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2.04.27 치맥 열망 12
  2. 2012.04.22 한음파 공연 4
  3. 2011.11.18 홍대 제니스 브레드 vs 광화문 에디스 B 3
  4. 2011.10.04 홍대 와우북 페스티벌 11
  5. 2011.08.09 수제햄버거 eddy's B 21
  6. 2011.08.01 따라하기 요리 - 홍대 고엔 16
  7. 2011.06.20 브로콜리 너마저 - 이른 열대야 6
  8. 2010.01.06 홍대 조폭 떡볶이 11
  9. 2008.08.16 고흐의 각도 11
  10. 2008.08.13 홍대앞 추억 14

치맥 열망

식탐보고서 2012. 4. 27. 23:21

오만가지에 다 적용되는 줄임말을 싫어하는 편이면서도 또 줏대없이 덩달아 따라쓰는 줄임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치맥'이다. 사실 치킨에 맥주의 궁합은 건강상 대단히 안 좋은 거라지만, 어차피 건강을 심히 챙기려면 아예 술을 마시질 말아야지! 바삭바삭한 프라이드 치킨이나 전기구이 통닭을 먹다보면 탄산음료보다는 역시 시원한 맥주가 제격.

 

치킨에 맥주를 즐겨온 역사를 따져보라고 한다면 정말 까마득하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언제부턴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게 되었다. 처음엔 프라이드 치킨과 튀김엔 끄덕 없고 유난히 볶음밥만 소화를 못시키더니, 급기야 기름에 튀긴 모든 음식들이 확실히 부담스럽다. 뱃속에 넣은지 몇시간 지난 뒤에도 막 기름냄새가 계속 튀어올라오는 기분이 들고 위가 붓는 느낌까지 있다. 어흑, 내가 치킨에 맥주 마시는 걸 얼마나 좋아라 했는데!

 

그래서 자주 못먹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가끔 기회가 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까짓것 위 좀 혹사시키면 어때! 웩웩 게워내고도 또 술 퍼마시던 때에 비하면야 치맥 정도는 양반이다. 어차피 치킨에 탐닉하느라 배불러서 많이도 못 마시질 않는가. ㅎㅎ

 

홍대 레게치킨이 그리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통 가볼 기회가 없었다. 갈 때마다 자리가 없어! 젠장. 근데 꿩 대신 닭이라고 얼결에 들어간 치킨집이 완전 마음에 들었다. 워낙 치킨을 멀리하며 살다보니 내 입엔 그저 닭만 대충 튀겨놓아도 무조건 맛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으나 다른 일행도 맛있다고 칭찬했으니 객관적인 평가도 뒷받침된 감상이다. 게다가 생맥주에 무슨 짓을 한 건지 거품이 아주 쫀쫀한 느낌으로 괜찮았다. 맥주 자체가 진한 맛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물타서 싱거운 맥주는 아니라는 데서 점수를 얻었다. 이름하여 깐부치킨. 상상마당 건너편 주차장 길 모퉁이에 있다. 

 

이젠 맥주 한 두잔에 알딸딸하는 형편없는 주량으로 전락했으면서도 성인이 된 이후로 음주를 즐긴 역사가 길기 때문인지 비가 온다거나, 금요일밤이 되면 이상스레 술이 마시고 싶어짐을 느낀다. 날씨 화창해진 요즘 금요일밤은 더더욱! 냉장고에 사다 넣어둔 캔맥주도 있지만 그건 또 일요일밤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한 캔씩 홀짝거리는 용도였다. 출근도 안하는 주제에 왜 일주일이 다 가고 월요일이 오는 게 서글픈지 원. 그러나 일요일밤을 헤롱헤롱 보내다 12시를 넘기면 월요일을 술기운에 시작하는 것 같아 그짓도 몇번 하다 관뒀다. 혼자 술마시는 게 알코올 중독의 시초라는데! ;-p

 

암튼... 지난주 금요일밤의 치맥이 못내 그리워 사진 쓰다듬다 마음을 달래려 시작한 포스팅이다.  

이름이 [순살 치킨]이었을 거다 이건 [마늘 치킨]

식탐녀답게 휴대폰에 종종 먹거리 사진을 모아둔다. 물론 먹는 게 급해서 사진을 못찍을 때가 더 많지만, 사진으로도 갖고 싶은 음식이 꼭 있더라고... 그러다 가끔 배경화면으로 쓰기도 한다. ㅋ

 

메뉴판을 보고 별 생각 없이 시켰는데, 나중에 둘러보니 이 두 메뉴보다는 크리스피 치킨이 더 인기인 것 같다. 발라먹기 귀찮더라도 담엔 그걸 시켜먹어봐야지. 같이 튀겨 내온 감자튀김의 양이 좀 적긴 하지만 파삭파삭 맛있었다. 전기구이 통닭에 마늘소스를 얹어 준 것도 담백하니 맛났음. 생맥주는 3천원, 치킨 가격은 16000-17000원 전후. 가격은 다른 데와 비슷한데 양이 좀 적은 것도 같다. 이 정도면 보통인가? 나로선 엄청 배고플 때 들어가서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는지 진짜로 훌륭한 맛인지 한번 더 먹어보고 판단해줄 테다. 치맥 궁합은 역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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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음파 공연

