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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2.26 연이 홀로 2
  2. 2021.10.31 펄쩍펄쩍 6
  3. 2021.10.10 연진이 새집 장만 1
  4. 2021.09.25 연이진이 3
  5. 2021.09.11 진전 3
  6. 2021.08.22 양양연진 이야기 4

연이 홀로

양양연진 2021. 12. 26. 11:44

진이는 결국 자취를 감추었다. 어디선가 새로운 터를 잡고 무사히 잘 살고 있기를 바라지만 성묘들한테 겁 없이 달려들고 싸우던 진이의 성향을 돌이켜보면 걱정이 많다. 생각할수록 나쁜 상상이 커져서 그냥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홀로 남은 연이의 혹독한 겨울나기가 걱정스러워 11월에 고보협에서 공구하는 겨울집을 구매했다. 작년 모델보다 더 튼튼하고 보온에도 신경을 썼다는 것 같다. 앞쪽 입구에도 아크릴비닐 같은 걸 붙여서 바람이 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안엔 등산용 깔개 위에 담요를 접어서 깔아주었었는데 나중에 포근한 발방석을 하나 더 넣어드림.

관찰해보니 연이가 저 비닐 밑으로 잘 드나든다
간식으로 유도했더니 별 어려움 없이 입주 성공.
아침마다 사료를 담아주며 관찰해보면 연이가 참 많이 컸다.
연이는 어떻게 이리도 미묘이신지
츄르 먼저 먹고 입맛 다시는 중
이것이 바로 고양이 세수?
폭설이 내린 날 내다보니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간에도 영하 7도가 넘어가는 날엔 핫팩을 하나씩 집안에 넣어주었었는데;; 올들어 최대한파가 예고된다니 걱정스러워서 캠핑하는 사람들이 쓴다는 방석형 핫팩을 주문했고 다행히 어제오늘 최대한파가 몰아치기 전에 당도해 어제 처음으로 핫팩이 8개 붙어 있는 방석을 집안에 깔아주었다. 확실히 뜨끈뜨끈한 느낌. 그러나 시간이 유지 시간이 14-16시간이라 애매하다. 추워도 어딘가 쏘다니는 것 같은 눈치라서 연이가 핫팩을 가장 잘 이용할 시간대가 언제인지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 지금으로선 그냥 가장 추운 시간에 맞춰서 주는 수밖에. 올 겨울 추위를 연이가 홀로 잘 견뎌야할 터인데;; 걱정이다. 사료 줄 때 이젠 코앞에서 기다리며 독촉하는 정도는 되었지만 한번 만져볼라고 손이라도 뻗을라치면 후다닥 축대 너머로 아예 달아나 버린다. 핫팩 깔아줄 때도 멀찍이 도망침. ㅋㅋ 겁쟁이...

근데 길냥이는 어차피 인간을 계속 무서워하는 게 옳으므로 적당히 사료 셔틀로서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맞겠지. 앞으로 얼마나 더 혹한이 올지 모르겠으나 부디 삼한사온이기를 강력히 촉구하는 (누구한테?) 바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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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쩍펄쩍

양양연진 2021. 10. 31. 03:20

우리 집은 2층이고 연이와 진이가 살고 있는 곳은 아래층 뒷베란다의 지붕이다. 매일 아침 내방 창문을 열고 연진이의 새집이 무사한지 또는 밤새 애들이 별일 없었는지 내다보고는 다시 뒷베란다로 이동해 사료와 물을 내려준다. 창턱이  높아서 사료통을 내려주고 올리고 할 때 집게 사용은 필수. 

이해를 돕기 위해 대충 그림을 그려보면 이런 식이다. ㅋ 근데 아침에 베란다에서 바스락바스락 사료 줄 준비를 하고 있으면 연진이는 이미 밥 달라고 마구 울어대고 있거나 슬며시 집에서 나와 기다릴 때도 있는데, 요샌 아예 급한 성미를 보이려는 건지 묘기를 보이려는 건지, 아니면 집 내부가 궁금한 건지 연이와 진이가 종종 방충문에 매달리기도 한다.

처음엔 고개를 들다가 어찌나 놀랐는지 옴마야.. 뒤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 했는데; 이젠 벌써 도약을 준비하는 애들의 발소리로 짐작이 된다. 요 녀석들 또 뛰어올라와서 들여다보겠구나 싶어지는 것.

