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

투덜일기 2009. 1. 19. 15:23

블로그를 시작한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익명의 허울에 무작정 기대어 사적인 일기장에나 써야할 넋두리들을 적어놓고는
그저 홀로 느끼는 배설의 희열이라 여기기엔 너무 많이 왔고 드러냄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듯하다.
그래도 천성적으로 숫기가 없다보니 온라인 세상에 익명으로 차지한 이 공간의 노출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어차피 티스토리에 세를 들었으니 관련 사이트에서 추적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을 테고,
내 실력이나 게으름의 정도로는 일부 이웃블로거들처럼 독립계정으로 블로그를 옮겨 주요 검색엔진을 아예 막아놓는 치밀함을 발휘할 수도 없으니 그냥 눈 질끈 감고 버티는 것이 장땡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여행을 앞두었을 때나 괜찮은 음식점을 찾을 때, 요리 레시피가 필요할 때 나 역시 인터넷 검색으로 다른 이들의 블로그 덕을 보기도 하므로, 이곳 또한 누군가에게 일말의 <쓸모>가 있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공간은 특별히 무엇이라 특징지울 수 없는, 그야말로 흔한 수다와 넋두리의 장이다.
멋진 사진이 많은 것도 아니고, 영화나 책 리뷰를 멋지게 올리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주제로 심도 있는 논의를 풀어내는 건 더더욱 아니며, 많은 이들의 방문을 염원하며 기발한 아이디어나 생활의 지혜를 풀어내는 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쩍 늘어난 방문자수는 나에게 부담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매일 달라지는 곡선이 그려낸 모양이 재미있다는 지인의 얘기에 팔랑귀를 펄럭이며 덩달아 방문자수 그래프를 달아놓고 뿌듯해하긴 했으나 그 덕분에 예전과 달리 방문자수에 시선이 자꾸 가는 것이 신경에 거슬려 그래프를 다시 없앨까도 고민 중이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얼결에 재작년 우수블로거에 드는 바람에 일시에 방문자가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봤자 백명, 2백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지난주 들어선 계속 7백을 오르내린다.
내 푸념을 가상히 들어주는 현실과 가상의 지인들, 그리고 그 중간쯤에 자리한 듯한 블로그 이웃들을 독자로 여기고는 있는데, 내가 감당하기엔 수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겁이 덜컥 났다.
훌륭한 블로거들은 방문자가 많아지면 거의 매일 쓸만한 포스팅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긍정적인 동기로 작용하여 더욱 스스로를 채찍질한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훌륭한 인품과 근면성을 갖춘 인간이 아니다. 퍽 자주 블로그에 글을 끼적이는 이유는, 일을 한답시고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자꾸만 딴짓을 하고 싶기도 하고 태생적으로 내가 수다스럽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방문자들이 많아지면, 내가 무슨 얘기를 했기에 이러나 싶어 겁부터 나는 소심이 유형에 속한다.
어떻게 하면 방문자수가 다시 조촐한 수준(조촐한 수준은 과연 몇명일지 그것도 잘 모르지만)으로 떨어질 수 있을것인가, 한 열흘쯤 블로그를 방치해볼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그러기엔 만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의 손과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을 반큼 이미 블로그 중독증이 심하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구시렁구시렁 하찮은 투덜거림과 사적인 고민이며 흔한 자랑질로 블로그를 이어갈 테지만 바라건대 더는 방문자가 늘지 않으면 좋겠다.
나처럼 일하기 싫고 심심해서 같은 사람들이 두세번씩 블로그에 드나든다고 계산해도 7백은 너무 많다. -_-;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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