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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2. 4. 25. 16:24

아파트도 말로는 공동주택이지만 말본연의 의미대로 '주택'인 집에 살려면 여러가지 불편함이 따르고 각별한 관리도 필요하다.  일년에 한번 구청에서 정화조 청소하라고 엽서 날아오면 업체 불러다가 청소해야지, 몇년에 한번은 외벽도 다시 칠하고 옥상방수도 해야지, 망가진 방충망도 갈아야지...

용인 어느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자기네 단지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1년에 한번 주방 팬 청소도 해주고 전화만 걸면 관리실에서 나와 형광등도 갈아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우리집에선 물론 그런 일들이 이제 다 내 차지다. 아버지가 집에 사다 쟁여놓으셨던 장수램프 형광등이 다 떨어져 얼마전 마트엘 갔더니 이제 장수램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죄다 중국산 GE 제품이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직원에게 왜 국산은 없으냐고 괜히 신경질 부리다 어쩔 수 없이 또 길이별, 종류별로 GE 형광등을 사다 쟁여놓았다.  중국산 형광등은 얼마나 오래 가나 두고봐야지.

암튼 올 봄엔 외벽 칠과 방수를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와 6년 만에 새로 페인트를 칠했다. 사람을 불러 견적을 받고 어쩌고 공동부담액을 나누고 내가 주동이 아니었는데도 약간 골치가 아팠다. 아침 8시부터 업자들이 와서 외벽을 긁어대고 칠 작업을 사흘이나 하는 통에, 나는 첫날 커피 타서 내간 것 말고는 한 일도 없이 신경이 곤두섰다. 어휴.

30년도 넘은 오래된 집에 겉만 새로 칠해놓으니 언뜻 꼴사납게 화장발 잔뜩 세워 오히려 주름살이 더 드러난 늙은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째뜬 깨끗해져 개운한 건 사실이다. 집안 역시 제대로 가꾸자면 도배할 때도 됐고 주방 싱크대도 확 갈아치우고 싶다는 욕심을 품다가 또 결론은 이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 재건축은 아예 물건너갔으니 금세 팔릴 지 모르겠으나, 다시 부동산에 알아봐야겠구나 싶었던 거다. 부동산에 매물 내놓을 때 사진도 있으면 도움이 된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어본 바 있어서 충동적으로 사진도 찍었는데, 페인트발이 화장발처럼 화사하기를 바랐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조명발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이 문제일수도;;). 벌써 무성해진 나무 때문인지 무슨 귀곡산장 분위기가 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진 올리면 오히려 보러 올 사람도 안 올듯.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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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은 이사에 미쳤으되 부동산에 연락을 하는 순간, 언제 낯선 사람이 온 집안을 헤집고 돌아다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고 있다. 과연 나는 이 집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하여간 사소한 노력의 일환으로 쓰지 않는 오래 된 그릇을 한 보따리 쓰레기봉지에 담아 버렸고, 앞뒤 베란다 여기저기 뒹굴던 빈 화분들도 큰 자루에 넣어 처분했다. 어찌나 쓰레기 자루가 무거운지 비틀비틀 낑낑대며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 골목 어귀까지 내다놓은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팔과 어깨가 쑤셨을 정도였다. 쓸데없는 오래된 세간살이는 엄마 안 계실 때 몰래몰래 자꾸 처분하라는데, 버리지 못하는 병은 모녀가 똑같으니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나마도 옥상 방수작업은 계속 오는 비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어떤 집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참... 골치아프다. 지금껏 30년 가까이 붙박이로 살 수 있었음이 그저 감사할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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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투덜일기 2010. 12. 26. 21:17

과학이나 상식으로 접근하면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나 혼자 굳게 믿고 있는 편견 가운데 하나는 바로 물 끓이기.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으니까 (여기서 고도나 물의 순도는 논외로 하자;; 복잡한 거 모른다) 30초를 끓이든 1분을 끓이든 5분을 끓이든 물의 온도는 똑같을 테고 성분이 달라지거나 하지도 않을 거다. 그런데 나는 주전자 꼭지에서 수증기가 팍팍 올라올 만큼 꼭 물을 '팔팔' 오래 끓여야만 커피 포함 모든 차를 맛있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 오랜 편견은 아마도 생수나 정수기가 생활화되기 이전에 수돗물로 모든 찻물을 끓이던 시절 수돗물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내가 원두커피와 친해지기 이전에 생겨난 것이고, 특히 인스턴트 커피를 탈 때는 반드시 해당되는 '진리'였다. 

