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과 상처

투덜일기 2011. 5. 4. 17:35

지난 수요일이었으니까 딱 일주일 전에 안하던 짓을 하다가 호되게 자빠졌다. 저만치 남은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켜지면 원래 절대 뛰지 않는 성격인데, 그날따라 좀 늦은 것 같아 뛰어보겠다고 작심한 게 잘못이었다. 오래 걸을 요량으로 운동화까지 떨쳐 신고서 거기서 왜 넘어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암튼 자동차가 막 오가는 길 한복판 언덕에서 넘어졌다. 아픈 것보다 창피해서 얼른 일어나보니 다행히 바지 무릎엔 구멍이 나지 않았고 제일 쓰라렸던 손바닥도 빨갛기만 할뿐 멀쩡했다.

후딱 택시를 잡아타고 마침 가방에 든 물휴지로 손바닥을 닦는데 이상하게 어디서 피가 묻는 것 같았다. 켁. 왼손 엄지 끝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옷에 묻은 건 어니어서, 마른 휴지를 대고 꽉 눌러 지혈을 했다. 집안에서도 수시로 어딘가에 부딪쳐 종아리 언저리에 시퍼렇게 멍이 드는 건 다반사지만, 길바닥에서 된통 넘어진건 그래도 간만이라 아프고 창피하고 민망하면서도 킥킥 웃음이 나왔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미친 여자 취급할까봐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날은 일회용 반창고를 사서 손가락에 붙인 뒤 온종일 돌아다니다 저녁 무렵에야 시큰거리는 무릎을 확인했다. 청바지에 구멍이 나지 않았으니 당연히 멍 정도만 들었겠거니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더 아픈 건 분명 왼쪽 무릎인데도 거긴 멍만 들었고 별로 아픈 줄도 몰랐던 오른쪽 무릎엔 지름 5센티미터쯤 살갗이 홀라당 얇게 벗겨져 진물과 피까지 나 있었다. 그 지경이 되도록 심히 아픈 걸 모르다니 테라플루의 힘이었을까? 넘어진 뒤 벌떡 일어나 한참 놀다가 피를 보고나서야 새삼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처럼 나도 그제야 상처 난 데가 쓰라리고 아픈 느낌이었다. ㅎㅎㅎ

일주일이 지난 지금 찢어졌던 손가락도,딱지가 앉은 무릎도 거의 다 아물어 가고 있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미 중년인 걸 감안하면 인체의 치유력이 참 놀랍고 신기하다. 특히 진보라색과 푸르딩딩한 색이 어우러졌던 멍자국의 변화는 제일 이상하다. 넘어진 다음날은 양쪽 무릎이 거무죽죽하게 죽은 듯 멍든 부위가 작았다. 그러더니 그 거무죽죽한 색이 진보라색으로 변하면서 부위가 점점 커져 멍자국이 제일 크고 요란한 건 사건(?) 4,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샤워하다가 흠칫 놀라 내가 또 어디엔가 심히 왼쪽 무릎을 부딪쳤나 의아할 정도였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선반에 이마를 찧었을 때 생겨난 시커먼 멍이 나중엔 뺨으로 내려왔던 게 떠올랐다. 멍자국도 중력의 작용을 받나보다 신기했는데, 이번엔 중력에 따라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도 아니고 동그랗게 사방으로 번지는 멍자국이라니! 게다가 놀라운 건 까져서 피난 오른쪽 무릎엔 멍이 거의 들지 않았다는 거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겉으로 피가 터져나왔으니 속으로 피가 스며들어 생기는 멍이 들지는 않았겠지.

새삼 멍드는 게 나은가, 피나는 쪽이 나은가 한참을 고민했다. 내상과 외상, 어느쪽이 빠르게 후유증 없이 나을까. 요번 무릎의 경우, 울긋불긋 멍든 왼쪽 무릎은 일주일이 지난 오늘 간지러움을 동반하며 색이 많이 연해져 이삼일 뒤면 멀쩡해질 기세다. 딱지가 앉은 오른쪽 무릎 역시 간질간질 나아가고 있지만 딱지가 완전히 떨어지려면 며칠이 더 걸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상이 더 나은 건가? 양쪽 무릎이 똑같은 강도로 다쳤을 리 없으니 비교는 불가능한데도 쓸데없이 생각에 빠졌다가, 어쩌면 그냥 피를 철철 흘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든 멍은 티도 잘 안나고 본인이나 주변의 동정을 사기도 쉽지 않은 반면, 외상은 척 보기에도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속으로 드는 골병보다는 아쌀하게(?) 겉으로 터지는 상처가 치유하기도 좋을 것 같다. 가슴에서 피가 흐르는 쪽과 가슴에 멍이 든 경우를 비교해보면 어떤가. 에고 머리 아파져서 쓰잘데기 없는 생각은 그만둬야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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