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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01.18 올림픽 수제비 10

달걀을 먹는 방법

놀잇감 2013. 4. 29. 01:54

먹방계의 빛나는 샛별 윤후(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모르시는 분은 패스~ ㅋㅋ) 덕분에 삶은달걀과 달걀 프라이의 진가를 새삼 알았다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걸로 안다. 집집마다 냉장고에 달걀 없이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도, 그간 달걀은 나쁜 콜레스테롤의 주범 정도로나 인식되다가 다시 오명을 벗고 맛난 간식거리로 재탄생한 셈이다. 하지만 체질상 콜레스테롤 높은 유전자를 갖고 있기에 달걀 노른자를 비롯해 기름진 육류, 오징어, 갑각류 따위를 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달걀을 사랑하며 종종 밤참으로도 애용한다. 달걀이 지금처럼 흔하고 싸지기 전, 퍽이나 고가의 먹거리였던 시절을 내가 아주 잘 아는 세대이기 때문인 것도 같다.

 

어쨌거나 내게 '달걀 프라이'의 이미지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이렇다. 방학 때 놀러간 외할머니 댁. 방바닥에서 만화책 읽으며 오후 내내 뒹굴거리던 막내 외삼촌이 배가 출출하다며 부엌에 얼굴을 들이민다. 계란 부쳐줄까? 이름이 '언년이'였던 식모 언니가 달걀 한두 개를 얼른 들기름에 부치고 소금을 살짝 뿌려 접시에 담아 삼촌에게 안긴다. 젓가락으로 후루룩 쩝쩝쩝 맛있게 달걀 프라이를 먹던 외삼촌은 선심쓰듯 달걀 흰자 한 귀퉁이를 잘라 내 입에도 한번 넣어준다. 그러고는 접시를 마실 듯 나머지 달걀을 통째로 폭풍 흡입. 집에서도 엄마가 밥 반찬으로 부쳐주는 달걀 프라이를 안먹어본 게 아닌데도, 그때 한 입밖에 못 얻어먹은 달걀 프라이의 고소함과 아쉬움이 어찌나 컸던지 어린 마음에 집에 가면 제일 먼저 엄마한테 달걀 프라이 해달라고 해야지 결심했던 것 같다.

 

물론 나중에 집에 가서 간식으로 먹어본 달걀 프라이는 그날처럼 기막히게 맛있지 않았다. 다른 날인가는, 외할머니가 야박하게 외삼촌만 달걀을 부쳐줬다고 식모언니를 나무라며 내 달걀도 새로 하나 부쳐주라고 하셨지만, 당당히 내 접시에 담긴 달걀 프라이를 먹으면서 왜 그날과 맛이 다를까 의아했었다. 따끈하고 고소하고 엄청 맛이 있긴 한데 외삼촌이 한 입 선심썼을 때보다는 맛이 덜한 느낌. 당연히 결핍과 선망 때문이었겠지. ㅎㅎㅎ

 

내가 좋아하는 달걀 프라이는 앞뒤로 다 뒤집어서 익히되 노른자가 살짝 덜익은 느낌이 남아있는 반숙 상태다. 노른자가 다 익으면 뻣뻣해서 맛이 없고, 그렇다고 노른자 전체가 다 안익어 출렁거리면 비린내 나는 것 같다. 영어로 '오버 이지(over easy)'와 '오버 하드(over hard)'의 중간이라고나 할까. 이런 달걀 프라이는 '오버 미디엄(over medium). 가리는 것 없이 탐식하는 편이면서도, 난 참 웃기게 사소한 것에 집착한다. 그러니 스스로 인생을 볶아댄다고 할밖에. 누가 요리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해먹고 살아야하면서 따지는 게 많으니 원! 만약에 영어권 외국 식당에 가서 내 취향대로 달걀 프라이를 시키려면? I'd like my fried eggs 'over medium'. 정도로 이야기하면 될 듯. 앞뒤 잘라먹고 FRIED EGG OVER MEDIUM, PLEASE! 이라고 외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 (여행 나가보면 영어 좀 한답시고 긴 문장 만드느라 우물쭈물 하는 나 같은 사람보다 핵심 단어만 팍팍 외쳐주시는 분들이 더 잘 먹고 대접받고 다닌다. 예절보단 생존이 더 중요한 거니까...)