놀잇감 2012. 4. 22. 17:41

지난 금요일 상상마당에서 한 한음파 단독공연에 다녀왔다. 공연 보러가는 일이 거의 연중행사인 내가 한음파 공연을 보는 건 벌써 세번째. 처음 구경은 작년 여름 일산 호수공원에서 무슨 페스티벌을 할 때였고, 두번째는 언젠가 홍대앞 '빵'에서 Lowdown30이랑 합동공연을 했을 때고, 요번이 드디어 2집 발매기념 단독공연. 얼마전 EBS 공감 녹화때도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감중이라 고사했었다. 늘그막에 뜬금없이 이 무슨 팬질인가 싶은데, 사실 난 아직 한음파의 팬이라고 할 수 없다. 열혈팬의 '열심전도'에 부화뇌동하는 정도랄까? ^^;

 

 

한음파라는 밴드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가 공연을 따라다니게 된 건 순전히 이 밴드의 리드보컬(포스터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붉은 재킷 입은 분)에게 '마두금'을 배운다는 지인 덕분이다. 악보도 못 보는 주제에 악기 열망은 또 늘 품고 있는 사람이다보니, "마두금 한번 배워보실래요?"라는 떡밥에 돌연 솔깃했다. 일단 어떻게 생긴 악기인지 구경부터 하고, 또 캔맥주 마시며 사이비이건 아니건 작게나마 록 페스티벌 분위기를 느껴볼 욕심에 따라나선 것이 첫 만남. 몽고의 토속 악기라는 마두금은 꽤나 멋지게 생겼는데, 줄이 두개 뿐이라 얼핏 느끼기엔 해금의 확대판 같다. 톤은 다르지만 소리도 비슷한 듯하고... '마두금'이란 이름에서 짐작되듯, 갈기까지 달린 말 머리모양의 악기다. 허나 내가 배우고픈 악기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랑은 뭔가 안 어울리게 생겼어!

 

게다가 이 밴드의 음악도 내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느낌이었다. 내가 '일렉트로닉, 사이키델릭' 이런 걸 워낙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단 너무 어렵고 장중하고 암울하다고나 할까... 뭐 그런 묵직한 음악이 듣고 싶을 때도 있겠으나 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듯한 소통의 순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난 역시 과거지향적인 어쿠스틱 파. ㅋㅋ 따끈한 2집 신곡을 일부 들을 수 있었던 두번째 공연에서도 역시 같은 느낌. 연주도 잘하고 사운드도 빵빵한데 CD를 선뜻 사고싶진 않았다. 그런데 또 EBS 공감에 나온 걸 보니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어라 꽤 좋은 곡도 있었네.

 

해서 요번 단독공연은 한음파를 계속 주시할까 말까를 결판짓는(?) 나름의 잣대로 삼을 작정이었다. 2집에 실린 곡들은 많이 발랄, 경쾌해졌고 대중성도 좀 겨냥한 것 같다고 지인은 부추겼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게스트로 나온다는 블랙백과 국카스텐의 라이브가 궁금한 마음이 더 컸다. ;-p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확실히 예전보다 경쾌해진 곡들이 있기는 했으나, 밴드의 연륜(?) 때문인지 파릇파릇 블랙백이나 국카스텐의 음악과 비교하면 역시 대체로 묵직 웅장. (보컬 본인은 '어둡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나는 보컬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편인데 창법이랑 목소리도 내 취향엔 별로. 발음 꼬아부르는 거 싫엇! 2부 게스트로 나온 국카스텐이  노래 흉내내는 데 빵 터졌다. 맞다 맞다, 나는 가사전달 정확한 발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컨디션도 별로 안 좋은데 스탠딩 공연을 보려니 힘들어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바닥에 앉기도 하고 벽을 차지하고 기대도 보았으나 공연 후반부, 나는 결국 의자 하나 없는 공연장 맨 뒤 깃발 디딤돌 같은 곳에 걸터 앉아야 했다. 에구구. 게다가 공연장 에어컨이 어찌나 빵빵한지 손이 시렵다 못해 지릿지릿 저려왔다. 편하게 공연 보겠다고 가방이랑 재킷을 사물함에 넣어두고 들어왔는데, 에어컨을 그렇게 세게 틀 줄이야. ㅠ.ㅠ 덜덜 떨리고 허리 아파서 공연이고 나발이고 어서 끝났으면 하고 바랐던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행운권 추첨이 시작됐다. 내가 예매할 때만 해도 겨우 40번째라 공연장 완전 썰렁하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했었는데, 공연장은 얼추 꽉 찼고 어쨌거나 최측근 팬들과 초대권으로 온 사람들과 별도로 매긴 듯한 예매 관객 행운권 순번 가운데 내가 70번이었다. 행운권 추첨 같은 거엔 워낙 운이 없는 걸 알면서도, 다섯 명 중 한 사람은 기타를 준다니 혹시 내가 타게되면 열심히 기타를 배워야지! 턱도 없는 꿈을 잠시 꾸었다. 그런데 맙소사, 세번째로 싸인 CD를 받는 사람에 70번을 부르는 게 아닌가! ㅋㅋㅋ 맨 뒤에 앉아 있다가 얼결에 홍해를 가르는 모세처럼 사람들을 헤치고 맨 앞으로 나아가 CD를 받아들곤 민망하여 얼른 다시 맨 뒤로 도망쳤다. 

