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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06 홍대 조폭 떡볶이 11
  2. 2008.08.26 떡볶이 타령 19
밤참 먹은 김에 키드님의 홍대 설경 사진을 보고 나서 포스팅해야지 생각했던 조폭 떡볶이 이야기나 해야겠다. 
홍대앞에 자주 다니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홍대앞 주차장 거리의 명물 포장마차 조폭 떡볶이가 글쎄 점포를 냈다고 했다. 원래 있던 자리에도 포장마차는 그대로 운영을 하고 있지만 그 옆쪽으로 번듯하게 테이블을 갖춘 점포를 냈으며 상호도 <조폭 떡볶이>로 간판까지 내걸었다고 했다. 드럼통 몇 개 엎어놓은 손바닥 만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만날 줄을 서서 먹을 만큼 장사 잘 되던 가게가 번듯하게 점포를 넓히면 희안하게 맛도 달라지고 서비스도 달라져 결국엔 망하고 마는 이상한 경우를 익히 보아왔던 나는 더럭 걱정이 앞섰다. 일단 포장마차와 점포 두 곳으로 나뉘면 당장 떡볶이 맛부터 달라질 게 아니겠나 말이다!

내가 처음 조폭 떡볶이 포장마차의 존재를 알개 된 것은 무려 15년전이다. 홍대 클럽이 지금처럼 정신 사나워지기 훨씬 이전에 얼떨결에 단체로 춤바람이 들어 일주일에 두번씩은 꼬박 <황금투구> <명월관> <발전소> <조커 레드> <흐지부지> 따위의 클럽에 놀러 다녔던 시절, 신나게 춤을 추고 나온 뒤의 출출한 뱃속을 채우기엔 딱이었던 그곳을 소개한 후배는 당연히 그 유명한 전설을 내게 들려주었다. 무뚝뚝한 얼굴로 주문을 해도 듣는둥 마는둥 대답도  잘 안하고는 기막히게 손님들이 주문한 메뉴를 턱턱 내주는 주인 아저씨가 전직 조폭인데 마음 잡고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터라 가끔 깍두기 아저씨들도 찾아와 말없이 오뎅과 순대를 먹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잘 살피면 얼굴 어딘가에 사연 깊어 보이는 흉터도 있다는 전설이었다.
 
몇년 계속 들락거리며 들으니 그건 그야말로 전설일 뿐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하도 무뚝뚝해서 그런 헛소문이 돌았다는 카더라 통신도 함께 떠돌았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건 밤마다 일대 포장마차는 하나같이 파리를 날려도 그 포장마차는 언제나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조폭 떡볶이>가 그 무시무시한 전설과 함께 그토록 오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맛이었다. 그 집 떡볶이는 내 머릿속에 <이상>으로 자리잡은 떡볶이의 맛에 가장 부합하는 맛이다. 특별히 잡다한 양념 맛 없이 그저 고추장과 물엿으로 맛을 낸 듯한 담백하고 쫄깃한 맛이랄까. 순대와 튀김, 김밥, 오뎅까지 다른 메뉴도 골고루 먹어봤지만 일단 언제나 손님이 많아서 회전율이 높으니 모든 메뉴가 다 신선할 수밖에 없고, 특히 떡볶이는 그 주변 포장마차 떡볶이를 거의 다 먹어봤어도 비슷한 맛조차 내지 못할 만큼 맛이 있었다. 문득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일만큼, 자주는 못가더라도 나 혼자 단골이라 여기던 포장마차였기에 점포확장을 빌미로 행여 맛이 변할까봐 염려스러웠던 거다.

다행히 친구 말로는 맛이 변한 것 같지는 않더라고 했는데,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는 법이어서 마침 죄다 떡볶이 애호가들이 모인 지난주에 칼바람과 빙판길을 무릅쓰고 새로 열었다는 주차장길의 조폭 떡볶이 점포를 찾았다.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풍선기둥엔 상호와 함께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피식 웃음부터 나왔는데, 과연 조폭 주인아저씨가 점포의 주방을 직접 맡을 것인가 과거처럼 포차에 올라 앉아 있을 것인가 염려했던 내 걱정은 점포 외부에 설치된 높은 주방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본 순간 누그러졌다. 가게가 생기긴 했지만,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주방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되는 대로 자리를 잡고 먹는 셀프 시스템이었다. 가게 인테리어는 <조폭 떡볶이>라는 상호와 부조화를 이룰 만큼 뜻밖에도 대단히 여성스러운(?) 느낌에 아늑하고 깔끔하고 고급스러워보일 정도였다. 그뿐인가, 가게 안에 마련된 남녀 분리된 화장실까지 깨끗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제일 중요한 떡볶이 맛은 옛날 맛 그대로였다. 초저녁에 떡볶이를 처음 만들고 있는데 혹시라도 그냥 빨리 먹고 싶어 재촉을 하면, 아저씨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끝까지 양념을 다 졸여 맛이 밴 다음에 퍼주던 바로 그맛. ^^;

신촌에도 포장마차가 꽤 많지만 거긴 떡볶이를 만드는 네모난 판이 하나밖에 없어서 떡볶이가 거의 떨어져 갈 때면 거기다 다시 물을 붓고 흰떡을 넣고 다시 양념을 해 한쪽에서 조리를 하기 때문에 영 재수가 없으면 고추장 물에 빠진 맛대가리 없는 떡볶이를 억지로 먹어야 할 때도 있지만, 최소한 조폭 떡볶이집에선 그런 되다만 떡볶이는 팔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최고 인기 품목인 떡볶이가 다 팔려나가기 전에 언제나 옆에서 새로운 떡볶이를 한 판 미리 준비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래서 그토록 오래 한 자리를 지키며 명성을 쌓았겠지만...

