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강요

추억주머니 2009. 4. 4. 22:01

국민학교 4학년때의 일이다.
그 시기에 특히 또래 집단들과의 긴밀한 우정이 형성되는 모양인지, 반엔 유독 끼리끼리 어울리는 무더기들이 많이 생겨났던 것 같다. 꽤 조용한 아이였던 나는 우정을 과시하듯 서너명씩 몰려다니는 그 아이들이 꼴같지 않기도 했고, 당시 유행하던 고무줄 놀이에 낄 수 없을만큼 엄청난 실력(밑바닥이란 의미다) 때문에 어차피 같이 놀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유독 나를 자기네 무리에 끌어들이려고 공을 들이는 아이가 하나 있기는 했다. H는 나와 집이 같은 방향이 아닌데도 괜히 빙 돌아서 시장 언저리까지 나와 동행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막 우겨서 나를 고무줄 놀이 깍두기로 껴주었다.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이 고맙다기 보다는, 1, 2단을 넘기지 못해 놀림감이 되기 쉬운 내 고무줄 실력을 아이들 앞에 보여야 한다는 게 곤혹스러웠지만, 그래도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의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H의 바람대로 학기초에 써내는 가정환경조사서에 그애의 이름을 적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기가 막히지만, 부모의 학력과 직업은 물론이고 집에 TV 따위의 가전제품이 있는지 없는지, 말도 안되는 항목까지 써내야 했던 그 종잇장에는 친하게 지내는 학우관계에 관한 항목도 있었고, 그 종이를 내기 전날 H는 나에게 다가와 "나는 친한 친구 이름에 니 이름 쓸 거니깐, 너도 내 이름 써야한다. 알았지?"라고 말했었다. 
H가 특별히 내 마음에 드는 것도 싫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나는 그냥 귀찮아서 그애와 친구로 지내는 걸 <눈감아주기로> 했던 것 같다. 도시락을 먹을 때나 점심시간 이후 운동장에서 놀 때, 방과후 집에 갈 때도 난 오히려 요란하게 휩쓸려 놀기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불편했음에도 거의 모두 끼리끼리 무리를 이룬 반 분위기 때문에 차마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4월 중순쯤 우리반에 전학생이 등장했다. 뿔테 안경을 써 모범생 분위기가 나고 꽤 얌전해 보이던 그 아이는 전학생이 흔히 겪어야 하는 따돌림의 운명을 고스란히 겪기 시작했다. 학기초이긴 해도 이미 <파벌>이 형성된 이후에 전학을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점심 시간 짓궂은 남자애들이 그애를 확 밀어 넘어뜨리는 장난을 한 순간 그애가 "아부지!"라고 외치며 울음을 터뜨린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대부분 아이들은 깜짝 놀라거나 위험에 처한 순간 본능적으로 "엄마!" 또는 "엄마야!"라고 하는데, S는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이 모든 아이들에게 이상하게 비쳤던 거다.
육성회 임원인 엄마를 둔 H는 당장 자기네 엄마를 통해 S의 뒷조사에 돌입했고, 전학시키던 날 학교에도 온 적 있던 S의 예쁜 엄마가 친엄마가 아닌 새엄마라는 사실, 그날 등에 업혀 있던 유난히 어린 아기동생은 배다른 남동생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내 온 반아이들에게 떠들어댔다. 이혼율이 높아진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이혼이든 사별이든 재혼 가정이나 홀부모 가정은 무조건 <결손가정>이라며 잠재적인 문제아를 양산하는 가정으로 손가락질 했던 것 같다.
나도 2학년때 그 학교로 전학을 와 한동안 빙빙 겉돌던 기억이 있기도 했지만, 나는 새엄마와 함께 사는 S를 안쓰러워하진 못할망정(사실 나의 무작정 동정심도 문제였지만;;) 괜히 따돌리는 반아이들에게 분노했고, 마침 집도 서로 그리 멀지 않은 S를 우연히 등교길에 만난 날 나도 모르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때도 친구를 본격적으로 사귀는 건 꽤나 뜸을 들이는 성격이라, 내가 S의 친구가 되어 주겠다는 의협심 같은 건 전혀 없었고 그냥 편견없이 전학생을 지켜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와 S가 몇번 등하교를 같이 하는 것을 목격한 아이들은 즉각 수군대기 시작했고, H는 나를 운동장으로 불러내 <절교선언>을 했다. "S랑 같이 다니면 너랑 절교할 거야. 어쩔래?"라는 식으로 말하는 H에게 나는 기가 막혀서 니 마음대로 하라고 대꾸하고는, 보란듯이 S와 친한 척을 했다. 당연히 나까지 따돌림을 당하는 추세였는데, 어린 마음에도 나는 그들의 패거리 횡포가 부당하다고 느끼며 분노했다. 다행히 한동안 지켜본 결과 S는 나와 책읽는 수준도 비슷했고, 나처럼 운동도 싫어하는데다 나처럼 아기들을 예뻐해서 자기네 아기동생을 만날 업어준다고 자랑을 했다. 우리집보다 훨씬 책도 많은 S의 집에 놀러가 보니, 동화속의 악독한 새엄마들과 달리 S의 새엄마는 특별히 다정스럽진 않아도 그저 평범한 엄마였다.
내 인생의 책 첫권으로 꼽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바로 이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었다. 여자애들의 전반적인 따돌림 속에서 나는 얼떨결에 S와 단짝이 되고 말았지만, 나에게 정말로 각별한 친구의 존재는 S가 처음일 정도로 반발심이랄지 분노에서 시작된 우정은 퍽이나 성공적이었다. 한편, 나에 대한 H의 응징은 단순히 절교로 끝난 게 아니었다. ^^; 자신의 우정을 <감히> 거부한 배신자(실제로 H는 고무줄 놀이에 나를 끼워주었던 무리들에게 나를 <배신자>라고 칭했다)를 가만둘 수 없었는지, 따돌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 듯 H는 화장실 낙서사건을 공모했다. 당시엔 재래식 화장실인 <학교 변소>에 남녀 학생의 이름이 나란히 쓰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그런데 하트 속에 내 이름과 나란히 적힌 남자애가 우리반에서 제일 말썽쟁이에다 잘 안씻어서 더럽고 공부도 못하는 또 다른 왕따였다는 사실이 H가 꾸민 복수극의 핵심인 모양이었다.
화장실 벽에 분홍색과 노란색 분필로 그린 하트 속에 이름이 적히는 사상최대의 스캔들을 직면하고 엄청난 놀림을 받기 시작한(내가 지나다닐 때마다 아이들이 떼지어 "얼레리 꼴레리, 라니하고 OOO하고 얼레리 꼴레리~"라고 놀려댔다) 나는 처음엔 화가 나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하지만 욱하는 성질머리와 삐딱한 반항심은 그때도 여전했는지, 스스로도 잘난 척하며 나와는 터무니 없는 조합이라고 생각하던 코찔찔 말썽쟁이 OOO에게 일부러 보란듯이 연필도 빌려주고 전에없이 다정하게 구는 것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왕따들의 연대감이라고나 할까? 그때부턴 유독 잘난 아이들이 못되게 따돌리던 힘없는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유독 뚱뚱해서, 말을 더듬어서, 잘 안씻고 꾀죄죄해서, 숙제를 잘 안해와서, 그밖에 사소한 이유로 따돌림을 받던 아이들은 각자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드러내놓고 엄청 친한척을 하진 않았지만 심정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사이였던 셈이다.
마침 그해 담임은 2학기부터 이상하게 좌석배치를 자율에 맡기겠다며 조장 몇명을 임명하곤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대신 남녀 비율은 반반씩 섞어 조를 꾸리게 했다.  폐품수집이든, 환경미화든, 용의검사든, 학예회 준비든 모든 경쟁평가는 조별로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조장으로 뽑힌 내가 멍하니 앉아 있는 사이, 이미 패거리는 정해졌고 나는 굳이 조원을 선별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데도 뽑히지 않은 왕따 아이들은 전부 우리 분단에 앉으면 되는 거였다. ^^
그래서 우리 왕따 조가 모든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전분야에서 최고 평가를 받았다든가 하는 드라마 같은 일은 물론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꼴찌 조는 우리가 아니었다. 육성회 임원 자식들이 대거 모여있던 H의 조가 단연 극성스러운 1등을 차지한 건 말하나 마나일 것이다. 하지만 왕따들도 모이면 힘이 세지는 걸 우린 느꼈고, 근거없이 화장실 벽에 이름을 적혀 스캔들을 내는 복수극 같은 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반에서 제일 키 큰 코찔찔 OOO이 주먹을 휘두르며 누군지 들키면 죽을 줄 알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도 효과가 있기는 했지만, 스캔들 당사자인 내가 바락바락 아니라고 하며 울고불고 해야 재미가 있을 텐데 오히려 의연하게 구니까 소문은 더 빨리 잦아들었던 것 같다.