 '오버 이지'니 '오버 하드', '오버 미디엄'이니 하는 말이 나온 김에 달걀 먹는 방법이나 총망라해볼까나. 소싯적 10년간 거의 영어는 글로만 배웠고 전공수업때도 외국인 교수 수업은 필수만 수강했던 내가 달달 외운 자기소개와 버벅거리는 인터뷰로 미국회사 서울사무소에 덜컥 들어가게 될 줄이야. 암튼 실수연발의 신입 생활 중 뉴욕 출장까지 가서 배운 서바이벌 잉글리시는 참 오래도록 유용했었다. 특히나 주말에 자기 집에 데려가 재워주고 먹여주며, 에그프라이는 '서니사이드 업'만 있는 줄 알았던 내게, '오버 이지'부터 '오버 하드'까지 실전에서 가르쳐준 지미아저씨에게 축복을... ㅋㅋ

(달걀프라이의 익힌 방법과 정도에 따라 왼쪽부터 sunny side up, over easy, over hard의 순이다. ^^;)

 

 

사실 내가 밤참으로 주로 챙겨먹는 달걀요리는 삶은달걀이다. 오죽하면 내가 일전에 달걀 삶는 법에 대한 포스팅도 했을라고. -_-;; 삶은 달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의 간식, 소풍 먹거리, 기차여행 먹거리겠지만 나에겐 약간의 문화적, 언어적 충격 비슷한 것과 엮인 또 다른 추억이 있다.  

 

직장 시절 마지막 해, 이미 번역으로 이직을 결심하고 사표까지 던진 마당에 여차저차해서 영국 출장을 가게 됐다. 그것도 전무님 이하 상관 몇명을 '수행'하는 임무. 본인도 버벅거리면서 영어라고는 굿모닝 정도인 사람들을 데리고 참 뭘 하겠다고 거기까지 갔었는지, 나도 참 불쌍한 신세였는데 그 한탄까지 할 건 없고 암튼 4, 50대 아저씨들 셋을 대동하고 다니며 끼니 때마다 메뉴 설명에 요리 대리 주문에 반주로 마실 술 고르기까지, 늘 머리가 지끈거렸다. 온갖 생선 종류를 비롯해 음식 재료 영어는 특히 어려웠다! ㅠ.ㅠ

 

이른바 '브리티시 브렉퍼스트' - 버섯은 없었지만 대체로 이와 비슷했고 대신 달걀프라이가 두개였음

작은 호텔이라 차려진 조식뷔페는 없고, '브리티시 브렉퍼스트'와 '컨티넨털 브렉퍼스트'를 주문할 수 있었는데 한국 아저씨들이야 당연히 묵직한 브리티시 브랙퍼스트 통일. 문제는 둘쨋날인가 아침에 발생했다. 베이컨 기름에 쩔은 '프라이드에그 서니 사이드 업'도 '스크램블드 에그'도  느끼해서 부담스러웠던 터에, 건너편 테이블에 앉은 영국 할아버지가 앞두고 있는 달걀의 모습을 발견한 거다. 어라, 어떻게 달걀이 서 있지? 홀로 신문을 읽으며 천천히 토스트에 쨈과 버터를 발라 한입 깨물고 난 영국 할아버지는 나이프를 들어 달걀 머리를 후려쳤다. 후려친 부분의 달걀 껍질을 벗겨내고나서 후추와 소금을 뿌려 티스푼으로 달걀 속살을 맛나게 떠먹는 영국인 할아버지...

