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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생각

투덜일기 2012. 1. 9. 17:20

지난 금요일 MBC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 황제펭귄 편을 보며 정말 어찌나 울었는지, 머리가 다 지끈거렸고 눈을 자꾸 문질러댄 탓에 다음날 눈이 탱탱 부었다(경험상 눈물을 안닦고 그냥 질질 흘리며 울면 자고 나서도 눈이 덜 붓는다).  그간 동물은 몰라도 인간의 모성애니 부성애니 하는 것들은 타고난 본능이 아니라 사회가 철저히 교육하여 얻어낸 압력의 결과라는 주장에 심히 동조하는 편이었다. 하물며 영하 60도씩 내려가는 남극의 겨울에 하필 알을 낳아서는(그래야 천적이 없고, 새끼들이 봄에 성장하기 좋기 때문이라나;;), 어렵사리 옮겨받은 알을 발등에 올려 배에 품은 채 두세달씩 꼼짝 않고 알을 부화시키는 아빠 펭귄을 보노라니 경이롭다 못해 눈물이 줄줄 났다. 요즘 인간은 걸핏하면 자식을 아무데나 버리고 도망갔다는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던데... 황제 펭귄은 실수로 놓쳐버린 알이나 새끼가 순식간에 꽁꽁 얼어 터지고 딱딱해져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다시 배에 품으려 했다. 심지어는 알과 비슷한 크기의 얼음덩어리라도.

마침 다음날 아침 절에 갔다 돌아오던 엄마는 절집 앞 골목에서 태어난 지 며칠 안된 것 같은 새끼고양이 세 마리를 보았다며, 노란 줄무늬가 있는 주먹만한 새끼 고양이가 추운 길바닥에서 무얼 먹고 한겨울을 날지 걱정이라고 했다. 한 마리 데려다가 키웠으면 싶은 생각도 들었을 정도라고. 엥? 엄마가 애완동물을? 그것도 길고양이를? 음식물 쓰레기 봉투 내다놓으면 죄다 뜯어놓는다고 욕하시더니 새끼에 대한 태도는 다른가 보았다. 그렇지만 엄마나 나나, 집에 함부로 애완동물을 들여 키울만한 사람들은 아니다. 밥 챙겨줘야지, 똥오줌 치워야지, 씻겨야지, 예방접종 시켜야지... 아우 다 귀찮아! 게다가 겁이 많아서 새끼고양이라고 해도 덥썩 집어 안고 올 용기도 없었을 테고. 새끼 고양이들이 어떻게 추운 겨울을 날 것인지 그건 안타깝지만, 누군가 데려다가 키워준다면 좋겠지만, 그 책임을 기꺼이 내가 나눌만한 용기는 없다. 정말로 가족처럼 반려동물을 키울 자신과 다짐이 없는 사람들은 함부로 시작도 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 하나는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로 딸에게 애완견 한마리를 사주었는데, 태생이 얌전한지 계속 잠만 잔다던 그 강아지가 병이 나서 계속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병원에선 계속 오늘내일이 고비라고 한대고, 부모님 입원했을 때도 매일 안찾아뵙던 병원을 꼬박 며칠째 빠짐없이 들여다보며 살아나기를 기도하는 중이란다. 짐승도 작고 약한 애들이 더 사랑을 받는다는 건 알지만, 처음 친구가 강아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자랑했을 때부터 나는 심술이 났다. 하필이면 인간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일부러 작고 약한 아이들을 교배하여 컵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게 만든 강아지를 왜 굳이 선택했는지? 수요와 공급 중 어느쪽이 먼저인지, 파는 사람이 잘못인지, 사는 사람이 잘못인지 원론적인 이야기를 파고들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강아지들은 핏줄도 너무 약해 어디가 아파 주사를 꽂으려 해도 핏줄이 죄다 터져버릴 정도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배에서 태어나도 어쩌다 약한 애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일부러 사람 보기 귀엽고 앙증맞으라고 열성인자만 애써 모아 탄생시켜, 수명도 턱없이 짧고 건강에도 문제가 있는 강아지를 머그잔에 쏙 들어간다고 한껏 자랑하면서 애완동물로 파는 건 파렴치한 죄악이다.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그저 귀엽고 안쓰러운 마음에 자기가 먹는 음식을 자꾸만 나눠주는 이들도 있다. 특히 우리 큰고모. -_-; 같이 늙고 병들어가는 처지라 불쌍하다면서 고모는 이미 십여년 전부터 그 개에게 온갖 음식을 '지나치게' 싸다 먹였고 결과적으로 현재 그 못생기고 늙은 개는 이미 수술도 몇차례 했대고, 비만에 관절염, 백내장 뿐만 아니라 아직 달고 있는 병명이 수두룩하다. 개들은 땀 배출 능력이 없어서 염분 많은 인간의 음식은 치명적이라고 주변에서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소용없다. 팔순 큰고모의 핑계는 늘 같다. 먹을 거 달라고 이렇게 꼬리를 치고 아양을 떠는데 불쌍해서 어떻게 안 주니! 어휴... 고모는 늙으셔서 그렇다 치고, 젊은 사람들 가운데도 심지어 키우는 강아지가 너무 오래 살면 안된다면서(농담인지 진담인지!!) 일부러 간간한 인간의 음식을 먹이는 이도 있다(이 글 읽고 있다면 반성해라. 바로 당신 말이야!! -_-+++). 그러다 나중에 병들어서 아파할 땐 어쩔 거냐고 옆에서 호통을 치면서도, 정말 아무나 애완동물을 키울 자격이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참으로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인간들. 하긴 나도 조카네 파랑이한테 먹다 남은 양념 고기 준 적 꽤 있다. 나는 동물혐오자니깐 뭐... -_-aa

