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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2.1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7

요즘 내 블로그에 로그인하다 보면 유입경로 순위에 사스SARS가 높이 떠 있다. 그만큼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전국민의 관심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몇년 전 사스와 메르스MERS의 외래어표기가 왜 다른가 트집을 잡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R이 똑같이 모음 뒤 S앞에 있는데 사스는 사르스가 아니고 메르스는 메스가 안 된 이유가 뭔지 지금도 모르겠다.  

요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잠시 '우한 폐렴'으로 불리다가 WHO 권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이름이 굳어졌고, 영어명칭은 2019 novel Coronavirus(줄여서는 2019-nCoV)이다. 메르스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이었지만,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부 발표와 언론,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확실히 사스와 메르스 때와는 체감하는 공포가 다르다. 과거엔 감염률과 치사율이 훨씬 높았는데도, 이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조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부에서도 '과할 정도'로 경계하는 것이 좋다는 방향을 설정했고, 아무래도 과거에서 배운 점이 있으니 현실적인 방역과 대처 방식도 달라졌다고는 하더라도 이렇게 연일 전염병 소식이 언론 1면을 장식했었던가? 카톡으로 날아오는 온갖 ~카더라 소식과 근원을 알 수 없는 정보는 또 어떻고!

지난 주말엔 원래 동문산악회에서 강원도 선자령으로 눈꽃산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고, 나는 간만에 원없이 눈세상을 볼 생각에 한껏 마음이 들떴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10km이상 걸어야한다기에 혹시나 체력이 딸릴까 염려되어 눈쌓인 동네 산에서 나름 특별훈련까지 마쳤는데.... 젠장. 바로 전날 눈꽃산행이 전격 취소되었다.

전염병 시국에 장시간 버스로 이동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다들 잘 한 결정이라고, 감사하다고 집행부를 칭송하는 글귀들이 어지럽게 단톡방에 올라왔다. 그런가? 나만 실망하고 섭섭했나? 겁나는 사람들 빼고 그냥 강행하기를 바랐던 내가 미친 건가? 난 오히려 아는 분들 3, 40명이 마스크 쓰고 버스타고 3, 4시간 이동하는 것이, 정체불명의 사람들과 동승하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돌아다니는 것보다  안전할 거라고 여겼다. 최소한 본인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자진해서 안 나올 테니까 말이다.

째뜬 그건 내 생각이었고, 연세 많고 보수성향이 강한 선배님들이 대다수인 이 집단은 강원도로 등산을 떠나는 대신 남산 둘레길을 돌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중국인들의 통행이 많은 명동 주변을 우회하겠다는 말씀. 푸핫. 남산에 중국인들이 얼마나 관광을 많이 가는데! 그렇게 중국인들이 무서우면 남산엘 아예 가질 말아야하는 게 아닌가? 참나... 모순이 따로 없다. 째뜬 말은 안했어도 바이러스가 무서워 등산 신청도 안했는지 원래 예정보다 참석 인원은 10명이나 더 많아졌다. 선자령에 가려다가 실망해서 오히려 빠진 사람을 감안하면 (실은 나도 남산이면 가지 말까 아침에 깨자마자 고민했었다. ㅎㅎ) 코로나바이러스를 염려했던 사람은 더 많다는 의미였다. 

동대입구역에 모여 장춘단 공원부터 투덜투덜 남산 둘레길로 향하며 그나마 유익했던 건 그간 한양도성 목멱구간을 두어번 돌았고, 남산둘레길도 남측 숲길과 순환로 위주로 두번이나 돌아봤지만 동대입구쪽에서 진입해서 서울타워 옆으로 뚫린 숲길은 처음 가보는 새로운 길이어서 나름 신났다는 점이다. 속으로 다음에 친구들 데리고 또 가봐야지 생각했다. 숲길을 지나 서울타워 주변으로 접근했을 땐 우어.. 화장실과 매점 주변 방역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하철 안과 역사에선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걷기 시작한 이후로 난 이미 숨이 가빠 될대로 되라 마스크를 벗어던진 상황. 솔직히 나는 까짓 코로나바이러스 따위 올테면 와봐라 뭐 이런 심정이었다. 혹시라도 걸리면 신상 털리고 행적 드러나는 게 쪽팔려서 그렇지 국가 비용으로 2주간 편히 격리병상에서 일이나 하지 뭐, 이런 생각을 꽤 오래 전부터 했었다. 엄마 때문에 괴로운 심정으론 차라리 그쪽이 감옥 같은 집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느낌일 거라고 주변에 고백한 적도 있다.   

미생물학과 교수인 후배님의 말로는 첫 발생 직후 확산률로 볼 때 이 정도면 방역을 잘 하고 있는 게 맞고 손씻기 같은 개인위생과 마스크 쓰기만 잘 하면 별 문제 없을 거란다. 어차피 모든 감기 바이러스엔 치료제가 없고, 독감 치사율은 정확히 집계가 불가능해서 그렇지 최소 연간 100명은 사망한다고 보아야 하며, 어떤 학자들은 독감 사망자 수를 비율로 따져 그 열배인 1000명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최종 사망 원인이 폐렴이나 패혈증이기 때문에 독감이 원인으로 잡히질 않는다는 얘기다. 해서 해마다 노약자들은 독감 백신 맞으라고 홍보를 하는 것이고. 독감보다 치사율은 낮고 전염율은 높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신종'이고 처음이라 겁나는 건 인정하지만, 이렇게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여 괴담이 돌 정도인가?

