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줄임

투덜일기 2010. 11. 5. 13:46

예전에 가수 박진영을 퍽 좋아했다. 나 또한 한때 춤추러 다니는 걸 좋아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춤 잘추는 사람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기도 했고, 최근의 노래들 말고 초창기의 노래들은 정말 한 곡도 버릴 게 없다며 달달 욀 정도로 많이 들었다. 그런데 가수 박진영 말고 그가 인터뷰 같은 데 나와서 말하는 건 약간 재수없는 말투라고 생각하다가 공통점을 발견하고 반색했던 적이 있다. 쓸데없이 말 줄여서 말하는 사람(물론 박진영은 '여자'라고 했지만)이 별로라면서, 호감 가던 사람이 물냉면, 비빔냉면을 '물냉, 비냉' 따위로 줄여부르면 정이 확~ 떨어진다고 말했다. 나도 그랬다! 대학 신입생 때 과에서 모임이 있으면 꼭 중국집엘 데려가 무작정 짬뽕국물에 소주를 시켜 먹이다가, 제일 저렴한 짜장면과 우동 중에서 끼니를 정하라고 강권했다. 그때 내가 몹시도 싫어하던 선배는 엄청 나대면서 우리에게 각자 먹을 메뉴를 '앞 글자'만 얘기하게 시키고는 자기가 굳이 메모지에 正자를 그리며 수를 파악했다. 아이들이 '우-짜-우-짜-우-짜-짜'라고 말하는 게 재밌다나. -_-; 으으으..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지게 싫다! 물론 때에 따라 나도 편하게 물냉, 비냉으로 줄여서 쓰기는 하지만, 스스럼없는 사이가 아니라 조금은 격식이 필요한 자리에서 경박한 줄임말을 들으면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급감한다.

말 줄여쓰기 열풍이 분 건 아무래도 삐삐를 시작으로 해서 휴대폰 문자메시지의 글자수 제한에다, pc통신을 거쳐 인터넷 문화의 확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디카, 폰카, 떡삼(떡+삼겹살), 김떡순(김밥+떡볶이+순대), 뭥미 따위의 줄임말을 아무 거부감 없이 쓰고 있고, 학습을 거쳐 엄친아, 엄친딸, 언플(언론플레이),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해제, 인강(인터넷 강의) 같은 말들을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굳이 안 줄여도 될 말들을 언론에서까지 덩달아 열심히 줄여서 쓰기를 권장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고 몹시 마음에 안든다. 물론 예전에도 일간지 헤드라인에는 집약적인 느낌의 줄임말이 쓰였고, 그것이 잘못이라 여기지 않는다. 언론과 뉴스에 수시로 오르내리는 국감, 건보료, 생보자, 금감원 정도는 이제 줄임말도 아니라고 여겨질 정도다.

헌데 오늘 뉴스를 보다가 뭥미, 하는 낱말을 듣고 뉴스 내용에 집중해보았지만 끝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_-; 우리나라 방송의 뉴스는 중3 수준의 어휘와 지력에 맞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내가 중3수준의 상식과 지력에도 못미친다는 의미? 내가 못 알아먹은 말은 코스피의 폭등과 세계증시 관련 뉴스를 언급하며 그 원인을 설명하는 부분에 나온 '연준'이라는 말이었다. 한번쯤은 그게 뭔지 긴 말로 풀이해줄 만도 하건만, 앵커와 기자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을 정도로 오래 다루면서도 끝내 '연준'이 어쩌고 저쩌고, '연준'의 이번 발표가 주절주절, 그랬다. 요즘처럼 검색이 일상화된 시대에는 못알아 먹는 사람이 알아서 찾아보라는 식인가보다 싶어, 검색해보니, '연방준비제도'인 모양이다.

예전엔 <금감원 @@ 개입 결정> 같은 헤드라인이 떠도 기사 중엔 금융감독원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친절히 정식 명칭으로 풀어주었던 것 같은데, 요샌 그나마도 안해주는 게 미덕이고 추세인가?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에 복잡한 일이 많아 뉴스는 내가 봐도 못 알아먹는 이야기가 수두룩하지만, "저게 뭔 얘기라니?"라고 물으며 난감해 하시는 왕비마마의 속상함을 지켜보자면 버럭 화가 난다. 말만 덜 줄여도 이해의 폭이 커질 수 있을텐데 싶어서 말이다.

하기여 요즘엔 드라마 제목, 방송제목도 죄다 줄여서 '성스', '인아', '무도' '음캠', '남격'이라고 부르는 게 일반화된 듯하고, 심지어는 존경하는 뮤지션이라면서 마이클 잭슨을 '마잭'이라고 줄여 부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니 내가 아무리 투덜거려도 이미 추세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그저 내가 무식한 거라고 자책하며 이런 공간에다가나 경박한 줄임말 싫다고 푸념하는 수밖에 없겠지. 연방준비제도도 모르는데 '연준'을 어떻게 알란 말이야! 젠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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