 

행운권 추첨에 고무된 나는 결국 2집 CD를 사서 공연후 사인회를 하는 멤버들에게 사인도 받았다. 글씨 잘 쓰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대체 선망 없는 분야가 뭐냐!)도 있는데, 우와 두어분은 글씨체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사인이야 뭐 뮤지션이니까 늘상 연습해서 멋지게 만들었겠지만 글씨를 잘 쓰는 건 타고나야 하는 것. 게다가 허클베리핀에서 십여년간 드럼을 치다 한음파로 합류했다는 드러머의 미모(?)와 말간 피부가 코앞에서 보니 단연 빛이 났다. ㅋㅋ 공연 볼 때 옆에서 교수님, 교수님! 외치며 미친듯이 열광하는 아가들이 있더니만, 드러머가 그 교수님이라는 듯(포스터 사진 제일 왼쪽;;).  

 

나랑은 좀 안맞는 밴드라고 생각하면서도 공짜 CD 한장에 사인회 줄서기까지 하다니, 참 부화뇌동의 진수를 보여주는 게 아닐지. 째뜬 자꾸 들으면 좋아지려나 더 들어보긴 해야겠다. ㅋㅋ

 

왼쪽이 행운권 추첨으로 받은 EP <잔몽>

오른쪽이 새로 나온 2집 <Kiss from the Mystic>.  

팬도 아니면서 이런 인증샷까지 찍어올리다니 이 무슨 짓인가 싶으면서도, 일단 이런 인디 밴드들은 좀 더 널리 알려 혹시 모를 팬 확보에 도움을 주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랑은 안맞아도 누구에겐가는 잘 맞는 음악일 수도 있으니까. ^^;

 

더불어 마두금도 소개. 이웃들 가운데 마두금에 관심 있는 분들도 문의 환영. ㅋㅋㅋ  

열광하는 밴드든 아니든, 저질체력으로 서서 구경하기가 힘들었든 말든, 어쨌거나 한참 뒤에도 귀가 찡찡 울리는 라이브 공연을 보았던 건 좋았고, 맛있는 치맥 뒤풀이는 더 좋았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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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스 B는 수제햄버거가 주력상품이고 제니스 브레드엔 아예 햄버거가 없으며 서로 메뉴도 많이 달라 단순비교에 무리가 있으나, 어쨌거나 내 마음대로 식탐분류에는 같은 범주에 속하므로 최근 두군데 다 다녀온 김에 재미삼아 한번 비교해봤다. 내 마음 같아선 두집 다 버글버글 눈코뜰새없이 장사가 잘 되면 좋겠는데 (나한테 아무런 콩고물도 떨어지지 않는데 왜 이런 바람을 품는지? ㅋㅋ) 두집 모두 갈 때마다 그리 손님이 많지 않은 게 좀 안타깝다. ^^; 물론 운좋게도 손님 많은 시간을 내가 잘 피해다녔을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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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두해 정도만 열심히 구경다녔지 몇년째 방구석에서 벼르기만 하다가 놓쳤으나, 이번엔 28일부터 거리 도서전을 하는 걸로 착각하고서 비오는 날씨를 미리 걱정하는 심리적 부지런을 좀 떨었더니 (원래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둘쨋날에 성공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거리도서전 책구경도 구경이지만 제니스 브레드 샌드위치와 초콜릿 스콘이 근래 부쩍 간절히 땡겼기 때문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

어쨌든 일요일 늦은 점심을 아주 뿌듯하게 먹어치우고 나서 거리 도서전을 하는 주차장길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조짐이 예사롭질 않았다. 죠스 떡볶이랑 무슨 핫도그집, 그 옆 분식집들 앞에 각기 줄이 10미터도 넘게 서 있고 그 인파의 대부분이 아이들을 동반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더니 드디어 전시부스의 하얀 뾰족천막이 눈에 들어왔는데... 헐... 양쪽 골목이 모두 빽빽한 인간의 물결이었다. 문학동네가 맨 처음 부스였던 것 같은데 사람의 장막에 둘러싸여 책 진열대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 +_+ 된장, 된장... 첫날인 토요일에 올 걸 그랬다고 속으로 자책했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 (특히 원고에 매진하지 않고 놀러나왔다고 타박할 수 있는 '갑' 입장의 거래처 담당자들 -_-;) 처음엔 슬쩍슬쩍 피해다녔는데 좀 지나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을 듯했다. 그 많은 인파 중에서 과연 누가 날 알아보겠어! 게다가 아동서를 함께 내는 대다수 출판부스엔 아예 진입이 불가능할 만큼 사람이 많았다. 책 좀 찾아보고 싶었는데 두어번 배회하고도 끝내 인파를 못 뚫고 들어간 부스가 몇개나 됐다. 현암사, 문학동네, 시공사... 또 어디더라.

원래 따끈따끈한 신간을 30% 할인받아야 뿌듯한 건데 하도 도떼기 시장이라 신구간을 따져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으면 훑어보는 거고 아님 그냥 기웃거리다 마는 거고... 따끈한 신간 코너엔 특히 사람이 많아! 루나파크의 런던 에세이도 책 있으면 일단 구경이나 해보려 했는데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쳇

게다가 일요일이라 가족단위의 내방객이 많을 것을 예상했는지 부스마다 유독 아동서가 많아보였다. 어우... 정신없어. 아무리 일년에 한번이라지만 휴일에 불려나와 엄청난 인파에 시달리면서도 친절히 인사를 건네고 있는 출판사 직원들도 측은하고, 엄마 손에 이끌려나와 얼른 책을 고르라고 강요 당하고 있는 몇몇 아이들도 안쓰럽고, 꽤 오래도록 부스 안에 진입 못해서 빙글빙글 주변만 맴도는 나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ㅋㅋ

그렇다고 포기하고 돌아갈 순 없는 일! 그나마 사람들이 덜한 끄트머리 팝업북 코너에서 이책저책 열어보다가 (수입책이라 그런지 내가 온라인서점에서 사는 값이랑 할인가가 별 차이 없어 굳이 살 이유가 없었다) 점찍어둔 몇몇 출판사 부스에 재진입을 시도했다. 두세번 가보고도 인간의 벽을 뚫지 못한 데도 있으나, 결국엔 마음산책, 문학과지성사 구간 부스에서 책을 고를 수 있었다.