펄쩍 뛰어 창문에 매달리는 연진이와 마냥이와 준집사

사료와 츄르를 담은 밥통을 집게로 집어 내려주고 있노라면 어느새 나타난 성묘 마냥이(새끼 3마리의 엄마임이 드러나 이 녀석 가족도 사료를 던져주고 있다.)가 축대 위 철망 안쪽에서 구경을 하기도 한다. 마냥이가 위협적으로 아래까지 내려와 접근하면 연진이도 죽어라 울어대지만, 이젠 철망 건너편에 와 있을 땐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눈만 마주치면 우는 연이. 고양이 번역기 필요하다  
동작이 굼뜨다! 빨리 내놔라! 혼내는 표정 같으심 

그나저나 진이가 통 보이질 않고 사료 줄어드는 양도 연이 혼자만 먹는 듯해서 걱정이다. 진이가 호기심도 많고 어디 멀리까지 놀러다니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며칠만에 한번씩 돌아와 사료를 싹 비우고 아침 일찍 연이랑 같이 밥 빨리 내놓으라고 울어대던 전적이 많았으나, 안 나타난지 일주일이 다 되는 것 같다. 마냥이 가족을 위해서 종이에 싼 사료뭉치를 열심히 축대 위 철망 너머로 던져 놓고 있으니 그걸 먹는 걸까? 

구청이나 보호단체를 통해서 중성화 수술을 해주려면 혹한기도 피해야하고 뭔가 회원활동을 오래 해야하는 것 같던데 연진이 정도 자라면 체중 기준인 2킬로그램이 넘어 수술이 가능할까? 애들을 포획 의뢰하는 게 과연 가능은 할까? 내가 틀을 놓아야하나? 계속 염려와 의문만 증폭되고 있다.  일단 중성화수술을 해서 길냥이들의 개체 수를 인위적으로 일정하게 유지해야한다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인간과 길냥이는 이미 공존해야하는 사회라면서...

터키에 갔을 때 보니 온 도시에 길냥이들과 길강아지들의 천국이던데. 당국에서 관리를 한다고는 들었지만 다들 귀 안 잘렸던데. 점점 생각도 많아지고 어렵다.  째뜬 고보협에 신상 겨울집도 주문해놓았고, 비닐 온실 같은 것까지 구비하면 연진이가 겨울을 무사히 나게 해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엄마냥 없어도 건강하게 계속 쑥쑥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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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 검냥이는 아직도 거의 매일 연진이를 위협한다. 애들을 위협하는 건 아니고 그냥 사료만 노리는 것일지 모르지만 암튼 녀석이 다가오면 밤이고 낮이고 연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때문에 나로선 후다다닥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는데 며칠 전엔 한밤중에 12시 넘어 기괴한 울음소리가 (아마도 검냥이의 위협이었던 듯) 들려서 놀라가지고 장식장 위로 뛰어올라 창문을 열고 내다보며 잠자리채 같은 양파망 도구(원래는 살구 딸 때 쓰던 것 ㅎㅎ)로 철망을 후려쳐 침입자 냥이를 쫓았다. 그러느라고 안경테를 밟았다는 것이 문제. 가느다란 티타늄테는 안경접으면 90도로 꺽여있을 만큼 사태가 심각했다.

얼마 안 남은 재난지원금을 또 안경테 사는데 보태야하는건가 고민하며 안경점에 갔더니, 망가질 확률이 더 크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ㅠ.ㅠ  그러나 또 운이 좋았는지 펜치(?)로 바로잡은 테는 코팅이 좀 까졌을 뿐 얼추 원상복구되어 무료로 해결되었다! 기분이 좋기도 했고,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야매로 만들어준 스티로폼 집은 덧댄 차양이 다 깨져버려 집을 새로 사줘야하나 인터넷을 검색하며 고민을 하던 차에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관계로 일단은 저렴한 다이소에 가서 스크래처와 이삿짐박스를 하나 사왔다. 

길냥이 겨울집으로 검색해서 찾아본 이미지들은 대체로 이렇다. 

