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너무 뜨겁고 더워도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걸 처음 실감했던 올 여름. 생각보다 빙수는 많이 먹으러 다니지 않았다. 빙수 한 그릇 먹을까 싶다가도 막상 시키려고 보면 달디 단 빙수보다는 얼음 잔뜩 넣은 쌉싸름한 아이스커피가 더 땡기는 걸 어쩌겠나. 유명한 빙수집을 잘 모르는 것도 그만큼 내가 빙수를 즐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해서 여름을 통틀어 빙수는 너댓 번 먹은 게 다인 것 같다. 그럼에도 뭘 또 굳이 적어두나 싶지만 마침 휴대폰 사진 정리하다 나온 사진 석장에 기록의 유혹을 느꼈다. 내년 여름에도 혹시 빙수 생각나면 참고해야지.

 

 

북촌 한옥마을 가던 날 안국역 지하에 있는 (아마도) 파리크라상에서 먹은 올 여름 첫 팥빙수. 이름이 <얼음공주>였다. 화이트초콜릿으로 만든 티아라를 얹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으나, 나는 딱 한 입 먹어보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엄청 달아~! 달아도 너~~~무 달아서.... 지금도 몸서리가 부르르.

위에 얹은 인절미는 부드럽고 쫄깃했던 것으로 기억되나 팥은 그냥 중국산 통조림 팥이 분명하다. 가격은 9500원쯤 했던 듯.

다시 먹고픈 마음은 없다.

 

 

 

 

 

 

 

 

 

 

 

 

 

저 멀리 판교까지 가서 먹은 '아임홈'의 <밀크빙수>.

후배가 유명한 곳이라며 데려갔는데, 알고 보니 I'm Home이라는 카페가 여기저기 프랜차이즈로 있는 모양이다. 분당에도 있고 죽전에도 있고...  서판교였던가 동판교 였던가 암튼 거기도 카페거리가 있던데 딱 보정동 카페거리처럼 생겼다.

후배 말로는 위에 얹은 아이스크림도 직접 만든 수제아이스크림이라고. 곱게 간 우유얼음 아래 견과류와 팥이 숨어 있다. 견과류 좋아하는 나는 별로 달지 않고 고소해서 좋아라했는데, 인절미 대신 찹쌀떡이 나에겐 에러! 난 찹쌀떡이 달아서 싫다.

11000원이었던 걸로 기억. 밥 잔뜩 먹고 갔던 터라 둘이 먹다 다 못먹고 남겼다. 사진 찍어온 빙수 셋 중에선 단연 독보적인 1위. 그러나 최고의 빙수라고 할 순 없다...

 

 

 

신촌 명물거리에서 기차역쪽에 가까운 대로변에 있는 '호밀밭'의 <밀크빙수>. 줄서서 기다렸다 먹는 빙수집으로 워낙 유명하다며 꼭 한번 가보자는 친구 말에 싫단 말도 못하고 따라갔다. 정말로 20분쯤 줄 서서 기다렸다 먹었는데, 대체 왜 그렇게 유명해진 건지 나로선 좀 의아했다. 혹자는 <밀탑> 빙수의 맛과 견주던데, 팥 리필해주는 거 말고 어디가 비슷하다고! 통단팥의 씹히는 맛으로 보아 여기서 직접 만든 것 같기는 했고, 콩고물 안 묻힌 찹쌀떡 얹어주는 것도 밀탑 식이긴 하다. 하지만 빙질과 맛은... 으음. (밀탑 빙수 먹어본지 오래됐긴 하다만;) 어쨌든 가격은 저렴했다. 단돈 5500원. 당연히 양이 적은 편인데, 둘이 하나 시켜놓고 팥 리필 두번이나 해서 먹는 사람들도 있더라. 으어.... 달랑 두개 나온 찹쌀떡은 안 먹어봐서 모르겠다. 팥소를 처음부터 아예 따로 주는 건 마음에 들지만 우유얼음을 너무 곱게 갈아서 숟가락질 몇번 하면 금방 물이 되어버린다. 팥 없이 그냥 얼음만 먹으면 딱 <서주아이스주> 맛이라고 내가 말했더니 친구도 동의했다. ^^;

 

 

부산 광안대교 주변인가 그렇게 팥빙수 골목이 유명하다는데, 정말 싸고도 별로 안 달고 맛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워낙에도 단팥을 좋아하지 않으니, 막상 가보면 시큰둥하게 될듯...

 

뭐니뭐니해도 나에게 최고의 맛으로 각인된 빙수의 추억은 두 군데가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닌 세검정 모 대학 언덕배기에 있던 그랑빌 분식의 커피빙수. 수십년 전이라 그저 빙수 얼음에 가루커피와 연유를 듬뿍 얹어주는 게 전부였는데도 정말 너무너무 맛이 있었다. (내 키가 요렇게 작은 이유가 정말로 중학생 때부터 탐닉한 인스턴트 커피 때문인지 아닌지 못내 궁금타;;) 그집은 그랑빌 국수라고 해서 쫄면을 칼국수처럼 끓인 국수가 엄청 맛있고 유명했는데, 뜨끈한 그랑빌 국수를 후후불어 먹고 나서 후식으로 커피빙수를 먹으면 정말이지 세상이 내것인 듯 기분이 좋아졌었다. 졸업후에도 그 맛을 못 잊어 가봤더니 분식집이 통째로 없어졌두만...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아 글쎄 신촌 호밀밭의 커피빙수도  인스턴트 가루커피를 얹어주길래 깜짝 놀랐다. 호기심이 약간 동하긴 했으나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안드는 비주얼. 그 옛날 그랑빌의 커피빙수는 가루커피에 우유랑 연유를 듬뿍 얹어주어 진짜 맛있었는데... 

 

두 번째 역시 공교롭게도 분식집에서 팔던 빙수다. 하기야 수십년 전엔 지금처럼 카페가 많지도 않았고, 빙수는 여름에 제과점에서 주로 파는 한정 상품이었다규~! 암튼 내가 반했던 두 번째 빙수는 바로 이대앞 가미분식의 수박 빙수. 가미도 여름 한철 수박빙수에 연유를 듬뿍 얹어 내주었던 것 같다. 나 설마 빙수가 아니라 연유 맛을 좋아했던 것 아니겠지? ㅋ 째뜬 가미분식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주인이 바뀐 이후로 맛이 완전히 달라져 발길을 끊은지 10년도 넘은 것 같다. 고등학생 때는 정말이지 시험 끝난 다음이나 여름 방학 때 큰 마음 먹고 이대앞에 나가 가미분식 찾아가는 걸 대단한 행사로 여겼었는데...

 

이제는 사라져버린데다 추억이 가미되어 더 맛있었다고 느껴지는 그런 상상의 빙수맛 말고, 진짜로 내 입맛에 꼭 맞는 빙수가 어디엔가는 있으려니 싶어서 해마다 여름이면 빙수를 떠올리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디 커피빙수 맛있게 하는 집 없을까, 하는 나의 로망은 이번에도 내년으로 넘겨야할듯.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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