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추억주머니 2012. 4. 24. 20:19

얼마전 무척 오랜만에 인사동엘 갔었다. 그것도 날씨 화창한 토요일 오후에.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깔려죽을 것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사동길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며 숨막힘을 느꼈고, 마냥 아쉬웠다. 이제 그 옛날 인사동 분위기는 절대로 느껴볼 수 없겠구나 싶어서였다. 관광객과 온통 중국제 투성이 기념품으로 가득한 인사동은 이제 더는 전통의 거리도 아닌데, 사람들이 왜 자꾸 모여드는지 그걸 통 모르겠다. 하기야 나도 순전히 항아리 수제비 먹을 욕심에 간 거니까, 다른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으나 확실히 인사동은 이제 포장만 요란한 불량품 같다. 내가 맨처음 화방과 골동품 가게 늘어선 인사동 구경을 다니던 중학생 시절은 물론이고,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인사동은 꽤나 멋진 곳이었다. 하지만 이젠 인사동에 나갈 일이 생기면 심호흡부터 하며 스트레스를 미리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한 곳이 되고 말았다. 그 동네를 버려놓은 건 서울시일까, 상업자본일까, 그냥 세월의 변화일까.

 

어린시절 인사동엘 왜 처음 나가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잘난 척 서예도구를 사러가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화선지라도 학교앞 문방구에서 파는 거랑 인사동 화방에서 파는 거랑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같은 가격이라도 인사동 화방에서 파는 화선지는 두툼하고 표면이 오톨도톨 먹물이 잘 번지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화선지를 묶음으로 사서 나눠갖고 뿌듯해 했다. 서예용 붓도 적당한 가격에 꽤 질 좋은 걸 살 수도 있었다. 우리 같은 애송이는 감히 구경도 못할 엄청난 고가의 붓부터 학생용 붓까지 화방엔 다양한 종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화선지 몇 장 사러가서도 그런 붓을 쓰다듬어 보는 게 나는 퍽 기분이 좋았다. 멋드러지게 생긴 벼루나 연적 같은 건 그저 그림의 떡이었지만 별로 비싸지도 않으면서 잘 갈리는 먹을 사는 것도 가능했다. 고가품만 파는 화방에서야 중학생 손님쯤 거들떠도 안보는 데가 많았고, "화선지 있어요?"라고 물으면 귀찮은 듯 손사래를 쳐 내쫓는 주인들도 만났지만, 의외로 친절하게 맞아주는 주인들도 있었다. 미술반 시절엔 고급 액자로 골라 그림 표구를 맡긴 부잣집 딸 친구를 따라 표구상에 들어가본 적도 몇번 있었는데, 표구상에서 나는 향긋한 나무 냄새(지금 생각해보면 나무냄새가 아니라 '본드' 냄새였을 수도 있겠다;; ㅋ)가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암튼 인사동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그림과 골동품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후로도 어른이 될때까지 인사동엔 가끔씩 나갈 일이 있었다. 지금은 어느 문방구든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한지로 된 편지지와 편지봉투, 곱게 물들인 한지 포장지가 당시엔 인사동 화방에만 있었고, 종이를 꼬아 만든 갈색 지끈도 거기 나가서 구해야 하는 품목이었다. 또 허리우드 극장에서 영화를 보게되면 낙원상가 아래의 허름한 술집에서 풍겨나오는 냄새를 피해 후다닥 길을 건너 꼬불꼬불 골목길로 경인미술관을 찾아가 대추차나 수정과를  마시며 뿌듯해했다. 나의 한옥 선망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던가? 당시만 해도 경인미술관엔 잔디 깔린 너른 마당이 있고 잘 생긴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비오는 날 처마로 떨어지는 낙숫물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거기가 번잡한 종로 한복판이란 걸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차 마당이 사라진 경인미술관에선 이제 그런 정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아직 안 없어지고 있어주는 걸 고마워 해야 하는 건지도.

 

째뜬 끼니때 인사동엘 나가면 나는 비싸기만 했지 별로 먹을 건 없는 한정식보다 꼭 <조금> 솥밥을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안국동쪽 초입에 있는 그 밥집에서 먹던 굴 솥밥, 새우 솥밥, 송이 솥밥 같은 걸 무척 좋아했는데, 5, 6천원쯤 할 때 먹기 시작했던 <조금> 솥밥 가격이 마지막 먹었을 때 만삼천원이었으니, 참 세월이 엄청 흐르긴 한 것 같다. ^^; 하지만 일식 느낌이라 반찬도 별로 없고 양도 많지 않은 솥밥을 그 가격에 먹는건 낭비라는 측근들도 있었고, 인사동의 번잡함을 다들 싫어하는 탓에 최근엔 가본 적이 없어 혹시 없어진 건 아닌가 모르겠다. 내가 인사동 밥집의 양대산맥으로 치는 또 한 군데, 인사동 항아리 수제비집은 아직 그대로던데. 사실 지난번에 번잡한 토요일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간 이유는 순전히 항아리 수제비집엘 가기 위함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맛이 좀 변하긴 했어도(옛날엔 깻잎을 넣어 향이 더 진했는데, 외국 관광객 입맛에 맞추려는 노력인지 언제부턴가 깻잎은 사라지고 말았다 ㅠ.ㅠ) 굴과 감자를 넣어 끓여 항아리에 담아주어 표주박으로 각자 퍼담아 먹는 항아리수제비는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음식이다. 동동주에 해물파전을 곁들여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옵션.

