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가지에 다 적용되는 줄임말을 싫어하는 편이면서도 또 줏대없이 덩달아 따라쓰는 줄임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치맥'이다. 사실 치킨에 맥주의 궁합은 건강상 대단히 안 좋은 거라지만, 어차피 건강을 심히 챙기려면 아예 술을 마시질 말아야지! 바삭바삭한 프라이드 치킨이나 전기구이 통닭을 먹다보면 탄산음료보다는 역시 시원한 맥주가 제격.
치킨에 맥주를 즐겨온 역사를 따져보라고 한다면 정말 까마득하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언제부턴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엔 프라이드 치킨과 튀김엔 끄덕 없고 유난히 볶음밥만 소화를 못시키더니, 급기야 기름에 튀긴 모든 음식들이 확실히 부담스럽다. 뱃속에 넣은지 몇시간 지난 뒤에도 막 기름냄새가 계속 튀어올라오는 기분이 들고 위가 붓는 느낌까지 있다. 어흑, 내가 치킨에 맥주 마시는 걸 얼마나 좋아라 했는데!
그래서 자주 못먹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가끔 기회가 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까짓것 위 좀 혹사시키면 어때! 웩웩 게워내고도 또 술 퍼마시던 때에 비하면야 치맥 정도는 양반이다. 어차피 치킨에 탐닉하느라 배불러서 많이도 못 마시질 않는가. ㅎㅎ
홍대 레게치킨이 그리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통 가볼 기회가 없었다. 갈 때마다 자리가 없어! 젠장. 근데 꿩 대신 닭이라고 얼결에 들어간 치킨집이 완전 마음에 들었다. 워낙 치킨을 멀리하며 살다보니 내 입엔 그저 닭만 대충 튀겨놓아도 무조건 맛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으나 다른 일행도 맛있다고 칭찬했으니 객관적인 평가도 뒷받침된 감상이다. 게다가 생맥주에 무슨 짓을 한 건지 거품이 아주 쫀쫀한 느낌으로 괜찮았다. 맥주 자체가 진한 맛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물타서 싱거운 맥주는 아니라는 데서 점수를 얻었다. 이름하여 깐부치킨. 상상마당 건너편 주차장 길 모퉁이에 있다.
이젠 맥주 한 두잔에 알딸딸하는 형편없는 주량으로 전락했으면서도 성인이 된 이후로 음주를 즐긴 역사가 길기 때문인지 비가 온다거나, 금요일밤이 되면 이상스레 술이 마시고 싶어짐을 느낀다. 날씨 화창해진 요즘 금요일밤은 더더욱! 냉장고에 사다 넣어둔 캔맥주도 있지만 그건 또 일요일밤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한 캔씩 홀짝거리는 용도였다. 출근도 안하는 주제에 왜 일주일이 다 가고 월요일이 오는 게 서글픈지 원. 그러나 일요일밤을 헤롱헤롱 보내다 12시를 넘기면 월요일을 술기운에 시작하는 것 같아 그짓도 몇번 하다 관뒀다. 혼자 술마시는 게 알코올 중독의 시초라는데! ;-p
암튼... 지난주 금요일밤의 치맥이 못내 그리워 사진 쓰다듬다 마음을 달래려 시작한 포스팅이다.
이름이 [순살 치킨]이었을 거다
이건 [마늘 치킨]
식탐녀답게 휴대폰에 종종 먹거리 사진을 모아둔다. 물론 먹는 게 급해서 사진을 못찍을 때가 더 많지만, 사진으로도 갖고 싶은 음식이 꼭 있더라고... 그러다 가끔 배경화면으로 쓰기도 한다. ㅋ
메뉴판을 보고 별 생각 없이 시켰는데, 나중에 둘러보니 이 두 메뉴보다는 크리스피 치킨이 더 인기인 것 같다. 발라먹기 귀찮더라도 담엔 그걸 시켜먹어봐야지. 같이 튀겨 내온 감자튀김의 양이 좀 적긴 하지만 파삭파삭 맛있었다. 전기구이 통닭에 마늘소스를 얹어 준 것도 담백하니 맛났음. 생맥주는 3천원, 치킨 가격은 16000-17000원 전후. 가격은 다른 데와 비슷한데 양이 좀 적은 것도 같다. 이 정도면 보통인가? 나로선 엄청 배고플 때 들어가서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는지 진짜로 훌륭한 맛인지 한번 더 먹어보고 판단해줄 테다. 치맥 궁합은 역시 진리!
지난 금요일 상상마당에서 한 한음파 단독공연에 다녀왔다. 공연 보러가는 일이 거의 연중행사인 내가 한음파 공연을 보는 건 벌써 세번째. 처음 구경은 작년 여름 일산 호수공원에서 무슨 페스티벌을 할 때였고, 두번째는 언젠가 홍대앞 '빵'에서 Lowdown30이랑 합동공연을 했을 때고, 요번이 드디어 2집 발매기념 단독공연. 얼마전 EBS 공감 녹화때도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감중이라 고사했었다. 늘그막에 뜬금없이 이 무슨 팬질인가 싶은데, 사실 난 아직 한음파의 팬이라고 할 수 없다. 열혈팬의 '열심전도'에 부화뇌동하는 정도랄까? ^^;
한음파라는 밴드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가 공연을 따라다니게 된 건 순전히 이 밴드의 리드보컬(포스터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붉은 재킷 입은 분)에게 '마두금'을 배운다는 지인 덕분이다. 악보도 못 보는 주제에 악기 열망은 또 늘 품고 있는 사람이다보니, "마두금 한번 배워보실래요?"라는 떡밥에 돌연 솔깃했다. 일단 어떻게 생긴 악기인지 구경부터 하고, 또 캔맥주 마시며 사이비이건 아니건 작게나마 록 페스티벌 분위기를 느껴볼 욕심에 따라나선 것이 첫 만남. 몽고의 토속 악기라는 마두금은 꽤나 멋지게 생겼는데, 줄이 두개 뿐이라 얼핏 느끼기엔 해금의 확대판 같다. 톤은 다르지만 소리도 비슷한 듯하고... '마두금'이란 이름에서 짐작되듯, 갈기까지 달린 말 머리모양의 악기다. 허나 내가 배우고픈 악기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랑은 뭔가 안 어울리게 생겼어!
게다가 이 밴드의 음악도 내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느낌이었다. 내가 '일렉트로닉, 사이키델릭' 이런 걸 워낙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단 너무 어렵고 장중하고 암울하다고나 할까... 뭐 그런 묵직한 음악이 듣고 싶을 때도 있겠으나 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듯한 소통의 순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난 역시 과거지향적인 어쿠스틱 파. ㅋㅋ 따끈한 2집 신곡을 일부 들을 수 있었던 두번째 공연에서도 역시 같은 느낌. 연주도 잘하고 사운드도 빵빵한데 CD를 선뜻 사고싶진 않았다. 그런데 또 EBS 공감에 나온 걸 보니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어라 꽤 좋은 곡도 있었네.
해서 요번 단독공연은 한음파를 계속 주시할까 말까를 결판짓는(?) 나름의 잣대로 삼을 작정이었다. 2집에 실린 곡들은 많이 발랄, 경쾌해졌고 대중성도 좀 겨냥한 것 같다고 지인은 부추겼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게스트로 나온다는 블랙백과 국카스텐의 라이브가 궁금한 마음이 더 컸다. ;-p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확실히 예전보다 경쾌해진 곡들이 있기는 했으나, 밴드의 연륜(?) 때문인지 파릇파릇 블랙백이나 국카스텐의 음악과 비교하면 역시 대체로 묵직 웅장. (보컬 본인은 '어둡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나는 보컬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편인데 창법이랑 목소리도 내 취향엔 별로. 발음 꼬아부르는 거 싫엇! 2부 게스트로 나온 국카스텐이 노래 흉내내는 데 빵 터졌다. 맞다 맞다, 나는 가사전달 정확한 발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컨디션도 별로 안 좋은데 스탠딩 공연을 보려니 힘들어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바닥에 앉기도 하고 벽을 차지하고 기대도 보았으나 공연 후반부, 나는 결국 의자 하나 없는 공연장 맨 뒤 깃발 디딤돌 같은 곳에 걸터 앉아야 했다. 에구구. 게다가 공연장 에어컨이 어찌나 빵빵한지 손이 시렵다 못해 지릿지릿 저려왔다. 편하게 공연 보겠다고 가방이랑 재킷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들어왔는데, 에어컨을 그렇게 세게 틀 줄이야. ㅠ.ㅠ 덜덜 떨리고 허리 아파서 공연이고 나발이고 어서 끝났으면 하고 바랐던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행운권 추첨이 시작됐다. 내가 예매할 때만 해도 겨우 40번째라 공연장 완전 썰렁하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했었는데, 공연장은 얼추 꽉 찼고 어쨌거나 최측근 팬들과 초대권으로 온 사람들과 별도로 매긴 듯한 예매 관객 행운권 순번 가운데 내가 70번이었다. 행운권 추첨 같은 거엔 워낙 운이 없는 걸 알면서도, 다섯 명 중 한 사람은 기타를 준다니 혹시 내가 타게되면 열심히 기타를 배워야지! 턱도 없는 꿈을 잠시 꾸었다. 그런데 맙소사, 세번째로 싸인 CD를 받는 사람에 70번을 부르는 게 아닌가! ㅋㅋㅋ 맨 뒤에 앉아 있다가 얼결에 홍해를 가르는 모세처럼 사람들을 헤치고 맨 앞으로 나아가 CD를 받아들곤 민망하여 얼른 다시 맨 뒤로 도망쳤다.
