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대야

추억주머니 2011. 5. 20. 23:21

온 집안 가득 대부분 옛날 살림살이로 들어찬 우리집.
창고나 다름없는 옷방 한 구석엔 엄마가 시집올 때 혼수로 해온 재봉틀이 아직도 있다. 아주 오래 전 방바닥을 죄다 뜯고 새로 난방용 파이프를 깔던 대공사를 했을 때, 나는 쓰지도 않는 그 재봉틀을 버리자고 주장했다가 혼만 났다. 반들반들한 까만색에 자개로 양쪽 문에 무늬를 넣어 키 큰 문갑처럼 생긴 발재봉틀은 의자를 놓고 사용해야 하는데, 어찌나 무거운지 어른 둘이 들기에도 만만칠 않은 애물단지다. 그 재봉틀로 엄마가 시집와서 옷감 끊어다가 어린 시누이들 옷도 만들어 입혔고, 온갖 낡은 옷 수선하고 20년 전쯤까지는 내 바지 길이도 잘라 박아주고 통짜 커튼이랑 식탁보도 만들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효용 면에서나 공간 면에서 이젠 그만 버려야한다는 것이 당시 나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집안 개조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도져 거의 정신줄을 놓았던 엄마 등 뒤에서 아버지는 목소리를 낮춰 나를 나무랐다. 엄마 혼수품 중에 딱 하나 남은 재봉틀이 상징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데 그러냐고, 우리가 함부로 버리고 말고 할 순 없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혹시라도 엄마가 스스로 버리겠다는 결정을 내릴 때까지 둬야한다고. 10년쯤 전에 내가 또 슬쩍 재봉틀 쓰지도 않는데 버릴까, 하고 물어봤을 때도 엄마는 니 마음대로 해라, 고 하라면서도 눈빛으로는 몹시 아까워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직접 만든 누렇게 바란 천덮개를 쓰고서 골동품 발재봉틀이 아직도 옷방 구석에서 온갖 짐에 눌려 있는 이유다.
 
정수기 청소를 하러 오는 분들이 작년부턴가는 물을 받을 통까지 들고 오지만, 그 전까지는 우리에게 물을 받을 커다란 통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 옛날에 엄마가 간단히 김치 담글 때나 만두를 빚을 때 쓰던 대야 두개(하나는 둥근 동심원 무늬 요철이 있는 양은[?] 재질이고 하나는 파란색 플라스틱이다)는 싱크대 밑에서 먼지를 쓰다가 두달에 한번씩 요긴하게 쓰였다. 헌데 이제는 그 두달에 한번 쓸모가 없어진 거다. 어차피 김치는 담가먹지 않기로 했으니 정수기 청소용으로도 필요 없게된 그 대야는 없애도 되는 물건이란 생각에 난 또 슬쩍 버려도 되겠느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요즘 잘 못버리는 지병 자가치료를 시도하는 중이다 ㅎ) 어차피 크기가 커서 재활용품 버리는 날 몰래 들고나가는 건 불가능한 물품이다. 엄마는 또 니 마음대로 해라, 고 말은 하면서도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고는 파란 대야의 사연을 들려줬다.

둘(울 엄마와 아버지)이 벌어 총 열 식구 먹여살리느라 워낙 살림이 빠듯하고 정신이 없던 가난한 집안에선 첫손녀딸 백일이 오는지 가는지 관심도 없었다. 엄마는 섭섭함을 감추고 주말에 몰래 나가 백일사진이나 찍어주어야지 생각했는데, 그날 아침 일찍 출근도 하기 전에 외할머니가 뜨끈뜨끈한 수수팥떡을 이고 오셨단다. 나의 백일 떡을 문제의 그 파란 대야에 담아서. 심지어 새벽같이 부처님 앞에 올렸다가 날라온 거였다나. (나의 우상이자 영원한 1순위 천사표 친할머니가 나의 백일도 몰랐다는 놀라운 반전에 잠시 멍했다가, 그런 일에 꽁하는 내 자신이 웃겨서 피식 웃었다.)

그냥 내다버리기엔 너무 멀쩡하다고 인정;; 이러다 평생 끼고 산다

'나쇼날'이라서 물도 잘 안들고 플라스틱도 튼튼하고 좋다고, 요샌 그런 플라스틱 나오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엄마 앞에서 파란 대야를 뒤집어보니 정말로 영어로 National이라고 적힌 마름모꼴 로고 위에 역시나 영어로 National Plastic Co., Limited라고 둥글게 찍혀 있었다. 나는 슬며시 다시 대야를 싱크대 밑으로 밀어넣고 일어섰다. 무려 사십여년 전 내 백일에 맛있는 수수팥떡을 담아 외할머니가 이고 오신 대야라는데... -_-;
이런저런 의미와 추억을 이유로 결국 나는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것인가, 한숨이 나왔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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