 

실외에서도 포근하고 좀 따뜻한 집을 원했는데;; 나름 방수도 되고 안쪽은 극세사 천이나 방석으로 덧대어져 있는 것 같다. 이 정도 집으로도 길냥이들이 한겨울 영하 15, 6도 되는 강추위를 견딜 수 있을까?

 

 

 

 

 

 

 

이 가운데 집은 방수가 된다지만 조립식이라 지붕을 따로 얹는 식인데;; 비가 새진 않을까 염려됨. 

 

 

 

 

 

 

 

 

 

 

제법 튼튼해보이는 제품이지만, 저 글씨는 왜 새긴 걸까.. 마음에 안들고 시커먼 색인 것도 좀 그렇고... 

하여간 이 고양이집을 본 순간 이삿짐 박스 사다가 내가 만들어주면 되겠네!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사실은 가성비를 먼저 생각했음 ㅎㅎ)

 

 

 

안경도 무료 수리되었겠다;; 흐뭇한 마음에 스크래처(2천원)도 한번 사보았다. 애들이 좋아하려나, 사용할 줄 알까 일단 저렴이 버전으로 골라옴. ㅎㅎ 야외용 간이방석 방석(천원)과 이삿짐 박스(5천원)로 일단 집장만 끝. 

이삿짐 상자라서 양옆에 손잡이 구멍이 뚫려 있어 그 부분을 다시 셀로판지 대고 테이프로 막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창밖에 내놓기 딱 좋은 크기의 집이 완성되었고, 방석과 담요와 스크래처를 놓아드린 뒤 두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연어 간식을 던져놓았더니 연이가 망설임없이 입주!

플라스틱 냄새가 좀 나서 과연 연이 진이가 금세 적응할까 염려했는데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몇시간 뒤에 내다보니 진이도 연이랑 같이 새집에 들락날락 신나게 놀았고 마침 비도 쏟아져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아 물론 스크래처는 그냥 올라 앉아 쉬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 같다. ^^; 한쪽이 살짝 내려앉은게 보임. 

오늘은 날씨가 더 쌀쌀해졌고 바람도 미친듯이 불어, 집 방향을 바꿔주었다. 혹시나 낯설어할까봐 옆에 나란히 놓아주었던 스티로폼 상자는 오늘 강풍에 홀라당 날아가 마당에 떨어져 버리려고 치워두었다. 일단은 이 박스로 살게 두다가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면 이 상자 안에 다시 보온되는 집을 넣어주면 되지 않을까. ㅠ.ㅠ 

엄마는 놀랍게도 한겨울엔 집안에 (베란다에) 들이면 되지... 라고 하시던데 나 원 참..  집에 들이는 건 완전 입양이라 병원 검진도 해야하고 완전 둘을 책임지는 거거든요! 전 못해요. ㅠ.ㅠ 애교덩어리 연이는 눈 마주칠 때마다 야옹야옹 울면서 뭔가 엄청 애원하는 느낌이지만 애써 외면하는 중이다. 일단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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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진이

양양연진 2021. 9. 25. 12:16

양양연진 가족과 만난지 어느덧 백일이 지났고 110일쯤 되었다.
동네에 살고 있는 주변 길냥이들은 여전히 기웃기웃 매일같이 엄마냥에게 버려진(?) 혹은 강제 독립당한 연이와 진이를 위협했다. 심상치 않게 우는 소리가 들려 창밖을 보면 검정 성묘가 다가왔거나 어느틈에 남은 사료통를 차지하고 먹다가 달아나는 식이었다. 연이진이 둘이 합심해도 아직은 성묘 침입자를 이길 수 있을리 만무하다. 내가 노려보고 쫓아도 한참을 안가고 버티는 녀석이니…  녀석도 가엾이 여겨 사료를 랩에 싸서 몇번 멀리 던져주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런 행동이 다른 길냥이를 연이진이 주변에 불러들이는 행동 같아 자제하고 있다. 일단 나는 연이 진이를 지켜야해. ㅠ.ㅠ

째뜬 어제는 나도 냥이들 지킴이에서 벗어나 일주일만에 문밖에 나가 종일 외출할 일이 있었다.
해서 일찌감치 8시쯤 사료통에 츄르와 사료를 담아줬는데, 이상하게 두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다른 때는 먼저 기다리고 있거나 좀 이따 냄새 맡고 오곤 했는데 좀 걱정됐다. 밤새 무슨 일이 생긴걸까.