한번 장가까지 들러 색시네 집에 다녀왔느나 2세 출산에 실패했던 파랑이는 결국 며칠 전 중성화수술을 했다. 배 밑엔 붕대를 붙이고 목둘레엔 투명한 삿갓 같은 깃을 두르고 있는 파랑이를 보노라니 만화에 나오는 애 같다고 놀리다가 문득 측은했다. 개는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서 가장 교활하게(?) 진화에 성공한 동물이라는 설도 있지만, 인간 세상에서 그렇게 편히 사료를 먹고 재롱을 부리며 같이 사느라 본래의 구실도 못하도록 변형되는 삶은 진정 행복할까. 이웃에 시끄러울까봐 성대수술을 해주는 애완견들도 그렇고, 별 생각없이 들였다가 책임지기 싫으니까 슬쩍 내다버리는 유기견들도 그렇고, 막 기르다 잡아먹히는 잡종견들도 그렇고, 음식쓰레기 봉지 뜯어먹고 살다가 염분 때문에 팅팅 부어 얼마 못살다 가는 길고양이들도 그렇고, 굳이 겨울이 아니더라도 먹이가 없어 가끔은 서울 도심까지 내려오곤 하는 멧돼지들도 그렇고... 인간 때문에 니들이 고생이 많구나 싶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인간이 얼마나 치명적인 천적인지 알 도리 없는 펭귄들은 겁도 없이 다가와 사람과 카메라를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부모 펭귄 없는 사이 사냥꾼 새가 공격해오자 아기 펭귄은 도와달라는 듯 촬영진에게 안겨들었다. 300일이나 남극의 혹한에서 고생한 제작진 덕분에 귀한 환경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 있는 건데도, 한편으론 온난화 영향으로 서식지가 많이 줄은 것 이외에 이미 조류독감까지 돌아 펭귄들이 폐사하고 있다는 남극에 또 무슨 질병 바이러스라도 옮겨놓고 온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물론 문제는 남극이 흘리는 뼈아픈 눈물을 우리에게 알리겠노라고  환경 다큐 찍고 돌아온 제작진이 아니라, 앞다투어 남극개발과 진출에 힘쓰는 (우리나라 포함) 힘깨나 쓰는 나라들이다. 세상에는 그냥 좀 내버려두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많고 많은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왜 그렇게도 꼭 들쑤시고 파헤치며 '개발'하려 하는지 원. 제목을 동물 생각이 아니라 인간 환멸로 바꾸어야 하려나. 으휴.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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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좋아

