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모임

삶꾸러미 2006. 12. 13. 17:22
바야흐로 연말이다.
그래서 자주 만나온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 대로
만남이 뜸했던 이들은 또 그들대로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 회포를 풀어야하지 않겠느냐고 모임을 청한다.

옛날엔 그런 걸 당연하다 여겼다.
그래서 12월의 마지막 두 주일은 거의 매일 음/주/가/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요란한 송년모임 약속을 잡았고, 스스로도 몹시 그걸 즐겼더랬다 ^^;;
직장생활 7년간 거친 회사 3군데에서 사귄 절친한 지인들과는 당연히 만나야 했고
좀 각별히 친한 출판사의 경우엔 직원 회식 자리에도 초대를 받곤 했다.
그뿐인가, 뜻하지 않게 사회에서 만나 깊은 정을 나누게 된 이들, 학교에서 만난 선후배들,
가족 송년모임까지...
지금도 만나자는 대로 다 약속을 잡으면 남은 2006년을 또 다시 흥청망청 보내야할 것 같다.

하지만 몇해 전부터는
그렇게 요란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게 귀찮고 민망해졌다.
내가 그리워 만날 사람은 반드시 올해 만남을 되돌아보며 갈무리하지 않더라도
내년 역시 만남을 이어갈 테고
어떤 이유로든 만남이 뜸해진 이들은 그렇게 스르르 서로에게서 멀어지거나, 또 다른 계기로 다시 연이 이어지거나 하지 않겠나 말이다.

물론 꼭 만나서
굳이 '송년모임'이라는 꼬리표를 단 만남의 자리에 모여
올 한 해 우리 참 잘 지냈지 않느냐고, 또는 참 힘들었지만 잘 견뎠노라고
서로 어깨 토닥여주고 격려하고 편한 이야기를 나누고픈 이들도 있다.
다만 그런 모임은 나의 12월에 두어 번으로 족하다는 뜻이다.

나머지는 그냥 반갑게 만나서 2006년이든 2007년이든, 12월이든 1월이든 특별히 뭔가를 마무리하고 매듭지어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 없이 즐겁고 행복한 수다와 교감을 나눴으면 좋겠다.
어차피 시간은 연속적인 것이고, 달력으로 구분해 놓은 건 인간의 편의 때문인데
꼭 그렇게 시간의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어제 오늘
'올해가 가기 전에 소주나 한 잔 해야지..'라며 송년 모임 날을 받자고 다그치는,  
조금 '먼' 지인들에게는 비겁하게 '어, 내가 시간 봐서 다음 주쯤  전화할게...'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좀 찔리긴 하지만, 소모적인 연말을 보내고 싶진 않단 말이지..
물론 다음주에 내 연락을 기다리다 또 다시 만남을 청하는 이에겐
당연히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날을 잡아주겠지만 말이다. ㅎㅎ

어느새 내가 이렇게 친구들 사이에도 엄연한 금긋기를 해놓았는지 참...
폭넓은 인간관계를 자랑삼아온 게 좀 부끄러워지는 연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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