 때마다 작아지는 느낌이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천문대"라는 안내판의 문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새로운 학설에 의하면 천문대 용도로 쓰인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며, 주술의식에 쓰였을 가능성도 제기됐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재미 있었던 건 첨성대를 본 준우왕자의 반응이었다. "엄마, 저게 뭐야? 찜질방이야?" 크하하하... 7살짜리로선 그럴듯한 추론이어서 우린 또 다 같이 까르륵 웃어댔다.
다음엔 또 어딜갈까 지도를 들고 고민하다 분황사로 가기로 결정. 오래 전 국사책에서나 보던 유적을 실제로 보는 느낌은 마치 TV로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맞닥뜨린 것처럼 신기하고 약간은 기대와 달라 실망스럽기도 하다. ^^;; 10여년전의 경주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황사 모전석탑은 이상스럽게도 이번에 보니 그저 그랬다. 아무래도 그때의 감동은 사자상이 있는 모퉁이에서 탑을 보지 말고 부처님이 모셔진 문 앞에서 탑을 보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구조를 설명해준 대학원생 덕분이었던 듯했다.
탑의 돌문 네 개 안에 모셔진 부처님은 한 군데밖에 남아있지 않고, 원래 몇층이었는지도 추정만 할 뿐이다. 무너진 탑안에서 나온 커다란 돌덩이들이 마당 한구석에 놓여만 있는데 기술이 없어 복원해볼 엄두도 못내고 있는듯하여 아쉬웠다.
또 하나 이상한 건 분황사 마당에서 정말로 땅속에 박혀 있는 여러 부처 석상들에 대한 설명을 들어본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인지 그새 어디론가 옮겨놓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나마 분황사 마당 구석에 남아있는 이 석상을 찾기는 했는데 내 기억과 달라 계속 갸우뚱...
분황사 모전석탑 뒤쪽의 작은 전각 문창살이 예뻐서 찍어보았다. 옛날 사람들은 작은 것 하나에도 어쩜 이리 정성을 들였는지 원... 다 낡아 부서질듯한 문고리도 내 눈엔 그저 정겹다.
불국사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제일 비싼 입장료 거금 4천원(그 이전까지의 유적지들은 대개 천원에서 1200원 사이^^)을 내고 불국사 경내에 들어가니 날씨가 많이 쌀쌀해져 가방에서 카메라 꺼내기도 귀찮아 막내가 삼발이 놓고 찍은 단체사진으로 만족할 태세였는데, 그래도 석가탑 다보탑은 찍어야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ㅋㅋ
조카에게 10원짜리를 꺼내 보여주며 비교해보라고 했더니만 몹시 신기해했다. 탑 중간에 놓인 사자상은 원래 4개였으나 아쉽게도 다 도둑맞고 한쪽에만 저렇게 놓여 있는데 10원짜리 도안에는 사자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쪽 면을 새긴 것이 틀림없다. -_-;;
다보탑과 마주보고 서 있는 석가탑은 당연히 역광이라 너무 어두워 실루엣만 나오는 바람에 몇번이나 다시 찍었어도 여전히 부실하다. 기념촬영하는 다른 사람들도 피할 길이 없었고..
그리고 여기는 불국사 내부의 주랑. 궁궐도 그렇고 대규모 사찰도 그렇고 이렇게 기둥을 가지런히 세우고 지붕을 얹은 주랑(회랑이라고도 한다)이 나는 공연히 참 좋다. 게다가 저렇게 가운데가 통통한 기둥들이 바로 배흘림 기둥이잖아!! ^^
어라.. 사진에서 보니 기둥 가운데가 덜 통통하닷..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넓은 경내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자꾸만 계단과 전각 기단 위로 올라가려는 어린 조카 때문에 시간이 늦어져 부랴부랴 바다를 보러 감포로 향했건만, 그리고 시간이 되면 수중능이라는 문무대왕릉을 찾아갈 작정이었으나 금세 해가 져버렸다.
감포항에서 유유히 날아다니는 갈매기 사이로 일손 바쁘게 출항을 준비하던 배들은 우리가 어영부영 항구에서 어정거리는 동안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고 최대한 바다를 가까이 가보려고 감포항 주변으로 차를 돌리니 저 멀리 바다엔 벌써 환한 유인등을 켠 배들이 줄지어 떠 있었다. 낮게 내려앉은 회색 하늘 아래 옥색 바다가 철썩이는 장엄한 모습이었는데 늘 그렇듯 '내'가 찍은 사진 속에 담긴 자연은 실제 모습을 한참 왜곡하여 슬프다.