오래된 문지 시선은 단돈 2천원에, 소설은 3천원에 살 수 있는데 황순원의 저 <별>은 무려 '천원'이라고 했다. 집에 황순원 소설선이 있는 걸 알기에 같은 책 아닌가 하면서도 3천원인데 뭘, 이러면서 골랐더니만 '천원'이래고 집에 있는 책은 <카인의 후예>더라. 그야말로 오늘의 득템!

아쉬운 건 30% 할인중이던 기형도 전집도 살 생각이었는데 2천원짜리 구간시집 남은 게 얼마 없어서 고르다보니 그새 까먹는 바람에 빠뜨렸다는 것. ㅠ.ㅠ. 

표정훈과 페터 회는 오래 전부터 읽을까말까 하는 책이었기에, 그리고 문지 부스에서 이리저리 밀리며 시집을 고르느라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 원래 목표인 5권을 채워야한다는 일념으로 대충 고흐 책까지 집어 계산해달라고 했다. 다섯권 목표였는데 일곱권을 샀으니 대단히 훌륭하게 지름신을 막았다고 할 수 있다.

마침 막내동생네가 놀러온다는 바람에 애들 책을 사느라 체력과 쇼핑욕이 급격히 떨어진 덕분이기도 하다. 어딘지 출판사 이름도 까먹었고 책도 벌써 조카들이 가져가버려서 여기 자랑할 수도 없는데, 애들 책 사니깐 예쁜 연필세트도 선물로 주더라! 다만... 자녀가 몇분이냐고 물어서 잠시 머쓱. 넷이라고 하려다가, 민망하여 둘이라고 대답했는데 연필 선물로 주려고 그러는 줄 알았으면 그냥 넷이라고 할 걸 그랬다. ㅋㅋ 조카들 책까지 치면 목표량의 두배인 셈이지만 할인받은 가격을 생각하면 입이 저절로 귀에...

똑같은 지름신을 영접하더라도 책을 사는 건 소비욕에 대한 자책감이 훨씬 덜하므로, 아마 동생네가 저녁먹으러 온다고 하지 않았다면 일단 커피숍으로 후퇴해서 카페인으로 심신을 가다듬은 다음 한번 더 공격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한편 아쉽다. 그러나 올해는 일단 방구들을 박차고 나갔다는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최승자 시집 말고는 그냥 순전히 제목으로 고른 시집이긴 해도, 가을에 시집을 사본지가 과연 얼마만인가 싶은 것이 아주 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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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까말까 망설였다. 원래 내가 적극적으로 맛집 소개하는 블로거도 아닌데, 과연 여기다 광고한다고 효과가 있을까? 괜히 이웃들에게 욕이나 먹는 건 아닐까?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내 팔이 심히 안으로 굽는다는 것. 학연, 지연 따위에 절절 매는 사람들 함부로 욕할 게 아니란 걸 요번에 깨달았다. ^^; (어차피 홍보 효과여부도 알 수 없는데 뭐 어때! 라고 애써 자위 중) 양심에 크게 찔리는 짓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공개한다. 어차피 홍보성 글이므로 탐탁지 않으신 분들은 이쯤에서 읽기를 관두시라고 나머지는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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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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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8월이다. 8월 첫 포스팅으로 친구 뒤에서 흉이나 보는 듯한 얘기를 끼적인 게 찔려서 밀어내기 포스팅 하나 더.
홍대앞엘 가면 술집은 지천이어도 적당히 끼니를 때우려 들면 막상 갈 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내가 파스타에 탐닉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가정식 백반이나 다름없는 파스타를 대단한 고급 요리인 것처럼 만얼마씩 주고 사먹는 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일부러 마음 먹고 나가 호사 떠는 외식이 아니라면 한끼니 밥값은 만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서민인 나의 지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대 앞에서 딱 맞는 밥집이 바로 <고엔>이 아닐지. 위치는 상상마당 건너 주차장길에서 조 샌드위치 골목으로 들어가, 405 키친 앞 골목으로 좌회전, 감싸롱 지나 제니스 카페 맞은편 쯤에 있다. 노상 지나다녀도 먹을 기회가 없었는데 먹으려고 드니 같은 날 1시간 30분 간격으로 두번을 먹었다. ㅋㅋ 그러고선 따라하기 좋아하는 성격을 발휘하여 따라 만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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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공연 보러가실 분들은 나름 주최측이 신경을 쓴 듯한 공연 형식에 관하여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합니다. ^^;


