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

투덜일기 2008. 12. 22. 18:45
(두글자 제목에 또 맛들였나보다)

내가 정식으로 조직에 속해 마지막으로 갑근세를 냈던 해는 1994년이었다.
1994년 12월 말 기준으로 회사를 관두고 1995년 새해부터는 불확실한 미래에 약간 불안감을 느끼며 어떻게든 번역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었다는 얘기다.
1995년 여름 첫 번역서가 나오긴 했지만 초반부 나의 삶은 백수나 진배없었고, 나의 처지에 맞게 온갖 세금에서도 자유로워졌다. 요샌 퇴직을 한 뒤에도 계속 연계된다는 것 같은데, 당시만 해도 직장을 관두면 다달이 내던 국민연금도 얼마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번역료에서 3.3%의 원천징수세를 떼고 받기는 했지만, 그거야 출판사에서 신고하는 것이니 내가 세무서와 관계될 일은 전혀 없었고 프리랜서 번역가는 곧 무직으로 인식되는 탓인지 건강보험은 즉각 아버지 밑으로 회복되었으니 별도로 내가 자잘한 세금을 낼 일은 오래도록 없었다.
1996년에 지금 터서 살고 있는 이 작은 집 한귀퉁이를 내 이름으로 사들였음에도 재산세, 토지세 말고는 다달이 낼 세금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다 2001년이던가, 국민연금 사무소에서 연락이 와 전년도에 소득이 잡혀 연금징수대상이긴 한데 현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당시 나는 대학원생이었고, 공부에 벅차 학기중엔 절대로 번역 일을 할 수 없었으므로 곧이 곧대로 대답을 했었다. 그랬더니 국민연금 담당자는 흔쾌히 면제사유가 된다며 별다른 서류제출 요청도 없이 대학원 졸업때까지는 연금징수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다시 말해 1994년 퇴사후 무려 2003년까지 10년 가까이 국민연금에서 자유로웠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 5, 6년 전부터는 세무서에서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그 이전까지는 세무행정이 확립되지 않은 탓이었는지, 내 수입이 그만큼 미미했다는 의미인지 잘은 모르지만
세무서직원들의 레이다망에서 자유로웠던 시대가 드디어 끝나버린 것.
통지서의 내용은 출판사와 잡지사 등지에서 한 3.3% 원천징수세 신고로 나의 모든 소득이 세무서에 보고되었으니 그에 대한 확인과 함께 소득세 신고를 다시한 번 하라는 식이었다. 
단지 귀찮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머뭇거리는 나에게 번역 일을 하는 친구가 일러주길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단순경비 비용 계산 요율이 높아서 환급받을 돈이 더 많으니 잔말말고 얼른 신고를 하라고 했다.
실제로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보니, 연간소득이 적을수록 환급되는 돈은 더 많았고 내가 미리 낸 돈을 돌려받는 것임에도 어쩐지 공돈 같아 수십만원씩 통장에 입금되는 환급금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국민연금공단에서도 집요하게 의무가입을 강요하는 전화가 걸려왔고
당시 팽배했던 국민연금 거부 정서를 앞세워 말싸움을 해보았지만 결국엔 일정 소득이 있는 경우 무조건 가입이 <국민의 의무>라는 막무가내의 협박과 설득에 넘어가 최저 수준으로라도 국민연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건강보험은 예외였다.
아버지의 퇴직 후 우리 식구는 몽땅 큰동생 명의의 건강보험증에 이름이 올라갔고 (아버지 밑에 있는 것과 동생네 식솔 밑에 그것도 조카들 이름 아래 내 이름이 박힌 건강보험증이 좀 민망하긴 했으나, 병원 갈 일도 없는데 뭐 어떠랴 싶었다!) 종합소득세 신고 후엔 건강보험이 따로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한 예상을 뒤엎고 나는 그뒤로 몇년이나 캥거루족의 양상을 이어올 수 있었다.
보호자로서는 한달에도 서너번씩 병원을 들락거리지만, 내 몸 때문에 병원을 찾는 일은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어쩌면 건강보험공단에서 청구를 누락시킨 것이 아닐까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건 세무행정과 건강보험공단의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니, 나라 살림을 생각한다면 그저 좋아라 할 일만도 아니었지만 일단 내 주머니에서 억울한 돈 나갈 일이 없으니 나로선 기쁠 뿐이었다.

허나, 유가환급금을 겨우 4만원 환급해주겠다는 열딱지 나는 전화를 받고 난 뒤 얼마 안 있어서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서류가 왔는데 피보험자에서 나의 자격을 박탈시키고 별도로 지역 건강보험료 징수자로 재편한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던 것.
코딱지 만하든 말든 집도 있고, 소득도 있으니 내가 단독으로 건강보험료를 내야한다는 <원칙>에 적용될 수밖에 없음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 원칙이 어째서 자그마치 12년이나 흐른 뒤에야 적용된단 말인가?
며칠 전 드디어 날아온 내 이름으로 된 단독 <건강보험증>과 안내장을 보니, 여러가지 점수(소득수준과 집에 점수를 매긴단다)를 집계한 결과 예상 보험금액이 12만원에 육박한단다. +_+
일년내내 병원 한번 안 가는 나더러 매달 12만원씩 건강보험료를 내라고!!!
왜 이리 억울할까.
물론 울 엄마는 한달에도 몇번씩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타오며 수없는 혜택을 받고 있으니
그 재정을 나 같은 젊고(?) 건강한 사람이 쌩돈을 각출하여 메워야하는 체계임을 알지만 그래도 너무 억울하다.
생각같아선 늙어서도 절대 병들지 않아 건강보험 공단의 도움 따위 안받고 나도 안도와주는 쪽을 택하고 싶지만 서민들한테 악착같이 세금 걷어들여 나라 살림 유지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니 내가 무슨 힘이 있으랴.
보험료 고지서 나오면 속 쓰리게라도 내는 수밖에.
국민연금 때도 그랬지만 괜히 억울해서 자동이체 신청은 몇달 버티다가 할 게 뻔하다.
젠장젠장...
직장 다닐 때는 그래도 회사에서 절반 부담해주는 데다 월급에서 떼고 나오니 건강보험료 내는 것도 그러려니 했는데 피같은 원고료 털어서 내 손으로 내려니 정말 아깝고 억울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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