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벽

삶꾸러미 2006. 11. 14. 16:38
기벽: 이상야릇한 버릇. 남과 다른 특이한 버릇.

국어사전 찾아봤는데,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이 테두리에 속하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암튼.. 맞다고 생각하고 일단 써보자.

어제,
만나면 늘 웃음이 끊이질 않는 세 여자가 모여 이런저런 수다를 떨던 중에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했다.
셋 다 싱글이면서도 집안살림에 몹시 신경을 써야하는 처지라는 것.
하나는 동생 데리고 자취중이어서
하나는 엄마가 바쁘셔서
하나는 엄마가 편찮으셔서.

그렇다고 셋 다 잡다한 가사일을 좋아하느냐 하면 그건 또 절대로 아니어서
상당히 귀찮아하고 짜증스러워하는 편이다.
(나만해도 가사노동이 싫어 결혼을 혐오해온 인간이 아니던가!)
게다가 각자 고집대로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은 나이다 보니
절대로 용납 안되는 자기만의 기준이 있는데, 그게 사소한 것 같아도
남들 눈엔 상당한 '기벽'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어제 깨달은 거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설거지를 하고 나서 싱크대에 절대로 물기가 있으면 안된단다.
마른행주로 완전히 물기를 말려두어야 한다는 것.

나머지 두 사람은 이 얘기를 듣고 마구 웃어댔다.
나 같은 경우, 설거지 하고나서 마지막에 행주를 빨아 엄청나게 튀긴 물을 닦아주긴 하지만
그러고 나서 다시 행주 빨면 물이 또 튕기던데!?
그러면 그냥 그 물방울들은 저절로 마르라고 '내버려두고' 행주를 너는 걸로 설거지가 끝이다.
근데 이 친구는 마른 행주로 싹싹싹 물기를 완전히 훔쳐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인데
그간 다른 동거인들이 그렇게 안해놓는 것 때문에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고...

그리고 또,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칼을 절대로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박스 테이프로 늘 찍찍.. 붙여 버려야 직성이 풀린단다.

그 얘길 들은 또 한 사람...
자기는 화장실 휴지가 반드시 2칸 정도 내려오게 잘려 있어야지, 안 그러면 못참고
같이 그 화장실을 쓰는 동생에게 소리를 지른단다 *.*
욕실 슬리퍼도 '언제나' 들어갈 때 곧장 신을 수 있게 나오면서 돌려놓고 나와야한다나.

크하하하... 참 별난 습관도 다 있지 않나?
나는 화장실 휴지 끊기를 무슨 속도전 하듯 다다다다 손가락에 말아서 탁.. 튕기듯 끊는 편이라 어쩔 땐 두세 칸 내려와 있기도 하고, 휴지걸이 덮개 속에 끝이 들어가기도 하고 그때그때 다르던데...
그러고 보니, 세면대는 물론, 화장실 바닥에도 물 한방울 있으면 안되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친구네 집에 가면 화장실 가서도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워낙 사방에 물흘리기가 주특기인 나는 손 씻고 나서 화장실 바닥을 휴지로 여기저기 닦다가 돌연 확~ 짜증이 나기도 했었다.

나는 어떤 기벽이 있더라??
어서 실토해보라는 두 사람의 성화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나도 물론 방바닥에 떨어진 기다란 머리카락이 구렁이처럼 느껴져서 자꾸 집어버리는 습관이 있기는 하지만, 워낙 탈모가 심한 인간이라 수시로 머리카락 집느라 끙끙대진 않는데...

하지만 생각해보면 분명 나만의 기벽이 있을 거다.
남들도 나처럼 할 거라 짐작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뭔가 있긴 할 것 같은데
그게 뭘지 딱히 꼬집어낼 수가 없다.

치약도 중간에 꾹꾹 눌러 쓰다가 마지막이 돼서야 끝으로 모으는 인간이고
(결혼해서 치약 때문에 싸웠다는 신혼부부 얘기 너무도 많이 들었다!)
샴푸나 샤워젤도 늘 두던 자리에 안 둘 때도 많고
청소도 별로 안 좋아하고..
설거지도 마구 쌓아놨다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거 좋아하고(좋아한다기 보다는 마지못해 하는 거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참 되는대로 마구 사는 인간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분명 까탈스럽게 구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그게 너무도 궁금하다.
뭘까..
뭘까...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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