오늘 아침 사료통을 확인해보니 사료양이 거의 그대로 남았고 위에 얹었던 츄르만 사라졌다. 요샌 연이 진이 따로 사료통을 두 개 놓아주는데… 흠. 사료가 무사했다는 건 침입자냥이 와서 애들 쫓아내고 다 먹어버리진 않았다는 의미다. 

오늘 아침엔 다시 통 하나에만 사료를 쏟고 츄르를 얹어 내놓고 한시간 쯤 기다렸을까… 연이만 홀로 나타나 츄르만 할짝대고 먹더니 저만치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낚싯대로 같이 놀기를 시도해보았으나 움직임이 시원찮다. 귀찮고 졸리고 그런 느낌..  그래 그럼 어여 가서 쉬거라, 하고 물러났는데 진이는 어디 갔는지, 잠시 모험을 떠난 것인지, 무슨 일이라도 당한 것인지 다시 걱정모드. ㅠ.ㅠ


2021. 9. 25. 사료먹던 연이가 찰칵 소리에 돌아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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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

양양연진 2021. 9. 11. 18:12

귀여운 길냥이 남매/형제/자매(성별 모름 ㅠ.ㅠ) 연진이와 만난지 어제(9월 10일)로 만 세 달이 지났다. 어미냥 양양이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연이와 진이만 우리집 창밖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나름 우리 사이에도 진전이 있는 듯 해 기쁘다. 척박한 환경에서 야생성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하므로 인간과 넘 친해지지 않아야 옳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연진이가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은 버릴 수가 없다. 째뜬 영리한 연진이는 매일 밥 주는 시간이 되면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오전 9시쯤 사료와 츄르를 담아주는데, 어느날인가 전날 과음으로 내가 좀 게으름을 부렸더니 창밖에서 와다다다 와다다다 쿵쿵 뛰어다니다가 (축대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면 쿵 소리가 남) 덜그럭 덜그럭 밥그릇 내팽개치는 소리가 들렸다. ㅋㅋㅋ 미안미안.. 얼른 일어나는 수밖에.  아니나 다를까 창밖으로 내다보니 본죽 통이 저 멀리 구석에 거꾸로 처박혀 있고, 연이 진이 두 녀석이 나를 딱 기다리고 있었다. (두번째 사진 ^^;;) 영리한 녀석들. 

(티스토리 뭔가 이상한지 사진이랑 본문 편집 잘 못하겠다. ㅠ.ㅠ) 

8월 말즈음인가, 아직도 내가 모습을 보이면 밥 먹다 말고 도망치는 연이 모습 포착함. 위협적인가 아닌가 돌아서서 살피는 듯하다. 어쩜 이리도 미묘이신지. 

낚시 놀이기구로 처음 놀아본 날. 연이만 호기심을 보임

축대 위 담장은 어미냥인 양양이가 늘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던 곳인데, 거기가 햇빛 맛집인지 연이 진이도 종종 거기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창문을 열면 귀찮은 듯 눈을 뜨고 달아날까 말까 고민하는 녀석들. ㅎㅎ 미안. 

9월 9일이 한국 고양이의 날이라길래 한참 놀아주기 시도! 첨엔 뚱하게 관찰중. 
진이는 겁쟁이인지 놀이에 관심 없고 연이만 열혈 참여.

깃털 달린 물고기 인형이 먹을 수 없는 장난감인 걸 연이는 알아차린 것 같다. 오늘도 잠깐 같이 놀았는데;; 진이는 올듯말듯 아직도 망설이고 연이는 거침없이 달려들어 탁 낚아챈 뒤, 다시 나더러 들어올리라는 듯 쳐다본다. ㅋㅋㅋ 춤추는 것처럼 나온 연이 사진 넘 귀엽고 예쁘다. 

