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장보러 갔을 때 마트 밑반찬 가게에서 만들어 놓은 반찬을 충동구매했었다. 원래 그렇게 만들어 놓고 세 팩에 5천원 하는 반찬들은 조미료 때문에 못미더워 까탈스러운 척 하면서 좀체 사다먹질 않는데, 그날은 채소 진열대에서도 생전 못보던 '유채나물'이란 게 눈길을 끄는 바람에 파래무침과 연근조림을 더 얹어 구색을 맞추었다.
그런데 사온 반찬들을 거의 다 먹어가던 참이라 그릇 바닥에 연근이 두어개 밖에 안 남았을 때, 뭔가 새까만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대번에 왕비마마를 의심했다. 숟가락질 하시다가 흑미 하나를 떨어뜨렸나보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확인 결과 흑미 크기의 새까만 물체는 물엿에 휩싸여 죽은 파리 시체였다.
엄마한테는 말도 못하고 남은 반찬들을 다 버리고도 며칠 내내 밥상에 앉기만 하면 연근 구멍 안쪽에 늘어붙어 있던 파리가 떠올라 입맛이 달아났다. 비위가 그리 약한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파리가 남긴 잔상은 오래도록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파리가 빠져 죽은 연근조림을 먹은 모녀 모두 탈은 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반들반들 물엿에 싸여 날개는 녹아버렸는지 몸통만 얼핏 본 그 파리가 오래도록 나를 괴롭힌 것처럼, 아래 끼적인 친구 욕하는 푸념도 흉한 잔상을 내게 오래 남길 것 같다. 돈이 없어 빌릴 처지에 놓이게 된 건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분노하고 친구를 욕했을까. 그간 크든 작든 돈 문제로 나를 힘들게 했던 지인들과의 모든 경험을 뭉뚱그려 그 친구 잘못으로 몰아붙인 혐의가 짙다. 친구라면서 실망한 건 그 쪽이나 내 쪽이나 똑같을 텐데, 나만 옳은 척 수십년의 역사를 몇줄로 매도한 행위가 이제 보니 참 옹졸하다. 연근 물엿에 빠져 죽은 검은 파리가 내 꼬락서니 같은 이 기분은 며칠 전의 잔상보다 꽤나 오래 가겠다.
그런데 사온 반찬들을 거의 다 먹어가던 참이라 그릇 바닥에 연근이 두어개 밖에 안 남았을 때, 뭔가 새까만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대번에 왕비마마를 의심했다. 숟가락질 하시다가 흑미 하나를 떨어뜨렸나보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확인 결과 흑미 크기의 새까만 물체는 물엿에 휩싸여 죽은 파리 시체였다.
엄마한테는 말도 못하고 남은 반찬들을 다 버리고도 며칠 내내 밥상에 앉기만 하면 연근 구멍 안쪽에 늘어붙어 있던 파리가 떠올라 입맛이 달아났다. 비위가 그리 약한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파리가 남긴 잔상은 오래도록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파리가 빠져 죽은 연근조림을 먹은 모녀 모두 탈은 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반들반들 물엿에 싸여 날개는 녹아버렸는지 몸통만 얼핏 본 그 파리가 오래도록 나를 괴롭힌 것처럼, 아래 끼적인 친구 욕하는 푸념도 흉한 잔상을 내게 오래 남길 것 같다. 돈이 없어 빌릴 처지에 놓이게 된 건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분노하고 친구를 욕했을까. 그간 크든 작든 돈 문제로 나를 힘들게 했던 지인들과의 모든 경험을 뭉뚱그려 그 친구 잘못으로 몰아붙인 혐의가 짙다. 친구라면서 실망한 건 그 쪽이나 내 쪽이나 똑같을 텐데, 나만 옳은 척 수십년의 역사를 몇줄로 매도한 행위가 이제 보니 참 옹졸하다. 연근 물엿에 빠져 죽은 검은 파리가 내 꼬락서니 같은 이 기분은 며칠 전의 잔상보다 꽤나 오래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