감포항에서 가격대비 너무도 실망스러웠던 대게찜과 참돔회로 저녁을 먹은 우리는 둘쨋날을 마무리했다. 경주를 비롯해 경상도쪽으로 여행을 갈 때 늘 듣는 이야기가 '먹거리'에 별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기는 하지만 점심때 먹은 맷돌순두부도 그렇고, 이름은 '명성' 횟집이되 명성 날리기엔 애저녘에 글른 듯 불친절하고 곁다리 반찬 부실하고 마리당 거금 6만원이나 하는 대게도 별 맛이 없고 ㅠ.ㅠ 회 접시 자체도 어찌나 맛없게 잘라놓았는지 정말로 마음이 상했었다. 앞으로 누구든 경주 감포항에 가시려거든 절대로 '명성횟집'은 가지 마시길...
인터넷 검색으로 몇 군데 찾아보고 갔음에도 그 식당들은 찾을 길이 없어 그나마 그럴싸하게 생긴 집으로 고르고 골랐으나 아무리 경상도 음식이 형편없음 감안해도 완전 대실망을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회를 싫어하는 막내 때문에 분명히 '곁다리 반찬'이 많이 나오느냐고 미리 물었는데 당연히 그렇다고 해놓고선 달랑 네 개 나오는 석화 한 접시 더 달라고 했더니, 그건 더 안 준다고 한 마디로 자르질 않나 우리가 회 조금 시켰다고, 다른 테이블엔 서비스로 주는 '그 싼 오징어회'도 안 주질 않나 동해한 횟집 어딜 가도 당연히 곁다리 서비스로 나오는 해삼은 구경할 길도 없고 대게찜이 나오기에 잘라달라고 했더니 원래 손님들이 잘라먹는 거라면서 대단히 생색내며 가위질을 해주질 않나.... 그날 저녁엔 한동안 명성횟집 불매운동에라도 나설 마음이 들만큼 괘씸했다. 바로 옆에 있던 감포횟집을 갈까말까 고민하다 그집에 붙들린 것을 어찌나 후회했는지 지금도 버럭 열이 샘솟는다. @.@
마지막 날인 일요일 아침은 나의 소원대로 콘도 꼭대기층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부페를 먹었는데 '아메리칸 스타일'이라는 부페는 가격대비 괜찮더라는 '카더라' 통신의 정보를 믿었던 나의 기대를 여지 없이 부숴놓았기에, 앞으로 정말 다시는 경상도 쪽에서 먹거리에 기대를 하지 않기로 작심했다. ^^ 1인당 만2천씩이나 하는 대명콘도의 아침부페는 뜬금없이 단맛이 나는 수프, 제과점이 아닌 수퍼에서 파는 빵을 그것도 한 종류만 가져다 놓은 듯한 토스트빵, 여러 개씩 들러붙어 있는 베이컨, 밥과 미역국은 있으되 같이 먹을 반찬이 부실했기 때문에 몹시 감점! 째뜬 그래도 아침밥을 내 손으로 안 해먹은 것이 어디냐.. 하는 마음으로 배를 채운뒤 가뿐히 호숫가 산책에 나섰다.
햇살 찬란한 보문 호수
역시나 역광이라 반짝반짝 은비늘처럼 빛나는 수면의 느낌은 못담아왔지만 (반대방향으로 찍은 건 몹시 황량하게 나왔다 ㅠ.ㅠ) 그리고 귀차니즘의 발동으로 자전거로 호숫가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동생과 조카가 타는 4륜 오토바이를 구경하는 것으로 경주 여행은 마무리 되었어도 새삼 이렇게 사진을 정리하며 돌이켜보니 결론은 '그저 좋았더라'. ^^*
아참... 계속 실망스러웠던 경주의 먹거리 가운데 유일하게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경주빵! ^^ 경주시 황남동에서 수십년전에 유래하여 일명 '황남빵'이라고도 불리는 이 경주 토산품은 파는 곳마다 약간 맛이 다른데, 아마도 우리가 들러 사온 곳이 바로 황남동에 있는 원조격인듯 별로 달지 않고 꽤 맛있다. ㅎㅎ
한파가 몰아치는 이 엄동설한에 뜬금없이 여행을 간다. 따뜻한 남반구...로 가는 것이면 좋겠지만 ^^ 그것은 아니고 최소한 남쪽으로 향하긴 한다. 한가로이 떠나는 여행을 계획해보자는 막내동생네의 의견에 그러마고 대답한 게 꽤 됐는데, 그때 정해진 날짜가 하필 이번 주말이었고 공교롭게도 날씨가 협조를 안하는 것 뿐이다. 지난주말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기에 내게는 뜬금없는 여행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된 여행이기도 하다.
