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바늘을 쥐고 자수를 놓는 건 손목 건초염에 대단히 좋지 않은 행동이다. DIY 바느질이 뜸해진 이유도 밤을 꼴딱 새가며 뭐 하나를 만들고 나면 며칠 고생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째뜬 그래서 자수도 요샌 거의 하지 않고 있는데, 사진 정리하면서 아예 날려버리기엔 아쉬운 자수 작품(?)의 기록을 여기에라도 옮겨놓아야겠다. ^^; 인스타그램엔 종종 자랑했는데, 그마저도 시기를 놓치면 기록이 사라져 아쉽다. 내 물건은 괜찮은데 선물한 건 특히.
1. 톡톡한 면의 질감도 모양도 마음에 드는 편한 티셔츠에 찰리 브라운 얼굴을 수놓아보았고, 결국 지난 가을겨울 최애 티셔츠로 등극했다. ^^;
2. 수국과 라일락꽃을 담은 손수건. 처음엔 나도 한번 가져보겠다고 시작했으나... 고마운 친구에게 선물했다. 친구는 너무 예쁘지만 아까워서 쓸 수도 없는 물건을 왜 고생스레 만들었냐고 핀잔을 주었다. ㅎㅎ
3. 컵받침. 예정대로였다면 1월 초에 베트남 친구에게 놀러갈 작정이었고, 그때 친구부부에게 선물로 가져가려고 만들었다. 하지만 여행이 취소되면서 ㅠ.ㅠ 나중에 함께 가져가려던 마른 나물이며 멸치 따위와 함께 우편으로 부쳤다. 물고기는 기독교인들에게 의미 깊은 상징이라고 해서 일부러 고른 도안이다.
5. 너구리 브로치. 이건 인스타에도 올렸지만 그래도 귀여우니깐 한번 더 자랑. ㅋ 막내고모의 주문에 따라 나름 작품 속 너구리를 표현해낸 것.
뜻밖의 누수공사로.. 아니 정확히는 사람들에 치여 마음 고생이 너무너무 심한 나날을 보내며 당연히 불면에 시달렸다. 수시로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열이 막 오르고 (어쩌면 이건 폭염 탓으로 생겨난 온열 질환의 징후일 수도 있겠으나;;) 거의 24시간 에어컨을 틀어도 심신이 계속 고달펐다.
스트레스로 바짝 긴장한 머리가 때로는 활자로 달래지는 경우도 있으나, 이번엔 도무지 책을 들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디 깊은 숲속에 들어가서 소리라도 고래고래 지르고 싶은 심정?
그래서 정말 미친 척 무박2일로 지리산 천왕봉을 가자는 이야기에 홀라당 넘어가 금요일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 결정엔 점점 몸쓰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드는 상황도 한몫을 했다. 내년엔 무릎이나 발목이 더 아파서 등산과 영영 이별을 할 수도 있는데! 하루라도 더 젊을(?)때 로망인 지리산에 한번 가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필 최고기온이 36, 7도를 육박하는 한여름에 간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설마 지리산은 시원하겠지 막연히 상상했다.
생판 모르는 일반 산악회 주최 지리산 등산에 나포함 지인 4명이 끼어서 가는 형식이었는데, 놀랍게도 무박2일로 새벽 3시부터 지리산 종주 33km를 13시간만해 해치우는 A팀이 16명이나 됐다. 혹시 버스 출발 시간을 넘겨 낙오되면 서울로 돌아오는 건 각자 알아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단다. 우어... 우리는 거의 최단코스로 10시간만에 천왕봉을 찍고 내려오는 B팀. 13.5km를 10시간에 완주하면 된다고 했다.
밤새 버스에서 자야 수월하게 등산을 할 수 있을 테니 안대와 목베개까지 준비했지만 ㅠ,ㅠ 그럼 그렇지... 당연히 숙면을 취할 순 없었고, 어느 틈에 3시가 다 되어 A팀이 성삼재에서 우르르 버스를 내렸다. 곧이어 3시 30분쯤. 우리도 백무동 계곡 주차장에 당도했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을 켜고 등산 준비를 했다.