용인에서 1년 넘게 활약하고 있는 캣맘 친구는 밥 주기 전에 이름 부르면 서너마리는 이름 알아듣는다고 하던데, 연이 진이는 택도 없다. 그냥.. 칩입자 냥이들 피해가며 잘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지난주에 한번 더 집사의 도움으로 검냥성묘 물리쳤는데 다른 고양이들이 다시는 얼씬거리지 않는 듯하다. 다행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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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만 해도 스노우캣 블로그에 올라오는 냥이 사진도 무서워서 잘 쳐다보지 못하던 나는 이제 없다. 주변에 반려묘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귀여운 모습을 담은 사진들부터 차츰 익숙해지다가, 아깽이를 입양한 지인네 집에 가서 실물까지 알현하고 나니, 고양이는 무서운 영물이 아니고 (과거 공포증은 모두가 어려서 본 <전설의 고향>과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 탓이다!) 키우고 싶지만 역량이 모자라서 그냥 지켜보며 함께 살아가는 생물이 되었다.

그 때문일까 몇달 전 고양이들에게 집사로 선택되는(선배 냥집사들의 표현이다. ^^;;) 일이 벌어졌다. 중학생들에게 현재 자기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있는지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종종 요구하는데, 요즘 내 머릿속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길냥이 가족인 "양양연진" 이 생각이 거의 절반은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2021년 6월 7일부터 시작된 "양양연진"과의 인연을 적어보기로 한다. 

엄청 오래된 다세대주택인 우리집의 구조가 좀 독특해서 집 바로 뒤가 축대이고, 내 방 창문을 열면 아래층 뒷베란다 지붕이 축대와 건물을 연결하고 있다. 그런데 초여름 활짝 열어둔 창문 밖에서 아주 가느다란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야옹'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어려울 만큼 들릴듯말듯 흐느끼듯 작은 울음소리. 방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 아기 고양이 두 마리한테 젖을 물리고 있던 어미 고양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사실 이 사진은 첫날 찍은 게 아니고 며칠 뒤다. ^^; 첫날엔 당연히 당황해서 서로 숨고 도망치기 바빠 (나는 왜?;;)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다.

너무나도 작은 새끼고양이와 어미냥에게 뭐든 먹여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황태포를 잘라 물에 적셔서 마실 물과 함께 내다보며 계속 동향을 살폈다. 그러나 이틀간 냥이 가족은 다시 오지 않았고 플라스틱 통에 담아준 황태포도 그대로였다. ㅠ.ㅠ 나 때문에 보금자리를 떠나 도망친건가 몹시 걱정하며, 혹시 모르니 외출했다 돌아오며 고양이 통조림을 사온 날 냥이 가족은  다행스럽게도 다시 나타났다. 나의 집사생활이 시작된 거다. ^^; 

근엄한 어미냥 양양이

얼른 사료와 츄르를 주문하고 본죽 통으로 사료와 물을 담아줄 식기를 삼아, 아침 저녁으로 밥을 주었다. 냥이들을 보며 떠오른 대로 이름도 지어주었으니.. 어미냥은 양양, 아깽이들은 색이 연해서 연이, 진해서 진이. 합해서 '양양연진'. 냥이들 사진을 주변에 자랑하면 셋다 미묘라고 칭찬이 자자한데 사실 양양이는 사진발을 잘 안받는다. 표정이 늘 시크하고 뚱해서 ^^; 실물보다 사진이 별로임. ㅋㅋ

처음엔 보기만 해도 하악질을 해대던 양양이는 열흘쯤 지나자 사료 셔틀을 하는 인간임을 대충 짐작했는지, 내가 방충문을 열고 말을 걸며 사료준비를 시작하면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고만 있게 되었다.

 

 

아깽이들은 물론 문여는 소리만 나도 도망치기 일쑤지만 가끔 몰래 접근해서 엄마냥과 함께 노는 모습을 사진에 담거나 축대를 짚고 쭉쭉이를 하는 귀여운 모습도 포착했다. 

얼굴 반쪽에 무늬가 들어간 요 녀석이 바로 진이다.

처음엔 진이가 더 활발하고 잘 노는 것 같더니만... 나중엔 연이가 더 몸집도 크고 잘 돌아다닌다.

21년 6월 17일 비온 뒤 털을 말리고 있는 양양이
미묘의 정석 연이 ㅠ.ㅠ 

비오는 날 비 피할 곳을 마련해주어야 할 것 같아 스티로폼 상자에 구멍을 뚫고 차양도 덧댄 다음 안에 수건을 깔아주었는데, 수건이 엉망진창으로 접혀 더러워진 걸 보니 애들이 들어가기는 하는 모양인데, 자주 이용하진 않는 것 같다. 비가 올 것 같으면 암튼 저 안에 사료통을 놓아준다. 