다녀온 지 며칠 지났다고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려 하므로 다 사라지기 전에 몇 자 적어두어야겠다. 순전히 연말 집계용으로라도. ㅋㅋ
난생 처음 가본 브로콜리 너마저 공연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괜찮다'라고 하겠다. 라이브로 듣는 덕원의 노래가 워낙 안습이라는 언질을 하도 들어 기대치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겠으나, 어쨌든 6월 8일부터 시작된 정기공연의 무대가 매번 그들에겐 연습이자 라이브였을 터이므로 공연 초반 몇번의 불안한 음이탈을 제외하곤 대체로 노래가 안정된 느낌이었다. (지산을 비롯해 다른 무대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는 일행들의 증언도 "덕원 노래솜씨 많이 늘었다"는데 모아졌다^^)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하는 내가 보기엔 다른 세션도 없이 겨우 네명--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이 그런 꽉찬 연주와 노래를 동시에 해낸다는 게 신기할 정도. 멤버들의 생김새도 소박한 노래와 이름이랑 딱 맞는 맑은 느낌이었다. 좀 더 화려하거나 느끼한 생김새를 지닌 사람들이었다면 나로선 뭔가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공연 예습하느라 CD들으며 마음에 든다고 손꼽은 노래들이 역시 공연에서도 좋았지만, CD로 들을 땐 별로라고 생각했다가 새로이 '발견'한 노래들도 두어 개 있었다. <울지마>, <마음의 문제> 같은 곡들. 2집 들을 때 첫곡인 <열두시반>부터 주르륵 네번째 <커뮤니케이션의 이해>까지 다 좋아라 듣다가, <울지마>, <마음의 문제>, <이젠 안녕> 세 곡은 괜히 마음에 안들어서 그냥 통째로 건너뛰고 들을 때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안 그럴 거다. 마이크와 음향 탓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CD로 들을 때보다 덕원의 목소리가 더 굵고 힘 있게 들렸고, 일부러 미성을 내려고 애쓰는 듯한 기미도 사라져 좋았다. 2집 노래를 중심으로 CD순서와는 반대로 <다섯시 반>으로 시작해 2부에선 좀 신나는 노래로 쾅쾅 달리다 <열두시 반>으로 끝낸 것도 나름 이야기의 흐름처럼 느껴졌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얘기로 괜히 썰렁하게 시간 때우는 것보다 노래 한 곡이라도 더 부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중간에 넷이 줄지어 자리잡고 앉았을 땐 내심 불만이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멘트는 적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더 길었으면 화났을 듯;;

초반에 이번 공연엔 앵콜 없다고 잘라 말하고 나서 정말로 <열두시 반> 노래 끝내고 나서는 인사도 없이 악기 두고 나가버렸을 땐 좀 황당했다. 것도 본인의 고집이려니 하면서 나는 앵콜을 외치지도 않았고, 사람들 빠져나가기를 기다려 느릿느릿 거의 맨 끝에 공연장을 나왔는데 깜찍하게도 앵콜 공연을 상상마당 입구에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하필 우리 바로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에서 자꾸만 알람을 시끄럽게 울려대는 바람에 짜증지수가 치솟기는 했지만, 우리가 원했던 <꾸꾸꾸>랑 <보편적인 노래>를 그 난리통에 들을 수 있어서 '원 풀었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말만 들었지 실제론 처음 들어가본 상상마당 지하 공연장의 음향과 냉방수준도 괜찮은 편이라, 가격대비(평일 공연 25000원) 공연 만족도를 따진다면 꽤나 흡족했다. 무대가 워낙 높아서 맨 뒤쪽에 있던 단신의 나도 이리저리 사람들 머리 사이로 움직여 다니며 구경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스탠딩 공연이라해도 나 같은 노구를 위하여 맨 뒤쪽에 의자 몇개라도 놔주지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는 했다. 간만에 한시간 반 이상 서서 공연을 보려니 힘들어서 원!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도 중간 이후부터는 다리와 허리가 아파 슬그머니 혼자 벽에 가 기대 있었는데 바닥뿐만 아니라 나무 벽으로도 쿵쿵 전해지는 음향과 리듬이 느껴져 이것도 괜찮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공연 후기를 두 마디로 줄인다면, '괜찮다~'와 역시 스탠딩공연은 '힘들어'인가? ㅎㅎ 가만 뒀으면 공연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을 터인데 옆구리 찔러 가자고 해주신 지다니께 몹시 감사. 그나저나 브로콜리 너마저도 참여한다는 서울대 <본부스탁> 공연은 성황리에 잘 끝났을까 궁금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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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참 먹은 김에 키드님의 홍대 설경 사진을 보고 나서 포스팅해야지 생각했던 조폭 떡볶이 이야기나 해야겠다. 
홍대앞에 자주 다니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홍대앞 주차장 거리의 명물 포장마차 조폭 떡볶이가 글쎄 점포를 냈다고 했다. 원래 있던 자리에도 포장마차는 그대로 운영을 하고 있지만 그 옆쪽으로 번듯하게 테이블을 갖춘 점포를 냈으며 상호도 <조폭 떡볶이>로 간판까지 내걸었다고 했다. 드럼통 몇 개 엎어놓은 손바닥 만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만날 줄을 서서 먹을 만큼 장사 잘 되던 가게가 번듯하게 점포를 넓히면 희안하게 맛도 달라지고 서비스도 달라져 결국엔 망하고 마는 이상한 경우를 익히 보아왔던 나는 더럭 걱정이 앞섰다. 일단 포장마차와 점포 두 곳으로 나뉘면 당장 떡볶이 맛부터 달라질 게 아니겠나 말이다!

