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티의 역사

추억주머니 2009. 12. 11. 22:57

누가 그랬다. 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엠티를 다니냐?
그러고 보니, 멤버십 트레이닝의 약자라는 <MT>를 다닌 역사가 그 이전 역사보다 길다. 하하하.

첫 엠티. 열아홉살때. 대성리. 청량리역에 모여 기차타고 가서 허름한 민박집에 묵었다. 
오티, 엠티 같은 데 가면 운동권 학생들한테 <포섭> 당하거나, 위험한 <혼숙>이 자행되는 공간이라며 절대 못가게 하시던 구시대 아버지를 설득하느라 애를 좀 먹었었다. 나중에 학생들 엠티에 한번 쫓아가본 아버지는 문제의 <혼숙>이란 것이 운동장 만한 방에 수십 명이 떼로 모여 한쪽에선 술마시다 자고 한쪽에선 고스톱치고 한쪽에선 기타치며 노래부르는 요상한 놀이의 장임을 깨닫고는 두말 안하셨다.
여전히 청평, 강촌, 남이섬 등지를 벗어날 수 없었던 두번째, 세번째 엠티 때도 똑같았다. 청량리역이나 성북역에 모여 기차를 타고 가선 시설 조악한 민박집이나 방갈로 같은 데서 죽어라 술퍼마시며 놀다 돌아왔다.

방학을 맞아 동아리에서 떠난 엠티는 장소가 좀 더 멀어졌다. 첫 동아리 엠티는 역시나 너무 멀고 기간도 길다고  집안 반대에 부딪쳐 못가고 스무살 때 비로소 동아리 엠티를 따라갔다. 3박4일짜리 동해안. 망상 해수욕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속버스 타고 가서 무려 <텐트>에서 잤다. 동아리가 개강하자마자 공연을 해야하므로, 체력단련한답시고 밤늦도록 술먹이고는 새벽에 깨워 백사장을 달리게 했다. 3박4일간 찍은 사진을 보면 다들 팅팅 불어 가관이었다. 

첫 직장에 들어가자 고급스러워진 엠티 장소는 드디어 콘도 또는 호텔. 상사들이 모는 자동차에 나눠타고 움직였다. 숙소는 호화로워졌지만 고기 먹고 밤새 술마시다 퍼지는 건 똑같았다. 회사 규모가 커지니 슬쩍 이름도 <워크샵>이라고 바뀌고 아예 관광버스를 몇 대씩 대절해 아무도 운전 안하는 건 좋았지만, 회사에서 출발하자 마자 버스 안에서부터 술을 마셔대는 분위기였다. 거의 20시간 술자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다행히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선 다들 쓰러져 잠들어 더는 술권하는 이가 없었지만, 간간이 속이 아파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해야 하는 후유증이 꽤나 심했다.

회사생활을 관두고서도 엠티 기회는 이어졌다. 관계가 돈독해진 몇몇 출판사에선 번역자 관리 차원에서 직원들 엠티 때 끼워주었다. 스스로 가고 싶을 때도 있었고 가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일 끊길까 염려되어 웬만하면 따라갔다. 숙소는 펜션 아니면 콘도, 호텔. 장소가 무려 제주도일 때는 비행기를 타고 가기도 해서 신났다. 허나 가서 하고 노는 건 역시나 고급 안주에 밤새 술마시기. 세상은 안변하더라.

늙다리 대학원생 시절에도 엠티가 있더라. 딱한번. 요샌 학부생들도 우아하게 콘도 같은데로 엠티 간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다. 양평이었던가 십수년 전 학생때와 다르지 않던 허름한 민박집. 그나마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가긴 했다. 밥먹고 술마시고 캠프파이어 하고 레퍼토리도, 다음날 숙취까지 기시감이 들 정도로 똑같았다.

그 뒤로 이래저래 만난 이들과 좀 각별히 친해지고 싶을 땐 어김없이 엠티를 떠났다. 장소도, 탈것도, 먹거리도 전보다 다양해졌다. <여행>에 방점이 찍히는 게 아니라 <엠티>에 방점이 찍히는 짧은 나들이는 확실히 장소보다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매번 <구경>보다는 먹고 마시고 수다떨고 앉은 자리에서 최대한 즐기는 게 엠티의 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어딘가에 모여 밤새 수다떨며 술마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도, 역시나 엠티는 그와는 다른 <설렘>을 동반한다. 소풍 전날 가방에 간식을 싸며 설레던 어린시절처럼, 오늘도 뭔가 간식을 싸야할 것 같은데 겨우 1박2일에 너무 촌스러운 것 같아 그냥 설렘만 즐기고 있다. 이 감미로운 설렘을 위해서라도 힘 닿는 때까지 엠티를 따라다닐 테닷!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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