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0도

추억주머니 2009. 12. 18. 03:17
요샌 겨울이 돼도 영하 10도씩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연일 강추위다. 이런 추위엔 본능적으로 동면모드에 접어들어 집구석에서 꼼짝도 하지 않아야 정상인데, 그놈의 요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하려면 아주 귀찮아 죽겠다. 어떤 날은 온종일 눈꼽도 안떼고 있다가 오밤중에 세수 한 번 하고 마는 게으름뱅이가 이틀에 한번은 제대로 씻고 떨쳐입고 나서야 하다니 말이다. 그나마 핫요가라 학원에만 가면 따끈따끈하기에망정이지, 추운데서 옷갈아입고 벌벌 떨어야 하는 요가였다면 애저녁에 관뒀을 거다.
째뜬 영하10도의 날씨는 중무장을 했어도 건물 사이로 휘몰아치는 도시의 칼바람엔 귀떼기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무서운 추위임을 새삼 실감했다. 목도리와 장갑으론 부족해 털모자를 썼어야 했다고 어찌나 후회를 했는지. 장갑 낀 손으로 귀와 코를 간간이 보듬다가 오래 전 추억이 떠올랐다. 아침 등교길에 춥다고 징징거리다 아버지한테 귓방망이를 얻어맞았던 사건.

5학년 때였나. 내복과 외투를 다 껴입고도 마당에서 얼굴 춥다고 징징대는 딸에게 목도리를 두르고 마스크까지 씌워줬던 아버지는, 내가 "그래도 밖으로 나온 눈이 춥다"고 계속 징징대자 참지 못하고 손지검을 했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뒤통수 정도를 갈기려고 했다가 얼떨결에 뺨을 때린 것도 같았는데, 그 이전까지 매라고는 가끔 동생들과 단체로 손바닥 정도나 맞아보았던 나는 너무도 큰 충격에 징징대던 울음까지 뚝 멎어버렸다. 더 혼나지 말고 얼른 학교나 가라고 채근하는 엄마 말대로 멍하니 집을 나서 학교로 향하며, 나는 아픔보다도 난데없는 배신감에 소리없이 뜨거운 눈물을 계속 쏟았던 것 같다. 아빠는 언제나 내 편이라 여겼던 고명딸의 자존심도 여지없이 무너졌음은 물론이다. 그날 저녁까지도 충격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린 나는 아빠랑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내 눈치를 보며 자꾸만 말을 거는 아빠에게 단답형으로만 대답했다.
결국 흐지부지 아빠와 화해를 한 건 틀림 없지만 아빠가 내 뺨을 때렸다는 사실은 어린 마음에도, 아니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대사건>이었다. 아버지도 그렇고 울 엄마도 그렇고 자식들을 사랑의 매로 다스리는 분들이 아니어서, 집에 분명 회초리는 존재했지만 특별한 체벌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기껏해야 방학숙제 밀렸다고 삼남매가 쪼르륵 서서 손바닥을 몇 대 맞았던 정도였는데, 내가 아빠에게 뺨을 맞다니.
물론 내가 아버지에게 뺨을 맞은 것은 인생을 통틀어 그 추웠던 겨울 아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귓방망이 맞은 충격 때문에 며칠간이나 화를 풀지 않고 아빠의 눈길을 외면했던 나의 <시위> 때문이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삼남매 가운데서 아버지한테 뺨맞은 자식은 내가 유일할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동생들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지구온난화 탓도 있지만 주거여건을 따져봐도 확실히 그때 겨울이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마루엔 널빤지가 깔려 당연히 난방이 안돼 추운 겨울날 맨발로 방에서 나와 디디는 것이 고역이었던 그 옛날의 한옥은 당연히 세수도 마당 수돗가에서 엄마가 솥에 데워놓은 더운물을 떠다가 해야 했다. 요즘 아이들에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처럼 들릴 삶의 모습들이 불과 내 어린시절의 추억이란 게 놀랍다. 자다 말고 내복 바람으로 옥외 화장실에 가야하던 그 때의 매서운 추위를 떠올리며 요즘 추위쯤 <요까짓것> 코웃음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본성이 간사한지라 그게 잘 안된다. 추운 거 싫어!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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