새벽 지리산은 역시나 시원해서 23도를 가리켜 다행이었지만, 도시락과 얼음물, 커피와 간식까지 사상 최고의 무게로 꾸린 배낭이 어깨와 허리를 짓눌렀다. 물론 가장 무거운 건 비몽사몽 피로감과 불안감이 더해진 나의 육신이었다. 등산 고수이신 선배님의 안내로 빠르지도 않게 차근차근 경사를 오르는데 음...이상하다. 왜 숨이 잘 안 쉬어지지? 자꾸만 다리가 처지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해도 폣속에 공기가 잘 가 닿지 않는 느낌이랄까.
동행들이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리더이신 선배님은 속으로 나 때문에 천왕봉은 글렀고 장터목 대피소까지만 갔다가 하산해야겠다고 계산을 하셨다고 한다. ㅠ.ㅠ 말도 안되는 추측일 수도 있겠는데, 내 짐작으로는 폐소 공포증 같았다. 어둠 속에서 각자 헤드랜턴에 의지해 자기 발밑만 보고 가는 야간 산행이 상상속에선 되게 멋질 것 같았는데 현실의 나에겐 그냥 공포였던 모양이다. 조금 오르다 쉬기를 반복하며 내가 변명을 했다. 해만 뜨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실제로 사방이 서서히 밝아지자 숨이 잘 안쉬어지는 것 같은 짓눌린 느낌이 사라졌다. 미안한 마음에 그다음부턴 내가 맨앞장을 섰는데 초반에 많이 까먹은 시간을 벌충하겠다는 의욕이 간간히 과다해져 오버페이스! ㅋㅋ 이내 선두를 선배님께 양보했다.
여기가 바로 장터목 대피소
새벽 4시부터 오르기 시작해 장터목대피소에 당도한 것이 8시 30분쯤. 6시반쯤 간식으로 빵을 좀 먹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싸온 도시락을 먹을 순서였다. 선배님이 돼지고기와 라면사리까지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끓였고, 나는 산에서도 굳이 잘 먹겠다는 일념으로 얼린 냉면 육수와 도토리묵, 양념한 김치, 채썬 오이로 묵사발을 만들었다. 장터목 휴게소에선 바람이 꽤 불어 그늘에 있으면 바람막이를 입고도 덜덜 떨렸던 참이라, 뜨끈한 찌개도 먹고 곧이어 시원한 묵사발도 먹으며 꾸역꾸역 엄청난 양의 밥을 삼켰다. 점심은 하산 후에 느즈막히 식당에서 사먹을 작정이라 최대한 많이 먹어두라는 선배님의 당부 말씀. ㅋㅋ
해발 1750미터라는 장터목 대피소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그야말로 장엄했다. 와.. 지리산이 정말 큰산이로구나. 사방으로 겹겹이 펼쳐진 능선이 끝이 없었다.
부른 배를 두들기며 다시 천왕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 시간이 9시 30분.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는 1.7km라고 했다. 그렇다면 정상까지 목표시간은 대략 11시. 정상에서 좀 노닥거리다가 3시간 동안 하산해 점심 먹으면 딱이겠군, 했다.
보통 산에서는 1km 걷는데 30분을 예상한다. 헌데 지리산 표지판은 거리표시가 너무 박한 느낌! 서울 근교 산에서 느끼는 거리감보다 너무 멀었다. 500미터 거리 줄이기가 어찌나 어렵고 오래 걸리던지. ㅠ.ㅠ 틀림없이 표지판 잘못됐다고 투덜투덜 나중엔 욕이 막 나왔다. 아니 이게 무슨 1.5km냐고! 3km도 넘는 것 같은데!
길이 멀어서 욕이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운무와 구름에 휩싸였다 벗어졌다를 반복하는 풍경은 기가 막혔다. 우와...
물론 걱정스럽기도 했다. 계속 이렇게 운무가 몰려오면 천왕봉에서 시계가 별로 안 좋을텐데.. ㅠ.ㅠ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이왕이면 하늘이 맑게 개기를 빌며 바위 비탈을 오르고 또 올랐다.
드문드문 고사목을 만나 높은 산임을 실감하며 드디어 1915미터 천왕봉 정상!
걱정했던 대로 정상 부근은 구름에 휩싸여 시계가 좋지 못했고... 좁아터진 정상석 부근엔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이고 무셔라.