행운권 추첨에 고무된 나는 결국 2집 CD를 사서 공연후 사인회를 하는 멤버들에게 사인도 받았다. 글씨 잘 쓰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대체 선망 없는 분야가 뭐냐!)도 있는데, 우와 두어분은 글씨체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사인이야 뭐 뮤지션이니까 늘상 연습해서 멋지게 만들었겠지만 글씨를 잘 쓰는 건 타고나야 하는 것. 게다가 허클베리핀에서 십여년간 드럼을 치다 한음파로 합류했다는 드러머의 미모(?)와 말간 피부가 코앞에서 보니 단연 빛이 났다. ㅋㅋ 공연 볼 때 옆에서 교수님, 교수님! 외치며 미친듯이 열광하는 아가들이 있더니만, 드러머가 그 교수님이라는 듯(포스터 사진 제일 왼쪽;;).
나랑은 좀 안맞는 밴드라고 생각하면서도 공짜 CD 한장에 사인회 줄서기까지 하다니, 참 부화뇌동의 진수를 보여주는 게 아닐지. 째뜬 자꾸 들으면 좋아지려나 더 들어보긴 해야겠다. ㅋㅋ
왼쪽이 행운권 추첨으로 받은 EP <잔몽>
오른쪽이 새로 나온 2집 <Kiss from the Mystic>.
팬도 아니면서 이런 인증샷까지 찍어올리다니 이 무슨 짓인가 싶으면서도, 일단 이런 인디 밴드들은 좀 더 널리 알려 혹시 모를 팬 확보에 도움을 주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랑은 안맞아도 누구에겐가는 잘 맞는 음악일 수도 있으니까. ^^;
더불어 마두금도 소개. 이웃들 가운데 마두금에 관심 있는 분들도 문의 환영. ㅋㅋㅋ
열광하는 밴드든 아니든, 저질체력으로 서서 구경하기가 힘들었든 말든, 어쨌거나 한참 뒤에도 귀가 찡찡 울리는 라이브 공연을 보았던 건 좋았고, 맛있는 치맥 뒤풀이는 더 좋았다! ㅎ
에디스 B는 수제햄버거가 주력상품이고 제니스 브레드엔 아예 햄버거가 없으며 서로 메뉴도 많이 달라 단순비교에 무리가 있으나, 어쨌거나 내 마음대로 식탐분류에는 같은 범주에 속하므로 최근 두군데 다 다녀온 김에 재미삼아 한번 비교해봤다. 내 마음 같아선 두집 다 버글버글 눈코뜰새없이 장사가 잘 되면 좋겠는데 (나한테 아무런 콩고물도 떨어지지 않는데 왜 이런 바람을 품는지? ㅋㅋ) 두집 모두 갈 때마다 그리 손님이 많지 않은 게 좀 안타깝다. ^^; 물론 운좋게도 손님 많은 시간을 내가 잘 피해다녔을 수도 있겠지만...
우선 홍대 제니스 브레드. 위치는 홍대 정문에서 산울림소극장쪽으로 150미터쯤? 내려와 뉴스 미술학원(길 건너엔 에이랜드가 있다)을 지나 바로 나오는 골목으로 꺾어져 10미터쯤 올라가면 주택가 건물 1층에 위치한 제니스 브레드가 보인다. 주택가 골목에 있으므로 주차장 따위 갖추어져 있을 리 없으니 근처 골목에 재주껏 세우거나 주차장길에 세우고 걸어가거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
마음에 쏙 드는 소박한 제니스 브레드의 외관
나 해야한다. 나는 제니스 카페가 둘로 나뉘기 이전, 홍대앞 큰길에 있을 때부터 좋아했던 나름 오랜 팬이라고 자처하고 싶다.
주차장길 고엔(내가 교자 덮밥으로 칭송해마지 않던;;) 건너편에 있는 파스타집 제니스 카페에도 가보았으나, 양은 적은데다 심히 짜고(!) 느끼해진 듯한 파스타류는 내 입에 별로 맞지 않았다. 다만 그곳의 빵을 전부 여기서 구워 가져간다는 것 같다.
갈 때마다 너무도 당연하게 샌드위치만 시켜먹어서 다른 메뉴가 거의 기억나질 않지만, 샐러드와 피자의 종류도 다양하다. 발사믹 식초에 버무린 버섯 샐러드 무척 좋아하는데, 평일엔 7시까지밖에 영업을 하지 않아(주말엔 10시까지 하는 듯;) 최근엔 계속 낮에 가서 런치스페셜만 먹어대느라 샐러드 먹어본지가 꽤 됐다. 샐러드 가격은 9500-13500원 사이. 피자는 종류별로 2만원 안팎이고, 각종 샌드위치는 12000원 안팎이다(가격 생각 안나서 홈페이지 가 확인했다 ㅋㅋ 자세한 메뉴는 여기). 그러나 11시 30분부터 4시까지 제공되는 런치스페셜엔 오늘의 수프 + 샌드위치 + 음료가 샌드위치 가격에 제공된다. 예를 들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운 가지와 루꼴라, 말린 토마토가 들어가는 멜라자네 가격이 12000원인데, 4시까지는 수프와 멜라자네, 커피까지 12000원에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멜라자네
오늘의 수프와 커피
느끼한 것에 강한 나는 가끔 각종 치즈가 들어간 포르마지오 샌드위치를 시켜먹기도 하는데, 언젠가 같이 간 친구는 1/4쪽만 먹고도 막 느끼해 죽으려고 했었다. ㅋㅋ 멜라자네를 제일 자주 시켜먹지만 구운 버섯이 들어간 풍기 샌드위치도 맛있다. 꽤 큰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네조각으로 잘라주므로 일행들과 종류별로 시켜서 나눠먹으면 냠냠쩝쩝 아주 흡족하게 먹을 수 있다.
포르마지오 샌드위치
샌드위치도 맛있지만 나는 제니스의 저 웨지감자가 너무도 좋다! 오븐에 구워 바삭하면서도 포실포실한 감자, 좋아좋아... (이 사진은 좀 흐리게 찍혀 감자가 덜 맛나보인다. 쩝..)
오늘의 수프는 갈때마다 달라지는데 저날은 토마토 수프였다. 혹시나 내가 싫어하는 당근 수프가 나오면 어쩌나 염려하며 시켜도 아직은 한번도 안걸렸다. 양파 수프, 버섯 수프 다 맛있다. 진한 커피도 일품인데, 큰길가에 있을 때는 꽤 큰 와인셀러가 가게 입구에 서있고 밤에 치즈에 와인을 마시러 오는 손님들도 꽤 많은 것으로 보아 괜찮은 와인도 파는 것 같다. 물론 촌스럽게도 적포도주를 마시면 머리가 아픈 지병을 갖춘 나는 마셔보지 못했다. ㅠ.ㅠ
원조 제니스 카페가 제니스 브레드와 제니스 카페로 양분되면서 달라진 점은 제니스 브레드에서 구운 신선한 빵을 판다는 점이다. 주변에 산다면 며칠에 한번씩 바게트 빵이나 치아바타를 사다가 살짝 데워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막상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먹고나면 따로 빵을 사가지고 나오게 되질 않는다. 다만 초콜릿 스콘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좀 늦게 가면
다 떨어져버려 스콘을 구경도 할 수가 없고, 많이 사고 싶어도 몇 개 안남아 많이 살 수 없는 날이 많다. 이날도 딱 세 개 남아 있어서 내가 얼른 떨이로 사가지고 돌아왔다. 초콜릿 칩과 호두가 우적우적 씹히는 스콘은 커피랑 마시면 정말 황홀하게 맛나다. ^^; 보기에도 실해보이는 저 초콜릿 스콘은 작은 게 2천원, 큰게 3천원.
직접 만든 트라미수 케이크도 맛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아직 못 먹어보았다. 욕심내서 시킨 후 다 먹고나면 워낙 배가 불러서리...
제니스 브레드는 홍대 근방에 대한 나의 편애 때문에 프리미엄이 붙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딱 내가 좋아하는 담백하고 정겹고 한결같은 맛이 느껴져 좋다. 친구들 셋이 의기투합해 시작했다는 창업 스토리도 그렇고, 한 사람은 열심히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한 사람은 주방과 홀을 오가며 서빙하는 조용하고 아담한 분위기도 내겐 아주 편하다. 혼자 가서도 서슴없이 시켜먹을 수 있는 환경이랄까. 다만 평일 7시 영업종료와 초콜릿 스콘 사기 힘든 점은 퍽 불만이다. ;-p
다음은 광화문 에디스 B. 광화문이라고 우겼지만 위치는 안국동과 광화문의 중간쯤이 아닐까나.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군 위안부할머니들의 시위가 벌어지는 일본대사관 바로 옆이고, 누군가의 스캔들의 장소로 한때 뉴스에 오르내린 서머셋팰리스와 마주보고 있으며 옛날 한국일보 자리에 생겨난 트윈트리타워 A동 지하1층에 있다. 건물이 크니 무료주차도 2시간 가능하고, 근방 다른 대형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주말에는 5천원으로 종일주차가 가능하다고 들었다.
