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음...

투덜일기 2011. 5. 30. 16:19

세상도 그렇고 주변도 그렇고 들리는 이야기가 다 우울하고 쓸쓸하다. 연로한 부모님들은 자꾸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와 자식들을 긴장시킨다. 사별 후 홀로 남은 부모님을 '잘' 모시는 일도 쉬운 건 아니다. 엄마의 황혼 재혼을 나는 단 한번도 상상해본 일조차 없는데, 주변에선 아주 흔한 일도 아니니 무엇이 옳은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나마 하나 알겠는 건 부모에게 재산이 좀 있으면 확실히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연이어 돌아가셨을 때 우리 가족은 그냥 망연히 슬퍼하는 것밖엔 딴데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두분 다 여든을 넘기고 장수하신 편인데다 얼마 앓지도 않고 갑자기 돌아가셨고, 남겨줄 유산 같은 건 거의 없었으니 자식들 간에 분란 일어날 일도 없었다. 어떤 집안에선 장례 때 들어온 부의금 갖고도 싸움이 난다는데, 두분의 장사를 치르고 남은 돈은 앞으로 제사를 모셔야 하는 장남이 '당연히' 갖고 있는 거라며 간단하게 결론이 났다. 나는 다 그런 줄만 알았고,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자손들의 유산 싸움은 재벌들 사이에서나 벌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상황이 달랐다. 할머니의 유산이라야 집 한 채가 전부이긴 해도 규모가 크니 다툼이 벌어졌고 심지어 장례비용과 부조금 갖고도 내놔라 마라 패악을 부리는 자식이 있어 지켜보며 학을 떼었다. 욕심을 크게 부린 그 자식은 장례 며칠 후 현관 유리를 깨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기가 막혔고, 외할머니의 삶이 너무도 기구해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을 엄마 명의로 바꾸느라 법무사를 찾았을 때, 괜히 듣기 좋으라고 한말이겠지만 법무사가 엄마에게 자제분들이 다 착하네요, 했다. 집이라고 얼마 하지도 않는데요 뭐, 정도로 대꾸하자 그들은 정색을 했다. 요즘 자식들이 각박해서, 단돈 백만원도 순순히 부모에게 넘기려 하지 않는다나. 그래서 어차피 돌아가실 노인들이라는 핑계로, 사별의 경우 집 같은 건 당연히 자식 명의로 바꾸는 게 대세인데 자식들이 서로들 가지려고 쌈박질을 해댄다고 했다. 외할머니 때 이미 그런 자식을 본 적이 있으니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아버지 형제 팔남매, 우리 삼남매의 의가 좋은 건 부모가 가난했기 때문이라는 명제를 세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친구 하나는 요즘 홀로 남은 아버지 때문에 전전긍긍 속앓이 중이다. 재작년에 10년 넘게 병석에 계시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70대 중반인 친구 아버지는 교회에서 만난 권사님과 얼마전 살림을 차렸단다. 그 '아주머니'(새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기로 형제들은 작당을 했다)를 집에 받아들이며 자식들이 부자 아버지와 협상한 조건이 있었다. (재산 때문에 재혼도 마음대로 못하는 불쌍한 노인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거 처음 알았다. 부모가 돈이 많으면 자식들이 고분고분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아버지가 살고 있는 수억대의 아파트를 그 아주머니 명의로 해주는 것으로 추후 재산권 주장은 금하며, 앞으로의 분란을 막기 위하여 혼인신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각자 자식들이 있으니 처음엔 그 아주머니도 아버지도 그러마고 동의를 했다는 모양이다. (자식들에게 그분들이 환멸을 느끼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헌데 누구의 의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아직 60대인 그 아주머니의 처지가 늙은 남자 밥 해주러 들어온 살림 도우미도 아니고 하니 혼인신고를 끝내 해야겠다고 두분이 우기신다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친구 아버지는 아직도 제조업을 경영하고 있는 상당한 재력가이고 장남인 친구 오빠가 같이 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친구를 포함하여 모두 결혼해 분가한 오남매는 그 아주머니를 거의 재산 노리고 접근한 꽃뱀 취급하며 결사반대를 하고 있어, 집안이 쑥대밭이란다. 친구는 아버지가 적잖은 돈이 든 통장을 생활비조로 이미 아주머니에게 넘겼을 텐데, '정말 욕심 많은 노친네'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두분이 정말로 정이 깊어 혼인신고를 하고 정식 부부로 말년을 보내고 싶으실지도 모른다는 나의 의견은 단칼에 무시됐다. ("니가 뭘 안다고 그러니!"-- 그럼 암것도 모르는 나한테 얘기는 왜 했담;;)

물론 나는 두분의 마음을 모른다. 하지만 만에 하나 울 엄마가 새로운 동반자를 만나 개가하길 원한다면... 한동안 배신감에 사로잡히기는 하겠지만 그것 역시 엄마의 권리이자 선택이므로 자식으로서 말리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물정을 아직 몰라서, 또는 거액의 상속재산 따위를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단순하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홀로 남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비혼의 친구 하나는 아직 건강한 아버지가 쓸쓸하지 않게 여자친구라도 만드시길, 가능하다면 황혼재혼도 추진해보려고 넌지시 권유하는 중이라던데, 그 친구도 아직 세상 무서운 줄을 몰라서 그런 생각을 품은 걸까?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요즘 세상 자식들 하는 짓과 욕심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무섭다. 가난해도 자식에게 버림받고 돈이 많아도 자식의 욕심에 말년이 편칠 않으니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옛날부터 있었겠지만,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씁쓸하다. 수십억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라며 핏대를 올리는 친구 앞에서 계속 인상을 쓰다가 들어왔더니 머리가 다 아프다. 부자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은 참 의외의 순간에 다가온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