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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27 비, 운, 집 7
  2. 2011.07.27 비사이로 막가 7

비, 운, 집

투덜일기 2011. 7. 27. 18:15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언덕 동네에 자리잡은 우리집 뒤쪽엔 축대로 옹벽을 쌓고 그 위로는 잡풀과 잡목이 자라는 경사진 공터가 있다. 그런데 그해 여름 폭우가 쏟아져 작게나마 산사태가 나는 바람에 그 공터의 흙이 우리집을 덮쳤다. 마침 우리는 동해안으로 가족 피서를 떠났던 터라 서울지역에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 줄도 몰랐다가 올라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얼른 집으로 가보라는 아버지 동료의 연락을 받았다. 운이 좋았던 우리와 달리 아래층에선 두 사람이나 목숨을 잃는 엄청난 사고였다. 집 뒤쪽의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1층 아주머니와 작은 방에서 쉬고 있던 막내딸은 물을 잔뜩 머금었다가 순식간에 밀어닥친 흙더미에 명을 달리했고, 거실에서 TV를 보던 아저씨만 홀로 목숨을 구했다고 했다. 부리나케 집에 와보니 2층인 우리집에도 뒷베란다와 창문으로 흙이 밀려 들어와 내방과 동생방에 수북하게 쌓여있고 TV가 그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우리집을 보고 나니 아래층은 집안 전체가 거의 다 토사에 파묻혔다는 사실이 이해되었다. 2층에도 사람이 있는 줄 알고 119 구조대가 창문을 뜯고 들어와 확인을 했고, 이미 집안에서 흙을 퍼내는 작업이 한참이었다. 만약 우리가 여름휴가를 떠나지 않았다면 막내동생과 나 역시 자다가 봉변을 당했을지 모른다며 다들 하늘이 도왔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산사태가 그리도 무섭다는 걸 난생처음 경험한 셈이었다.

산사태로 아파트 2, 3층까지 흙더미에 파묻힌 광경을 뉴스로 보며 옛날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사고 수습을 하고 집수리를 하는 동안 거처를 모두 큰동생네 신혼집으로로 옮겨 피난살이 하듯 지냈다. 구청에선 집 뒤쪽 경사진 공터를 정비하고 수로를 내고 나무를 더 심었지만, 우리집은 창문과 베란다 섀시가 모두 파손되었는데도 '집이 무너진 건 아니'라며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집수리는 오로지 우리 몫이었다. 심지어 인명이 상한 아래층도 위로금조로 얼마간 나왔을 뿐 보상비는 없었다고 들었다. 상심한 아래층 아저씨는 곧이어 집을 팔고 이사를 나갔지만 우리는 잠시 이사 욕망에 '들먹'하다가 그냥 눌러앉았다.

고비가 번역한 <식스펜스 하우스>를 읽다가 나는 도시에 살지만 정작은 시골집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한해가 멀다하고 상태 좋고 깔끔하고 번듯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한다. (중략) 마치 집을 커다란 여행 가방으로 보는 것 같다. 시골에서는 다르다. 우리는 어떤 집이 갈라질 때까지 살다가, 갈라진 틈에 회를 바른다. 집이 기울면 보강을 한다. 흔들리면 밧줄로 붙들어 맨다. 벌어지면 조인다. 무너지기 시작하면 토대를 덧댄다. 그러더라도 계속 그 집에 산다."(255쪽) 처음  이집에 이사를 왔을 때 무려 '연탄 보일러'를 때던 집은 석유보일러를 거쳐 도시가스 보일러로 바뀐 엄청난 난방의 역사마저 갖고 있다. 집수리의 역사는 말도 하기 싫다. 그러면서 줄곧 그 집에 살고 있다. -_-;; 우리의 경우 시골 사람들의 집지키기 철학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재테크 거부감과 귀차니즘 때문이다. 말로는 노상 이사 가고 싶다고 되뇌면서도 나는 사실 나이만 먹었지 이사와 관련된 모든 과정이 무섭다. 집을 팔고 사고 30년가까이 묵은 엄청난 짐을 정리하고 옮기고... 으어. 새삼 집안 돌아가는 꼬라지에 눈길을 돌린 엄마는 가을되면 뒷베란다 지붕도 고쳐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이사를 가자고 말했지만, 나는 과연 이 집을 떠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무서운 비 이야기 쓰려고 시작했는데 얼토당토않게 집타령으로 끝을 맺을 줄도 몰랐다. 대체 아는 게 뭐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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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이로 막가

투덜일기 2011. 7. 27. 03:19

그야말로 70년대 유머가 생각나 제목을 저리 적었다. 저게 세상에서 제일 날씬한 일본 사람 이름이었던가? 헛. 답은 생각나는데 질문이 정확하게 떠오르질 않는다. -_-'

암튼 서울경기 지방에 호우경보가 내렸다지만 희한하게도 내가 딱 왕복 100km를 운전해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오는 동안엔 무서운 폭우가 계속 나를 피해다녔다. 길이 너무 안 막힌 덕분에 약속시간보다 무려 30분이나 일찍 도착해 이리저리 마트를 배회하다 시간 맞춰 커피집엘 가보니 친구는 비옷에 장화까지 신고 앉아 있었다. 내가 주차장으로 들어설 때만해도 환하게 말짱했던 바깥 하늘은 시커멓게 변해 우산으로도 도저히 가릴 수 없는 폭우를 퍼붓는 중이었다. 무섭게 내리던 비는 우리가 커피, 밥, 또 커피를 곁들여 긴긴 수다를 떠는 동안 다시 잦아들어, 느즈막히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또한 수월했다. 결국 나는 챙겨간 우산을 단 한번도 펴지 않았고, 세찬 빗줄기에 자동세차 하듯 차체에 떨어진 무궁화 꽃잎 좀 씻겨 내려가길 빌었던 바람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귀가하자마자 다시 천둥치며 쏟아지는 폭우가 새벽까지 그치질 않고 있다. 베란다 지붕에 '빵꾸'라도 낼 것처럼 몹시도 요란하게.

폭우속 밤길 운전이 얼마나 위험한 줄 잘 알기에 이런 날 교묘히 시간차 공격을 해준 비가 고맙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래 벼르다 세차하고 나면 꼭 비오는 징크스가 쌓여 이젠 빗물 자연세차도 못하게 '비사이로 막가' 신공까지 불러온 것인가 싶어 킥킥 웃음이 났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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