주차장 반대편 큰길쪽에서 들어가는 입구
eddy's B는 최근 메뉴가 꽤 많이 바뀌었다. 빵 종류 고르랴, 패티 종류 고르랴 처음부터 난감해하던 손님들을 감안한 때문인지 이제 빵은 고르지 않아도 된다. 샌드위치와 버거의 종류만 정하면 되고, 대신 단품과 세트 메뉴로 나뉘었다. 세트메뉴엔 탄산음료와 감자튀김이나 샐러드가 포함되는 식이다.
뿐만 아니라 한종류 뿐이던 쇠고기, 치킨, 해산물 버거가 죄다 두종류씩 늘어났다. 요즘 대세인 매운맛을 하나씩 늘린 듯... 바뀐 메뉴 가운데 나는 크리스피 치킨만 먹어봤으나 지난번 치킨 버거보다 확실히 맛있어졌더라. 칠리 쇠고기 버거를 먹어본 막내올케도 맛있다고 했음. 하기야 뭐 맛을 개선하느라 메뉴개편을 했겠지 굳이 개악했을 리 없잖아! ㅋ 어린이 메뉴와 파스타도 새로이 생겨났다. 사실 초록색 이파리가 하나라도 들어가면 절대 입에 대려하지 않는 어린이 지우는 워낙 햄버거를 싫어하여 지난번에 갔을 때 주스와 감자튀김만 먹고 왔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 입맛이 그러하므로 어린이 메뉴를 몇 종류나 개발한 모양이었다. 두세가지 이상이던데 자세히 안봐서 모르겠고 요번에 지우는 돈까스와 스파게티 세트를 시켰으나 사진을 안찍어왔으니 패스~. -_-; 궁금하면 직접 가보시든가.. ㅋㅋ
크리스피 치킨버거의 위용
치즈 맛이 진한 마카로니 치즈
매콤한 칠리소스 닭다리 튀김을 넣은 크리스피 치킨버거는 세트가 8400원, 그러고 보니 지난번 싱글, 더블 어쩌고 하는 구분도 사라졌군. 리가토니 면(파스타 이름 맞는지 불확실^^;) 몇 개와 마카로니가 함께 진한 치즈를 뒤집어쓰고 있는 마카로니 치즈는 만원(토마토 스파게티는 9500원)이다. 버거나 샌드위치 세트에서 탄산음료 대신 커피로 시켜도 되는지 그걸 모르겠다. 하기야 뭐 몇백원 더 내면 불가능하지야 않겠지. 다만 궁금한 것은 제니스 브레드처럼 같은 세트 가격에 커피를 주느냐인데... +_+ 그건 나중에 직접 주문해보고 댓글로 추가하겠음. ㅋ 커피맛은 지난번 ThinkCoffee에 대한 불만을 폭로하며 언급한 대로 괜찮은데다 양도 많아 나로선 아주 뿌듯하다. 제니스 브레드의 커피는 맛있는데 양이 적어서 샌드위치 먹다보면 나중엔 좀 모자란단 말이지...
메뉴가 대거 바뀌면서 저렴한 오늘의 수프는 사라졌다. 그냥 버섯수프와 클램차우더를 취향껏 7천원 안팎으로 시켜먹을 수 있다. 헌데 초창기에 두어번 먹어보고 반했던 '크리미 머쉬룸 수프'는 맛과 때깔이 달라져 좀 불만스럽다. 개업직후 막 메뉴를 개발하고 있던 과정에서 모양새와 레시피가 조금씩 달라졌으리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버섯 수프를 버섯 수프라고 부를 수 없는 맛은 좀... 아니지 않나? 쳇! 지난번엔 햄버거집에서 수프가 제일 맛있으면 문제 아닌가 했었으니, 제법 마이너한 메뉴인 수프로 딴죽 걸기가 좀 미안하지만 비판적 지지입장으로 한마디 하고 넘어가야겠다.
최근 색과 맛이 연해진 버섯 수프
초창기 버섯 수프
조명이 달라 외양의 절대적 차이를 논하기 좀 뭣하지만, 그래도 두 가지 사진이 똑같은 '크리미 머쉬룸 수프'를 찍은 거라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진 순서가 뒤바뀌었는데 오른쪽이 내가 반했던(그나마 이것도 초창기 시식단과 함께 가서 먹었을 때 길게 마늘빵이 얹혀 있던 날보다는 맛이 연했고 위에 굴러다니는 올리브오일이 좀 과했다) 버섯향 풍부한 수프였고, 왼쪽은 너무도 실망하여 '우유죽' 아닌가 의아했던 맛의 버섯 수프 사진이다. 장금이는 아니지만 식탐녀로서 맛을 규명해보자면 초기에는 고가의 표고버섯을 많이 넣었다가 나중엔 저렴한 양송이나 새송이 버섯으로 대체했을지 모른다는 것이 나의 결론. 하지만 그래도 버섯 수프에선 버섯 맛이 나야지 들척지근 크림 맛만 나면 어쩌란 말인가! 이날 이후 놀란 나는 두번 다시 에디스비에서 수프를 시켜먹지 않았다. +_+
통째로 나온 훈제치킨 샌드위치를 반으로 자른 뒤 아차차 하며 찍었다
쓴소리 미안해서 맛있어보이는 샌드위치 사진 또 하나. ㅋㅋㅋ
치아바타 훈제치킨 샌드위치를 세트로 시키면 이제 10500원. 버거류는 세트메뉴 없을 때보다 좀 가격이 오른 듯 하고 샌드위치류는 오히려 좀 내린 것 같다. 맞다! 트리오 버거라고 해서 각기 다른 맛의 미니 버거가 세 종류나 나오면서 9천원대인 신메뉴가 있었는데, 위장 작은 녀성동지 둘이 가서 시켜 나눠먹으면 딱이겠더라. 먹느라 바빠 그것도 사진을 못찍어와 아쉽;; 생각해보니 에디스 B는 메뉴와 가격 확인해볼 정식 홈페이지도 없다. 아직 그거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나보다;; ㅋ
샌드위치와 버거는 이제 질려서 한동안 안먹겠다고 다짐한지가 언제였더라? 암튼 요즘은 다시 종류별로 제니스와 에디스의 메뉴를 골라먹어보고 싶어지는 탐식기간이다. 아니,집중적인 탄수화물 탐식기간인가? -_-; 어제 밤참으로는 새벽2시에 팔아프게 달걀 거품내서 무려 '핫케이크'를 구워먹었다. 켁...
처음 두해 정도만 열심히 구경다녔지 몇년째 방구석에서 벼르기만 하다가 놓쳤으나, 이번엔 28일부터 거리 도서전을 하는 걸로 착각하고서 비오는 날씨를 미리 걱정하는 심리적 부지런을 좀 떨었더니 (원래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둘쨋날에 성공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거리도서전 책구경도 구경이지만 제니스 브레드 샌드위치와 초콜릿 스콘이 근래 부쩍 간절히 땡겼기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
어쨌든 일요일 늦은 점심을 아주 뿌듯하게 먹어치우고 나서 거리 도서전을 하는 주차장길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조짐이 예사롭질 않았다. 죠스 떡볶이랑 무슨 핫도그집, 그 옆 분식집들 앞에 각기 줄이 10미터도 넘게 서 있고 그 인파의 대부분이 아이들을 동반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더니 드디어 전시부스의 하얀 뾰족천막이 눈에 들어왔는데... 헐... 양쪽 골목이 모두 빽빽한 인간의 물결이었다. 문학동네가 맨 처음 부스였던 것 같은데 사람의 장막에 둘러싸여 책 진열대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 +_+ 된장, 된장... 첫날인 토요일에 올 걸 그랬다고 속으로 자책했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 (특히 원고에 매진하지 않고 놀러나왔다고 타박할 수 있는 '갑' 입장의 거래처 담당자들 -_-;) 처음엔 슬쩍슬쩍 피해다녔는데 좀 지나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을 듯했다. 그 많은 인파 중에서 과연 누가 날 알아보겠어! 게다가 아동서를 함께 내는 대다수 출판부스엔 아예 진입이 불가능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책 좀 찾아보고 싶었는데 두어번 배회하고도 끝내 인파를 못 뚫고 들어간 부스가 몇개나 됐다. 현암사, 문학동네, 시공사... 또 어디더라.
