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투덜일기 2010. 11. 10. 15:08

금요일 저녁에 출판사에 갈 일이 있다. 출판사에 전화할 일이 있을 때 한 이틀 전부터 고민고민 하다가 벼르고 별러 어렵사리 전화를 거는 편이라면, 출판사에 갈 일은 일주일 이전부터 고민스럽다. 예전에 스스로 조직형 인간이라고 여기며 살던 직장인 시절엔 거래처에 독촉전화를 하고 업무사항을 전달하고 외부인을 만나 상담하고 거래처를 방문하는 게 별 스스럼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몸서리 쳐지는 꿈만 같다. 담당자와 아무리 친분이 쌓였더라도 이젠 낯선 회의실에 앉아 그 뻘쭘한 시간을 어떻게 매끄럽게 보내야할지 통 자신이 없다.

평소의 나 같으면 금요일 외출 건을 거절했어야 옳다. 근데 뭣에 씌였는지 상당히 복잡한 출판 행사가 벌어지는 그날 가깝지도 않은 출판사엘 왜 가겠다고 승락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난 여름 어지간히도 속을 썩인 담당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막상 가자고 생각하니 영 마뜩찮다. 더욱이 빌어먹을 쥐20 때문에 어느 길이 어떻게 통제될지 알 수 없다는 요번 금요일에 강남까지 가야한다니.

지난주까지만 해도 쥐20에 반대하는 심보를 보란듯이 알리기 위해서라도 '자율적 2부제' 따위 무시하고 차를 가져갈 작정이었다(벌써부터 우리집 담벼락과 현관에 '11, 12일 양일간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세요'라는 홍보물이 붙어 있어 더욱 배알이 틀렸다). 한강 다리만 건너면 바로 있는 곳이라 차로 가면 30-40분이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계단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시간과 걷는 시간까지 합해 1시간도 넘게 잡아야 한다. 출퇴근 길에 막히는 시간까지 감안하더라도 시민 편의를 우습게 아는 놈들의 행태에 어떻게든 딴죽을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명박산성에 버금가는 펜스를 쳐가며 벌써부터 길을 막는 건 물론이고, '높으신 분들'의 이동 경로에 따라 강남길은 수시로 어디나 통제될 거란 뉴스를 보며 다시 원초적인 고민에 빠졌다. 괜히 차안에서 3시간쯤 갇혀 있으면 어쩌나. 감기 걸렸다고 핑계대고 가지 말까... -_-; 헌데 그럼 전화를 걸어야 하잖아! 전화도 없이 그냥 안나타나도 나 하나쯤 안 온 거 모르지 않을까. 양치기중년의 삶에 대한 반성으로라도 그냥 전철 갈아타고 걸어 걸어서라도 가야하는 걸까...

울화는 결국 다시 이름도 공교로운 쥐20으로 향한다. 왜 하필! 그딴 걸 하느라 세상 시끄럽고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거냐고! (번거로운 외출을 승락한 내 잘못은 역시나 뒷전이다. -_-; 이렇게 잠깐 외출도 고민스러운데 차폐막을 뚫고 계속 강남으로 출퇴근 해야하는 사람들은 오죽 불편할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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