진이 & 연이:  도망치다말고 사랑스럽게 쳐다봄 ㅠ.ㅠ 21. 7. 9. 
드물게 찍는데 성공한 가족사진. 21. 7. 11.
양양이 독사진. 21. 7. 13. 의젓하다
역시 21년 7월 13일 가족사진. 

7월 내내 연일 35도를 넘나들던 폭염 속에서도 연진이는 쑥쑥 자라 처음 만났을 때보다 몸집이 한배 반쯤 커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료를 먹는 양은 점점 줄었다. 입맛이 없는 건가 병이 난 건가 염려했더니 집냥이들도 그런다는 듯해서 조금 마음을 놓았으나... 똑같은 사료 양을 주어도 이틀이나 갈 정도로 먹는 게 시원찮은 것 같았다.

그러다 이유를 깨달았다. 양양이가 사라져버린 거다. 고양이 기척만 나도 내다보기를 며칠이나 반복했으나 늘 연이와 진이 뿐... 양양이는 아깽이들을 버리고 떠난 것 같았다. 

 엄마냥의 부재를 내가 확실하게 인지한 건 8월 1일. 아직 어리고 연약한 새끼들을 두고 양양인 어디 간 걸까, 얘들이 벌써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될까, 잠깐 어딜 다니러 간 걸까... 걱정스러워서 밤에 잠이 다 오질 않았다. 

이 왼쪽 사진이 바로 8월 1일에 찍은 것. 

고아가 되었다고 느껴서 그런지 둘 다 표정이 불안하고 측은해보인다. 처음과 달리 진이는 겁이 엄청 많아서 가까이 오는 일도 거의 없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무조건 달아난다. 사료를 줄 때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연이 혼자일 때가 많았다. 해서 나는 또 진이가 어디 병이 난 건가, 다른 길냥이한테 공격을 당한 거나 아닌가 별 걱정을 다하게 되었다... ㅠ.ㅠ 

 

 8월 10일 홀로 나타난 연이

 

간간이 나타나는 침입자 고양이 때문이었는데, 급기야 8월 17일 새벽 5시 반. 창밖에서 요란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짝짓기때 우는 소리와는 또 다른 뭔가 급박하고 공격적인 울음소리였다. 무더위 탓에 창문을 활짝 열고 잔 터라 후다닥 잠이 깬 나는 달려가 뒷 베란다 창문을 확 열어보았다. 축대와 아래층 베란다 지붕 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미친듯이 울어대고 있는 검은 무늬 성묘 한 마리!

아니 이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내가 나타나 위협하자 녀석은 줄행랑을 쳤지만 성묘답게 멀리 떨어져서 계속 노려보는 것 같았다. 잠을 자는둥마는둥... 무슨 기척만 들리면 창밖을 내다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연진이는 만 하루 동안 모습을 감추었고 사료 주는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츄르를 듬뿍 부어주면 금방 냄새 맡고 나타나는 녀석들이 한밤중이 되도록 사료를 멀리하다니. 난 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 다음날 연이와 진이는 다시 씩씩하게 사료를 먹으러 나타났고, 오늘도 침입자 고양이의 공격 시도가 있었으나 내가 쫓아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이 녀석도 꽤나 예쁜 길냥이인데;;; 양양연진이 구역이라 내가 지켜주는 수밖에 없다. 뒷 마당에 사료를 부어준 적도 있는데 그건 또 입도 대지 않았다. 양양연진이가 사는 곳이 아늑해보여서 빼앗으려는 걸까. 어휴. 연진이가 아직 너무 어리고 연약해서 성묘의 공격으로 다치거나 쫓겨나게 될까봐 걱정이다.

두달 넘게 자랐는데 너희 언제 성묘 될래... 엄마 양양이는 돌아오라 돌아오라! 인간지킴이는 아직 두 아깽이 보호에 자신이 없단 말이다. 흑흑. 어쟀거나 오늘도 수북하게 사료를 담아주었다. 

21년 8월 21일 바로 어제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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