원래 따끈따끈한 신간을 30% 할인받아야 뿌듯한 건데 하도 도떼기 시장이라 신구간을 따져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으면 훑어보는 거고 아님 그냥 기웃거리다 마는 거고... 따끈한 신간 코너엔 특히 사람이 많아! 루나파크의 런던 에세이도 책 있으면 일단 구경이나 해보려 했는데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쳇
게다가 일요일이라 가족단위의 내방객이 많을 것을 예상했는지 부스마다 유독 아동서가 많아보였다. 어우... 정신없어. 아무리 일년에 한번이라지만 휴일에 불려나와 엄청난 인파에 시달리면서도 친절히 인사를 건네고 있는 출판사 직원들도 측은하고, 엄마 손에 이끌려나와 얼른 책을 고르라고 강요 당하고 있는 몇몇 아이들도 안쓰럽고, 꽤 오래도록 부스 안에 진입 못해서 빙글빙글 주변만 맴도는 나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ㅋㅋ
그렇다고 포기하고 돌아갈 순 없는 일! 그나마 사람들이 덜한 끄트머리 팝업북 코너에서 이책저책 열어보다가 (수입책이라 그런지 내가 온라인서점에서 사는 값이랑 할인가가 별 차이 없어 굳이 살 이유가 없었다) 점찍어둔 몇몇 출판사 부스에 재진입을 시도했다. 두세번 가보고도 인간의 벽을 뚫지 못한 데도 있으나, 결국엔 마음산책, 문학과지성사 구간 부스에서 책을 고를 수 있었다.
오래된 문지 시선은 단돈 2천원에, 소설은 3천원에 살 수 있는데 황순원의 저 <별>은 무려 '천원'이라고 했다. 집에 황순원 소설선이 있는 걸 알기에 같은 책 아닌가 하면서도 3천원인데 뭘, 이러면서 골랐더니만 '천원'이래고 집에 있는 책은 <카인의 후예>더라. 그야말로 오늘의 득템!
아쉬운 건 30% 할인중이던 기형도 전집도 살 생각이었는데 2천원짜리 구간시집 남은 게 얼마 없어서 고르다보니 그새 까먹는 바람에 빠뜨렸다는 것. ㅠ.ㅠ.
표정훈과 페터 회는 오래 전부터 읽을까말까 하는 책이었기에, 그리고 문지 부스에서 이리저리 밀리며 시집을 고르느라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 원래 목표인 5권을 채워야한다는 일념으로 대충 고흐 책까지 집어 계산해달라고 했다. 다섯권 목표였는데 일곱권을 샀으니 대단히 훌륭하게 지름신을 막았다고 할 수 있다.
마침 막내동생네가 놀러온다는 바람에 애들 책을 사느라 체력과 쇼핑욕이 급격히 떨어진 덕분이기도 하다. 어딘지 출판사 이름도 까먹었고 책도 벌써 조카들이 가져가버려서 여기 자랑할 수도 없는데, 애들 책 사니깐 예쁜 연필세트도 선물로 주더라! 다만... 자녀가 몇분이냐고 물어서 잠시 머쓱. 넷이라고 하려다가, 민망하여 둘이라고 대답했는데 연필 선물로 주려고 그러는 줄 알았으면 그냥 넷이라고 할 걸 그랬다. ㅋㅋ 조카들 책까지 치면 목표량의 두배인 셈이지만 할인받은 가격을 생각하면 입이 저절로 귀에...
똑같은 지름신을 영접하더라도 책을 사는 건 소비욕에 대한 자책감이 훨씬 덜하므로, 아마 동생네가 저녁먹으러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일단 커피숍으로 후퇴해서 카페인으로 심신을 가다듬은 다음 한번 더 공격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한편 아쉽다. 그러나 올해는 일단 방구들을 박차고 나갔다는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최승자 시집 말고는 그냥 순전히 제목으로 고른 시집이긴 해도, 가을에 시집을 사본지가 과연 얼마만인가 싶은 것이 아주 감개무량하다.
쓸까말까 망설였다. 원래 내가 적극적으로 맛집 소개하는 블로거도 아닌데, 과연 여기다 광고한다고 효과가 있을까? 괜히 이웃들에게 욕이나 먹는 건 아닐까?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내 팔이 심히 안으로 굽는다는 것. 학연, 지연 따위에 절절 매는 사람들 함부로 욕할 게 아니란 걸 요번에 깨달았다. ^^; (어차피 홍보 효과여부도 알 수 없는데 뭐 어때! 라고 애써 자위 중) 양심에 크게 찔리는 짓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공개한다. 어차피 홍보성 글이므로 탐탁지 않으신 분들은 이쯤에서 읽기를 관두시라고 나머지는 접어둔다.
몇달전 동생이 뜬금없이 요즘 좀 뜬다싶은 동네마다 유행처럼 생겨나는 수제 햄버거집 이야기를 꺼냈다. '7성급'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권의 수제 햄버거라면 사람들이 반길 것 같느냐고. (나야 수제 햄버거와 샌드위치를 가끔 그리워하며 먹으러 다니는 사람이지만, 내 주변엔 그 돈 주고 절대 먹기 불편한 햄버거 안 사먹겠다는 이들이 팔할 이상인데!) 게다가 에드워드 권이라니. (나 그 사람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못 미덥고 싫던데!) 동생이 마당발인 건지, 에드워드 권이 마당발인 건지... 어이하다 두 사람이 지인 사이가 됐을꼬... -_-; 암튼 내 한번 먹어보고 판단해주마.
우려와 기대가 뒤섞인 주변의 시선 속에 길고 지루한 장마로 인테리어 작업이 늦어진 데다 셰프의 해외출장이 겹치는 바람에 드디어 지난 3일 에드워드 권이 새로 여는 브랜드 <eddy's B>가 오픈했다. 위치는 서울 안국동 옛날 한국일보 빌딩 자리에 새로이 들어선 트윈트리타워 A동 지하1층. 나는 개업을 하고도 며칠 뒤인 일요일, 엄마를 비롯한 가족 시식단(?)을 이끌고 다녀왔다.
지하주차장에서 A동 건물로 들어가 좁다란 지하1층 로비로 들어서면 <에디스 B>로 들어가는 유리문이 보이고 이런 기다란 징검다리길을 건너면 드디어 입구가 나타난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 1층 로비에서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도 되지만 그러면 지하를 좀 가로지르는 느낌. 차라리 A동과 B동 사이로 난 테라스 입구 계단--Think Coffee 바로 옆--으로 내려와 건물 안쪽의 유선형 계단을 내려가면 곧장 이 입구와 연결된다. 경복궁 쪽에서 걸어오는 경우 건물 끝에 지하 테라스로 이어지는 별도의 나무 계단이 있다.) 지하라고 해서 염려했더니만 건물구조상 자연채광이 좋아서 다행히 지하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틀을 칠한 저 오른쪽 공간 안쪽이 음식점이다.
에디는 당연히 에드워드 권의 애칭이고 B는 Better than anything 또는 Bakery & Burger & Bread를 의미한단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메뉴판. 버거로 할지 샌드위치로 할지 우선 빵을 먼저 고르고(1000-2000원), 안에 넣을 패티의 종류를 고른 뒤 계산을 하면 진동벨을 준다. 메뉴별로 다 어떤 맛일지도 모르고 무얼 먹을 것인지 고민하느라 처음엔 당황했다. =_=
버거는 싱글을 두개 시키는 것보다 더블을 시키는 편이 훨씬 싸다. 싱글 버거를 주문하면 뭔가 특별한 게 더 들어간다나 뭐라나... 우리는 워낙 식구가 많아서 죄다 더블버거로 시켰다. 더블버거로 시켜도 패티 종류를 따로하면 되니 상관없음. 버거류엔 케이준 감자튀김이, 샌드위치류엔 샐러드가 소량 딸려나온다. 여러 종류의 햄버거 번과 치아바타, 포카치아는 파티셰가 매일 아침 직접 굽는단다. 빵은 따로 판매도 하고, 모든 메뉴 당연히 포장 가능.
포카치아+포크 슈니첼 샌드위치
레드와인번+비프패티/크랩패티 더블버거
점심때쯤 갔으므로 나의 첫 끼니였던 터라 배가 고파서 사진도 찍기 전에 얼른 먹으려고 막 자르다 보니 아차차 싶었다. 다시 붙여놓고 후딱 찍었더니 사진이 죄다 엉망이다. ㅎㅎ 접시마다 보이는 분홍색 먹거리의 정체는 양배추 피클이다.
저것 말고도 포카치아 훈제치킨 샌드위치와 에디스 B 샐러드도 시켰으나 사진은 못 찍었다. 사실 조카들이 하도 떠들어대고 맛본답시고 막 나눠먹느라 제대로 맛을 봤는지 어쩐지도 모르겠다. -_-;
원래도 나는 버거보다는 포카치아나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홍대앞 수제버거류의 양대산맥(내 맘대로;;)이라 할 수 있는 <감싸롱>과 <제니스 브레드> 중에서 나는 <제니스 브레드>를 훨씬 더 높이 평가한다. 도대체 왜 그리도 사람들이 즐기는지 나로선 알 수 없는 크라제 버거(가격대비 진짜 별로다. 차라리 버거왕 와퍼를 먹지!)보다는 감싸롱 버거가 훨씬 더 흡족하지만, 주인이 매장에서 직접 만든 치아바타와 포카치아를 살짝 다시 오븐에 굽고 버섯이나 치즈, 구운 가지와 말린 토마토를 넣은 제니스 브레드의 따끈한 샌드위치는 크헉.. 가끔 먹으면 정말 감동이다(다만 좀 느끼할 수 있다 ^^).