째뜬 내가 드디어 지리산 꼭대기를 올랐다는 뿌듯함과 행복함에 휩싸였다. 한라산 꼭대기는 어렸을 때 멋모르고 올라가긴 했지만 이미 오래 전에 남한 최고봉을 올랐고, 두번째로 높은 지리산 천왕봉도 드디어 구경했으니 이제 남은 건 설악산 대청봉 뿐이로다! ㅎㅎㅎ 장하다.
하산길은 중산리 계곡으로 3시간만 내려가면 된다고 했으니 최대한 정상 등반의 기쁨을 만끽하며 아이스커피도 한 모금 마신 뒤 11시반쯤 슬슬 하산을 시작했다.
이제부터 복병은 역시나 한낮의 더위였다. 천왕봉 정상 코스는 능선길이 많지 않아 그리 더운 줄 모르고 올랐는데, 내려갈 때는 숲을 벗어나 뙤약볕으로 걷는 길이 꽤 됐고, 28,9도 정도라고는 해도 습기와 열기로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물은 총 2리터 정도면 넉넉하다고 했었는데;;; 1.5km쯤 남았다고 했을 무렵 결국 내 물은 동이 나버렸고 후배와 동기에게 물과 음료를 얻어마시며 민폐를 끼쳐야 했다.
산에서는 절대 주변 사람들 물 뺏어먹으면 안된다고 배웠는데 어흑. 게다가 총 6.5km였던가... 3시간이면 된다고 하던 하산길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지. 가도 가도 끝이 없어! 하도 지리지리해서 지리산이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체력은 점점 고갈되고 다리는 무겁고, 땀은 쏟이지는데 계속 덥고... 어휴. 경사가 가파르지 않는 한 숨가쁠 이유도 없는 하산길은 속도만 잘 유지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체력이 떨어져 산을 내려가는 게 고역일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산길에 비하면 오히려 천왕봉 올라가기 직전엔 쌩쌩한 편이었네 그려.
폭염에 무박2일로 지리산에 간다고 했을때 주변에서 혹시 탈진할까 우려된다고 했었는데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숨도 안찬데 너무 힘들고 진빠지고 금방이라도 눕고 싶고. 마지막 삼거리대피소였던가... 거기서 쉴 땐 나도 모르게 배낭을 맨 채 의자에 드러누워버렸다.
하여간 10시간을 예상했다가 11시간 반만에 무사히 내려와 중산리 계곡 앞 식당에서 대충 씻고 옷도 갈아입은 뒤 감자전과 비빔밥으로 맛나게 늦은 점심을 먹었다. 서울로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은 5시. 종주팀 중에는 무려 9시간만에 33km를 달려 내려와 벌써부터 쉬며 기다린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인간이 아닌게야. ㅠ.ㅠ
무사히 서울로 돌아와 24시간 만에 신사역 앞에서 버스를 내리고 보니, 정말 지난 시간이 꿈결 같았다. 우와 내가 지리산 천왕봉엘 올라갔다니! 당연히 그날은 지리산 숲의 정기를 받으며 체력을 탈탈 소진한 뒤끝이라 집에 돌아와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
그러나 지리산 효과는 며칠 가지 못했다. 매일같이 부딪쳐야 하는 아래층 아저씨 아줌마와 말을 섞기만 해도 엄마도 나도 혈압이 올라갔다. 우엑!
번역은 과거 수도자들의 수행 도구였다는 말도 있듯이, 드물게 잠깐씩 짧은 작업을 할 땐 그래도 마음의 평화가 온 것 같았지만, 불면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다면 잠 안오는 밤에 뽀시락뽀시락 또 생산적인 취미생활을 하는 수밖엔 없었다. ^^
마침 출판사 다니는 후배가 서울도서전 홍보물로 만들었다는 에코백을 준 게 있었는데, 보라색과 민트색 중에 내 취향대로 민트색 프린트를 고르긴 했어도 딱히 내가 좋아하는 '푸른 색'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반대편을 푸른색 자수로 장식하리라!
자수책을 뒤적여 여름에 맞게 시원해보이는 도안을 골라 가방에 밑그림을 그렸다.