내가 처음 조폭 떡볶이 포장마차의 존재를 알개 된 것은 무려 15년전이다. 홍대 클럽이 지금처럼 정신 사나워지기 훨씬 이전에 얼떨결에 단체로 춤바람이 들어 일주일에 두번씩은 꼬박 <황금투구> <명월관> <발전소> <조커 레드> <흐지부지> 따위의 클럽에 놀러 다녔던 시절, 신나게 춤을 추고 나온 뒤의 출출한 뱃속을 채우기엔 딱이었던 그곳을 소개한 후배는 당연히 그 유명한 전설을 내게 들려주었다. 무뚝뚝한 얼굴로 주문을 해도 듣는둥 마는둥 대답도  잘 안하고는 기막히게 손님들이 주문한 메뉴를 턱턱 내주는 주인 아저씨가 전직 조폭인데 마음 잡고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터라 가끔 깍두기 아저씨들도 찾아와 말없이 오뎅과 순대를 먹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잘 살피면 얼굴 어딘가에 사연 깊어 보이는 흉터도 있다는 전설이었다.
 
몇년 계속 들락거리며 들으니 그건 그야말로 전설일 뿐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하도 무뚝뚝해서 그런 헛소문이 돌았다는 카더라 통신도 함께 떠돌았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건 밤마다 일대 포장마차는 하나같이 파리를 날려도 그 포장마차는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조폭 떡볶이>가 그 무시무시한 전설과 함께 그토록 오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맛이었다. 그 집 떡볶이는 내 머릿속에 <이상>으로 자리잡은 떡볶이의 맛에 가장 부합하는 맛이다. 특별히 잡다한 양념 맛 없이 그저 고추장과 물엿으로 맛을 낸 듯한 담백하고 쫄깃한 맛이랄까. 순대와 튀김, 김밥, 오뎅까지 다른 메뉴도 골고루 먹어봤지만 일단 언제나 손님이 많아서 회전율이 높으니 모든 메뉴가 다 신선할 수밖에 없고, 특히 떡볶이는 그 주변 포장마차 떡볶이를 거의 다 먹어봤어도 비슷한 맛조차 내지 못할 만큼 맛이 있었다. 문득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일만큼, 자주는 못가더라도 나 혼자 단골이라 여기던 포장마차였기에 점포확장을 빌미로 행여 맛이 변할까봐 염려스러웠던 거다.

다행히 친구 말로는 맛이 변한 것 같지는 않더라고 했는데,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는 법이어서 마침 죄다 떡볶이 애호가들이 모인 지난주에 칼바람과 빙판길을 무릅쓰고 새로 열었다는 주차장길의 조폭 떡볶이 점포를 찾았다.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풍선기둥엔 상호와 함께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피식 웃음부터 나왔는데, 과연 조폭 주인아저씨가 점포의 주방을 직접 맡을 것인가 과거처럼 포차에 올라 앉아 있을 것인가 염려했던 내 걱정은 점포 외부에 설치된 높은 주방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본 순간 누그러졌다. 가게가 생기긴 했지만,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주방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되는 대로 자리를 잡고 먹는 셀프 시스템이었다. 가게 인테리어는 <조폭 떡볶이>라는 상호와 부조화를 이룰 만큼 뜻밖에도 대단히 여성스러운(?) 느낌에 아늑하고 깔끔하고 고급스러워보일 정도였다. 그뿐인가, 가게 안에 마련된 남녀 분리된 화장실까지 깨끗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제일 중요한 떡볶이 맛은 옛날 맛 그대로였다. 초저녁에 떡볶이를 처음 만들고 있는데 혹시라도 그냥 빨리 먹고 싶어 재촉을 하면, 아저씨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끝까지 양념을 다 졸여 맛이 밴 다음에 퍼주던 바로 그맛. ^^;

신촌에도 포장마차가 꽤 많지만 거긴 떡볶이를 만드는 네모난 판이 하나밖에 없어서 떡볶이가 거의 떨어져 갈 때면 거기다 다시 물을 붓고 흰떡을 넣고 다시 양념을 해 한쪽에서 조리를 하기 때문에 영 재수가 없으면 고추장 물에 빠진 맛대가리 없는 떡볶이를 억지로 먹어야 할 때도 있지만, 최소한 조폭 떡볶이집에선 그런 되다만 떡볶이는 팔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최고 인기 품목인 떡볶이가 다 팔려나가기 전에 언제나 옆에서 새로운 떡볶이를 한 판 미리 준비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래서 그토록 오래 한 자리를 지키며 명성을 쌓았겠지만...

이번에 연 가게엔 조폭 떡볶이의 역사가 무려 20년이며, 조폭 소문에 대해서도 정말로 무뚝뚝한 말투 때문에 받은 오해였다는 해명 내용의 벽걸이가 걸려 있었다. 소화 안된다고 다들 툴툴거렸던 게 무색할 만큼 떡볶이와 순대 오뎅 튀김을 후딱 먹어치우며 생각해보니, 지난 여름에 그 옛날의 춤바람 파트너와 만난 김에 부러 포장마차엘 갔던 게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로는 홍대쪽에 갈 일이 있어도 배가 너무 불러 떡볶이엔 생각도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반년간이나 내가 거들떠보지 않았는데도 그간 꾸준히 바글바글 손님이 몰리고 돈을 많이 벌어 번듯한 가게까지 낸 조폭 떡볶이 아저씨들은 어쩐지 점포확장 했다고 맛과 서비스가 달라져 결국 망하고 마는 이상한 음식점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 같다. 15년 전엔 주인 아저씨 혼자였던 것 같은데 몇년 지나며 일손을 돕는 아저씨들이 하나둘 늘어갔고 이젠 테이블을 닦아주는 아르바이트생 같은 예쁜 언니에다 설거지용 주방에서 빈 그릇을 닦는 아줌마들까지 갖추었지만, 떡볶이 값은 몇년째 15년 전보다 겨우 500원 오른 2500원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떡볶이 맛이 변함없으니 하는 말이다. 