해서 여기도 파티셰가 직접 여러가지 빵을 아침마다 구워 따로 팔기도 한다기에 부디 제니스 브레드의 빵맛과 비슷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었다. 바삭하면서 촉촉한 포카치아 빵은 괜찮은 듯했고 조금씩 맛을 본 메뉴 중 사진 왼쪽의 포카치아 슈니첼(슈니첼이 뭔고하니 납작하게 편 돼지고기를 튀긴 거다. 독일식 돈까스라고 보면 된다고;)이 제일 맛있다는 평을 들은 것 같다. 저렇게 시키면 샌드위치 값만 11900원, 탄산음료(1600원)나 커피(아마도 2500원?)을 더하면 한끼니 값으로 만만치 않은 가격이랄 수 있지만, 양 적은 사람은 둘이 나눠먹을 수 있을듯. (위대한 나도 혼자선 저걸 다 못먹었다. 꽤 배고팠었는데;;)
오른쪽 더블버거는 빵값도 절약되고 해서 저렇게 2인분에 11000원 정도. 비프패티(4800원)과 치킨패티(4300원)를 선택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비프와 크랩(5200원)을 선택하면 빵값까지 12000원이 되는 식. 이 정도 가격에 에드워드 권 셰프의 버거를 먹는 건 정말 훈늉(!)한 거라고 동생은 거듭 역설하시었다. ㅋㅋ 버거 패티엔 비프, 치킨, 크랩 세 종류가 있고, 치킨이 제일 저렴하다. (메뉴사진 참조 ^^)
탄산음료를 즐기지 않는 나는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모든 음료는 카운터 옆에서 컵을 주며 직접 따라마시라고 하는데 커피의 경우는 에프스레소 머신을 작동해야 하므로 매니저이신 듯한 분이 만들어주셨다. 탄산음료(1600원)도 저렴하지만 특히 커피는 싸면서도 맛있다는 주최측의 자랑을 익히 들었으나, 얼음을 너무 많이 넣어주는 바람에 싱거워서 커피 맛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담엔 내가 얼음량을 적당히 조절해서 마셔보거나 뜨겁게 마셔보고 제대로 판단해주겠어!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 포스팅이라고 해도 거짓말은 못한다규~!)
사진은 없지만 막내동생이 먹은 포카치아 훈제치킨 샌드위치 역시 빵값과 내용물을 합하면 11000원. 오히려 샐러드류는 저렴한 것 같다. 우묵한 그릇도 멋지고 맛도 괜찮았는데 역시나 사진은 없다. (블로그에 홍보해주겠다는 마음이 있기는 했던 거냐? -_-;) 수프도 맛있는데 왜 안시켰느냐고 주최측의 퉁박을 들었으니 담엔 잊지말고 수프 맛도 봐야지.
전체적으로 공간이 아주 길쭉하기만 해서 어떻게 보면 기차 식당칸 같은 느낌이라 개성 있고 독특한 분위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좀 답답하고 불편하다는 의견도 나올만 하다. 에드워드 권이 콕 찝어서 고른 장소라는데 내가 이제와서 왈가왈부 토다는 것도 웃기지만 뭐 그렇다는 얘기다.
사진으로 보아 알 수 있듯 반달처럼 굽은 길쭉한 공간에 한쪽에만 테이블이 있다. 모두 해봐야 테이블이 8개쯤?
5명 이상 가면 테이블을 붙여 앉기도 어려울 정도로 폭이 좁다. 나눠 앉는 수밖에 없을듯.
한쪽 벽을 차지한 일러스트와 캐리커쳐는 홍대 미대생작품이라고 들었다. 합리적인 가격의 베이커리형 캐주얼 레스토랑(? 헐.. 다 외래어닷)이 모토래고,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아직 휴일 없이 매일 영업중. ^^; (그러고 보니 아직 문연지 일주일밖에 안됐다 ㅎ)
애당초 나는 '7성급'이라는 말부터 마뜩찮았던 사람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가 레시피를 개발하고 만든 요리라고 다 맛있을 거란 기대는 없었으며, 어디 얼마나 맛있는지 보자는 태도로 갔었기 때문에 당최 객관적이고 엄중한 평가를 내릴 수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평을 내린다면 가격대비 괜찮은 편이랄까? 크라제 버거는 내가 워낙 별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댈 것도 아니고, 바로 옆건물인 서머셋 팰리스의 <리틀 제이콥스> 샌드위치나 서울파이낸스센터의 <W버거>보다는 맛있다고(나 이래뵈도 한때 맛집 찾아다니는 열혈식탐녀였단 말쌈이쥐~) 우기는 바이지만 어차피 맛이라는 게 개인차가 있으니 내 취향을 강권할 순 없다. ^^;
하지만 가끔가다 내가 버거왕표 와퍼나 제니스 브레드 샌드위치를 그리워하듯 햄버거나 샌드위치가 땡길 때 사람들이 이곳을 생각하고 찾을 수 있는 '광화문 맛집' 또는 '안국동 맛집' 반열에 오르기를 진심으로 빌고 있다. 비록 나한테 떨어지는 콩고물은 전혀 없더라도 말이다! (어쩌다 소개받은 식당 하나 소개하면서도 이렇게 민망한데, 일부 파워블로거들은 어떻게 몇억씩 챙기며 홍보글을 썼을까? 역시 돈의 힘인가? 문득 궁금하다 ㅋ)
[#M_두번째 맛보기|접기|민망한 이 글을 보고서도 흔쾌히 시식단(응?) 모집에 응해준 이웃들과 채 일주일도 되기 전에 한번 더 다녀왔다. 역시나 조카들과 갔을 때보다는 맛을 좀 더 잘 음미할 수 있었던 듯. 이번에도 버거와 샌드위치를 같이 시켜보았는데, 내 아무리 치아바타와 포카치아 빵을 좋아한다해도 eddy's B의 주력상품은 수제'햄버거'라는 걸 깨달았다. 치아바타 훈제치킨 샌드위치와 비프 버거를 동시에 먹어보니 햄버거에서 더 오묘하게 깊은 감칠맛을 느낄 수 있었음. 뭐 그렇다고 샌드위치가 맛없다는 건 아니고! ㅋㅋ
오늘의 최고 감동 메뉴는 '크리미 머쉬룸 수프'였는데 아뿔싸... 순식간에 흡입해 먹느라고 또 사진을 못찍었다. ㅠ.ㅠ 오늘의 수프가 하필 '캐럿 수프'라기에 우웩 나 당근 싫엇! >,.< 그러면서 버섯 수프를 시켜보았는데, 우와... 외형(아마도 버터와 마늘소스를 발라 구운 듯한 기다란 바게트 빵 한 조각이 수프 그릇에 가로질러 놓여 있다; 사진이 없으니 설명으로라도 =_=)이며 맛이며 고급 코스요리에 나오는 훌륭한 수프로도 손색없었다! (사실 나는 두번째로 먹어보고서야 비로소 에드워드 권의 맛을 인정했다는;; ㅋ)
지난번엔 햄버거 패티가 잘 안보이게 위에서 대충 찍었다고 불만이 접수되어 요번에 가면 잘 찍어보겠노라 생각은 했었으나, 또 다시 암 생각 없이 먹느라 그만... (제대로 된 햄버거 사진을 보고 싶으시면 여기를 클릭해보시길)
대신에 싱글버거에 추가되는 특별한 '무언가'가 뭔지 알아냈다. ^^; 청보리차 버거번(1100원)에 비프패티를 주문하자, '크리스피 베이컨'과 '프라이드 에그' 중 하나를 골라 넣을 수 있다고 했다. 과연 맛의 차이가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나라도 바삭한 베이컨을 고르겠다.
그나마 촬영에 성공한 사진은 샐러드와 디저트.
근데 미안하게도 내가 주문한 게 아니라서 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다. '라코타 치즈를 넣은 토마토 샐러드'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싱싱하고 다양한 채소의 색깔도 예쁘고 올리브오일을 베이스로 한 듯한 드레싱이 싱그럽고 독특한 맛이었다. 그치만 나는 지난번에 먹은 '에디스비 샐러드'의 손을 들어주고 싶음. ^^;
새하얀 배의 선체를 닮은 큼지막한 샐러드 그릇은 암튼 마음에 든다.
커피와 함께 맛보리라 결심했던 디저트 주문에도 성공했다.
저 하얀 크림 아래 과일조림 같은 것이 깔려 있는데 심하게 달지 않고도 위에 뿌린 견과류와 적절하게 어울리는 맛이었다. 페이스트리를 구워 올리는 디저트라기에 대체 뭔가 궁금했었는데... 위에 꽂힌 게 바로 겹겹이 반죽의 결대로 쪼개지는 파이였다. 한 사람당 버거를 다 먹고 수프에다 샐러드에다 꾸역꾸역 다 먹어댔으니 비록 배는 터질 지경이었지만 흡족.
맞다. 커피 맛은...