요즘엔 알록달록한 자수보다 이렇게 단색 자수 도안이 더 마음에 든다. 나중에 자수액자를 만들어도 예쁠 것 같다.
왼쪽이 선물받은 에코백의 원래 정면이고, 가운데는 내가 자수를 놓아 새로이 탄생한 정면이고... 에코백의 단점인 수납 문제를 해결하고 지저분한 자수 실매듭도 가리고자 한쪽에만 천을 대고 주머니도 달아 오른쪽 사진처럼 안감이 탄생했다.
생각보다 꽤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 자수실도 많이 들어, 처음 2개나 사놓았던 DMC 791번실이 모자라 중도에 멈췄다가 동대문시장에 다녀와야했다. 벌써 두어번 들고 나가보았는데, 이젠 정말 가벼운 천가방이 아니고선 어깨가 아파서 뭘 매고 다닐 수가 없다. 이것저것 많이도 넣고 다니는 내 취향엔 크기가 좀 작다 싶지만 그래도 캔버스 천이 두툼한 편이라 꽤 오래 애용할 것 같다.
가방의 완성과 더불어 더 이상 맘고생 할 일이 없으면 했으나.. 지난주에도 또 접촉사고로 전전긍긍할 일이 생겨 밤에 또 자수함을 꺼냈다. ㅠ.ㅠ 이번엔 간단하게 선인장 도안을 이리저리 참고해 냉장고 마그넷을 만들었다.
마침 친구 생일도 돌아오겠다;; 지난번에 받은 기프티콘에 답례겸... 자수 브로치따위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친구의 취향을 감안한 선택이다.
친구의 이니셜까지 새겨넣고도 막상 냉장고에 붙여보니 넘나 예뻐서 선물하지 말고 그냥 내가 가질까 한참 고민했다. ㅋㅋ (그러나 아직 전달하지 않았으므로 계속 유혹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또 만들긴 마그넷 재료가 부족해서리...
요 전 포스팅을 올린 뒤 비로소 나름 마음의 정리도 많이 된 느낌이고, 불면도 어느정도는 해소된 듯하다. 어차피 창피한 김에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나의 노력과 그 결과물 또한 자랑하고 싶었다. 남아도는 잉여력과 생산성의 결과물이 예쁘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은가. ㅠ.ㅠ
척추협착증 수술 때문인지 엄마는 식탁 의자의 나무 등받이를 불편해해서 늘 쿠션을 대고 앉아야 한다. 근데 쿠션은 자꾸 부엌 바닥으로 떨어져 성가시고 그렇다고 리본 달린 방석을 묶어놓으니 또 보기가 싫어서 결국 어버이날 선물 겸 은방을 꽃 자수를 놓은 쿠션 등받이를 만들었다. ^^;
우선 때 안 타는 진밤색 천을 사다가 은방울꽃 자수를 놓고...
등받이로 씌우려면 나름 튼튼해야 하므로 심지와 안감을 넣어 퀼트 비스무리하게 꿰매고...
얼렁뚱땅 솜을 넣을 겹천까지 꿰매 완성! (내가 만들었지만 어떻게 이렇게 그럴듯하게 탄생했는지 돌이켜보아도 잘 모르겠다. ㅎㅎ)
아래는 구름솜을 사다가 채워넣고 의자에 씌운 모습이다.
엄마는 물론 매우 만족하시었고... 한참을 뜸들이다 결국 내가 앉을 의자는 쿠션솜 없이 그냥 자수 등받이로만 만들어 씌웠다.
보통 사진이 들어가는 내용은 휴대폰으로 사진만 먼저 올려놨다가 텍스트는 나중에 컴퓨터 앞에 앉아 적어넣고 포스팅을 완성하는데;; ㅠ.ㅠ 일 없다고 컴퓨터를 아예 멀리하다가 실수를 저질렀다. 완성되지도 않은 포스팅을 공개하다니 창피하도다.. ㅎㅎ 그럼에도 계속 컴퓨터 전원조차 켜지 않는 게으른 나날을 며칠 보내고 이제 겨우 긴 메일을 써야해서 자리 잡고 앉았다.
