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습관

삶꾸러미 2006. 11. 24. 02:31

'시간 내서 밥 한 번 먹어야지..'라는 진부한 대사를 거의 1년쯤이나 반복한 끝에
드디어 친구 하나를 만나 정말로 '밥'을 먹었다.

그 친구와 만날 약속을 정하면서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동안 늘 하던 대로 다른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하려 했었다.
너무 여럿이 모이는 건 이제 나도 좀 피곤한 것 같아 조촐하게 두엇 쯤 더 부르려고
친구들 이름을 주워섬기던 나는 그냥 단둘이 보자고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돌연 정신이 퍼뜩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와 단둘이 약속을 해서 만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늘 '동창'이라는 테두리로 엮인 다른 친구들과 당연히 한 자리에 뭉쳐 만나곤 했던 것.
그러면서 그런 자리가 언제부턴가 약간은 시끄럽고 피곤하다고 느껴져
늘 모임을 주동했던 내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자 다들 만남이 소원해졌던 게 사실이다.

인복이 많아 다행이라 여기며 지인들과의 이런저런 만남을 즐기는 편이긴 한데
정말로 단둘이 오붓하게 나누는 정담을 즐기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늘' 왁자지껄 여럿이 모이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만남도 있다.
물론 단둘이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을 만큼 친하지 않은 이들이라 그런 경우도 있지만,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단둘이 만나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기이한 습관에 길들여진 만남도 있는 것이다.

여럿이 만나서 더 즐겁고 에너지로 충만하여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만남이 확실히 있긴 하지만
어제 친구와 오붓하고 긴 수다 끝에 돌아오며 느낀 건
역시 '단둘이' 대화의 심도가 훨씬 깊고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는 점이었다.

단지 익숙하다는 것 때문에 그간 편한 습관처럼 반복했던 내 소홀한 인간관계와 만남을 새삼 돌아보는 계기가 생겼으니, 이젠 한 사람 한 사람 따로 떼어 보며 소중한 인연맺기에 좀 더 정성을 들여야할 것 같다.  

이런 걸 이제야 깨닫는 주제에 맨날 인복 많다고 자랑삼아 떠든 게 새삼 민망하다. ㅎㅎ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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