행선지는 경주. 온 가족이 까마득한 수학여행의 추억으로만 간직한 그곳에 나는 어른이 된 뒤에도 두어번 여행을 갔고 수학여행 때 놓쳤던 옛도시의 정취와 놀라운 볼거리에 늘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녀올 때마다 늘어지는 나의 경주 자랑에 부모님 역시 솔깃해 하셨고 고등학교 때 본 느낌과 얼마나 다른지, 불국사와 첨성대, 안압지, 석굴암, 남산의 일출 따위를 다 같이 한번 꼭 보고 오자고 우린 막연한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어딜 한 번 가려면 두 동생네가 마음쓰여 그냥 나가서 밥 한 번 먹는 자리에도 결국엔 꼭 죄다 불러들여 거국적인 대사로 만들고 마는 아버지에게 부디 경주 여행은 단출하게 엄마랑 꼭 셋이 떠나자고 해두었는데 그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벛꽃 만발한 봄과,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에 경주 모습이 제일이긴 하지만 눈이 쌓였을지 어쩔지는 모르겠으나 한겨울의 경주는 나 역시 처음이라 살짝 가슴이 설렌다. 운동부족에다 체중은 나날이 늘어나 걸음걸이마저 시원찮은 엄마 역시 짐스러울까봐 걱정을 하면서도 소풍 앞둔 아이처럼 퍽 기대하는 눈치다. 엄마랑 조카들이랑 같이 아버지 몫까지 최대한 실컷 보고 먹고 찍고 돌아올 생각이다.
음... 해서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블로그 개점휴업이라고 간단히 알리려던 것인데, 늘 나의 수다는 참 길기도 하다. -_-;;
자전거타고 싶다고 징징대는 나에게 상상으로라도 자전거 문답을 해보라고 지다님이 권하셨고 신이 나서 냉큼 바톤을 받았다. ㅎㅎ
자전거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건 꽤 됐다. 알량하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땐 옆을 슝슝 지나치는 인라인 스케이터들이 부러웠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장만하고나서 달리다 멈추는 문제 때문에 겁을 집어먹게 되면서는 안정감 있게 자전거 타는 이들이 부러웠으니까... 그리고는 벨로의 자전거 예찬과 미니벨로 소개 포스팅이 이어졌고 토룡왕국 식구들의 자전거 찬양 분위기에 휩쓸려 욕망은 더욱 커져갔다.
가파른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오래된 다가구주택에 살고 있는 데다 작업실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 몹시 위험천만하기 때문에 아직도 자전거를 장만하면 어떻게 이용하게 될 것인지 자신이 없지만 집앞에 난 홍제천변 산책로를 위로삼아 올 생일선물 목록 1위는 어쨌든 미니벨로다. ^^* 그러니 상상으로라도 자전거 문답을 해보는 것이 그리 '미친짓'만은 아니라 여기련다. ㅋㅋㅋ
1. 지금 갖고 있는 자전거는? 갖고 있는 자전거는 없다. -_-;; 물론 갖고 싶은 자전거는 무지무지 많다! ㅋㅋ 벨로의 포스팅으로 알게 된 브랜드들... 가운데 제일 탐나는 건 브롬톤! 돈과 상관없다면 브롬톤을 장만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 그나마 루이가노 가운데 저렴한 모델이나 브랑셰, 스트라이다 가운데 골라야하지 않을까 싶다. 꼭 브랜드를 정하지 않더라도, 만약 미니벨로를 사러간다면 나와 어울리는, 내가 타주길 바라는 자전거를 한눈에 딱~ 만날 것만 같다! ㅋㅋ
2. 지금까지 당신이 소유한 자전거 변천사 개인소유로 자전거를 가진 적은 한번도 없다. 늘 3남매 공동소유였는데.. 아주 어린 시절 생겼던 두칸짜리(동생 태울 수 있게) 세발자전거는 운전이 어려워서 내가 몹시 싫어했었다. 짧은 다리로 암만 낑낑대도 잘 안움직였던 듯... 네발 자전거도 누구에겐가 물려받아 탄 기억이 있지만,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지는 특성상 이게 무슨 네발 자전거인가,, 세발 자전거에 작은 바퀴 하나 더 달린거지.. 싶었다. ㅋㅋ 그러다 중3때인가 고1때 드디어 자전거를 장만하게 됐는데(이전까지는 다들 자전거포에서 빌려타는 게 대세였다), 나보다 엄청 크게 자란 동생놈들이 워낙 큰 자전거를 사는 바람에 숏다리인 나는 우리집 자전거보다 자전거포에서 내 키에 맞게 빌려타는 자전거가 더 편했다. ㅜ.ㅜ