투덜일기 2011. 8. 1. 02:00

10년이 넘도록 생일카드에 덕담으로 "올해는 꼭 좋은 분 만나서 결혼하시길 빌게요, 화이팅!"이라는 말을 빠짐없이 적는 친구가 있다. -_-; 해마다 푸하하하 비웃어주는데도 참 끈질기고 열심이다. 주변에 결혼을 굳이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회의파>와 태도가 어중간한 <중도파>, 그래도 결혼은 반드시 하고 봐야한다고 믿는 <결사파>가 있는데 이 친구는 결사파에 속한다. 해서 선과 소개팅에도 열심이다. 말로는 부모님의 성화로 어쩔 수 없다지만 내가 과거 겪어봐서 아는데 몇년 결혼 시장에 끌려다니다 영 싹수가 없어보이면 부모님도 포기하기 마련이다. 본인이 포기를 안했다는 뜻이다. 

여러 모로 나와 공통점이 많은 비혼족이면서 내년이면 꼭 예순이 되는 선생님 한분과 셋이 종종 만나는데, 셋이 다니면 친구 사이가 아니라 두 딸 데리고 외출한 엄마 같아 보일 거라 자조하시는 그 선생님께도 이 친구는 내게 하는 것과 똑같은 덕담을 고수한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인연설을 굳게 믿는 눈치다. 보아하니 내가 예순살, 일흔살이 되더라도 이 친구와 관계를 지속하는 한은 매년 같은 덕담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이 친구가 얼른 결혼을 해서 결혼생활의 비애(행복한 결혼에도 비애는 있기 마련이니까;;)를 뼈저리게 느껴, 다른 기혼 친구들처럼 결혼관에 균열이 생겨 "그래, 혼자 사는 게 속편하지! 무자식이 상팔자라더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는 거다. ㅎㅎ

어제도 친구는 저보다 한참 나이많은 우리 둘을 앞에 두고 인연설을 강조하며 또 다시 <좋은 분> 타령을 이어갔다. 대개는 킥킥 웃으며 알았다고 얼버무리는 걸로 화제를 종결짓는데, 어젠 그 수법이 안통했다. 결혼이 정 싫으면 애인이라도 꼭 만들어야 한다고 성화(?)였다. 하는 수 없이 선생님이 진화에 나섰다. 잊고 살던 본인 나이를 생각하면 참 싫지만, 그 나이의 늙은 남자를 생각 하면 너무 혐오스럽다고. 그러니 애인 따위 전~~~혀 필요 없다고. 까탈스럽지만 우아하고 순수함을 잃지 않은 나이 예순의 비혼녀는 쉽게 그려지는 반면, 예순살의 비혼남이라고 하면 벌써부터 추레하고 구질구질한 모습이 상상되지 않나? (나의 비뚤어진 편견이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반색하며 맞장구를 쳐, 우릴 좀 내버려두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려 했으나 친구는 완강했다. 그럼 연하의 젊은 남자친구를 만들라는 것. 우어~~~~!!! >.,<

친구는 진정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으로 그러는 것임을 알기에 속으로 부아가 나도 화를 낼 순 없다. 그저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비혼을 미혼이라 부르는 건 나이가 어찌됐든 미완성의 인생이자 결핍을 의미한다는 함의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야 그렇게 여기더라도 워낙 보수적인 가치관에 젖어 살았으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가만 보면 젊은축에서도 혀를 끌끌 차며 나 같은 처지(?)를 안쓰러워하는 태도를 보인다. 결혼과 자녀를 엄청난 성취로 여기는 기혼자 친구들 중에 더러 그러는 이들이 있는데, 가끔은 이렇게 별종 같은 친구도 존재한다. 내 인생이 <꽃피려면> 반드시 <좋은 분> 만나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아야한다며, 이제는 울 엄마도 친지들도 감히 안하는 잔소리를 턱턱 해댄다. 

선생님과 나는 둘만 아는 미소를 지으며 결국 고개를 끄덕끄덕, 알았으니 눈씻고 주변을 잘 둘러보겠다고 다짐을 한 뒤에야 그 화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린 정말로 지금 그대로도 별 부족함 없고 좋은데, 참 좋은데 그것 참 말로 설명해줄 수도 없고 안타깝다(나름 광고 패러디 한 거다 ㅋㅋㅋ). 친구가 더 나이를 먹고 생각이 넓어져 우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보는 수밖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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