비공개로 차곡차곡 쌓아둔 포스팅 갯수가 꽤 되는데;; 영화나 전시, 책 본 후기는 아무래도 좀 더 공들여서 생각하며 써야하니 도무지 마무리가 되질 않는다. 노상 침방나인 같은 자수 포스팅이나 하고 있으려니 그 또한 민망하여 저어하였으나 노출된 김에 또 핑계삼아 자랑질을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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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력 폭발로 인해 틈틈이 이어지는 취미생활의 기록이다. 아마 손목과 팔꿈치가 아프지 않다면 며칠에 하나씩 뭔가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르겠으나, 하루이틀 빡세게 바늘을 쥐고 나면 손가락마디까지 죄다 뻣뻣해져서 그나마 다행히 쉬엄쉬엄 하고 있다.
나름 작품 완성 순서대로 설명해보자면...
1. 컵받침
음력 1월이었던 작은올케 생일 선물로 만든 작품이다. 자수책을 보며 본인이 마음에 드는 도안을 골랐고, 브로치 같은 건 잘 안하고 다니니 실용적인 컵받침이 좋겠다고 주문했다.
뒷면엔 퀼트용 천을 골라 꿰맸더니, 친구가 뒷면이 더 예쁘다는 망언을 하며 약을 올렸다. 프린트 원단이 더 예쁜데 고생되게 이런 짓을 뭣하러 하느냐고.. ㅋㅋ
그러게... 손자수, 손뜨개, 손바느질... 요즘 같은 디지털, IT 최강 시대에 왜 이런 아날로그 회귀성 노동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뭐...내눈엔 이게 더 예쁘니까? ^^*
나름 생일선물이라고 리본으로 묶어 포장해 건넸더니, 생일 주인공은 아까워서 어디 컵받침으로 쓰겠냐며 벽에 걸어놔야겠다고 했다. 아니 그럼 안 되지! (오른쪽 아래는 재단이 잘못돼서 크기가 좀 다르고 정사각형 아니라고 클레임 들어왔었다;; ㅋ)
얼마간 걸어뒀다가 컵받침으로 쓴다고 하더니만 요샌 쓰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암튼... 컵받침으로 첫작품이었는데, 컵을 올려두려면 무늬를 가장자리쪽으로 작게 넣어 컵을 올려도 자수가 보이도록 하는 도안을 써야한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그치만.... 난 계속 우길란다. 컵받침도 가운데 무늬가 더 예쁘다!
집에 가서 이렇게 걸어두었다고 보내온 인증샷이다
2. 꽃 브로치
장미와 수국을 표현한 건데 그래보이나? ^^;
이건 전작에 이어 음력1월 마지막날 생신이었던 울 왕비마마를 위해 만든 선물이다.
꼬물꼬물 노상 자수를 놓고는 있는데 막상 당신에겐 하나도 선물을 안해드려 속으로 좀 섭섭해하는 눈치였다. 마침 생신도 돌아오겠다, 얼른 브로치를 수놓았다. 왕비마마 취향에 맞게 분홍분홍, 보라보라한 느낌의 장미와 수국.
여기저기 달아보다가 니트 조끼에 가장 잘 어울린다며 몇번 하고 다니셨더랬다.
1, 2번 선물은 같은 날 증정식을 했으므로, 포장 완제품(?)도 함께 찍어봄
3. 이니셜 브로치
한달동안 동거하고 있던 친구가 1, 2번 선물 제작의 과정을 다 지켜보고 있었으니... 게다가 또 3월말 출국 바로 다음주가 생일이었으니 하나 작품을 만들어주겠다고, 뭐든 골라보라고 호기롭게 자수책을 들이밀었더랬다.
허나 친구는 고생스럽게 뭘! 아무것도 하지 마! 이런 식이었다. 그럼 내 맘대로 젤 쉬운 꽃브로치 하나 만들어준다고 협박했더니 팬심 폭발하여 '그분'의 이니셜을 새겨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ㅎㅎ 그분이 사인할 때 덧붙이는 옆으로 뚱뚱한 하트까지 나름 도안도 팬클럽을 여기저기 뒤져서 새기고 꾸며 선물했다.
