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가시

투덜일기 2010. 10. 29. 20:23

밥먹을 때 혼자 생선가시를 발라 먹기 시작한 게 언제인지는 당연히 잘 기억나질 않는다. 하지만 대충 짐작컨대 열살 언저리가 아니었을까? 할아버지의 호통 교육으로 젓가락질은 국민학교 이전에 이미 통달한데다, 밥상머리에서 오래도록 엄마의 시중을 받기엔 두 동생이 있어 어려웠을 테고, 그때도 이미 잘난척 했던 나의 성격이 그런 걸 허락치  않았을 것 같다. 엄마가 살쪽을 우리에게 나눠준 뒤 당신은 남은 살에서 생선가시를 대충 발라서 입안에 넣고 마구 씹다가 남은 가시를 뱉어내는 방식을 어려서도 몹시 못마땅해 했던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동생들은 머리가 굵어진 뒤에도 생선을 먹을 땐 꼭 엄마가 거들어줘야 했다. 막내는 아예 비린것을 싫어해서 웬만해선 젓가락도 대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억지로 먹이려고 자꾸 밥그릇에 생선살을 올려주는 편이었고, 큰동생은 생선가시를 바르는 게 아니라 생선 몸통을 헤쳐놓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영악한 나는 생선 종류가 달라지더라도 중간 뼈대와 등, 배에 난 가시의 구조를 알면 완벽하게 생선살만 발라먹는 게 어렵지도 않은데 다들 왜 헤매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행히도 착한 올케들은 생선반찬을 식탁에 올릴 때마다 어린 조카들 뿐만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도 일일이 가시를 발라 살만 먹기 좋게 마련해주는 성품이다. 그게 습관이 된 덕분에 심지어 같이 밥을 먹을 땐 우리 모녀를 위해서도 가시를 발라주는 지경. 애들과 남편을 위해 돌아가며 생선 가시를 발라주느라 생선을 굽거나 조리는 날엔 정작 자기는 잘 먹지도 못한다고 푸념하면서도, 지켜보면 노상 그러고 있다. 엄마도 위대하지만 아내도 위대함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가끔 나도 밥상머리에서 일손을 돕느라 조카들에게 생선살을 발라 숟가락에 얹어주다 보면, 녀석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정말로 젓가락을 쉴 수가 없고, 내 입으론 생선살 한톨 못들어간다.

물론 이젠 나에게도 밥상머리에서 늘 생선가시 바르는 시중을 들어들어야 하는 왕비마마가 계신다. 과거에도 그랬듯 왕비마마는 대충 큰 가시만 발라낸 생선 살을 마구 씹다가(잔 가시는 칼슘 섭취를 위해 먹어도 괜찮다고 주장하신다) 걸리는 가시가 있으면 뱉어내는 분인데, 그러다 꼭 가시가 목에 걸려 켁켁거리며 괴로워하시기 때문에 나는 절대 못하게 말린다. 일주일 단위로 병원에 다닐망정 생선가시 빼러 응급실 가는 일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식단을 구체적으로 짜서 해먹고 사는 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생선을 굽거나 조려 상에 올리는 편이라 어느새 생선가시 바르는 일도 나름 주간행사다. 

돌아보면 굴비를 좋아하셨던 할머니를 위해 말년에 생선가시를 바르는 일도 내 몫이었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땐 당연히 할머니가 생선 살을 발라 내 밥숟갈에 얹어주셨겠지만, 눈이 어두워지신 할머니를 위해선 나나 엄마가 할머니 밥숟갈에 굴비 살을 올려드려야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당신은 됐으니 너나 어서 먹으라고 말씀하셨지만, 잔 가시 하나 없이 '성공적으로' 살코기만 할머니 숟가락에 얹어 드리며 나는 몹시 뿌듯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엄마를 위해 생선살을 바르는 요즘은 뿌듯함보다 서글픔이 앞서고 그래서 자꾸만 심술이 난다. 할머니를 위해선 꼭 숟가락에 생선살을 얹어드렸으면서, 엄마를 위해선 가시만 따로 발라 치워놓고 직접 집어 드시라고 하는 것만 봐도 태도가 다르다. 벌써부터 매사에 너무 의존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함이라는 의도가 깔려 있기는 하지만, 그 밑바탕엔 엄마가 완전히 힘없는 '할머니'란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보가 녹아 있다. 

오늘 저녁에도 가시가 젤 없는 편인 삼치를 구워 먹으며 생각해보니, 내가 열살무렵에 생선가시 분야(?)에서 독립했다고 쳐도 엄마의 시중을 받은 게 10년이니 최소한 나도 10년은 군말없이 봉사해야 맞는 거다. 그 이후에도 계속 그런 봉사의 세월이 이어지면 감사할 일이고... 생선가시 때문에 툴툴대다 갑자기 철났나보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