내가 녹차를 몹시도 싫어하면서 떫고 비린내 나고 비위에 거슬리는 맛이 난다고 주장하면, 녹차 애호가인 친구는 내가 찻물 온도를 못 맞춰서 그런 거라고 코웃음을 치지만 그 친구가 청정지역에서 수행자들을 위해 재배한 특수 녹차를 다관까지 갖춰놓고 만들어줘 봐도 도무지 녹차는 내 취향이 아니다. 나도 집에서 왕비마마 녹차 만들어 드릴 때 물 뜨거우면 더 떫어지니까 충분히 식혀서 티백을 넣는단 말이닷! 드물게 드립 커피를 만들어 마실 때도 물의 온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기 때문에 드립 전용 주전자는 없더라도 일단 물을 팔팔 끓인 다음에 사기로 된 작은 주전자에 일단 옮겨 대강이나마 물의 온도를 90도쯤으로 맞춘(다고 생각한다 ^^;)다. 물을 붓는 게 아니라 아예 푹푹 오래 끓여야 하는 대추차나 둥글레차, 생강차 같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향긋하거나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감돌 때까지 약한 불에 뭉근히 끓여야 제격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집집마다 없는 집이 거의 없다는 무선주전자를 사고 싶지도 않고 전혀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이미 탁 하고 꺼져버리는 경박함도 마음에 들지 않고, 일단 그렇게 끓다 만 물로는 커피믹스에 금방 부어도 맛이 없다니깐! +_+ 내가 근거 없는 이 이론을 제시하면 더러 동의를 하면서 무선주전자 작동 버튼을 한번 더 눌러 두번 끓인다는 이도 있다. 코코아든 커피믹스, 녹차든 홍차든, 캐모마일 차든 국화차든, 일반 주전자로도 물을 좀 덜 끓였거나 무선주전자로 물을 끓여 타면 뭔가 미묘하게 덜 된 맛이 느껴지는데, 이게 순전히 나의 무선주전자 불신 탓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원두커피의 경우는 에스프레소를 희석할 때도 끓인 물을 적정온도로 식혀 부어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테고, 드립 전용 주전자까지 필요한 드립커피는 더 말할 것도 없으니 커피물을 팔팔 오래 끓여야 한다는 나의 주장은 순전히 억지이고 오류일지 모른다. 강릉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커피전문점 사장님도 전기 무선주전자로 끓인 물을 드립 주전자에 담아 (그 과정에서 적정온도인 90도가 될 거라고 했다) 커피를 만들더라. ㅋ 그저 내가 좀 구식이고 아날로그형 인간이고 사소한 데 집착하는 구석이 있다고 인정할 뿐이다.

문제는 자동 온도조절 장치가 있는 무선주전자와 달리 가스불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팔팔 끓이다가는 자칫하면 주전자를 태워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이미 내가 '해먹은' 주전자가 서너 개는 되는 듯하다. 나처럼 정신 나간 장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들을 위해 익히 발명된 '삐삐 주전자'가 있기는 하지만, 난 또 시끄러운 그 물건도 혐오하는 사람이다.-_-; 예쁘장한 법랑 주전자로 찻물을 끓어야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걸 어쩌랴. 그래서 찻물을 올려놓고 수다를 떨거나 딴짓을 하다 허거걱 놀라 달려가는 경우가 간간이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물이 다 졸아들지 않아 새로 끓이기만 하면 될 때도 있지만 심한 경우엔 법랑에 금이 갈 정도로 쇠가 달구어져 십년감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에도 딸기 무늬가 들어간 법랑 주전자를 그렇게 망가뜨려 보냈건만, 얼마 전 아끼던 '에**' 주전자를 또 그렇게 해먹고 말았다. ㅠ.ㅠ 한두 잔 타기 위한 찻물을 올려 놓으면 반드시 그 옆에서 지키다가 임무를 완수해야 함을 원칙으로 정했으면서, 거의 1년 주기로 그 원칙을 까먹는 탓이다. 이쯤 되면 집집마다 아줌마들이 왜 무선주전자로 정착을 하는지 알 것도 같다. 차 한 잔 탈 물을 끓이는 데는 1분도 안걸린대고, 가스불을 켜면서 발생하는 유해가스도 없으니 탄소배출량도 적을 거라고 누군가 주장하던데, 그 진위는 몰라도 1년에 한번씩 주전자를 태워먹어 새로 사는 것보다는 그쪽이 환경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긴 하다. 그래봤자 나는 또 일반 주전자를 사들이겠지만서도... 

쓰던 법랑 주전자를 태워먹은지 몇달 됐는데도 아직 새로 안(못)사고 엄마네 삐삐 주전자를 빌려다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으로 살지 마음을 정하지 못해서다. 또 다시 편하고 익숙한 '에**' 주전자로 살것인가(그렇다면 또 어떤 무늬로??), 그냥 법랑주전자이긴 하되 별로 안 예뻐도 저렴한 것으로 부담없이 장만할 것인가, 아니면 이왕 사는 거 더욱 깜찍한 무늬가 들어간 고가의 유럽산 법랑 주전자를 살 것인가(이 또한 브랜드와 무늬가 여러가지다 -_-;) 우유부단한 마음으로는 쉽사리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으휴. 앞으로 또 태워먹지 말란 법이 없으니 너무 비싼 건 안 사는 게 나을 것도 같지만, 또 고가의 주전자라면 아끼느라 더더욱 조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러니 계속 갈팡질팡이지! 까짓 주전자 하나로도 꾸질꾸질 청승맞게 (문득 하이킥 해리 생각나는 조어로다;) 이러고 고민하는 내가 참 싫다. 주전자 태워먹는 나는 더욱 싫고! 물 끓이는 것조차 집착하는 내가 제일 싫은 건가? 아무려나 차 마시는 기분이 안 나서라도 얼른 주전자를 사긴 해야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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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라면 병