 

회사생활 할 때 외국에서 온 사람들 서울 관광을 시켜줘야 할 때면 나는 거의 창덕궁-인사동-남대문시장 정도로 동선을 짰고, 불고기나 갈비 이외의 한국음식에도 도전해보려는 사람이 있으면 이 항아리수제비집으로 끌고갔다.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아무래도 굴을 넣은 수제비를 난감해했지만 해물파전과 동동주 싫어하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회사를 때려치운 뒤 영어로 씨부리는 걸 까먹지 않으려고 종로통 학원엘 꽤 오래 다니면서는 거의 하루 걸러 한번씩 인사동 찻집과 카페를 전전했다. 차를 마시고 싶으면 <경인미술관>이나 <옛찻집>에,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산타페>와 <볼가>에 가서 두세 시간씩 수다를 떨었다. <산타페>와 <볼가>엔 꽤 먹을만한 점심 특선도 있었고 좀 진한 커피도 맛있었는데, 둘 다 이국적인 인테리어 때문에 좋아하긴 했어도 특히 <볼가>엔 늘 싱싱한 생화가 여기저기 꽂혀 있어 더 애용했다. <산타페>는 없어진지 한참 됐는데, <볼가>는 대학로의 <릴리 마를렌>과 더불어 아직 있다는 것 같다. <볼가>엔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인사동엘 나가는 게 워낙 부담스러우니 선뜻 실행하지 못한지가 수년째다. 상대적으로 항아리 수제비집엔 한가한 시간을 틈 타 꽤 들락거린 걸 보면 난 역시 커피보다 탐식 욕망이 더 강한 사람. 아, 그러고 보니 인사동에만 있던 주막 분위기의 전통술집도 거의 다 사라졌다. 솔잎 막걸리를 비롯한 온갖 막걸리와 동동주, 홍주 따위에 취해 비틀거리며 인사동 밤거리를 빠져나오던 것도 다 과거의 추억일뿐.   

 

오래 전엔 엄마 때문에도 인사동엘 갈 일이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엄마는 알록달록한 통영 누비 덧신을 사러 꼭 종로쪽 인사동 초입에 있는 잡화상을 찾았다. 본인이 신을 것 말고도, 외할머니, 이모 것까지 크기별로 덧버선을 고른 뒤엔 수 놓인 누비 주머니 같은 것도 오래 만지작거리다 사들였다. 화장품 지갑, 염주 지갑, 동전 지갑 등으로 쓰던 통영 누비 파우치 몇개는 아직도 멀쩡한 모습으로 집에 남아 있다. 헌데 생활한복을 파는 집들이 더러 인사동에 남아있긴 하지만 오며가며 살펴본 바로는 이제 통영 누비를 파는 잡화점은 사라진 것 같다. 인사동에서 파는 복주머니, 행낭, 조각보 같은 것들이 이젠 다 중국에서 들여온 싸구려 물건이라니 손으로 일일이 꿰매 누빈 통영 누비 수공예품이 발 붙일 구석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 옛날에도 통영 누비는 시장에서 파는 막 덧버선보다 꽤나 비쌌는데, 엄마랑 외할머니는 그래도 통영 누비 덧버선이 편하고 따뜻하고 오래 간다며 굳이 인사동까지 행차했던 거다. 하지만 통영 누비 덧신의 오랜 팬이었던 울 엄마도 어느덧 보들보들한 수면양말의 매력에 굴복한지 오래다. 

 

주말 오후의 인사동엔 걸어다니는 것조차 힘에 부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지만 뜻밖에 항아리 수제비 집은 한산했다. 전에 없던 메뉴가 생겨난 걸 보면 그곳의 인기도 시들해진 듯했다. 그곳 역시 20년 가까이 안 없어지고 있어주어 고마워해야할 판. 그러나 수제비가 먹고 싶을 때 제일 처음 떠오르는 곳일지언정 앞으로도 선뜻 가겠다고 나서기엔 인사동이 너무 많이 변했다. 요번에도 거의 2, 3년 만에 다시 찾은 것 같은데,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과 별도로 시끄럽고 번잡한 인사동에선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쓰고 앉았으면서도 대체 왜 쓰는지 의아해 하며 며칠에 걸쳐 이 포스팅을 하고 있는 이유도 아마 그런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인사동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 사라져간 것들을 돌이키는 마음은 늘 조금 서글프고 처량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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