춤바람은 사라진지 오래여도 홍대앞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동네지만, 15년전의 추억대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곳은 조폭떡볶이가 유일한 것 같다. 역시나 춤바람 일행들이 오래도록 열광했던 버섯칼국수집도 자리를 옮기고는 옛날의 영화를 잃고 말았다. 확실히 칼국수며 김치 맛도 그 옛날의 맛이 아니라 나부터 가고싶지 않아졌으니, 조폭떡볶이마저 맛이 변한다면 무척 허무할 거다. 조폭떡볶이 아저씨들이 계속 승승장구 번창해서 아예 그 자리에 건물을 세우는 날까지 한결같은 맛과 무뚝뚝함을 유지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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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각도

놀잇감 2008. 8. 16. 16:20
이요님 블로그에서 보고선 홍대앞에서 약속이 있었던 김에 옳다구나 찾아간 류승호의 작은 전시회.
<고흐의 각도>
고흐의 익숙한 그림들을 3차원 공간에 재구성해 놓았다.
홍대앞 상상마당 1층 한구석 갤러리에서 8월 21일까지 전시한단다.

파는 엽서인줄 알고 얼마일까, 2천원 미만이면 사야지 마음먹었던 입체카드 같은 인쇄물은
그냥 집어가도 된다는 전시 팸플릿이었다. ^^
6개나 집어와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나도 방에 하나 세워놓았는데 기분이 아주 좋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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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는 없었지만 고흐와 관련된 작품들을 마구 사진으로 찍어도 좋다는데 또 어떻게 그냥 오랴 싶어서 서툴게 폰카를 들이대고 몇장 담아왔다. 아기자기하게 소품들로 재현해 놓은 고흐의 작품들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듯한 붓의 터치까지 막 살아난 듯해서 괜히 신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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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아니 그냥 꼭 한번 들어가서 걸터앉아 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고흐의 방>은 3차원으로 보니 더욱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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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의 뒷배경엔 유리를 한 장 덧대어 그 위에 칠한 붓터치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고, 천장쪽에 조명을 비췄다. 입체감이 더욱 살아나니 마치 산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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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의 대문 사진이자, 현재 들고다니는 지갑의 문양이기도 한 <아몬드 꽃>은 앞쪽에 모빌처럼 매달린 액자엔 아몬드나무와 꽃만 들어있고 뒷벽에 청록색 바탕이 붙어있는 구조였다.  상상마당 1층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도록 제일 크게 걸려 있는 바람에, 사진을 찍으니 입구밖 주차장에 세워둔 자동차들까지 반사되어 찍히고야 말았다. ㅎㅎ


그밖에도 귀가 잘린 고흐의 초상화, 까마귀가 나는 밀밭, 해바라기꽃 등 꽤 여러 작품이 있었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일이 기다렸다가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다. 쑥스럽기도 하고...

째뜬 이렇게라도 고흐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몹시 행복했던 느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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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추억

추억주머니 2008. 8. 13. 17:05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좀 샀더니 뜻밖의 부록들이 딸려왔다.
5천원짜리 국제전화카드와 홍대앞 클러빙 맵.
책 홍보를 위해 지도를 비매품으로 제작해 돌리는 출판사도 별로 마음에 안들지만(나도 두어 권 책을 내긴 했어도 다시는 거래하기 꺼려지는;;) <클러빙 맵>이라는 제목부터 눈쌀이 찌푸려진다.
clubbing map이라니. 곤봉으로 후려치는 지도라는 뜻이냐 뭐냐!  (club은 night club의 준말이기도 하지만 '곤봉', '곤봉으로 때리다'의 뜻도 있다)
그냥 '홍대앞 클럽 지도'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
말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쓸데없이 아무데나 영어를 같다붙이는 세태는 아무래도 못마땅하다.

어쨌거나 홍대앞 클럽과 카페, 음식점 따위가 깨알같이 적혀 있는 지도를 시큰둥하게 들여다보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주말마다, 때로는 주중에도 밤마다 홍대앞으로 몰려가 맥주캔 하나에 몇 시간 동안 열광하던 10년 전의 추억이.
그때도 이미 난 30대였는데 어디에서 그런 체력과 열정이 나왔는지 원.
지금 생각하면 의아하고 신기하다.

