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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일기 2011. 8. 1. 02:00

10년이 넘도록 생일카드에 덕담으로 "올해는 꼭 좋은 분 만나서 결혼하시길 빌게요, 화이팅!"이라는 말을 빠짐없이 적는 친구가 있다. -_-; 해마다 푸하하하 비웃어주는데도 참 끈질기고 열심이다. 주변에 결혼을 굳이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회의파>와 태도가 어중간한 <중도파>, 그래도 결혼은 반드시 하고 봐야한다고 믿는 <결사파>가 있는데 이 친구는 결사파에 속한다. 해서 선과 소개팅에도 열심이다. 말로는 부모님의 성화로 어쩔 수 없다지만 내가 과거 겪어봐서 아는데 몇년 결혼 시장에 끌려다니다 영 싹수가 없어보이면 부모님도 포기하기 마련이다. 본인이 포기를 안했다는 뜻이다. 

여러 모로 나와 공통점이 많은 비혼족이면서 내년이면 꼭 예순이 되는 선생님 한분과 셋이 종종 만나는데, 셋이 다니면 친구 사이가 아니라 두 딸 데리고 외출한 엄마 같아 보일 거라 자조하시는 그 선생님께도 이 친구는 내게 하는 것과 똑같은 덕담을 고수한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인연설을 굳게 믿는 눈치다. 보아하니 내가 예순살, 일흔살이 되더라도 이 친구와 관계를 지속하는 한은 매년 같은 덕담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이 친구가 얼른 결혼을 해서 결혼생활의 비애(행복한 결혼에도 비애는 있기 마련이니까;;)를 뼈저리게 느껴, 다른 기혼 친구들처럼 결혼관에 균열이 생겨 "그래, 혼자 사는 게 속편하지! 무자식이 상팔자라더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는 거다. ㅎㅎ

어제도 친구는 저보다 한참 나이많은 우리 둘을 앞에 두고 인연설을 강조하며 또 다시 <좋은 분> 타령을 이어갔다. 대개는 킥킥 웃으며 알았다고 얼버무리는 걸로 화제를 종결짓는데, 어젠 그 수법이 안통했다. 결혼이 정 싫으면 애인이라도 꼭 만들어야 한다고 성화(?)였다. 하는 수 없이 선생님이 진화에 나섰다. 잊고 살던 본인 나이를 생각하면 참 싫지만, 그 나이의 늙은 남자를 생각 하면 너무 혐오스럽다고. 그러니 애인 따위 전~~~혀 필요 없다고. 까탈스럽지만 우아하고 순수함을 잃지 않은 나이 예순의 비혼녀는 쉽게 그려지는 반면, 예순살의 비혼남이라고 하면 벌써부터 추레하고 구질구질한 모습이 상상되지 않나? (나의 비뚤어진 편견이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반색하며 맞장구를 쳐, 우릴 좀 내버려두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려 했으나 친구는 완강했다. 그럼 연하의 젊은 남자친구를 만들라는 것. 우어~~~~!!! >.,<

친구는 진정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으로 그러는 것임을 알기에 속으로 부아가 나도 화를 낼 순 없다. 그저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비혼을 미혼이라 부르는 건 나이가 어찌됐든 미완성의 인생이자 결핍을 의미한다는 함의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야 그렇게 여기더라도 워낙 보수적인 가치관에 젖어 살았으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가만 보면 젊은축에서도 혀를 끌끌 차며 나 같은 처지(?)를 안쓰러워하는 태도를 보인다. 결혼과 자녀를 엄청난 성취로 여기는 기혼자 친구들 중에 더러 그러는 이들이 있는데, 가끔은 이렇게 별종 같은 친구도 존재한다. 내 인생이 <꽃피려면> 반드시 <좋은 분> 만나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아야한다며, 이제는 울 엄마도 친지들도 감히 안하는 잔소리를 턱턱 해댄다. 

선생님과 나는 둘만 아는 미소를 지으며 결국 고개를 끄덕끄덕, 알았으니 눈씻고 주변을 잘 둘러보겠다고 다짐을 한 뒤에야 그 화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린 정말로 지금 그대로도 별 부족함 없고 좋은데, 참 좋은데 그것 참 말로 설명해줄 수도 없고 안타깝다(나름 광고 패러디 한 거다 ㅋㅋㅋ). 친구가 더 나이를 먹고 생각이 넓어져 우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보는 수밖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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