자수실을 완전히 구비하지 않은 때라... 이제보니 잔잔한 꽃색깔이 좀 더 다채로웠으면하는 마음이 있네그려. 암튼 이 브로치는 친구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다.
4. 별자리 컵받침
아주 수월하고 시간 덜 드는 단색 도안을 골라 또 다시 꼼지락꼼지락 만들어본 컵받침 세트.
열심히 다렸더니 번떡번떡 ㅋㅋ
이 또한 크기가 살짝 제각각이다. 아 몰랑. 공산품도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모서리 꿰매서 뾰족하게 뒤집기가 만만칠 않았다. 핑계라면 앞뒤로 제법 두툼한 리넨천을 붙였더니만... ㅎㅎ
5. 꽃 브로치 again
엄마한테 만들어드린 장미꽃 자수를 분홍바탕에 놓아본 것. 이십대부터 입때껏 핑크공주로 살고 있는 후배를 위해 고른 배색이다. ^^;
근데 이런 꽃자수 브로치는 나 같은 사람이나 좋아라하지 개인적인 스타일상 막상 받고도 처치곤란으로 느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에코백 같은데나 달면 모를까... 근데 또 딱 떨어지는 정장 입고 다니는 사람들은 에코백 패션을 모른다! ㅋㅋ
6. 자수 손수건
마지막으로 주문(?)받은 선물이다. 설날에 모였을 때 큰올케는 손수건용 자수 도안을 골랐다. 원래는 파우치에 놓인 꽃다발이었는데 자수 손수건을 갖고 싶으시다고...
해서 지난주 생일에 맞춰 완성하느라 다시 손수건이랑 실을 더 사러 동대문에 다녀온 후에야 마무리된 작품. 레이스까지 달려있는 자수용 손수건을 찾으려 발품을 꽤 팔았으나 못 구하고 ㅠ.ㅠ 오버로크 처리된 1500원짜리 손수건을 사와 가장자리를 홈질로 꿰맸다. 자수가 아까워서 그냥 놔둘 수가 있어야지!
원본사진과 비교샷 ^^
원본은 바탕이 베이지색이라 꽃봉오리가 흰색이지만, 흰바탕인 손수건인지라 연노랑으로 바꿨고, 주인공의 주문대로 선물받을 이의 이니셜도 새겨넣었다. 내가 해놓고도 계속 감탄하며 사진도 여러장 남김 ㅋㅋ
원래는 한쪽에만 꽃다발을 수놓을까 했으나...
반대편이 넘 심심할까봐.. 그리고 또 나의 이니셜도 어딘가 남기고 싶어서 욕심을 냈다. 전문가의 도안을 따라한 게 아니고 내 맘대로 배열해놓고 막 예술가적 감수성 폭발했다고 자뻑모드.. ;-p
불안감 탓인지 책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멍하니 놀기만 하기엔 식충이스럽고... 손목은 아파도 뭔가 생산적인 노닥거림을 하는게 확실히 시끄러운 정신 가다듬기에 도움이 된다. 한땀한땀 수를 세며 샘플 사진이나 도안과 자수를 비교하고 있으면 정말로 잡생각이 들 수가 없다. 혹시라도 잡생각이 삐지고 들어온 순간 바로 틀려 풀어야하는 사태 발생! 귀찮아서 풀지 않고 개성이라 우기겠다 맘먹은 부분도 많지만, 책에 있는 도안이 아니고 인터넷을 뒤져 시도해 본 '작품'들도 이 정도면 됐지 싶어 대체로 흡족하다.
1. 또 브로치
도안이 작아 가장 쉽게 뚝딱 끝낼 수 있는 브로치로 또 뭘 만들까 하다가, 2개를 골라 만들었다.
이건 완성 작품 컷이고... 왼쪽 라벤더 꽃의 '불리온 스티치'를 얕잡아보고 대충 연습하다 도통 모양이 안나와서 유튜브 동영상 보며 다시 제대로 악혔다. 무엇을 배우든...유튜브에 정말 없는게 없다! 일일이 동영상 찍어 올리는 분들에게 정말 깊이 감사할 일이다.