엄청 감동스럽달 순 없고 ^^ 그럭저럭 괜찮다 정도라고 하겠음. 아니, 가격 대비 훌륭하다고 해야하나? ㅋ
이왕 광고한 거 좀 더 뻔뻔해지자면
트윈트리타워에 아직 사무실 입주가 끝나지 않아 당분간은 주차장 이용이 매우 편리할 듯하고, 카운터에서 무료주차권도 지급하므로 근처를 지나다 부담없이 들러봐도 좋겠다. (이젠 아주 창피함도 모르고 홍보에 열을;;)
그리고 오늘의 불만 한 가지. 음식점 공간이 정말로 긴데 점심시간이라 손님이 많아 네명이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맨 안쪽에 자리를 붙여 앉았더니 음식 주문하고 받으러 가고 음료수 리필하러 다니고 하는 동선이 어찌나 긴지 진이 다 빠졌다. +_+ 나 같은 게으름뱅이들은 필히 중간쯤에 앉아야할 듯. ;-p
그러고 보니 8월이다. 8월 첫 포스팅으로 친구 뒤에서 흉이나 보는 듯한 얘기를 끼적인 게 찔려서 밀어내기 포스팅 하나 더.
홍대앞엘 가면 술집은 지천이어도 적당히 끼니를 때우려 들면 막상 갈 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내가 파스타에 탐닉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가정식 백반이나 다름없는 파스타를 대단한 고급 요리인 것처럼 만얼마씩 주고 사먹는 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일부러 마음 먹고 나가 호사 떠는 외식이 아니라면 한끼니 밥값은 만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서민인 나의 지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대 앞에서 딱 맞는 밥집이 바로 <고엔>이 아닐지. 위치는 상상마당 건너 주차장길에서 조 샌드위치 골목으로 들어가, 405 키친 앞 골목으로 좌회전, 감싸롱 지나 제니스 카페 맞은편 쯤에 있다. 노상 지나다녀도 먹을 기회가 없었는데 먹으려고 드니 같은 날 1시간 30분 간격으로 두번을 먹었다. ㅋㅋ 그러고선 따라하기 좋아하는 성격을 발휘하여 따라 만들어 보았다.
교자 전문이라 각종 교자(새우, 타코, 마늘, 카레 등등)를 골라 세트 메뉴로 먹을 수 있다. 두번째 갔을 땐 연두부 샐러드도 추가로 시켰는데 그것도 맛있었으나 수다떠느라 사진은 못찍었다. 아래는 처음 단체로 가서 시켰을 때 찍은 사진.
이렇게 주고 7-8천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원래는 일식집 특유의 1인용 나무쟁반에 세팅되어 나오는데 이날은 우리가 워낙 인원이 많아 접시가 따로따로 나왔다. 알록달록 접시 색깔도 예뻐서 식욕을 돋운다.
두번째 갔을 땐 타코 교자를 먹었는데 무식하게도 나는 멕시코 타코를 연상하며 매운 맛일 거라 기대했더니 ^^;
타코야끼처럼 문어가 들었다는 뜻이었다. ㅋㅋㅋ 내가 먹어보고 문어인줄 알아차릴 정도였으니 내용이 실하다는 의미다. 두번 먹어보니 만들기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건강식이라 엄니한테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숙주랑 돼지고기 사다가 시도해봤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후리가께를 빼먹었지 뭔가! 어차피 만두는 옵션이라 생각해서 새송이 버섯을 소금구이해 얹어 구색을 갖추었으나, 역시나 후리가께 없인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굴소스로 맛을 낸다고는 했으나 숙주도 너무 숨이 팍 죽었고. 딸의 막요리에 그리 점수가 후하지 않은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 다만 좀 싱겁다고 한 마디. -_-;
하지만 꽤나 간편한 일품요리(만드는데 총 20-30분이면 충분한 것 같다)면서 영양면에서도 균형잡힌 메뉴라는 생각에 지난번 장 볼때 잊지 않도록 목록 적을 때 후리가께를 아주 크게 써가지고 갔다. 문제는 어떤 맛을 사야할지 내가 모른다는 것. ㅋㅋ 그래서 제일 무난한 김맛으로 골랐다. 가쓰오부시나 연어맛은 혹시 입에 안맞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드디어 일요일 별식으로 두번째로 시도했다.
이번엔 군만두까지 완비했다. 역시나 후리가께가 이 요리의 완성이었던 듯 때깔이 많이 비슷해졌고 맛도 얼추 비슷하다고 주장하련다. ㅋㅋ 대체 이 요리의 이름이 무어냐는 엄마의 물음에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돼지고기 숙주 덮밥>이라 대답했다. +_+ 사진을 찍고보니 외모지상주의자스럽게 알록달록한 예쁜 접시를 사고파졌다. ㅎ
1. 돼지고기를 허브솔트 약간, 소금, 후추, 다진마늘, 참기름에 재놓는다.
2. 돼지고기를 우묵한 팬에 들기름 약간 두르고 볶다가 굴소스도 반 숟가락 정도 넣는다.
3. 고기가 다 익을 무렵 씻어 건진 숙주를 넣고 숙주쪽에만 소금, 들기름 약간 더 넣어 금세 볶아낸다.
4. 옆 불 프라이팬에서 동시에 기름에 지진 군만두와 함께 접시에 담아 낸 뒤 후리가께를 적당히 뿌린다.
(다음엔 미소시루도 준비해볼까나... 그냥 된장 엷게 풀어 끓이면 그게 더 맛있다 뭐!)
* 혹시 공연 보러가실 분들은 나름 주최측이 신경을 쓴 듯한 공연 형식에 관하여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합니다. ^^;
다녀온 지 며칠 지났다고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려 하므로 다 사라지기 전에 몇 자 적어두어야겠다. 순전히 연말 집계용으로라도. ㅋㅋ
난생 처음 가본 브로콜리 너마저 공연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괜찮다'라고 하겠다. 라이브로 듣는 덕원의 노래가 워낙 안습이라는 언질을 하도 들어 기대치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겠으나, 어쨌든 6월 8일부터 시작된 정기공연의 무대가 매번 그들에겐 연습이자 라이브였을 터이므로 공연 초반 몇번의 불안한 음이탈을 제외하곤 대체로 노래가 안정된 느낌이었다. (지산을 비롯해 다른 무대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는 일행들의 증언도 "덕원 노래솜씨 많이 늘었다"는데 모아졌다^^)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내가 보기엔 다른 세션도 없이 겨우 네명--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이 그런 꽉찬 연주와 노래를 동시에 해낸다는 게 신기할 정도. 멤버들의 생김새도 소박한 노래와 이름이랑 딱 맞는 맑은 느낌이었다. 좀 더 화려하거나 느끼한 생김새를 지닌 사람들이었다면 나로선 뭔가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공연 예습하느라 CD들으며 마음에 든다고 손꼽은 노래들이 역시 공연에서도 좋았지만, CD로 들을 땐 별로라고 생각했다가 새로이 '발견'한 노래들도 두어 개 있었다. <울지마>, <마음의 문제> 같은 곡들. 2집 들을 때 첫곡인 <열두시반>부터 주르륵 네번째 <커뮤니케이션의 이해>까지 다 좋아라 듣다가, <울지마>, <마음의 문제>, <이젠 안녕> 세 곡은 괜히 마음에 안들어서 그냥 통째로 건너뛰고 들을 때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안 그럴 거다. 마이크와 음향 탓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CD로 들을 때보다 덕원의 목소리가 더 굵고 힘 있게 들렸고, 일부러 미성을 내려고 애쓰는 듯한 기미도 사라져 좋았다. 2집 노래를 중심으로 CD순서와는 반대로 <다섯시 반>으로 시작해 2부에선 좀 신나는 노래로 쾅쾅 달리다 <열두시 반>으로 끝낸 것도 나름 이야기의 흐름처럼 느껴졌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얘기로 괜히 썰렁하게 시간 때우는 것보다 노래 한 곡이라도 더 부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중간에 넷이 줄지어 자리잡고 앉았을 땐 내심 불만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멘트는 적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더 길었으면 화났을 듯;;
초반에 이번 공연엔 앵콜 없다고 잘라 말하고 나서 정말로 <열두시 반> 노래 끝내고 나서는 인사도 없이 악기 두고 나가버렸을 땐 좀 황당했다. 것도 본인의 고집이려니 하면서 나는 앵콜을 외치지도 않았고, 사람들 빠져나가기를 기다려 느릿느릿 거의 맨 끝에 공연장을 나왔는데 깜찍하게도 앵콜 공연을 상상마당 입구에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하필 우리 바로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에서 자꾸만 알람을 시끄럽게 울려대는 바람에 짜증지수가 치솟기는 했지만, 우리가 원했던 <꾸꾸꾸>랑 <보편적인 노래>를 그 난리통에 들을 수 있어서 '원 풀었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만 들었지 실제론 처음 들어가본 상상마당 지하 공연장의 음향과 냉방수준도 괜찮은 편이라, 가격대비(평일 공연 25000원) 공연 만족도를 따진다면 꽤나 흡족했다. 무대가 워낙 높아서 맨 뒤쪽에 있던 단신의 나도 이리저리 사람들 머리 사이로 움직여 다니며 구경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스탠딩 공연이라해도 나 같은 노구를 위하여 맨 뒤쪽에 의자 몇개라도 놔주지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는 했다. 간만에 한시간 반 이상 서서 공연을 보려니 힘들어서 원!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도 중간 이후부터는 다리와 허리가 아파 슬그머니 혼자 벽에 가 기대 있었는데 바닥뿐만 아니라 나무 벽으로도 쿵쿵 전해지는 음향과 리듬이 느껴져 이것도 괜찮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공연 후기를 두 마디로 줄인다면, '괜찮다~'와 역시 스탠딩공연은 '힘들어'인가? ㅎㅎ 가만 뒀으면 공연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을 터인데 옆구리 찔러 가자고 해주신 지다니께 몹시 감사. 그나저나 브로콜리 너마저도 참여한다는 서울대 <본부스탁> 공연은 성황리에 잘 끝났을까 궁금타.
