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 홀로

양양연진 2021. 12. 26. 11:44

진이는 결국 자취를 감추었다. 어디선가 새로운 터를 잡고 무사히 잘 살고 있기를 바라지만 성묘들한테 겁 없이 달려들고 싸우던 진이의 성향을 돌이켜보면 걱정이 많다. 생각할수록 나쁜 상상이 커져서 그냥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홀로 남은 연이의 혹독한 겨울나기가 걱정스러워 11월에 고보협에서 공구하는 겨울집을 구매했다. 작년 모델보다 더 튼튼하고 보온에도 신경을 썼다는 것 같다. 앞쪽 입구에도 아크릴비닐 같은 걸 붙여서 바람이 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안엔 등산용 깔개 위에 담요를 접어서 깔아주었었는데 나중에 포근한 발방석을 하나 더 넣어드림.

관찰해보니 연이가 저 비닐 밑으로 잘 드나든다
간식으로 유도했더니 별 어려움 없이 입주 성공.
아침마다 사료를 담아주며 관찰해보면 연이가 참 많이 컸다.
연이는 어떻게 이리도 미묘이신지
츄르 먼저 먹고 입맛 다시는 중
이것이 바로 고양이 세수?
폭설이 내린 날 내다보니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간에도 영하 7도가 넘어가는 날엔 핫팩을 하나씩 집안에 넣어주었었는데;; 올들어 최대한파가 예고된다니 걱정스러워서 캠핑하는 사람들이 쓴다는 방석형 핫팩을 주문했고 다행히 어제오늘 최대한파가 몰아치기 전에 당도해 어제 처음으로 핫팩이 8개 붙어 있는 방석을 집안에 깔아주었다. 확실히 뜨끈뜨끈한 느낌. 그러나 시간이 유지 시간이 14-16시간이라 애매하다. 추워도 어딘가 쏘다니는 것 같은 눈치라서 연이가 핫팩을 가장 잘 이용할 시간대가 언제인지 파악하는 것도 어렵다. 지금으로선 그냥 가장 추운 시간에 맞춰서 주는 수밖에. 올 겨울 추위를 연이가 홀로 잘 견뎌야할 터인데;; 걱정이다. 사료 줄 때 이젠 코앞에서 기다리며 독촉하는 정도는 되었지만 한번 만져볼라고 손이라도 뻗을라치면 후다닥 축대 너머로 아예 달아나 버린다. 핫팩 깔아줄 때도 멀찍이 도망침. ㅋㅋ 겁쟁이...

근데 길냥이는 어차피 인간을 계속 무서워하는 게 옳으므로 적당히 사료 셔틀로서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맞겠지. 앞으로 얼마나 더 혹한이 올지 모르겠으나 부디 삼한사온이기를 강력히 촉구하는 (누구한테?) 바이다. ㅎ

Posted by 입때
,

엄마들은 왜 속마음을 선뜻 털어놓지 않으실까. 표본의 수가 엄청 적기는 하지만 친구들과 노모 얘기를 하다보면 역시나 공통되는 푸념 하나가 엄마의 말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최소한 세번은 권해야한다는 쓸데없는 '국룰' 때문일까? 바쁘게 돌아가는 21세기에, 모녀지간에 아직도 그러는 건 시간낭비 감정낭비 아닌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요번 엄마 생일에 맛있는거 외식할까요? 아니 됐다. 귀찮게 뭘 나가 먹니. 간단히 집에서 먹자.... 근데 또 열심히 설득에 나서면, 영 싫은 눈치도 아니다. 물론 까칠한 딸의 설득이라는 것이 조근조근 양해를 구하는 게 아니라서, 아 몰라! 집에서 밥 차리기 내가 힘들다고요! 뭐든 나가서 먹을 거야! 한중일양식 중에 고르세요. 안 고르면 내 맘대로 정할거야!... 이런 식으로 반협박을 하면 엄만 또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선다. 솔직히는 원래도 그럴싸한 데 가서 외식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사실 울 엄만 본인의 욕망을 늘 감추고 살며 인고의 삶을 표방하는 어머니상은 아니다. 오래 우울증, 조울증을 겪으시면서 자기방어기제가 생겼는지, 아니면 늘 엄마를 중심으로 (이건 작고하신 아버지의 아내 사랑 영향이 크지만) 위해바치는 태도가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종종 내가 "울 엄만 모성애가 부족해!"라고 투덜거릴 만큼 본인 중심의 사고방식을 시전하실 때가 많다. 나의 두 할머니들이 극진한 손주사랑으로 뭐든 손주 먼저 챙겼던 태도와 너무도 달라서 나로선 신기할 정도다. 또 예를 들자면, 울 할머니들은 과일이든 간식이든 웃 어른으로서 제일 먼저 챙겨드리면, 그걸 대체로 나나 어린 손주들에게 양보하셨다. 아니면 아껴두었다가 우리더러 더 먹어으라고 주신다든지. 근데 울 엄만 혹시라도 옆에서 빨랑 먹고 싶어 징징 우는 조카들에게 먼저 간식이나 과일을 챙겨주었다가는 엄청 뭐라고 하셨더랬다. 어른(당신)이 먼저지! 애들이 어디 버릇 없이!!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고는 실제로도 엄마 입으로 가장 먼저 들어감. ㅠ.ㅠ 딸기공주였던 큰 조카와 왕비마마 울 엄마의 은근한 알력 다툼 때문에 ㅋㅋ 옛날엔 따로따로 담은 딸기와 케이크를 동시에 딱 가져다 드리거나, 큰 접시에 공유용으로 내갔을 땐 양손으로 동시에 포크로 찍어 나눠드렸을 정도다.

모든 엄마들이 자식을 위해 언제나 희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성애도 결국 사회를 위한 세뇌이자 이데올로기라는 데 동조함. 그렇기에 울 엄마의 당당한 가모장 태도를 응원하긴 하는데, 먹거리 장유유서와 관련된 원칙은 중시하면서 그 외 사안엔 왜 본인의 속마음을 단번에 내보이는 건 어려워하시는지 모르겠다. 모녀 여행이라도 떠났다가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반응 때문에 얼마나 속이 터졌던가. 이거 먹을까, 저거 먹을까, 여기 더 들렀다 갈까, 말까, 뭘 살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 앞에서 엄마의 첫 대답은 늘 "됐어." "괜찮아." 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짜증나서 쌩 돌아서기라도 해보면 섭섭한 눈치시고! 어휴.  

엄마도 이젠 내 더러운 성질머리 아실 때도 됐는데, 아직도 습관처럼 "엄만, 됐다. 니 마음대로 해."라고 하는 반응 때문에 속이 문드러진다. 그래서 요새 내가 도입한 방법은 질문하기 전에 먼저 협박(?)을 한다는 거다. 엄마, 딱 한번만 물을 거예요. 잘 생각하고 대답하세요.... ㅎㅎ (물론 이 방법도 잘 안 통할 때가 많다. +_+) 내가 너무 못됐나? 엄마들도 제발 이제 좀 자기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 좋고 싫은 것을 단숨에 입밖으로 내뱉으셨음 좋겠다. 여든살에도 맘대로 못하고 살면 넘 억울하지 않으시냐고요!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