3. 당신에게 있어 자전거의 의미는? 소유한 자전거에 대한 의미는 그때가 되봐야 알겠지만... 자전거를 처음 배우고나서 바람을 가르며 페달을 밟던 상쾌한 느낌을 선사했던 그 옛날 자전거의 의미는 내게 얼마간 '자유'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운동신경이 워낙 덜떨어져서 체육시간은 늘 고통의 시간이었고, 달리기는 늘 꼴찌였으며 몸을 써서 뭔가를 하는 일에 영 서툴렀는데, 내 몸의 연장선에 놓인 듯한 단순한 기계의 도움으로 난생처음 속도감이란 걸 느껴봤으니까... ^^
4. 자전거를 배우게 된 계기나 어떻게 배우게 되었는지? 워낙 옛날이라 내가 중학생일 무렵엔 개인소유의 자전거를 가진 사람은 지극히 드물었고 (있어봤자 슈퍼하는 부모님을 둔 친구가 아부지의 짐자전거를 몰고 다닌다거나 그랬다 ^^;;) 대부분 자전거를 타려면 동네에 두어군데씩 있는 자전거포에서 돈을 내고 자전거를 빌려 탔는데, 초등학교 다니던 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난리를 쳤다.
어린 동생들이 돈을 들고 나가 자전거를 빌려 타다가 혹시 차도에서 사고라도 날까봐 염려했던 엄마는 나에게 동생들을 보살피라고 명했고 착한 누나였던 나는 순전히 동생들 쫓아다니며 한동안 뒤치다꺼리에만 힘썼더랬다. 특히 막내동생이 자전거를 배우는 걸 돕느라 뒤에서 잡고 균형 잡아주고 일으켜 세우고 체인에 다리를 찢기고.. 그러는 과정에서 나도 한번 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쯤 아주 능숙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던 큰동생이 지가 가르쳐주겠다고 나섰다.
음... 그렇게 한두 시간씩 빌린 자전거로 연습을 하던 나는 자전거를 제대로 탈수 있게 되기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 그간 한살 어린 동생한테 받은 구박과 멸시와 조롱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속상해서 자전거 팽개치고 울며 집에 갈 때도 있었으니깐... 그치만 자전거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고 계속 밟아야 안 넘어지는데 넘어질까봐 자꾸만 페달에서 발이 떨어지는 딜레마를 극복하기까지가 너무 어려웠던 듯...
자전거 기술은 한번 배우면 안 잊는 거라니 정말 다행이다! ㅎㅎ
5. 지금 갖고 있는 자전거에 대해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이나? (만족하는 이유, 약간 불만족스러운 점 등도 말씀해주세요) 자전거가 없으니 이 질문은 패스~ ㅜ.ㅡ
6. 당신의 자전거를 20자 내외로 압축해서 설명한다면? 역시나 패스~~ 해야겠지만... 자전거를 장만한다면 역시나 나와 어울리는 분신 같은 걸로 갖게 되지 않을까? ^^*
7. 지금 갖고 있는 자전거 외에 하나를 더 마련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갖고 싶은 자전거는? 미니벨로가 하나 생긴다면 더 갖고 싶진 않을 것 같다. 은근히 내가 좀 욕심이 없다. ㅋㅋ
8. 자전거를 타고 특별히 더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다면? 고등학교 때 자전거를 제일 많이 탔는데, 친구들의 부추김으로 코스모스 핀 통일로를 꽤 멀리까지 달렸던 적이 있었다. 차도로 달리는 것이 약간 위험하긴 했지만 그땐 지금처럼 자동차도 많지 않았고 제일 체력 딸리는 나를 보호한다면서 친구들이 앞뒤에서 나를 에스코트해주었기 때문에 상당히 뿌듯했는데, 2시간도 넘게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통일로변의 작은 공원에서 과자와 음료수, 초콜릿, 과일을 먹으며 정말 너무너무 신이 났었다. 물론 집에 돌아와서 나는 며칠 몸살을 앓았지만, 그 다음 주말에도 또 그 친구들과 여의도 광장에 자전거를 타러 가는 극성을 피웠다.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한 자전거와 친구들의 추억이다.
