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였다.
볕이 좋은 일요일, 가난한 부부는 계획했던 대로 올망졸망 어린 삼남매를 데리고 남산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결혼식을 마치고 속리산으로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에 택시를 대절해 친구들과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었던 것이 벌써 6, 7년 전의 일이었다. 그땐 평생 단 한번의 호사라 택시를 타고 남산을 올랐지만, 이번엔 두 아이를 걸리고 막내를 아내 등에 업힌 채 당연히 버스를 타고 회현동으로 향했다. 
탈 것들을 담은 그림책에서만 보던 케이블카를 태워주겠다고 아이들과 오래 전부터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를 타보는 것은 젊은 부부도 처음이었기에 폴짝폴짝 뛰며 흥분해 좋아하는 아이들 못지않게 마음이 설렜다. 편도 표를 끊어 무쇠로 만든 작은 버스 같은 케이블카에 오르자 정말로 거짓말처럼 케이블카는 줄에 매달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케이블카 창에 매달리듯 유리에 얼굴을 대고 내다보는 남산의 초록빛 녹음은 더욱 아름다운 듯했고, 아이들이 손가락질하는 곳의 동네이름을 어림짐작으로 가르쳐주며 새삼 서울이 참 넓구나 싶었다.
아쉽게도 케이블카는 몇분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특히 둘째 아이의 목표는 남산구경이 아니라 오로지 케이블카 타기였기에 아쉬움이 더했다. 녀석은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또 타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남편은 주머니에 든 돈을 만지작거리며 셈을 했다. 예정했던 대로 남산 팔각정 주변을 둘러본 뒤 아이들과 우동을 한그릇씩 먹고 나면 집에 돌아갈 차비 정도밖에 남지 않을 터였다.
일단은 말 잘 들으면 또 태워주겠다고 달래자 아들녀석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얌전히 아빠의 손을 잡았다.
굵게 불어터진 우동 면을 멸치 국물에 말고 유부 몇조각을 얹어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남산을 쏘다니다 먹은 늦은 점심은 행복의 맛이었고, 다섯 식구의 일요일 나들이는 평화롭게 끝나가고 있었다.
둘째녀석이 내려갈 때도 케이블카를 타야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전까지는.

남편은 남은 돈을 계산해보았으나 집에 돌아갈 버스비를 제외하면 솜사탕 하나를 사먹거나, 어린이용 반표를 끊을 수 있는 돈이 남을 뿐이었다. 한번 고집을 부리면 매를 맞고도 좀처럼 꺾이지 않는 둘째의 막무가내 성격을 잘 아는 그는 길바닥에서 큰소리로 아이를 혼내는 남부끄러운 광경을 연출하고 싶지도 않았고 기분 좋은 가족 나들이를 망치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아내와 의논 끝에 아들녀석만 케이블카에 태워 내려보내자고 결론을 내렸다.
아들 녀석에겐 꼼짝도 하지 말고 케이블카 내리는 곳에서 엄마아빠를 기다려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케이블카 차장에게도 아이를 잘 간수해달라고 부탁을 한 뒤 부부는 그저 좋아라 손을 흔드는 아들을 배웅했다. 뒤이어 남은 두 아이를 하나씩 업고 안은 부부는 부지런히 뛰다시피 남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허나 케이블카를 탔을 땐 눈깜짝할 새에 정상에 당도했으므로 동네 언덕쯤으로 어림짐작했던 남산 길은 막상 걸어보니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둘째를 잃어버릴까봐 더럭 겁이난 젊은 부부는 부디 아들녀석이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꼼짝않고 기다려주기를, 나쁜 마음을 먹은 누군가 데려가는 일은 없기를 기도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케이블카 승강장이 보여 길잃을 염려가 없게 되자 남편은 큰아이 손을 아내에게 쥐어주고는 홀로 먼저 승강장 건물로 달려갔다. 다행히 아들녀석은 잔뜩 겁먹은 얼굴에 눈물자국이 두 줄기 말라붙은 채로 얌전히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멀고 먼 남산 길을 숨가쁘게 달려온 부모의 수고를 알 리 없는 녀석은 심통이 나서 제 아빠를 반기기는커녕 입술을 잔뜩 빼물고 눈을 흘겼다.
엄마는 금방일 줄 알았는데 걸어내려오려니 너무 멀어서 오래 걸렸다는 설명 끝에, 다음에도 또 케이블카 혼자 탈래? 라고 물으니 아이는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막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을 겪기는 했지만, 다섯식구는 손에 손을 맞잡고 나란히 남산 입구 길을 내려오며 또 다음 나들이를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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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케이블카가 수십년만에 새것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니 또 문득 떠올라, 우리 가족이 차를 타고 남산 옆을 지나간다거나 이야기 도중 남산이 언급될 때 늘 되풀이되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적어보았다.
사실 나는 저 날을 기억하지 못하며, 전부 엄마 아빠한테 들어서 알게 된 이야기다. 나름 꽤나 놀랐을 법한 동생녀석도 그날의 기억을 갖고 있진 않는 듯하다.  
저 날 이후 나는 거의 30년쯤 뒤에야 비로소 다시 남산 케이블카를 타보았는데, 동생들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들도 아이들 데리고 남산에 놀러갔단 이야기는 들어보았는데 케이블카 얘긴 없었던 걸 보면 안탔단 얘긴가? 자동차를 가져갔을 터이니 그랬음직도 하다.
어느해였나 송년모임에서 굳이 남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야경을 보자던 후배의 주장에 촌스럽다고 툴툴거리긴 했지만, 안 그랬으면 새것으로 바뀌기 이전의 케이블카를 타볼 기회를 영영 놓쳤겠구나 싶어 새삼 고맙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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