암튼 지인들 가운데서도 가짜뉴스인지 진짜로 근거있는 뉴스인지 생각도 않고 열심히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소식을 퍼나르며 실제로 걱정에 휩싸인 분들은 공교롭게도 정치적 성향이 일치한다. 그분들은 모든 중국인들의 입국을 막아야하며, 모든 대학이 중국인 유학생을 추방하는게 옳다고,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를 방치하면 큰일나는데 이번 정부가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현대의 흑사병으로 곧 판데믹이 찾아와 엄청난 인명살상이 예상된다고, 일단 감염되면 완치되어도 폐가 섬유화되어서 죽을 때까지 고생할 거라고 '아는 의사'가 말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 아는 의사 이름은? 소속은? 물론 개인 정보이므로 알려줄 수 없다고. +_+ 내가 괜히 공포분위기 좀 만들지 말라고, 팩트 체크가 필요한 사항인 것 같다고 반기를 들어도 그들에겐 소용없다. 나더러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니 정신차리라고 오히려 나무라심.  

폐는 병을 앓고 나면 반드시 그 흔적이 남는 장기라고 한다. 울 엄마도 젊어서 폐결핵을 앓으신 적이 있는데, 검진 때마다 의사가 그곳을 묻는다. 폐렴을 심하게 앓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폐섬유화는 아주 심하게 오랜 기간 폐렴을 앓는 경우에 생기는 후유증이고, 최근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때문에 들어보았으며, 호흡곤란이 심해 산소호흡기를 늘 가까이 하고 살아야한다고 들었다. 근데 요번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들은 벌써 퇴원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런 후유증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일말의 가능성으로만 그렇게 부들부들 떨 것 같으면 독감 치사율을 걱정하시라니깐요! 

독감이든 바이러스든 전염병이 창궐하면 조심하는 게 옳다. 그래서 다들 집밖에도 안나가고 가게마다 쇼핑몰마다 영화관마다 텅텅 비고 마스크 매진사태가 이어지는 것이겠지. 하지만 여러모로 의심 많은 나는 또 궁금증이 인다. 과연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지 않았다면 언론이, 정치인들이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를 가지고 대대적으로 떠들어댔을까? 물론 메르스 사태 때에도 야권이 정부를 공격하는 발언은 있었지만 그땐 진짜로 의사를 포함해 수십명이 죽어나갔고, 정보를 숨기려 쉬쉬했었으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일제히 메르스 사태만 조명하며 환자들의 개인정보까지 캐내려들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제 아카데미상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각본상부터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모두 휩쓸면서 이 꿀꿀하고 찜찜한 전염병 시국을 잠시 잊을만한 희소식을 날려주었다는 점이다. 난 드물게도 아직 <기생충>을 보지 않은 사람이지만 ^^; (초창기에 보지 않고 뜸들이는 사이에 천만 영화가 되어버리면 난 에라잇.. 괜히 더 보기 싫어지는 마이너 취향이다) 싫어하는 케이블 채널에서 해주는 생중계를 일부러 찾아보며 감동했다. 출판계에서 노벨문학상의 힘이 예전처럼 폭발적이진 않듯이 지난 몇년간 지켜보면 아카데미상의 힘빨도 별로여서 넘나 미국적인 아카데미 후보작들 인기도 시들하던데, 와... 이런 일이! 

현재 CNN 1면을 동아시아3국이 다 차지했다면서, 한국-기생충 아카데미, 중국-코로나바이러스, 일본-크루즈선 코로나환자 폭발, 이라는 인터넷 뉴스를 좀 전에 보았다. 개인적인 성취를 두고 무엇 하나 도와준 건 없는 나라가 나서서 (김연아, 박태환 때처럼) 국가적인 성취로 선전하는 거 딱 질색이지만, 암튼 워낙 독보적인 최초의 성과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국뽕'이 차오르려는 걸 애써 밀어냈다. 나와 관련된 온갖 행사, 교육, 자원봉사 일정까지도 다 취소되는 마당에, 어제의 쾌거 이후 나의 지인들 가운데선 슬금슬금 새삼 <기생충> 보러 영화관에 또 가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전염병 시국에서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이끄는 영화 제목이 <기생충>이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ㅋㅋ 나 역시 용감하게 <작은아씨들>을 개봉일인 내일 보려고 예매를 해두었다. 2주 전부터인가 씨네큐브와 몇몇 극장에서 아카데미 특별상영을 하는 걸 알긴 했지만 어쩐지 공식 개봉일에 보고 싶어 내린 결정이다.

원래부터 개인 위생 신경 안쓰고 막무가내로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나의 외출 및 영화 관람 동선이 겹칠 일은 없을 것 같다. 혹 겹치더라도 물샐 틈 없어보이는 방역에 더하여 내겐 마스크와 장갑이 있으니. ^^; 정말로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영화관이 파리를 날리는지 실제로 가보면 알겠지. 마스크 사기가 그렇게 힘들다고 노상 뉴스에서 나오던데, 저렴하게 대량으로 인터넷 구입이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 동넨 지난주 약국에서도 올리브영이나 랄라블라 같은데서 다 팔길래 그 또한 좀 의아했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가 집에 황사마스크를 수십장씩 쌓아두고 살 리도 없지 않은가. 필요할 때마다 구입하는 편인데, 지난 한달간 외출했을 때 어디를 들르든 없어서 못 산적 이제껏 한번도 없었다. 이 역시 내일 다시 둘러보겠음. 기레기들이 발로 기사 안쓰고 언론호도에만 힘쓰는지 어쩐지 나가보면 알듯. 그 결과가 나도 궁금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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