쓰다보니 나 혼자 옛생각에 재미가 들어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왜 내가 새삼 이런 사연을 적고 있는고 하니, 제목에도 적은, 최근 경험한 어떤 관계의 강요 때문이다. 나는 고집스러운 구석이 많아서 누가 느닷없이 강요하면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수긍하기 보다는 반발심이 먼저 생기는 편이고,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상처를 입더라도 제3자의 판단을 따르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겪고 판단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 꼭 나를 염려한다는 명분으로 관계를 대신 정립해주려 시도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껏 경험한 바로는, 그렇게 다가와서 간섭한 이들과 오히려 관계가 틀어지고 말았던 것 같다. 이러이러한 사람이 있으니 각별히 친하게 지내라거나, 새삼스레 그 사람 이런저런 사람이니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지인에게 듣더라도, 나는 의심이 많은 성격인 때문인지 덜컥 그 말을 수긍할 수가 없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지만 십수년을 겪어도 뜻밖이라 생각되는 면을 발견할 만큼 한 인간을 파악한다는 게 어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나는 느닷없는 관계의 강요에 제일 먼저 불쾌감을 느꼈다. S와 놀면 자기와는 절교라는 식으로 극단적인 협박을 한 H와는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어쨌든 나는 내 판단력과 관계망을 간섭하려는 그의 시도에 11살 때의 추억이 떠올랐고 부디 그때처럼 순전히 반발심으로 원래 관계가 흐트러지진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하기야, H와는 5학년에 올라가서 그녀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들이고 S와 함께 셋이 다시 친구가 되긴 했었다. 국민학교 졸업 후 그 둘다와 연락이 끊긴지 오래지만.
지금 그들은 또 어떤 관계를 맺고 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하다. 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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