왼쪽 위는 사진만 보고 홀로 따라한 실패작 ^^
스파이더로즈 스티치라고 하는 장미 크기가 맘에 안들어 하나 더 만듬
유튜브 영상 보고 제대로 완성한 라벤더꽃 브로치 ㅎㅎ
2. 있던 가방에 자수를 또 놓음
4계절 중 겨울 빼고 거의 노상 들고 다니던 청치마 재활용 가방은, 축 쳐진 어깨에 두툼한 겨울 외투까지 걸치고선 도무지 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겨울엔 그저 크로스백이나 배낭만 들어야 하는 부실한 어깨. ㅠ.ㅠ
암튼 봄이 오면 곧 다시 들고 다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에코백을 캔버스 삼아 나무를 수놓았다. 갖고 있는 책 도안에 마침 데님천을 바탕으로 한 게 있어서 이거다 싶었던 것.
그러나 한겹 천을 수틀에 끼우고 자수를 놓아도 쉽지 않은데 안감까지 넣은 두겹 천을 수틀에 끼우고 가방끈까지 훼방을 놓는 상황에서 꾸역꾸역 도안을 옮겨 베끼고 자수를 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이 들고 날때 끈 안쪽으로 실이 지나가거나 반대편 가방 천이 꿰매지거나.. ㅋㅋ 실을 몇번이나 풀어야했다.
그래도 결국 뿌듯한 작품 완성!
아래는 원래 작품 사진과 비교샷. ^^;; 느낌이 꽤 다르다. 내 맘대로 잎맥을 더 넣은 것도 있고 ㅎㅎ
멍하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면 좋으련만 틈만 나면 생선성이 폭발한다. 내가 이토록 조바심 많은 인간인줄 새삼 느끼는 나날이다.
내가 충동적으로 자수를 해볼까 생각했던 적은 전에도 몇번 있었다. 공주였던가 어느 약선밥상 밥집에서 수제 자수브로치를 팔고 있었는데, 진짜 간단한 꽃 수놓아놓고 막 만원 만오천원...(비싸다면서 결국 샀다 ㅋㅋ) +_+ 인건비를 감안해야겠지만 저 정도는 나도 할텐데! 싶었던 거다. (그러나 막상 직접 만들어보면 그냥 사는 게 차라리 싸다는 걸 절감한다. ;-p)
그러다 작년엔 특히 뭔가 손꾸락을 꼼지락거려 뭔가 더 만들고 싶어졌는데 그건 아마도 웹툰 <오늘도 핸드메이드>를 열심히 봤기 때문인 것 같다. 5분스케치를 해보니 웹툰 작가들이 특히나 막 위대해보였고, 더더욱 미술전공자로 온갖 만들기에 능한 황금손 작품들을 보며 감탄함과 동시에 뜨개질과 프랑스자수 욕망이 더욱 불타올랐다. 마침 뜨개질 책도 번역했겠다. ㅎㅎ
어느덧 이 웹툰은 완결되어 단행본도 나왔는데, 책도 사고싶단 생각을 하긴 했으나 막상 사진 않았다. 책까지 사면 거기 들어 있는 모든 핸드메이드 작품을 막 다 따라하고 싶어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ㅋ
암튼 프랑스자수 책 선물도 2권이나 받았고, 또 서점에서 책구경하다 내가 충동구매한 자수책도 있고 이미 발동은 부릉부릉 걸린 상태. 부리나케 필요한 색깔의 린넨과 자수틀을 인터넷으로 사들였다.
문제는 필요한 수십종의 실 색깔을 일일이 인터넷으로 제대로 받기 어렵다는 점. 번호가 워낙 비슷비슷하다보니 실색깔 번호 잘못 받았다는 불평 후기가 엄청났다. 한개 몇백원밖에 안하는 실을 일일이 골라 반품할 수도 없고, 그게 아니면 그냥 필요없는 색깔까지 세트로 장만해야하고... 그 속에 내가 필요한 색깔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고. 쳇.