밤참 먹은 김에 키드님의 홍대 설경 사진을 보고 나서 포스팅해야지 생각했던 조폭 떡볶이 이야기나 해야겠다.
홍대앞에 자주 다니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홍대앞 주차장 거리의 명물 포장마차 조폭 떡볶이가 글쎄 점포를 냈다고 했다. 원래 있던 자리에도 포장마차는 그대로 운영을 하고 있지만 그 옆쪽으로 번듯하게 테이블을 갖춘 점포를 냈으며 상호도 <조폭 떡볶이>로 간판까지 내걸었다고 했다. 드럼통 몇 개 엎어놓은 손바닥 만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만날 줄을 서서 먹을 만큼 장사 잘 되던 가게가 번듯하게 점포를 넓히면 희안하게 맛도 달라지고 서비스도 달라져 결국엔 망하고 마는 이상한 경우를 익히 보아왔던 나는 더럭 걱정이 앞섰다. 일단 포장마차와 점포 두 곳으로 나뉘면 당장 떡볶이 맛부터 달라질 게 아니겠나 말이다!
내가 처음 조폭 떡볶이 포장마차의 존재를 알개 된 것은 무려 15년전이다. 홍대 클럽이 지금처럼 정신 사나워지기 훨씬 이전에 얼떨결에 단체로 춤바람이 들어 일주일에 두번씩은 꼬박 <황금투구> <명월관> <발전소> <조커 레드> <흐지부지> 따위의 클럽에 놀러 다녔던 시절, 신나게 춤을 추고 나온 뒤의 출출한 뱃속을 채우기엔 딱이었던 그곳을 소개한 후배는 당연히 그 유명한 전설을 내게 들려주었다. 무뚝뚝한 얼굴로 주문을 해도 듣는둥 마는둥 대답도 잘 안하고는 기막히게 손님들이 주문한 메뉴를 턱턱 내주는 주인 아저씨가 전직 조폭인데 마음 잡고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터라 가끔 깍두기 아저씨들도 찾아와 말없이 오뎅과 순대를 먹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잘 살피면 얼굴 어딘가에 사연 깊어 보이는 흉터도 있다는 전설이었다.
몇년 계속 들락거리며 들으니 그건 그야말로 전설일 뿐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하도 무뚝뚝해서 그런 헛소문이 돌았다는 카더라 통신도 함께 떠돌았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건 밤마다 일대 포장마차는 하나같이 파리를 날려도 그 포장마차는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조폭 떡볶이>가 그 무시무시한 전설과 함께 그토록 오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맛이었다. 그 집 떡볶이는 내 머릿속에 <이상>으로 자리잡은 떡볶이의 맛에 가장 부합하는 맛이다. 특별히 잡다한 양념 맛 없이 그저 고추장과 물엿으로 맛을 낸 듯한 담백하고 쫄깃한 맛이랄까. 순대와 튀김, 김밥, 오뎅까지 다른 메뉴도 골고루 먹어봤지만 일단 언제나 손님이 많아서 회전율이 높으니 모든 메뉴가 다 신선할 수밖에 없고, 특히 떡볶이는 그 주변 포장마차 떡볶이를 거의 다 먹어봤어도 비슷한 맛조차 내지 못할 만큼 맛이 있었다. 문득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일만큼, 자주는 못가더라도 나 혼자 단골이라 여기던 포장마차였기에 점포확장을 빌미로 행여 맛이 변할까봐 염려스러웠던 거다.
다행히 친구 말로는 맛이 변한 것 같지는 않더라고 했는데,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는 법이어서 마침 죄다 떡볶이 애호가들이 모인 지난주에 칼바람과 빙판길을 무릅쓰고 새로 열었다는 주차장길의 조폭 떡볶이 점포를 찾았다.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풍선기둥엔 상호와 함께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피식 웃음부터 나왔는데, 과연 조폭 주인아저씨가 점포의 주방을 직접 맡을 것인가 과거처럼 포차에 올라 앉아 있을 것인가 염려했던 내 걱정은 점포 외부에 설치된 높은 주방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본 순간 누그러졌다. 가게가 생기긴 했지만,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주방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되는 대로 자리를 잡고 먹는 셀프 시스템이었다. 가게 인테리어는 <조폭 떡볶이>라는 상호와 부조화를 이룰 만큼 뜻밖에도 대단히 여성스러운(?) 느낌에 아늑하고 깔끔하고 고급스러워보일 정도였다. 그뿐인가, 가게 안에 마련된 남녀 분리된 화장실까지 깨끗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제일 중요한 떡볶이 맛은 옛날 맛 그대로였다. 초저녁에 떡볶이를 처음 만들고 있는데 혹시라도 그냥 빨리 먹고 싶어 재촉을 하면, 아저씨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끝까지 양념을 다 졸여 맛이 밴 다음에 퍼주던 바로 그맛. ^^;
신촌에도 포장마차가 꽤 많지만 거긴 떡볶이를 만드는 네모난 판이 하나밖에 없어서 떡볶이가 거의 떨어져 갈 때면 거기다 다시 물을 붓고 흰떡을 넣고 다시 양념을 해 한쪽에서 조리를 하기 때문에 영 재수가 없으면 고추장 물에 빠진 맛대가리 없는 떡볶이를 억지로 먹어야 할 때도 있지만, 최소한 조폭 떡볶이집에선 그런 되다만 떡볶이는 팔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최고 인기 품목인 떡볶이가 다 팔려나가기 전에 언제나 옆에서 새로운 떡볶이를 한 판 미리 준비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래서 그토록 오래 한 자리를 지키며 명성을 쌓았겠지만...
이번에 연 가게엔 조폭 떡볶이의 역사가 무려 20년이며, 조폭 소문에 대해서도 정말로 무뚝뚝한 말투 때문에 받은 오해였다는 해명 내용의 벽걸이가 걸려 있었다. 소화 안된다고 다들 툴툴거렸던 게 무색할 만큼 떡볶이와 순대 오뎅 튀김을 후딱 먹어치우며 생각해보니, 지난 여름에 그 옛날의 춤바람 파트너와 만난 김에 부러 포장마차엘 갔던 게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로는 홍대쪽에 갈 일이 있어도 배가 너무 불러 떡볶이엔 생각도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반년간이나 내가 거들떠보지 않았는데도 그간 꾸준히 바글바글 손님이 몰리고 돈을 많이 벌어 번듯한 가게까지 낸 조폭 떡볶이 아저씨들은 어쩐지 점포확장 했다고 맛과 서비스가 달라져 결국 망하고 마는 이상한 음식점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 같다. 15년 전엔 주인 아저씨 혼자였던 것 같은데 몇년 지나며 일손을 돕는 아저씨들이 하나둘 늘어갔고 이젠 테이블을 닦아주는 아르바이트생 같은 예쁜 언니에다 설거지용 주방에서 빈 그릇을 닦는 아줌마들까지 갖추었지만, 떡볶이 값은 몇년째 15년 전보다 겨우 500원 오른 2500원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떡볶이 맛이 변함없으니 하는 말이다.
춤바람은 사라진지 오래여도 홍대앞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동네지만, 15년전의 추억대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곳은 조폭떡볶이가 유일한 것 같다. 역시나 춤바람 일행들이 오래도록 열광했던 버섯칼국수집도 자리를 옮기고는 옛날의 영화를 잃고 말았다. 확실히 칼국수며 김치 맛도 그 옛날의 맛이 아니라 나부터 가고싶지 않아졌으니, 조폭떡볶이마저 맛이 변한다면 무척 허무할 거다. 조폭떡볶이 아저씨들이 계속 승승장구 번창해서 아예 그 자리에 건물을 세우는 날까지 한결같은 맛과 무뚝뚝함을 유지하기를 빌어본다.
이요님 블로그에서 보고선 홍대앞에서 약속이 있었던 김에 옳다구나 찾아간 류승호의 작은 전시회.
<고흐의 각도>
고흐의 익숙한 그림들을 3차원 공간에 재구성해 놓았다.
홍대앞 상상마당 1층 한구석 갤러리에서 8월 21일까지 전시한단다.