나와 지인들을 한꺼번에 홍대앞 클럽으로 이끈 건 학원에서 만난 어느 후배였다.
요즘처럼 인터넷 검색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이므로, 번역하면서 가끔씩 나오는 슬랭도 물어보고
녹슨 영어실력도 닦을 겸, 그리고 어떻게든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되찾아보겠다고 열심히 영어학원엘 다니던 시절이었다. 학원 사람들 가운데 몇몇과 놀랍게도 죽이 잘 맞아선 수업 끝나고도 헤어질 생각을 않고 같이 점심 먹고선 '스터디' 한답시고 온종일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다 저녁에 직딩파들이 퇴근후 합류하면 맥주마시러 돌아다니느라 연일 일은 팽개치고 놀기만 했었는데, 똑같은 놀이문화에 식상해질 무렵 휴학중이던 한 아이가 홍대앞 클럽엘 가자고 했다.
술도 안 마시는 그 아이는 주말마다 스트레스 풀러 친구들이랑 홍대앞 클럽을 가는데, 우리 분위기로 봐서 다들 좋아할 것 같다나. 그 아이가 데려간 클럽은 인디밴드들이 라이브 공연을 하는 곳이 아니라, 디제이가 음반을 틀어주되 나이트클럽과는 달리 기본도 없고 입구에서 두당 5천원을 내면 무조건 캔맥주 하나를 주는데, 그걸 마셔도 되고 다른 음료수로 바꿔마셔도 되는 요상한 시스템의 별천지였다. (나중엔 입장료를 따로 내면 음료권을 주고 팔목에 도장을 찍어주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내가 첫발을 디딘 홍대앞 클럽의 이름은 <황금투구>.
내 경우 워낙에도 대학시절부터 직딩시절까지 춤추러 다니는 걸  좋아했었지만, 어느 순간 나이트클럽은 춤을 추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예쁘게 차려입고 나가는 짝짓기와 즉흥만남을 위한 장으로 변질되어 춤판에 발을 끊은지 오래였다. 그런데 앉을 자리도, 가방을 놓을 자리도 별로 없이 다들 제 흥에 겨워 춤을 추거나 한 구석에서 음악에 심취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유로운 그 공간이 나에겐 얼마나 파격적이고 마음에 들던지, 우리는 금요일과 토요일 일주일에 두번씩은 꼬박꼬박 홍대앞으로 달려갔고, 대부분 맨정신에 열심히 춤을 추어대거나 디제이가 틀어주는 음악에 열광하며 행복해했다. <황금투구>엔 음악을 아주 잘 틀어주는 디제이가 몇명 있었는데, <황금투구>가 자리를 옮기고 또 다시 <명월관>으로 이름을 바꾸는 과정에서 그들을 따라 약간은 무서운(마약을 하는 아이들도 드나든다는 소문이 도는 아주 외진;;) 클럽에 갈 때도 있었는데 결국엔 <명월관>과 <발전소>, <조커>, <흐지부지-원래는 Hodge Podge인데 우린 흐지부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오래 전 영어강사들이 마약을 하다가 대거 체포되기도 했던 이름 까먹은 클럽을 전전했던 것 같다.
홍대앞 클럽에서 춤추는 재미에 푹 빠진 나는 처음의 일행들 말고도 주변 지인들을, 심지어는 송년모임에 나를 불러낸 거래 출판사 사람들까지 홍대앞에 데려가 춤바람을 일으켜주려고 노력하기도 했는데, 시커멓고 거칠고 조악한 클럽 분위기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의외로 춤바람에 물드는 이들도 꽤 됐다.
그땐 정말이지 주말에 지인들과 다른 동네에서 약속을 했다가도 그들을 꼬드겨 홍대앞으로 데려가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

하지만 클럽 음악도 변하기 마련이니, 온갖 종류의 폭발적인 음악들을 전부 들을 수 있었던 클럽들은 어느틈엔가 테크노음악에 점령당했고, 나는 죄다 그 음악이 그 음악 같은 테크노 리듬에 싫증을 느껴 춤바람(?)도 차츰 수그러들었다. 더욱이 언제부턴가 홍대앞엔 버릇없고 거칠고 아는 영어라곤 욕밖에 없는 듯한 미군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는데, 그들과 보란듯이 팔짱을 끼고 나타나는 야시시한 옷차림의 예쁜 여자애들이 비비적비비적거 리며 추는 춤도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얼마 후 미군 범죄 사건 때문에 홍대앞 클럽에선 미군들의 출입을 거부하는 운동도 벌어졌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전혀 모르겠다)
라이브 공연을 하던 <드럭> 같은 클럽으로 장소를 옮겨보기도 했지만 한번 시든 춤바람은 좀처럼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즈음에 양현석이 대규모로 오픈한 힙합 클럽도 생겨나 가끔 연예인을 구경하는 재미라도 보자는 지인들에게 이끌려 <NB> 같은 클럽에도 가봤지만 만 2년을 정점으로 결국 나(와 지인들)의 가열찬 클럽 생활은 막을 내렸다.

그러니까 내가 제일 열심히 홍대앞을 찾아다니던 때는 98년과 99년이라는 의미인데, 그 뒤로는 가끔 클럽엘 가도 곡 하나를 끝까지 추기에 체력이 딸릴 정도였고 한때 그토록 열광했던 '춤' 자체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후 홍대앞을 가는 일은 훤한 대낮에 근처의 출판사를 방문할 때나, 약속을 만들어 엄청나게 생겨난 카페와 술집 따위를 찾을 때뿐이고 클럽에 가고싶다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약속이 있거나 볼일이 있어 홍대앞을 찾게되면 아직도 옛추억이 떠올라 비싯 웃음이 나고 마음이 설렌다. 이제는 골목골목 빈틈없이 들어찬 술집들과 카페가 약간 숨막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홍대앞엔 뭔가 다른 공기가 떠도는 것 같다. 하나의 틀로는 도저히 정돈할 수 없고 막무가내로 제 목소리를 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개성의 동네랄까. 나만의 착각이자 편견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홍대앞엘 나가는 기분은 언제나 그럴듯하여 행복에 가깝다.

그리고 오늘 마침 홍대앞에서 약속도 있다!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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