 

당장 전무는 우리 일행도 달걀을 '저렇게' 주문하라고 요구했다. 아... 난생 처음 보는 저건 또 뭔가. ㅠ.ㅠ 난 좀 당황했지만 언제나 "땡큐 베리 머치 인디드"라고 말끝마다 방점을 찍는 친절한 웨이트리스 아주머니에게 도움을 청했고, 결국 우리도 그 난생 처음보는 달걀요리를 주문해 먹을 수 있었다. ^^; 다시 말해 달걀프라이 대신 따끈하게 삶은 달걀(boild egg)을 먹게 된 것인데,  그게 어찌나 신기했었는지. ㅋㅋ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하드 보일드 소설이 바로 완숙달걀을 뜻하는 '하드 보일드 에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고는 아오... 외국 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내가 번역을 한답시고 뛰어들어도 되나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날 우리가 얼핏 보기에 달걀이 어떻게 홀로 서 있나 의아했던 이유는 '에그 컵' 때문이었는데, 대체로 오른쪽 사진처럼 생겼다. 우리가 갔던 영국 남부의 그 작은 도시 해변 호텔의 에그컵은 거의 소주잔 반만 한 크기에 하얀색이라 더 분간이 안됐던 것. 그날부터 출장기간 내내 아침 식사 때마다 우린 베이컨과 소시지 외에도 삶은 반숙 계란을 두개씩 깨서 퍼먹는 즐거움에 탐닉했었다. 같은 삶은계란이라도 껍질 까는 거 귀찮아서 마누라가 까줘야 겨우 먹는다는 아저씨들이 집에 가서도 전파해야겠다고 막 흥분해주시고... ㅎㅎㅎ

 

아무튼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밤참으로 달걀을 삶으면 에그 컵을 어디선가 장만해야하는데 하며 조금 아쉽다. (뜨거운 달걀 쥐고 퍼먹으려면 만만치가 않다규~). 나중에 우리나라 호텔에서도 어디선가 조식 뷔페에서 본 것 같긴 한데, 일반 그릇 파는데서 에그 컵을 파는 걸  발견하진 못했다. 열심히 안 찾아본 탓도 있겠지만...

 

 

 

 

 

에고 밤참으로 달걀 삶아먹어야지 생각하며 시작한 포스팅이 사진 찾고 어쩌고 하다가 너무 길어졌다. 힝, 오늘은 두개 삶아 먹어야지! 뚜껑 깨먹는 삶은 달걀은 보들보들해서 소금 칠 필요도 없고, 껍질 잘 안까질까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으니 귀차니스트에겐 금상첨화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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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이라고 쓰기는 하지만 아직도 2013년 1월이라는 게 적응이 안된다) 스팅공연 보러 간 날, 전날까지만 해도 방이동과 몽촌토성역 근방의 '그럴듯한' 맛집 후보지 중 한 군데를 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난데없는 폭설로 일단은 전철 타고 올림픽공원 근처에 가 아무거나 먹자는 쪽으로 급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공원 내 공연장을 자주 다녀보는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그 바로 주변 상가엔 먹을 만한 밥집이 별로 없다. 역 바로 앞에 버젓이 올림픽아파트 상가가 있지만 대규모 공연이 있는 날 그 근처에서 제일 장사 잘 되는 집은 햄버거집이랑 편의점일 정도다. 입맛이야 상당히 주관적인 잣대일 수밖에 없지만 어쨌거나 내가 보기엔 딱 한 군데 의외의 보물같은 맛집이 있으니, 올림픽 상가(이름이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암튼;;) 지하에 있는 올림픽 수제비다.

 

몇해 전 여름, 수제비 좋아하는 후배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온 집이었는데 처음엔 길을 잘못 들어서 허름한 지하주차장을 가로질러 반대편 마트를 마구 헤매다 찾아간 바람에 첫인상이 좋지 못했다. 그야말로 시장통 분식집 느낌. 그런데 나온 음식을 보니 선입견이 쏙 들어갔다. 해물이 완전 싱싱해!