이번에 연 가게엔 조폭 떡볶이의 역사가 무려 20년이며, 조폭 소문에 대해서도 정말로 무뚝뚝한 말투 때문에 받은 오해였다는 해명 내용의 벽걸이가 걸려 있었다. 소화 안된다고 다들 툴툴거렸던 게 무색할 만큼 떡볶이와 순대 오뎅 튀김을 후딱 먹어치우며 생각해보니, 지난 여름에 그 옛날의 춤바람 파트너와 만난 김에 부러 포장마차엘 갔던 게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로는 홍대쪽에 갈 일이 있어도 배가 너무 불러 떡볶이엔 생각도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반년간이나 내가 거들떠보지 않았는데도 그간 꾸준히 바글바글 손님이 몰리고 돈을 많이 벌어 번듯한 가게까지 낸 조폭 떡볶이 아저씨들은 어쩐지 점포확장 했다고 맛과 서비스가 달라져 결국 망하고 마는 이상한 음식점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 같다. 15년 전엔 주인 아저씨 혼자였던 것 같은데 몇년 지나며 일손을 돕는 아저씨들이 하나둘 늘어갔고 이젠 테이블을 닦아주는 아르바이트생 같은 예쁜 언니에다 설거지용 주방에서 빈 그릇을 닦는 아줌마들까지 갖추었지만, 떡볶이 값은 몇년째 15년 전보다 겨우 500원 오른 2500원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떡볶이 맛이 변함없으니 하는 말이다. 

춤바람은 사라진지 오래여도 홍대앞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동네지만, 15년전의 추억대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곳은 조폭떡볶이가 유일한 것 같다. 역시나 춤바람 일행들이 오래도록 열광했던 버섯칼국수집도 자리를 옮기고는 옛날의 영화를 잃고 말았다. 확실히 칼국수며 김치 맛도 그 옛날의 맛이 아니라 나부터 가고싶지 않아졌으니, 조폭떡볶이마저 맛이 변한다면 무척 허무할 거다. 조폭떡볶이 아저씨들이 계속 승승장구 번창해서 아예 그 자리에 건물을 세우는 날까지 한결같은 맛과 무뚝뚝함을 유지하기를 빌어본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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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타령

식탐보고서 2008. 8. 26. 16:30
내겐 한동안 안 먹으면 점점 욕망이 커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부풀다가 불만과 짜증에 휩싸이게 되는 음식이 있다. 그렇다고 아주 대단한 음식들은 아니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떡볶이, 라면, 버거왕표 와퍼 따위.

그 가운데 라면과 와퍼는 언제 어디서나 표준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봉지라면이 개발되어 있거나 거의 똑같은 맛을 내는 매장들이 거리에 즐비하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 멀리하려고 애쓰다가 못 먹는 주기가 길어지면 욕구불만이 쌓일 뿐이므로 문제 해결 방법이 그리 어렵진 않다.
그러나 떡볶이는 다르다.

아마도 국민학생 시절 하굣길 좌판이나 포장마차에서 50원어치씩 사먹던 밀가루 떡볶이가 역사의 시작인 것 같은데 중고등학생 때 들락거리던 분식집 떡볶이(완제 및 즉석 떡볶이)를 거쳐, 나로선 떡볶이로 쳐주지도 않는 신당동 떡볶이와 최근 들어 술집 안주로 볼 수 있는 '고급' 해물 떡볶이에 이르기까지 몹시 다양하게 즐겨온 떡볶이는 어느새 내 머릿속에 도저히 만족시킬 수 없는 꿈의 맛으로 새겨진 모양이다.
그 어느 떡볶이를 먹어도 나의 떡볶이 욕망이 100퍼센트 채워지질 않기 때문이다.
상상력과 솜씨를 발휘해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어보아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행히 집 근처 마트 앞 좌판에서 꽤나 맛있는 떡볶이를 팔기 때문에 떡볶이 욕망이 솟구치면 쪼르르 달려가서 2천원어치만 사먹어도 흐뭇해지기는 하는데, 수십년째(!) 떡볶이 타령을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도 '바로 이거다' 싶은 환상적인 떡볶이를 만난 적은 없다.
맛있는 걸 좋아하긴 해도 맛에 몹시 까탈스럽게 구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조미료 맛이 심히 나지 않으면서 적당히 맵고 달달한 떡볶이는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음에도, 환상의 맛이라 인정할 수 있는 떡볶이를 찾지 못한 걸 보면 내가 찾는 떡볶이는 아마 괜한 추억의 감상을 버무려 넣어 실제로는 만날 수 없는 허구의 맛이 틀림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환상의 떡볶이를 찾는 식탐 여정을 끝냈다는 뜻은 아니며, 앞으로도 떡볶이 욕망이 솟구칠 때 떡볶이 포장마차를 보면 앞뒤 생각 없이 달려가 매운 입을 후후 불어가며 빨간 떡볶이를 먹고 있을 게다.

바로 어제가 그런 떡볶이의 날이어서 좌판에 들러붙어 한 접시 먹어치우고는 그래도 아쉬워 1인분 포장해다 밤참으로 또 먹었는데도 어쩐지 좀 아쉽다. 그러고 보니 나의 떡볶이 타령은 채워지지 않는 어떤 공허함의 상징인 것도 같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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