투덜일기 2010. 2. 24. 23:56

거의 매일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인간이지만 아주 가끔 컴퓨터를 켜지도 못하는 날이 있어 블로그 접근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나름 급한 일이라 자중한다고 블로그를 자진차단하는 날도 있다. 그렇게 만 이틀만에 블로그 세상에 들어오면 여기저기 새로운 글도 많고 요즘은 댓글이 수십개씩 달리는 게 유행이라 따라잡기가 만만찮음을 느낀다. 마치 모두들 다 아는 사이인 자리에 홀로 초면으로 끼는 듯한 어색한 기분에 비할까? 특히 이미 댓글이 열몇 개를 넘어가는 글엔 나도 모르게 손이 오그라들면서 머리가 잠시 멍해진다. 그러고는 곧 이어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꼭 댓글을 남겨 글을 읽었다는 표시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오가는 댓글 속에 싹트는 인정(?)이라지만 이른바 눈팅이라는 것만 하면서도 블로그질은 즐거울 수 있는데... 게다가 똑같은 견해를 뒷북치듯 댓글로 남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이다.

그간엔 최대한 나를 채찍질해서 뒷북 댓글이라도 성실히 달려고 노력해왔는데, 점점 그러기가 싫다. 요즘 이웃들의 포스팅 가운데서는 댓글이 50개를 넘어가는 글들도 있는데 하나하나 너무 재미있어 또 어떤 댓글이 달렸을까 자꾸만 가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어떤 글에 내가 읽기도 전에 38개쯤의 댓글이 달려 있으면 돌연한 댓글 부담 때문에(확실히 병이다!) 본문도 잘 안읽힌다. ㅋ

그렇다고 또 글에 아무도 댓글을 안 달아놓은 청결한 상태에서 다는 첫 댓글을 즐기는가 하면 절대 아니다. 누구 글이든 나는 첫 댓글을 다는 게 꺼려지고 두렵다. <아싸~ 1등!> 이렇게 달아놓고 즐거워할 수도 있는 첫 댓글을 나는 왜 무서워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설마 댓글에도 <글막힘 혹은 writer's block>이란 게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병적인 소심함 때문? 

처음 블로그질을 시작하며 나는 내심 원칙을 하나 정했다. 블로그질이 과도한 스트레스가 되는 날, 과감히 관두겠다고. 그런데 알게 모르게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블로그 세상의 <예의>라는 게 슬슬 나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모양이다. 블로그 세상에서 처음 스트레스를 느낀 건 꼴같잖은 모 건축가가 엉뚱하게 명예훼손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바람에 티스토리측에게 잠시 글을 삭제당했던 사건 때문이었고, 소송을 불사할까보다며 전의를 불태웠던 나의 고민이 무색하게도 글이 회복되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된 적이 있다. 그런데 댓글 스트레스는 그렇게 파르르 단기적인 분노와는 좀 다르다. 내가 극복하지 않으면 점점 더 큰 압박감으로 나를 삼킬 수도 있는 끝도 없는 모래수렁이랄까.

하기야 악플 달릴 것을 두려워하여 요번에 나온 소녀시대의 신곡이 너무 싫다는 내용의 포스팅은 아예 하지도 않을 정도로 이미 자기검열은 심해졌다. 재미없는 신세한탄만 계속 쓰는 것도 좀 민망하고, 스스로 재미 없는 포스팅이라고 여겨지는 글은 한참이나 비공개로 두었다가 간신히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쓰다 말았거나 비공개로 내버려둔 글이 꽤 된다. -_-;;) 그나마 다행인 건 일주일씩 포스팅을 건너뛰어도 거뜬해졌다는 사실이다. ㅋㅋ 구구절절 적고 보니 나는 아직도 초보 블로거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뭘 이런 걸 다 갖고 병이네 뭐네 고민을 하고 앉았는지 원.

어쨌거나 다 적었으니 이참에 선언을 해야겠다. 이웃이신 당고님의 어느 글에 예순, 일흔, 팔순에도 블로그 이웃하면서 글로 소통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달린 댓글에서 나도 안경다리에 줄 달린 돋보기를 쓰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열심히 블로그질을 하고 있는 노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슬몃 웃었기 때문에 내리는 선언이다. 수십년 이 짓을 계속하려면 더 편해져야 할 게 아닌가!

해서, 앞으로 나는 댓글을 소홀히 할 것이다. (내 글에 달린 이웃의 댓글에 일일이 답다는 것도 사실 귀찮았다)
아니 댓글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댓글로 이웃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을 테다!
나도 모르게 자판이 두들겨지는 댓글만 달겠노라!

설마 이 선언 때문에 다른 스트레스가 생기는 건 아니겠....지? 나의 선언이 어떻게 지켜질지 나도 궁금하다. 하하하.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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