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기질

삶꾸러미 2008. 2. 9. 17:34
별 근거가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혈액형별 성격분류는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지만
형제자매 가운데 몇번째로 태어났는지에 따라 성격과 기질이 어느 정도 달라져
첫째는 첫째끼리, 둘째는 둘째끼리, 막내는 막내끼리 통하는 공통점은 확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든 예외없는 법칙은 없으니 모든 사람에게 '딱 떨어지게' 맞는 건 아니지만
주변 친구들이나 친척,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맏딸은 맏딸대로, 맏아들은 맏아들대로,
둘째나 셋째, 또는 막내 특유의 성격을 얼추 짚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맏딸이나 맏아들, 막내의 기질을 모두 갖춘 외동딸이나 외동아들의 특징도 따로 분류가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표본조사 같은 거창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적이 없으니
절대적으로 맞다고 극구 주장할 수야 없는 일이고,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둘째나 셋째, 막내로서의 삶을
속속들이 짐작해 기질을 파악해볼 재주 또한 없다.
다만 맏딸로 살아온 본인의 경험과 주변의 맏딸과 맏아들을 두루 살핀 결과 첫째 특유의 기질은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첫째는 자존심이 강하다.
만만하게 따라 배울 손위 형제들 없이 부모나 조부모를 역할모델로 삼고 성장했으며, 늘 주변에서 '너는 첫째니까 의젓해야 한다'든지 '누나 또는 형님으로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큰 덕분에 은연중에 어른들과 자신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자존감이 극에 달하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누가 시키는 일은 견디질 못하고 스스로 다 알아서 하고 싶어한다. 심지어 부모가 하는 잔소리에도 부아가 치밀 정도여서, 스스로 하려던 일도 누가 채근하면 버럭 짜증을 내면서 아예 하기 싫어진다.
더욱이 잘못을 지적받는 일은 크나큰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스스로 잘못임을 알면서도 그 순간엔 수긍하지 못하여 반항을 하기도 하고, 비록 나중에 후회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있더라도 처음엔 자기가 옳다고 박박 우긴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부모 또한 약점 많은 인간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더욱 못미더워하거나 안쓰럽게 여기므로 철이 일찍드는 경우가 많다.

둘째, 첫째는 카리스마나 리더십이 강하거나,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
어느 집안이든 형제가 여럿인 가운데 첫째는 부모의 기대와 요구치가 높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동생들을 보살피고 이끄는 임무에 충실하다. 간혹 형제가 많으면 군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첫째도 있을 정도다.
듬직함, 책임감, 솔선수범, 친화력 등 어린시절부터 첫째에게 흔히 요구되는 정서를 골고루 개발하는데 성공한 첫째들은 가족 이외의 공동체에 진출해서도 그 같은 기질을 발휘하여 주변의 우러름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여 약간이라도 비뚤어져 자존감만 앞세우는 첫째는 손가락질 받는 '못된' 독불장군이 되는 수도 있으며, 막무가내로 권위주의를 앞세우기도 한다.
(물론 첫째로 태어나서도 병약하다든지, 심성이 유약하여 첫째의 운명이나 주변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여 카리스마는커녕 평생 그늘이나 뒷전에 숨어 투덜거리기만 하는 첫째도 없지 않다)

셋째, 첫째는 완벽주의 성향이 다른 이들보다 강하여 흔히 까다롭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이 기질은 자존심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도 있는데, 어려서부터 매사에 칭찬을 듣고 타의 모범이 되어야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머리에 박혀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끝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다.
첫째들에게 '대충하고 넘어가기'란 웬만해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끔 말로는 '대충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완벽해야 만족하므로 종종 주변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넷째, 위와 같은 기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첫째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자존심 때문에 또 그렇다는 티를 내지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 속으로 끙끙 앓기 쉽다.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병이나 우울증에 걸릴 확률 또한 첫째가 더 높을 것 같다는 심증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하진 않다. -_-;;)


대단히 신빙성 있는 이야기처럼 적어놓기는 했지만, 사실 순전히 내 주관적인 의견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별을 불문하고 내 주변의 첫째는 내가 관찰하고 실감하는 공통적인 특질을 갖춘 경우가 많아
서로 이해의 폭도 큰데, 어떤 경우는 첫째 기질끼리 서로 부딪쳐 어려운 관계가 되기도 한다.
맏딸이었던 엄마가 막내딸이었던 엄마보다 첫째를 더 잘 이해하기도 하지만
자존심과 완벽주의를 앞세우는 첫째 출신 두 모녀의 성격이 더 첨예하게 부딪칠 때도 있다는 얘기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 첫째는 확실히 쉬운 일도 어렵게 하며 살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첫째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유별난 성격과 기질을 갖춘 인간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내가 별난 인간이라 세상 참 팍팍하게 산다는 결론보다는
'첫째라서 그런 거야'라는 위안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억지스럽게 꼽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인간적인 결점을 단순히 혈액형 때문이라고 믿으며 위안을 받으려는 마음과 별로 다르지 않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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