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투덜일기 2012. 9. 18. 18:09

무서운 고양이 사진이 너무 많기도 하고 가끔 고양이 물품과 관련하여 어쩐지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있어서 즐겨찾기에서 지워버렸던 스노** 사이트. 지금도 즐겨찾기에 들어있지는 않지만 이따금 궁금해져 찾아가본다. 어차피 주소도 어렵지 않고... 아마도 이유는 그곳 주인장이 스스로 우울증, 조울증 심증을 고백하며 블로그는 아예 닫아버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냥 남들이 지나가는 말로 증상이 그렇다고 하니까 겉으로만 인정하는 건지, 진짜로 상담이나 약물치료라도 받는 건지 염려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역시나 내가 환자의 가족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심리적,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은 계절이 바뀌는 시기를 남들보다 조금 민감하게 넘기는 편이라는 것이 나의 오랜 관찰 결과인데, 일년에 네번이나 되는 환절기가 다 문제는 아니고 가장 불안함이 두드러지는 시기는 역시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점과 가을에서 다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이다. 아마도 줄어든 일조량과 호르몬의 관계라지. 사실 나도 이거 우울증 아닌가 싶게 가을은 좀 힘들다.

 

암튼 낮이 하염없이 길었던 여름이 지나고 저녁이 좀 일찍 찾아온다 싶은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불안이 감지되는데, 그 시작은 지나친 씩씩함과 활동성이다. 외출할 일이 있으면 거기에 덧붙여 더 많은 '건수'를 만들어 온종일 돌아다니고 안하던 쇼핑도 막 하러 다니고, 양손 가득 무거운 찬거리를 들고 들어오기도 한다. 갑자기 집안일에 열의를 보이며 새벽부터 구석구석 먼지를 파내기도 하고 오래된 물건 정리도 하며, 그 어떤 잔소리를 해도 하하호호 기분이 좋다. 어떤 날은 집에 있으면서 종일 사방에 전화를 걸어 호호깔깔 목청 높여 대화를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은 활기차고 건강해졌다며 반기는데, 절대 그게 아니다. 이른바 조증 상태이기 때문. 무기력한 울증 상태보다 더 나쁜 상황이고 곧이어 수렁같은 울증이 찾아올 것이라는 암울한 예고편이다.

 

오늘 문득 생각이 나 홈피에 가보았는데, 짧지만 비슷한 사연을 올려놓았다. 그래도 발전적이라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여 다행이다 싶긴 하다. 하지만 붕 떠 있는 듯한 기분을 인정하면서도 아무것도 안하고 무기력하게 늘어져 쓸모없는 인간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며 계속 의욕을 보이는 것은 조증 상태의 전형적인 반응. 그런 상황이 되면 나는 붕붕 떠 있는 마음을 끌어잡아내리는데 안간힘을 쓰면서도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보인다. 늘 겪는 일인데 뭐, 좀 있으면 지나갈 거야, 걱정하지 마슈. 약 조절도 받았고, 일단 잠의 질만 더 나빠지지 않으면 최근 몇년 그래왔듯이 또 다시 수월하게 잘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여름 끝자락부터 내가 버럭버럭 성깔을 부리며 독 오른 짐승처럼 굴었던 건 어쩌면 환절기를 무사히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지레 겁먹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계절은 바뀌었고 해는 확 짧아졌고 노친네는 부쩍 부지런해져 노상 바쁘다. 슬슬 체력 떨어질 때도 됐으니 고비도 머지 않았다. 약간 엄살을 부리는 것이면 좋겠으나 스노**도 노친네도 어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다시 중간즈음의 평온을 되찾기를. 스산한 가을도 싫고 추운 겨울도 싫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계절은 역시나 환절기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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