 

해물 수제비의 위용. 반죽에도 채소를 갈아 넣었는지 초록빛이 난다

간도 슴슴하니 내 입맛에 딱이었고 자극적인 조미료맛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의 맛이라는 감이 팍 다가왔다.

무슨 메뉴를 시키든 볶은밥을 앙증맞게 김에 싸서 나오는 에피타이저가 나오는데 배고픈 김에 얼른 집어먹고 사진도 못찍었을 정도였다. 김치랑 깍두기도 맛있었고...

 

바지락 칼국수와 해물 수제비를 하나씩 시켜놓고 먹었는데, 짜지 않은 생물 바지락(싱싱하지 않은 바지락은 대부분 엄청 짜다;;)이 풍성하게 들어간 칼국수 사진 역시 남기지 못했다.

 

이후 올림픽 공원에서 공연이 있을 때마다 입맛을 다시며, 재차 가보려했으나 기회가 닿질 않았었는데 스팅 공연보러간 날 일행들과 뜻이 맞아 다시 가게 된 터였다. (스팅을 만나러 가는 날이니 일행들은 이왕이면 좀 더 그럴싸한 메뉴를 먹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올림픽 상가 1, 2층 식당을 뺑뺑 돌고 난 뒤이긴 했다;; ㅋㅋ)

 

이젠 맛있다고 소문이 많이 나서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날 역시 한산한 분위기였다. 시장통 같은 지하 식당가 반찬집 옆에 있는 위치 때문일까나? 어쨌든 나야 맛있으면 장땡. 벽에 붙은 메뉴를 보니 통영인가 여수에서 직접 가져온다는 굴로 만든 굴국밥이 계절메뉴로 새로 등장해 있었다. 굴이라면 익혔든 생으로든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므로 해물수제비와 함께 일단 시키고 봤다.

 

왼쪽 사진 위에 보이는 시커먼 물체가 1인당 2개씩 나오는 볶음밥 김쌈(?)이고, 오른쪽 사진이 정신없이 퍼먹다가 아차 하면서 찍어 자못 민망한 굴국밥이다. 익힌 굴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굴 넣고 끓인 미역국도 좋아하기 때문에, 이날 이집에서 부추와 두부를 곁들인 시원한 굴국밥을 먹어본 뒤로는 계속 집에서 해먹어봐야지, 해먹어봐야지 한달 넘게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드디어 며칠 전, 굴과 부추를 사다가 시도해보았다! 당연히 그날의 전문가스러운 맛은 내지 못했지만 다시마와 무와 멸치로 낸 다시 국물에 굴과 부추와 두부를 넣어 끓인 뒤 밥에 부어 먹었더니 캬... 겨울 별미로 딱이었다. 한번 더 가서 먹어보면 완벽하게 비슷한 맛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음... 이거 먹겠다고 엄동설한에 남의 동네 지하상가엘 가자니 좀 민망한 느낌. ^^;;

 

찾아갈 때마다 계속 헤맸지만 그날 주인아저씨의 안내로 직통 출입구를 알아두었으니 이젠 헤매지 않고 단번에 찾아갈 자신도 있다. 반원형으로 생긴 올림픽 상가 건물 입구로 들어가지 말고, 상가 앞 광장 왼쪽 귀퉁이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 곧장 건물지하로 들어가면 코앞에 올림픽 수제비가 있다.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도 친절하시고 싱싱한 재료로 만든 음식도 정갈하니 앞으로 올림픽공원에 갈 일 있으면 무조건 고민 않고 이 집으로 밥먹으러 갈 작정이니 부디 오래오래 번창하길 빈다. 오늘따라 저 해물 수제비가 몹시 먹고 싶어서 눈요기라도 하려고 시작한 포스팅인데 이거 좀 과한 홍보인가? ㅋ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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