9. 자전거를 타는 데 방해되는 요소들 최근에 자전거를 타본 건, 정민공주 자전거를 타거나 일산 호수공원에서 빌려 탄 것이 전부. 그때 방해되는 건 역시나 산책로에 우글우글 많은 사람들, 갑자기 뛰어드는 개들(나는 개가 무섭다!)이었지만, 만약 평소에도 자전거를 탄다면 차도를 달리는 자전거를 위협하는 자동차들의 경적소리(난 아마 자지러지게 놀라 넘어질 것 같다), 인도로 달릴 때 수시로 나타나는 턱, 불법주차 자동차들이 짜증스러울 듯. 10. 자전거 타고 가장 멀리 가 본 구간은? 고등학교 때 통일로변을 달린 것이 제일 먼 것도 같지만 (문산까지 간 건 아니었으니까..) 대학 졸업하고 회사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경주 놀러 가서 자전거 빌려가지고 한 나절 돌아다닐 때가 제일 오래 멀리 타고 다닌 게 아닐까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이후 거의 7, 8년만에 처음 타보는 자전거였는데 경주 시내의 자전거도로는 몹시 좋았지만, 그날밤 안장에 닿았던 부분과 장딴지, 허벅지가 너무도 아파서 다음날엔 다들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녀야 했고, 처음 자전거 관광을 우겨댄 친구를 계속 구박했다. ^^*
11. 자전거를 타면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 (위험했던 일이나..) 홍제천변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에도 동네엔 차로 한쪽 옆이 개천이었는데(그땐 복개공사 하기 전), 핸들 조작 잘못해서 개천에 빠질 뻔 했었다. 동생들이 뒤에서 잡아당겨 위기는 모면했지만 어찌나 무서웠는지 한 이틀은 자전거 타기를 포기했더랬음.
12. 자전거를 타고 간 곳 중 좋았던 곳을 소개한다면? (자전거 타기 좋은 곳) 경주 보문단지와 일산 호수공원 경주 보문단지는 차들도 별로 없고 한산해서 정말 신나게 달릴 수 있었고 가을 경치도 매우 아름다웠더랬다. 일산 호수공원은 7, 8년전에 거의 매주말마다 자전거타러 가기도 했는데 ^^;; 벨로처럼 나도 2인용 자전거 타는 게 소원이랬더니만, 일산 사는 후배가 주말마다 불러서 자전거 같이 타고 대형마트에서 먹을 거 사다가 오밤중엔 호수공원에서 술마시며 놀아댔다. 과음후 화장실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맨 후일담도 있어서 호수공원은 몹시 즐겁고 민망한 자전거 추억이 간직된 곳. ㅋㅋ
13. 자전거가 사람에게 있어 어떤 의미일까? 으음... 인간이 자연에게 가장 덜 미안해 하면서 이용할 수 있는 운송수단이 아닐까.
14. 자전거 탈 때 듣기 좋은 나만의 음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한 7~10곡 정도 나 역시 겁도 많고 완전히 자전거 베테랑은 아니기 때문에 (핸들 놓고 절대 못탄다!) 음악을 들으며 탄 적 없고, 앞으로도 안 들을 것 같다. 가끔 엄마랑 홍제천변 산책로 나가보면 음악 크게 들으며 자전거 타면서 주위사람의 외침 같은 거 못듣는 라이더들이 밉더라.
15. 이런 라이더 꼴불견이다. 나 역시 스피드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나 위협적으로 다른 사람들 무시하는 인간들 딱 질색이다.
16. 앞으로 자전거와 함께 꼭 해보고 싶은 것. 여행갈 때 자전거 차에 싣고 가서 새벽공기나 밤공기를 가르며 한적한 시골길이나 바닷가 달리기. 빌리는 자전거 말고, '예쁜 내 자전거'로! ^^;;
17. 자전거를 타면서 생긴 자전거 관련 소망이 있다면? 자전거 예찬론을 펼치시는 모든 블로거 이웃분들이랑 자전거 타고 만나서 떼를 지어 달려보기. ^^;; 그리고 나 역시 자전거를 마음편히 탈 수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일본이나 유럽만큼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 아.. 생각만 해도 행복~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