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의 딜레마

삶꾸러미 2007. 1. 2. 22:29

원래 아기와 아이들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내가 조카들을 이렇게 지독하게 사랑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부모자식간은 온종일 씨름하다 보면 미울 때도 있고 고울 때도 있지만
고모와 조카 사이는 잠깐씩 그리움을 달래며 예쁠 때만 보고 있으니 조카 사랑이 어떻게 보면
더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줄이야. ^^
아무튼...
올해로 무려 10살(!)이나 된 정민공주가 태어난 뒤로 난 참 못말리는 고모였고
7개월 된 지우한테까지도 고모는 도무지 안 되는 게 없는 인간이라 조카들 버릇을 완전히 망치는 공공의 적이라고 식구들한테 손가락질을 받는다.

식구들의 비난 속에서도 내심 나는 조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걸 다들 시기하는 것뿐이라며 흐뭇해 하는데,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어느덧 넷이나 되는 조카들한테 골고루 사랑받는 고모로 살기엔 이제 체력이 몹시 딸린다는 것이다.
아직 기어다니는 아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녀석들의 고모 독차지 경쟁도 만만치는 않다.
밥먹을 때도 저마다 고모 옆에서 먹겠다고 싸움을 벌이는 지경이니까..

동생들은 내가 매를 벌었다며 한편으로 고소해한다. ㅡ.ㅜ;;
너무 하자는 대로 다 하니깐 애들이 고모 알기를 우습게 알고 친구처럼 막 대한다나.

하지만 조카들 버릇을 망치고, 스스로 매를 번다는 비난을 듣더라도 나는 조카들이랑 최대한 신나게 놀아주고 싶고, 바라는 걸 들어주고 싶다.
집안에서 한 명쯤은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어른이 있기 마련 아닌가?
그래서 공룡 놀이, 자동차 놀이, 학교 놀이, 엄마 놀이, 크리스마스 놀이, 레슬링, 파워레인저 변신 놀이, 이야기 놀이, 그림그리기 놀이 따위를 열심히, 온 몸을 불살라가며 같이 한다.
그리곤 조카들이 돌아간 날 밤부터 거의 반몸살을 앓는다.

어제도 떡국 먹으러 다니러 온 동생들 식구가 온종일 먹고 놀다 돌아간 데다
방학 맞은 정민공주는 하룻밤 더 자고 가겠다고 나서서 1박2일간
훌륭한 고모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나니,
물집만 잡혔던 입술에 더하여 입천장이 헐고 입가가 빨갛게 찢어진 데다
삭신이 마구 쑤신다.
어제 엉긍엉금 기어다녀야 하는 동물놀이를 너무 오래 한 탓이다.

언제부턴가 나도 사랑스러운 울 조카들의 '고모, 놀자!' 소리가 제일 무섭다. ㅠ.ㅠ
하지만 요 녀석들은 벌써 그걸 알아차리곤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고모네 집에 올라오자마자 소리친다.
"고모, 놀자~!"

동생들은 내 나이를 생각하라며 이제 그만 놀아주라는 데...
몸살을 앓을 땐 그래야겠다고 작심하면서도 막상 사랑스러운 녀석들의 얼굴을 보면
놀아달라는 부탁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다.
어리석은 고모의 이 딜레마는 언제쯤이나 해결될 수 있을 것인지. 쯧쯧.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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