파는 엽서인줄 알고 얼마일까, 2천원 미만이면 사야지 마음먹었던 입체카드 같은 인쇄물은
그냥 집어가도 된다는 전시 팸플릿이었다. ^^
6개나 집어와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나도 방에 하나 세워놓았는데 기분이 아주 좋다. ㅎㅎ
디카는 없었지만 고흐와 관련된 작품들을 마구 사진으로 찍어도 좋다는데 또 어떻게 그냥 오랴 싶어서 서툴게 폰카를 들이대고 몇장 담아왔다. 아기자기하게 소품들로 재현해 놓은 고흐의 작품들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듯한 붓의 터치까지 막 살아난 듯해서 괜히 신이 나기도 했다.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아니 그냥 꼭 한번 들어가서 걸터앉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고흐의 방>은 3차원으로 보니 더욱 사랑스러웠다.
<별이 빛나는 밤>의 뒷배경엔 유리를 한 장 덧대어 그 위에 칠한 붓터치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고, 천장쪽에 조명을 비췄다. 입체감이 더욱 살아나니 마치 산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랄까.
내 블로그의 대문 사진이자, 현재 들고다니는 지갑의 문양이기도 한 <아몬드 꽃>은 앞쪽에 모빌처럼 매달린 액자엔 아몬드나무와 꽃만 들어있고 뒷벽에 청록색 바탕이 붙어있는 구조였다. 상상마당 1층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도록 제일 크게 걸려 있는 바람에, 사진을 찍으니 입구밖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들까지 반사되어 찍히고야 말았다. ㅎㅎ
생각해보니 작년에 오래 고민하다 장만한 고흐의 아몬드꽃 지갑을 만방에 자랑하지 않았더군! ;-p
벌써 손때가 묻어서 퍼온 이 사진보다는 많이 누렇게 바랬는데, 그래서 더 정겹기도 하다.
실제로 네덜란드에 있다는 고흐의 <아몬드 꽃> 그림을 본 적은 없지만, 색감이 지금쯤의 내 지갑과 더 비슷할 거라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다.
그밖에도 귀가 잘린 고흐의 초상화, 까마귀가 나는 밀밭, 해바라기꽃 등 꽤 여러 작품이 있었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일이 기다렸다가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다. 쑥스럽기도 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좀 샀더니 뜻밖의 부록들이 딸려왔다.
5천원짜리 국제전화카드와 홍대앞 클러빙 맵.
책 홍보를 위해 지도를 비매품으로 제작해 돌리는 출판사도 별로 마음에 안들지만(나도 두어 권 책을 내긴 했어도 다시는 거래하기 꺼려지는;;) <클러빙 맵>이라는 제목부터 눈쌀이 찌푸려진다.
clubbing map이라니. 곤봉으로 후려치는 지도라는 뜻이냐 뭐냐! (club은 night club의 준말이기도 하지만 '곤봉', '곤봉으로 때리다'의 뜻도 있다)
그냥 '홍대앞 클럽 지도'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
말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쓸데없이 아무데나 영어를 같다붙이는 세태는 아무래도 못마땅하다.
어쨌거나 홍대앞 클럽과 카페, 음식점 따위가 깨알같이 적혀 있는 지도를 시큰둥하게 들여다보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주말마다, 때로는 주중에도 밤마다 홍대앞으로 몰려가 맥주캔 하나에 몇 시간 동안 열광하던 10년 전의 추억이.
그때도 이미 난 30대였는데 어디에서 그런 체력과 열정이 나왔는지 원.
지금 생각하면 의아하고 신기하다.
나와 지인들을 한꺼번에 홍대앞 클럽으로 이끈 건 학원에서 만난 어느 후배였다.
요즘처럼 인터넷 검색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이므로, 번역하면서 가끔씩 나오는 슬랭도 물어보고
녹슨 영어실력도 닦을 겸, 그리고 어떻게든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되찾아보겠다고 열심히 영어학원엘 다니던 시절이었다. 학원 사람들 가운데 몇몇과 놀랍게도 죽이 잘 맞아선 수업 끝나고도 헤어질 생각을 않고 같이 점심 먹고선 '스터디' 한답시고 온종일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다 저녁에 직딩파들이 퇴근후 합류하면 맥주마시러 돌아다니느라 연일 일은 팽개치고 놀기만 했었는데, 똑같은 놀이문화에 식상해질 무렵 휴학중이던 한 아이가 홍대앞 클럽엘 가자고 했다.
술도 안 마시는 그 아이는 주말마다 스트레스 풀러 친구들이랑 홍대앞 클럽을 가는데, 우리 분위기로 봐서 다들 좋아할 것 같다나. 그 아이가 데려간 클럽은 인디밴드들이 라이브 공연을 하는 곳이 아니라, 디제이가 음반을 틀어주되 나이트클럽과는 달리 기본도 없고 입구에서 두당 5천원을 내면 무조건 캔맥주 하나를 주는데, 그걸 마셔도 되고 다른 음료수로 바꿔마셔도 되는 요상한 시스템의 별천지였다. (나중엔 입장료를 따로 내면 음료권을 주고 팔목에 도장을 찍어주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내가 첫발을 디딘 홍대앞 클럽의 이름은 <황금투구>.
내 경우 워낙에도 대학시절부터 직딩시절까지 춤추러 다니는 걸 좋아했었지만, 어느 순간 나이트클럽은 춤을 추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예쁘게 차려입고 나가는 짝짓기와 즉흥만남을 위한 장으로 변질되어 춤판에 발을 끊은지 오래였다. 그런데 앉을 자리도, 가방을 놓을 자리도 별로 없이 다들 제 흥에 겨워 춤을 추거나 한 구석에서 음악에 심취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유로운 그 공간이 나에겐 얼마나 파격적이고 마음에 들던지, 우리는 금요일과 토요일 일주일에 두번씩은 꼬박꼬박 홍대앞으로 달려갔고, 대부분 맨정신에 열심히 춤을 추어대거나 디제이가 틀어주는 음악에 열광하며 행복해했다. <황금투구>엔 음악을 아주 잘 틀어주는 디제이가 몇명 있었는데, <황금투구>가 자리를 옮기고 또 다시 <명월관>으로 이름을 바꾸는 과정에서 그들을 따라 약간은 무서운(마약을 하는 아이들도 드나든다는 소문이 도는 아주 외진;;) 클럽에 갈 때도 있었는데 결국엔 <명월관>과 <발전소>, <조커>, <흐지부지-원래는 Hodge Podge인데 우린 흐지부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오래 전 영어강사들이 마약을 하다가 대거 체포되기도 했던 이름 까먹은 클럽을 전전했던 것 같다.
홍대앞 클럽에서 춤추는 재미에 푹 빠진 나는 처음의 일행들 말고도 주변 지인들을, 심지어는 송년모임에 나를 불러낸 거래 출판사 사람들까지 홍대앞에 데려가 춤바람을 일으켜주려고 노력하기도 했는데, 시커멓고 거칠고 조악한 클럽 분위기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의외로 춤바람에 물드는 이들도 꽤 됐다.
그땐 정말이지 주말에 지인들과 다른 동네에서 약속을 했다가도 그들을 꼬드겨 홍대앞으로 데려가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
하지만 클럽 음악도 변하기 마련이니, 온갖 종류의 폭발적인 음악들을 전부 들을 수 있었던 클럽들은 어느틈엔가 테크노음악에 점령당했고, 나는 죄다 그 음악이 그 음악 같은 테크노 리듬에 싫증을 느껴 춤바람(?)도 차츰 수그러들었다. 더욱이 언제부턴가 홍대앞엔 버릇없고 거칠고 아는 영어라곤 욕밖에 없는 듯한 미군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는데, 그들과 보란듯이 팔짱을 끼고 나타나는 야시시한 옷차림의 예쁜 여자애들이 비비적비비적거 리며 추는 춤도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얼마 후 미군 범죄 사건 때문에 홍대앞 클럽에선 미군들의 출입을 거부하는 운동도 벌어졌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전혀 모르겠다)
라이브 공연을 하던 <드럭> 같은 클럽으로 장소를 옮겨보기도 했지만 한번 시든 춤바람은 좀처럼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즈음에 양현석이 대규모로 오픈한 힙합 클럽도 생겨나 가끔 연예인을 구경하는 재미라도 보자는 지인들에게 이끌려 <NB> 같은 클럽에도 가봤지만 만 2년을 정점으로 결국 나(와 지인들)의 가열찬 클럽 생활은 막을 내렸다.
그러니까 내가 제일 열심히 홍대앞을 찾아다니던 때는 98년과 99년이라는 의미인데, 그 뒤로는 가끔 클럽엘 가도 곡 하나를 끝까지 추기에 체력이 딸릴 정도였고 한때 그토록 열광했던 '춤' 자체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후 홍대앞을 가는 일은 훤한 대낮에 근처의 출판사를 방문할 때나, 약속을 만들어 엄청나게 생겨난 카페와 술집 따위를 찾을 때뿐이고 클럽에 가고싶다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약속이 있거나 볼일이 있어 홍대앞을 찾게되면 아직도 옛추억이 떠올라 비싯 웃음이 나고 마음이 설렌다. 이제는 골목골목 빈틈없이 들어찬 술집들과 카페가 약간 숨막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홍대앞엔 뭔가 다른 공기가 떠도는 것 같다. 하나의 틀로는 도저히 정돈할 수 없고 막무가내로 제 목소리를 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개성의 동네랄까. 나만의 착각이자 편견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홍대앞엘 나가는 기분은 언제나 그럴듯하여 행복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