해서 동대문시장에 한번 나가긴 나가야하는데.. 마음속으로 고민만 하던 차에 덜컥 DDP에 전시를 보러 가게 될 줄이야! 이것은 나의 취미생활을 위한 운명적 계시가 아닌가... 뭐 이런 얼토당토 않은 핑계를 대가며 메모지에 빼곡히 번호를 적어가지고 자수실을 사러갔다. 물론 실을 감아둘 '보빈'이라고 부르는 실패랑 보관상자랑 자수바늘이랑, 수성펜, 트레이싱페이퍼, 먹지, 순간접착제, 브로치 재료까지... 바구니에 죄다 담고나니 ㅋㅋㅋ 7만원이 다 되더라는;; (원단이랑 수틀 구입비까지 더하면 10만원. 흠... 1년 취미생활 비용으론 괜찮은가? 과연 나는 몇번이나 더 동대문 재료상으로 달려가게 될까. 화방 가서 사야하는 나무 판넬도 있는데;;)
아래는 책을 보며 내가 목표로한 자수 작품 사진과... 그아래 손목 염증 도져가며 일일이 번호 적고 실패에 감아둔 아름다운 자수실이다. +_+ 내가 구입한 건 책에서 권하는대로 앵커 사와 DMC 25번. ㅎㅎ
맨처음 감은 흰색 실은 욕심 부리고 실 2개를 한꺼번에 감았더니 뚱뚱해서 안꽂히더라. ㅋㅋ 보빈에 감아 파는 자수실이 죄다 8m였던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ㅠ.ㅠ 암튼 많이 필요할 것 같은 색깔은 2개씩 샀더니만 보빈이 결국 모자랐다.
첫날은 자수실 정리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
둘쨋날밤에 드디어 제일 먼저 시도할 작품을 골랐다. 4개절 나무 브로치 중 가장 간단한 겨울나무.
책에 실린 도안을 트레이싱페이퍼 대고 그려서 다시 먹지대고 천에 옮기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ㅠ.ㅠ 엄청 짓눌러 그려도 잘 안보여! 대충 감으로 비슷하게 하다보니 원본 도안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포스팅용으로 중간샷도 찍으려니 에고... ㅋㅋ 둥근 브로치 판에 씌우려면 저렇게 홈질 후 실을 잡아당겨 주름을 잡아준 뒤 뒤에도 꽁꽁 당겨가며 실로 꿰매야한다. 겨울나무는 어쩐지 첫 작품이 마음에 안들어 하나 더 만들었다.
두번째로는 여름나무. 실 하나에 여러 톤의 초록색이 들어간 실은 단색보다 두배반이나 비싸다. 일반 단색실이 5백원이면 복합사라고 하는 색실은 천이백원. 염색하기 어려울테니 당연하겠지.
여름나무엔 내 이니셜도 새겼다 ^^v
이상하게 같은 크기인데 겨울나무 동그라미가 더 커보인다. ㅋ
일단 여기서 또 하루를 마감하고 그 다음날.. 욕심을 부려 봄꽃 핀 나무를 시작했다. 역시나 연분홍색은 복합사로 프렌치너트 스티치를 해야하는데, 와 소싯적에 자수 좀 놔봤다고 자부심 부렸던 것도 무색하게 책 속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매듭이 풍성하게 안만들어졌다. ㅠ.ㅠ 욕심 부려서 한번 더 휘감으면 막 튀어나오기나 하고.. 젠장. 거의 마지막에야 요령을 좀 터득했는데, 내가 실을 감을 때도 바늘을 꽂을 때도 너무 꽁꽁 잡아당긴 탓이었다. 암튼 여기서도 먹지 대고 그린 도안은 잘 안보여서 막 대충대충 채우기 신공..
가을을 제외한 (생각해보니 가을용 황갈색 원단은 안 산듯;;) 봄여름겨울 3계절이 완성되었다. 첫 작품치고는 이만하면 훌륭하다고 자화자찬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잠들었지만.. ㅠ.ㅠ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손목이 심히 아팠다. 양념통 뚜껑을 열 수가 없을 만큼 ㅠ.ㅠ 해서 당분간 자수 취미생활은 좀 쉬어야겠다. 내일 정형외과 가면 무릎 대신 손목에 물리치료를 받을까 그러는 중.
Foodie 앱으로 찍었더니 사진이랑 실제 브로치랑 구분이 잘 안간다! ㅎㅎ 이것이야말로 사진빨이로다.윗줄이 책속 사진이고 아래 3개가 나의 실습작품임.
원작과 도안은 박성희의 <처음 만나는 프랑스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