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야 산다

삶꾸러미 2008. 11. 17. 16:07

일주일에 한두번은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를 달아보면서 체중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은 모순일까 아닐까.
자신의 몸매와 체중에 가장 가혹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체중이 크게 늘거나 줄어드는 상황을 주시하는 것일 뿐 체중이 좀 늘어났다고 해서 다이어트를 하거나 더 살을 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먹는 것을 통제하여 몸을 혹사시키기엔 나의 식탐이 너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살집이 많든 적든 타인의 눈총과 손가락질과 자학의 원인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이 나의 굳은 믿음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남녀불문하고 깡마르거나 울퉁불퉁 무서운 근육질로 뒤덮인 사람들보다는 몽실몽실 올록볼록 오통통한 사람이 더 좋다.
중년에도 군살 하나 없는 마돈나의 몸매를 우러러보기는 하지만 나에겐 그런 몸매를 추구할 여력과 에너지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자랑스레 살집을 드러내는 비키니를 입지 않는 이유는 다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 물론 마른 사람들은 살이 찌고 싶어도 안되는 것이라지만, 뼈가 앙상히 드러나는 가시 같은 몸매를 보면 안타깝고 가여워서 맛있는 걸 막 먹여주고 싶다. 멀대처럼 큰 키에 으스러질 것 같은 몸매로 휘청휘청 걸어다니는 모델들의 걸음걸이는 나에게 하나도 멋지지 않다!

어쨌거나 나이가 들면 근육의 양이 점점 줄어 지방으로 변하기 때문에 체중은 전혀 변화가 없더라도 근육에 비해 부피가 훨씬 큰 지방이 생겨나면 몸이 두루뭉수리하게 변할 수밖에 없단다. 반대로, 체중이 전혀 줄지 않았더라도 열심히 운동을 하여 몸의 지방을 근육으로 만들었다면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 몸매가 매끈하게 정리되었을 확률이 높다. 
운동이랍시곤 숨쉬기밖에 하는 게 없는 내 몸에도 근육이 남아날 리 없으니, 원래 신축성 뛰어난 밥배를 위하여 언제나 약간씩 넉넉하게 입던 옷들이 최근 들어선 죄다 꽉 맞는 느낌이다. 밑위가 짧은 바지를 입어 허리선 위로 솟아오른 뱃살의 두께도 확실히 몽실몽실 넉넉해졌다. 그렇다고 소스라치게 놀라 다이어트에 돌입할 위인은 절대로 아니다. 아마 맞는 바지가 하나도 안남으면 신나서 새옷을 장만하러 나갈 가능성이 더 클 거다. 
명절연휴 동안 세 끼니에 더하여 간식까지 줄기차게 먹어대면 사실 2kg쯤 늘어나는 건 금방이다. 그나마 키가 작아서 그렇지 키가 큰 사람들은 명절 이틀 새 3kg도 쉬 불어난다. 기름진 음식을 갑자기 많이 먹어 두둑하게 몸에 저장됐기 때문인데 내 경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몸도 알아서 저장해둔 살을 내놓아 일주일 안에 예전 체중으로 돌아간다. 명절에 늘어난 군살 같은 건 사실 걱정거리도 아니다.
오히려 심하게 몸살 같은 걸 앓고 나서 몸무게가 빠졌을 때가 문제다.
나에겐 내가 체감하는 적정 몸무게가 있다. 그 기준 아래로 내려가면 정말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게 버거울 정도로 체력이 딸림을 느낀다. 그 기준보다 3kg이상 늘어나도 마찬가지다. 몸이 무거워서 거동이 불편함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 몸은 본능적으로 적응에 나선다. 체중이 많이 빠졌을 땐 끊임없이 식탐과 식욕을 동원해 스스로 에너지를 저축한다. 내 손으로 집어 내 입으로 씹어 삼키기는 하지만, 사실 그럴 때 나는 몸이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다.
먹고 싶은 음식이 명확하게 머릿속에 떠오를 때, 나는 그것을 몸이 보낸 텔레파시라고 믿는다.
가령, 단 게 먹고싶어지면 스트레스가 쌓였거나 순식간에 분해되는 에너지원으로써 고열량 탄수화물이 몸에 필요하다는 뜻이다. 초콜릿 케이크가 떠오르면, 커피의 카페인과는 다른 초콜릿에 함유된 카페인과 달콤함이 몸에 절실하다는 의미다. 각별한 나의 식탐을 몸이 보내는 절실한 텔레파시로 해석한 세월이 꽤 오래 된 터라
계절에 따라 몸상태에 따라 내 몸이 원하는 먹을 거리들은 고도로 세분화되었다. 아니, 사회화 되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5월엔 주황색 알이 꽉 들어찬 꽃게찜이 먹고 싶고, 대하철엔 대하 소금구이가 먹고 싶으며
11월이 되면 싱싱한 굴에 방어회가 먹고 싶어지니, 철철이 달라지는 먹거리들을 머리 나쁜 내가 어떻게 익히고 있는지 참 놀라울 뿐이다. ^^

가뜩이나 나잇살이 오름을 느끼고 있는 데다 주말엔 뷔페식당에 가서 두끼 분량을 신나게 먹고 돌아왔더니 가차없이 소숫점 아래 두 자리까지 체중을 알려주는 디지털 체중계의 숫자는 실로 막강하다.
그렇지만 또 지금은 겨울이 아닌가. (아직 늦가을인가?)
올 겨울 추위를 무사히 나려면 동면 직전의 짐승들처럼 몸에 두툼한 지방층을 둘러놓아야 하는 법.
통통한 배를 두들기며 오늘은 커피에 데운 우유를 듬뿍 넣고 설탕까지 넣어 달달하고 그윽하게 한잔 마셔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람은 모름지기 먹어야 산다.
만일 늘어난 몸무게가 계속 유지된다면 나의 중년을 버틸 적정 몸무게가 그렇게 늘어났다는 뜻이라고 믿을란다. 20년 넘도록 크게 변하지 않은 몸무게의 변화 추이가 나도 궁금하다.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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